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누가복음 16 :1~13
누가복음 16 :1~13
1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뇨 6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1.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
불의의 재물
세상 재물은 불의의 재물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 재물이 왜 불의의 재물인가? 그 이유는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사람들이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불의의 재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역대상 29:11-12에,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며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라고 그랬고, 시편24:1에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
호와의 것이로다”라고 그랬습니다.
전부 다 여호와의 것인데 여호와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다 불의의 재물입니다. 사람은 청지기라고 그랬습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다 청지기입니다.
본문 1-2에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천지만물이 다 주의 것이고, 우리는 주님의 것을 임시로 맡아서 주님의 심부름을 하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라는 말은 종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다 종입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올 때에 우리는 빈 손들고 왔고 갈 때도 빈손 들고 세상을 떠나갑니다. 천지만물은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또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장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가지고 있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을 위해서 있는 자이고 또 주인의 뜻대로 맡은 모든 것을 사용해야 됩니다. 자기 생각, 자기를 위해서 제 뜻대로 사용하는건 불의한 청지기입니다. 그건 도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다 주의 것임을 알고, 우리는 주님의 청지기로서 가진 것을 임시로 맡아 있다가 주님이 어느 곳에 지출하라 하시면 지출하고, 무엇에 사용하라고 하시면 거침없이 우리는 순종해서 사용해야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해야만 되겠습니다.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를 해고하고자 함
그런데 본문에 이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주인의 귀에 들렸다고 그랬습니다.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습니다. 주인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의 뜻대로, 자기를 위해서 그 맡은 바 재물을 사용했습니다. 주인이 볼 때 그것을 허비한 것입니다. 청지기 노릇을 잘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의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청지기 노릇을 오래 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불러가시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범죄 한 이후로 모든 사람이 다 범죄 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얼마 살다가는 하나님께서 다 불러 가십니다. 그렇게 얼마 살다가 청지기 일을 결산하고, “이제는 청지기를 그만 두고 나가라, 세상을 떠나라” 이런 명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청지기로써 얼마동안 일 하다가, 이 세상에서 청지기 노릇을 계속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서 청지기를 내놓고 가게 되어있습니다.
주인이 그럴 때에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하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청지기 쫓겨 난 다음에 무엇을 해 먹어야 되나?’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직 그 일에서 나간 것이 아닙니다. 기간이 남았습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로운 대책
이제 얼마 있다가 ‘청지기 내놓고 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지는데, 그럼 ‘내가 청지기 내놓고 나가면 무엇을 해 먹어야 되겠나,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고 어떻게 해야 될까?’하며 많은 생각을 하다가,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 하리라’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하고 청지기가 물어보니까 “기름 백 말이니이다”하고 답변을
했습니다.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서 오십이라고 쓰라”며 청지기가 말합니다. 또 한 사람을 불러다가 “너는 얼마나 빚졌냐?” 하고 물어보니까 “나는 밀 백 석이니이다”하고 말했습니다. “빨리 앉아서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이렇게 청지기가 해 놓았습니다. 아직도 주인의 금고가 자기 손에 다 있습니다. 열쇠도 자기 손에 다 있습니다. 또 금고 안에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모든 차용증서는 아직도 청지기가 다 관할하고 있습니다. 이제 청지기가 얼마 안 있으면 열쇠, 금고 다 내놓고 나가야 되겠는데, 나가기 전에 아직도 자기에게 모든 권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빚 진 사람들을 불러왔고, 그리곤 불러다가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무개입니다”. “당신은 우리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습니까?”. “기름 백말입니다”. 금고를 열고 차용증서를 보니까 그 사람 이름이 나왔습니다. “이것 당신 것이 맞습니까?”. “기름 백말 맞습니다”라고 그러니까, “그럼 여기 백말을 오십이라고 고치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백말을 오십이라 고쳐놨습니다. 그리곤 주인의 도장이 있으니까 도장도 다 찍어 놨습니다. 빚진 사람의 도장도 다 찍었습니다. 그 다음도 다른 사람을 불러다가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가?”. “아무개입니다”. “우리 주인에게 얼마를 졌느냐?”. “밀 백석입니다”. 금고 열고 그 사람 차용증서 보니까 밀 백석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당신 것인가?”. “예, 제 것입니다”. “이걸 팔십 석이라고 쓰라”고 했습니다. 백석을 팔십 석이라고 고쳐서 주인의 도장도 찍고, 그 사람 도장도 찍어서 다 고쳐놨습니다.
왜 청지기가 이렇게 했냐 하면, 이제 이 집에서 쫓겨난 다음에 그 사람한테 달라고 하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찾아가면 백만을 오십만으로 해 줬으니까 오십만을 탕감해 준 것 아닙니까? 오십만을 탕감해줬기 때문에 그 집에 가면 그래도 ‘한 열 말이나 스무 말은 주지 않겠나?’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밀 이십 석을 탕감해준 집에 가면 못해도 열석이나 다섯 석은 주지 않겠나 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다 이렇게 해 놨습니다.
이제 쫓겨 난 다음에 그 빚진 사람 집들 다 찾아가서 “나 청지기 쫓겨났습니다. 당신네 사정 봐 줬지만 여러 가지 때문에 쫓겨났는데 이렇게 형편없이 됐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얼마씩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 가지고 살려고 이렇게 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불의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불의한 청지기라고 아예 처음부터 기록해놓았습니다. 불의한 일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또한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이지만 그 일만은 지혜롭게 했다는 말입니다. 청지기 그만두고 쫓겨 난 다음에 먹을 궁리를 다 해 놓았습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입니다. 사건은 불의한 일이지만은 청지기 그만 두고 나가서 먹고 살 궁리 해놓은 것만은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한 가지만 말하는 것입니다. 옳지 않은 그 일을 본받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이 잘못 해 놨다는 것을 말해 놓았지만, 쫓겨 난 다음에 가서 자기 살 것을, 권한이 있는 동안, 청지기 그만두기 전에 다 해 놓았다는 이것만 지금 가르쳐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 방법은 우리가 본받으면 안 됩니다. 이 사건은 불의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집에서 쫓겨 난 다음에 자기 살 예산을 다 해놓은 것, 살 궁리를 다 해놓은 것, 가서 살 일을 다 해놓은 것, 이것만은 지혜로운 일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그것 하나만 본받아야 됩니다.
2.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내세를 준비하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청지기노릇 하고 있다가 ‘청지기 그만 두고 세상을 떠날 때, 떠난 다음에 내세에 가서 다음 세상에 가서 살 모든 준비를 다 해 놔라’ 하는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청지기 노릇 하고 있다가 얼마 안 있으면 다 내놓고 가야 되지 않습니까? 요즘도 청지기 내놓고 가는 사람 많습니다. 우리 교인 중에서 지난주 간에도 청지기 내놓고 가셨고, 어제 그저께도 청지기 내놓고 가신 분 있고, 늘 그렇게 갑니다. 세상 떠나서 내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서 살 궁리를 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가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현재 내가 청지기의 권한이 있고 내 재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그 동안에, 세상을 떠나서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살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을 수 있을 때 다 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걸 여기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가서 살 궁리를 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가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현재 내가 청지기의 권한이 있고 내 재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그 동안에, 세상을 떠나서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살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을 수 있을 때 다 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걸 여기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예수님을 사귀는 법
우리에게 준 재물, 우리에게 준 권한이 있을 때에 내세에 가서 있을 준비를 하라셨습니다. 청지기로서 일 끝마치고, 세상 떠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살 만한 모든 준비를 다 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에 우리가 얼마나 해 놨는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늘나라에 가서 있을 모든 준비, 가서 쓸 만한 준비를 해 놨는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는 말은 예수님을 사귀라는 말입니다. 친구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사귀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1) 재물이 다 주의 것으로 알아야 한다.
불의의 재물을 가지고 예수님을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첫째는, 재물은 다 주의 것인 줄로 아는 것이 첫째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내 것이 아니다. 이걸 첫째 알아야 됩니다. 남의 것을 가지고 남의 것인 줄로 알아야 되는 데, 제 것인 줄 알고 있으면 도적입니다. 그렇게 되면 친구가 사귀어 지질 않습니다.
첫째는, “ 저 분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고 예수님의 것이다”, 우리의 재물 다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양심 똑바로 쓰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도 “네 생각이 바로 됐다. 사람이 참 바로 됐다”고 생각 하실 것 아닙니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고 앉아 있으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도적으로 취급하실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제일 기본자세가 바로 되어야 되는데, 청지기의 기본자세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재물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맡아가지고 있긴 있지만 이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아는 것이 기본자세입니다. 재물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으라는 말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본자세입니다. 제 것인 줄 알고 있는 자체가 양심삐뚤게 쓰는 것이고, 욕심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기에 친구를 사귈만한 증거를 삼을 정도가 되질 못 합니다.
친구를 사귀려면 친구 것을, 친구 것으로 알아야 친구를 사귀지 어떻게 친구를 사귀냔 말입니까? 예를 들어 친구가 외국에 갈 때 자기집을 임시로 좀 빌려 줬다고 합시다. 외국에 가서 여러 해 있는 동안에 무슨 수단을 써서 그 집을 자기 것으로 등기 다 이전시켜놓았다고 합시다. 또 무슨 일이 있으면 내 것으로 대신 다 해 달라고 도장까지 맡겨놓았습니다. 도장도 있고 하니까 인감 띄어가지고 그 집을 자기이름으로 다 넘겨 놨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 해 만에 친구가 왔는데 친구로 사귈 수 있습니까? 반갑다고 나가서 비행기 앞에서 영접했습니다. “아, 음식점에 가자”고 “고급 음식점에 가서 한턱 잘 내겠다”고, 그래서 친구가 “내 집 어떻게 됐나?” 하면 “뭐 어떻게 되긴 등기 다 내 이름으로 넘어 와서 내 것 삼았지” 그러면 아무리 대접을 잘 하고, 아무리 뭐 송아지 잡아서 한 마리를 대접하고 별 대접을 잘 해도 그 친구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친구 것은 아예 친구 이름으로 놔두고 그 다음에 가서 사귀면 얼마나 사귀기 좋습니까? “얼마나 수고가 많았나, 내 집 봐주느라고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느냐?” 친구가 많이 생각해 줄 것이고 이다음에 집 팔면 수고 했다고 한 몫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남의 것을 제 것으로 삼아 놓는 것은 친구를 사귈 무슨 정도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그저 “내 것이 아니고 주인의
것이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주인의 것이다. 나는 청지기다”하는 이 자세부터 먼저 바로 세워야만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사귈 수가 있겠습니다.
2) 주인의 명령대로 사용해야 한다.
둘째로는, 친구를 사귀려면 주인의 명령대로 그걸 사용해야 됩니다. 주인의 것을 맡아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주인이 “아무데 좀 써야 되겠다” 하면, 써야 주인이 기뻐하지 주인이 얼마 좀 저기 쓰라고 하는데 안 쓰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면 주인이 다 토라집니다. 그러면 친구하고 대적이 되겠는데 어떻게 친구를 사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주인의 것을 맡아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인이 무엇에 좀 필요하니까 써야 되겠다고 하면 “예”하고 주인의 것을 갖다가 써야 됩니다.
돈 통을 가져다가 주인이 쓰라는 대로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보험을 내라고 하면 보험도 내야 되고 무엇에 쓰라 하면 무엇을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내 재산 절반을 저기다 갖다가 쓰라 하면 저기다 써야 되고,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합니다. 다 쓰라고 하면 또 다 써야 합니다.
돈 통을 가져다가 주인이 쓰라는 대로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보험을 내라고 하면 보험도 내야 되고 무엇에 쓰라 하면 무엇을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내 재산 절반을 저기다 갖다가 쓰라 하면 저기다 써야 되고,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합니다. 다 쓰라고 하면 또 다 써야 합니다.
협력하는 사람은 주님을 사귀는 것이 됩니다. 주께서 이제 맡겨 주셨으니까 감사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 위해서 이걸 사용하려고 한다. 그 다음에 주님이 하는 일에 협력하고 보조하고 주님의 일에 주의 것을 가지고 협력하고 보조 하는 일 이걸 잘 해 나가면 그 주인이 기뻐서 그 친구가 더욱 더 깊은 친구가 됩니다. 예수님의 일에 협력하고 예수님의 일에 봉사하고 예수님의 일을 위해서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용하면 주님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자기를 협력해 주는 것이 얼마나 좋고 자기의 마음과 정성을 다 바치게 얼마나 기뻐서 더욱 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랬습니다. 재물을 가지고 예수님을 사귀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가지고 잘하면 예수님을 사귈 수 있습니다. 좀 더 깊이 사귀고 예수님께서 좀 더 기뻐하시는 자가 될 수 있고, 좀 더 예수님의 그 뜻을 잘 이루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사귀는 데 재물을 사용하는 자가 지혜로움
본문 8절에,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그랬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과 ‘빛의 아들’, 빛의 아들들보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빛의 아들과 이 세대의 아들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빛의 아들’은 예수 믿는 사람을 가르치고 ‘이 세대의 아들’은 안 믿는 사람을 가르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왜 빛의 아들이라고 했나 하면 빛에 속해 있기 때문에 빛의 아들이고, 또 빛 가운데 거하기 때문에 빛의 아들이고, 빛을 세상에 나타내기 때문에 빛의 아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5에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빛에 속해 있습니다. 빛은 무엇을 가르치나 하면 하나님의 빛, 영적 빛, 진리의 빛을 가르칩니다. 어둠이라는 것은 하나님도 없고, 진리도 없고, 영적면도 없고, 죄만 있는 것이 어두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벌써 빛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고, 영적 세계에 사는 것은 벌써 빛의 세계에 들어 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 믿음으로 영접한 것은 벌써 빛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고, 그것이 빛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가 빛입니다. 또 진리가 빛입니다. 하나님이 빛이십니다. 요한 1서에 보면 “하나님은 빛이시니 털끝만치도 어두움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비취신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요, 그리스도가 빛이요, 진리가 빛입니다.
중생한 영이 빛인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 했으니까 빛을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니까 빛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또 영적으로, 말씀대로 사는 것은 빛 가운데 사는 사람, 성령의 인도와 말씀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빛 가운데서 사는 사람입니다. 빛 가운데서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을 통해서 빛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진리대로, 또 믿음으로, 영적으로 살면 이 세상에 빛으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빛의 아들입니다. 빛의 아들 얼마나 밝습니까? 하나님도 알고, 예수님도 알고, 천당을 알고, 영적 영혼을 알고, 성령을 알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말씀대로 살고 이게 전부 다 빛입니다. 믿는 사람은 전부 빛 가운데 있다는 말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전부 어두움에 있습니다.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예수님도 알지 못하고, 죄도 알지 못하고, 의도 알지 못하고, 또 천당도 알지 못하고, 자기 속에 있는 영혼도 알지 못하고 전부다 어두움에 쌓여 있습니다. 그러다가 내세도 알지 못하고, 지옥 가는 것도 모르고 지옥 가는 것입니다. 몰라도 지옥 갑니다.
안 믿는 사람은 어두움에 속했고 예수 믿는 사람은 빛에 속했습니다. 그러니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빛하고 어두움하고 마주해 보면 통하지가 않습니다. 빛이 하나도 없으니까 전부 세상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믿는 사람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고 전부 진리의 것이고 영의 것이고 전부 예수님의 것입니다. 믿는 사람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세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그랬는데, 이 세상에 있어서 ‘이 세대의 아들’, 즉 말하면 안 믿는 사람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그랬습니다. 이 세상 흐름만 보면 믿는 사람보다 안 믿는 사람이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런가 하면 내세를 준비하다 보면 이 세상에서 손해를 많이 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내세를 모르니까 하나님도 모르고 전부 자기 볼 장만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볼 장을 안 보고 내세, 하나님의 나라 여기를 표준으로 삼기 때문에 세상 적으로 볼 때는 안 믿는 사람이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7-8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삼백 데나리온어치 향료를 갖다가 부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한 사람이 하루 일한 고가니까 한 사람이 하루 나가서 만원씩만 번다고 해도 삼백 데나리온이면 삼백만원이고, 이만 원씩 벌면 육백만원입니다. 요새 장정이 나가서 하루 얼마 받습니까? 만 오천 원? 만 오천 원 삼백 데나리온 이면 얼마입니까? 사백 오십 만원, 마리아가 사백오십 만 원짜리 향료를 예수님의 머리에 갖다가 다 쏟아 부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볼 때 “그 얼마나 허비하느냐 어리석다. 그 많은 돈, 사백 오십 만원 어치나 되는 향료를 갖다가 예수님의 머리에 몸에 쏟아 부으면 몸에 흘러서 발까지 내려갔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이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백 오십 만원이나 되는 돈을 이렇게 허비 하느냐, 예수 믿는 사람도 믿음 안 쓰는 제자들은 이렇게 비방을 했습니다. ‘아 사백 오십 만원이나 되는 돈을 갖다가 저금을 해두든지, 아니면 자기를 위해서 사용 하든지 했으면 얼마나 좋을 뻔했는데, 그
걸 갖다가 허비하느냐’ 생각을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그것을 허비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니까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갖다가 예수님께 부었으니까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는 지혜가 없어 보입니다. 허비했으니까 지혜가 없는 것 아닙니까?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는 ‘자기 것으로, 자기를 위해 사용했으면 자동차나 하나 사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것 무엇을 하나 사든지 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것을 무엇 때문에 갖다가 허비하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이 세상 편으로만 보면 안 믿는 사람이 더 지혜롭습니다.
내세적으로 보면 믿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사용한 것은 하늘나라에 쌓아지는 거니까, 이제 마리아는 이다음에 삼백 데나리온 어치 부은 것이 하늘나라에다가 지금 다 쌓여지는 것입니다.
허비한 것 아닙니다.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예수님에게 만족을 시키고 예수님 구원운동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 보면 아주 큰 보화로 상급으로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 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세대에 있어서는, 즉 말하면 이 세상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세를 표준으로 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을 사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많은 희생도 하고, 손해도 보고, 믿는 사람이 낮아지기도 하고, 또 믿음 지키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믿음 지키다가 직장을 빼앗기기도 하고, 믿음 지키다가 산업을 빼앗기기도 하고, 믿음 지키다가 멸시와 천대를 받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영이 살고 내세에 가서 영원한 상급을 받으려고 믿는 사람이 그렇게 희생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는 그게 어리석은 일입니다. ‘뭣 때문에 그렇게 쫓겨납니까?’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좋은 직장, 돈 많이 벌고 대접 잘 받는 직장인데 그걸 뭣 때문에 내놓고 주일날 하나 지킨다고 해서 좋은 직장 내놓고 직장 없이 돌아다닙니까?”, “예수님 믿는다고 제사 안 한다고 하다가 매 맞고 쫓겨나고 그 얼마나 어리석게 돌아다니나” “제사상 차려 줬으면 대접 잘 받고 존경을 받을 것인데 왜 이렇게 됐는가”라고 말합니다.
또한 믿음 지키다가 감옥에 가고, 주기철 목사 순교당하고, 이기선 목사 감옥에 가고, 한상동 목사 감옥에 가고, 이런 식으로 많은 매를 맞고 다 쫓겨나고 빼앗기고 희생당하고, 믿음 지키다가 그렇게 하는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내세에 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있는 재산 다 갖다 바치고, 있는 것 다 바치고, 희생하고 또 자기 목숨도 바치고 많은 환난과 핍박을 받고 쫓겨나고 빼앗기고 하는 이것은 예수님을 사귀는 것이고 영이 사는 길이고 내세
에 가서 영원한 복을 받는 길이고, 상급을 받는 길입니다.
그러나 세상 적으로 볼 땐 그것이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다 자기 것으로 삼아다가 그것 가지고 잘 삽니다. 호화생활하고 잘 산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을 볼 때에 빛의 아들들 보다는 이 세대의 아들이 자기 세대에서는, 이 세상 면으로만 볼 때에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 면으로만 볼 때는 어리석은 것이 많습니다. 손해 보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사귀려고 하는 것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갖고 나가는 것이고 하늘에 재산을 쌓는 것
이고, 하늘나라에다 보물을 쌓는 것이기 때문에 내세에 가보면 이것이 유익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4.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귄 결과
본문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하십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잘 사귀면 그것이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세상의 재물을 쌓아 놓고 있어봤자 그것은 없어질 날이 옵니다. 다 내놓고 갈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잘 사귀어 놓으면, 주를 위해서 사용하고 주의 것으로 알고 주님을 사랑하고 바치고 주님의 일에 사용 한다고 하면, 명령대로 사용하면 이것은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가면 세상 다 내놓고 갈 때에 예수께서 영원한 처소로 우리를 하늘나라로 영광스러운 자리로 인도하고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갈 때에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거기 가면 다 있습니다. 다 거기에 가 있습니다.
어떤 혼자 살던 성도가 있었는데, 자기에게 큰 집이 있었습니다. 세상 떠날 때에 하나님께 바치고 갔으면 하늘나라 예수님 앞에 갈 때에하나님이 기쁨으로 영접해 주시고 상급으로 갚아주시고 하늘나라에 다 가 있을 뻔 했는데, “나를 교회에서 장례해 주면 오만 원을 감사연보로 바쳐라”하고 조카보고 집을 팔아서 연보하라고 했습니다. 그때가 한 20년 전인데, 그 때 오만 원을 연보하라고 했습니다. 20년 전인데 집값이 아마 상당히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집값이 상당한 돈이니까 오십만 원 됐는지, 오백만원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걸 팔아서 오만 원 감사연보하고 그 나머지는 조카 너 가지라고 했답니다. 그때는 그 집이 몇 백만 원짜리였는데, 그렇게 하고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에 교회에서 가서 장례를 잘 치러줬습니다. 그런데 그 조카가 그 오만 원을 아직도 바치지 않았습니다. 20년이 지나도록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명륜 교회 나갔었는데,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에 제대로 잘 처리하고 갔으면 하늘나라에 남아있었을 텐데, 무엇 때문에 조카 다 주고 갑니까? 조카에게 그것 안 준다고 해서 못살겠습니까? 또 돈을 바치려면 살았을 때에 바쳐야지 믿음 없는 조카보고 바치라면 바치겠습니까? 결국은 도리어 하나님께 빚지고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는데 하나님께 빚지고 간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고 가면 예수님이 너희를 기쁨으로 영접해 주고 그 공로 자리를 영접해주는 것입니다. 공로가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상급으로 주시는데 하늘나라에 쌓아놓고 갔으니까 거기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나라 갈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5.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됨
그 다음 본문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지극히 작은 것은 물질, 세상 재물을 가르칩니다. 큰 것이라는 것은 영의 것, 신령한 것입니다. 물질이 제일 초기 단계이고 제일 작은 것입니다. 신령한 것은 큰 것입니다.
이 육신 보다는 영혼이 큰 것이고 물질보다는 신령한 것이 더 큽니다. 몇 백만 배 더 큽니다. 그 ‘지극히 작은 문제 때문에 네가 충성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 가지고 안하면, 더 큰 신령한 것 영의 것 그것을 어떻게 하겠나?’ 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하면 큰 것에도 불의 하니라”, 물질이 지극히 작은 것인데 ‘물질에 대하여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큰 것에도 불의 하니라’ 이것은 신령한 면에 대해서도 불의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재물은 불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것으로 삼아 놨으니까 충성하지 않는 자체가 벌써 불의한 것이고 그것을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그랬는데 참된 것이라는 것은 신령과 진리 문제입니다.
재물에 대하여 충성치 않으면, 벌써 이런 사람은 재물에 우상이 된 사람이고 불순종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신령한 면과 진리 면을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셔도 받지 못합니다. 양심을 안 쓰고 그저 불의한 마음을 갖고 욕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한 문제는 그 사람에게는 받아지지 않습니다. 물질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그 사람은 물질을 크게 생각했으니까 말씀보다는 물질이 더 크고, 신령한 것보다는 물질이 더 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신령한 것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참된 것, 신령한 것을 줄 수가 없습니다.
본문 12절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고 했는데, 물질은 남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남의 것인가? 세상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없고, 또 세상에서 남에게 있던 것이 나에게 온 것이란 말입니다. 다 남의 손에 있던 것이 온 것 아닙니까? 또 갈 때는 남에게 넘겨주고 가는 것 아닙니까? 물질은 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저 임시로 하나님께서 주셨다가 이걸 생활하면서 하나님께 쓰라고 주신 것이고, 갈 때는 다 내놓고 가는 것입니다.
물질이 남의 것인데,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고 하시는데, 너희의 것은 무엇인가? 영의 것, 하늘나라의 것, 우리의 것은 영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한 영이 자라나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또 하늘에 쌓은 것, 하나님의 것, 하늘나라의 것, 그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게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고, 하늘에
가서 받아야만 진짜 우리의 것이고, 영혼이 내 것이고, 세상 것은 그저 임시로 가지고 있다가 내놓고 가는 것입니다. 세상 생활은 나그네
생활입니다. 나그네 생활 잠시 끝마치고 다 내놓고 갈 때에, 이제 하늘나라에 갈 때에 신령한 것, 우리 영이 사는 것, 하늘나라 기업 그것은 영원한 우리 것입니다.
남의 것에 충성 해야만 자기 것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왜 그런가? 세상 것을 크게 생각하는 사람은 돈이 우상이 돼서 하늘 나라의 것을 귀중히 여길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물이 우상이 안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더 큰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이 더 크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하늘나라에 쌓는 것이 더 큰 줄을 아는 사람이어야만 하나님의 신령한 것과 하늘의 것을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채워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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