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무를 후사 삼으심
갈라디아서 4:1-11
갈라디아서 4:1-11
1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8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4:1 내가 또 말하는데 상속자가 어린 아이일 때에는 모든 것의 주인이면서도 종과 다름이 없으며,
4:2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다.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린 아이였을 때에는 세상의 초보적인 원리들 아래서 종 노릇 하였다.
4:4 그러나 때가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으니,
4:5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4:6 그런데 너희는 아들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 속에 보내셔서 '아바 아버지' 라 부르게 하셨다.
4:7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종이 아니고 아들이다. 아들이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상속자이다.
4:8 그런데 너희가 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 때에는 본질상 신들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 하였으나,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시는 바가 되었는데,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보적인 원리로 돌아가서 새롭게 그것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고 있으니,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렵다.
4:2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다.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린 아이였을 때에는 세상의 초보적인 원리들 아래서 종 노릇 하였다.
4:4 그러나 때가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으니,
4:5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4:6 그런데 너희는 아들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 속에 보내셔서 '아바 아버지' 라 부르게 하셨다.
4:7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종이 아니고 아들이다. 아들이면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상속자이다.
4:8 그런데 너희가 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 때에는 본질상 신들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 하였으나,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시는 바가 되었는데,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보적인 원리로 돌아가서 새롭게 그것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고 있으니,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렵다.
1.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됨
본문 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유업을 우리가 이을 자입니다.
또한 9절에는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이 우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만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 이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른다고 할 수가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알아주시는 바가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큰 복을 우리가 받게 되었습니다.
2. 어렸을 때는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음
어릴 땐 종의 인도와 교훈을 받아야 함
본문 1-2절에,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 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유업을 이을 그 집 아들이 모든 것에 주인이지만 어렸을 때에는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주인이라도, 아이로서 어렸을 때는 그 집 청기지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집 청지기가 “이거 하지 말아라”하면 못합니다. 또가지 못하게 하면 못가고, 먹지 못하게 하면 먹지 못합니다. 청지기의 말에 순종해야 됩니다. 또한 어렸을 때는 주인이지만, “후견인 아래 있다”고 하였는데, ‘후견인’이라 함은 아이 봐주는 사람입니다. 뒤에서 따라 다니면서 “이리로 가면 안 된다”, “물에 빠지지 말아라”, 또 “뭘 아무거나 먹지 말아라” 하면서 가르쳐 주는 사람입니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으려 하면 후견인이 먹지 못하게 합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은 물론 못 가게하고, 또한 구렁텅이에 빠질 만한 곳은 못 가게 합니다. 그러한 후견인 아래 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아이 봐주는 사람 아래 있다는 것인데, 그 집 아들이 주인이지만 후견인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청지기는 그 집의 종이지만, 주인의 아들일지라도 종의 아래 있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뭘 모르니까 종의 인도를 받고, 종의 지도를 받아야 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교훈과 율법은 초등학문임
본문 3절에,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는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었습니다. ‘종노릇 하였더니’라고 하였는데, 우리도 예수를 믿기 전인 영이 어렸을 때 그러했습니다. 또는 예수를 믿어도 처음으로 믿을 때는 어렸을 때입니다. 이 세상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했습니다.
초등 학문은 초보적인 학문을 가리킵니다. 초보적인 학문아래 있어서 그 초보적인 학문에 종노릇 했습니다. 본문의 초등학문은 율법을 가리키는데,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 초보적인 학문이 많습니다. 우리 한국으로 말하면 한문교훈이 초등학문입니다. 한문에 여러 가지 좋은 교훈이 많이 있습니다. 삼강오륜(三綱五倫) 같은 그런 것이 다 좋은 것입니다. 군신유의(君臣有義)는 임금 섬기는 법, 부자유친(父子有親)은 부모에 대한 법, 그 다음에는 붕우유신(朋友有信),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그런 것들이 다 초등학문입니다. 삼강오륜도 좋은 교훈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초등학문입니다. 왜 초등학문인가 하면, 그런 것은 영생 길로 우리를 인도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게 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알게 하지 못합니다. 그저 세상 도덕적인 면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보통 세상 도덕과 윤리를 말하는 것으로, “임금 잘 섬겨라. 부모 잘 섬겨라. 또 어른 섬겨라”라고 합니다. 또한 부부유별, 붕우유신, 부부간에 구별이 있고, 형제와 친구간의 신용이 있으라고 가르칩니다.
보통, 세상 도덕에 대한 교훈입니다. 그런 것은 초보적인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교훈이 아닙니다. 그런 교훈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초등학문은 아무리 해도 하나님을 알게 하지 못합니다. 또한 영생 길을 알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런 교훈은 전부 다 초등학문에 속합니다.
율법도 다 초등학문입니다. 이 세상 철학, 세상 모든 교훈들 전부 다 초등학문에 속한다고 해야 합니다. 율법도 초등학문입니다. ‘율법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라’했듯이 율법은 초등학문에 속합니다. 몽학선생이라 하였는데 갈라디아서 3장 24-25절에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라고 했습니다. 몽학선생, 율법, 초등학문은 전부 초보적인 것을 깨우쳐 주는 그런 학문입니다.
율법이 이런 몽학선생이고 초등학문에 속하고 있습니다.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를 보면, 율법에 종노릇 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율법아래 나셔서 우리를 속량하신 예수님
본문 4-5절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 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습니다.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 분이 예수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냈습니다. 보낼 때에 하늘로부터 내려오게 하시지 아니하시고, 여자에게서 나게 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게 했습니다. 또한 율법아래 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여자에게서 예수님을 나게 하신 것은 아담의 후손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여자에게서 나게 했습니다. 사람의 죄는 사람으로 대속하여야만 대속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사람이 되어 오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세상에 왔습니다. 그리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을 우리가 범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율법 아래 나게 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속량하려면 율법아래서 나셔야만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속량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예수님을 율법 아래서 나게 했습니다.
본문 5절에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하심이라”하셨는데, 이제는 율법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 하십니다. ‘속량(贖良)했다’는 말은 우리가 종으로 팔렸던 것인데, 그 종의 값을 주고 사셨다는 말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종으로 몇 억 원에 팔렸다고 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서 몇 억 원 물어주고 값을 주고 사내서 해방을 시켜 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속량이라는 것은 그 말입니다. 우리가 죄 값으로 종살이 했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어주심으로 인하여, 죄 값을 하나님의 공의에 물어주시고 우리를 거기서 사서 해방시켜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값을 주고 사내서 우리를 자유하게 해주셨습니다. 구원해주셨습니다.
3. 아들의 영을 주심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본능
이제는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아들의 명분을 얻었습니다.
본문 6절에,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젠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속에 보냈습니다. 우리 가운데 보냈습니다. 아들의 영을 보내셔서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아들의 영을 받았고 또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냥 아버지라 부른다는 게 아니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배워서 하는 게 하니라,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 ‘아바’ 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 부르는 그것, 하나님을 찾는 것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를 향해서 어렸을 때 ‘아바’라 그러지 않습니까? 어머니를 향해서는 뭐라고 합니까? ‘엄마’, 그것은 본능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배워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 속에서부터 본능적으로 왜 아바라는 말이 나옵니까?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본능적으로 아버지라고 부르고, 특별히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아들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영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하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속에는 아들의 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믿는 사람 속에 와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의 생명이 오고 예수님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계십니다. 떠나지 않습니다. 외부에서도, 밖에서도 늘 예수님의 영이 계시고, 우리 중생한 영혼 속에도 예수님의 영이 계십니다.
언제나 떠나지 않고 계십니다.
독생자 예수님의 영과 양자된 성도의 영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독생자 영이 계시는데, 우리에게는 양자의 영이 계십니다. 독생자의 영과 양자의 영하고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을 했기 때문에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이 있고, 영혼이 있습니다. 거기에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예수님 속에 들어가서 결합이 되었습니다. 인성과 신성이 결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가 되었고 인성과 신성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성도 있고 신성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부터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영혼과 육신이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을 인성이라 부르고, 그리스도의 영은 신성이라고 합니다. 신성과 인성이 결합이 되었습니다. 갈라 놓으려해 봐야 갈라놓을 수가 없습니다. 한 위가 되었습니다. 이성(二性) 즉, 신성과 인성이 결합이 되어서 한 위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도 육신이 있고 영혼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속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와 계십니다.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속에 계시는데, 그러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지만, 언제나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습니다. 내가 예수가 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는 언제나 인성입니다. 인성이고 신성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와 계시지만 연합만 된 것입니다. 연합, 연결이고 나는 언제든지 사람이지 예수가 아닙니다.
예수는 언제나 예수님이시고 나는 언제나 사람입니다. 예수님에게 있는 그리스도의 영은 인성과 완전히 결합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고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들어와 계시고,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고,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사람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 몰라서 어떤 사람은 자기가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속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자기는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들어와 계시지만 그것은 양자의 영입니다. 그것이 양자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양자의 영을 보내사 양자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독생자의 영이 계시고, 인성과 결합이 되었기 때문에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십니다. 우리도 아들이 되었습니다. 하나가 되었습니다.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였습니다. 돌 감람나무 가지를 꺾어서 참 감람나무에 접붙였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는 참 감람나무의 진액을 받아서 참 감람나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4. 하나님의 기업을 무를 후사가 됨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의 이름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의 이름
본문 7절에,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했습니다.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라’고 했는데,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입니다.
이젠 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들의 영을 보내서 우리로 하여금 그 영을 받아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고,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들이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0절에,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너희의 이름이 하늘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셨는데, 우리의 이름이 어디에 기록이 되었습니까? 하늘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라고 했는데, 귀신들도 예수 믿는 사람에게 항복을 합니다.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십니다. 뭘 기뻐하라고 했습니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하십니다. 귀신도 항복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 앞에서는 귀신도 꼼짝 못합니다. 항복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 그것을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귀신들이 우리에게 항복하는 것, 그것도 참 기뻐할 일이지만 그것보다도 더 기쁜 것은 우리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다음에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을 받습니다.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다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이름이 다 생명책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또, 아들의 명분도 주셨습니다. 본문 5절에, 아들의 명분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주셨고, 둘째는 무엇을 주었습니까? 아들의 영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의 영을 주었고, 그 다음에는 아들의 생명을 주셔서 우리 이름을 하늘나라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명분, 아들의 영, 생명을 주셔서 우리 이름을 하늘에 기록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이 분명합니다. 호적 떼면 나옵니까? 예, 호적 등본 떼면 다 나옵니다. 아버지는 누구십니까?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맏아들은 예수님, 우리는 작은 아들입니다. 작은 아들이 많습니다. 그런 아들의 명분도 하나님이 주셨고, 아들의 영도 주었고, 생명도 주었고, 또한 우리 이름을 하늘에 기록해서 호적에 다 올라 있습니다.
우리가 다 담대하게 당당히 하나님 앞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데 왜 못 들어가겠습니까? 장담코 당당히 들어갑니다.
에베소서 3장 12절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당당히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습니다. 당당하게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이름이 있는데 왜 못 갑니까?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습니다.
실력이 있어야 유업을 사용할 수 있음
그 다음 본문 7절 하반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유업은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가 다 물려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를 물려받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예수 믿는 사람이 물려받습니다. 물려받긴 하는데, 자격이 있는 만큼 써 먹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 것을 다 물려 받긴 물려받는데, 자격이 있는 만큼 쓴다는 것입니다.
가령 큰 부자 집에 여러 가지가 많이 있는데, 비행기도 있고 자동차, 전자 기구 등, 여러 가지가 많이 있습니다. 아들은 여럿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버지가 다 물려주었습니다. “너희 마음대로 다 사용해라”하고 다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있는 만큼 쓸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주셨지만 오토바이 탈 줄 아는 기술이 있어야 오토바이를 탈 수가 있고, 자동차 운전할 기술이 있어야 자동차 부릴 수 있고, 비행기도 줬는데 비행기도 운전할 기술이 있어야 비행기를 운전할
수 있습니다. 또 여러 가지 전자 기구들, 텔레비전, 또 전자 오르간 같은 것들은 사용할 기술 없이 있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또 타이프 치는 기계, 어떤 기계 등, 여러 가지 많이 있어도 그것을 쓸 만한 실력이 있어야 쓸 수 있습니다. 쓸 만한 실력이 없는 사람은 그런 것들을 줘도 사용할 줄 모르므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가 다 물려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를 물려받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예수 믿는 사람이 물려받습니다. 물려받긴 하는데, 자격이 있는 만큼 써 먹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 것을 다 물려 받긴 물려받는데, 자격이 있는 만큼 쓴다는 것입니다.
가령 큰 부자 집에 여러 가지가 많이 있는데, 비행기도 있고 자동차, 전자 기구 등, 여러 가지가 많이 있습니다. 아들은 여럿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버지가 다 물려주었습니다. “너희 마음대로 다 사용해라”하고 다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있는 만큼 쓸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주셨지만 오토바이 탈 줄 아는 기술이 있어야 오토바이를 탈 수가 있고, 자동차 운전할 기술이 있어야 자동차 부릴 수 있고, 비행기도 줬는데 비행기도 운전할 기술이 있어야 비행기를 운전할
수 있습니다. 또 여러 가지 전자 기구들, 텔레비전, 또 전자 오르간 같은 것들은 사용할 기술 없이 있어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또 타이프 치는 기계, 어떤 기계 등, 여러 가지 많이 있어도 그것을 쓸 만한 실력이 있어야 쓸 수 있습니다. 쓸 만한 실력이 없는 사람은 그런 것들을 줘도 사용할 줄 모르므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글씨 쓰는 붓을 줬다고 합시다. 또한 종이도 주고, 먹도 주고, 다 줬는데 글씨 쓸 줄 모르면 그럼 그 붓은 뭐하겠습니까? 먹 갈아서 붓을 가지고 종이에 찍어야 뭐 시꺼멓게 만들어 놓고, 올챙이 배처럼 그려 놓기만 하면 아무런 쓸데가 없습니다. 글씨를 잘 쓸 수 있는 사람이라야 그 붓을 가지고 글씨를 쓸 수 있고, 그것이 명필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기술이 없는 사람, 실력이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을 주어도 못 써먹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 주시는데, 실력이 있는 만큼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신 것을 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아들 된 우리들은 믿는 일 잘 하고, 회개하고,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만들어서, 자기 실력을 길러서 하나님 앞에 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유업을 물려주실 때 다 받아서, 그것을 제대로 쓸 수가 있습니다.
5.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지 말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도 우리를 아심
본문 8-9절에,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이라고 했는데, ‘그 때에는’은 예수 믿기 전을 말합니다. 믿기 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습니다. 우상 섬기고, 우상의 종이었습니다. 초등학문의 종,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과거에는 종노릇 하였고,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었습니다.
9절에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또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알아야 됩니다. 저 혼자만 안다고 하면 안 됩니다. 가령 제가 미국 대통령을 안다고 해서 미국 대통령한테 가서 “나 이병규 목사인데 아십니까?”고 물어볼 때, 미국 대통령이 “난 당신 모른다”고 한다고 합시다. 제가 그 사람을 알지만 그
사람이 나 모른다고 하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저는 그 사람 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은 “나 당신 모른다”고 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는 그 사람을 안다고 반가워서 무슨 부탁하려고 찾아 갔는데, 그 사람은 “난 모르겠습니다”고 하면 일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갈 때에, 하나님께서도 “내가 이 사람을 안다” 그러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무슨 일 있을 때 누구를 찾아 갑니까? 높은 사람 찾아갈 것 아닙니까? 그 사람 찾아가서 뭐 부탁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아랫사람들에게 좀 잘 봐주라고 그럴 것입니다. 그럼 아랫사람이 좀 잘 봐줄 테니까 참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재판장입니다. 최고의 재판장,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재판받는데 내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또 나를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면, 그 얼마나 잘 해주시겠냐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를 가지고 가면 모든 죄 용서해 준다는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그 법에 의해서 우리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 즉, 모든 신령한 것, 하늘의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는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도 우리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알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면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시면 하나님이 가만히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아는데, 잘 아는데, 잘 아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이 가만히 내버려 두겠습니까? 또 잘 아는 사람이 뭘 요구를 하면 하나님이 안 주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다음에 하나님이 우리를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영생의 세계, 하늘나라로 인도할 것입니다. 약속의 말
씀이 또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는다” 하는, 구원해 준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 약속대로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미신적인 초등학문에 돌아가지 말 것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우리를 아는데, “아는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하려하느냐?”하십니다. 왜 다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거기에 종노릇 하느냐는 말입니다. 거기서 해방을 받고 이제는 구원을 받았는데, ‘왜 다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이 믿기 전에 하던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일들, 우상 숭배하는 일, 또 뭘 가서 물어보는 일, 등이 미신입니다. 또 궁합 보는 일, 또 무슨 날 받는 일, 결혼하는 날 받는 일, 이사 가는데 날 받는 일, 그런 것이 다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신입니다.
또 제주도에는 1년에 이사 가는 달이 한 달 밖에 없다고 합니다. 구정과 신정 중간에 한 달만 이사 간다고 합니다. 그 기간 지나면 이사 안 간다고 합니다. 집 세놓는 것도 그 달에 놔야지, 지나면 놓지 못한다고 합니다. 날짜는 구정과 신정 중간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날짜는 자세히 모르지만 하여간 한 달인가 하는 기간 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제주도에서 그런다고 하는데, 그것도 전부 초등학문으로 돌아간 것입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런 것을 다 타파해야 됩니다. 다 집어 치워야합니다. 관상 보는 일, 손금 보는 일, 사주팔자 그런 것 다 집어 치워야 합니다. 다 미신입니다. 날 받는 일, 또 이름 짓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다 그 초등학문에서 나와서 이제는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또 이름이 다 하늘나라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아들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으로 살고, 다시 그런 어리석은 종노릇 하는 대로 돌아가면 안 되겠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뒤에는 구약의 의문으로 돌아가지 말 것
본문 10-11절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날, 달, 절기, 해를 지켰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매달 초하루를 지켰습니다. 절기는 유월절, 장막절, 맥추절과 같은 절기, 그리고 7년마다 안식년, 50년 마다 희년 등 이런 게 구약에 다 있습니다. “이것을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해방이 되었고, 초등학문에서 나왔
는데, 다시 초등학문으로 돌아간다는 건 믿는 일이 헛되게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종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종과 후견인의 인도를 받으나, 주인의 아들이 큰 다음에도 종한데 가서 인도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종이나 아이 봐주는 후견인의 인도를 받았지만, 큰 다음에는 종이나 후견인의 인도를 받으면 안 됩니다. 그와 같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다음에는 다시 초등학문인 구약의 의문으로 다시 돌아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 믿는 것이 다 헛된 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
이 헛될까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게 한 수고가 헛된 데로 돌아 갈까봐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 다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만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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