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이후의 다윗
사무엘하 19:1-15
1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이김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
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찌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8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혹이 모든 백성에게 고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시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9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가로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고 10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11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궁으로 도로 모셔 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2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저희가 왕께 보내어 가로되 왕은 모든 신복으로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왕이 돌
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네려 하여 길갈로 오니라
사무엘하 19:1-15
1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이김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
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찌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8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혹이 모든 백성에게 고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시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9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가로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고 10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11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궁으로 도로 모셔 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12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13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14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저희가 왕께 보내어 가로되 왕은 모든 신복으로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15왕이 돌
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네려 하여 길갈로 오니라
1. 다윗의 애통
본문 1-4절에 “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이김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아들이지만 아버지를 대적하고, 내쫓고 심지
어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전쟁 중에 상수리 나무에 머리털이 걸려 매달리게 만드시고 또 탔던 노새는 달아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압과 여러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가서 쳐죽인 것입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다윗 왕이 듣고 심히 슬퍼했습니다. 사무엘하 18장 33절에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라고 하면서 그 다락문에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군들, 모든 군대들이 왕이 이렇게 슬피 우니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서 쫓겨서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지만 왕은 압살롬을 생각하며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좋을 뻔했다”고 하며 우니까 이 일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슬픔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군인들이 다 돌아오는데도 다윗이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운 것 같습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기 시작하여 군대가 다 돌아올 때까지 운 것을 보면 몇 시간 동안 운 것 같습니다. 군대가 다 돌아오려면 몇 시간 걸리지 않겠습니까? 몇 시간 동안 성문에 앉아서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하면서 우니 모든 백성이 다 그날의 이김이 슬픔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정도에 지나친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에 대한 애착심, 애정이 지나쳤습니다.
그 아들은 하나님을 거역한 아들입니다. 또 아버지를 대적하고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한 아들이며,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아비를 쫓아내고 전쟁을 일으킨 아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는데 그 아들을 위해 이렇게 계속 운다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아들을 생각해서 잠깐 슬퍼할 수 있지만, 계속 이 아들을 위해서 슬퍼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압살롬은 하나님께서 죽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8장 28절에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말씀하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여 가로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히마아스는 하나님께서 손을 드시어 압살롬과 압살롬의 군대를 우리에게 다 붙여주셨다고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압살롬을 손에 붙여 심판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우느냐는 것입니다. 또 구스 사람도 하나님께서 해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18장 32절에 “구스 사람이 이르러 고하되 내 주왕께 보할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갚으셨다는 것입니다. 압살롬을 죽인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으셨고,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대적을 치셨는데, 다윗왕은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뜻만 생각하면서 계속 운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인정으로만 기울어지지 말고, 사람의 뜻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애착심만 가지면 안 되겠습니다.
다윗 왕이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심판했다, 하나님께서 그 악한 일들을 이렇게 갚으셨다’라고 믿었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며 울지 않았겠는데, 지금 오랫동안 운 것은 다윗이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 나갔던 모든 군인들이 아주 슬퍼하면서 돌아왔습니다. 왕이 우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민망하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압살롬 죽인 것을 부끄러워 하면서 슬퍼하는 자리에 빠졌습니다.
2. 요압의 권면
본문 5-6절에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압 군대장관이 다윗 왕에게 직접 나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들은 바른 소리입니다. 왕의 생명을 위해 나가 싸우고, 또 왕의 자녀들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신복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한 것은 왕이 잘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왕께서 미워하는 자, 즉 압살롬은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 즉 자기들은 미워하시는 행사라는 것입니다. 또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에게 멸시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5-6절에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압 군대장관이 다윗 왕에게 직접 나아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들은 바른 소리입니다. 왕의 생명을 위해 나가 싸우고, 또 왕의 자녀들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신복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한 것은 왕이 잘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왕께서 미워하는 자, 즉 압살롬은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 즉 자기들은 미워하시는 행사라는 것입니다. 또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에게 멸시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라는 것은 어떻습니까? 다윗이 과연 그랬을까요? 이것은 지나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위에 이야기한 것은 바른 말인데, 이것은 지나친 소리입니다. ‘압살롬이 만일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윗 왕은 압살롬도 살고, 또 요압이나 그 군대들도 살고, 모두가 사는 것을 원했을 것 같습니다.
다윗의 군대가 전쟁에 나갈 때도 다윗이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과 왕궁을 다 점령하고 자신은 쫓겨 피난을 갔는데도 다윗은 압살롬을 죽이지 않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보려고한 것입니다. 압살롬도 살고, 자기도 살고, 또 자기의 군대도 모두 다 살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겠습니까?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자를 살리고, 그와 맞서는 자기 군대도 살리는 일을 어떻게 다 하겠습니까? 욕심입니다.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을 너무 사랑하는 가운데 생각이 비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 생각하면 압살롬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지럽게 한 인물이 아닙니까? 또 아버지를 대적하는 패역무도한 자식입니다. 아버지를 죽이려는 자식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하나님께서 죽이신 것인데, 압살롬에 대해 ‘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애통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인정으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에게 아들이 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상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뜻만 가지고 이러는 것입니다. 또 아들이 우상이 되었기 때문에 아들한테 당한 것입니다. 우상을 하나 만들어 놓으면 그 우상에게 당하는 법입니다. 압살롬이 우상이 되었
기 때문에 압살롬에게 쫓겨 피난을 가게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 죽을 뻔했는데도 아들 우상 만들어 놓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고, 다윗이 아직도 압살롬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믿음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공의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지 않으면 이렇게 어리석은 가운데 빠집니다. 인정으로 기울어지면 이렇게 어리석은 가운데 빠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이 바른 말을 하기는 했는데 마지막 말은 잘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 죽고 압살롬만 살았다면 왕이 좋게 여기실 뻔 하셨겠습니다”라는 말은 억지로 돌려 말한 것입니다. 또 요압이 왕에게 가서 바른 말을 했지만 왕에 대하여 다 바로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왕에게 가서 간청하는 말로 “왕께서 이러시면 되겠습니까? 모든 신복들이 지금 왕께서 울고 계시므로 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패전한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한번 나가 보셔야겠습니다”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왕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요압은 바른 말을 단도직입적으로 한 것입니다. ‘왕의 생명을 구원하고 왕의 처자들과 자녀들의 생명을 구원한 신복을 부끄럽게 합니다’라는 말은 바른 말이지만 왕에 대하여 거역하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또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고 미워하는 자는 사랑한다’는 말도 왕의 아픈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드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죽고 압살롬만 살았으면 좋을 뻔 했겠냐?’는 것도 왕을 상당히 거스른 것입니다. 요압이 왕이 울고 있는 것을 은근히 비난하며 왕을 많이 거역한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으로 교훈하심
본문 7절에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압이 바르게 말한 것입니까? 요압은 ‘왕이 곧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해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에서는 맹세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며 말했습니다. 만일 일어나 나가지 않으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하고 다 달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한 화보다 더 큰 화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안 나가면 정말 다 떠나가겠습니까? 왕이 울고만 있으면 다윗의 군대가 다 도망치겠습니까? 아무리 울고만 있어도 다 달아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울고만 있으면 몇 사람은 달아날 것입니다. 첫째로 요압 등 몇 사람은 달아날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냥 있을 것입니다. 다 떠나겠습니까? 전쟁은 다 이겨 놓은 것이고, 승전하고 돌아왔는데 왕이 울고만 있으니까 자기들도 가만 앉아서 왕이 우신다, 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달아 나는 것은 요압과 몇 사람만 달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압은 일을 과장되게 만들어 왕을 공격했습니다. 왕이 만일 오늘 밤에 나가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지 아니하면 이 밤에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달아날 것이니 빨리 나가라는 것입니다. 나가지 않으면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한 화보다 더 큰 화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요압의 생각은 나라를 위한다는 생각 같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고, 왕을 위하고, 또 군인들도 위하고 다 잘하자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잘못한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왕이 울다가 그만 두었을 것입니다. 며칠 울겠습니까? 요압이 가서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밤새도록 울고 그 다음 날 아침이면 그치지 않겠습니까? 우는 것도 한도가 있지, 마냥 울겠습니까? 또 사흘 동안 운다고 합시다. 사흘 이후에는 그치지 않겠습니까? 가만 두어도 그칠게 될 텐데 왕을 공격하여 곤궁에 빠뜨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의 입장에서 보면 요압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징계로 보아야 합니다. 너무 아들에 대한 애착심만 가지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믿음으로 서지 못하고, 인정에만 기울어져 울고있으니 하나님께서 요압이라는 몽둥이를 들어 다윗을 내리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기서 깨달은 것 같습니다. ‘아, 내가 잘못했다. 이렇게 하다가 큰일나겠다. 요압의 행동이 잘 한 것은 아니지만, 요압이 와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내가 깨달았다’라고 한 것입니다.
마귀 역사를 통해서 깨닫는 것이 있고, 지나친 말들을 들을 때도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좋은 말만 듣고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말할 때도, 또 잘못 행동할 때에도 거기서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바로 서라고 저런 마귀역사를 일으켜서 이렇게 만드시나 보다. 내가 깨닫지 못하니까 마귀역사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나 보다’하며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도적이 와서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도적이 와서 도적질을 해가면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아, 내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즐겨 못 받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적맞게 해주셨구나. 또 하나님께 받쳐야 할 것을 못 받쳤기 때문에 도적맞게 하셨구나’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도적에 붙여서 깨닫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도적이 나쁜 것이지만 그 도적을 통해서 성도로 하여금 깨닫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마귀를 통해서도 깨닫게 만드십니다. 다윗이 잘못 나가기 때문에 이렇게 요압이 잘못된 언사, 즉 과격하고 과장된 말들로 공격하자 다윗이 많이 깨달았을 것 같습니다. ‘요압도 잘못했지만 내가 참 잘못했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다윗이 잘못한 것 때문에 요압도 이렇게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깨달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통하여 깨닫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만 지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도적맞을 때 깨닫고, 사기 당했을 때 깨닫고, 다른 사람이 내게 공격할 때, 또 잘못할 때 깨달아야 합니다. 잘못하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서 깨닫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깨닫게 하시려고 요압이라는 몽둥이를 써서 이렇게 공격하고 곤경에 빠뜨린 것입니다. 우리가 곤경에 빠졌을 때 깨달아야 합니다. ‘요압이 나쁘다’, 이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곤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려고 이런 곤경에 빠뜨리신 줄 알고 바로 서야겠습니다.
또 요압과 같이 바른 말이라고 해서 그냥 들이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왕이 자기보다 얼마나 높은 직위입니까? 그런데 왕에게 자기 친구에게 하듯이 버릇없이 대하였을 뿐 아니라 말도 과장하며 협박하듯 한 것입니다. 이것은 요압이 잘못한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요압이 눈물을 흘리며 간청하는 태도로 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또 정도껏 하고 그만 두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밤에 다 달아난다’든지, ‘우리가 다 죽고 압살롬이 살았으면 좋으셨겠다’라는 말은 하지 못할 말이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주 잘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잘못한 말 때문에 다윗 왕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는 것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 행동할 때 깨닫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잘못했으니까 저 사람이 내게 그렇게 하나 보다. 또 내가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았으니까 아랫사람도 내 말을 순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순종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기네들이 순종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잘못하는 것을 볼 때에는 내가 하나님께 믿는 일을 잘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한 모든 문제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다윗은 지금 여기서 바로 깨닫고 바로 서라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혹이 모든 백성에게 고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시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성문에 앉으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왔습니다. 왕이 모든 백성에게 전쟁하였는데 얼마나 수고가 많았느냐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4.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의 마음이 다윗에게로 돌아옴
본문 9-10절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가로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고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의 두목들이 이제 왕을 모셔오자고 하며 왕 모셔오기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다윗 왕을 도로 모셔오자. 다윗 왕은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낸 왕이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해내신 분이다. 또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지만,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이 싸움에서 죽었거늘 어찌하여 다윗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고 하면서 이스라엘 전체 여러 지파에서 두목이 될 만한 사람들이 일어나 다윗 왕을 다시 모셔오자고 한 것입니다. ‘다윗 왕이 우리를 과거에 원수의 수하에서 건져내지 않았느냐? 블레셋 수하에서 건져내지 않았느냐? 또 우리가 기름 부어 세운 압살롬은 전쟁에서 죽지 않았느냐? 그러니 다윗을 다시 모셔오는 일이 제일 좋은 일이다’라고 여기며 과거에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한 다윗 왕을 다시 모셔오자는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이 과거에 블레셋 나라와 그 외 여러 원수의 나라와 더불어 싸워 이스라엘을 구원한 일을 백성들이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생각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수고한 것은 모든 백성이 다 압니다. 오늘날도 같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고 충성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공을 이룬 것은 모든 성도들이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다 압니다. 다윗도 일시적으로 쫓겨났지만 그 다음에는 ‘다윗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지 않았느냐, 또 블레셋 사람의 수하에서도 구원해 내지 않았느냐, 이제 다윗 왕을 다시 모셔오자’고 하여 이스라엘 전 지파에서 일어선 것입니다.
본문 9-10절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가로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고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과 백성들의 두목들이 이제 왕을 모셔오자고 하며 왕 모셔오기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다윗 왕을 도로 모셔오자. 다윗 왕은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낸 왕이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해내신 분이다. 또 압살롬을 피하여 나라에서 나가셨지만,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이 싸움에서 죽었거늘 어찌하여 다윗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고 하면서 이스라엘 전체 여러 지파에서 두목이 될 만한 사람들이 일어나 다윗 왕을 다시 모셔오자고 한 것입니다. ‘다윗 왕이 우리를 과거에 원수의 수하에서 건져내지 않았느냐? 블레셋 수하에서 건져내지 않았느냐? 또 우리가 기름 부어 세운 압살롬은 전쟁에서 죽지 않았느냐? 그러니 다윗을 다시 모셔오는 일이 제일 좋은 일이다’라고 여기며 과거에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한 다윗 왕을 다시 모셔오자는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이 과거에 블레셋 나라와 그 외 여러 원수의 나라와 더불어 싸워 이스라엘을 구원한 일을 백성들이 다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생각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수고한 것은 모든 백성이 다 압니다. 오늘날도 같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고 충성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공을 이룬 것은 모든 성도들이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다 압니다. 다윗도 일시적으로 쫓겨났지만 그 다음에는 ‘다윗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지 않았느냐, 또 블레셋 사람의 수하에서도 구원해 내지 않았느냐, 이제 다윗 왕을 다시 모셔오자’고 하여 이스라엘 전 지파에서 일어선 것입니다.
본문 11-12절에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궁으로 도로 모셔 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족속에게 다윗이 사람을 보내서 말한 것입니다. 다윗의 소관 지파인 유다 사람들에게 가서 말하라고 한 것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여러 지파가 왕을 도로 모셔 오자고 일어난 것 같고, 유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잠잠하게 있었던 같습니다. 그러자 다윗 왕이 유다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서 너희는 내 골육인데 어찌하여 왕을 모셔오는 일에 나중이 되려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앞장서서 왕을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잠잠하고 있던 사람들도 깨우쳐 주면 앞장설수 있습니다. 다른 지파들이 먼저 다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유다 지파가 잠잠히 있었는데 깨우쳐 주자 이제는 왕을 모셔오는 일에 제일 앞장을 섰습니다.
5. 다윗의 잘못된 인사행정
본문 13-14절에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저희가 왕께 보내어 가로되 왕은 모든 신복으로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아마사가 문제입니다. 아마사는 압살롬의 군대장관입니다. 반역하던 장관입니다. 사무엘하 17장 25절에 “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장을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저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미 스루야의 동생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압살롬이 죽고 난 뒤 다윗이 아마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골육이라는 말은 역대상 2장16절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희의 자매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형제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에게 두 누이 스루야와 아비가일이 있었는데 스루야의 아들은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고, 또 작은 누이 아비가일의 아들은 아마사입니다. 아비새, 요압, 아사헬, 그리고 아마사는 다윗의 누이의 아들들입니다. 요압도 누이의 아들이고, 또 반란군에 가입했던 아마사도 누이의 아들입니다. 누이의 아들이니까 생질(甥姪) 간이 됩니다. 다윗은 외삼촌이 됩니다. 집안끼리 싸운 것입니다. 압살롬 군대는 압살롬에게 고모의 아들인 아마사가 장관이 되었던 것이고, 또 다윗 편에는 누이의 아들 요압이 군대장관으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다윗이 ‘너, 아마사는 내 골육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본문 13절 중반절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다윗이 지금 반역하는 압살롬에게 가담했던 아마사를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장관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또 ‘항상 내가 너를 군대장관으로 삼겠다. 안 삼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이것은 자신의 말을 확실해 해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요압은 어떻게 할 작정일까요? 현재 요압이 군대장관입니다.
그동안 요압이 나가서 전쟁에서 이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반역했던 아마사를 데려다가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장관을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요압은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요압은 아마 군대장관 자리에서 제거시킬 모양입니다. 왜 제거하려 했을까요? 요압이 왕에게 가혹하게 나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기서 다윗의 마음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자를 군대장관으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신 세워야겠는데, 누구를 세워야 할까 하다가 아마사가 진정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군대장관으로 삼으면 좋겠다 생각이 든 모양입니다. 아마사도 마침 누이의 아들이고, 한 골육 친척입니다. 그러니 아마사가 군대장관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대장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요압을 제거하고 압살롬에게 가 붙었던 아마사를 데려다 군대장관을 시키겠다고 공포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 왕이 잘못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요압이 자기를 속상하게 했다고 해도 요압이 군대장관으로 전쟁에 나가 이긴 판에 아무 사건도 일으키지 않은 요압을 군대장관에서 해임하고 대적하던 반역자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마사를 데려다 군대장관으로 세운다는 것은 너무나 큰 과오를 범한 것 같습니다. 아마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온다고 해도 어떻게 당장 군대장관으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오랫동안 지내보다가 세우겠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장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차에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장관 세우겠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장차 세울 계획이 있더라도 공포하지 말고 가만있다가 아마사를 데려와 조용히 ‘장차 내가 너를 군대장관으로 세울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면 모르지만 다 공포에 놓았으니 요압이 얼마나 격분했겠습니까? 전쟁터에서 자기의 대적이었는데, 자기 대신 군대장관을 세우겠다고 하면 요압이 상당히 격분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무리 요압이 자기를 속상하게 했다고 해도 요압이 군대장관으로 전쟁에 나가 이긴 판에 아무 사건도 일으키지 않은 요압을 군대장관에서 해임하고 대적하던 반역자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마사를 데려다 군대장관으로 세운다는 것은 너무나 큰 과오를 범한 것 같습니다. 아마사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온다고 해도 어떻게 당장 군대장관으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오랫동안 지내보다가 세우겠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장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차에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장관 세우겠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장차 세울 계획이 있더라도 공포하지 말고 가만있다가 아마사를 데려와 조용히 ‘장차 내가 너를 군대장관으로 세울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면 모르지만 다 공포에 놓았으니 요압이 얼마나 격분했겠습니까? 전쟁터에서 자기의 대적이었는데, 자기 대신 군대장관을 세우겠다고 하면 요압이 상당히 격분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본문 뒷 부분으로 가면 요압이 아마사를 죽이게 됩니다. 결국 다윗 왕이 아마사를 죽게 만든 것이 되었습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배울 것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아들이 있는 집에서 아들 하나만 더 사랑하면 다른 형제들이 그를 죽이지 않겠습니까? 요셉의 예처럼, 여러 형제 중에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해 입히고, 요셉을 더욱 사랑하니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구덩이에 빠뜨렸다가 다시 애굽에 팔아먹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요압이 좀 잘못했어도 그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공로가 있으니 일단 가만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장차 아마사를 군대장관으로 세울 생각이 있다고 해도 당장 발표할 것이 아니라 아마사가 진정으로 돌이켜 내내 잘 할 것인지 좀 지내보고 판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회개한다고 하면 받아주는 것이 좋습니다만 받아 주더라도 좀 지내봐야 합니다. 지켜보면서 끝까지 충성하면 등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본문 14-15절에 “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하매 저희가 왕께 보내어 가로되 왕은 모든 신복으로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네려 하여 길갈로 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과 유다의 민심이 다윗 왕에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6. 다윗의 관용
한편 다윗에게는 용납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대적하여 죽이겠다는 편에 섰던 아마사이지만 그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겠다고 하면 받아 쓸 만한 곳에 귀하게 쓰려고 하는 다윗의 마음, 이것도 우리가 배워야겠습니다. “내자물거(來者勿拒)하고 거자막추(去者莫追)하라”는 말이 있는데 오는 자는 거절하지 말, 가는 자는 쫓아 보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마사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거절할 필요 없이 받아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가 돌아와서 이스라엘 건설에 한 몫을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과거에는 대적에게 붙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대적을 심판하셔서, 돌아올 기회가 되었으니, 회개하고 돌아오면 받아주면 되는 것입니다. ‘거자막추’는 가는 사람을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는 사람은 가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라, 그런 방침입니다. 오고 싶은 사람은 다 받아 주는 것입니다. 가겠다는 사람은 그냥 두라는 것입니다. 쫓아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두면 오고 싶으면 또 올 것입니다. 막대기로 때려서 보내면 이 다음에 오고 싶어도 못 옵니다. 갈 때에는 그저 잘 가서 잘하라고 하고, 또 오겠다면 오라고 하십시오. 그렇다고 교인들 심방 가서 다른데 가겠다면 잘 가라고 그러지 마십시오. 미혹 받아서 비뚤게 나가고, 잘못 된 길로 가면 어떻게 하든지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바른 진리에서 떠나려고 하면 어떻게 하든지 교인들로 떠나지 않게 권면하고, 심방하고 돌보아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여간 대적으로 있던 사람들도 받아 주는 것입니다. 오
늘날로 말하면 북한에 있는 군대장관도 한국에 오겠다고 하면 다 받아 주는 것입니다. 받아주면 그 사람도 회개하고 바로 서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꾼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관용하는 마음이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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