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30일 토요일

누가복음 22:35-45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누가복음 22:35-45

35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36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38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39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40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41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45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1.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내 보내실 때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심

본문 35절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내 보내실 때에 필요한 것을 다 주어서 먹고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다른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 얻어먹으려 하고, 받아먹으려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또, 의지하면 그 사람이 싫어합니다. 교인들이 무엇을 대접해 줄까?, 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에게 대접 받지 않으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좋고, 교인들은 교역자를 대접하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교역자들은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먹는다”라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이 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안 주시지만, 의지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지나간 주일 우리 교단이 아닌 어떤 교회에서 그 교회 장로들이 목사에게 천 만원권 수영장 표를 사주겠다고 하였으나 그 목사님이 거절했다고 합니다.
걸어 다니는 운동, 좋습니다. 하루에 만보 걸으면 좋다고 합니다. 신문에 기사가 실렸는데, 병으로 쓰러진 사람이 매일 3km를 뛰어서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걷는 것이 좋은 운동입니다. 유병선이라는 내과 의사의 처남이 미국에서 큰 병원을 하는데, 미국인 의사를 20명쯤 두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한국에 왔을 때에 만났는데, 자기 사무실은 5층인데 엘리베이터를 안 타고 매일 5층까지 몇 번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자기 건강이 유지가 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병원장인데다 상당히 큰 부자로 건물 아래층에 사무실을 둘 수도 있는데, 5층에 자기 사무실을 두고 매일 몇 번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건강 유지법이라고 합니다. 걸어서 자기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노인들도 걸어야 합니다. 저는 노인 목사들을 만나면 아침에 걸으라고 합니다. 매일 아침에 걸어서 기도하러 가라고 하고 또, 자전거 타고 가라고도 합니다. 자전거 타는 것도 좋습니다. 자전거 하나 구입해서 매일 기도하러 한 반시간 타고 갔다가 또, 한 반시간 타고 오면 좋습니다. 자기 건강을 자기가 유지해야 합니다. 자기 건강을 스스로 유지하지 못해서 병이 나면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떤 분들을 보면 하루 종일 집 안에 가만히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 안에만 가만히 있으면, 쇠로 말하면 점점 녹이 슬어 기계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걸어 다녀야 녹이 다 벗겨지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요새 아침에 보면 세브란스 병원 뒷산에 사람이 하얗게 올라갑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물통 하나씩 짊어지고 몇 백 명이 올라갑니다. 올라가서는 산 꼭대기에서 물 한 통씩 지고 내려옵니다. 아침에 가는 사람, 해 뜬 다음에 가는 사람, 또 오전 10시쯤에 가는 사람, 11∼12시쯤에 가는 사람, 오후 1시에 가는 사람 등 많이 올라갑니다. 아침에 가면 물이 새끼손가락만큼 나오는데, 그 앞으로 물통은 한 20~30개 놓였기 때문에 한 통 받아가려면 한 시간 이상 걸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따로 할 일 없는 사람들은 한 10시쯤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시쯤 올라가고, 또 점심 먹고 올라가고, 거기 한 번 올라가면 운동이 상당히 잘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멀리서 자동차 타고 와서 그 아래 차를 세워 놓고 물통을 가지고 올라갔다 옵니다. 자기 건강을 유지하도록 힘쓰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믿고
나가면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 의지하면 안 됩니다.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하실 때에 “없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6절에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환란이 임박한 때이므로,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대접할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 일을 자기가 하면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게 해나가라는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쌀 한 말 지고 소금 한 봉지 싸가지고 누가 안 도와줘도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곤로 하나 가지고 밥 해먹고 전도하며, 자는 것은 산에서 자든지 아무데서 나 자는 것입니다. 6.25 사변 때에 산에서 상당히 오래 잤는데, 산에서 자도 젊었을 때는 거뜬합니다. 그러므로 대접해 주지 않아도 괜찮으리만치 준비해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영적 무장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영이 먹을 것, 영이 쓰고 살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검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 사라고 했는데, 이것은 영적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 무기가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생명이 되고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길만한 그런 능력의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본문 38절에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검 둘이 있다고 하니까 예수님이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족하다, 는 말은 검 둘로 족하다는 말이 아니고 오늘은 그만큼 알아도 족하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검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는 것으로 족하다, 알기만 해도 족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다음에 가면 참 뜻을 알 것이다, 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2. 겟세마네 동산에서 순종의 기도를 하심

본문 39-44절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습관을 좇아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하러 가셨습니까?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 기도하시러 가는 습관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 습관을 좇아서 감람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어지간하면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감람산이 멀지 않다고 합니다. 걸어서 가도 얼마 안가면 도착하는 것 같습니다. 걸어서 한 30분쯤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 걸어가셔서 기도하시고는 했습니다. 또,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는 습관을 세워 놓았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기도하러 좇아가고 했을 것입니다. 습관을 세우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러 가서 기도한 사람은 그때 은혜 받은 기억이 영원히 남습니다. 또, 그것이 영적 무장이 되고 옷을 팔아 검을 사는 것이 되고 주머니나 전대를 준비하는 것이 됩니다. 감람산에서 기도하는 것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기도 안하는 사람은 준비 하나도 못합니다. 그리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기도 안 하고 집에서 잠 잤다고 하면 잠잔 것 가지고 남는 것이 있습니까? 또, 기도 안 하고 집에서 놀았다고 하면 논 것의 열매가 있습니까? 기도 한 것은 열매가 있고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습관을 세우는 것이 참 좋습니다. 

우리도 기도원에 가는 습관이 얼마나 좋습니까?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습관을 세워 놓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광주 기도원에 기도하러 가는 버스가 매일 한 차례씩 있습니다. 어제 그저께 가서 또 자고 왔다고 하지요? 몇 사람 자고 왔습니까? 자면서 기도하고 오는 것도 괜찮습니다. 하여간에 기도하러 가는 습관을 세워 놓는 것일 좋습니다. 안 간 사람은 무엇을 했지요? 안 간 사람은 아들네 집에 가고 딸네 집에 가고 부모네 집에 가고 친척 집에 가고 또, 떡 해 먹고 노라리 다니고... 남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기도한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설이나 추석 등 큰 명절에 고향에 갑니다. 그런데 천안 가는 데, 열세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천안 가는 고속도로가 밀리지 않으면 보통 한 시간이면 갑니다. 새벽에 가도 한 시간 안에 다 갑니다. 그리고 어제 제가 신갈에 교회 할 자리가 하나 있다고 해서 들렀다 기도원에 가려고 한 시간 반으로 시간 계산을 하고 움직였습니다. 고속도로가 밀리지 않을 때는 한 시간도 안 걸립니다. 그래서 한 시간 반이면 가지 않겠나?, 하고 김성진 목사보고 먼저 가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고속도로에 차가 빽빽이 들어서서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하는 겁니다. 결국 천안에서 신갈 가는 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김성진 목사가 기다리다 기다리다 가고 말았습니다. 제가 시간 어기는 성격이 아닌데 아마 두어 시간 기다려도 오지 않으므로 이것은 분명히 안 오는 것인가 보다, 하고 달아나고 그만두었다는 말입니다. 그날은 추석날인데, 보통 천안 가는 차들이 추석 전날 다 갑니다. 추석 전날 다 갔기 때문에 추석날 오후는 괜찮을 것이다, 하고 갔는
데, ‘괜찮을 것이다’하는 사람이 너무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추석날 오후에 가면 안 막힐 것이다, 라는 얉은 꾀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날 차가 연휴 중에 제일 많이 밀렸다고 합니다. 꾀 있는 사람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있을까요? 한 시간이면 갈 것을 열세 시간 걸리는 고속도로 다니는 것 말입니다. 오늘도 서울로 올라오느라고 또 그 모양 났을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못된 풍속, 습관이 있어서 이렇게 길바닥에서 시간 다 보냅니다.
또, 정부에서 사흘 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10, 11, 12일 사흘 놀라고 했는데, 그 전날 다 떠났다고 합니다. 또, 9일은 오전만 하고 오후는 다 떠나버린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놀기 좋아하고 허영심이 많고 허풍을 좋아하고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동차 하나 사가지고 고향 가서 자랑하려고 기를 쓰기 때문에 길이 막힌다는 것입니다.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자기 영이 사는 길이고 영적 무장을 하는 길이고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사는 일이고 전대나 주머니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제자들도 좇았습니다. 

본문 40절에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해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 안 하는 사람은 시험에 듭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본문 41-42절에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돌 던질 만큼의 거리에 제자들을 머물러 두고 예수님께서는 앞에 나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돌 던질 만큼은 한 50m쯤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한 거리입니다. 그러므로 음성을 좀 내어서 기도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음성을 내지 않고 기도하는 것도 좋고 음성을 내서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본문 42절에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내용 첫째는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원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자기 뜻대로 기도하면 안 됩니다. 제 욕심을 채우려고 계획을 세워 그대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렇게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순종의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자기 욕심대로 기도하는 것은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그대로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이면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려고 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 되게 하려는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기도는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래 이 땅에 십자가를 지러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말씀을 이미 여러 번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삼일 만에 살아난다”라고 여러 번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 정작 십자가가 닥쳤을 때에 이 잔을 옮겨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구속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이것은 고난의 잔을 옮겨 달라는 의미입니다. 십자가를 지되 고난을 안 받도록, 고난을 조금 면케 해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질 때 너무 고통이 심하니, 이 고난을 조금 면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는 것은 고난을 다 받아야 할 것 같으면 “아버지의 원대로 다 받게 해주시옵소서”라는 순종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순종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7-8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편안한 것만 좇아가지 말고 좋은 것만 하겠다고 하지 말고 고난의 자리도 순종을 배워서 따라가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고난이 많아도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가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좋은 것만 하겠다는 것은 믿음을 안 쓰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고난도 은사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온전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문 43절에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고 하였는데,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께도 힘을 도와서 더욱 힘써 기도하게 하시고, 앞으로 오는 십자가의 모든 고난도 이길만한 힘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본문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더욱 힘쓰고 애써서 기도하니 땀이 핏방울 같이 땅에 떨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45절에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해야만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깨어 기도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에는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느냐, 고 하였는데, 매일 한 시간만이라도 깨어 기도하는 것이 큰 기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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