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마태복음 27:25-46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과 가상칠언 (架上七言)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과 가상칠언 (架上七言)
마태복음 27:25-46

25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27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그의 옷을 벗기고 홍
포를 입히며 29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33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35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거기 앉아 지키더라 37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42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43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45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더니 46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많은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일곱 마디 말씀한 것이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

본문 26절에,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채찍질 했다고 했는데 우리 주님께서 아무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 죄를 인해서 우리가 맞을 채찍을 예수님이 대신 맞으셨습니다. 이 주간에 오늘부터 고난주간인데 이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고 십자가의 고난에 참여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27-29절에,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하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홍포를 입혔다는 것은 죄수의 옷을 입혔다는 것입니다. 가시면류관을 엮어서 예수님 머리에 씌웠습니다. 그 가시면류관이 예수님 머리를 찔러서 가시가 찌른 자리에서 피가 나왔는데, 우리를 위해서 그 가시면류관을 썼습니다. 우리가 머리로 지은 죄를 인해서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로 엮은 면류관을 쓰시고 머리를 찔러서 머리에서 피가 나오는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본문 30절에,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고 했는데, 예수님에게 침 뱉고 얼굴에 침을 뱉었습니다. 얼마나 멸시와 수모를 당했습니까? 우리를 위해 다 당하셨습니다. 또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쳤다고 했습니다. 머리에 또 매를 맞으셨습니다. 

본문 31절에,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 32절에,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는데 너무 연약해서 나가다 쓰러지고, 쓰러지고 하니, 군병들이 그리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대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여, 예수님 못 박힐 십자가를 구레네 시몬이 대신 지고 나갔습니다. 

본문 33-35절에,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라고 했습니다. 쓸개 탄 포도주는 마취제입니다. 사형당하는 사람들에게 마취제를 좀 먹여서 고난을 좀 느끼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한 모양인데 예수님은 마취제 안 하셨습니다. 고난을 다 당해야 되겠는데 마취제를 마시고 고난을 다 당하지 못하면 우리 죄를 다 대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똑똑한 정신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시려고 쓸개 탄 포도주를 받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았습니다. 양쪽 손에다 못을 박고 또 발에다 못을 박고 이렇게 손과 발에 못을 박고 매달아 놓았습니다. 거기서 피가 흘러서, 손과 발에서 피가 흘러서, 뚝뚝 피가 다 떨어져, 온몸에 있던 피가, 심장에 있던 피가, 다 흐르게 되었습니다.

본문 36-42절에,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며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고 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다 지고 통과해야만 우리 죄를 다 대속하기 때문에 내려오시지 않습니다.

본문 43-44절에,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 서기관들은 모두 예수님을 이렇게 욕하는데,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한 사람은 회개했습니다. 누가복음 23:40-43에 보면,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되어있습니다. 한사람은 회개했습니다.

2.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본문 45-46절에, “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했다고 했습니다. 
육시는 유대시간에 여섯 시간을 더해야 우리 시간이 됩니다. 그러면 제 6시는 12시, 제 9시는 오후 3시가 됩니다. 열 두 시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이 어두워졌습니다. 창조주 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태양이 빛을 낼 수가 없어서 태양 빛이 다 어두워지고 온 땅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리고, 제 구 시 즈음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22편 1절에 있는 말씀인데, 시편 22편을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면서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시편 22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이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황소들이 모여서 이렇게 찌르고 또 옷을 제비 뽑고 그 밑에서 예수님이 고난을 당한 것이 기록이 됐는데, 그러다가 이 고난을 인해서 온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고 또 온 세계가 다 구원 받는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시편 21장이 다 이루어질 것을 믿고 이스라엘이 구원받고 온 세계가 구원받는 대 승리를 예수님이 믿음으로 내다보시고,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원망과 불평의 부르짖음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감사합니까? 시편 22장 마지막 절에 승리가 있으니까 십자가를 승리케 해주는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는 버릴 수 없는 독생자까지 버리시면서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버릴 수 없는 독생자까지 버리시면서 이렇게 택한 백성을 건져 주십니까’ 감사하는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버릴 수 없는 아들을 버리시면서 까지 이렇게 택한 백성을 구원해 주십니까?” 라는 이런 승리의 찬송과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아파서 부르짖으며 마지못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렇게 마지못해서 바치는 것을 받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감사하지 않고 울고 부르짖으면서 가져오는 것도 안 받으십니다. 기쁨이 없이 부르짖으면서 울면서 갖다 바치는 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감사함으로 갖다 바치는 거 받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은 감사함으로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버렸지만 십자가에서 독생자 예수님은 도로 갖다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두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된 것을 보고 끊어버렸습니다.
끊어버리는 동시에 예수님은 의를 완성해서 도로 연결시켰습니다. 끊어버리면서 연결, 아버지는 끊어버리면서 아들은 연결시켜 놓았다는 말씀입니다. 의는 죽지 않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은 의의 완성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면서 의를 완성시켜서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구속을 감사함으로 완성하게 됐습니다.

3. 가상칠언 (架上七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가상칠언이 있는데, 첫째는 용서, 둘째는 낙원, 셋째는 어머니 부탁, 넷째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다섯째는 목마르다, 여섯째는 다 이루었다, 일곱째는 영혼 부탁한 것, 일곱 마디입니다. 이 일곱 마디를 한 글자씩 따서 외우면 쉽습니다. 용, 낙, 모, 기, 갈, 성, 탁(容, 樂, 母, 棄, 渴, 成, 託). 용서해 달라는 것은 용. 낙원에 있으리라, 낙. 모, 어머니 부탁. 기, 어찌하여 버리셨나이까. 갈, 목마르다. 성, 다 이루었다. 영혼 부탁한 것, 탁. 일곱 마디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첫째, 용서에 대해서는 누가복음 23:34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을 새” 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들을 사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저희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망하는 일을 하는 것을 보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아먹었는데 그때도 예수께서 차라리 나지 않았더면 저에게 좋을 뻔 했다고 했습니다. 못 박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니까 그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용서해달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둘째는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3:4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우편 강도가 회개하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못 박히시면서 낙원에 갈 것을 바라보고 나가십니다. 또 회개하는 강도에게도 “너도 나와 같이 낙원에 있을 것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낙원으로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입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셋째,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9:26-27에,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섯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했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이 효성이 지극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갖은 고통을 다 당하면서 못 박혔는데 죽어가면서 어떻게 어머니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고난 중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한 효도를 다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으면서도 이렇게 효도했는데 어머니를 돌봤는데 우리도 부모를 잘 돌보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엘리 엘리 사박다니”

넷째, 그 다음은 ‘엘리 엘리 사박다니’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다섯째는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28에,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라고 했는데, 십자가상에서 피를 다 흘렸기 때문에 심히 목이 말랐습니다. 피가 흐르면 목이 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다 흘렸는데 얼마나 목이 마르겠습니까? “내가 목마르다”, 피가 다 흘렀다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여섯째는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30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고 했는데, “다 이루었다”, 구속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십자가에 죽음으로서 완성하셨습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일곱 번째, 마지막 마디는 하나님께 영혼 부탁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3:46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라고 했는데,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아버지께 영혼을 부탁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면서라도 원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잊지 않았고, 낙원에 갈 것을 바라보면서 나갔고, 어머니 부탁하고, ‘하나님이 버릴 수 없는 독생자를 어떻게 이렇게 버리시면서 까지 구속 사업을 완성하십니까?’ 하는 감사 찬송 드리고,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내가 목마르다” 하시고,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며 구속 사업을 완성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고 운명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주간이 고난주간인데 예수님이 이렇게 고난을 당하신 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기도를 많이 해야 하겠습니다. 특별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고난당하신 주간인데 우리는 방탕하고 자유 방종하고 육신의 정욕대로 나가고,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고난당하신 것을 깊이 생각하고 고난에 참여하는 신앙을 다 가져야 합니다. 고난주간은 특별히 금식 기도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전에 이북에 운산동 교회라고 있었는데 운산동 교회 옆에 칠악산이라고 있었습니다. 고난주간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올라가서 기도하곤 했는데 이북에서 신앙 지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했는지 산에 하얗게 올라갔습니다. 우리도 이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 기도하고 또 금식할 사람은 금식하고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날은 부활절인데 이번에 예수님의 고난을 이 주간에 깊이 참여하고 다음 주일날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4.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 춘분 지난 보름

예수님이 쓰리고 아픈 십자가상에서라도 이렇게 어머니를 생각하고, 못 박는 사람 불쌍히 여겨서 기도해 주고, 십자가에 같이 못 박힌 회개하는 강도에게 낙원에 같이 가는 것을 알게 해 주시고, ‘하나님이 버릴 수 없는 독생자까지 버리시면서 택한 백성들을 구원해 주십니까’하시며 감사하고, 목마르다고 하시고, 구원을 다 이루었다 하시고, 그 다음에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했는데 주일날 새벽에 살아나셨습니다. 유월절 전날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유월절 다음날 새벽에 살아났습니다.

요한복음 19:14에,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 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이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라 유월절 전날이라는 말씀입니다. 유월절 전날 예수님이 잡히시고 끌려 다니면서 재판을 받으시고 그날 십자가 못 박혔습니다. 유대나라는 하루가 전날 저녁부터 시작합니다. 유월절 전날 잡혀가지고 밤새도록 재판을 여섯 번 받으시고 낮에 못 박혔습니다. 유월절 전날, 낮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요한복음 19:31에,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라고 했는데, 이날은 예비일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예비일이란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날이 예비일이었고, 그 예비일 다음날이 큰 날, 유월절이고 또 동시에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둔 채 그 명절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전날 다리를 꺾어서 다 장사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다음날 살아났습니다. 유월절 전날에 예수님이 못 박혀 죽었는데 그날 장사를 지내고 유월절 하루는 예수님이 무덤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다음날 새벽에 살아났습니다. 유월절이 14일이므로 살아난 날은 15일이 분명하잖습니까? 14일이 유월절이므로 14일 전날(예비일) 못 박혔다가 14일 날 다음날 살아났단 말씀입니다. 즉, 15일 날 살아난 것이 분명합니다. 유대나라 성력은 춘분 있는 달을 정월로 잡고 춘분 있는 그 달 ‘춘분 지나서 15일 날’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날이 주일날입니다. 13일 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15일 날 부활했단 말씀입니다. 그날이 주일날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날이 주일날이 아닐 수 있습니다. 15일 날이 월요일일수도 있고 화요일이나 수요일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예수님이 주일날 부활했으니까, 15일 지난 그 다음 주일날을 부활절로 지킵니다. 그리고 15일이 주일날인 경우에는 그날 지키는 게 옳고 그날이 주일날 아니면 그 다음 주일날 지키는 게 옳습니다. 15일 날 부활한 것은 분명한데, 춘분 지나서 다음 주일날이 15일이면 그날 지키는 게 옳은 것입니다. 그 다음 주일날 지키는 건 옳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면
15일 날 살아났는데 그 다음 주일날 가서 오늘 아침에 살아났다고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춘분 지나서 그 다음 주일날이 15일이면 음력으로 15일, 유대나라 달력도 달을 표준한 달력이니까 춘분 지나서 그 다음 주일날이 15일이면 음력으로 그날 살아난 게 분명하고, 그날이 주일날 아니면 그 다음 주일날 지키면 됩니다. 보통은 그 다음 주일날로 지키는데 우리는 그날 지킵니다. 15일 날 살아났으니까 15일 날 지키는 게 옳다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로 지키느라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몇 십 년 전부터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양력은 태양을 표준해서 한 것이고, 우리나라 음력이나 성경의 성력은 달을 표준해서 한 것입니다. 만월을 보름날로 정해서 표준해서 하는 것입니다. 제일 달이 큰 때가 15일 날이 될 거 아니겠습니까? 차차 커나가다가 제일 큰 것이 15일, 그 다음 차차 작아질 때는 16일부터 내려가는 것입니다. 15일이 만월 맞는데, 그래서 15일로 지키는 것이 옳다고 우리가 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고난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다 흘려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 주셨는데 여기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 감격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죽어주지 않으셨으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겠습니까? 예수님이 고난 받지 않았으면 우리는 죄 값으로 영영히 형벌 받아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우리가 항상 감사하고 거기에 참여 하는 신앙을 늘 가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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