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에서 크고 으뜸이 되는 자
마가복음 10:32-52
마가복음 10:32-52
32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 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 33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46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47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아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1.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일러주심 (32-34)
본문 32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이번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은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길입니다. 또 그 당시 공기가 상당히 험하여서,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세력들이 득세하여 이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오면 잡아 죽이자고 의논을 다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죽은 나사로 살린 일로
인해서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예수님만 죽일 뿐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자고 의논을 하던 때인데, 제자들은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수님이 죽을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다 두려워서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했다고 그랬습니다. 이번에 올라가면 마지막길입니다. 올라가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겠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다 무서워하고 놀라면서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앞서서 가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환난과 핍박하는 그곳으로,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그곳으로 앞서서 가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환난을 받는 그곳에 갈 때에는 앞서서 가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성도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 하고, 환난이 많은 세대이지만, 예수님께서 가만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앞서서 환난을 마주 하면서 친히 감당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앞서서 가 주실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오늘날도 앞장 서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며, 환난 가운데도 나아가는 그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아들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3-34절에,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번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확실히 알고 올라가십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질을 당하고 죽게 될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올라가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죄를 위해서 능욕과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을 맞으며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우리는 깊이 바라보고, 언제나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당할 것을 말씀하신 후,
삼 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기로 예비된 자 (35-45)
본문 35절-38절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한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형제이고 아버지는 세베대인데, 그들이 어머니를 내세워서 간구한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하고 어머니가 간구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물어보니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하여 주옵소서”(본문 37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영광 중에 보좌에 앉으실 때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앉게 해 주시고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으로 알았습니다. 올라
가서 왕이 되시고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으로, 메시야 왕국이 건설되고 그리스도께서 메시야의 영광에 앉아서 온 세계를 통치하실 것으로 알았습니다.
이것은 세상나라가 메시야 나라가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영원한 영광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건설하실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영광 중에 앉게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즉 하늘나라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요한의 형제가 앉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잔을 마시며 십자가를 지는 자
그러자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마시는 잔은 고난의 잔이고, 받는 세례는 십자가입니다. 누가복음 12:50-51에,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받을 세례’ 이것은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는 것이 예수님의 받는 세례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의 그 높은 자리에 앉을 자격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잔을 마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깊이 참여하고, 주를 위해서 십자가 지고 나가고, 주를 위해서 고난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이 구원운동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많이 당한 이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본문 39-40절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할 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마시는 잔이 무엇인지, 받을 세례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그것을 해야 된다고 하니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앞으로 요한의 형제, 야고보와 요한이 주와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많이 받을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열 두 제자 가운데 야고보가 순교 당했습니다. 헤롯에게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사도행전 12: 1-2에,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는 말씀입니다. 헤롯왕이 죽였습니다. 그래서 “나의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겠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사도 요한이 주와 그의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아셨습니다. ‘나의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자
본문 40절에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예비되었든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들이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 높은 자리, 하늘나라의 존귀한 자리, 그 자리를 예정해 놓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가 앉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예수를 위해서 고난을 많이 받게 됩니다. 또 순교 당하게 됩니다. 야고보처럼 순교하게 될 것입니다. 예비해 놓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고난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게 하려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예비해 놓은 사람은 주와 그 복음을 위해서 십자가 지고 고난 많이 당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 안 당하는 사람은 그 자리가 예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보통 예수를 편안히 믿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예수를 편안히 믿고 하늘나라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쉽게 그저 힘 안들이고 연보도 많이 안하고 쉽게 믿겠다는 사람이 한국에 많습니다. 그래서 개척교회 하는 데는 교인들이 많이 안갑니다. 어디로 이사를 가도 개척 교회하는데 가면, 연보 많이 해야 하고 예배당 지으려면 힘들다는 말입니다. 교인이 적은데 거기 가서 교역자 받들라면 힘드니까, 대충 살펴보다가 큰 예배당 하나 찾아서 나가면, 연보도 안하고, 또 예배당 지으려고 힘도 안 들겠고, 사람이 많으니까 교역자 받드는데 힘도 안 들겠고, 거기 나가서 뒷전에 앉았다 오면 편안히 잘 믿겠다는 생각을 해서, 이사를 가면 개척교회로 나가기 싫어합니다. 큰 예배당에 갑니다. 남이 다 해 놓은데 뒤에 앉았다가 그저 오기만 하면 되는, 이런 곳에 나가기를 좋아하는 성도들이 한국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아무것도 받지 않으려는 그런 사람입니다. 얼마나 참 안됐습니까? 하늘나라에서 상을 많이 받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을 사람은, 아예 주를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주와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을까 생각합시다. 어디로 이사를 가도 개척 교회하는데 가는 것이 좋습니다. 아예 천막친 데로 갑니다. 개척 교회하는데 가서 거기 엎드려 들이대고 힘을 써서 받들어 나가려고 하고, 또 어디가면 교회 세우려고 노력을 합니다. 교회 없는데 가서 아예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갑니다. 그래서 교회 세우려고 노력을 해고 모든 걸 다 희생을 해서 교회 세우면서 힘을 많이 씁니다. 그러면 자라납니다. 쑥 자라납니다.
교역자들도 어떤 교역자는 좋은 큰 교회 보내주기를 원합니다. 큰 교회, 사례금도 많이 받는 교회, 대접 잘 받는 교회에 보내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어떤 교역자는 개척교회해서 교인이 7~80명쯤 되면, ‘이제는 난 또 다른 곳에 가서 개척교회를 해야겠다’면서 다른 데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고 물어보니까, 다른 데 가서 개척교회를 또 하나 하고, 또 하나 하고 그렇게 해야지 여기선 너무 편안해서 안 되겠다고 합니다. 이전에 이헌학 목사가 시무하는 파장동교회 갔다가 왔는데, 교인이 7~80명 모였습니다. 자꾸 다른 데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잘 되니까 여기는 다른 사람 보내고 자기는 개척교회 하는데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으로 보냈습니다. 여기서 가서 전세로 2층 하나 얻어주고 보낸 것입니다. 보냈는데 가서 고생 많이 하면서 지금 70명 교인이 모인다고 합니다. 동래에서 좀 내려와서 있는 동산이라는 곳인데, 가보니까 아주 좋은 교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한순철 목사가 기도원에 있다가 자꾸 또 개척교회 하겠다고 해서 군포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군포에 있다가 또 다른 데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군포에는 꽤 모이니까 또 다른데 가서 개척교회 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보내려고 했는데, 조금 있다가 천당가고 말았습니다. 그때 안 갔다면 요새 또 다른데 가서 할지 모릅니다. 그런 교역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아예 개척교회할 데로 보내달라고, 고생할 데로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목사 한 분은 자기 있는 교회가 자립을 하니까, 또 다른데 가서 개척교회 하도록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교인들도 편안히 잘 그저 힘들지 않고, 연보도 많이 안하고, 예배당도 안 짓고, 남이 다 지어놓은 데 가서 믿기 좋아하는 교인이 있는데, 그것은 다 썩어진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생각하지 아니하고 육신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나라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와 그 복음을 위하여, 이 진리를 세워나가느라고,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힘을 쓰고 희생을 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잔을 마시면서 나가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의 보좌에 앉는다고 하였습니다. 고난 많이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 가서 큰 자가 되어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습니다.
남을 섬기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자
본문 41절에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열 제자가 듣고 왜 분히 여겼겠습니까? 저희 형제끼리 다 해먹겠다고 그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자기 형제끼리 다 앉으면 우린 뭘 해먹냐는 것입니다. 똑같은 판이 되었습니다. 죽을 사람은 한 배에 탄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좀 있었더라면 “어디서 배웠기에 저렇게 어리석어서 되겠는가? 아니, 하늘나라 높은 자리가 어디 그렇게 해서 얻을 줄로 아느냐? 주와 그 복음을 위해서 많이 수고하고, 많이 희생하고, 많이 고난 받아야 되는 것을 모르고 이것이 뭐냐?” 이랬어야 되겠는데, 분히 여긴 것을 보면 전부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42절에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라고 하시며 이 세상나라 권세 잡은 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나라에서 권세 잡은 자들은 남을 임의로 주관하고 또 대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지를 못하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43절에 이어서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 다릅니다. 세상 나라는 어떻게 하든지 권세를 잡고 권세를 휘두르고 남을 임의로 주관하고자 합니다. 또 잘난 사람들, 대인들, 세상에서 큰 사람이라는 사람들이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안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 하늘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어떤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까?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 된다고 하셨습니까?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섬기는 자가 하늘나라에는 크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사람이 으뜸이 된다, 즉, 하늘나라는 그런 자의 자리라는 말씀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이 진리를 세우는 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섬긴 사람, 또 주님과 이 진리를 세우기 위하여 많은 사람에게 종 노릇 한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큰 자입니다.
본문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셨습니까?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또 무엇을 하려고 오셨습니까?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큰 자가 되는 길의 표본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예수님이 제일 큰 자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섬기고 많은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우리 위해서 예수님께서 구속을 이루어 놓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죄 값을 다 지불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가질 의를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섬기셨고, 또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희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려고 오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주려고 오셨고, 섬기려고 오셨으며, 희생하려고 오셨고, 도와주려고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섬김을 받고 갔으면 유익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33년 동안 잘 대접받고 편안히 있다가, 하나님 아들이니까 세상에 와서 대접받고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높임을 받으시고 갔다고 하면, 하늘나라 가면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33년 동안 아무리 대접받았어도, 세계 제일 큰 대접을 다 받았어도 하늘나라 가면 남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섬기고 가셨는데, 섬긴 것은 남는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섬겨놓은 것은 남습니다. 봉사한 것은 영원히 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지요? 발 씻겨주신 것, 그것은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하늘나라 가서도 남아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목욕시켜주신 것, 주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겨주신 것은 영원히 하늘나라 가서 남아있습니다. 씻김을 받은 우리도 영원히 하늘나라 가서 남아있습니다. 얼마나 큰 것입니까? 대접받았으면 다 없어질 뻔 했는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고, 다 주고, 씻어주고 이렇게 하셨기 때문에, 구속해 주셨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이 제일 큰 자이고 또 영원히 섬긴 것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씻김을 받은 사람도 영원히 예수님과 관계가 되어있고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하늘나라는 섬기는 자가 크고 종이 되어야 크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몸소 그대로 행하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을 위해서 섬겼고, 또 많은 사람을 대접했고, 많은 사람에게 당신의 피를 나눠 주셨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자리, 높은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성도들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주를 위하여 봉사 많이 하고, 진리 세우기 위하여 많은 사람에게 종살이 하고, 많은 사람을 수종들고, 고난 많이 받고, 희생 많이 하고 가면,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높은 자리에 앉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교회에서도 알아줍니다. 교회에서도 주를 위하여 고난 많이 당한 사람, 또 주를 위해서 희생 많이 한 사람, 이 진리를 세우느라고 십자가 많이 진 사람을 참 교인들은 다 알아줍니다.
즉 말하자면, 스데반 같은 사람을 우리가 알아주잖습니까? 또 사도 바울 같은 사람 알아주잖습니까? 바울이 가만히 있었으면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또 모세 같은 사람 가만 앉아있으면 애굽 공주의 아들의 지위인데, 많은 재산과 많은 영광이 다 자기 것인데, 그러나 그것을 다 누리고 갔으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거 다 내버리고 주를 위해서 고난 많이 받고 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는 이 세상 지상교회에서도 존귀한 자고, 하늘나라 가서도 존귀한 자입니
다. 모세는 편안한 것을 내버리고 갔습니다. 히브리서 11: 24-26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보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받는 능욕과 고난을 더 좋아했습니다. 고난 받는 길,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길을 모세가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면 모세가 큰 자고, 이 지상 교회에서도 큰 자이고, 상급이 크다는 말씀입니다.
바울도 가만히 있었으면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고 바리새인 가운데 열심 있는 자로서 괜찮았습니다.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 자였기에 살기도 잘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위하여, 이 진리 세우는 것을 위하여, 바울이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 한 교회 세워서 편안히 목회했으면 바울이 편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한 교회 세운 것이 아니라, 한 교회 세우면 또 다른 교회 가서 세우고, 그 다음에 또 다른 데 가서 세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여러 교회를 세우
고, 또 성경을 여러 권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성경이 모두 13권입니다. 바울이 성경 기록하느라고 얼마나 수고 많이 했겠습니까? 또 교회 세우느라고 얼마나 수고 많이 하고, 얼마나 핍박 많이 받았습니까? 바울이 얼마나 고난 많이 받았는지 고린도후서 11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 평안히 있을 수 있었습니다. 또 교회를 해도 한 교회에서 평안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이렇게 주와 그 복음을 위하여 “옥에도 많이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내고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큰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자기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다 주를 위해서 했고 모든 성도에게 봉사하느라고 한 것입니다. 진리를 세우느라고 했고, 택한 백성을 구원하여 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택한 백성을 위한 봉사였습니다. 얼마나 이것 참 많이 봉사했습니까? 하늘나라 가면 바울이 큰 자가 됩니다. 최권능 목사가 교회
를 75개를 세웠다는데, 75교회를 이 세상에서 세웠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상당히 클 것 같습니다.
고, 또 성경을 여러 권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성경이 모두 13권입니다. 바울이 성경 기록하느라고 얼마나 수고 많이 했겠습니까? 또 교회 세우느라고 얼마나 수고 많이 하고, 얼마나 핍박 많이 받았습니까? 바울이 얼마나 고난 많이 받았는지 고린도후서 11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 평안히 있을 수 있었습니다. 또 교회를 해도 한 교회에서 평안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이렇게 주와 그 복음을 위하여 “옥에도 많이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내고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큰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자기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다 주를 위해서 했고 모든 성도에게 봉사하느라고 한 것입니다. 진리를 세우느라고 했고, 택한 백성을 구원하여 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택한 백성을 위한 봉사였습니다. 얼마나 이것 참 많이 봉사했습니까? 하늘나라 가면 바울이 큰 자가 됩니다. 최권능 목사가 교회
를 75개를 세웠다는데, 75교회를 이 세상에서 세웠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상당히 클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 큰 자는 주와 그 진리를 세우는 일과 성도들을 위하여 많이 섬기고 많이 희생하고 종살이 많이 하고 발 씻어주고 많이 수고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늘나라에 큰 자가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친히 이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섬기려고 오셨고, 우리를 위해서 주님의 몸을 희생해서 우리를 대속해 주려고 오셨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고, 우리에게 의를 입혀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봉사하셨고 발을 씻어주셨고 많은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가면 예수님께서 제일 높은 자리에 앉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도 평안하게 믿겠다는 것은 썩어질 정신입니다. 썩어질 정신, 그런 정신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은 그저 징계나 밤낮 받다가 해 받는 구원이나 받습니다. 그러므로 썩어질 정신은 버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주를 위해서 내가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겠다는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봉사 좀 해야 되겠다, 이 진리를 세우는 일에 봉사 해야겠다고 해야 합니다. 어떤 봉사든지 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에 남아 있습니다. 심방도 하고 전도도 하고 다른 사람 가르치려고 애를 쓰고…,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전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기도할 때,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는 일과 같은 믿는 일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나라에서 큰 자는 이런 사람입니다. 많이 섬기는 자입니다.
남을 많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 됩시다. 물질로 도와주는 것도 되지만, 영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다른 사람의 구원에 유익이 되게 하고, 약한 사람을 붙들어주고,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고, 또 복음을 전해 주고, 진리를 세워주고, 어두운 세상에서 진리가 뭔지 알지 못하는 때에 진리의 등불을 높이 들어서 이 세상에 바른 진리를 증거 해 주고, 여기에 봉사하고 희생하고 종살이하고, 이런 일 많이 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면 큰 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하려고 오셨고, 이것 하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도 이 일 하다가 이 세상일 끝마치는 자가 되면 큰 복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습니다.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는 것입니다.
하루라도 헛되이 시간 보내지 말고 한 달이라도 헛되이 시간 보내지 마십시오. 일 년 헛되이 보내면 안되겠습니다. 얼마나 많이 봉사했습니까? 주와 이 진리 세우는 것을 위해서 얼마나 내가 봉사 많이 했는가, 얼마나 십자가를 졌는가, 잔을 얼마나 마셨는가, 얼마나 세례를 받았는가, 이것을 반성해 보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헛되이 보내지 말고, 주를 위해서, 이 진리를 세우는 것을 위해서, 모든 성도들의 구원 이뤄나가는 것을 위해서, 우리는 고난의 잔을 마시면서, 세례를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종살이하고 섬기고 예수님을 뒤를 본받아서 많은 사람에게 주고 도와주는 그런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3.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됨 (46-52)
본문 46절에 소경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길가에 앉았다가 여리고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말은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여’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난다고 했으니까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많이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더욱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서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소경을 부르니까 왔습니다. “안심하라. 너를 부르신다” 하고 그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소경이 겉옷을 내버려두고 왔습니다. 언제 뭐 겉옷 입을 시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시니까 너무 기뻐서 겉옷을 버려두고 일어나서 예수님께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시니까 소경이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소경이 아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소경은 그리스도를 한 번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한 것이 분명하고, 또 자기의 눈 뜨기를 간절히 사모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반드시 내가 눈을 뜰 것이다’ 이것을 확실히 믿고 간절히 사모했는데, 하루는 그리로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열심히 부르짖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잠잠하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 방해하는 것을 다 이겼습니다. 방해하는 세력을 이기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절히 사모하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할 때에, “주여 보게 해 주십시오.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소경은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또 눈 뜨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뜨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눈 뜨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줄 믿고 간절히 사모하고 간구했습니다. 이만큼 예수님을 사모하고 이만큼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간구하면 예수님께서 버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눈 뜨게 했느니라’ 하지 않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했다는 말씀입니다.
소경이 이렇게 예수님을 간절히 보기를 사모하고 또 예수님을 눈 뜨게 해줄 능력이 있는 주님으로 믿고 간절히 간구했기 때문에 영혼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심령의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눈도 그 다음에 떴습니다.
소경이 어떻게 이렇게 그리스도를 사모했을까요? 다른 사람보다 더 사모했습니다. 또 더 부르짖었습니다. 눈뜨게 해달라고 더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자기가 소경된 까닭에 이렇게 사모한 것입니다. 소경 안 된 사람은 사모할 것이 없습니다. 소경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사모하고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였고, 소경됐기 때문에 눈 뜨게 해줄 능력이 있는 주님으로 믿고 불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눈을 떴습니다. 육신이 소경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영의 눈을 뜨고 구원 받았고 육신의 눈도 떠졌습니다. 육신이 소경 안 된 사람은 속에 사모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영의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영적 소경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9:39-41에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소경 되었더라면 영혼의 눈을 뜨고 영적 구원을 받고 육신의 구원도 받을 뻔 했는데 너희가 본다고 하기 때문에 그만 너희 죄가 그저 있다고 했습니다. 죄 사함도 받지 못하고 영적 병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소경 되었던 사람은 소경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영적 구원도 받고 눈도 떴습니다. 다 되었습니다.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집니다.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부족한 줄 알고, 간절히 사모하고 간절히 매달리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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