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0일 화요일

에스겔 1:1-14 네 생물의 형상과 성도가 나가야 할 방향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네 생물의 형상과 성도가 나가야 할 방향
에스겔 1:1-14

1제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2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지 오 년 그 달 오 일이라 3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4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5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6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7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같이 빛나며 8그 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9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0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11그 얼굴은 이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12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3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14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르더라

1. 에스겔이 계시 받은 때와 장소

본문 1-2절에 “제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오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삼십년은 바벨론 왕국이 건립된 때로부터 30년을 가리킵니다. 바벨론 왕국은 느부갓네살의 아버지, 나보폴라살 왕이 세웠는데, 본문의 때는 바벨론 왕국 건국 시로부터 30년 4월 5일을 가리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포로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의 다른 선지자로는 예레미야와 다니엘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나라의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에스겔과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에게도 말씀을 전하게 하셨고,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도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발 강’은 바벨론의 강인데, 그 강가에서 에스겔이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이상인 계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여호야긴 왕의 사로잡힌지 오 년 그 달 오 일이라’고 하였는데,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지 5년이 된 때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2차 포로 때에 잡혀갔습니다.

2. 네 생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옴

본문 3-4절에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갈대아 땅’은 바벨론 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동시에 그 말씀을 가지고 일할 권능도 에스겔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시는 동시에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할 권능도 주십니다. 말씀과 권능을 동시에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참으로 받으면, 그 말씀대로 행할 만한 권능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받으면 권능이 없지만, 말씀을 자기 생명으로 받고,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면 권능이 말씀과 함께 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받고, 말씀 앞에 거꾸러지고, 말씀대로 회개하면서 만들어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권능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는 것이 권능을 받는 것이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구속의 도리에 대한 모든 것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를 구속해주신 모든 것, 하나님께서 다 은혜로 주셨습니다. 구속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시고, 구속을 위해 피 흘려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이 해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은혜로 거저 주셨습니다. 이렇게 거저 주신 구속에 대한 모든 내용이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받는 것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성경을 받는 것, 말씀을 받는 것이 은혜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참으로 받으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권능을 말씀 속에 같이 베푸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참으로 받으면 권능이 그 사람에게 임합니다.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권능, 말씀대로 바로 설 수 있는 권능,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는 권능이 말씀을 참으로 받으면 임합니다. 그러므로 말씀 받는 것은 권능 받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받는 것은 권능이 안 되지만, 자기 생명으로 말씀을 받는 것, 즉 말씀대로 거꾸러지고, 회개하고, 바로 서려고 결심하면 권능이 말씀과 같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참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권능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행할 때에 권능이 오고, 행하려고 결심할 때에 권능이 오고, 그대로 바로 서려고 할 때에 권능과 능력이 옵니다. 이 능력이 진짜 능력입니다.
‘성령이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하면서 권능을 받으려고 ‘주여, 주여’라고 부르짖어서 힘을 얻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힘을 얻기는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합니다. 얼마 가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실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여, 주여’라고 부르짖어서, 권능을 받으려고 애를 써서 힘써 기도하면 조금 힘이 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없어집니다. 그러면 또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없어집니다. 예를 들면 폐병 앓은 사람에게 링거를 놓는 것과 같습니다. 링거를 맞으면 힘이 나지만 얼마 있지 않아 힘이 없어집니다. 힘이 없어지면 또 한 대 맞고, 또 힘이 없어지고, 또 맞고 또 힘이 없어지고 합니다. 늘 그러다가 맙니다. 근본적으로 병이 나아서 힘이 나야 하는데, 임시로 링거를 맞아 일시적으로 힘이 난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힘이 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근본적 병이 낫는 것입니다. 권능이 임합니다. 사도행전 1장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야 권능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능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참여하려고 해야 합니다. 떠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안 떠나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 복음의 역사가 있는 곳을 떠나지 않아야 권능이 옴

하나님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다와 온 열방에 퍼진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7절에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죄 사함을 얻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해서 세계 열방에 퍼진다고 하셨으므로,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 됩니다. 왜 안 됩니까? 예수님께서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해서 열방에 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곳, 복음의 역사가 있는 곳을 떠나면 안 됩니다. 그 당시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역사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족속에게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에 참여하려면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 됩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일하는 곳에 권능도 주시고, 필요한 것을 다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일하는 곳에 공급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전쟁하는 곳에 물자를 보내게 되어 있고, 공사판에 여러 가지 물자를 공급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일을 차려놓은 곳에 참여하면 물자가 많이 옵니다. 나무 재료, 철근, 자갈, 모래, 자동차, 여러 장비 등을 일 차려놓은 곳에 보내주고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에 가야만 모든 것이 옵니다. 다른 곳에 가서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주지 않습니다. 대기업들이 공사판을 아산만에 차려놓았는데, 인천에서 보내달라고 하면 보내주지 않습니다. 아산만에 가야 보내줍니다. 차려놓은 데 가야 보내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참여할 때에 하나님께서 권능을 보내주십니다. 권능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을 순종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의 실력이 자라납니다. 환난이 많은 곳에 하나님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예루살렘은 환난이 많은 곳, 사람을 잡아 죽이는 곳이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입니다. 많은 환난 가운데 생명을 내놓고 결사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육신의 생명보다 말씀을 더 귀하게 여기고 영적 생명으로 살면 그때 하나님께서 권능을 베푸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자에게 권능을 베푸신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본문에서도 마찬
가지입니다. 말씀을 주시고, 말씀을 가지고 일하는 곳에 권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심판이 임하는 곳에 네 생물이 나타남

본문 4절에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라고 하였습니다. ‘폭풍과 큰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킵니다. 욥기 37장 22절에 “북방에서는 금빛이 나오나니 하나님께는 두려운 위엄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43장 3-4절에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 그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라고 하였습니다. ‘폭풍과 큰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인데, ‘북방에서부터’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심판의 하나님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죄가 크기 때문에 심판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그들에게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킵니다. 신명기 33장 2절에“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 같은 율법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4장 24절에는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이라고 하였습니다.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심판의 불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하나님이시고, 심판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고 하였습니다. 네 생물이 나왔습니다. 에스겔 10장 20절에 “그것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본 바 이스라엘 하나님의 아래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들인 줄을 내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네 생물은 그룹들입니다. 그룹은 천사입니다. 네 생물은 천사의 일종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도 네 생물이 나오는데, 그것도 천사의 일종입니다. 천사의 일종인 동시에 모든 영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천사는 영이므로, 네 생물에 영의 성품이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영이시기 때문에 네 생물에 영의 성품이 나타났고, 성도의 영의 성품도 네 생물로 나타났습니다. 성품이 같습니다. 모양이 사람의 형상이라는 것은 인격을 가리킵니다. 지, 정, 의를 가지고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천사이고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천사입니다.

본문 6절에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네 개 생물의 얼굴이 각각 네 개 있습니다. 생물 하나에 얼굴이 네 개씩입니다. 날개도 네 개씩입니다. 이사야 6장에 나오는 천사는 날개가 여섯 개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천사도 날개가 여섯 개입니다. 여기는 네 개입니다.

본문 7절에 “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같이 빛나며”라고 하였습니다. ‘다리는 곧고’는 굽실거림 없이, 굴곡 없이 곧게 모든 것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천사는 구부러짐 없이 곧게 행한다는 것입니다. 발바닥은 송아지 같다고 하였는데, 송아지 발바닥은 딱딱하고 견고합니다. 성도의 발걸음도 견고하게 나가고 천사의 발걸음도 견고하게 나가는 것입니다. ‘마광(磨光)한 구리같이 빛나며’는 견고하면서 빛나는 발걸음으로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수치가 되도록 걷지 않습니다. 빛나는 걸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걸음만 걷습니다. 또 송아지 발바닥은 쪽 발로 되어 있습니다. 두 쪽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들의 발걸음은 구별된 걸음을 걷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와 의,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하늘의 운동과 땅의 운동, 영의 것과 육의 것으로 다 갈라놓았습니다. 그리고 영의 것, 의로운 길, 신본주의, 말씀 중심으로 견고하게 광채가 나는 걸음으로 걸어 나갑니다. 성도들도 이런 걸음을 걸어 나가야 합니다. 먼저 갈라놓고,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것, 인본주의, 육의 생각, 마귀 역사, 땅의 운동들은 갈라놓고 하늘의 운동을 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발걸음이 빛납니다. 믿는 사람의 거룩한
발걸음이 빛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했으니까 걸어간 발걸음이 빛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렸기 때문에 그 발걸음이 빛납니다. 빛나지 못한 발걸음으로 걸어간 것, 수치되는 발걸음을 회개하고 빛나는 발걸음을 걷도록 해야 합니다. 욕심대로 나가면 빛나는 발걸음이 되지 못합니다. 이기주의, 물질주의, 세상주의는 빛나는 발걸음이 되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가는 발걸음이 되어야 빛나는
발걸음이 됩니다.

본문 8절에 “그 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손’은 일하는 손입니다. 천사는 일하는 천사입니다. 날개로 날아다니면서 하나님의 일을 도와주는, 구원 받은 성도를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히브리서 1장 14절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고 하였습니다. 천사들은 섬기라고 보내셨습니다.

손은 하나님께서 일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세상 일도 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 일도 해야 합니다. 일하라고 손을 주셨는데 그 손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하지 않으면 건강하지 못합니다.
일을 해야 건강합니다. 일하는 자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였고,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일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해서 먹도록 만들어놓으셨는데, 일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몸이 점점 약해집니다. 일해야만 몸이 건강합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려면 귀를 잡고 120번씩 흔들어 주라고 합니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일하는 것입니다. 손가락은 120번, 목은 30번 흔들어 주라고 합니다. 이런 방법은 일하지 않아서 나온 것입니다. 나가서 일
하는 사람은 하나 흔들어 주지 않아도 건강합니다. 일하지 않아서 소화불량이 생깁니다. 또 목도 쳐주고 해야 합니다. 사람은 일해서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일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거기에 참여해야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일하는 것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힘도 주고 모든 은사를 주십니다. 노는 사람에게 주지 않으십니다.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일할 것이 없으면 길바닥이라도 쓸고, 노방 전도를 하면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손을 주셨습니다. 천사에게도 주시고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본문 9절에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연하였으며’라고 하였는데, 연합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혼자 나가는 것이 아니고 연합하고 연결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혼자 나가는 것은 안 되고, 서로 연합해서 연결해서 같이 나가는 것입니다. ‘행할 때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라고 하였는데, 돌이키지 않고 앞으로만 나가고 곧게 나가야 합니다. 천사가 이렇게 나갔습니다. 돌이키면 안 됩니다. 돌아보면 롯의 처처럼 소금 기둥이 됩니다. 갈까 말까, 한참 가다가 갈까 말까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가려고 했으면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중간에 갈까 말까 해서는 안 됩니다. 한참 가다가 내가 자격이 있을까, 없을까 합니다. 가다가 힘들면 힘들다고 해야 옳지, 지금까지도 자격 없이 왔는데 자격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격이 있어서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려고 했으면 끝까지 가야 합니다. 돌이키면 안 됩니다. 힘들다고 돌이키면 죽습니다. 이제는 힘들어도 가야 합니다.

멍에를 메다보면 자격이 만들어짐

하나님께서 멍에를 메워놓으셨기 때문에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메워주신 멍에는 벗지 못합니다. 또 모든 멍에를 메어야 자신이 삽니다. 소가 멍에를 잘 메고 나가야 삽니다. 멍에를 안 메겠다고 푸드덕거리고, 목을 내놓고, 뒷걸음 치고, 뱅뱅 돌면 도살장에 가서 죽어 잡아먹히게 됩니다. 멍에를 메워놓았는데 좀 가다가 안 되겠다고 합니다. 논 갈다가 안 갈려고 하고, 수레 끌고 가다가 안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속상해서 어떻게 부리겠습니까? 주께서 내게 주신 멍에를 끝까지 메고 나가야겠다고 결심하고 끝까지 메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힘도 주시고, 자격이 없어도 자격을 점점 만들어주십니다. 나가다 보면 자격이 만들어집니다.

처음에 시집갈 때부터 어머니 자격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 자격이 없어도 그냥 간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기르다 보면 어머니로 차차 만들어집니다. 처음에는 어머니라는 소리를 못 듣습니다. 아이가 크면서 차차 어머니로 만들어집니다. 다시 말하는데 멍에를 메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자격을 만들어주십니다. 만들고 나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집가서 어떻게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아이를 기릅니까? 이것을 다 계산해서 서른 살 가서는 어떻게 하고, 마흔 살 가서는 어떻게 하고, 쉰 살 가서는 어떻게 해보려고 하면 끔찍합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시집가지 못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할 필요 없이 시집 가라 하면 가면 되는 것입니다. 아이를 가지면 낳으면 되는 것이고, 아이를 기르다 보면 어머니로 만들어 집니다. 그 일을 행하면서 하나님께서 점점 만들어나가십니다. 돌이키면 안 됩니다. 내가 시집 안 갔어야 했는데 하며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시집 안 가겠다고 했는데 왜 시집보내서 이렇게 하셨습니까? 하면 친정에서 잘 타일러 보냅니다. 몇 달 있다가 또 시집 안 갈 것을 왔나 보다, 도로 돌아가야겠다고 합니다. 몇 년 살다 아이 낳고 기르다가 시집 안 갈 것을 왔나 보다고 합니다. 이것이 돌이키는 것입니다. 안 갈 것을 가고, 안 낳을 것을 낳으면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돌이키면 안 됩니다.

아이를 낳았어도 결혼식을 안 하고 살았으니 이제 그만 두어야겠다고 합니다. 결혼식을 안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집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 집에서 교회에 나오고 아이가 둘, 셋이 있는데 결혼식을 하겠다고 합니다. 결혼식이 아니고 회개 인정식입니다. 결혼식을 안 하고 산 것을 회개하면서 인정해주는 식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결혼식을 안 하고 살고 나서 결혼식을 하는 것은 회개 인정식입니다. 결혼식을 하지 않고 살았어도 아이 낳고 살았으니까 사는 것이지, 결혼식을 안 했다고 그만 둘 수 있습니까? 이제는 부부입니다. 돌이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돌이키지 말고 앞으로만 나가야 합니다. 전진만 있을 뿐이지, 후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거기서부터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또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거기서부터 앞으로만 나가야 합니다.
뒤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잘한 것도 잊어버리고, 못한 것도 잊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잘한 것을 생각하면 교만해지고, 못한 것을 생각하면 낙심합니다.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자기의 부족한 것을 생각하면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부족했어도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그러므로 현재부터 앞으로만 나가야 합니다. 한 발자국씩 나갑니다. 나갈 때 곧게 나가야 합니다. 비뚤지 않고,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인정에 치우치지 않고, 물질에 치우치지 않고, 곧게 하나님 앞에 똑바로 나가야 합니다. 신앙 양심을 써서 곧게 나가는 생활이 영이 가는 길입니다. 영이 가는 길, 천사가 나가는 길, 성령님께서 가시는 길, 주님께서 가시는 길입니다.

3. 네 생물의 모습

사람의 얼굴은 지혜를 가리킴

본문 10절에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네 생물의 얼굴이 네 개입니다. 네 생물의 얼굴이 똑같습니다. 앞, 오른쪽, 왼쪽, 뒤에 얼굴이 하나씩 있습니다. 앞, 뒤, 오른쪽, 왼쪽 다 보입니다. 앞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인데, 이것은 지혜를 가리킵니다. 지혜를 써서 나가야 합니다. 지혜를 쓰지 않으면 가다가 실패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써서 나가야 합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마귀에게 넘어갑니다.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 보시기에 미련하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8-20절에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미련한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미련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자기 지혜대로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믿사오니’하고 나가야지, 인간의 지혜대로 하면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대로 하면 안 됩니다. 세상 일은 인간의 지혜대로 되지만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지혜대로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혜를 다 내버리고 미련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혜가 와서 그 사람을 실패하지 않게 하시고, 능력으로 붙들어서 인도해주십니다. 인간의 지혜는 제 꾀에 자기가 빠집니다. 정치가 중에서도 자신의 꾀에 자기가 빠져서 일을 어그러지게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번은 성공하지만 그 다음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는 사람은 실패가 없습니다. 성경대로 하므로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성경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절대 실패가 없고, 실패인 것 같아도 성공입니다. 죽는 것 같지만 산 것이고, 거꾸러진 것 같지만 일어선 것입니다. 성경대로, 하나님의 인도대로 나가다가 실패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제 지혜대로 나가다 실패한 것입니다. 요시야 왕이 선한 왕이고, 하나님 일을 많이 했지만 지혜가 부족해서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몰랐습니다. 제 생각대로 나가다가 실패한 것입니다. 애굽 왕 느고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세력만 믿고 자기 나라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모르고 인간의 지혜대로 나가다가는 이렇게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실패가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하는 사람은 영이 요동치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대로 하는 사람은 다 실패합니다. 아홉 번 성공했지만 열 번째에 실패합니다. 인간의 지혜는 반드시 가다가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혜대로 하지 말고 성경대로, 또 많이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면 실패가 없습니다.

어떻게 할지 잘 모르면 기도하러 가면 됩니다. 보따리 싸서 기도하러 가서 며칠 동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감동을 시켜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기도하러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 생길 때 보따리를 싸서 기도하러 가는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인간의 계획대로 하는 사람은 가다가 실패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계획대로 하면 안 됩니다. 기도하러 가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앞에는 사람 얼굴, 오른쪽은 사자 얼굴, 왼쪽은 소 얼굴, 뒤에는 독수리 얼굴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자는 능력, 소는 희생, 독수리는 신령함을 가리킴

사자는 늠름한 것처럼 능력을 가리킵니다. 소는 희생, 충성, 봉사를 가리킵니다. 독수리는 신령한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지혜인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또 성령의 감동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 오른쪽에 능력이 있습니다. 또 왼쪽에는 희생, 봉사, 충성하는 것을 주셨습니다. 소처럼 희생하며 충성하는 것입니다. 소는 노사분쟁하지 않습니다. 몇 천리, 몇 백리를 가도 노사분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독수리 얼굴이라고 하였습니다. 독수리는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앞으로 지혜를 써서, 오른쪽에 능력으로 역사하면서, 왼쪽에 희생하고 충성하면서 신령한 세계를 향해서 나가는 것이 영적 생활입니다. 지혜를 쓰고, 능력을 쓰고, 희생 봉사하고, 신령한 영적 세계를 향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영의 성품들입니다. 우리도 지혜를 쓰고, 능력으로 나가고, 희생하고 충성으로 나가고, 신령한 인도를 받아서 나가야 합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셨으므로 능력을 써야 합니다. 또 지혜를 주셨으므로 지혜를 써야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희생, 봉사, 충성해야 합니다.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계속 멍에를 메고 충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신령한 인도를 받아서, 신령한 영적 신앙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이 걸어 나가야 할 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을 이용하고 천사를 이용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4.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이용당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함

본문 11절에 “그 얼굴은 이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날개가 ‘서로 연하였고’는 연합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고, ‘몸을 가리웠으며’라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겸손, 경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합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며 나아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신이 어느 편으로 가려면 그 생물들이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생물들이 가면서 돌이킴이 없습니다. 돌이키면 안 되고 끝까지 가야 합니다. 가다가 십자가가 있다고 돌이키면 안 되고, 내가 자격이 있나 없나 하면서 돌이키면 안 되고, 하나님께서 같이 하나 안 하나 하고 돌이키면 안 됩니다.

본문 13절에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라고 하였습니다. 천사를 불꽃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장 7절에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이신데,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성도를 통해서 일을 하실 때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광채가 나타납니다. 그 가운데에는 번개가 나며 하나님의 위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위엄이 나타납니다.

빠른 마음을 하나님께 잘 이용당해야 함

본문 14절에 “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르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지으셨을 때 번개같이 빠르게 지으셨습니까? 번개가 번쩍하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갈 정도로 빠릅니다. 빨라야만 하나님의 심부름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빠르게 역사하시는데, 느릿느릿하면 하나님께 잘 이용당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빠르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이용당하려면 그만큼 빠르게 해나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제대로 이용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도 하나님께서 이용하시려고 빠르게 만들어놓으셨고, 우리의 영에게 이용되는 마음도 빠르게 왕래하도록 만들어놓으셨습니다. 빠르게 나가야만 하나님께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일을 하려고 하시는데, 그 속도만큼 따라가지 못하면 어떻게 이용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빠르시기 때문에 천사도 빠르게 만드셨고, 우리의 영과 마음도 빠르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빠르게 일해야만 하나님의 일이 제대로 되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얼마나 빠르다고 하였습니까? 번개만큼 빠릅니까? 번개보다 더 빠릅니까? 번개보다 더 빠릅니다. 우리 마음은 달나라에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순간에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태양에도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천사만큼 빠릅니다. 빠르게 만들어놓아야만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에 제대로 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느리게 만들어놓으면 어떻게 일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빠른 마음을 하나님께 잘 이용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면 하나님께 이용당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성경말씀에 이용당해서 속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여서 하나님께 이용당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행해야 합니다.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르밧 과부에게 가라고 하실 때 즉시 갔습니다. 우물우물하면 안 됩니다. 우물우물하다가는 죽습니다. 즉시 가야 과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번개같이 빠르고, 우리 영도 번개같이 빠릅니다. 우리 마음도 하나님께 빠르게 이용당합니다. 마음이 다른 데로 갔다가도 즉시로 하나님께 와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이고 주께 이용당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떠나지 아니하며, 인도 받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번개같이 빠르더라’고 하였는데, 빨라야만 효과가 크게 납니다. 말도 빨라야만 부릴 때 효과가 납니다. 천리마를 타면 금새 천 리를 가는데, 느릿느릿 가는 말을 타면 하루에 백 리도 못 갑니다. 그래서 속상하게 됩니다. 천리마를 타야 하루에 천 리를 갑니다. 그런데 천리마가 천 리를 갈 수 있지만 매일 매일 부리면 얼마 안 가서 쓰러집니다. 하루 5~60리 가면 매일 매일 부려도 안 쓰러질 것 같습니다. 쓰러지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 쓰러진 것입니다. 누가 쓰러졌다고 하면 천리마가 매일 매일 천 리를 가다 쓰러진 줄로 알아야 합니다 하여간 우리 마음이 번개같이 빠른데, 다른 데에 못가도록 꽉 잡아놔야 합니다. 마음을 잡아서 마음을 부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이용당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번개같이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데, 집에 왔다가 시장에 갔다가 왔다 갔다 합니다. 기도하려고 엎드려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하지 못하도록 붙잡아놓고 하나님께 기울이고 하나님께 이용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용당할 때에는 빨리 이용당하고 빨리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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