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이 황무하여 여우가 놀음
예레미야애가 5:1-22
예레미야애가 5:1-22
1여호와여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 2우리 기업이 외인에게, 우리 집들도 외인에게 돌아갔나이다 3우리는 아비 없는 외로운 자식이오며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 4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섶을 얻으오며 5우리를 쫓는 자는 우리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곤비하여 쉴 수 없나이다 6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7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8종들이 우리를 관할함이여 그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 9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 10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 11대적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 12방백들의 손이 매어달리며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13소년들이 맷돌을 지오며 아이들이 섶을 지다가 엎드러지오며 14노인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소년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15우리 마음에 희락이 그쳤고 우리의 무도가 변하여 애통이 되었사오며 16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 17이러므로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우며 18시온 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 19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20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버리시나이까 21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22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하시니이다
1. 폐망한 유다의 슬픈 정형(情形)과 회개
폐망한 유다의 슬픈 정형
본문 1-2절에 “여호와여 우리의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 우리 기업이 외인에게, 우리 집들도 외인에게 돌아갔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죄를 자주 책망하셨지만 유다 백성이 회개치 않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멍에를 메라고 하셨는데, 시드기야 왕은 그 멍에를 메지 않고 바벨론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고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에게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하시고 성전을 불사르시며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습니다. 그때에 예레미야가 애가를 지은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망하여 비참한 것을 보고 지었습니다.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 우리 기업이 외인에게, 우리 집들도 외인에게 돌아갔나이다’라고 하였는데, ‘기업’은 유다의 모든 땅과 사업체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 외인에게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기업이 외인에게 돌아갔고, 둘째는 집들도 외인에게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예전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땅과 집을 점령하고 빼앗은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본문 3절에 “우리는 아비 없는 외로운 자식이오며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아비 없는 외로운 자리에 있어서 도와줄 사람이 없고 의지할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우리 어미는 과부 같으니’라고 하였는데, 나라와 민족이 과부와 같이 도와줄 자도 의지할 곳도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우리가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섶을 얻으오며”라고 하였는데, 다섯째는 마음대로 물을 마실 수 있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은을 주어야만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째는 값을 주고 섶을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산에서나 들에서 섶을 가져다가 불을 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전부 원수의 수하에 들어갔기 때문에 값을 주어야만 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우리를 쫓는 자는 우리 목을 눌렀사오니 우리가 곤비하여 쉴 수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일곱째는 쫒는 자가 목을 눌러 압제를 당하게 된 것이고, 여덟째는 곤비하여 쉴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의 죄를 회개하였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애굽과 앗수르와 더불어 연합했던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애굽과 앗수르가 도와줄 줄 알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헛된 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한 것입니다.
본문 8절에 “종들이 우리를 관할함이여 그 손에서 건져낼 자가 없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아홉째는 과거에 종 살이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들을 관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북에서 8·15 해방 후에 공산당 정치가 수립되었을 때에 부자들은 숙청이 되고 부잣집에서 종 살이하던 사람들이 그 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종 살이하던 사람들이 주인이 되고 부자는 숙청을 당해 주인과 종이 바뀌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이 그때와 비슷한 형편입니다.
폐망한 유다의 슬픈 정형이 아홉 가지입니다. 첫째가 기업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고, 둘째는 집이 외인에게로 돌아갔고, 셋째는 아비가 없는 자식과 같이 되었고, 넷째는 나라와 민족이 과부와 같이 되었고, 다섯째는 은을 주고 물을 마시고, 여섯째는 값을 주고 섶을 얻고, 일곱째는 쫓아오는 자가 목을 눌렀고, 여덟째는 곤비하여 쉴 수가 없고, 아홉째는 종들이 우리를 관할하였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악과 열조의 범죄를 담당한 후대
본문 7절에 “우리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국가나 사회가 어른들의 지은 죄로 망하면 죄가 없는 자녀들까지 같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를 하지 않았으면 그 성 사람들의 죄 때문에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12만 명이 함께 망할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회개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보면 어른들의 죄 때문에 아이들까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이와 반대가 되는 원리인데, 의인 한 사람이나 열 사람이 도시 하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경우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망했다고 하였습니다. 또 예레미야 5장 1절에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인 한 사람을 찾으면 예루살렘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인이 몇 사람만 있어도 그 도시가 멸망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른들이 지은 죄 때문에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아이들까지 망할 수가 있고, 의인 몇 사람 때문에 그 도시 전체가 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 자기만 사는 것이 아니고 그 도시 사람과 그 나라 사람을 다 건져낼 수있습니다.
그런데 보편적으로는 자기의 죄 때문에 자기가 망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예레미야 16장 11-13절에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너희가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조상들의 죄 때문에 망한 것도 있지만 자기들의 죄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조상 죄에 자기의 죄가 더해져서 망했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어도 아들의 이가 시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죄로 벌을 받게 됩니다. 에스겔 18장 2절에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이 망하지 않는 것은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음으로 아들의 이가 시지 않다고 했는데, 보통은 자기 죄 때문에 자기가 망하는 것입니다. 조상들의 죄 때문에 자기가 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보편적으로는 자기의 죄 때문에 자기가 망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예레미야 16장 11-13절에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너희가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조상들의 죄 때문에 망한 것도 있지만 자기들의 죄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조상 죄에 자기의 죄가 더해져서 망했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어도 아들의 이가 시지 않기 때문에 자기의 죄로 벌을 받게 됩니다. 에스겔 18장 2절에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이 망하지 않는 것은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음으로 아들의 이가 시지 않다고 했는데, 보통은 자기 죄 때문에 자기가 망하는 것입니다. 조상들의 죄 때문에 자기가 망한 것이 아닙니다.
2. 적의 수중에 빠진 비참한 상태와 그에 대한 호소
본문 9절에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광야에 칼이 난무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 당시에는 치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불량한 도적들과 유목민들과 강도들이 사람들을 많이 죽이며 물질을 빼앗아 갔습니다. 따라서 생명을 내놓고 나가야만 겨우 농사도 짓고 양도 칠 수 있었습니다.
본문 10절에 “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주려서 피부가 검은 아궁이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새도 말세가 되어 칼이 난무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방에 테러가 일어나고 강도들이 들끓는데 미국 같은 경우는 총기가 허용되어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밤에 걸어 다니다가 누가 언제와서 죽일지 모르기 때문에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 다니지도 못합니다. 차를 타고 나가는 것은 괜찮지만 걸어 다니다가 깡패들을 만나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광야에 칼이 난무하는 때가 이렇게 비참한 시대인 것입니다. 그래도 한국이 미국보다 특별히 좋은 것 하나
는 밤에 나가서 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밤에 아무 곳이나 다녀도 누가 와서 죽이지 않습니다. 미국 같으면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와야지, 밤에 혼자 다니다가는 봉변을 당합니다. 또 밤에 다니려면 언제나 20불을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권총을 들이대면 얼굴은 보지 말고 얼른 20불을 주고 달아나야 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만큼 사나워진 말세가 되었습니다. 한국도 요즘 깡패들이 점점 많아져서 사고를 내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사장을 찔러 죽인 사건이 어
제 신문에 나왔는데, 이 모든 것이 죄 값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요새도 말세가 되어 칼이 난무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방에 테러가 일어나고 강도들이 들끓는데 미국 같은 경우는 총기가 허용되어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밤에 걸어 다니다가 누가 언제와서 죽일지 모르기 때문에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 다니지도 못합니다. 차를 타고 나가는 것은 괜찮지만 걸어 다니다가 깡패들을 만나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광야에 칼이 난무하는 때가 이렇게 비참한 시대인 것입니다. 그래도 한국이 미국보다 특별히 좋은 것 하나
는 밤에 나가서 다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밤에 아무 곳이나 다녀도 누가 와서 죽이지 않습니다. 미국 같으면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와야지, 밤에 혼자 다니다가는 봉변을 당합니다. 또 밤에 다니려면 언제나 20불을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권총을 들이대면 얼굴은 보지 말고 얼른 20불을 주고 달아나야 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만큼 사나워진 말세가 되었습니다. 한국도 요즘 깡패들이 점점 많아져서 사고를 내고 있습니다. 호텔에서 사장을 찔러 죽인 사건이 어
제 신문에 나왔는데, 이 모든 것이 죄 값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본문 11절에 “대적이 시온에서 부녀들을, 유다 각 성에서 처녀들을 욕보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녀들과 처녀들을 끌어다가 욕을 보인 것입니다. 전쟁 때에는 군인들이 여자들을 끌어다가 강간을 하고 욕을 보이는 비참한 일이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나라가 망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방백들의 손이 매어달리며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방백들을 죽여서 손을 나무에 매달아놓은 것입니다. 또 장로들은 나라의 지도자들인데, 지도자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패전(敗戰)을 하였기 때문에 원수의 수하에 들어가서 존경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본문 13절에 “소년들이 맷돌을 지오며 아이들이 섶을 지다가 엎드러지오며”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들까지 나와서 강제 노동을 해야 할 지경이 되어 소년들은 맷돌을 지고 아이들은 섶을 지다가 엎드러졌습니다.
본문 14절에 “노인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소년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노인은 성문에 앉아서 평안하게 지내야 하는데 자손들이 망하니까 성문에 앉아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또 소년들 역시 강제 노동에 끌려가서 돌을 지어 나르고 섶을 지어 나르느라 노래할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노래하는 때가 좋을 때인데,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바로 하지 못하면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또 소년들 역시 강제 노동에 끌려가서 돌을 지어 나르고 섶을 지어 나르느라 노래할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노래하는 때가 좋을 때인데,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바로 하지 못하면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본문 15절에 “우리 마음에 희락이 그쳤고 우리의 무도가 변하여 애통이 되었사오며”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희락이 그친 것은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망했는데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아이들을 잡아 죽이고 여자들은 끌려가서 욕을 당하며 얼굴은 굶어서 아궁이처럼 검어졌기 때문에 마음의 기쁨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무도(舞蹈)’라는 것은 춤을 추는 것인데, 과거에는 춤을 추며 기뻐 뛰놀았었는데 이제는 애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 값입니다.
본문 16절에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광스럽던 예루살렘이 망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훼파되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세계 열방에 뛰어난 백성이었지만 이렇게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면류관이 땅에 떨어진 것과 같이 영광이 하나도 없게 된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이러므로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우며”라고 하였는데, 마음이 피곤해지고 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특별히 예레미야의 마음이 피곤한 것 같습니다. 또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겠습니까? 예레미야애가 3장 48-49절에 “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라고 하였습니다.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여 심령이 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통 의사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걱정을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밤낮으로 고통을 당하고 눈물을 흘린 예레미야의 혈압이 올라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염려나 근심은 하지 말고 평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예레미야는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없었고, 또 밤낮으로 애통하며 안타까워했기 때문에 오래 살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레미야가 40년 혹은 60년간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안타까워하고 애를 쓰면서 40년 이상을 예언한 후에 순교를 당하였는데, 주를 위해서 고생 하고 힘을 쓰며 고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봐주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 근심, 세상 애통은 혈압을 올라가게 합니다. 세상의 고통과 번민은 밤낮으로 평안치 않게 해서 사람의 애 간장을 태웁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을 위해 힘을 쓴 선지자는 결국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주십니다. 예레미야 2장 11절에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라고 하였는데, 간이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붙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세상 일 때문에 간이 쏟아졌으면 죽었을 텐데, 주를 위해서 간이 쏟아진 자는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셔서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걱정은 하지 말고, 걱정을 하려면 주를 위한 걱정을 해야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도 세상 걱정과 주를 위해서 하는 걱정이 있는데 주를 위해서만 걱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걱정을 하면 점점 쇠잔해지지만 주를 위하는 걱정은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고 도리어 건강케 해주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시온 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 산을 가리키는데, 그곳이 여우가 놀만큼 황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애달픈 일입니까? 이렇게 비참한 상태를 보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3. 회개와 광복을 위한 기도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께 호소하며 소망을 가짐
본문 19-20절에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절망 상태에 빠져서 애통하지만 믿음으로 나갈 때에는 오히려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라고 하였습니다. 땅만 보지 말고 영원히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
고, 세세토록 있는 보좌를 바라보며, 우리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시는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원한 보좌, 하나님의 백성을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이스라엘의 폐망은 잠깐이면 지나가지만 하나님께서 영원하신 약속으로 반드시 지키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와 영원한 약속이 있으시고, 또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의 나라를 영원히 세워나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는 반드시 세워져 나간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사가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와서 전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영원한 복음이라는 것은 복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고, 또 우리에게 영생을 주며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기 때문에 영원한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영원한 보좌,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 계획을 바라볼 때에 오히려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갖으며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장 6절에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하였는데, 성도를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므로 사랑을 줄 대상자가 필요하여 택한 백성을 예정하시고 영원한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지예정이 아니고 예정예지입니다. 예정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예지입니다. 사랑을 주시려고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세에 있는 보좌, 우리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실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낙심하지 아니하며 티끌 가운데서도 새롭게 일어나 새 생명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돌이켜 주시면 될 것을 믿고 주께로 돌아가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옛날의 신앙, 옛적의 하나님 나라를 회복해달라는 소망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가끔 옛날에 잘 살던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 비참한 상태에 빠져서 종이 되고, 자녀들도 다 죽었지만 그것도 잠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22절에 “주께서 우리를 아주 버리셨사오며 우리에게 진노하심이 특심하시니이다’”라고 하였는데, 현재는 주가 우리를 버리시고 진노하심이 특심하여 비참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비참하게 되었고, 원수의 수하에 들어가 비참한 상태가 되었으나 영원하신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건져주실 것을 소망하며 믿는 것입니다. 오히려 소망이 있으므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비참한 상태는 잠깐이므로 믿음으로 살아야 함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해주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데, 하박국 2장에 보면 비참한 상태에 있을 때 질문한 것과 그 답변이 나와 있습니다. 하박국 2장 1-4절에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는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
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답변이 내려왔습니다. 예루살렘이 비참한 상태에 빠졌는데 거기에서 원상 회복만 기다리지 말고 현재의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현재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라는 것, 아무리 비참한 상태에 있어도 믿음을 쓰면 다 이겨나갈 수 있다고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4장 7-8절에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시 버렸지만 큰 긍휼과 영원한 자비로 이끌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시는 것은 잠시일 뿐이고 영원히 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잠시 동안에도 큰 긍휼과 영원한 자비로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 값으로 망하게 하셨지만 그래도 잠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영원한 자비로 붙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말세 잠깐 동안의 환난을 믿음으로 통과해야 함
그리고 이러한 비참한 상태가 언제까지인지 그 기한을 물어보면 다니엘 8장 13-14절에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이천삼백 주야까지라는 것입니다.
또 에스겔 39장 11-12절에 “그날에 내가 곡을 위하여 이스라엘 땅 곧 바다 동편 사람의 통행하는 골짜기를 매장지로 주리니 통행하던 것이 막힐 것이라 사람이 거기서 곡과 그 모든 무리를 장사하고 그 이름을 하몬곡의 골짜기라 일컬으리라 이스라엘 족속이 일곱 달 동안에 그들을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일곱 달 동안입니다. 또 에스겔 39장 9절에 “이스라엘 성읍들에 거한 자가 나가서 그 병기를 불 피워 사르되 큰 방패와 작은 방패와 활과 살과
몽둥이와 창을 취하여 칠 년 동안 불 피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천삼백 주야와 일곱 달, 또 칠 년이라고 하였는데, 이 숫자는 각각 말세 환난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몽둥이와 창을 취하여 칠 년 동안 불 피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천삼백 주야와 일곱 달, 또 칠 년이라고 하였는데, 이 숫자는 각각 말세 환난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말세 환난의 기간은 이천 오백 이십 일인데, 이것은 1260일을 두 번 더한 날수입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도 1260일, 13장에도 1260일이라고 나왔는데 이것은 전반기 환난 1260일, 후반기 환난 1260일을 말하고, 이 둘을 합쳐서 2520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520일에서 2300주야를 떼면 220일이 남는데 220일의 십 배를 하면 6년 하고 조금 남으니까 년수로 계산하면 7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7년은 무기를 불사르고 지상을 정결케 하는 해입니다. 2300주야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세상이 끝나는 해입니다. 그리고 나서 7년이 남는데 이 시기가 무기를 불사르는 해로, 지상을 정결케 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성도가 들려 올라갔다가 다시 지상 재림을 한 후에 천년 왕국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심판하신 후 멸망시키시는 해인데, 이 기간이 2300주야입니다. 적 그리스도와 원수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여 학살을 하지만 계속 그렇게 핍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기한이 2300주야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은 아마겟돈 전쟁까지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합니다. 그리고 그후에 지상을 정결케 하는 시간이 7년 걸립니다. 우리 성도들은 고난을 통과한 다음 공중에 올라가서 예수님과 함께 지상에 재림하여 천
년 왕국을 건설합니다.
년 왕국을 건설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는 잠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영원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성도를 구원해주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축복이 다시 온다는 것입니다. 원상 회복이 됩니다. 예루살렘 회복이 되는데, 예루살렘의 회복은 유다 나라의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적 그리스도는 심판을 받아 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승리하여 천년 왕국을 통과한 후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해답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어떠한 환난과 징계가 오더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참하게 되었다고 해도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4장 7-8절에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고 앞으로의 환난을 믿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사나이다’ 라고 하였는데, 의인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현재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장차 베풀어주실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갈 것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믿음으로 통과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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