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4일 월요일

요한일서 4:7-16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한일서 4:7-16

7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13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15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1. 중생한 자는 아가페 사랑이 나옴

본문 7-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랑은 아가페의 거룩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이성적(에로스)이거나 우정적(필리아) 사랑이나 동족적(스톨게)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인간적인 사랑에서 벗어나 아가페의 거룩한 사랑을 발휘하여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나서”는 중생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 거룩한 사랑을 하는 것은 중생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됩니다. 중생한 자는 그 영에서부터 거룩한 사랑이 쏟아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부패성이 방해하면 사랑이 나타나지 않으며, 부패성이 방해하지 않으면 계속하여 사랑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중생한 영이 물과 성령으로 났으며 그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본문8절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라고 하였는데, 7절에는 하나님을 아는 자에 대해서 말했고, 8절에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중생하지 못하고 영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영에서는 사랑이 나올 수 없고 하나님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 구원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영원한 사랑을 주시기 위해 성도를 선택하셨고, 독생자를 보내어서 대속해 주셨고, 사랑으로 성도를 불러서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그릇입니다(롬 9:23-24).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

본문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신 사랑은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피조물 되는 인간들을 살리시려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에게 인간의 죄를 대신 지워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심으로 나타났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사랑은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이에서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가 살리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독생자를 주신 사랑은 하나님이 최고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주신 것입니다.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삼으셨음

본문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한 것입니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 주셔서 화목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길이와 넓이를 측량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큰 사랑을 언제나 깨달아야 됩니다. 에베소서 3:18-19에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 하면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얼마나 큰지 측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가 한정이 없고, 길이가 한정이 없고, 높이가 한정이 없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사랑이 속에서 나옴

본문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친분이나 인정과 동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성도의 거룩한 아가페 사랑이 아니고, 인본주의 사랑입니다. 성도의 사랑은 거룩한 아가페 사랑이어야 합니다. 아가페 사랑이 속에서 넘쳐 나와 다른 사람에게 나눠 주어야 됩니다. 그 사랑으로야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도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속에 없는 증거입니다. 사랑이 속에 있으면 밖으로 나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것이 속에 있으면 그 사랑이 나오게 됩니다. 안 나오는 것을 보니까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마귀는 사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은 이간 붙이는 것, 원수 되게 하는 것 등입니다. 또 더러운 생각 등을 주어서 사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것들은 다 마귀가 주는 것인데, 이런 것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이기고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증거입니다.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 마귀에게 붙잡힌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

본문 12-15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성도가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들 간에 거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믿음으로 거룩한 사랑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 안에서 온전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성도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여야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서 온전해집니다.

베드로전서 4:8에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면 허다한 죄가 덮어지고, 사랑하지 아니하면 허다한 죄가 자꾸 발견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죄가 자꾸 발견되고, 못하는 것만 보이게 되면 자기에게 사랑이 없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면 다른 사람의 결점을 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결점이 있어도,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말을 빨리해서 좋은 때도 있겠지만,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말을 빨리 안하면 실수를 안 했을텐데 말을 빨리 해서 실수를 했습니다. 어제 심방을 갔는데 심방 간 집의 남편은 영감인데, 젊은 여자 하나를 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따님이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합니다. 그 뒤로 알아보니까 딸이 아니고 부인입니다. 부인을 보고 딸이냐고 했으니 얼마나 실례입니까? 말을 안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괜히 물어본 것입니다. 부인이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또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말 안하는 것이 유익이 많습니다.

이와 같이 누구나 좋은 점도 있고, 좋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좋지 않은 점을 보고 미워하지 말고, 좋은 점을 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다 좋은 점이 있습니다. 이것을 못하는 사람은 저것을 잘하고, 저것을 잘하는 사람은 이것을 못합니다. 다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이 있는데, 좋은 점을 보고 서로 사랑하고 좋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좋지 않은 점을 보고 틀렸다고 하며, 미워하면 마귀가 역사합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작은 아들의 좋은 점을 보고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나쁜 점을 보았다면 때려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이 나가서 재산을 다 탕진하고 거지꼴로 돌아 왔으니, “너는 나하고 원수이다”하며 내쫓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의 좋지 않은 면을 보지 않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좋은 면을 보고 용서해 주고, 사랑해주고, 영접하고, 씻기고, 의복을 갈아입히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해주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남의 좋은 점을 보고 서로 사랑하고 좋게 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고 믿습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그 영이 하나님 안에 거하여 안식과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서도 그 성도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며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하면 하나님 안에 들어 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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