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의 회개와 장자의 잘못
누가복음 15:11-32
누가복음 15:11-32
11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훙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25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웠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작은 아들이 탕자가 되어 나갔다가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장자 맏아들은 집에 있었지만 깨닫지 못한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기 아버지의 사랑, 용서, 아버지가 주시는 풍성한 선물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탕자는 죄 짓고 나가다가 궁핍한 가운데 빠져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맏아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것을 가리켜주는데,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바로서야 되겠습니다.
1. 탕자의 회개
둘째 아들이 탕자가 되어 허랑 방탕함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고 아버지에게 간청을 하므로 아버지가 재산을 각각 나눠주었습니다. 나눠 줄때에 장자는 두 몫을 주고 작은 아들에게는 한 몫을 준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에 장자에게는 두 몫을 주라고 했습니다.
작은 아들이 그 재산을 가지고 멀리 다른 나라에 갔다고 했습니다. 왜 먼 나라로 갔는가 하면 가까이 있으면 아버지가 간섭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쓰지 말아라, 술 먹지 말아라, 주색잡기 하지 말아라 하고 여러 가지로 아버지가 자기에게 대해서 간섭할거니까 잔소리 듣기 싫다 생각해서 마음대로 해보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력을 벗어나서 마음대로 돈도 써보고, 하고 싶은 것 다해보고 방탕도 해보려고 아버지의 품을 멀리 떠나서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했습니다. 주색잡기하고, 방탕이라는 방탕은 다 해보고, 모든 죄는 다 지어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못된 행실도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때는 친구가 상당히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친구 몇 백 명, 몇 천 명, 여자들 사귀고, 술 먹고, 노름하고 그 바람에 재산이 다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탕자가 있는 거기가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 나라 백성가운데 가서 붙어서 살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나라 백성이 “그러면 우리 돼지 치는데 와서 돼지를 먹여라”하였고, 그 탕자는 돼지 치는 직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때 유대나라에는 돼지를 많이 길렀습니다. 몇 백 마리, 몇 천 마리를 들에서 쳤는데 풀을 먹이고 쥐엄 열매 같은 사료를 먹이면서 돼지를 쳤습니다. 그런데 흉년이 들어서 주인이 먹을 것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 탕자가 너무 시장해서 돼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면서 배를 채우려고 했지만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쥐엄 열매는 돼지가 먹는 사료인 모양입니다. 조그만 열매라고 하는데 구역 성경에는 파 껍질로 배를 채우고자 했다고 했습니다. 돼지 먹는 파 껍질, 쥐엄 열매입니다. 사람으로서는 그것 먹고서는 살수 없는 그런 돼지 사료입니다. 그것 먹고 살려고 해야 시장이 면해지지 않고 여전히 시장한 것은 계속되고 그것 먹어가지고는 살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작은 아들이 그 재산을 가지고 멀리 다른 나라에 갔다고 했습니다. 왜 먼 나라로 갔는가 하면 가까이 있으면 아버지가 간섭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쓰지 말아라, 술 먹지 말아라, 주색잡기 하지 말아라 하고 여러 가지로 아버지가 자기에게 대해서 간섭할거니까 잔소리 듣기 싫다 생각해서 마음대로 해보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력을 벗어나서 마음대로 돈도 써보고, 하고 싶은 것 다해보고 방탕도 해보려고 아버지의 품을 멀리 떠나서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했습니다. 주색잡기하고, 방탕이라는 방탕은 다 해보고, 모든 죄는 다 지어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못된 행실도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때는 친구가 상당히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친구 몇 백 명, 몇 천 명, 여자들 사귀고, 술 먹고, 노름하고 그 바람에 재산이 다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탕자가 있는 거기가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 나라 백성가운데 가서 붙어서 살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나라 백성이 “그러면 우리 돼지 치는데 와서 돼지를 먹여라”하였고, 그 탕자는 돼지 치는 직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때 유대나라에는 돼지를 많이 길렀습니다. 몇 백 마리, 몇 천 마리를 들에서 쳤는데 풀을 먹이고 쥐엄 열매 같은 사료를 먹이면서 돼지를 쳤습니다. 그런데 흉년이 들어서 주인이 먹을 것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 탕자가 너무 시장해서 돼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면서 배를 채우려고 했지만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쥐엄 열매는 돼지가 먹는 사료인 모양입니다. 조그만 열매라고 하는데 구역 성경에는 파 껍질로 배를 채우고자 했다고 했습니다. 돼지 먹는 파 껍질, 쥐엄 열매입니다. 사람으로서는 그것 먹고서는 살수 없는 그런 돼지 사료입니다. 그것 먹고 살려고 해야 시장이 면해지지 않고 여전히 시장한 것은 계속되고 그것 먹어가지고는 살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고통이 심하고 시장해서 주려서 죽게 될 것 같아지니까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하는 생각이 이제야 났습니다. 그동안 다 잊어 버리고 있던 아버지 집도 한번 생각해 보고, 전에 살던 것도 한번 생각해 보고 할 때에 무슨 생각이 났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하고 돌아 온 탕자
본문 17-19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도 내 아버지 집의 품군들이 잘 먹고 양식이 풍성하면서 일을 많이 하는 일꾼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쥐엄 열매 많이 먹어도 그것 가지고는 못삽니다. 옛날에 한국에서도 쌀뜨물이나 파 껍질로 배를 채운 때가 있었는데, 쌀뜨물 먹고 사람이 살겠습니까? 그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무슨 생각이 났는가 하면,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라고 했는데, 아버지께 돌아갈 생각이 났습니다. ‘이젠 돌아가야겠다’했습니다. 그 다음엔 무슨 생각이 났는가하면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하늘과 아버지께 죄 지은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 탕자의 집안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집안입니다. 아버지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아버지가 분명합니다.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진짜 회개입니다. 진짜 회개는 아들이라 칭하기를 감당치 못할 줄을 알고 아들의 지위와 권리를 다 내놓은 것이 회개입니다. 자기의 권리, 지위, 세력 다 내놓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이 품꾼의 하나로 사용해주옵소서 하는 품꾼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진짜 회개입니다. 회개는 다 내놓는 것이 회개입니다. ‘내가 뭣이다’, ‘과거에 무엇을 했다’ 이런 것을 다 내놓아야 진짜 회개입니다. 참으로 회개하면 무(無)요 공(空)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의 자리에 내려가는 것입니
다. 품꾼의 하나로 나를 여겨주시옵소서 하는 그게 진짜 회개입니다.
자기 권리 쓰려고 하고, “나는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내 아버지입니다”하며, 또 “이전에 재산 나눠줬지만 1/3만 주지 않았습니까? 절반 내놓으십시오. 같이 나눠야지 왜 날 1/3만 줬습니까?”라고 나오는 그런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자기 권리 쓰고, 자기 지위를 나타내고 자기라는 것을 내세우려고 하면서 아버지에게 따지고 들어오는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라는 것은 다 내놓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컫음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하며, “아들노릇 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아들이 아닙니다, 이제는 품꾼의 하나로 사용해 주옵소서”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를 한마디로 말하면 다 내놓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내놓는 것이 회개이고, 야곱이 베냐민 내놓는 것이 회개이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이방여자와 결혼해서 이방여자 내보내는 것이 회개이고, 자녀를 낳았어도 내보내야 하는데 그것이 회개입니다.
자기의 지위와 영광과 권세와 자존심 이것을 다 내놓게 되는 것이 회개이고, 종의 자리에 내려가는 게 회개입니다. 회개하면 다 종이 되어야 합니다. 종이 되었으면 회개한 것이고, 아직도 “나는 뭐다. 나는 집사다. 나는 권찰이다”하며 가슴 뚝 내밀고 다니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다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다 내어 놓고 종의 자리에 내려가면서 “나는 아들이라 함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나를 사용해 주옵소서”하는 이게 진짜 회개입니다. 회개하는 아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아버지를 떠난 삶의 상태
아버지 집을 떠나서, 아버지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으로 나가서 허랑방탕하고 제 마음으로 해봤지만 그것은 완전 실패였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것은 완전실패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먹을 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돼지와 같이 생활했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면 조금 있던 것도 다 없애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다 없앱니다. 신령한 진리와 은혜가 다 없어집니다. 그 다음에는 돼지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되고, 돼지가 먹는 파 껍질이나 쥐엄 열매를 먹게 됩니다. 사람이 어떻게 돼지 먹는 것을 먹고 살수가 있겠습니까? 아버지 떠난 다음에는 아무리 풍성하게 먹는다 해도 그것은 돼지가 먹는 파 껍질입니다. 배가 안 부릅니다. 하나님을 떠났는데 무슨 배가 부르겠습니까? 항상 영적 배가 굶주리고, 고달프고,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고 있고, 목마르고, 굶주린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을 암만 먹어도 배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신령한 양식을 먹어야 배가 부르지, 아버지 집을 떠나서 신령한 양식 다 잃어버렸는데 무엇을 가지고 배가 부르겠습니까?
세상 것 암만 가지고 가져도 그것은 다 파 껍질입니다. 껍데기입니다. 껍데기 먹고 배부를 수 있습니까? 아버지 집을 떠난 교인이 많습니다. 그들은 껍데기만 먹고 돌아갑니다. 목사들도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서 사는 목사가 있는데, 그것은 교인들에게 껍데기만 먹여주는 목사입니다. 신령한 양식, 알맹이가 있는 양식을 먹여주지 못하고 껍데기만 먹여주는 것입니다. 그 밑에 교인들도 껍데기만 먹고 삽니다. 심령은 언제나 고달프고 곤고하고 가련하고 목마르고 영적으로 갈급합니다.
돌아온 탕자를 품으시는 아버지
탕자는 나는 아들이라고 할 수 없고 품꾼의 하나로만 취급해달라고 해야겠다고 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데 모양을 좋게 하고 돌아오겠습니까? 돼지 먹이다 돌아온 형편에, 파 껍질 먹다 돌아온 형편에 무엇 모양이 좋겠습니까? 꾀죄죄해가지고 거지와 같이 냄새나고 돼지 먹이다가 세탁이나 제대로 했겠습니까? 냄새가 나고 양말이나 신었겠습니까? 머리털이 독수리 머리털 같이 해가지고 돌아올 것 같습니다. 한심하게 해가지고 돌아오는데 멀리서부터 아버지가 보고 자기 아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내 아들이 온다. 그래서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입도 더러울 것 같은데 그래도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이와 같이 큰 줄 알아야 합니다. 돼지 치는 데서 돼지 생활하다가 돌아와도, 먹을 것 먹지 못하고 파 껍질만 먹다가 돌아와도, 보기에 아주 흉하게 하고 돌아와도 아버지의 사랑은 멀리서 바라보다가 “내 아들이 돌아오는구나!” 하고 너무 기뻐서, 불쌍히 여겨서 달려가서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버지 마음입니다. 잘못한 것 때문에 미워할 것 같은데 잘못하는 아들을 더욱 불쌍히 여겼습니다.
우리도 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잘못하는 사람을 보고 더욱 불쌍히 여기고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 돈 다 없앴지. 넌 모양이나 꼴이 그 꼴인가. 의복이 뭔가? 무슨 냄새 피고 돌아왔냐? 머리카락이 그게 뭐냐 독수리 털처럼 해가지고”하며, 재산 다 없앴다고 책망 하는 게 이치로 말하면 옳습니다. 그러나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야 합니다. 그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다른 형제가 잘못할 때에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그게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돈 없앴다고 생각하면 밉지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면 또 얼마나 불쌍합니까? 전에 귀공자로 자란 아들이 이제 이런 모양이 되었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돼지 생활하다 돌아왔으니 참 불쌍합니다.
잘못하는 사람을 보고 미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 얼마나 불쌍합니까? 잘못하니까 이제 가다가 함정에 빠질 것이고, 잘못하니까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할 것이고, 잘못하니까 징계 받을 것이고, 잘못 하니까 가다가 이제 그 대가를 받을 것이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하는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만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 탕자가 와서 말하기를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사용해 달라고 하였지만 아버지께서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고선 잔치하며 즐거워했습니다.
2. 맏아들의 잘못
본문 25-30절에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웠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근심하게 함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나고, 잃었다가 얻었다고 아버지가 대단히 기뻐하는 날인데, 이날 아버지의 마음을 근심하게 한 아들은 맏아들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좀 더 기쁘게 하고 같이 기쁨에 동참해야 되겠는데 이 좋은 날에 왜 아버지의 마음을 근심하게 했는가 말입니다. 그리고 남들은 다 즐거워하는데 이 좋은 날에 왜 노했는가 말입니다. 근처사람은 다 즐거워하고, 아버지도 즐거워하는데 이 맏아들은 노했습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권면하도록 까지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섬김
누가 맏아들이 이럴 줄 알았겠습니까? 생각 밖으로 맏아들이 삐뚤어졌습니다. 왜 삐뚤어졌을까? 맏아들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겼지만 아버지 마음을 잘 모르고 섬겼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제대로 섬긴 게 못 됩니다. 효도를 제대로 못한 셈입니다. 순종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순종을 제대로 못한 것이 다 나타났습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들어가자고 해도 안 들어가고 순종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껍데기로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겼지만, 중심에 들어가 보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섬겼습니다.
이 맏아들은 자기중심적이요, 물질 중심으로서 사람보다 물질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왜 자기 중심인가 하면, ‘나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겼으되’라고 한 것을 보면 압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잘못 섬긴 것은 알지 못하고 자기는 잘했다고 하며 교만하게 말했습니다. 염소새끼 하나라도 주지 않아서 벗과 함께 즐기지 못했다는 것은 자기중심인 것입니다. ‘창기와 함께 재산을 먹어버린 작은 아들 돌아왔다’고 말한 것은 물질중심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섬기느라고 여러 해 동안 명을 어긴 것이 없다고 생각할 만큼 행동했지만, 결국 아버지 마음을 모르고 섬긴 것입니다. 맏아들은 하나님을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잘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다 자기 중심인 것입니다. 염소새끼 하나라도 자기가 먹어야 일이 되는 것이고, 염소새끼 하나 안줬다고 불평하고 원망했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같이 다 먹어버린 작은 아들 돌아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물질중심입니다. 물질보다 형제가 귀하고, 형제보다 부모가 중요하고, 부모보다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물질을 잃는 것은 조금 잃은 것으로 생각하고 형제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를 잃는 것은 더 많이 잃는 것이고, 하나님을 잃는 것은 전부를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거꾸로 된 것입니다. 물질이 첫째이고 자기가 첫째입니다.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중심, 물질 중심, 아무리 하나님 섬긴다고 해도 하나님의 마음도 모르고 형제를 귀히 여길 줄도 모르고, 형제가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가 나왔는데 이것을 기뻐하지도 않으니 얼마나 이 맏아들이 잘못되었습니까?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음
아버지께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 잘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탕자도 하나님과 부친께 죄를 얻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아버지께 잘못한 것은 동생에게도 잘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효도를 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도 효도를 해야 합니다. 부모를 잘 공경해야 합니다. 군사부일체라고 했는데, 나라의 왕이나 스승을 잘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동생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르반 사상이라고 바리새교인들에게 있었는데 부모에게 드릴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로하는 사람은 부모에게도 바로하고 부모에게 바로 하는 사람은 형제에게도 바로 합니다. 믿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 것이고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못 되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바로 되겠습니까? 또 형제와 바로 못되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바로 되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못하는 자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는 것이 거짓말이라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보이는 형제에게와 부모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바로 해야합니다.
많은 복을 받고 있음을 깨닫지 못함
맏아들이 깨닫지 못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맏아들이 자기에게 아버지가 준 복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 복을 맏아들은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자기 동생보다 더 많은 복을 받고 있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맏아들을 ‘본래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본다면, 우리가 큰 복 받은 것을 깨닫지 못하면 안 됩니다. 탕자는 ‘죄짓다가 돌아온 사람’으로 보면, 맏아들이 무슨 큰 복을 깨닫지 못했는가 알 수 있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와 동거하는 것이 큰 복인 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와 동거하기를 여러 해 동안 했다고 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긴 것이 없으되’라고 말했는데, 아버지와 동거하는 것이 복인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거하는 것이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제일 큰 복은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내버려도 나는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이 복이다”라고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6장 마지막 절을 보면 너희가 다 나를 버려도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으로 만족함으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또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는데, 이런 마음이 아버지 집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나님의 집에 있는 것이 제일 좋은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맏아들은 아버지 것이 다 자기 것인 줄을 몰랐습니다. 요한복음 17-10에 ‘아버지의 것은 다 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 31절에도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7-10에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내 것을 다 아버지의 것으로 삼아놓으면 아버지의 것은 전부 내 것이 됩니다. 아버지의 것이 전부 자기의 것인데, 이 얼마나 많은 복인데, 동생이 3분의 1을 없애고 왔다고 해서 불평할 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것이 다 자기의 것인데, 아버지를 참으로 잘 모시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의 것이 다 자기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 동거, 동락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 전부 다 그 사람의 것입니다. 이같이 큰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시며 아버지의 것이 전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사람의 것이라고 하시는데 그 얼마나 큰 복입니까? 잃어버렸던 형제를 찾았는데, 자기 형제가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얼마나 큰 복입니까? 제일 큰 복을 맏아들이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복인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염소새끼 하나 안줬다고 불평입니다. 동생이 돌아왔는데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금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겼다고 해도 아버지의 재산이 다 자기 것인데, 동생에게 해준 그것이 몇 푼이나 되겠습니까? 좋은 옷은 얼마나 할까요? 가락지는 얼마짜리나 될까요? 제일 좋은 가락지 100만원 잡고, 옷도 넉넉히 해가지고 100만원 잡고, 신 한 켤레에 10만원 한다고 해도 다해봐야 210만원입니다. 거기에다가 송아지 잡은 것 200만원 잡아도 410만원 밖에 안 됩니다.
그 아버지의 재산이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 요새로 말하면 몇 억대 될 것 같습니다. 집값만 해도 얼마짜리입니까? 품꾼이 많은 것을 보니까 아마 10억대는 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거 400만원 썼다고 해서 주둥이가 쭉 나와 가지고, 돼지처럼 두두두 하고 들어오지도 않고, 아버지의 마음을 걱정 시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말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알지 못함
회개를 해야 하겠는데 이것을 볼 때 맏아들이 회개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잘못한 줄을 알아야 회개하겠는데 잘못했다는 말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잘했다고만 합니다. “내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겼으되 명을 어김이 없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아버지 섬긴 것을 잘한 줄 알고 있습니다. 또, 명령을 어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야 회개하는데 깨닫지 못합니다.
따지고 들어가 보면, 여러 해 섬겼으면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섬겼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도 모르는데 과거에 알았겠습니까? 지금도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잖아요? 또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아버지를 공경하고 아버지를 편안하게 해드리고 아버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 이것을 못한 것이 분명 하잖아요? 오늘 아버지를 걱정스럽게 것을 보니까 과거에 무얼 편안하게 해드렸겠습니까.
명을 어김이 없다고 했는데, 아버지의 명령을 과거에 잘 지켰으면 오늘도 지키겠는데 집에 들어가자고 했는데 안 들어갔습니다. 오늘 명령 지키지 않는 게 과거에도 그러지 않았겠는가 싶습니다. 지켰다고 해도 껍데기나 지켰겠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데, 아버지 섬기는것을 제대로 모르고 섬겼기 때문에 무엇 제대로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 알고, 아버지가 무엇을 요구 하는가 이것을 알아야 명령을 제대로 지킵니다. 그것을 모르고 그냥 일 갖다 해치우면, 하긴 했지만 아버지의 마음에 맞지 않게 됩니다. 대부분 안 맞았던 것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 기도원에 봉사 하는 것도 제가 시키면 하긴 하는데 가보면 마음에 안 맞는 것이 많습니다. 강당에 피뢰침을 하라고 했더니, 가보니까 어디서 가는 것을 가져다가 한 3미터 높이 해가지고 바람에 흔들흔들 합니다. 그게 넘어갈 것 같으니까 또 버팀줄을 사방 매어놨던데, 제 맘에 도무지 안 맞습니다. “아니 피뢰침 갖다놓고 버팀줄 매놓는 것이 어디 있느냐? 풀어라”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도 뭐하나 해놓은 다음에 보면 마음에 맞추어 하는 게 5~60%됩니다. 제가 시킨 것도
그렇습니다. 한 7~80%, 100%되어야겠는데 거기 맞는 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60%만 되면 가만둬 둡니다. 잘했다고 해야지, 그것을 다 고치라하면 어떻게 고치겠는가 말입니다.
이 사람이 아버지 섬긴 것도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고, 아버지의 뜻도 모르고, 아버지가 요구하는 것도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를 제대로 섬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명령 순종하라면 했을 것입니다. 갔다 오라면 가긴 갔을 것입니다. 갔어도 제대로 했겠는가 말입니다. 그렇게 잘못해 놓고도 잘못한 것을 모르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것이 문제입니다. 교만하고 자기가 잘한 줄 알고, 제가 잘못한 것은 모르고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 동생만 잘못했다고 하는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보느냐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 것은 작은 아들이 아니고 큰 아들입니다. 작은 아들은 전에 섭섭하게 했지만 오늘은 아버지를 기쁘게 했는데, 오늘은 맏아들이 섭섭하게 했습니다. 맏아들은 오늘만 섭섭하게 한 것이 아니라, 전부터 내내 섭섭하게 한 것 같습니다. 때때로 섭섭하게 했을 것입니다. 맏아들이 속에 품고 있다가 오늘 다 터져 나온 것입니다.
맏아들이 회개하기가 힘듭니다. 먼저 예수를 믿은 사람이 맏아들이라고 볼 수 있고, 죄를 짓다가 회개하고 교회로 들어온 사람을 탕자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맏아들의 죄가 사실은 더 지독한 죄입니다. 탕자는 나가서 돈 없앤 것뿐이지 다른 것이 없습니다. 탕자에게는 교만이 없고, 아버지에 대한 불평도 없고, 명을 다 지켰다고 내대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아버지 속이거나 명을 어기지 않고 재산을 없이 하지는 않았지만, 하는 것을 볼 때에 교만하고 방종하며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 없습니다. 공경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버지를 우러러 공경했다고 하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조그만 염소새끼 하나 안줬다고 불평하고, 아버지의 것이 다 자기 것인데 그것 하나 안줬다고 무엇을 불평하냔 말입니다.
3. 탕자와 같은 우리, 맏아들과 같은 우리
탕자와 같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탕자 노릇 했습니다. 파 껍질 먹다가 왔습니다. 또한 맏아들 같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만하고, 껍데기만 하나님을 섬기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형제 귀한 줄을 모르고 했던 것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서, 아버지 마음을 이제부터는 기쁘시게 하고, 형제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서 형제 구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형제가 구렁텅이에서 나와서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협력해야 합니다. 형제 구원하는데 협력해야 하고 기뻐해야 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아버지의 뜻을 잘 배워서 그 뜻대로 바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 뜻을 우리가 이루어 드려야합니다. 형제 구원하는 일이 아버지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인데, 전적으로 협력하고 동참하고, 그 기쁨에 동참하는 그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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