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9일 목요일

신명기 25:1-19 재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재판
신명기 25:1-19

1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2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거든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죄의 경중대로 여수히 자기 앞에서 때리게 하라 3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과다히 때리면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 4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5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7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취하기를 즐겨하지 아니 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8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 취하기를 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9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것이며 10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 칭할 것이니라 11두 사람이 서로 싸울 때에 한 사람의 아내가 그 남편을 그 치는 자의 손에서 구하려 하여 가까이 가서 손을 벌려 그 사람의 음낭을 잡거든 12너는 그 여인의 손을 찍어 버릴 것이고 네 눈이 그를 불쌍히 보지 말지니라 13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14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15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 16무릇 이같이 하는 자, 무릇 부 정당히 행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17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19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1. 공정히 재판하고 처벌할 것

본문 1-3절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거든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죄의 경중대로 여수히 자기 앞에서 때리게 하라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과다히 때리면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고 하였는데 재판을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여기서 지나치면 악으로 쫓아난다”고 하였는데 모든 것을 바로 판단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고, 바른 판단을 못하면 일을 바로 처리할 수가 없고, 만약 악한사람을 의롭다, 의로운 사람을 악하다 판결하면 이는 하나님께 잘못된 것으로 하나님의 일에 손해가 됩니다. 악한 사람을 의롭다 하게 되면 악이 점점 성하게 되고 악한 사람이 득세하여 많은 사람이 그 해를 받게 됩니다. 또한 의인을 악하다 하면 그 사람을 통해서 옳은 일을 못하므로 세상이 점점 악해집니다. 재판하는 사람은 바른 판단을 할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정치가들도 자신의 하는 일을 바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하고 사회 전반의 모든 것들을 바로 판단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선거할 때 올바로 판단하여 선거해 줘야 합니다. 자기 고향사람이나 동창생이라고 찍어주고, 또 자기와 한 성이라서 찍어주는 것은 모두 악한 일로서 신자가 하나님 앞에 죄짓는 것이고 잘못한죄 값을 받게 됩니다. 모든 것을 초월해서 정치를 옳게 할 사람이냐
옳게 못할 사람이냐 하는 것을 판단해야 합니다. 

바른 판단으로 때릴 자는 때리고 벌 줄 자는 벌을 주되, 40대까지만 때리고 그 이상은 때리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실수로 41대까지 때리는 일이 없도록 39대까지 때리는 법이 생겼습니다. 바울이 이 매를 맞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4절에,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라고 하였는데 바울은 39대씩 맞는 최고의 매를 5번 맞았습니다. 그래도 몸이 성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새 39대 맞는다면 몸이 온전치 못할 텐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장애자가 안 되게 보호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80대, 100대를 때릴 수도 있을텐데 40대까지만 때리라고 하신 이유는 벌을 주는 것도 어느 정도 하고 그치라는 것입니다. 아이를 때리다가도 어느 정도 하고 그만 두어야 합니다. 죄를 생각하면 100대 때려도 마땅할 수 있을지라도 얼마 때리고 분풀이 하지 말고, 분나는 대로 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싸움도 하다가 그만두는 것이고 조금하다가 그만두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40은 만수이므로 사람이 너무 끝까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지는 것도 끝까지 하지 말고 책망도 끝까지 책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는 목회를 하다가 자기를 배척한다고 교인들이랑 끝까지 싸웠다고 합니다. 결국 교회가 다 쑥대밭이 되었다는데 그러면 교회도 망하고 목사도 망하고 둘 다 망합니다. 끝까지 싸우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것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본 적 있는데 독수리 한 마리가 비둘기 한 마리를 잡아 배를 쪼개고 가슴을 쪼개서 먹는데 다른 한 놈이 날아오자 자기보다 셀 거 같으니 아예 내놓고 물러서고 나중에 날아온 놈이 비둘기를 먹었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한 놈이 날아왔는데 먹고 있는 놈보다 약한 놈이라 옆에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독수리들도 벌써 척 보면 자기보다 센 놈인지 약한 놈인지 알아, 센 놈하곤 싸우면 안되겠으니 내놓고 간 것입니다. 깡패들도 자기보다 센 자에겐 형님이라고 한다는데 싸움이 안 되겠으니 아예 머리 숙이고 편안히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깡패만도, 독수리만도 못해서 끝까지 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목사는 병나서 죽었고 교회는 쑥대밭이 되었고 아들 하나 있었는데 폐병 걸리고 그만 사모님도 형편없이 되었습니다.
40까지 넘지 말라는 것은 언제나 좀 하다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다하게 때리면 형제를 천히 여기게 되니까 천히 여기는 데까지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2. 곡식 떠는 소를 먹일 것

본문 4절에,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고 했는데 고린도전서 9장 9-10절에,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워 하나도 못 먹게 하면 얼마나 먹고 싶겠습니까? 좀 먹으면서 하면 힘도 덜 들고 소도 좋을 텐데 하나도 못 먹게 하면 소에게도 못할 짓입니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을 먹이면서 부리라는 것입니다. 설렁탕 집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니 살이 찌고 배가 두둑한데 알아보니 그 집에서 매일 설렁탕을 거저 주므로 매일 잘 먹은 것입니다. 설렁탕 집에서 일하면 설렁탕 먹게 되어 있고 사과농장에서 일하면
사과를 먹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에 나와 있는 어떤 미국 사람이 자기 집에서 한국 사람을 고용하고 월급을 괜찮게 준다는데 자기네 음식은 먹지 못하게 하고 집에 가서 먹으라고 한답니다. 그러면 일하는 사람이 주인이 지지고 볶고 스테이크 먹을 때 얼마나 먹고 싶겠습니까? 그 주인도 자기네 집에서 일을 시킬 때엔 먹을 것을 조금 먹도록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곡식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근본 뜻은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먹을 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교인들한테 받아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까마귀를 통해서든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주시므로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일할 사람들은 일하라는 것입니다. 또 교인들에게 대접 받겠다는 생각은 그만두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15절에,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죽을찌언정 대접 안 받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갔어도 굶어죽지 않았습니다. 대접 안 받고 복음만 전해도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십니다. 많이 받겠다는 생각, 대접받겠다는 생각은 모두 마귀의 시험입니다. 아골 골짝이나 소돔 같은 도시나 그 어디라도 복음 들고 가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고 잘 되게 해 주십니다. 많이 받겠다, 대접 받겠다 하는 것은 썩은 정신으로 거짓선지자들이나 하는 짓이지 하나님의 사람이 할 생각이 아닙니다.

3. 형제 계대 혼인법

본문 5-10절에,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취하기를 즐겨하지 아니 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내게 행치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 취하기를 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
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기운 자의 집이라 칭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구약시대의 계대 혼인법인데 예수님에게 사두개 교인들이 와서 이것
에 대해 시험한 적이 있습니다. 형제 중 첫째가 결혼했는데 아들 없이 죽자 둘째가 그 여자랑 살다 또 아들 없이 죽었고 이렇게 일곱째까지 한 여자를 데리고 살다가 죽었는데 부활하면 그 여자가 누구의 아내가 되는가 물으며 시험했었습니다. 계대 혼인법을 세워 후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형이 아들 없이 죽으면 동생이 그 여자하고 살되 첫 아들은 형의 아들로 삼아놓고 그 다음 아들부터 자기 아들이 되게 하는 이런 법을 하나님께서 세워 놓은 것입니다. 룻기 4장 7-8절에 신이 벗기운 일이 있는데 형의 계대를 잇기를 싫어한 남자가 본문의 7-9절까지의 절차를 밟아 그리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신약시대의 교훈은 계대를 이어나가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계대, 진리의 계대를 이어 나가라는 뜻입니다. 요셉지파 슬로브핫이 아들 없이 딸만 넷이었는데 딸들이 다른 데 시집가면 요셉 지파의 땅이 다른 지파에게 넘어가게 되기에 모세에게 물어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요셉지파가 계승되게 하기 위하여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자기 지파에게만 시집가고 다른 지파에게 못 가게 하셨습니다. 그 지파의 것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신약시대의 교훈은 바른 신앙이 내내 계승되어 가야함을 의미합니다. 장로교 신앙계통이 다르고 감리교 계통이 다르듯, 깨달은 진리 계통이 다릅니다. 깨달은 진리를 그대로 계승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찬 문제에 있어서 성찬 예식의 떡과 포도주가 실제 예수님의 피와 살이 된다는 화체설과, 성찬예식의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과 같다는 공재설을 주장하는 데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념(상징)하는 것이라는 계통도 있는데 각자 자기가 옳다고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화체설, 루터파에서는 공재설, 장로교에서는 기념하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다 다르므로 자기가 옳다고 하는 계통을 이어 나가란 말입니다. 옳은 진리를 깨달았다면 그것을 버리고 다른 데로 갈 수 없습니다. 침례교는 세례 시에 세례 받는 자를 물에 담궜다 꺼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우리 장로교는 적수세례, 즉 물을 떠서 머리에 끼얹어 세례 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신학교를 세워 목회자를 길러, 계통을 이어 나가려 합니다. 추도예배 안 해야 한다, 주일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등, 끝까지 세워 나가야 할 진리들이 많습니다. 계대혼인법에서 아들을 낳아 형의 계대를 이어가듯이 신앙의 후계자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이러므로 신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후배 교역자를 양성하여 이 진리를 계승할 사람들을 길러 내는 것이 이 계대 혼인법에 대한 신령한 교훈입니다.

4. 치부(恥部)를 타격한 죄를 엄벌할 것

본문 11-12절에, “두 사람이 서로 싸울 때에 한 사람의 아내가 그 남편을 그 치는 자의 손에서 구하려 하여 가까이 가서 손을 벌려 그 사람의 음낭을 잡거든 너는 그 여인의 손을 찍어 버릴 것이고 네 눈이 그를 불쌍히 보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음낭을 잡은 것은 성적영역을 침범한 것입니다. 잠언 6장 29절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는데 이 역시 성적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손을 잘라버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신령한 뜻은 성
도가 신랑 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교제를 하고 말씀으로 생명의 역사를 계승해 나가는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즉 기도시간, 말씀 받는 시간을 빼앗기지 말고 영적 생명길 걷는 일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남자만 죽이게 했습니다. 남자가 있으면 이스라엘의 아들이 나고 내내 이스라엘 자손이 계승되어 내려가지만 남자만 죽여 놓으면 여자는 애굽 사람과 살면서 애굽 사람을 낳는 애굽 이용물이 되는 것이니, 이스라엘 남자만 없애 놓으면 이스라엘이 다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생명의 역사가 있고 진리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생명력이 있으면 남자입니다. 성별로 남자 여자니 할 것 없이 다 남자입니다. 그러한 남자들을 마귀가 죽이려고 합니다. 생명의 역사가 없는 신자는 마귀의 이용물로서 잠자고 조는 신자들, 세속화된 신자들, 성경 말씀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나가는 신자들은 전부 다 남자가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마귀가 “잘 잔다 졸고 졸아라. 넌 내 것이다. 내 아내다. 내 물건이다. 네가 나의 아들을 낳아줘야 한다.”하면서 마귀가 좋아합니다. 그러나 생명 있는 신자, 말씀대로 나가는 신자, 양심을 똑바로 쓰고 나가는 신자는 마귀가 아주 싫어합니다. 따라서 기도 생활, 말씀 생활을 뺏기면 안 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순위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생명의 길을 걸어 나가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5. 공정한 저울과 되를 쓸 것

본문 13-15절에, “너는 주머니에 같지 않은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같지 않은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장구하리라”고 했습니다. 공정한 저울추를 가지고 달아야 되고 말도 공정한 말을 가져야 합니다. 말을 두 개 만들어,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게 만들어 집에 두고 살 때는 큰 것으로, 팔 때는 작은 것으로 하면 하나님께 죄짓는 것입니다. 진짜 참기름이라고 있는데 ‘진짜’가 왜 붙습니까? 또 진짜 꿀도 많이 나왔습니다. 진짜 꿀, 진짜 참기름, 진짜 고추, 진짜 외제 같은 말은 가짜가 많다는 반증입니다. 양심을 똑바로 쓰고 원리 원칙에 서서 공정하게 모든 것을 해야겠습니다. 큰 추와 작은 추를 두고 자기에게 유익될 땐 큰 추를 달아 사오고 팔 때는 작은 추로 달면 양심을 삐뚤게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 있어서 신앙양심을 써야 하므로 자기 유익을 위해서 양심을 삐뚤게 쓰고 가책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공정해야 합니다. 공정한 데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공정하게 하지 않은 것은 죄이고 불의한 일인데, 불의한 일엔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판단도 공정하게 하고 모든 처리도 공정하게 하는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6. 아말렉의 이름을 도말(塗抹)할 것

본문 17-19절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원운동을 방해하는 것을 도말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약한 자들이 피곤해서 뒤에 쳐졌는데 아말렉이 잔인하게도 그들을 쳤다고 했습니다. 약한 자를 도와줘야겠는데 오히려 그 사람의 약점을 틈타 친 것은 하나님이 벌하십니다. 소자 하나를 실족하게 한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빠치우는 것이 낫다는 말과 같습니다. 소자, 뒤떨어진 사람, 약한 사람, 달음박질 못하는 사람, 힘이 없는 사람을 붙들어 주고 도와주고 힘이 나게 하여야겠는데 더 약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벌 받습니다. 내가 약할 때 더 약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아예 도말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친구도 아니고 친척도 동창생도 부모도 아니고 고향사람도 아닙니다. 내가 연약할 때 도와주는 사람, 힘이 나게 만드는 사람이 내 모친이고 동생이고 자매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연약할 때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신앙으로 이겨내게 만들고 힘써 달음박질 하게 만들고 용기를 내도록 도와 줘야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자꾸 눌러서 못 나오게 하면 사람이 죽는 것처럼 시험에 든 사람을 자꾸 괴롭히면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들을 도와줘야 합니다. 상처 난 곳을 싸매주고 기름으로 발라 유하게 해줘야 합니다. 사마리아인이 죽게 된 사람을 나귀에 태워 주막에 데려가 데나리온 둘을 주면서 다 고쳐주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습니까? 그러므로 마귀에게 상처를 받고 연약하여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도와줘야 합니다. 어떤 희생을 해서라도 그 사람을 싸매주고 도와서 일으켜 세워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일이 잘되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약할 때 와서 더 약하게 만드는 사람은 천하에서 도말하고 마귀의 종이다 생각하고 사람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도 마귀의 종노릇할 때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신 것처럼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마귀 종노릇 하는 사람들을 분별하 제거하여 힘 있게 달음박질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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