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갈라디아서 4:17-31 영적 자유자의 핍박과 창성.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영적 자유자의 핍박과 창성
갈라디아서 4:17-31

17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내게 하려 함이라 18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21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23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25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4:17 그들이 너희에 대하여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라, 다만 너희를 내게서 떼어놓아 너희가 그들에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는 것뿐이다. 

4:18 좋은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뿐 아니라 항상 좋은 일이다. 

4:19 나의 자녀들아, 나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너희 안에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너희를 해산하는 고통을 겪는다. 

4:20 이제라도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서 나의 어조를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으니, 이는 내가 너희에 대하여 당혹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4:21 율법 아래 있기를 원하는 자들아, 내게 말해 보아라. 너희는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4: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를 가진 여자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4:23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자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를 가진 여자에게서 난자는 약속으로 말미암아 났다. 

4:24 이것은 비유로 말한 것인데,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다.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서 종 노릇 할 자를 낳은 자, 곧 하갈이다. 

4: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서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한다. 그 여자가 자기 자녀들과 함께 종노릇하나, 

4:26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인, 곧 우리 어머니이다. 

4:27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잉태하지 못하는 여자여, 즐거워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소리 질러 외쳐라. 이는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들이 남편 있는 여자의 자녀들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이다. 

4:29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같이 지금도 그러하다. 

4:30 그런데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여종과 그 여자의 아들을 내쫓아라. 여종의 아들이 결코 자유를 가진 여자의 아들과 함께 상속받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4:3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를 가진 여자의 자녀이다.


1. 교역자와의 이간

본문 17절에,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미혹하는 사람들이 와서 미혹을 했기 때문에 바울에게서 그만 마음이 떠났습니다. 바울을 존경하고 사모하던 것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와서 비방하고 악평하는 바람에 바울에 대한 존경심이 없어졌습니다. 미혹하는 사람들이 와서 열심히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잘해주었습니다.
다른 복음 가진 사람들이 열심히 사랑해주고 도와주고 잘 해줬습니다. 그렇게 다른 복음 가진 사람들이 너희에게 와서 열심으로 사랑하고 봉사하고, 뭘 주고 잘 해준다고 하고, 병 고쳐준다고 하는 그런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건 너희를 이간시켜서 바울에게서 마음을 떠나게 만들어서, 자기들에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고 너희에게 좋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 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고 했습니다.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는 것은 좋지만, 그들은 다른 복음을 가지고 와서 자기들을 거기로 끌고 가려고 너희에게 열심내고 잘해줬는데 왜 그걸 따라갔느냐는 것입니다.

2. 교역자의 수고

본문 19절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려면 해산하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교역자가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교인들 자신도 각각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해산할 때 아이도 복중에서 힘써야 하고, 산모도 힘을 써야 합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함으로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병아리 까는 것도 암탉이 알을 품고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됩니다. 암탉도 21일 동안 알을 계속해서 품고 있으며 수고하여야 하고, 병아리도 때가 되면 제가 알을 깨고 나와야 됩니다. 사람이 까주면 안 됩니다. 밖에서 대신 알을 까주면 병아리가 알에서 나와도 얼마 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교인들이 안일주의에 빠져서 평안하려고만 하고, 향락주의에 빠지고, 교회 나와서 교제나 하고 평안히 예수 믿으려고 하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초보적인 신앙에 머물고, 그리스도의 형상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하나님 앞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점점 이루어져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상급을 많이 주십니다.

본문 20절에,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책망을 했으나 앞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방문하면 부드러운 음성으로 권면하려는 것입니다. 아직 다른 복음을 따라가는 문제에 대하여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의심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고 편지로 책망만 해서는 안 되겠기 때문에,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이 가기 전에 바로 서기를 원하고, 또한 바울이 방문하면 책망하는 음성으로 할 게 아니라 사랑의 온유한 말로 권면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3. 두 여자의 비유
율법의 종과 영적 자유자

본문 21-23절에,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났고, 사라를 통해 낳은 이삭은 약속으로 말미암아 낳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 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실제 일이지만은 비유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5-26절에,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 즉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고 그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으며 언약궤 안에는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이 들어 있습니다. 그 성전에서는 율법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율법의 중심지이며, 하가는 율법의 종노릇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난 자유자와 같다는 말입니다.

신령한 예루살렘, 우리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한 자들입니다. 유대에 속한 예루살렘 사람들이 아닙니다. 유대에 속한 예루살렘 사람은 율법의 종노릇 하는 것이고 육체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예루살렘인데, 하늘에 속한 것이고, 하나님의 언약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이 아니라 자유자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따라서 신약의 언약, 복음의 약속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어머니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신약의 언약, 즉 복음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낳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고전 4:15). 우리는, 하가가 육신으로 이스마엘을 낳은 것 같이 육신으로 낳음을 얻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오직 약속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약속이 이루어져서 약속대로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은 것처럼, 복음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낳음을 얻은 자들이기 때문에 율법으로 구원 받은 자들이 아니라 약속으로 구원받은 영적 자유자들입니다.

영적 자유자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난 구원받은 자들,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 받은 자들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구원 받겠다는 사람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 또 유대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한 것과 같은 것이며 율법의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이방사람이 예수를 의지함으로 자녀가 많아짐

본문 27절에,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잉태치 못한 자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즐거워하라’ 했습니다. 구로치 못한 자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소리 질러 외치라’고 하십니다.

남편이 하나님입니다. 이사야 54장 5절에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고 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과 율법과 육신의 이스라엘을 남편으로 삼고 나왔는데, 그런 사람들의 자녀보다 ‘홀로 사는 자의 자녀’ 즉 율법도 없고, 육신으로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도 없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이방사람들 중에 구원 받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고 율법을 자랑하고, 육체로 이스라엘임을 자랑하는 사람들의 자녀 보다, 자랑할 낯이 없는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붙들고 그 언약의 말씀에 참여하고 영적 이스라엘 생활을 하면, 그 자녀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나가고, 그 다음엔 영적으로 살아야 됩니다. 신령한 예루살렘 생활을 하면 계속 많아진다는 말입니다.

“교단이 크다”, “교회가 크다”, “사람이 많다”, “공부 많이 했다”, “돈이 많다”, 그렇게 뭘 잘해 놨다는 것들 보다, 자랑할 낯이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만 붙들고 따라가고 말씀을 순종하고 영적 생활 하면, 이것이 더 창성해 진다는 것입니다. 할 낯이 없는 것들이 누구입니까? 우리입니다. 전에도 할 낯이 없었지만 지금도 할 낯이 없다는 것입니다. 할 낯이 없다는 것은 보잘것없다는 뜻과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아주 더 보잘것없다는 뜻입니다.

4. 육체의 아들과 영의 아들
신령한 신자는 핍박을 받음

예수를 바로 믿으려고 하니까, 하나님의 참된 바른 복음을 가지고 나가려고 하니까 육체를 가진 자들이 핍박을 했다고 했는데, 본문28-29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했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죽이려고 핍박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육신에 속한 신자가 신령한 신자를 핍박한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도 율법주의자들이 신령한 신자들을 핍박했습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육신에 속한 신자와 신령한 신자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도 있었습니다. 고린도 3장에 보면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육신에 속한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젖이나 먹는 육신에 속한 신자들은 육신 중심, 모여서 좋아하고, 친목하고, 놀러 다니고, 육신을 즐겁게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령한 신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육신에 속한 신자가 신령한 신자를 핍박을 합니다. 어느 시대나 그렇습니
다. 신령한 신자들이 원래 할 낯이 없는 자들이지만, 핍박을 하기 때문에 더욱 할 낯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은 할 낯이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었습니다. 가난하고, 아무 보잘것없는 그런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훌륭한 사람들에게 오라고 했을 때 그들이 왔습니까? 안 왔습니다. 소 사러 가고, 밭 사러 가고, 시집가고 장가가느라고 안 왔습니다. 요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긴 어떤 사람만 온다고 했습니까? 할 낯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들어오는 것이 훌륭한 사람들이 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약한 자, 천한 자, 멸시받는 자, 없는 자와 같은 자, 이런 자들이 교회에 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

핍박 받아 할 낯이 없는 자를 창성하게 해주심

에스겔 34장 20절에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살찐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로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의 하나님입니까? 파리한 양의 하나님입니다.

바로 믿으려면 핍박이 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핍박을 받으니까 할 낯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물론 안 믿는 사람에게도 핍박을 받지만, 믿는 사람에게서도 핍박을 받습니다. 살찐 교회가 파리한 교회를 핍박한다고 했습니다.

핍박받아 할 낯이 없어서 예수님만 붙들고, 그 말씀대로만 나가는 이런 사람이 계속 충성해 나갑니다. 도와주는 사람 많고 돈 많고 세력이 많다고 교회가 잘 되는 게 아니고, 할 낯이 없어서 예수님만 붙들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계속 창성하게 해주십니다.

교역자들도 할 수 없는 자들이 되어서, 영이 살려고 애를 쓰고, 말씀을 사모하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나가면 교회가 됩니다. 하나님이 잘되게 해주신다고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교회 일을 육신의 수단 방법으로 하려고 하면, 그게 ‘남편’이 됩니다. 큰 세력이나 붙들고 교회 일을 하려고 하면 그게 ‘남편’이 됩니다. 그런 것은 다 없어져야 됩니다. 도움 받을 사람도 없고, 할 낯도 없어서 “주여 어쩌면 좋겠습니까?” 하고 영이 살아나가려고 애를 쓰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 자녀가 많아집니다.

이사야 54장 1-3절에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 장막 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자녀가 많아지면 장막을 자꾸 넓히라고 하겠습니까. 할 낯이 없어서 하나님께만 매달리고 부르짖고, 예수님 아니면 못 살 줄 알고, 그 언약의 말씀을 받아가지고 말씀대로만 살려고 하고, 영이 살려고 애를 쓰고, 이렇게 하면 자녀가 계속 많아집니다. 이게 교회가 계속 부흥되는 비법입니다.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이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다고 하셨는데, 육신에 속한 자녀가 영에 속한 자녀를 핍박을 합니다. 그러니까 할 낯이 없어지는 것이고, 결국 자녀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본문 30절에,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1장 10, 12절의 인용 입니다. 이삭을 핍박하는 계집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는 것입니다. 계집종의 아들과 갈라지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아들, 율법의 종 이스마엘은, 약속의 아들인 사라의 아들, 자유하는 이삭과 유업을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육에 속한 것과 비진리를 끊어 버려야, 자유자로서 신령한 진리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본문 31절에,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 속한 종의 자녀가 아니고 영이 자유하는 복음의 자녀입니다. 참 성도는 날마다복음 진리를 깨달아 그 진리 안에서 영의 자유와 새 생명을 얻어 창성해 나갑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붙들고, 약속의 말씀만 순종하고, 영이 자라나는 대로만 나가면 하나님이 창성하게 해주십니다. 그 세계는 참으로 무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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