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는 새사람으로 살라
로마서 7:15-8:1
로마서 7:15-8:1
7 15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또는 행할 능은 19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7:15 나는 내가 행하는 것을 알지못하니,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7:16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면,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7:17 그러나 지금 그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이다.
7:18 나는 내 속, 곧 나의 육체 속에 선한 것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
7: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한다.
7:20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그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이다.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으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함께 있다는 것이다.
7:22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7:23 내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나의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의 포로로 삼는 것을 본다.
7: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이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주겠느냐?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
7:16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면,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7:17 그러나 지금 그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이다.
7:18 나는 내 속, 곧 나의 육체 속에 선한 것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
7: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한다.
7:20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면, 그것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이다.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으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함께 있다는 것이다.
7:22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7:23 내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나의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의 포로로 삼는 것을 본다.
7: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이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주겠느냐?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다.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1. 신자의 내적 투쟁
육체의 부패성은 하나님의 법을 싫어함
중생한 영혼은 새사람이고, 새생명입니다. 죄를 자꾸 지으려고 하는 것은 육신의 부패성, 즉 옛사람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새사람과 옛사람이 있습니다. 새사람으로 살면 선을 행하며, 선을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옛사람은 선을 싫어하며 죄만 지으려고 합니다. 옛사람의 부패성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즉 믿는 사람 속에는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습니다.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은 새사람이며, 육체의 부패성에 이용당하는 사람은 옛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살려 놓을 때에 영혼을 살려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아직 죄악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10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은 죄 때문에 죽었으나 중생한 영은 의를 인하여 살았다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의를 입어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영혼만 산 것이지 몸은 아직도 죄 아래 있고 사망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전체 속에 중생한 영혼이 있고, 또 육체의 부패성이 있는 것입니다. 즉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선만 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부패성은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고 죄만 지으려고 합니다.
“나”라는 전체가 육체의 부패성을 따라 살면 그 때는 죄를 짓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죄를 반대합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왜 죄를 짓느냐?고 쿡쿡 찌르며 가책을 줍니다. 그것은 중생한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은 중생한 영혼이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즉 알지 못한다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말로 중생한 영혼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가 지은 죄를 중생한 영혼이 책임을 지고 하나님 앞에 회개를 같이 합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책임지시고, 고난당하신 것과 같고, 또 하나님 앞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이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성령이 우리의 죄를 책임지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니다.
중생한 영혼은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선만 행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부패성은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고 죄만 지으려고 합니다.
“나”라는 전체가 육체의 부패성을 따라 살면 그 때는 죄를 짓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죄를 반대합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왜 죄를 짓느냐?고 쿡쿡 찌르며 가책을 줍니다. 그것은 중생한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은 중생한 영혼이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즉 알지 못한다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말로 중생한 영혼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가 지은 죄를 중생한 영혼이 책임을 지고 하나님 앞에 회개를 같이 합니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책임지시고, 고난당하신 것과 같고, 또 하나님 앞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이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성령이 우리의 죄를 책임지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대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중생한 영혼은 죄 짓는 것을 반대하지만 육체가 죄를 지으면 중생한 영혼도 책임을 지고 같이 하나님께 탄식하며 회개합니다. 그러나 중생한 영혼이 죄지은 것은 아닙니다. 8:23절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 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속으로 탄식 한다는 것은 중생한 영혼이 육체의 죄를 이기기 위해서 속에서 탄식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양자 될 것 곧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하였는데, 몸의 구속이란 몸은 아직 죄 가운데 있으므로, 그 죄 가운데서 점점 건져 내는 것을 말합니다. 즉 몸은 아직 죄 가운데 있고 영혼만 하나님이 중생시켜 놓았기 때문에 중생한 영혼이 죄 가운데서 몸을 건져내려고 탄식 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의 중생한 영혼이 속으로 탄식하며 몸을 죄 가운데서 건져내려고 탄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전서 3:21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양심은 중생한 영혼이 쓰는 양심입니다. 육체는아직도 죄 가운데 있고 영혼만 중생하여 그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육체의 죄를 벗어버리고 나가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중생한 영이 있어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그 영혼은 죄를 지을 때에 왜 죄를 지었느냐? 하며 자꾸 책망을 하며 반대합니다. 즉 가책을 줍니다.
영혼이 범죄했다면 가책하지 않고 좋다고 가만히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의 한 옆에는 육체의 강한 부패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려고 하는 욕심, 탐심 등의 죄악성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이것은 옛사람으로 우리 속에 있습니다. 옛사람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즉 옛사람과 새사람의 싸움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있습니다. 신자의 내적 투쟁이라는 것은 중생한 영과 즉 살아난 새생명과 육체의 부패성이 싸운다는 말입니다. “지체 속에 죄가 있다, 또 육신의 속에 죄가 있다, 또 육신의 소욕이다”라고 하였는데, 영혼에 부패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에 부패성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부패성이 영혼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즉 죄악이 가득한 영혼을 다 살린 것이 아니고 한편 모퉁이만 살려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영혼의 주도적 성향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즉 하나님과 연결되었는데 하나님과 연결된 그것은 성령에 붙들려 있는 것이고 살아난 것으로, 살아난 새생명은 범죄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런데 한 부분만 새생명이고 나머지 부분은 다 죽은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을 산 부분과 죽은 부분으로 갈라놓는 것입니다. 즉 한 영혼이 산 부분과 죽은 부분으로 갈라진 것입니다. 죄는 누가 짓느냐? 죽은 영혼이 죄를 짓는다는 말입니다. 산 것은 절대 죄를 짓지 않고 죄 지을 가능성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영혼이 둘입니까? 죄 짓는 영혼이 하나 있고, 또 죄 안 짓는 영혼이 하나 있습니까? 한 영혼을 둘로 가를 수 있느냐?라는 말입니다. 한 영혼을 둘로 가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육체의 부패성을 영혼의 부패성이라고 하지 왜 육체의 죄, 육체의 욕심, 육체의 소욕, 육체의 부패성이라고 하였습니까? 또 죄를 말할 때에 영혼의 생각이라고 하지 왜 육신의 생각이라고 하였습니까?
로마서 8: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육신의 생각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갈라디아 5:19-20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말할 때에 육체의 일이라고 하였지, 영혼의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전서 2:11에도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정욕은 육체에 속한 것으로 영혼과 반대입니다. 즉 영혼이 아닙니다. 또 갈라디아서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린다고 하였으며,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전부 육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육체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 “싹스”라고 하는데, 그 “싹스”라는 말은 우리의 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부패성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14의 육신(싹스)은 부패성이 아니고 육체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하였는데,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몸을 “싹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몸을 “싹스”라고 하였으므로 그 “싹스”를 죄악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이 죄악의 덩어리로 세상에 왔다”는 해석이 됩니다. 또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도 “싹스”입니다. 부활하신 후 “내 몸을 만져 보아라”고 하였는데, 그것도 “싹스”입니다. “싹스”를 죄악으로 해석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의 몸이 죄악의 덩어리로 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원어 “싹스”를 죄악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왜 안 되는가? 예수님을 죄악의 덩어리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죄악의 덩어리로 만들면 일은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도 죄악의 덩어리가 됩니다. 예수님이 죄악의 몸으로 부활하시면 우리의 구주가 못됩니다. 근본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이라는 말을 죄악으로 해석하지 말고 성경 이대로 해석 하여야 합니다. 즉 “싹스”라는 말이 육체라는 말이므로 우리의 육체인 몸, 살, 육, 이렇게 해석을 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육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말이지 죄악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예수님이 육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로고스” 되시는 예수님이 육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말이지, 죄악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싹스”를 죄악으로 해석을 하면 예수님이 죄악의 몸을 입고 오셨다고 해석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해석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면 육신이 가지고 있는 욕심, 육신이 가지고 있는 죄악성, 육신이 가지고 있는 부패성이 옛사람입니다.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함
본문 16-17절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하였습니다.“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이란 “나”라는 전체가 중생했으므로 이제는 죄를 짓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누가 죄 짓기 원하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원치 않는 죄를 지으면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 중생한 영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죄를 지을 때에 속이 우리 속에 반대 하는 세력이 있는데 그것이 중생한 영혼입니다.
중생한 영혼은 죄를 지을 때에 “죄 짓지 말라, 안된다, 죽는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자꾸 속에서 가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 라는 자가 중생한 영을 따라가지 않고 육신의 부패성을 따라가서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중생한 영혼이 또 가책을 시키는 것입니다.
“너 왜 죄를 지었는가?”하며 쿡쿡 찌르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이 “나”라는 전체를 붙들고 같이 회개하자고 자꾸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생한 영혼이 성령과 같이 탄식을 하면서 회개를 시킵니다. “내 속에 거하는 죄”란 부패성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18절에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하였습니다. 내 육체에 선한 것이 하나도 거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보면 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로 그것은 부패성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옛사람은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적 부패입니다. 무슨 선한 것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부 썩어진 것으로 육신의 부패성 속에는 즉 옛사람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인간의 전적부패를 말하였습니다. 우리 옛사람은 전적부패 했기 때문에 선한 것이 그 속에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옛사람은 전부가 다 썩어진 것뿐입니다. 선을 털 끝 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새사람을 보면 즉 중생한 영을 보면 깨끗하고, 거룩하고, 참된 것만 그 속에 있습니다. 털끝만큼도 거짓된 것이 없습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것이 믿는 사람 속에 있는데 그것이 새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 속에는 새사람과 옛사람이 있어서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체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옛사람을 가르치는 것으로, 육신의 부패성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적 부패입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하였는데, 원함은 내게 있다는 것은 전체인 “나” 속의 중생한 영은 선을 행하는 마음이 있는데, 전적 부패한 육신의 부패성이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여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거룩하고, 깨끗한 것이 믿는 사람 속에 있는데 그것이 새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 속에는 새사람과 옛사람이 있어서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체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옛사람을 가르치는 것으로, 육신의 부패성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적 부패입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하였는데, 원함은 내게 있다는 것은 전체인 “나” 속의 중생한 영은 선을 행하는 마음이 있는데, 전적 부패한 육신의 부패성이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여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아니하는 악만 행한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자꾸 악이 행하여집니까? 속에 옛사람인 육신의 부패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0절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이란 “내가 원치 아니하는 죄를 지으면”이라는 말입니다.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란 죄를 짓는 자가 중생한 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내가 원치 아니한 죄를 지으면 이것을 행하는 자가 중생한 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가 짓는다는 것은 “나”라는 전체가 죄를 지었다는 말입니다. “나”라는 전체인 “나”가 중생한 영혼이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않고 부패성이 원하는 죄만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혼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란 부패성이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즉 옛사람이 죄를 지은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라는 것은 “나”라는 전체를 말합니다.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란 부패성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중생한 성도는 선을 행하기 원합니다. 중생한 영이 있기 때문에 성도가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육체의 부패성이 있기 때문에 악이 함께 있다는 말입니다. 즉 내 속에 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중생한 영이 있고, 또 악을 행하기 원하는 육체의 부패성이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니라”는 것은 중생한 영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고, 육체의 부패성이 죄를 지은 것이므로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2.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음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란 중생한 영혼입니다. 즉 중생한 영은 범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하나님께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란 성령이 저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한다”는 것은 성령이 지켜주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요한일서 3:9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씨는 말씀입니다. 즉 말씀으로 중생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중생한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에 범죄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속에 있는데 어떻게 범죄하겠습니까?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했는데 말씀이 범죄합니까? 성령도 범죄합니까? 범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중생한 영이 범죄하지 않는 것이고, 육체의 부패성이 범죄하는 것입니다.
독립문 성결교회 이명재 목사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명재 목사님 말이 요새 부흥사들이 대게 다 타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하다가 타락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흥사들이 다니면서 “예수 잘못 믿으면 지옥에 가고, 예수 잘 믿으면 천당에 간다”고 하는 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중생한 영은 즉 새사람은 죄를 안 짓고, 옛사람이 죄를 짓는다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이명재 목사님은 우리한데 배우지 않았는데 중생한 영이 죄를 안 짓는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부패성이 죄를 짓는 다는 것입니다. 이 면이 우리와 같습니다.
우리의 중생한 영은 성령과 합작을 해서 의를 행합니다. 중생한 영이 죄를 짓는다고 하면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중생한 영이 다시 죽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다시 중생해야 하는데 중생도 두 번 합니까? 중생은 한 번 합니다. 중생한 영은 즉 산 새생명은 범죄하지 않고, 범죄 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한 영도 범죄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제일 문제가 됩니까? 영혼을 둘로 갈라놓는 것이 제일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살릴 때에 다 살리시지 왜 모퉁이
만 살리셨겠습니까? 다 살릴 능력이 없어서 모퉁이만 살리셨습니까?
그러면 이것이 산 영혼입니까? 죽은 영혼입니까? 죽었다 하면 이쪽이 살았습니다. 또 살았다 하면 이쪽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슨 영혼입니까? 죽은 영혼입니까? 산 영혼입니까? 또 산사람이라고 해야겠습니까? 죽은 사람이라고 해야겠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산사람이라 하고 보니까 또 죽은 사람이고, 죽은 사람이라고 보니까 또 산 사람입니다. 그러면 산 사람도 아니고 죽은 사람도 아닙니다.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희는 살았다고 했습니까? 죽었다고 했습니까? “너희는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다 산 것입니다. 살려 놓을 때에 다 살려 놓았지 왜 일부만 살려 놓았겠습니까? 또 영혼이 단일 인격입니다. 인격이 둘이 아닙니다. 한 인격 속에 두 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까? 즉 죽은 것과 산 것이 있습니까? 살면 다 산 것이고, 죽으면 다 죽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희는 살았다고 했습니까? 죽었다고 했습니까? “너희는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다 산 것입니다. 살려 놓을 때에 다 살려 놓았지 왜 일부만 살려 놓았겠습니까? 또 영혼이 단일 인격입니다. 인격이 둘이 아닙니다. 한 인격 속에 두 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까? 즉 죽은 것과 산 것이 있습니까? 살면 다 산 것이고, 죽으면 다 죽은 것입니다.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산 영인데 부패성이 있으면 어떻게 산 것입니까?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의 영은 다 살았으며, 산 영이며, 산 생명입니다. 죽은 자가 아닙니다. 새생명 가운데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이 되었기 때문에 산 영혼이지 죽은 영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 한쪽만 연합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이 그리스도와 전부 연합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한쪽 모퉁이는 살고, 한쪽 모퉁이는 죽었다면 죽은 것도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죽은 것과는 연합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면 죽은 것은 떼어 놓고 산 것만 예수님께서 “너 왔으니 잘 했다”고 하겠습니까? 또 “산 것하고만 연합하자”고 하겠습니까? 산 것만 연합하면 죽은 것은 예수님이 달고 다니겠습니까? 아니면 떼어 놓고 다니겠습니까? 떼어 놓으면 오히려 큰 문제가 생깁니다.
영은 하나인데 어떻게 떼어 놓겠습니까?
영은 하나인데 어떻게 떼어 놓겠습니까?
영이 한쪽 부문만 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죽은 한쪽 부분은 오랜 세월에 산 영혼이 조금씩 조금씩 죽은 것을 잡아먹으므로 살아 난다는 것입니다. 즉 산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새생명의 역사가 와서 조금씩 조금씩 죽은 것을 살려 나가고 정복을 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다 살리는 것이 목적인데 죽을 때 까지 조금씩 살려 나가다가 그 사람이 죽을 때에는 한꺼번에 다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꺼번에 다 살아난다면 뭐하려고 살려 나갈 필요가 있습니까? 가만히 두어도 죽을 때는 한꺼번에 살아나겠는데 뭐하려고 힘써서 성화 시키려고 애를 씁니까?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핍박과 환난을 받으며 살려 나갑니다. 그런데 죽을 때에 한꺼번에 살아난다면 이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살려 나가려고 힘쓰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전부가 다 안 맞습니다.
다 살리는 것이 목적인데 죽을 때 까지 조금씩 살려 나가다가 그 사람이 죽을 때에는 한꺼번에 다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꺼번에 다 살아난다면 뭐하려고 살려 나갈 필요가 있습니까? 가만히 두어도 죽을 때는 한꺼번에 살아나겠는데 뭐하려고 힘써서 성화 시키려고 애를 씁니까?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핍박과 환난을 받으며 살려 나갑니다. 그런데 죽을 때에 한꺼번에 살아난다면 이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살려 나가려고 힘쓰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전부가 다 안 맞습니다.
중생한 영은 다 살아난 것입니다. 다 살아났으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전부 연합하고, 그리스도 안에 영혼이 다 들어가 있고, 우리 영혼속에 그리스도를 모신 것입니다. 산 영혼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완전하게 살려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 하나가 잘못되면 이와 같이 다 맞지 않습니다.
첫째 “싹스”란 말부터 안맞지 않습니까? 육체라는 말을 죄악성으로 해석을 해 놓았단 말입니다. 죄악성으로 해석을 하면 요한복음 1:4에 예수님이 “싹스”로 되었으므로 예수님이 죄악의 덩어리가 됩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은 “싹스”입니다.
“내 몸을 만져보아라” 하는 것도 “싹스”를 만져보라는 것입니다. 그 “싹스”를 죄악성이라고 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죄악성으로 부활하신 것으로 됩니다. 그러면 그 해석이 어떻게 바로 된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 몸을 만져보아라” 하는 것도 “싹스”를 만져보라는 것입니다. 그 “싹스”를 죄악성이라고 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죄악성으로 부활하신 것으로 됩니다. 그러면 그 해석이 어떻게 바로 된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본문 22-25절에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은 중생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생한 영도 범죄한다는 사람들은 요한일서 3:9, 5:18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을 하는가? 하면 “실수해서는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면 상습적으로 죄를 안 짓고, 실수를 해서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죄가 아닙니까? 죄가 아니라면 말이 안 됩니다. 요한일서에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범죄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왜 범죄 하지 않는가?하면 속에 하나님의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말씀으로 중생했기 때문에 죄를 안 짓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라고 하였는데, 중생한 영이 육체의 부패성과 싸워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란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란 육체의 부패성을 말합니다. 부패성은 지체 속이라고 하였지 영혼 속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은 중생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생한 영도 범죄한다는 사람들은 요한일서 3:9, 5:18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을 하는가? 하면 “실수해서는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로 해석을 합니다.
그러면 상습적으로 죄를 안 짓고, 실수를 해서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죄가 아닙니까? 죄가 아니라면 말이 안 됩니다. 요한일서에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범죄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왜 범죄 하지 않는가?하면 속에 하나님의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말씀으로 중생했기 때문에 죄를 안 짓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라고 하였는데, 중생한 영이 육체의 부패성과 싸워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란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란 육체의 부패성을 말합니다. 부패성은 지체 속이라고 하였지 영혼 속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언제나 죄악에 사로 잡혀서 죄를 짓곤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만 원하는 선은 행하여지지 않고 원치 않는 죄만 행하여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탄식이 나왔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하였는데, 아무리 선을 행하려고 해도 또 다시 죄를 짓고, 죄를 안 지으려 해도 또 죄 가운데 빠지므로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해결 방침이 하나 나왔습니다. 해결 방침이 무엇입니까? 해결 방침은 25절에 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함
본문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기는 법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는 능력이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이길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내적 투쟁의 결론적 말로 내 자신이 마음으로 살 때에는 하나님의 법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이라고 하였는데, 마음은 중생한 영혼이 쓰는 마음입니다. 마음은 영혼의 한 기관입니다. 우리 중생한 영이 마음을 이용해서 살 때에는 그 마음이 선한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마음이 됩니다. 그러나 육신의 부패성이 마음을 이용하면 전적부패한 마음이 됩니다. 그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중생한 영혼에게 이용될 수 있고, 육체의 부패성에 이용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중생한 영혼에게 이용될 때에는 선한 마음, 깨끗한 마음, 거룩한 마음, 털 끝 만큼도 더러움이 없는 마음이 됩니다.
그러나 육체의 부패성에게 마음이 이용될 때에는 악한 마음, 더러운 마음이 됩니다.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마음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는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선한 마음, 신령한 마음,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전적 부패한 것을 생각 할 때에는 속에 있는 것이 죄악만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였는데, 악한 것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죄를 다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됩니다. 마음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는데, 옛사람에게 마음이 이용당할 때에는 선한 마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할 때에는 중생한 영이 사용되는 그 마음을 다해서 즉 선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육체의 부패성에게 마음이 이용될 때에는 악한 마음, 더러운 마음이 됩니다.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마음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는 무슨 마음이겠습니까? 선한 마음, 신령한 마음,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전적 부패한 것을 생각 할 때에는 속에 있는 것이 죄악만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였는데, 악한 것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죄를 다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됩니다. 마음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는데, 옛사람에게 마음이 이용당할 때에는 선한 마음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할 때에는 중생한 영이 사용되는 그 마음을 다해서 즉 선한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도 중생한 영혼에게 사용되는 선한 마음을 하나님이 보십니다. 우리 마음이 부패성에게 이용당할 때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다하라”는 것은 부패성에게 이용된 마음을 다하라는 말이 아니고,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한 마음을 다 하라는 말입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긴다”는 것은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는 마음으로는 언제나 하나님의 법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는 것은 육신을 따라 살 때에는 죄의 법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 결론입니다. 즉 성도가 영을 따라 살 때에는 하나님의 법을 섬겼고, 육을 따라 살 때에는 죄의 법을 섬겼습니다.
4.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정죄함이 없음
8: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해결 방침이 나왔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이기는 길이 하나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7:25에 선한 싸움을 계속해 나오다가 즉 내적투쟁을 계속해 나오다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하는 고통 가운데 빠졌는데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에 이기는 길이 하나 있음을 깨닫고 감사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제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쑥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쑥 들어가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법적으로 하나님이 정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 영이 예수님의 영 안에 쑥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 안에서 사는 것이고, 예수
님을 힘입어 사는 것이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정죄함이 없는, 가책함이 없는 승리하는 생활을 한다는 말입니다. 즉 승리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 영이 그리스도의 영 안에 쑥 들어가 살 때에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안에 들어갔다가 나가서 육신으로 살 때에는 죄를 짓게 됩니다. 영 안에서 살 때에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님을 힘입어 사는 것이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정죄함이 없는, 가책함이 없는 승리하는 생활을 한다는 말입니다. 즉 승리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우리 영이 그리스도의 영 안에 쑥 들어가 살 때에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의 영안에 들어갔다가 나가서 육신으로 살 때에는 죄를 짓게 됩니다. 영 안에서 살 때에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제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의 영을 살리실 때에 다 살리신 것이 아니고 일부분만 살리셨다고 주장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 때에 어떻게 들어갑니까? 살려놓은 부분만 들어가야 합니까? 내 영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또 그리스도께서 내 속에 들어와 계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영혼이 하나로 전부 다 나인데 내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산 영혼 일부분만 들어간다는 것입니까? 산 영혼 일부분만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다면 남아 있는 일부분은 어떻게 합니까?
또 우리 영혼이 하늘에 올라가 앉았다고 하였는데 일부분은 살았고 일부분은 아직도 죄의 성향이 그대로 있다면 어떻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에베소서 2:6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하였는데, 그러면 죄도 하늘에 들어간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한 부분만 살았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즉 한 부분만 중생하였다고 하면 여러 가지가 안맞습니다. 우리 영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 갈 때에 일부분만 들어가고 일부분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실 때에도 다 모신 것이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갈 때에도 다 들어간 것입니다. 죽었던 영혼이 다 살아난 것이지, 내 영혼이 일부만 산 것이 아닙니다. 일부만 살았다고 하면 성경 전체에 맞지 않습니다. 골로새 1:13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영이 하나인데 일부는 아들의 나라로, 일부는 마귀의 나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이 그리스도 안에 다 쑥 들어가는 것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