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생활 (3)
신명기 24:1-22
1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2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난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3그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4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렵혔은즉 그를 내어 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찌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케 하지 말찌니라 5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어 보내지 말 것이요 무슨 직무든지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집에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찌니라 6사람 맷돌의 전부나 그 위짝만이나 전집하지 말찌니 이는 그 생명을 전집함이니라 7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후려다가 그를 부르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 자를 죽일찌니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찌니라 8너는 문둥병에 대하여 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대로 네가 힘써 다 행하되 곧 내가그들에게 명한 대로 너희는 주의하여 행하라 9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리암
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찌니라 10무릇 네 이웃에게 꾸어 줄 때에 네가 그 집에 들어가서 전집물을 취하지 말고 11너는 밖에 섰고 네게 꾸는자가 전집물을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12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13해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라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 14곤궁하고 빈한한 품군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 16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17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18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19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리라 20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고 21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22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신명기 24:1-22
1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2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난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3그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4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렵혔은즉 그를 내어 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찌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케 하지 말찌니라 5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어 보내지 말 것이요 무슨 직무든지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 년 동안 집에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찌니라 6사람 맷돌의 전부나 그 위짝만이나 전집하지 말찌니 이는 그 생명을 전집함이니라 7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후려다가 그를 부르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 자를 죽일찌니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찌니라 8너는 문둥병에 대하여 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대로 네가 힘써 다 행하되 곧 내가그들에게 명한 대로 너희는 주의하여 행하라 9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리암
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찌니라 10무릇 네 이웃에게 꾸어 줄 때에 네가 그 집에 들어가서 전집물을 취하지 말고 11너는 밖에 섰고 네게 꾸는자가 전집물을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12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13해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라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 14곤궁하고 빈한한 품군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 16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17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18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19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리라 20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고 21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22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1. 이혼에 대하여
본장에서는 이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치 되는 일이 발견 되었을 때 이혼을 할 수 있는데 이혼 증서를 써주고 내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을 오용하여 “수치되는 일”이라는 조건을 빼버리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 증서만 써주고 이혼하면 된다고 잘못 가르쳤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의 근본 내용과 의미를 바르게 알려주시고자 마태복음 5:31-32절에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치되는 일”은 음행한 것을 뜻하는데, 음행함이 없는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서 내보내는 것은 말씀에 합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의 의미를 바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이혼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음행한 연고이고,
둘째는 남편이 죽은 경우이고,
셋째는 예수를 믿는다고 내쫓기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15절에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고 하였는데 예수 믿는다고 내쫓으면 이혼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집을 떠나 교회나 관원의 힘으로 합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서 들어오지 않는 경우는 아무리 합하려고 해도 합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예레미야 29장4-6절부터 있습니다. 그것 이외에는 이혼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음행한 연고로 한 번 이혼 당했던 여인이 다시 결혼했다가 남편이 죽어서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 여인의 전 남편도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살다가 다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둘 다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합할 수 있습니까? 말씀에서는 다시
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옛정이 그리워 다시 산다고 해도 살다보면 옛날에 못된 버릇들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건설적인 것이 아니라 부덕한 일이기 때문에 다시 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옛정이 그리워 다시 산다고 해도 살다보면 옛날에 못된 버릇들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건설적인 것이 아니라 부덕한 일이기 때문에 다시 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혼하는 것이 그다지 큰 것이 아닙니다. 또한 부부간에 함께 사는 것도 그다지 큰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결혼하게 해 주시면 하는 것이고, 또 살게 해주시면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일에 하나님의 영광 중심이여야 하고, 모든 일을 믿음으로 행하고 덕이 되게 해야 합니다. 결혼한다고 해서 무슨 큰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안 한다고 해서 큰 것이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어떤 청년이 찾아와서 “선생님, 제가 결혼을 하면 어떨까요?”라고 물었더니 “하려면 해 보라”고 했답니다. 그 다음에 생각해 보니까 그만
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찾아가 “선생님, 제가 결혼을 안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했더니 “안 하려면 그만 두라. 괜찮다”, “결혼해도 신통한 것이 없고 안 해도 신통한 것이 없느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결혼해도 별 것이 없고 안 해도 별 것 없습니다. 결혼하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지만 그저 그런 것입니다. 또 안 한다고 해도 신통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말고, 또 이혼을 중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서 살게 해주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십자가는 다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잘 참고 나가면서 사는 것입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하는데 제일 좋은 팔자는 어떤 것입니까? 혼
자 사는 것이 제일 좋은 팔자입니다. 자식이 없으면 편안할 것입니다. 오줌을 싸겠습니까? 똥을 싸겠습니까? 돈 달라고 하겠습니까? 속 썩이는 일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자식 있으면 오줌 싸고 똥 싸고, 또 기를 때에 속 썩이고 얼마나 많은 일이 있습니까? 밤낮 십자가입니다. 그저 부부간에 자식 없이 사는 것이 제일 상팔자입니다. 또 부부간 사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것이 더 상팔자입니다. 부부(夫婦)간에 서로 눈치 안보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날은 십자가를 지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러 가는 것이지 특별한 것이 있는 줄 알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날은 십자가 지는 날이고, 며느리 얻어오는 날은 구속 받는 날입니다. 며느리가 들어오면 어떻습니까? 웃옷을 벗고 있다가 며느리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어디 옷을 벗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무서운 것이 며느리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아이 낳는 날부터 종살이 하는 날인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가 똥 치우라고 하면 똥을 치워야 되고, 바깥에 나가자고 하면 나가야 하고, 먹고 싶다고 하면 만들어주어야 하니 모든 일이 종살이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혼이 별 것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는 지상에서 십자가를 많이 지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려면 결혼해야합니다. 혼자 사는 것보다 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혼하는 것이 낫습니다. 사방에서 두드리니까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망치로 치는 데 어떻게 안 만들어질 수 있겠습니까? 시아버지 망치, 시어머니 망치, 시누이 망치가 여기저기에서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넙적해지는 것입니다.
2. 새로 결혼한 자에 대하여
본문 5절에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어 보내지 말 것이요 무슨 직무든지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그는 일년 동안 집에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새로 결혼 하게 되면 군대에 내보내지 말고 집에서 일 년 동안 그 아내를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군대에 가기 싫은 사람에게 구실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말씀입니까? 신명기 20장 5-7절에 “유사들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
갈찌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취할까 하노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전쟁하러 나갈 때에 이 세 가지 종류에 해당하는 사람은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곧,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못한 사람은 군대로 뽑지 말고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만일 전사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그 집에 거하면 되겠습니까? 두 번째로 포도원을 만들고 과실을 먹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전쟁 시에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그 과실을 다른 사람이 먹을까봐 얼마나 속에 염려가 많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여자와 약혼하고 취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전쟁 마당에 나가다가도 도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 여자를 취하면 되겠습니까? 이 말씀들이 본문 5절과 같은 맥락의 뜻인데 만일 전쟁에 나가지 않기 위해 매 해 포도원에 포도만 심고 늘 집만 지으면서 평생 전쟁에 나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7장 29-31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하
였습니다. 이것이 성경말씀입니다. 아내 있는 자는 아내 없는 자 같이 하라는 것은 신약 성경의 말씀인데 아내 있다고 해서 전쟁 안 나가면 그것이 아내 없는 자 같이 하는 것입니까?
이 말씀의 뜻은 아내에게 마음이 다 가있고 빠져서 아내 생각만 하고 있는 사람은 전쟁 마당에 나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딴 데 다 가있는데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여호와의 전쟁에 그런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기드온 삼백 명의 용사도 물 먹을 때에도 손으로 떠서 핥아먹으면서 자기 사명에 일심정력을 하는 사람을 데리고 나갔지 뒤를 돌아보는 비겁한 사람을 데리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세상에 쏟아져 있는 사람은 전쟁에 나갈 수 없으며 데리고 나가지도 않습니다. 자기 아내에게 마음이 다 가있고 거기 빠져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신령한 전쟁에 참여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육신에 속해서 아내의 종살이나 해야지 믿는 일도 못하고 하나님의 일도 못합니다. 또 집을 지어놓거나 포도원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마음이 다 가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전쟁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러한 자들은 다 고향으로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에 쓰일 수가 없는 자 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평생을 가도 믿는 일을 못할 것입니다. 한국 속담에도 “아내 자랑하는 것은 온 바보, 아들 자랑하는 것은 반 바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아내에게 향해있고 거기에 빠져있는 사람은 믿는 일을 못합니다. 아내가 우상이라 하나님의 일과 믿는 일을 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다가도 아내 생각이 나면 훌쩍 뛰어서 집으로 갑니다. 믿는 일을 아내 때문에 못하고, 봉사도 아내 생각에 못하는데, 언제 선한 싸움을 싸우며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실컷 아내에게 종살이만 하다가 생명이 다하면 죽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포도원에 마음이 다 가있는 사람도 가서 실컷 포도나 따먹으라고 군사로 부르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쟁에 쓰일만한 사람은 포도원이 있어도 없는 자와 같이 하고, 집을 지었어도 없는 자와 같이 하고, 아내가 있어도 없는 자와 같이 하며 전쟁에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 운동을 위해 생명을 내놓고 전심전력을 기울여 나갑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며 이기고 나가야 하늘나라가 커지고, 자기 영혼이 자라며 자신의 실력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을 내놓고 나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셔서 하나님 나라 건설 운동을 하십니다.
선한싸움을 싸워서 이겨야 하늘나라가 커지고 자기 영혼이 자라나고 실력이 늘지 안 싸우는 사람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육신에 빠져서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필요합니까? 그 사람 때문에 하늘나라가 늘어나갑니까? 영혼이 자라납니까? 육신에 속해 있는데 영적 실력이 자라납니까? 그래서 육신에 속한 자들은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육신에 속한 자가 되지 말고 세상에 얽매이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것이 있어도 없는 자 같이 하고 용맹스럽게 선한 싸움을 싸우러 나가야합니다. 나가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생명 내놓고 ‘죽어도 좋다’는 결사각오를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 건설에 가장 귀하게 사용하시고, 또 그런 사람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그렇지 못했을 때는 다 돌려보내지게 되는 것입니다.
3. 맷돌을 전집(典執)하지 말 것
본문 6절에 “사람이 맷돌의 전부나 그 위짝만이나 전집하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집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전집 한다’는 것은 물건을 전당 잡고 돈을 얼마 떼어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맷돌의 전부나 그 위짝을 전당 잡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옛날 사람들은 맷돌
에 갈아진 가루로 음식을 해먹었는데 맷돌이 없으면 전혀 음식을 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명이 해 될 만한 것은 잡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살려 나가면서 돈을 빌려줘야지 사람의 생명을 못살도록 해놓고 돈을 꿔주면 얼마나 잔인합니
까? 만일, 돈을 빌려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해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 절의 말씀과 같이 돈을 빌려줄 때라든지 또한 다른 무언가를 빌려줄 때에 빌려간 사람이 돈을 못 갚음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데 까지 나가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4. 사람을 후린 자는 죽일 것
본문 7절에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후려다가 그를 부리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후려다가 그를 부리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 자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
니까? 죽이라고 했습니다. 요즈음 사람을 후려다가 파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강제로 납치해서 파는 자들, 또한 직장에 취직시켜준다고 데려다가 섬에 고기 잡는 곳에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청년들에게 좋은 직장을 취직시켜준다고 해놓고 목포로 데려가서
섬에 판다고합니다. 한 사람당 오십 만원씩 받고 사람들을 팔고, 팔린 사람들은 섬에서 고기 잡는데 쓰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집으로 오려고 해도 못 나옵니다. 빚을 졌으니까 오십만 원 물어주고 가라는 것입니다. 만일, 나오려고 시도하면 매를 심하게 때려서 나올 수 없게 만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섬에서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또한 여자들도 봉고차로 납치하여 이백 만원씩 받고 팔아먹는다고 합니다. ‘여자 한명에 이백만 원이라니!’ 참 험악한 세상입니다.
본문 7절에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후려다가 그를 부리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후려다가 그를 부리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 자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
니까? 죽이라고 했습니다. 요즈음 사람을 후려다가 파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들을 강제로 납치해서 파는 자들, 또한 직장에 취직시켜준다고 데려다가 섬에 고기 잡는 곳에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청년들에게 좋은 직장을 취직시켜준다고 해놓고 목포로 데려가서
섬에 판다고합니다. 한 사람당 오십 만원씩 받고 사람들을 팔고, 팔린 사람들은 섬에서 고기 잡는데 쓰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집으로 오려고 해도 못 나옵니다. 빚을 졌으니까 오십만 원 물어주고 가라는 것입니다. 만일, 나오려고 시도하면 매를 심하게 때려서 나올 수 없게 만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섬에서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또한 여자들도 봉고차로 납치하여 이백 만원씩 받고 팔아먹는다고 합니다. ‘여자 한명에 이백만 원이라니!’ 참 험악한 세상입니다.
어느 동네에서 봉고차가 와서 화장지를 아주 싸게 팔았는데 너무 싸서 동이 났다고 합니다. 싸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온 동네 여자들에게 공장에 가면 더 싸게 많이 살 수 있다고 가자고 했답니다. 여자들은 봉고차에 타고 갔는데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걸어가고 있는 학생들을 납치해서 팔아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험악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다 잡아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사형을 시켜야 합니다. 사람 납치하고 꾀어서 팔아먹는 자는 사형시켜야합니다. 성경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안 하니까 지금 이러한 일들이 범람하는 것입니다. 몇 사람만 죽이면 싹 다 없어질 것입니다. 잡아가라고 해도 안 잡아갈 것입니다.
또한 본 절 말씀의 신령한 뜻은 우리 신앙을 미혹시키게 하는 자들, 곧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혹시켜 이단으로 끌고 가고 해방 신학으로끌고 가고 사이비한 것으로 끌고 가서 신앙을 타락시키게 하는 자들은 모두 잡아서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인들을 후려다가
잘못된 데로 끌고 가는 자들을 영적으로 사형시키는 것과 같은 처벌을 하여야 됩니다. 교회에서 죽이지는 못하지만 그런 자들을 아주 죽인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사람을 후려다가 잘못된 길로 걷게 하고, 성도들을 꾀어가는 자들은 아주 악한 것으로 취급을 하여 사형 받은
자로 엄격하게 대해야합니다. 이렇게 하여 교인들이 사이비한 사상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잘못된 데로 끌고 가는 자들을 영적으로 사형시키는 것과 같은 처벌을 하여야 됩니다. 교회에서 죽이지는 못하지만 그런 자들을 아주 죽인 것으로 간주해야 합니다. 사람을 후려다가 잘못된 길로 걷게 하고, 성도들을 꾀어가는 자들은 아주 악한 것으로 취급을 하여 사형 받은
자로 엄격하게 대해야합니다. 이렇게 하여 교인들이 사이비한 사상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5. 문둥병자의 할 일
본문 8절에 “너는 문둥병에 대하여 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대로 네가 힘써 다 행하되 곧 내가 그들에게 명한대로 너희는 주의하여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문둥병이 걸리면 제사장에게 가서 인도하는 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문둥병은 특별히 죄로
말미암아 썩어져 들어가는 상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심령에 독한 죄가 들어와 점점 썩어져가고 점점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이 문둥병 들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노름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곧 썩어져 가는 죄, 타락하는 죄가 들어왔다
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술집에 다니고 춤추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죄가 들어오면 몸이 점점 썩는 문둥병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그럴 때는 혼자 가지고 있지 말고 제사장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교역자에게 가서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한 구렁텅이에 빠졌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말하고 교역자가 인도해주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들을 교역자는 어떻게 인도를 해주어야 되겠습니까? 첫째는 거기서 나오라고 해야 합니다. 못된 짓을 끊어버리고 죄짓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또한 음행하는 죄를 지고 있다면 피하라고 해야 합니다. 음행하는 죄를 피해서 이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죄를 짓게 하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약입니다. 그런 자들을 절대 만나지 말고 어두운 환경에서 나오라고 알려 주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해야 합니다. 교회 또는 기도
원에서 기도함으로 경건생활을 해야 합니다. 셋째로 다른 환경으로 바꾸라고 해야 합니다. 죄 된 환경에서 나와 빛의 환경을 찾아가야합니다. 교역자의 바른 인도를 받아야 죄악된 환경을 끊어버리고 그리스도께로 인도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생 라합도 나왔는데 왜 못나오겠습니까? 자신의 부족한 힘으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앞이 캄캄하여 묘책도 없습니다. 심령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갈 길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밝은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역자의 인도를 받아서 순종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죄 된 환경을 끊고 죄짓는 사람들을 만나지 말고 기도하며 환경을 바꿔야합니다. 이렇게 하면 죄의 구렁텅이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원에서 기도함으로 경건생활을 해야 합니다. 셋째로 다른 환경으로 바꾸라고 해야 합니다. 죄 된 환경에서 나와 빛의 환경을 찾아가야합니다. 교역자의 바른 인도를 받아야 죄악된 환경을 끊어버리고 그리스도께로 인도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생 라합도 나왔는데 왜 못나오겠습니까? 자신의 부족한 힘으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앞이 캄캄하여 묘책도 없습니다. 심령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갈 길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밝은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이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역자의 인도를 받아서 순종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죄 된 환경을 끊고 죄짓는 사람들을 만나지 말고 기도하며 환경을 바꿔야합니다. 이렇게 하면 죄의 구렁텅이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혼자 고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혼자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교역자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거기서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잘 해야 됩니다. 괜히 혼자서 문둥병을 고치려고 조용히 약이나 사다 바른다고 고쳐지는
병이 아닙니다. 다 내놓고 “나 이런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라고 하면 교역자가 “이렇게 해라.”고 할 때 “예"하고 순종하면 문둥병이 다 나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힘 있게 구렁텅이에서 나오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본문 9절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미리암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찌니라”고 했습니다. 미리암이 모세의 누이였지만 모세를 비방하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민수기 12장 1절에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스 여자를 취했다고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에게 하나님께서 문둥병이 들게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여쭐 때 “성 밖에 나가 칠일 동안 있다가 들어오라”고 하셨고, 그 말씀에 순종한 미리암은 병이 나았습니다. 문둥병은 자칫 잘못하면 걸릴 수 있는 병입니다. 교역자를 원망하고 비방하다가 썩어져 들어가는 문둥병과 같은 죄는, 교역자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나을 수가 있습니다.
6. 전집물에 대한 규례
본문 10-13절에 “무릇 네 이웃에게 꾸어 줄 때에 네가 그 집에 들어가서 전집물을 취하지 말고 너는 밖에 섰고 네게 꾸는 자가 전집물을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그가 가난한 자여든 너는 그의 전집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질 때에 그 전집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의로움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웃에게 어떤 물건을 전당 잡고 꾸어줄 경우 그 집 안에 들어가서 전집물을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돈이 없어서 돈을 조금 꾸려고 하는데, 자신의 집에 들어가서 값진 것을 가지고 나가면 속이 얼마나 상하겠습니까? 따라서 전당을 잡아도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그 사람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또 손해주거나 억울하지 않도록 우리가 언제나 주의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의복 같은 것을 담보 잡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담보 잡았다가도 해질 때에 돌려보내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의복이나 이부자리를 잡으면 밤에 무엇을 입고 자고 무엇을 덥고 자겠습니까? 그러므로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주었어도 밤에 입고 덮고 잘 수 있도록 돌려보내주어야 합니다. 돈을 빌린 사람이 돌려보내 준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평생에 신세를 잊지 못하고 갚으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돈보다 사람이 더 귀중한 것이니 생명에 해가 가지 않도록 그 사람을 도와주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일이 잘 됩니다.
7. 가난한 자를 학대하지 말고 품삯을 당일에 줄 것
본문 14-15절에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
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
고 해 진 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학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꾼을 학대하면 어떻게 망한다고 했습니까? 당일에 망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꾼을 학대하면 누가 일을 하겠습니까? 또한 일꾼이 자기네 일을 도와주는 사람인데 왜 학대합니까? 잘 대접하고 일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대우해야합니다. 일꾼들에게도 못된 버릇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기술자의 구새’(‘나쁜버릇’이라는 뜻의 사투리, 사전에는 없음)라는 것인데 주인의 말을 잘 안 듣고 제 고집대로만 하는 ‘구새’가 하나씩은 있다는 것입니다. 고 목사님은 이것이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말 안 듣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말 들으면 그것이 정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을 시킬 때 말 안 들을 줄 알고 시켜야 합니다. 말 안들을 때 어떻게 시켜야 합니까?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하라고 말을 해주어야 듣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말하면 말을 안 듣습니다. 고치라고 하면 죽어도 말 안 듣고 달아나기까지 합니다. 일꾼들은 말 안 듣는 못된 버릇이 하나씩 다 있다고 했는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일꾼이면 주인이 시키는 대로 고칠 것은 고쳐야합니다. 못된 버릇을 가지고 나가면 무엇 하겠습니까?
또한 주인의 입장에서 일꾼을 학대하지 말고 언제든지 귀히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잘 대접해야 복을 받습니다. 여러 해 전에 건축업이 한창 성할 때 많은 사람들이 집을 지어서 팔았습니다. 그 때는 일꾼이 모자라던 시기였는데 어떤 집은 일꾼이 모여들어 남아 도는데, 다른 집에는 일꾼이 없어서 집을 짓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일꾼이 모여든 집은 안주인이 일꾼을 잘 대접하고 잘 챙겨주어 그 곳에서 일을 하려고 모여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안주인은 집을 짓고 팔고, 또 짓고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니 일꾼을 잘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학대하지 말고 품값은 당일에 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이고 믿음의 행동입니다. 돈을 주지 않고 질질 끄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꾼의 품값을 질질 끌면서 다른 데 이용하기도 합니다. 줄 수 있는데도 안 주고 다른 데 이용해 돈을 불리거나 이자 조금 늘리려고 은행에 두고 안 주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 죄짓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4절에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날 일을 한 일꾼에게 그 날 삯을 줄 것이고 만일 줄 것이 없으면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씩 품삯을 줄 때도 날짜를 어기지 말고 정확히 주라는 것입니다. 품값을 당일에 주고 일꾼을 학대하지 말고 잘 대접하여 일꾼들이 마음이 즐거워서 일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8. 부모의 죄로 자녀를 벌하지 말 것
분문 16절에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음을 당치 아니하고 자식들은 아비를 인하여 죽음을 당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각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죽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죄 때문에 아들을 죽이지 말아야하고, 아들 죄 때문에 아버지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18장에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아들의 이가 시지 않다고 했습니다. 또 아들이 신 포도를 먹었으면 아버지의 이가 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포도 먹은 사람만 이가 시지 아버지가 먹었는데 아들의 이가 왜 시겠습니까? 아버지가 죄를 지었으면 아버지가 벌 받는 것이 마땅하고 아들이 죄를 지었으면 아들이 벌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분문 16절에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음을 당치 아니하고 자식들은 아비를 인하여 죽음을 당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각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죽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죄 때문에 아들을 죽이지 말아야하고, 아들 죄 때문에 아버지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18장에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아들의 이가 시지 않다고 했습니다. 또 아들이 신 포도를 먹었으면 아버지의 이가 시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포도 먹은 사람만 이가 시지 아버지가 먹었는데 아들의 이가 왜 시겠습니까? 아버지가 죄를 지었으면 아버지가 벌 받는 것이 마땅하고 아들이 죄를 지었으면 아들이 벌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잘못해도 아들까지 벌하고 사돈의 팔촌까지 죄다 몰살을 시키는 옛날의 한국의 법은 악법입니다. 아버지가 잘못했어도 아들을 아버지와 같이 취급하면 안 됩니다. 아버지가 도적이라도 아들은 도적 아닐 수 있습니다. 좋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또 아들이 아무리 나쁜 짓을 했어도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 때문에 아버지를 벌 하지 말고, 아버지의 죄 때문에 자녀를 벌하지 않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아들의 죄를 아버지가 질 수 없으며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책임질 수 없습니다. 오직 각자 자기 죄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 왕 때에 흉년이 들었을 때 사울왕의 자손들 일곱을 잡아다가 나무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이것이 잘 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두 가지 학설이 있는데, 사울왕의 죄 때문에 아들 들을 죽인 것은 합당치 않다는 해석이 하나 있습니다. 또 사울왕의 죄 때문에 아들 죽인 것은 잘 했다 하는 학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비추어서 보면 그것은 합당치 않다고 봐야 합니다. 다윗왕 때 연부년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다가 “너희가 어떻게 하여야 우리에게 복을 빌어서 비가 오게 하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왕에게 피해를 많이 본 사람이기 때문에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내어주어 원수를 갚게 하면 당신들을 위해서 복을 빌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자손 일곱 명을 잡아 죽였고 그들을 나무에 달았더니 비가 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 행한 일이었습니까? 다윗이 하나님께 여쭈어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여쭈어보지 않고 그들을 잡아 죽인 것이고,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들을 잡아 죽여도 된다는 것이 성경에 없었지만 잡아 죽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들을 죽인 후에 비를 왜 주셨을까요? 그것은 일곱 명을 죽인 것이 하나님의 노가 풀려서 비를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아야 합니다. 곧, 그 시대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죄 값으로 다 죽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의 아들들을 대표적으로 심판하셔서 진노를 푸시고 비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죄 때문에 아들을 죽인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 시대의 죄 값으로 그 사람들이 심판 받은 것이며 하나님께 물어서 한 것이 아니므로 내어주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심판을 하셨을 것입니다.
9.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지 말 것
본문 17-18절에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일을 행하라 명하노라”고 했습니다.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고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전에 애굽의 종 되었던 자들이었고 나그네 생활하던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 시절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거지가 돈을 모으면 동냥을 안 준다고 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거지 시절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개구리도 올챙이 시절을 생각지 못하고 올챙이를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종살이 하던 자가 돈을 모아서 부유해졌을 때 교만해져서 종살이 하는 사람이나 나그네 생활하는 사람을 아주 멸시합니다. 그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본문 17-18절에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일을 행하라 명하노라”고 했습니다.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고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전에 애굽의 종 되었던 자들이었고 나그네 생활하던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 시절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거지가 돈을 모으면 동냥을 안 준다고 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거지 시절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개구리도 올챙이 시절을 생각지 못하고 올챙이를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종살이 하던 자가 돈을 모아서 부유해졌을 때 교만해져서 종살이 하는 사람이나 나그네 생활하는 사람을 아주 멸시합니다. 그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교역자들도 자기가 과거에 그 자리에 있던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제가 고려파에 있을 때에 전도부장을 했는데 미조직 교회에서 목사안수 받으려 하면 전도부장이 청원해 주어야 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전도부장이 도장을 찍어서 어떤 목사를 안수해달라고 청원해 주어야
만 노회에서 통과시켜서 목사 안수를 했습니다. 그때에 지금도 고려파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안양에 신일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 우리 동창인 조사 한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해엔가 사역하던 교회의 대표 집사를 데리고 와서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도록 청원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조사 분은 목사를 해도 될만큼 덕이 있었고, 또 강도사 고시에 합격했기 때문에 제가 청원해주어서 그 해에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조사가 목사가 되어 일 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 목사가 일어서서 말하기를 “전도부장이 왜 마음대로 청원을 하느냐”고 말하며 눈을 똑바로 뜨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일어서서 “목사님, 작년에 집사하고 와서 나한테 청원해 달라고 말했던 것 생각 안 납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쏙 들어가고 아무 말을 못했습니다. 일 년도 못 가서 일 년 전의 일을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작년에 목사 안수 해달라고 집사 데리고 와서 저에게 싹싹 빌다시피 하면서 청원해 달라고 했었는데, 목사가 되어 일 년 정도 되었다고 저와 싸우자고 했는데, 작년의 일을 생각해 보라고 말하니 쏙 들어간 것입니다.
사람은 다 그렇습니다. 종살이 하던 것도 일 년만 종살이 안 하면 종살이했던 것을 잊고 오히려 멸시합니다. 또 농사짓던 사람들이 농사안 하고 형편이 나아지면 자기가 일했던 옛 자리를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종살이 하던 것이 어저께 같은데 왜 남이 종살이 하는 것을 무
시합니까? 왜 남 종살이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남을 학대합니까? 자기도 얻어먹던 사람인데 왜 얻어먹는 사람을 무시합니까? 자기도 농사했던 사람인데 왜 농사꾼을 무시해서 다리가 썩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또한 싹싹 빌면서 청원해서 목사 안수 받았는데 왜 일년도 못되어 생각지 못하는 것입니까? 생각을 해 보십시오. 과거에 종살이 하지 않았습니까? 얻어먹지 않았습니까? 남의 집에 가서 일해먹지 않았습니까? 과거에 다 비참한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어깨를 곧게 세우고, 남을 무시하면서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합니까? 돈을 조금 벌었으면 어떻게 벌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어떤 영감님은 교민 노인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돈을 조금 벌었다고 거만하게 행동하는 교민들이 보기 싫어서 미국 사람들이 있는 노인회에 나간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조금만 나아지면 전에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전에 어떻게 자랐습니까? 전에 어떻게 자랐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한 달에 얼마 가지고 살고 무엇을 해 먹고 살았는지, 의복은 어떤 것을 입고 살고, 집은 어떤 곳에 살았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과거 판잣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뭐가 이렇다 저렇다 말들이 많습니다. 우리 기도원이 뭐가 나쁩니까? 옛날에 얼마나 잘 살았던 사람들이 오늘 여기 와서 앉아 있습니까?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꼭 “민퉁이(‘여치’의 방언(평북))가 쑥대(쑥의 줄기)에 올라간 것” 같습니다. ‘칙칙’하고 소리를 내는 민퉁이라는 벌레가 있는데 풀 속에 있다가 쑥대에 올라간 것을 말합니다. 쑥대에 올라가면 1m 나 올라갔겠습니까? 한 2m나 올라갔습니까? 그것만 해도 꽤 올라간 것 것이겠지만 요새 한국 사람들을 볼 때 민퉁이가 쑥대 올라간 것과 같아 보입니다.
자기기 예전에 있던 그 비참한 자리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전에 ‘꿀꿀이죽’이 있었습니다. 이 음식은 미군 부대에서 미국사람들이 먹다가 남긴 것을 쓰레기통에서 꺼내서 좋은 것만 골라 국을 끓여 먹던 것입니다. 부산 신학교 시절에는 그 고깃국을 한 사발 먹으면 얼마나 힘이 나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 시절에 귀한 손님이 한 분 오셨는데 무엇을 대접할까 생각하다 꿀꿀이죽을 생각하고 남포시장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분은 잘 사는 분이라 그런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았는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잘 사는 사람이 그것을 먹겠습니까? 우리처럼 피난민들은 그것을 먹는 것도 얼마나 기쁨이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열여덟 살 쯤 되었을 때 만주를 갔었는데 바나나 모양과 비슷한 떡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맛이 있는지 인절미 보다 더 맛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집에 선물을 사가지고 갈 때 제일 맛있는 떡인 바나나 떡을 사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든 집 주인이 말하기
를 옥수수 가루로 만든 떡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제게는 이 떡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이렇게 맛있었는 줄 아십니까? 만주에서는 배급 제도이기 때문에 쌀 한 그릇을 가지고 하루종일 먹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배고픈 저에겐 그 옥수수 떡이 꿀떡보다 또 인절미 보다 더 맛이 있었습니다. 제가 선물로 들고 갔던 그 집주인은 잘 살았기 때문에 옥수수떡을 좋아했을 리가 없습니다. 만주에 가서 바나나 떡 먹던 것도 생각을 해야 되고, 부산에서 꿀꿀이죽 먹던 것도 생각을 해야 되고, 또 집 한 칸도 없이 명륜동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도 생각해야합니다.
명륜교회를 안집사님 집에서 개척을 했었는데, 안집사와 그의 어머니와 그리고 제가 집에 누우면 하늘이 다 보여서 하늘 문이 열렸다고 하며 자던 집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함석 일을 하던 분이었는데 저도 옆에서 일하는 것을 많이 보아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 얼마나 감사합니까? 기도원을 주셔서 얼마나 감사합니까? 누추하기는 얼마나 누추했었습니까? 과거를 생각하면 이것이 다 천양지차입니다. 여기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아십니까? 굴속에 들어가서 비를 맞으면서 기도하던 생각을 하면 기도원이 있어서 비를 맞지 않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밤새도록 의복이 다 젖고 꽁꽁 얼어서 추웠지만 지금은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과거에 형편없던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것을 왜 생각 안 합니까? 우리도 과거의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과거에 마귀 종살이 하고 진리를 모르고 흑암에 쌓여서 살았는데 진리를 알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합니까? 진리 한 말씀을
감사히 여기고 또 과거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나그네와 종살이 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10. 추수 때에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도와 줄 것
본문 19-22절에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밭에서 곡식 벨 때에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추수할 때 다 거두지 말고 이삭 줍는 사람들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남겨 두라는 것입니다. 룻기서에 보면 룻이 이삭 주울 때에도 곡식을 떨어뜨려 두라고 했는데 이는 고아와 과부가 주
워서 가지고 갈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남겨 놓을 줄 알아야합니다. 손님으로 가서 차려준 음식을 다 먹지 말고 남겨서 그 집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다 잡곡밥을 먹어서 쌀밥 먹는 것이 상당히 힘들던 시절이었는데 어떤 집에 손님 두 명이 왔다고 합니다. 그 집의 아이들은 두 명의 손님을 각각 한 명씩 정해놨다고 합니다. ‘윗쪽 손님이 남긴 것은 내가 먹는다.’, ‘아래쪽 손님이 남긴 것은 내가 먹는다’고 정해놓고, 손님들의 쌀밥이 남으면 먹으려고, 장지문 틈에서 입맛을 다시며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손님이 밥을 다 먹으려고 했는지 밥그릇에 물을 붓더랍니다. 그 손님을 정해놓고 기다리던 아이가 “내 손님이 밥에 물을 붓는다”하고 “악”소리를 내며 뒤로 떨어지더랍니다. 물을 밥그릇에 부으면 남기지 않을 것이니 아이가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밥을 먹다 아이 소리에 놀란 손님이 나가서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내가 잘못했다. 이거 너희들이 다 먹어라.”하고 밥을 줬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오랜만에 쌀밥 좀 먹으려고 기대했던 아이들은 손
님이 사정도 모르고 물을 부으니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 주라는 것입니다. 밥도 남겨주어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이삭도 주울 수 있도록 배려해주며 남의 종살이 하는 사람도 생각해 주어야합니다. 자기도 종살이 했었는데 왜 종살이 하는 사람을 생각해 주시 못합니까? 남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포도를 거둘 때에도 처음에 거두고 후에는 다시 따러 다니지 말고 과수원의 열매를 딸 때에도 미쳐 다 따지 못한 것은 고아나 과부나 종살이 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님이 사정도 모르고 물을 부으니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 주라는 것입니다. 밥도 남겨주어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이삭도 주울 수 있도록 배려해주며 남의 종살이 하는 사람도 생각해 주어야합니다. 자기도 종살이 했었는데 왜 종살이 하는 사람을 생각해 주시 못합니까? 남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포도를 거둘 때에도 처음에 거두고 후에는 다시 따러 다니지 말고 과수원의 열매를 딸 때에도 미쳐 다 따지 못한 것은 고아나 과부나 종살이 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사람들이었고 그 곳에서 얻어먹으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옛날에 전쟁과 가난 속에서 다 얻어먹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았던 우리들이니까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주라는 말씀입니다. 옛날을 생각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주고 도와주며 합심하여 하나님의 일을 잘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꾸어줄 때에도 그 사람의 생명에 해가 가지 않도록 소유를 전당 잡아야하고, 품삯은 당일에 주면서 하나님 일에 합심해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교회 안에서 서로 협력하여 믿는 일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하
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과 이스라엘 구원운동을 하는 일이 잘 되어가도록 축복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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