2017년 12월 1일 금요일

야고보서 5:1-12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야고보서 5:1-12

1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2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3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6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7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10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11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자시니라 12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5:1 부자들아, 이제 너희에게 닥칠 고생을 생각하고 슬퍼하며 울어라. 

5: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고, 

5:3 너희의 금과 은이 녹슬었으니, 그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될 것이며, 불같이 너희 살을 삼킬 것이다. 여러분은 마지막 날에도 재물을 쌓았다. 

5:4 보아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일꾼들에게 지불하지 않은 품삯이 소리를 지르며, 추수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이 만군의 주님의 귀에 들렸다. 

5: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쾌락을 즐기며 살육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다. 

5:6 너희가 의로운 자를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않았다.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오래 참아라. 보아라, 농부가 땅의 귀한 열매를 바라고 오래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 

5:8 너희도 오래 참아 너희 마음을 굳게하여라. 이는 주님의 강림이 가깝기 때문이다. 

5:9 형제들아, 심판을 받지 않도록 서로 원망하지 마라. 보아라, 심판자가 문 앞에 서 계신다. 

5:10 형제들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모범으로 삼아라. 

5:11 보아라, 우리는 인내하는 자를 복되다고 말한다.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으니, 주께서는 긍휼이 많으시고 인애하시다. 

5:12 나의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마라. 하늘로도 땅으로도 다른 무엇으로도 맹세하지 마라. 너희는 '예.' 할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여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여라. 


1. 부한 자들에게 임할 심판

본문 1-3절에,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재물을 세상에 쌓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자기 먹고 살 것 정도로만 두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사야 5:8절에,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했습니다. 가옥에 가옥을 더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옥 하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 홀로 잘 살려고 하면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목사가 한국에서 교회를 하다가 미국으로 가는데 교회를 팔고 갔습니다. 교회 파는 것은 죄입니다. 그렇게 팔고는 미국에 가서 집을 하나 샀는데,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더 합해서 샀다고 합니다. 그러다 가 최근에 미국의 금융 위기로 집값이 뚝 떨어졌다고 합니다. 교회 팔아가지고 욕심으로 간 사람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살아야 하는데 욕심으로 무엇을 취하려 하다가 다 망합니다. 마지막은 사망인 것입니다.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 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북에서 부자들이 욕심으로 자기 집을 크게 지으려고 길바닥에 기둥을 세우다가, 이북의 부자들 숙청하며 쫓아낼 때에 울면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날 때에 자기 재물을 가지고 가지 못했습니다. 돈 때문에 그들은 통곡하면서 근심이 생겨서 죽은 사람도 있고 형편없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재물이 어느 때까지는 필요하나, 그 재물 때문에 화를 당할 날이 옵니다. 재물이 어느 정도 지나면 자기의 살을 먹습니다. 재물을 바로 처리하지 못하고 죽어서, 그 아들들이 재물 때문에 싸움하는 집도 있습니다. 재물 때문에 못할 짓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재물을 바로 쓰면 하늘에 쌓이는 것이고, 재물을 바로 못쓰면 자신도 나빠지고 자손들도 나빠지며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재물이 살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세에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아야 합니다. 말세에는 재물을 땅에 쌓아둘 때가 아니라 하늘에 쌓고, 믿는 일을 할 때입니다. 세상에 쌓아 놓아봐야 좀이 먹고 맙니다. 아끼다가 자기도 쓰지 못하고 하나님께도 바치지 못한 채, 다 버리고 맙니다.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다 쓰지 못합니다. 의복도 아무리 많아도 다 입지 못합니다. 다 주어야 합니다. 아끼는 것은 쓰지도 못한 채, 좀이 먹어 버리게 됩니다.
어떤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까? 누가복음 6:20-21절에,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심령이 주린 자, 죄로 인해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요한 자는 화가 있다고 하였고, 배부른 자는 화가 있다고 하였고, 웃는 자가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자는 믿기가 힘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렵다고 하였습니까?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였는데, 계속해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였습니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못 한다는 말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자를 가난하게 만들어서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에 있는 부자는 믿는 일을 하지 않고 부자 된 사람입니다. 야고보서 4:17절에,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일 하지 않고 부자가 된 모든 부자는 다 화가 있습니다. 돈 벌 때 제대로 정당하게 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화가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고 했습니다. 정당하게 벌지 못했습니다. 품꾼에게 품삯을 안주었기 때문에,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습니다. 이것이 품값을 제대로 안주고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정당하게 벌었어야 했는데 벌 때 정당하게 벌지 못했습니다. 추수한 품꾼에게 삯을 주지 않았습니다. 정당하게 벌지 못하고, 그것 가지고 사치하고 연락하다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오면 망합니다.

본문 5절에,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땅에서 연락하는 자로 사치하는 것이 죄입니다. ‘도살의 날’이라고 했는데, 도살이란 양심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을 죽이고 마음을 살찌게 했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심령이 살찐 자는 화가 있고 지옥이 저희 것입니다. 마음이 살찌면 안 됩니다. 언제나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재물이 있다고 마음을 살찌게 해서 살다가는 화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재물에 대해서 양심을 바로 쓰고, 재물 처리를 바로하며, 재물로 하나님의 일을 잘 하여, 자기 영혼과 하나님의 일이 잘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재물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자기 것이라고 지키려 하지 말고, 싸우고 다투지 말고 돕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재물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래서 죽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제가 달려갈 길 다 가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습니다”고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는 신앙으로 믿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 계획으로 이득을 보려고 해도 그것이 잘 안 됩니다.

주님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겠지만, 주의 뜻이 아니면 못합니다. 주의 뜻이 아니면 재산이 없어집니다. 울고 통곡할 날이 오고, 불같이 자기 살을 먹을 날이 옵니다. 재산보다는 믿음이 큽니다. 하늘나라가 더 큽니다. 그러므로 신앙양심을 써야 합니다. 양심을 안쓰면 벼 알에서 쌀알을 빼낸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양심을 써서, 선한 일을 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2.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본문 7-8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이므로 주님이 강림하실 그 때까지 길이 참으라고 권면합니다. 성도가 믿음을 지켜 나아갈 때에 시험과 환난과 핍박과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이 오게 되는데(딤후 3:12), 이 모든 시험과 환난 속에서 믿음을 지켜 나아가면서 참아야 됩니다.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보고 여러 가지 재난이 닥쳐와도 길이 참고 계속 농사를 지어 나갑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에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와도 귀한 열매를 바라보고 소망 중에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하였는데,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면서 농사를 짓습니다. 비가 잘 오지 않아도 다음 비를 기다리면서 참고 농사를 계속합니다. “이른 비”는 속히 은혜를 베풀어서 건져 주는 것을 뜻하며, “늦은 비”는 곡식이 다 시들고 잎사귀가 마를 때에 비가 내리듯이 속히 건져 주지 않고 오래 지난 후에 은혜 주심을 뜻합니다. 성도들이 환난과 고통을 당할 때 속히 도와서 건져 주시는 때도 있지만 오래도록 건져 주시지 않아 기진 맥진하고 이제는 다 쓰러져서 죽게 되었고 또 소생할 가망이 안보일 때에 가서야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고 건져 주시는 때도 있습니다. 본문 8절에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하였는데, “주님이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는 것입니다. 참으라는 것은 말세에 죄악을 이기며 참으라는 것이고, 믿음을 지키면서 참으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면서 참으라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다 하면서 참으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에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또 복음을 전하면서 참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하면서 참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면 세상과 마찰이 되고, 십자가의 고통이 옵니다. 세상과 짝할 때에는 아무 환난이 없습니다. 세상과 짝하지 않으려니까 환난이 옵니다.
그러므로 잘 참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길이 참으며 계속 농사해 나가면 하나님이 이른 비도 주시고 늦은 비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가물어도 계속 농사를 해야 됩니다. 추운 때가 와도, 더운 때가 와도 계속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십니다. 이른 비는 일찍 내리워 주는 비이고, 늦은 비는 늦게 내리워 주시는 비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빨리 내려 주셔야 할 때는 빨리 내려 주시고 또 늦게 은혜를 내려 주셔야 될 때는 늦게 내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중단 없이 하나님의 일을 계속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안될것 같아도 되게 만들어 주시고, 죽을 것 같아도 살게 해 주시고, 실패할 것 같아도 성공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계속 농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더워서 못한다, 가물어서 못한다, 비가 많이 와서 못한다, 추워서 못한다”고 하지 말고, 계속 농사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덥든지 춥든지 또 가물든지 길이 참고 나가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하나님이 내리워 주셔서 마침내 결실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계속 농사하는 게 중요하고, 끝까지 참고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농사한다는 것은 복음의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김을 매 주고, 결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 심방하는 일 등은 농사하는 일과 같습니다. 1년 농사를 지을 때에 한재, 풍재, 수재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오지만 끝까지 참으면서 계속해 나갑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일에 여러 가지 방해물들이 많이 오는데, 그것을 참으면서 이겨 나가면 하나님이 결실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마음을 굳게하여 흔들리지 않아야 믿음을 끝까지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
서 13:9에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라고 했는데, 마음은 은혜를 받아야 굳게 할 수 있으므로 항상 은혜 가운데 거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또 주님의 강림이 가까운 것을 믿고 인내하면서 주님 앞에 설 준비를 갖추도록 하여야 합니다.

원망하지 말라

본문 9절에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일이 다 자기 마음에 맞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잘 해주실 것을 믿고 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말세에는 특별히 원망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대가 있습니다.
원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죄가 네 가지인데, 우상숭배와 간음과 하나님을 시험한 것과 원망한 것이었습니다. 왜 원망이 나옵니까? 자기의 사욕을 취하려 하기에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고 덕을 세우는 것을 위하면 원망이 안 나오는데 자기만 위하니까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고 했는데, 언행심사 모두를 심판하십니다. 한 가지도 거저 지나가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 심판 받을 것인데 교회를 자기 것으로 하려는 것은 얼마나 큰 심판을 받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떼먹고 잘라먹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인데 가룟 유다와 같이 범죄자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심판자가 문 밖에 서계신데, 두려운 줄 알고 재림준비를 날마다 해야 합니다. 주의 재림이 임박한 줄을 알고 전심전력을 다해서 예수님 영접할 준비를 하여야겠습니다.
야고보서 4:8-10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때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늘 생각하면서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를 피로 값 주고 사셔서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으셨는데, 마음이 더러워지고, 세상과 벗 되었던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드시려고, 하나님은 성도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주시는데 여기에서 회개하지 못하고, 온전해지지 못하고, 아직도 손이 더럽습니다. 즉 마음이 성결하지 못합니다. 또 두 마음을 품어서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데 이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온전케 되어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생활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언제나 책임을 자기가 지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하나님이 공의로 통치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만 나옵니다. 회개할 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과 짝했던 것을 회개해야 하고,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가지고 나가던 것을 회개해야 하고, 구속의 은혜에 항상 감격하는 생활을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야고보서 4:11에는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방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자기가 이기려고 서로 싸우고 다투면 비방이 나옵니다. 비방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공의의 통치를 믿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가 할 일만 하면 됩니다. 공연히 자기 생각대로 하려고 하고, 자기가 이기려고 하고,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니까 비방이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환경은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를 만들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환경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지 못하니까 걱정이 들어옵니다. 또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니까 비방과 원망이 나옵니다. 또 믿음에서 떠났기 때문에 원망을 합니다. 믿음을 쓰면 원망이 없습니다.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하는 것은 믿음을 안 쓴 증거입니다. 믿음을 써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면 원망이 없어집니다.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는데, 무엇을 원망합니까?

요셉이 애굽에 팔리고, 종살이 하고, 감옥에 들어간 것 등을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당신들이 나를 애굽에 팔았으므로 한탄하지 마옵소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했다면 “형들이 팔아먹었으니까 원수 갚을 때가 왔다”하며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또 가룟유다를 예수님이 원망했습니까? “나한테 3년이나 배웠으면서 나를 팔았느냐?”고 하며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나를 파는 자는 차라리 나지 않았다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하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원망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환난도 하나님이 주신 것, 십자가도 하나님이 주신 것, 어려운 일도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왜 사람을 원망합니까? 원망은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사람은 원망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셨으므로 원망하지 않고 잘 참으며 나가야 됩니다. 즉 “나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부족한 것이 없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내게 주신 줄로 믿고 잘 참아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고 하였는데,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다는 것은 이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책망 안받도록 항상 회개하며 믿음을 잘 써야 되겠습니다. 회개가 끊어지면 안 됩니다. 항상 예수님의 구속을 생각하면서 회개해야 됩니다.

바울은 전에 지은 죄를 늘 애통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였다”고 하였습니다. 또 다윗도 전에 지은 죄 때문에 침상이 뜨도록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님을 모른다고 한 죄 때문에, 매일 아침 닭이 울 때마다 일어나서 회개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교만했던 죄를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무엇이 교만인가? 하면 자기가 교만입니다. 또 이기주의가 교만입니다. 제 생각, 제 뜻, 자기 위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또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그것이 죄라고 했는데,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았던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야고보서 4:13-14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아무 도시에 가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며 계획을 세워 놓았는데, 그것은 누구를 위해서 세워 놓은 것입니까? 자기를 위해서 이를 보려고 세워 놓은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것이지, 자기가 계획하고, 자기가 하겠다는 것은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과 저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뜻이 아니면 안 해야 합니다. 또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라고 하였는데, 전도할 줄 알면서 전도 하지 않은 죄, 참아야 될 줄 알면서 참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을 용납해야 할 줄 알면서 용납하지 않는 것 등을 회개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3:17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하였습
니다. 이 말씀대로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관용은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순복하라

야고보서 4:7에는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순복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교회에서 무엇을 하라고 하면 순복하여야 합니다. 우리 신학교에서 기숙사를 지으려고 연보를 하려고 하는데, 그것도 순복을 잘 해서 정성껏 연보를 해야겠습니다. 안하는 것은 순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자는데 안하겠다는 것이 바로 되었습니까? 안하겠다고 하면 그것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6.25때에 제주도로 피난을 갔을 때입니다. 어느 예배당에서 사경회를 했는데, 예배당 건물이 오래된 건물로, 참 한심합니다. 그래서 사경회 때 예배당을 다시 짓자고 하여, 예배당을 다시 짓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내가 연보를 안 했습니다. 그것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도 제주도를 생각만 하면 후회가 나옵니다. 벽돌 몇 장이라도 했으면 후회가 안 될 텐데,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다 순복하여야 합니다. 즉 참여하여야 합니다.
참여하지 않으면 이 다음에 후회하고, 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순복하지 못한 죄를 찾아 회개해야 되고, 마귀를 대적하지 못하고 용납한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마귀는 베드로를 통해서 들어왔고, 예수님의 어머니를 통해서도 왔는데, 예수님은 다 대적 하셨습니다. 그리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면 원망할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사람이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 때에 모세는 뭐라고 하였습니까? 너희가 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와도 하나님이 주신 고난인 줄 알아야지, 사람이 준 고난인 줄 알면 안 됩니다.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본문 10-11절에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인내를 본받아서 끝까지 참으라는 것입니다. 욥의 재산이 하루 아침에 다 없어졌습니다. 자녀들도 하루 아침에 다 죽었습니다. 자신의 몸에는 병이 났습니다. 그 다음에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였고, 욥의 친구들은 와서 괴롭게 했습니다. 그래도 욥이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신 이도 하나님이시오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하면서 끝까지 참았습니다. 이렇게 큰 고통을 당했지만 끝까지 참았습니다. 참으니까 나중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갑절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건강도 주셨고 또 신령한 믿음, 즉 연단된 정금과 같은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참는 자, 즉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나가는 자에
게 좋은 결실을 보게 하십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이시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켜 나가는 자는 내어 버리시지 않으시고 반드시 좋은 것으로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잘 참아야겠습니다.

맹세하지 말라

본문 12절에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고 하였습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로도 맹세하지 말고,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또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37절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라는 것입니다.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맹세하지 말고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고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죄라고 하였습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말을 못하고, 또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을 못하고, 끊어 버려야 할 것을 끊어 버리지 못하면 그것이 죄라는 말입니다. 맹세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면, 일단 맹세해 놓으면 가다가 옳은 것을 “옳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맹세할 때에는 그것이 옳은 줄 알고 했는데 좀 가다 보니까 그것이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쳐야겠는데, 맹세 때문에 못 고치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또 맹세할 때는 저것은 아니라고 해서 맹세를 했는데, 좀 가다 보니까 성경대로 옳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리로 가야 되겠는데 맹세 때문에 못갑니다. 그러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헤롯 왕이 헤로디아의 딸이 와서 춤 출 때에 뭐라고 맹세했습니까? 나라의 절반이라도 준다고 맹세했습니다. 헤롯 왕은 세례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헤로디아의 딸이 세례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할 때에, 맹세한 것 때문에 세례 요한의 머리를 주지 않았습니까? 맹세한 것 때문에 얼마나 큰 죄를 지었습니까?
그러므로 맹세 때문에 죄 짓는 것이 많습니다. 떠나야 되겠는데 맹세한 것 때문에 못 떠나고, 안 해야 되겠는데 맹세한 것 때문에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생각이 다 옳은 게 아니고,또 세상의 법률이 다 옳은 게 아닙니다. 그 시대에는 유용했지만 그 다음 세대에는 유용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일단 맹세했다고 해도 그것이 잘못된 맹세라면 “실수한 것이다”라고 사과하고, 그 맹세를 따라 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야 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야 됩니다. 저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맹세한 것 때문에 못 간다고 하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도는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
다”라고, 이것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입니다. 사람 앞에서 맹세한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맹세를 했을지라도 성경에 맞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맹세 때문에 한다면 그것은 마귀에게 붙잡히는 것입니다. 맹세가 큰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큽니다. 안 바치기로 맹세를 했을지라도, 바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즉시로 바쳐야 합니다.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비방을 한다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을 지키는 것 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큰 복을 받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