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같이 존귀하던 시온이 질항아리 같이 됨
예레미야애가 4:1-22
예레미야애가 4:1-22
1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는고 2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와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3들개는 오히려 젖을 내어 새끼를 먹이나 처녀 내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같도다 4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5진수를 먹던 자가 거리에 외로움이여 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길리운 자가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 6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경각간에 무너지더니 이제 처녀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중하도다 7전에는 존귀한 자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보다 붉어 그 윤택함이 마광한 청옥 같더니 8이제는 그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 가죽이 뼈에 붙어 막대기같이 말랐으니 거리에서 알 사람이 없도다 9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이들이 찔림같이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 10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 11여호와께서 분을 발하시며 맹렬한 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피우사 그 지대를 사르셨도다 12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 열왕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3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저희가 성읍 중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도다 14저희가 거리에서 소경같이 방황함이여 그 옷이 피에 더러웠으므로 사람이 만질 수 없도다 15사람이 저희에게 외쳐 이르기를 부정하다 가라, 가라,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저희가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이 이르기를 저희가 다시는 여기 거하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6여호와께서 노하여 흩으시고 다시
권고치 아니하시리니 저희가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지 아니하였음이로다 17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치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18저희가 우리 자취를 엿보니 우리가 거리에 행할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이 다하였고 우리의 마지막이 이르렀도다 19우리를 쫓는 자가 공중의 독수리보다 빠름이여 산꼭대기에서도 쫓고 광야에도 매복하였도다 20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가 저희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저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저의 그늘
아래서 열국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21우스 땅에 거하는 처녀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려무나 잔이 네게도 이를찌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22처녀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않게 하시리로다 처녀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
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1. 존귀하던 시온이 비참하게 됨
정금이 질항아리같이 여김이 됨
본문 1-2절에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는고 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와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유다 백성은 포로로 잡혀가서 남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던 시온의 백성들을 정금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처음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귀한 백성들이었지만 지금은 질항아리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한 것과 같이 성소의 돌들이 무너지고 거리에 쏟아져 굴러다닌다는 것입니다.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같이 여김이 되었는고’라고 하였는데,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가 빛을 잃어버리고 캄캄하며 천한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들개는 오히려 젖을 내어 새끼를 먹이나 처녀 내 백성은 잔인하여 광야의 타조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들개만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처녀 내 백성’이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 백성이고, 장차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잔인해졌고 광야의 타조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타조는 무정한 동물이어서 사막에서 알을 낳고 자기 알이 아닌 것처럼 버리고 달아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뜨거운
사막의 날씨에 타조 알이 부화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조는 알을 낳아놓고 자기의 알이 아닌 것처럼 내버리고 달아나는 잔인한 동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타조와 같이 잔인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평안하고 좋을 때는 다 괜찮지만 곤고해질 때는 잔인해지는 것입니다.
아름다워 광채가 났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알아보는 사람이 없게 됨
본문 4절에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른들의 죄 때문에 젖을 먹는 어린아이들까지도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5절에 “진수를 먹던 자가 거리에 외로움이여 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길리운 자가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진수성찬으로 좋은 음식을 먹던 자가 거리에 외로이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붉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자랐는데 이제는 거름더미를 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거름더미를 안았다는 것은 거름더미와 같이 산다는 것이고 거름더미 안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본문 6-8절에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경각간에 무너지더니 이제 처녀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중하도다 전에는 존귀한 자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보다 붉어 그 윤택함이 마광한 청옥 같더니 이제는 그 얼굴이 숯보다 검고 그 가죽이 뼈에 붙어 막대기같이 말랐으니 거리에서 알 사람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소돔이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경각간에 망하였는데, 내 백성의 죄는 이보다 더 중하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던 백성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성전에 가보면 제사장과 선지자들, 바리새교인들과 서기관들이 관을 쓰고 예복을 입고 다녔습니다. 또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도 하나님 앞에서 찬송과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들을 정금같이 귀하게 여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며 말씀을 순종할 때에 얼마나 귀하고 존귀했습니까? 윤택하고 희며 깨끗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니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은혜 가운데서 살때는 성도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산호보다 붉고 윤택함은 마광한 청옥과 같이 아름다워 광채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범죄하니까 숯보다 검어지고 가죽에 뼈가 말라붙어서 막대기같이 되어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기근이 너무 심해서 자기의 자녀들을 삶아 먹는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대적이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올 것은 열국의 왕도 생각지 못하고 예루살렘 백성, 유다의 백성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갑자기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입
술로는 존경하지만 마음은 멀리 떠났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마음으로 떠나면 이렇게 됩니다. 믿음을 잘 지킬 때는 얼마나 존귀하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금보다 귀하고 산호보다 붉고 눈 같이 깨끗하고 마광한 청옥같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마음으로 떠나서 말씀을 불순종하고 우상을 섬기고 안식일을 범하고 하나님 앞에 믿음을 지키지 못하니까 아주 비참한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토지의 소산이 끊어지므로 쇠약해짐
본문 9절에 “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나음은 토지 소산이 끊어지므로 이들이 찔림같이 점점 쇠약하여 감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칼에 죽은 자가 주려 죽은 자보다 낫다는 것은 토지의 소산이 끊어져 먹을 것이 없는 것보다 칼에 죽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까지 가게 되니 백성들이 광야의 타조같이 잔인해 습니다.
본문 10절에 “처녀 내 백성의 멸망할 때에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식물을 삼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잔인해졌는지 자기 아이를 잡아먹었다는 것입니다. 부녀가 자기 자녀를 삶아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합니까? 보통의 부모는 자기 자녀에게 자비하고 사랑이 있는데 죽을 고비에 빠지니까 아이를 삶아 먹는 부모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징벌이 임할 때에는 잔인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 보통은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면 이렇게 잔인해집니다.
그러므로 죄가 무서운 줄 알아야 됩니다. 유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마음으로 떠나서 말씀을 불순종하며 우상을 섬기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부패하였는데도 그것을 좋게 여기다가 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면 예루살렘도 망하고 유다백성도 포로로 잡혀가고 성전 기명들까지도 전부 바벨론으로 빼앗기게 됩니다.
범죄의 결과 하나님께서 시온에 불을 피워 지대를 사르심
본문 11절에 “여호와께서 분을 발하시며 맹렬한 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피우사 그 지대를 사르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죄만 짓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분을 발하셔서 맹렬한 노를 쏟으시고 시온에 불을 피워 사르셨다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시온인데, 예루살렘 지대를 다 불사르셨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본문 12절에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 열왕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들은 대적이 쳐들어오지 못할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권세를 주셔서 유다 나라가 세계의 강국이 되어 세계를 호령할 만한 나라, 세계가 부러워하고 흠모하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적과 원수들이 쳐들어올 줄은 전혀 몰랐고 천하 만민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견고한 예루살렘,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도 하나님께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셔서 멸망시키십니다. 솔로몬 왕 시대의 이스라엘도 세계에서 제일 부유하고 강한 나라였지만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셔서 상상치 못할 패망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죄는 이렇게 스스로 패망을 초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망하게 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견고하게 예루살렘 성을 잘 쌓아놓고 부유하며 강하다고 해도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셔서 멸망시키십니다. 상상치 못했던 멸망이 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하고 죄를 멀리 떠나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바칠 바를 다 바쳐야 합니다. 몸과 마음, 그리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바치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 섬기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며 주를 위해 희생하는 때가 제일 복 있는 때이며 잘되는 때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시온이 멸망한 죄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죄악
본문 13절에 “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저희가 성읍 중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잘못 나갔기 때문에 의인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예레미야 23장 30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고 하였는데,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 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3장 3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거짓 선지자들이 나와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여 성경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 있는 말로 사람을 미혹시켜서 잘못된 길로 걸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거짓 선지자들이 나와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여 성경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 있는 말로 사람을 미혹시켜서 잘못된 길로 걸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요새 복음주의라는 것이 있는데, 아세아 연합 신학 같은 것이 복음주의입니다. 복음주의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고백만 하면 다 같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주의입니다. 그래서 내가 “성경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도 해석을 잘못하면 각종 이단이 여기서부터 나올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해방 신학도 ‘예수님께서는 눌린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러 오셨다’고 주장하며 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영적으로 눌린 자를 해방시켜 주러 오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해방 신학자들은 ‘사회적, 제도적으로 억압 받는 사람을 해방시켜 주는 것이 성경적이다’라고 말하면서 성경을 잘못 해석합니다. 우리는 영적 구원이고, 해방 신학자들은 사회 구원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방 신학을 하면서 각종 악을 다 저지르고 나갑니다.
또 신 신학자들은 ‘틀림없이 부활을 믿는다. 재림을 믿는다’고 하면서 몸의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정신적 재림을 믿고, 헌법을 고쳐서 정치를 바로 해야만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몸의 부활을 믿고, 또 그렇게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꿈을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성경에 나온 말씀으로 말합니다. 욥기서에서 하나님께서 꿈으로 가르쳐주셨다는 말씀을 주장하면서 꿈에서 지시하신 것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삼각산에서 만난 어떤 분이 몇 십 년 전에 순복음 교회 사경회를 갔는데 정신 이상이 있는 한 여자 분이 와서 기도를 해달라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기도를 해줬지만 병이 낫지 않아 그 분과 정신 이상이 있는 여자와 그의 어머니가 함께 산에 기도를 하러 올라갔답니다. 그리고 올라가다가 날이 어두워져서 목적지까지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는데, 정신 이상이 있는 여자 분과 어머니는 산 중간 쯤에 있는 굴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아침에 올라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여자의 어머니와 이 남자가 좋은 꿈을 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꿈에 하나님께서 그 여자와 같이 살라고 하셨다고 하고, 그 여자의 어머니도 그 남자 분이 자기 딸과 함께 살라고 하는 꿈을 꿨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셨으니까 살아야 될 것 아니냐고 하면서 그날 그 굴에서 장가를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마귀에게 속았다고 하였더니 욥기서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꿈에 이치를 가르쳐 준다는 말씀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나보고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며 오히려 나에게 마귀에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마귀 들었다고 하다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다시 만났는데 신설동에 있는 무슨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1년도 못한 것 같은데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증명서를 가지고 와서는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여호와의 증인들도 성경을 가지고 나오지만 성경 해석을 잘못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산 개가 낫지, 사자가 죽으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하면서 죽으면 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의인은 땅에 거한다는 말씀을 가지고 땅에서 영원히 산다고 주장하는데, 성경의 해석을 전부 잘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을 잘못하면서 나가기 때문에 각종 이단과 신비주의와 신 신학과 꿈을 믿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했다고 하면서 잘못된 해석을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죄악
그리고 참 선지자를 향해 잘못되었다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8장 18절에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아무 말에도 주의치 말자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합심해서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있고 지혜로운 자에게는 모략이 있으며 선지자에게는 말씀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이 세 가지로 예레미야를 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 선지자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정죄하고 거짓 선지자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따릅니다. 그리고 참 선지자를 핍박하고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거짓 선지자, 곧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리어 바로 가르치는 사람을 정죄하고 물리치며 마지막에는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요새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 가르치는 선지자를 따라가다가 멸망합니다. 참 선지자를 몰아쳐서 죽이고 바로 믿는 사람을 정죄하고 거짓선지자를 따라가면 결과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추도 예배를 합니다. 제사상에 십자가만 붙여놓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것이니 절은 해도 좋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오히려 성도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하나님의 안식일은 내버리니까 망하게 되었습니다. 잘못 인도하는 사람과 또 그것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을 높이지 않고 장로들을 대접하지 않은 죄악
본문 16절에 “여호와께서 노하여 흩으시고 다시 권고치 아니하시리니 저희가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른 지도자, 성경을 바로 가르쳐주는 사람을 따라가지 않고 대접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가르쳐주고 인도해주는 인도자를 높이지 않고 따라가지 않으니까 결국은 가다가 쓰러질 것이 분명합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을 잘 순종하고 공경하면 땅에서도 잘되고 장수하게 되는데,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22장 6-7절에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장수하리라’는 것은 땅에서 잘된다는 것입니다. 어미 새와 새끼를 한꺼번에 잡아먹으면 마지막에는 다 없어지는데 땅에서 무엇이 잘되겠습니까? 잡아먹어도 새끼는 놓아두고 어미를 잡아먹어야 계속해서 잡아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말을 잘 들으면 가다가 실패하지 않고 잘되지만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제 마음대로 나가면 반드시 꺼꾸러집니다. 젊은 사람들은 단순하게 한 가지만 알고 경험이 없지만 부모님들은 수십 년 동안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파란곡절(波瀾曲折)도 겪고 흥망성쇠(興亡盛衰)도 보면서 많은 것을 체험하신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척 보면 알고 어떻게 하면 망하겠다는 것도 압니다. 요새 감옥에 들어가고 실패하며 넘어지는 말썽꾸러기들은 대
부분 부모님 말씀을 안 들어서 그렇습니다. 부모님께서 그런 길을 가지 말라고 분명히 말하셨을 텐데 부모님 말씀을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결국은 함정에 빠지고 감옥에 들어가 큰 해를 보는 것입니다. 또 앞길이 막혀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국초국말(國初國末)을 지내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의 부모님들은 나라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를 지내보신 분들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8·15 해방이 되었는데 그때 부모님께서 나라가 이제 막 시작이니까 나가 다니는 것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라가 시작될 때는 정말 복잡하고 정당도 많은데 멋도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북에서는 기독교 자유당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고 청
우당, 조선 민주당 등 여러 가지로 나가 돌아가다가 감옥에 들어간 사람도 많습니다. 이남에서도 8·15 해방 후 나라가 시작될 때 여러 가지로 어지러움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부모님은 오래 지내봐서 어떻게 하면 안 되는 것을 잘 압니다. 그때 부모님 말을 듣고 조심한 사람은 앞길이 열렸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제 멋대로 나가다가 감옥에 들어가 잡혀 죽었습니다. 장수한다는 말은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면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교만하여 바른 인도자를 순종하지 않은 죄악
또 바로 인도하는 인도자를 존경하며 순종하고 잘 받들면 큰 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많은 은혜를 주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시는데, 교만한 사람들은 지도자를 무시합니다. ‘장로면 장로지, 무엇이냐? 제사장이면 제사장이지, 무엇이냐? 목사면 목사지, 무엇이냐? 우리대로 한다. 목사가 틀렸다’고 하면서 제 마음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결국에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인도하는 사람이 바로 인도하는지 바로 인도하지 못하는지를 첫째로 알고, 인본주인지, 말씀대로 인도하는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인도하는 인도자의 말을 잘 순종하고 그 인도자를 존경하며 따라 가야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바른 인도자를 무시하고 대접도 하지 않으며, 잘못 인도하는 사람을 따라갔습니다. 잘못 인도하는 자들이 당장에 백성들에게 아부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니까 잘못된 인도자를 따라 간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지도자를 따라가지 않고 잘못된 지도자를 따라가다가 예루살렘이 망한 것처럼, 어느 시대나 바른 지도자를 따라가지 않고 잘못된 지도자를 따라가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잘못된 지도자들은 달콤하게 아부하고 잘된다고만 하며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잘못된 길로 인도해서 어두워지는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14절에 “저희가 거리에서 소경같이 방황함이여 그 옷이 피에 더러웠으므로 사람이 만질 수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거리에서 소경같이 방황한다는 것은 갈 길을 모르고 갈팡질팡하며 좌충우돌하는 것입니다. 갈팡질팡하면서 이리로 가야 될지, 저리로 가야 될지를 모르고 흑암에 싸여 소경같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니까 소경같이 되었고 바른 선지자를 무시하고 따라가지 않아서 소경같이 된 것입니다. 좌충우돌하다가 결국은 옷에 피가 묻어나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바른 지도자가 많이 나오고 성경을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살 길이 생깁니다.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 사람들, 바른 신앙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많이 나와야 되겠습니다.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바른 지도자가 많이 나오고 성경을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살 길이 생깁니다.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 사람들, 바른 신앙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많이 나와야 되겠습니다.
3. 헛된 도움의 소망
본문 17절에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치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나라를 바라봤던 것들은 다 헛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가야 하는데, 세상 나라에서 도와주기를 바라봤다는 것입니다. 애굽이 도와주기를 바라보고 앗수르가 도와주기를 바라보지만, 결국은 하나님만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도와주는 것은 다 헛된 것인 줄 알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본문 18-19절에 “저희가 우리 자취를 엿보니 우리가 거리에 행할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이 다하였고 우리의 마지막이 이르렀도다 우리를 쫓는 자가 공중의 독수리보다 빠름이여 산꼭대기에서도 쫓고 광야에도 매복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수가 쳐들어올 때에는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도 쫓고 공중의 독수리같이 날아도 광야에서 매복했다가 빨리 쫒아오니까 살 길이 하나도 없어서 끝이 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본문 20절에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가 저희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저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저의 그늘 아래서 열국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콧김과 같이, 호흡과 같이 중하게 여기던 왕도 포로로 잡혀갔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히스기야 왕을 호흡과 같이 중요하게 여기고 왕의 그늘 아래서 살려고 하였는데, 왕이 포로로 잡혀가서 산통(算筒)이 깨진 것입니다. 요새가 함락되고 호흡과 같이 중요하게 여긴 왕도 포로로 잡혀가서 절망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4. 에돔은 평안하고 기뻐하나 잠시 후에 환난이 옴
본문 21절에 “우스 땅에 거하는 처녀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려무나 잔이 네게도 이를찌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있지만 그럴 날이 며칠이나 가겠느냐는 것입니다. 잔이 이르러 취하고 벌거벗을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유다사람이 먼저 이 잔을 마시고 고난 받는 것을 보고 지금은 즐거워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이러한 수치가 네게도 온다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 후면 고난의 잔, 패망의 잔이 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처녀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않게 하시리로다 처녀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환난은 끝이 나게 되었고, 에돔은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환난을 받으나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환난을 걷어 가십니다. 그리고 다시 축복과 복으로 내려 주시게 됩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원수들은 지금은 평안하지만 조금 있으면 하나님께서 환난의 잔을 그 사람들에게 내리시고 심판으로 멸망시키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징계를 받으나 다시 구원을 받습니다. 다시 하나님께서 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자들은 지금은 평안하고 기뻐하나 아주 멸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조금 있으면 아주 멸망하여 다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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