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2일 토요일

요나 1:1-17 요나의 도망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요나의 도망
요나 1:1-17

1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3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4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5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7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8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9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11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12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13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 일 삼 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1. 여호와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심

본문 1-2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하
였습니다. 요나는 주전 790년경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니느웨의 악독이 하나님께 사무쳤기 때문에 40일 후면 멸망한다는 것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2.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선가(船價)를 주고 배에 오름

본문 3절에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고 하였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치려고 하였습니다. 욥바라는 항구로 가서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선가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합법적인 수속을 마치고 배를 탔습니다.

니느웨로 가지 않으려 하는 이유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도 니느웨로 가지 않은 이유는 3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자신이 니느웨로 가서 외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애가 크시므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는 분이시니, 40일 후에 그 성이 망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가 가서 외쳐보아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면, 자신은 무시를 당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누가 물어도 대답할 말이 없고, 수치와 멸시를 당하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신이 외쳐도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망하지 않게 하신다면 자기가 무시를 당하고, 인심과 신용을 잃으며,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아예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둘째, 니느웨의 사람들은 모두 악독이 가득 찬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40일 후에 망한다고 하면 그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잘된다고 해주어야 하는데, 망한다고 하면 생명에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니느웨로 가지 않고 도망쳤습니다.
셋째, 긍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많으셔서 니느웨 사람들을 살리려고 애를 쓰시는데, 요나는 긍휼이 없었습니다. 악독이 가득한 사람들은 망해야 마땅하다는, 긍휼 없는 마음과 판단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2장 13절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많으신데, 하나님의 사람인 요나는 긍휼이 없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요나가 자기 중심으로 행동하였습니다. 자기의 생긴 대로 생각하고, 자기의 된 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가서 전파해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면 자신이 망신을 당하고 멸시와 천대, 욕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또 죽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도망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나가 하나님 중심, 하나님 나라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행하려고 하여 도망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세례 요한은 자기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 구원 운동은 잘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는 것이 참 선지인데, 요나는 반대였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자기도 흥하여야 하겠다 하거나 자기는 흥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하든지 말든지 하며, 귀중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참 선지, 참 성도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쇠해지고 낮아지며,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하나님의 일만 잘되면 된다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고 모욕을 당해도 하나님의 일만 잘되면 된다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가 낮아지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가 욕먹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가 죽지 않으려고 하며, 자기가 잘 되려고 하면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길로만 가야 함

그런데 요나가 도망치려고 욥바라는 항구로 갔는데,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습니다. 길이 열리니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길이 열리는 대로 가야지 어떻게 하겠느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길이 열리는 것이 좋은 것인 줄 알고 반가워서 착착 길이 열린다고 생각 하면서 뱃삯을 주고 합법적인 수속을 다 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누가 봐도 손색이 없는 상황입니다. 마침 길이 열려서 가는 것이고, 뱃삯을 내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요나가 잘못하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요나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요나의 양심도 압니다.
요나는 길이 열렸기 때문에 그 길로 배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길이 있다고 다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이 열렸다면 좋은 것인데,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길이 열렸다면 그것은 요나의 길입니다. 우리에게 여러 길이 열릴 수 있는데, 그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인지 뜻에 맞지 않는 길인지 판단해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길로는 가지 말아야 합니다. 죽는 일이 닥치고, 멸시와 천대를 당하고, 망신과 수치를 당해도 그 길이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길이 열린다고 다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길이 열린다고 주일에 시험을 치고, 길이 열린다고 주일에 운동회를 하고 결혼식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지 순례하는 길이 열렸다고 해서 누구나 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전에 무료로 성지 순례를 보내준다고 해서 많은 목사님들이 참여했는데, 다녀와서 보니 문선명 파에서 나온 돈으로 다녀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험에 들고, 교회에서 쫓겨난 목사님도 있었습니다. 길이 열리고, 오라고 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3. 요나가 풍랑을 만남

본문 4절에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고 하였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 보니 큰 폭풍이 왔습니다. 더 가려고 해도 갈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고난을 당하여 살 길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본문 5-6절에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공들이 각각 자기의 신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배 밑층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던 요나를 깨워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나가 왜 잠이 들었습니까? 요나가 잠을 잘 형편입니까? 요나가 잠이 든 이유는 심령에 잠이 들어서 흑암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잠이 들면 누구나 흑암을 만나게 되어 육신 중심이 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마귀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이사야 29장 10절에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고 하였습니다. 잠들게 하는 신을 보내신다고 하였는데, 요나도 하나님께서 잠들게 하는 신을 보내셔서 깊이 잠들게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안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며 거역하는 사람에게 잠들게 하는 신을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믿는 일을 안 하고, 양심을 안 쓰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길로 가면 심령에 잠이 들고, 흑암을 만나게 됩니다. 그 다음에 신앙에 잠이 오게 하는 신이 와서 낮잠에 들게 합니다. 다윗도 낮잠을 자다가 범죄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요나도 마귀의 인도를 받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신에게 구하고 있는데, 이제 요나도 하나님께 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가는 길인데, 그 기도를 들어주실 리가 없습니다. 잠언 28장 9절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순종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기도하면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 기도하는 것은 아무리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본문 7절에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제비를 뽑게 되었는데, 요나가 그 제비를 뽑았습니다. 지금까지는 합법적으로 해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너다!’라고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요나가 뜨끔해서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서 다른 곳으로 가니까 풍랑이 와서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뉘우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본문 8-11절에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무리가 요나에 대해 물었고, 요나는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습니다. 이에 무리가 심히 두려워하며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잔잔해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4. 요나가 바다에 던져짐

신앙 양심에 따라 자신이 큰 죄인인 줄 알아야 함

본문 12절에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는 자기 죄 때문에 풍랑이 일어난 것을 깨닫고,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죽을 자인 줄로 알고, 자신을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배에서 요나만 잘못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배에 있던 여러 사람들에게 죄가 없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요나보다 죄가 작았다고 볼 수 없고, 하나님을 순종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고 하신 것을 거절하고 다시스로 가는 죄를 범하였는데, 그 배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우상을 섬기는, 근본부터 잘못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의 죄가 요나의 죄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나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죄가 더 많은 사람들인데, 요나는 이 풍랑 만난 것을 그들의 죄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가지만 너희보다는 낫다고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앙 양심이 아닙니다. 신앙 양심은 다른 사람의 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보는 것입니다. 양심을 안 쓰면 다른 사람들 때문에 풍랑이 일어났다고 해도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 양심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보지 말고 네 눈에 있는 들보를 보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보고 나 때문에 풍랑이 일어났으니 나를 바다에 빠뜨려 죽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항상 죽을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나가 자신 때문에 풍랑이 일어났기 때문에 나를 죽이면 풍랑이 잔잔해진다고 하였습니다. 공동묘지에 가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누워있지만 아무 말도 없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아무 말도 없는 것입니다. 풍랑을 해결하는 법은 신앙 양심으로 나 때문에 풍랑이 일어났으니 나를 바다에 빠뜨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6·25 사변 때 제주도에 피난 오신 많은 목사님들이 계셨습니다. 저는 그때 조사였는데, 당시 고려 신학교 교장이셨던 박 목사님께서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사경회를 인도하러 오셔서 요나 1장에 대해 설교하신 것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우리 때문에 6·25 사변이 났으니 각자가 자신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마음으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 망한다고 하셔서 당시 큰 은혜가 있었고 목사님들이 많이 회개하였습니다. 다 쫓겨나서 멀리까지 왔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망할 것같이 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잠을 잘 곳이 없어서 목사님들이 예배당에 짐을 놓고 잠을 자면서 그 말씀을 들었고 많이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하나님께서 UN
군을 보내주셔서 인민군을 뒤로 쫓아주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아서 망하게 하신 것인데, 그렇게 역사해주셨습니다. 교역자와 성도들이 회개하면 폭풍과 풍랑으로 다 망하게 되었던 것에서 다시 건져주십니다. 자신이 희생양이 되어야 합니다. 요나가 희생을 해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죄 값으로 살 도리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 죄가 얼마나 크냐 하면 우리 몸을 다 팔아서 바쳐도 부족하고, 처와 자식과 소유를 다 팔아서 빚을 갚아도 부족합니다. 마땅히 죽을 자인데, 하나님께서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가다가 친구를 만났는데,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가 자신은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는데, 그 친구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하며 옥에 가두었습니다. 백 데나리온은 일 만 달란트의 60만분의 1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보다 나는 60만 배는 더 큰 죄를 하나님께 탕감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
니다. 사람에게 다 죄가 있지만 나는 다른 사람보다 60만 배나 더 큰 죄를 지은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 죄가 있지만 그 사람이 아니라 내 문제인 것을 알고, 자신의 들보를 봐야 합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부터 열까지 죄를 짓는 그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한 가지 죄를 짓는 요나 때문에 풍랑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이 책임을 지고, 자신을 들어 바다에 빠뜨려야 할 만큼 자신의 죄가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죽어야 하는데, 아직 요나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살기 위해 다시스로 도망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위해 징계하십니다.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서 징계하시고, 사랑하는 한 사람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풍랑을 일으키십니다. 다른 사람은 죄악이 가득차도 그냥 두십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한 사람을 택해서 회개시켜 사용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한 몫 쓰시려고 풍랑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3절에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빠뜨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를 저어 배를 돌려보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바다가 흉용해져서 요나를 빠뜨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5. 요나가 큰 물고기에게 삼키움

하나님께서 요나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가심

본문 14-17절에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 일 삼 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요나 스스로 나를 죽이면 된다고 했기 때문에 마침내 사람들이 요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요나가 회개를 철저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고, 요나는 삼 일 삼야를 물고기 뱃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바다 속에 들어가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비참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나를 진정으로 회개시켜서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뒤에 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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