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4일 월요일

요한일서 5:1-3 신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신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임
요한일서 5:1-3

1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1.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중생의 증거임

본문 1절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난 자’라고 하였는데, 났다는 것은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 난 것이 거듭난 것입니다. 그래서 ‘난 자’라 하면 예수 믿는 사람, 중생한 사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을 말하며, 이들을 하나님께서 구해서 났습니다. 중생했다는 말씀입니다. 중생한 사람, 즉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다 사랑합니다. 이유는 다 하나님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 하나님의 것이니까 다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중생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면 중생한 것이고, 안 믿어지면 중생하지 못한 것입니다. 믿어지면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말씀입니다.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새로 났다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 된 증거도 또한 믿어지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인가, 택한 백성이 아닌가?’도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자는 중생한 자입니다. 택한 백성입니다. 죽을 때까지 안 믿으면 그것은 중생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불택자입니다. 택자와 불택자는 믿는지 안 믿는지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믿어지면 택자이고, 안 믿어지는 사람은 불택자입니다. 거듭난 증거는 무엇이냐 하면 믿어지는 것이 거듭난 것입니다. 안믿어지면 거듭나지 못한 것입니다. 믿어지면 거듭난 것이요, 택한 백성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또한 그리스도에게서 난 사람을 사랑합니다. 거듭난 영혼으로 사는 사람은 같이 거듭난 사람을 사랑합니다. 한 생명이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같이 받았으니까 또 그리스도의 한 지체이니까 성도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니까 그 지체도 사랑하는 겁니다. 그 몸도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계명이 무겁지 않음

본문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또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말씀입니다. 또 계명을 사랑해서 계명을 지키면, 계명이 무겁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하면 무겁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업고 다닐 때 손자가 한 20kg 나간다고 하면, 사랑으로 업고 다니니까 힘든 줄 모르고 잘 업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무겁게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돌멩이를 20kg 짜리 업고 다니라고 하면 할머니가 업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조금 업고 내려놓고는 허리가 딱 부러져 죽겠다고 할 것입니다. 돌멩이 20kg 짜리는 못 업고 다니지만 손자는 잘 업고 다닌다는 말입니다. 힘들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 힘들지 않지요? 사랑하니까 힘들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면 힘들 것도 힘들지 않습니다. 억지로 하면 가벼운 것도 힘이 듭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사랑으로 하면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무거운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사랑으로 하면 쉽습니다. 왜 쉬운가 하면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세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세계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면 자기 세계의 것이 되므로 그것이 쉽습니다. 물고기가 강이나 바다에 들어가면 가기가 쉽지만, 육지에 나오면 가기가 힘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세계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세계에 닿은 성경말씀은 지키기가 쉽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의 세계가 자기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딱 들어맞고 좋고, 그대로 하면 시원하고 기쁘고 즐겁습니다. 물고기가 물에 들어가 헤엄치면 힘들겠습니까? 힘이 하나도 안들 것입니다. 꼬리를 슬슬 치며 쉽게 헤엄치며 힘 드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예수 믿는 것이 아주 쉽습니다. 또 성경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주 쉽고 즐겁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경말씀대로 하는 것이 힘이 들고 억지로 하기 때문에 죽을 지경이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봉사할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쉽게 하는 것이지 억지가 아닙니다. 하고 싶어서 하고, 하라면 좋아하고, 다른 사람보다 먼저 하려 하고, 즐거움으로 합니다. 억지로 봉사하는 사람은 낙제입니다. 봉사하라고 하면 “나는 안 나가. 다른 사람이나 나가라.”고 합니다. 기도원 봉사하라면 안 나가며, 다른 사람이나 나가라고 한답니다. 봉사하라면 기다렸다가 “예” 하고 나와야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운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예배당 처음에 지을 때 봉사하러 많이 나왔습니다. 박원옥이라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학생이었습니다. 매일 나와서 풀무를 붙였습니다. 돌을 깨기 위해 정을 갈아야 했는데 풀무에 석탄을 넣고 매일 불을 붙였습니다. 누가 나오라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나온 것입니다. 기쁘고 즐거움으로 봉사했던 것입니다. 왜 즐거움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그 사랑의 세계에 들어갔으니까, 그 세계가 자기의 세계이니까, 자기가 좋아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서 좋아서 왔다 갔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 왔다, 저기에 갔다 하는 것입니다. 올라 왔다 내려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세계에 못 들어가면 전부 억지입니다. “또 하라고 하나? 아, 힘들어 못 하겠다. 또 연보 하라고 하나? 힘들어 못 하겠다.” 하는데, 사랑하면 또 하자고 합니다. 하자고 자꾸 합니다. 왜 요새 연보 안 하냐고 합니다.

지달웅 목사가 창광교회에 집사로 있을 때에, 건축연보를 매년 하니까 좀 그만 두자는 여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건축 연보를 그만 두려고 했는데, 지달웅 목사가 내게 계속하자고 했습니다. 열심을 내서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마음을 바꾸어 해마다 연보해서 우리가 예배당 건축도 하고 기도원 건축도 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신학교나 성경 번역하는 것을 교단적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하자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사라고 합니다. 그런 목사가 필요합니다. 교단적으로 무엇을 할 때에도 앞장서서 나가면서 하자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바람에 지달웅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자는 것이 자기의 세계입니다. 안 하자는 것은 믿음에서 떠난 세계이고, 하자는 것은 믿음 안에 있는 세계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