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31일 화요일

사무엘하 23:1-39 다윗과 그의 용사들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다윗과 그의 용사들
사무엘하 23:1-39

1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부음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2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4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5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 6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7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사르이리로다 하니라 8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이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장의 두목이라 저가 한때에 팔백 인을 쳐죽였더라 9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한 세 용사 중에 하나이라 블레셋 사람이 싸우려고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
고 10저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서 저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11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이 떼를 지어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되 12저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13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떼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더라 14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다윗이 사모
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16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니이다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18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니 저는 그 삼 인의 두목이라 저가 창을 들어 삼백 인을 죽이고 그 삼 인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19저는 삼 인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저가 저희의 두목이 되었으나 그러나 첫 삼 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20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니 저는 효용한 일을 행한 자라 일찌기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한 사자를 죽였으며 21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저가 막대를 가지고 내려가서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죽였더라 22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23삼십 인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첫 삼 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저를 세워 시위대 장관을 삼았더라 24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 인 중에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25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26발디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27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28아호아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29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30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 31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과 32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야센의 아들 요나단과 33하랄 사람 삼마와 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과 34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35갈멜 사람 헤스래와 아랍 사람 바아래와 36소바 나단의 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37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병기 잡은 자 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38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39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도합이 삼십칠 인이었더라

1. 다윗의 마지막 말

창성해지는 법

본문 1-3절에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부음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라고 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이새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들에서 양 치던 미천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왕의 자리까지 높이 올라온 것을 기억하고 자신이 경험한대로 창성해지는 방법에 대해 마지막 말을 하였습니다.
창성해지는 방법과 관련하여
첫째는 ‘창성해지는 사람은 공의로 다스리는 자다’라는 하였습니다. 만사를 공평하게 하나님의 공의대로 통치해 나가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하나님 앞에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사람은 언제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서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인도하시는 대로 다스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일해주시고 완성시켜 주시기 때문에 대적할 자가 절대 없고 반대하는 사람은 다 깨져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천하에 막을 자가 없습니다. 세계가 다 들어붙어서 막으려고 하여도 막지 못하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아이들을 다스릴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책망하고, 징계하고 권면해야 합니다. 또 공의롭게 모든 것을 처결해 나가면 누가 봐도 다 옳다고 생각하고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적하는 자를 물리쳐주시고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반드시 그대로 성취되게 해주십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것, 가정과 교회, 국가와 세계를 다스리는 것 전부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몸과 마음부터 다스리며 자기부터 바로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바로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자기가 먼저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자기 집을 잘 다스려 나가야 합니다. 재정 문제에서도 하나님께 바로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써야 합니다. 또 교회를 다스릴 때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대로 그 인도를 받아서 하면 교회가 편안해지고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견고하게 해주십니다. 늘 부흥, 발전하게 해주십니다. 또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들도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면 그 나라가 잘 될 것입니다. 아무리 대적이 많아도 하나님께서 다 물리쳐주시고 창성하게 해주십니다.

본문 4절에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아침에 돋는 해가 얼마나 희망차고 명랑하며 그 햇빛이 얼마나 넓게 비칩니까? 또 구름 없는 아침이 얼마나 상쾌하고 명랑 합니까? 점점 밝아지고 하루 종일 희망을 줍니다. 그러므로 공의로 다스리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희망차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됩니다. 사람의 수단과 방법을 쓰지 말고, 공의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면 햇빛이 아침에 점점 퍼지는 것과 같이 점점 창성해 나갑니다. 비가 온 후에, 햇빛이 나서 풀에 움이 돋고 점점 창성해서 소생해 올라오는 것처럼 이렇게 소생해 올라오는 역사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내 집이 하나님 앞에 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라고 하였습니다. 공의로 다스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사에 구비해주시고 견고케 해주시고 구원해주시고 모든 소원을 성취해주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본문 6-7절에 “그러나 사악한 자는 다 내어 버리울 가시나무 같으니 이는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이로다 그것들을 만지는 자는 철과 창자루를 가져야 하리니 그것들이 당장에 불사르이리로다 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사악한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내어버리시고 당장에 불살라 멸망시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2. 다윗의 세 용사(勇士)와 그 공적

군장 두목인 요셉밧세벳이 팔백 인을 쳐서 죽임

본문 8절에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이 이러하니라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이라고도 하고 에센 사람 아디노라고도 하는 자는 군장의 두목이라 저가 한때에 팔백 인을 쳐죽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여기 세 용사처럼 충성해야겠는데, 첫째 용사는 다그몬 사람 요셉밧세벳입니다. 그는 군장의 두목인데 혼자서 원수 팔백 명을 쳐 죽였습니다. 혼자서 백 명을 무찔렀다고 해도 큰 용사인데 팔백 명을 쳐서 죽였으니 이 요셉밧세벳이 상당히 큰 용사입니다. 이런 용사가 몇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가 견고해지고 또 창성해집니다. 원수가 와서 하나님의 나라를 멸망시키려 할 때 요셉밧세벳 같은 사람이 나가서 혼자 원수 팔백 명을 다 막아주면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잘 되어 나가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참으로 두목이 될 만합니다. 

보통은 일대일이고 일당백은 아주 잘하는 사람인데 요셉밧세벳은 팔백 명을 당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일 좀 잘하는 사람은 서너 사람 몫을, 또는 다섯 사람 몫을 합니다. 일하기 싫어서, 또는 몸이 약한 상태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하는 척하는 사람, 또 열사람 몫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팔백 명을 감당했다는 것은 아주 큰 용사로서 팔백 명이 할 것을 혼자 다 해치우니 요새로 말하면 불도저, 큰 포크레인 같은 사람입니다. 팔백 명이 삽질해야 할 것을 한꺼번에 퍼서 실을 수 있고, 팔백 명이 실어 나르는 것을 차 하나에 다 실어 운반할 수 있는 이런 요셉밧세벳 같은 사람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필요합니다.

또 일을 할 때 감독을 바로 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의 몫을 하는 것입니다. 이 전에 김학조 장로님이 고천 기도원을 지을 때 감독을 잘 해서 일이 잘되어 갔습니다. 가끔 김장로님이 병이 나셔서 감독하지 못하실 때면, 일이 삼분의 일도 되지 않고, 오 분의 일이나 될까 말까 하였습니다. 일의 진전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감독이 제대로 일을 시키면 그 한 사람 가지고도 일의 성과를 세 배나 다섯 배로 낼 수 있습니다. 감독하는 사람이 열 명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 감독이 지혜로우면 백 명의 효과가 나도록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사람도 한 사람이지만 팔백 명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창성하게 하는 데 요긴한 사람들입니다.

엘르아살은 칼이 손에 붙을 때까지 끝까지 싸움

본문 9절에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대의 아들 엘르아살이니 다윗과 함께한 세 용사 중에 하나이라 블레셋 사람이 싸우려고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간지라 세 용사가 싸움을 돋우고”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 왔을 때 많은 군대들이 나가 싸우다 다 도망쳐 물러갔는데, 엘르아살은 물러가지 않고 계속 혼자 싸운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저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돌아와서 저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엘르아살 한 사람이 막아냈다는 말입니다. 혼자 남아서 원수가 몇 만 명이 와도 다 할 수 있다는 결심을 가지고 내쳤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엘르아살이 얼마나 칼을 힘 있게 잡고 전쟁을 했는지 칼이 손에 붙었다고 할 만큼이 되었습니다. 생명을 내어 놓고 혼자서 희생적으로 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이야 도망하건 말건 자기 사명감으로 일해야 합니다. 엘르아살은 ‘내가 생명을 내놓고 막아야 한다. 내가 막지 않으면 이스라엘 나라가 망한다. 혼자라도 막는다’고 하면서 손이 칼에 붙은 것처럼 원수와 더불어 싸워냈다는 말입니다. 삼손이 일천 명을 쳐 죽였다고 하였는데, 엘르아살은 몇 천 명을 칼로 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원수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호하며 건설해 나가는 사람이 있으므로 나라가 창성해지는 것입니다. 

삼마는 녹두밭을 끝까지 지키며 블레셋과 싸워 이김

본문 11-12절에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이 떼를 지어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되 저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녹두나무가 가득한 밭에서 싸웠는데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다 달아났고 삼마는 엘르아살 때처럼 혼자 남은 것입니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보자 녹두밭이 원수에게 넘어가도 할 수 없다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삼마는 그 밭을 원수에게 내줄 수 없고 이스라엘을 위해 뺏기면 안 되겠다는 신앙으로 혼자서 블레셋 사람, 몇 천 명을 대항하여 싸운 것입니다.
‘저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고 하였는데, 혼자서는 안 될 것 같지만 막아 내고자 하면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 역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모르지만, 사무엘 때는 우박으로 원수를 쳐주실 때도 있었고, 우레 소리가 들리게 할 때도 있었습니다. 또 많은 군대 소리로 원수가 무서워 도망간 적도 있었고,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천사를 보내셔서 원수를 물리쳐 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혼자서 감당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혼자 남았어도, 생명을 내놓고 끝까지 싸우는 정신으로 계속 맞서 나갈 때에 할 수 있습니다. 안 될 것 같지만 하나님 나라를 지키려고, 또 녹두밭, 하나님의 양식을 보호하려고, 말씀을 보호하려고 계속 싸우면 하나님의 큰 구원 역사가 나타나 원수를 다 물리쳐주십니다. 어떤 방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맞는 이적의 방법으로 원수를 물리치시어 큰 구원을 이루어주십니다.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어려울 때 다 도망치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루어가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친다고 해도 혼자서라도 지킨다는 삼마의 결심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나라는 창성해집니다. 

3. 베들레헴 우물 물을 길어온 세 용사

본문 13-16절에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떼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쳤더라 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의 영채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다윗이 사모하여 가로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하매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은 앞에 말한 세 용사만큼은 아니나 충성심은 그에 못지 않은 세 용사들입니다. 베들레헴에 블레셋 사람이 진을 치고 있었고, 다윗은 아둘람굴에 있었는데 다윗이 베들레헴의 우물 물을 대단히 사모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충성된 세 용사가 왕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블레셋 군대가 진쳐있는 곳에 충돌하며 후방으로 가서 그 물을 떠 온 것입니다. 이 세 용사가 돌아오느라 죽을 뻔했습니다. 그 물을 떠오기 위하여 적진을 뚫고 싸우며 들어간 다음 또 싸우면서 적진을 뚫고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자기 상관을 위해서 생명을 돌보지 않고 충성 하는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가 창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세 용사는 베들레헴의 우물 물을 서로 나서서 길어오려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겠거니 한 것이 아니라 서로 자기가 할 일로 알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 가겠다고 한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서로 미루면 어떻게 그 나라가 창성해질 수 있겠습니까? ‘내가 안 가면 누가 가겠지’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는 다윗이 무엇 때문에 베들레헴에 가서 물을 길어오라고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길어 올꼬’라고 하였으니 길어오라는 말이 아닙니까? 물을 길어오라는 왕의 말을 듣고 아랫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다윗이 예전 어렸을 때 먹었던 우물이 기억났던 것 같은데 그 우물 물이 아주 유명하여 그것을 마셔볼 생각이 간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됐습니까? 지금 전쟁 중인데, 왜 옛날에 먹던 좋은 물 생각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물을 마시는 것이 무슨 소용과 가치가 있느냐 말입니다. 다윗 왕이 잘못한 것입니다. 전에 누렸던 복에 대한 어리석은 추억으로 과거에 마시던 그 맛있는 물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왕의 충성된 세 용사가 우물 물을 길어 왔습니다. 다윗이 길어 오라한 것은 잘못 되었지만 길어온 용사들은 아주 잘했습니다. 이 일을 보면 그들이 다른 일에도 매우 충성할 자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7절에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 하리이다 이는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니이다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세 용사가 생명을 내놓고 길어 온 물이라며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렸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가 육신의 감정으로 고향 생각을 했지만 회개한 것을 가리킵니다. 어렸을 때 마시던, 맛있던 물맛이 간절하여 길어오라고 했지만 일단 장수들을 보내놓고 생각하니 잘못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이렇게 항상 잘못을 고치는 사람이 성자(聖者)입니다. 부지런히 자기 잘못을 고치는 사람이 본래부터의 성자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일단 한번은 잘못 생각하였으나 빨리 뉘우쳤습니다. 물을 길어오느라 용사들이 생명을 걸었는데 그들의 생명은 자기 생명과 같은 것이므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드린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충성한 결과를 하나님께 돌린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다윗이 고향 생각한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다 좋지 않았습니까? 개천에서 고기와 게 잡아먹던 일, 또 바다에 가서 물고기 사다 먹던 일 등 추억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지나간 것이고 현재 하나님께 바로 해야 합니다. 

우리 고향은 어디입니까? 하늘나라입니다. 우리가 한 고향 사람입니다. 이북에서 왔던지, 이남에서 왔던지 이제는 하늘나라가 우리의 고향입니다. 또 생일은 12월 25일로 다 한 날입니다.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으니 예수님의 생일로 다 바꿔야 합니다. 나도 내 생일을 예수님 생일로 바꾸었습니다. 내게 생일이 언제냐고 물어보면 12월 25일이라고 합니다. 환갑이니, 뭐니 하는 것을 다 치우고, 또 죽은 사람 생일을 차리는 것도 하지 말고 우리의 진정한 본향인 하늘나라를 바라봐야 합니다. 또 한 피로 한 몸을 이룬, 즉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한 형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 더 나은 본향, 즉 하늘에 있는 것을 사모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 본향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4. 아비새와 브나야

본문 18-19절에 “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니 저는 그 삼 인의 두목이라 저가 창을 들어 삼백 인을 죽이고 그 삼 인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저는 삼 인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저가 저희의 두목이 되었으나 그러나 첫 삼 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비새는 혼자서 삼백 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삼 인 중에서 두목이 되었습니다.

본문 20-21절에 “또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니 저는 효용한 일을 행한 자라 일찌기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한 사자를 죽였으며 또 장대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의 손에 창이 있어도 저가 막대를 가지고 내려가서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죽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브나야는 모압 사자와 더불어 싸워 그 사자를 죽일 만큼, 괴력의 용사입니다. 또 원수인 모압과 애굽인을 죽였는데, 창도 없이 막대를 가지고 창 든 적과 싸우다 상대의 창을 빼앗아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큰 용사입니까?

본문 22-23절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삼십 인보다 존귀하나 그러나 첫 삼 인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다윗이 저를 세워 시위장관을 삼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이런 용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가 견고해지고 창성해졌습니다. 

5. 다윗의 삼십칠 인 용사

본문 24-39절에 “요압의 아우 아사헬은 삼십 인 중에 하나요 또 베들레헴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하롯 사람 삼훗과 하롯 사람 엘리가와 발디 사람 헬레스와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후사 사람 므분내와 아호아 사람 살몬과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렙과 베냐민 자손에 속한 기브아 사람 리배의 아들 잇대와 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가아스 시냇가에 사는 힛대와 아르바 사람 아비알본과 바르훔 사람 아스마웻과 사알본 사람 엘리아바와 야센의 아들 요나단과 하랄 사람 삼마와 아랄 사람 사랄의 아들 아히암과 마아가 사람의 손자 아하스배의 아들 엘리벨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과 갈멜 사람 헤스래와 아랍 사람 바아래와 소바 나단의 아들 이갈과 갓
사람 바니와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병기 잡은 자브에롯 사람 나하래와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도합이 삼십칠 인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이들은 모두 다윗을 잘 받들어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여 충성한 자들입니다. 삼십칠 인의 용사들입니다. 이들이 충성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창성해지고 견고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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