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가복음 10:17-31
마가복음 10:17-31
17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꿀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
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1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3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25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6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지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1. 영생문답
본문 17절에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께서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어봤습니다. 영생문제에 대한 문답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에게 영생을 얻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인간 칠십은 고희(古稀)라고 했는데, 성경에 우리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했습니다(시 90:10). 또 인간 수명이라는 것
은 잠시 잠깐 다 지나갑니다. 볼 수 없이 갑니다. 화살과 같이 빠른 세상이고, 유수같이 빠른 세상이고, 잠깐 지나가고 마는 아침 안개와 같은 이런 세상이라고 하였습니다(약 4:14). 그래서 영생을 얻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세에서 사는 것, 현실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 영생할 수 없을까?’ 하는 영원히 사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모든 것이 다 잘 됐다고 해도 잠깐 지나가고 맙니다. 진시왕은 불로초를 구해다 먹고 죽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죽고 말았습니다. 불로초를 아무리 갖다 먹어도 죽고 마는 것입니다. 늙지 않는 풀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 세상에 왔다 가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은 잠시 잠깐 다 지나갑니다. 볼 수 없이 갑니다. 화살과 같이 빠른 세상이고, 유수같이 빠른 세상이고, 잠깐 지나가고 마는 아침 안개와 같은 이런 세상이라고 하였습니다(약 4:14). 그래서 영생을 얻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세에서 사는 것, 현실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 영생할 수 없을까?’ 하는 영원히 사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모든 것이 다 잘 됐다고 해도 잠깐 지나가고 맙니다. 진시왕은 불로초를 구해다 먹고 죽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죽고 말았습니다. 불로초를 아무리 갖다 먹어도 죽고 마는 것입니다. 늙지 않는 풀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 세상에 왔다 가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킴으로 영생을 얻지 못함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라는 이것이 중요한 영생문제입니다. 어떤 젊은 사람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하다가, 예수님에게 와서 한번은 ‘영생문제를 근본적으로 물어봐야 되겠다’라고 찾아와서, 꿇어앉아서 겸손히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어봤습니다. 예수님께서 답변하시기를, “선한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는데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만 선합니다. 하나님이 절대 선이시고, 하나님과 맞는 것이 선이고, 하나님과 맞지 않는 것은 다 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이가 없는데, 왜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고 하십니다.
본문 19절에 예수님께서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마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하시니까, 그 사람이 뭐라고 답변했습니까? 본문 20절에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이 나오게 하려고, 이제 그 계명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하고,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거짓 증거하지 않고, 속여 빼앗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였습니다. 영생을 얻으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많은 노력을 하고 힘을 많이 썼습니다. 이 사람이 어려서부터 영생문제 때문에 계명 지키려고 힘을 많이 쓰고 노력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미 아시고,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하는 말이 나오게 하려고 하셨는데, 마침 그 대답이 잘 나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라고 하시면서 그 지킨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네가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켰지만 그것 가지고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다”라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사모하는 자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본문 21절에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왜 사랑하셨습니까? 영생문제를 위해서 이렇게 힘쓰는 것이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앞에 와서 물어보는 것을 보니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영생 얻으려고 애쓰고 사모하고, 그 길을 바로 찾으려고 겸
손히 이렇게 와서 물어본 것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사모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우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또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예배당에 와서 멀찍이 앉았다가 달아나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내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야 되겠다”,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 “기도를 좀 해야겠다”, “하나님의 진리를 좀 찾아야 되겠다”, “하나님을 찾아야 되겠다” 하고 사모하는 마음, 또 “바른 진리를 배워야겠다”, “진리가 무엇인가?”, “생명이 살아야 되겠다”, “영이 살아야겠다” 같이 이렇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사모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사모하는 마음 없이 그저 예배당 왔다 갔다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시간 반시간 전부터 교회 나와야 합니다. 아예 일찍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준비 기도를 좀 많이 하고, 사모하고, 아예 토요일부터 준비해야 됩니다. 주일 준비는 토요일부터 해야 됩니다. 토요일 날 아예 주일 지킬 준비를 다 하고, 토요일도 일찍 자고, 주일날에 새벽기도 참여하려 하고, 그리고 예배시간 전부터 나오고 하는 것이 사모하는 것입니다. 성경 공부하는 시간에 나오십시오. 성경 공부하는 시간에 왜 안 나옵니까? 주일날 무엇을 합니까? 성경 공부 10시 10분부터 하는데, 공부시간에 내내 나와서 참여한 사람은 성경 많이 배웠습니다. 사실 신구약 성경 다 배웠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구약 말라기까지, 또 마태복음에서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까지 다 배우고, 두 번째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 두 번째 공부하는 것인데, 주일날 10시 10분에 나와서 한 시간씩 성경 공부한 사람은, 한 20년 동안 신구약 성경 다 배웠습니다. 안 나온 사람은 어떻습니까? 안 나온 사람 하나도 모릅니다. 사모하지 못하면 받지 못하고, 사모하면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이렇게 길을 열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배우려고 사모하십시오. 영이 살려고 하고 사모하려고 해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우상을 버리고 나를 좇으라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니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 얻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물었는데,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것이 ‘영생 얻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에게 잘못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에게 잘못된 것은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말한 것이 잘못된 것인데,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줄 알고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뭘 해야 되겠는지를 찾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이 무엇인가 행해서 영생 얻으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노력을 한 것이 잘못 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온 목적도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면서, 뭘 해야 하는지 영생 얻을 길을 가르쳐달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행해서 영생을 얻으려고 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 사람이 영생 얻으려고 무엇을 행했습니까?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거짓증거하지 않고, 속여 빼앗지 않고, 부모 공경하였습니다. 이것을 해서 영생 얻으려 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해서 영생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다 해 봐야 그것이 영생길이 아닙니다. 영생 얻는 사람이 계명을 지키면 빛이 되는 것뿐입니다. 빛,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빛이 되는 것뿐이지, 아무리 행해도 그 자체가 ‘영생’ 은 아닙니다. ‘영생’ 은 영이 사는 것이고, 또 하늘나라 가는 것입니다. 영이 날마다 살아 나가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적 생명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이 살고 하늘나라를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죽었던 영혼이 중생해야 되고,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해야 되고, 예수님과 교통해야 됩니다. 영생 얻는 길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생이십니다. 즉, 예수님을 자기 심령 속에 모셔 들이고, 믿음으로 모셔 들이고, 예수님을 자기 생명으로 삼고, 예수님과 연합하고, 예수님과 교통하는 그것이 영생입니다.
요한복음 17:3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했는데, 영생이라는 것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그가 보내신 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영생이십니다. 예수님이 영생이시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영생이고, 예수님을 자기 생명으로 삼는 것이 영생이고, 예수님과 연합되는 것이 영생이고, 예수님과 교통하는 것이 영생이고, 예수님의 역사가 있는 것이 영생이고, 예수님의 생명에 접붙임을 받는 것이 영생이고, 자기 영이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자기 영이 사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인데, 이 사람에게 첫 마디에 이것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영생이다” 라고 가르쳐 주시는 대신 먼저 “계명을 네가 알지 않느냐?”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주라” 고 하시고, 그 다음에는 “나를 좇으라” 고 하셨습니다. ‘나를 좇는 것’ 이 ‘영생 길’ 입니다. “나를 좇으라” 가 영생길입니다.
예수님을 좇는 것이 영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나를 좇으라”고 바로 가르쳐 주시지 않고 그 말씀을 하시기 전에 왜 여러 말씀을 하셨을까요? 사실은 ‘예수님을 좇는 것’ 이 영생인데, 바로 ‘나를 좇으라’ 고 하시지 않고, “네가 계명을 어떻게 배웠느냐? 네가 어려서부터 그것 다 힘쓰지 않았느냐?”, 또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 는 말씀을 왜 하셨습니까? “나를 좇으라” 고 말씀하시기 전에 말씀하신 두 가지, 즉, 계명 지킨 것과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것은
영생을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계명에 대한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만 예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고, 재물이 우상이 되어서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나를 좇으라” 고 말씀하시기 전에 두 가지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뿐만 아니라, 우상을 버려야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따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둬 두고는 죄가 가로막혀서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또한 우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또 몇 가지 선을 행한 일이 예수님 따르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것도 내려놓아야 됩니다.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또 속여 빼앗지도 않고, 부모 공경했던 것이 다 좋은 일인데, 그것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데에는 방해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선을 행한 일이 왜 예수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됩니까? 속에 있는 것을 다 내 놓아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있는 것을 내 놓아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지, 속에 그대로 담겨 있으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병에 기름을 넣으려고 하면, 병에 먼저 있던 것을 다 내 놓아야 됩니다. 병에 먼저 있던 것들 중에서 나쁜 것도 다 내 놓아야 되고, 병에 담긴 좋은 것도 다 내 놓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귀한 생명수를 그 속에 담으려고 하면, 자기 속에 먼저 담겨 있던 것이 아무리 좋아도 다 쏟아내야 이 생명수를 담을 수가 있습니다. 자기 속을 비워야 합니다. 빈병을 가지고 나와야 담을 수 있습니다. 참기름 병에 참기름도 다 쏟아놓고, 들기름 병에 들기름도 다 쏟아놓고, 식용유도 쏟아 내놓아야 합니다. 병에 있는 무엇이든지 다 쏟아내야 됩니다. 담아놓고 있으면 거기에 생수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랑하던 것을 다 쏟아 내 놓아야 들어가지, 자랑하던 것이 그대로 담겨 있으면 안 됩니다.
“나는 바리새교인이다”, “이래에 두 번씩 금식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 “학벌이 좋다”, 이런 것들을 쏟아 내놓지 않으면 생수가 못 들어갑니다. “나는 십일조를 잘 드렸다”, “나는 또 뭘 잘했다”, 이런 것을 다 쏟아 내놓아야 생수가 들어가지, 그냥 속에 그대로 담아가지고 다니면 생수가 못 들어갑니다. “십일조 드렸다”, 또 “음란하지 아니하고 토색하지 아니했다”, 또 “세리와 같지 않다” 이런 것들은 물론 다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 때문에 그 사람은 예수를 못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려면 그런 것들을 내놓아야 됩니다. 나쁜 것을 내놓아야 하고, 좋은 것이라도 속에 담아놓고 자랑으로 삼으면 그 속에 생수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속에 있는 것은 다 내놓으라는 말씀입니다. 다 내놓고 빈 마음이 되어야 됩니다. 빈병이 되어야 그 안에 생수가 들어갑니다. 빈병을 가지고 나오십시오. 마음을 비워서 나와야 됩니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합니다. 죄도 물론 내놓아야 되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 자랑할 만한 것들, 빛나는 것들, 또 좋은 것들, 전부 다 내놓아야 속에 생수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속에 뭔가 좋다는 것들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 잘 못 믿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예수 잘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6부터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라고 하십니다. 예수 믿는 자 가운데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잘 믿는 문벌 좋은 자는 극소수입니다. 육체의 것을 내놓지 못하니까 못 믿습니
다. 그것을 내놓고 믿어야 되겠는데, 안 놓으니까 못 믿는 것입니다. 다 내놓고 믿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고린도전서 1:27-29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천한 것, 멸시받는 자들, 또 아무것도 없는 자들, 약한 자들, 미련한 자들, 이런 사람을 택해서 그 속
에 예수님의 생수를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들어 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체로는 자랑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있는 것’ 이 방해물입니다. 있는 것, 과거에 내가 자랑하던 것, 좋아하는 것, 이것이 전부 장애물입니다. 영생의 세계로 가려고 할 때에 그것들이 전부 방해물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5-8에서,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이라고 하며,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 라고 말합니다. 과거에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해서 전부 해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하나 얻는 데에는 전부 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난지 팔일 만에 할례 받은 일과, 양반 지파인 이스라엘 족속 베냐민 지파인 것, 이런 것들이 전부 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양반행세 하려는 사람들은 예수 믿기 힘듭니다. 양반 자리 다 내놓아야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나는 양반이다” 하고 돌아다니면 예수 못 믿습니다. 껍데기만 믿지, 속에 예수가 안 들어갑니다. 양반이 빠져 나가야 예수가 들어갑니다. 양반이 좋은 것 같아도 예수님 믿는 데에는 큰 방해물입니다.
공부 많이 한 사람으로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이 아주 드뭅니다. 초등학교, 고등학교까지는 교회 잘 나오지만, 대학교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제 교회 잘 안 나옵니다. 대학교도 좋은 대학교 가면 그만큼 교회 잘 안 나옵니다. 극소수만 나오고 나머지는 교회 잘 안 나옵니다. 다 떨어집니다. 왜 떨어지는가 하면,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예수님의 생수를 받아들이려고 하니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다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 들어 올 때는 다 떼어 놓고 들어와야 됩니다. 또한 기독교에 들어 올 때, 믿음의 세계에 들어 올 때는 다 떼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 올 때는 세상의 좋은 학벌, 양반, 무슨 기술자, 높은 지위, 군인들은 계급장, 칼자루 다 떼 놓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서 들어와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 것을 가지고 들어오면 안 됩니다. 전부 큰 방해물들입니다. 본문의 이 사람이 몇 가지 계명 좀 지켰다고 해서 영생을 얻을까 하고 생각을 했는데, 예수님한테 오니까 그것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다 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 가지고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주고,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돈이 많았습니다. 재물이 많다고 했는데, 재물이 많으니까 그 재물이 걸려서 생수가 못 들어갑니다. 재물이 속에 가득 찼으니까 예수님의 생수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재물을 다 내놓아야 예수님의 생수가 들어갑니다. 생명의 생수가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재물이 방해물입니다.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그럼 둘 다 가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재물도 가지고, 예수님도 따르면 어떻겠습니까? “왜 재물 내놓고 예수를 따르라 그러시는가? 재물도 가지고 예수님도 따르면 좋을텐데, 그럼 예수님 위해서 필요할 때 꺼내다 쓸 수 있는데, 그걸 왜 내놓고 오라고 하시는가?”라고 물어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주라는 것은 필요한데 쓰라는 말씀입니다. 네 재물을 필요한데 사용하고, 그러고 나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두 가지 다 가지고는 안 됩니까? 재물도 가지고 예수님도 붙들고 하면 좋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된다고 하십니까? 세상 것도 붙들고 예수님도 붙들고, 한 손에는 세상 것 다른 한 손은 예수님, 한 손은 재물 다른 한 손은 예수님, 한 손은 세상 학(學), 학벌을 붙들고 다른 한 손은 예수님, 그렇게 둘 다 붙들면 어떻게 됩니까? 할 수 있다고 그랬습니까? 할 수 없다고 그랬습니다.
마태복음 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라며 둘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만 섬겨야 됩니다. 예수님이냐? 재물이냐?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만 하라는 말씀입니다. 둘은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재물, 둘 다
가지고 가려고 하면 그것은 낙제입니다. 예수님에게 낙제입니다. 하나만 가져야 이것이 진짜입니다. 둘 다 가지려는 사람은 언젠가 낙제될 날이 옵니다. 시간문제입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어느 것이 원업(原業)이냐? 원업이 무엇이고, 부업이 무엇이냐? 무엇을 하는 데에 자신이 열중하려고 하는지,
첫째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둘 다 첫째일 수 없고, 반드시 첫째는 하나뿐입니다. 재물이 첫째이면 그것은 예수님을 벌써 내버린 것입니다. 세상 것, 다른 무슨 세상 명예 영광이나 권세나 학벌이나 이런 것이 첫째이면, 벌써 예수님을 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직장이 첫째면, 벌써 예수님 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첫째면 믿는 것이고, 첫째가 아니면 예수 못 믿습니다. 예수님 못 따라갑니다. 첫째가 세상의 것이면 바꾸어야 됩니다. 믿는 것이 첫째야 되어야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첫째입니다.
둘 다 첫째일 수 없고, 반드시 첫째는 하나뿐입니다. 재물이 첫째이면 그것은 예수님을 벌써 내버린 것입니다. 세상 것, 다른 무슨 세상 명예 영광이나 권세나 학벌이나 이런 것이 첫째이면, 벌써 예수님을 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직장이 첫째면, 벌써 예수님 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첫째면 믿는 것이고, 첫째가 아니면 예수 못 믿습니다. 예수님 못 따라갑니다. 첫째가 세상의 것이면 바꾸어야 됩니다. 믿는 것이 첫째야 되어야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첫째입니다.
직업 가운데 무엇이 첫째입니까? 무슨 직업이 첫째입니까? 세상 직업이 첫째이면 안 됩니다. 농사하는 것, 돼지 먹이는 것, 소 치는 것, 무슨 공장하는 것, 무슨 기술, 무슨 사업, 이 세상 직장, 장사, 수출, 이런 것이 첫째가 되면, 그것은 벌써 예수님을 내버린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은 바지 껍데기만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바지 껍데기 교인’ 입니다. 집사는 바지 껍데기 집사입니다. 성은 ‘껍’ 이고 이름은 ‘데기’, 껍데기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첫째여야지, 이 세상 것이 첫째
고 둘 다 가지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거나 하나 택하십시오. 괜히 사정 딱하게 그러지 말고 어느 것이 첫째인지, 믿는 것이 첫째면 아예 믿고, 세상이 첫째면 아예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그만 두십시오. 되지도 않을 것을 해서 괜히 그런 껍데기 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가보십시오. 조금 있으면 저주 받아 망하게 됩니다. 저주 받아 망해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것을 첫째로 하고, 믿음에 열심을 내어 대어들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2. 영생을 얻고 백배나 받는 법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
본문 23-27절에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건 실제로 ‘바늘귀’ 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원을 얻겠습니까?” 물으니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만능이다” 라고 하시며, 하나님 앞에 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른 것들 다 내놓고 오기만 하면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 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게 해주십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이니까 할 수 없다’ 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할 수 없다’ 고 생각하는 것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려고 들러붙어서 힘을 쓰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은 자에게 백배로 갚아주심
본문 28-30절에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다 버리고 예수님만 따라가라’ 는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그 복음을 위하여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예수 따라가느라고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예수를 위해서 버린 것입니다. 다 버리고 예수님만 따라갔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본문 30절에 금세에서, 이 세상에 있어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몇 배나 받았습니까? “백배나 받되”, 백배나 받습니다. 버리고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백배나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안 버리면 예수님 못 따라가고, 예수님도 잃어버리고, 또 세상 것도 잃어버립니다. 둘 다 잃어버립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중간에 다른 것을 첫째로 여기면서 따라가느라고 예수님을 못 따라가면, 예수님도 잃어버리고 마지막에는 따라가던 세상 것도 잃어버립니다. 둘 다 잃어버립니다. 반드시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다 내버리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예수님도 얻고, 예수님 따르느라 버린 것들도 백배나 더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심을철 목사의 백배 더 받은 경험
어떻게 백배나 더 좋은 것을 주겠습니까? 제가 늘 심을철 목사의 경험담을 말했는데, 심을철 목사가 신사참배 안 하려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심목사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안 믿었다는데, 하루는 감옥에 와서, “네가 신사참배 하고 나오면 나도 예수 믿겠다” 고 하시며, “네가 신사참배 하고 나오면 나도 예수 믿고 천당 같이 가자. 너 혼자 가려느냐?” 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심을철 목사가 자기 어머니가 와서 예수 믿겠다는 바람에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제가 다른 것은 다 순종해도 이건 할 수 없습니다” 라면서 “신사 참배할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나 지옥가도 좋으냐?” 고 하셨고, 심을철 목사는 “그래도 전 양보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나는 지옥 간다. 너 혼자 천당 가라. 나는 지옥 간다. 지옥 간다...”하고 울면서 집으로 가셨답니다. 그것을 보고 형사들이 구두 발로 머리를 자꾸 때리면서, “대가리가 공구리통 같은 새끼야, 넌 부모도 없고 돌짬(갈라진 돌과 돌의 틈)에서 나온 새끼냐?” 하면서 매를 많이 때리고, 심목사는 다시 감옥에 갇혔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년 있다가, 1945년 8.15 해방이 되어서 심목사는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일본이 망하고 나서 나왔습니다. 심목사가 나온 다음에 그의 어머니가 “야 네가 나오는 것을 보니까 진짜 하나님이 계시다. 나도 믿어야 되겠다” 하면서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나올 수 없는 아들이 나왔다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분명히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 심목사가 모친에게 물어봤답니다. “이전에 감옥에 와서, 내가 신사참배하고 나오면 예수 믿겠다고 어머니가 그러셨는데, 그것 진짜 믿으려고 그러셨습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믿긴 뭘 믿어. 너 나오라고 그랬지” 하며 그 때는 믿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아들이 감옥에서 고생을 하니까 너무 애처로워서, 아들 빼내오려고 수단을 꾸민 거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너 나오면 믿는다” 는 것은 수단으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신사참배 하고 감옥에서 나왔다면, 예수님도 잃어버리고, 어머니도 더 마귀 섬기는 어머니가 되어서 더 안 될 뻔 했는데, 그때 진리를 양보하지 않고 예수님만 따라가려고, 아예 양보하지 않고 말씀만 따라갔는데, 그 이후에 8․15 해방이 돼서 일본이 망한 다음에 나오니까, 어머니가 참으로 하나님은 살아계심을 깨달아 발견했다는 말씀입니다. ‘일본 망하는 것이 하나님 역사 아니면 어찌 망하겠는가?’ 하면서 진짜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후에 심목사의 어머니가 참 잘 믿은 모양입니다. 믿은 다음에 보니까, 자기 어머니가 믿기 전의 어머니보다 백배나 더 낫더랍니다. 믿기 전엔 우상이나 섬기고 다니셨는데, 이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딸이 됐으니까 백배나 낫더라는 것입니다. “백배나 준다” 는 말씀은 어머니 백 사람을 준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 믿기 전의 어머니보다 예수 믿게 된 어머니가 백배나 낫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백배나 주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백배나 낫다
예수 없이, 큰 고래 같은 기와집, 고래 같은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예수님 모시고 초막에서 사는 것, 그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예수 없이 죄짓는 친척하고 사는 것보다, 예수님을 모시고 혼자 살다가 나중에 친척이 예수님 믿게 되면 백배나 나은 친척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 모시고 사는 곳이 백배나 낫습니다. 예수 없는 곳보다, 예수 모시고 사는 곳이 백배나 낫습니다. 그러니까 다 내놓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첫째로 영생을 얻고, 자기 영혼이 살고, 다른 것은 백배나 나아지도록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백배나 더 주십니다. 예수 믿으면 믿기 전보다 백배나 더 주십니다. 믿으면 하나님께서 영생도 주시고, 예수님 따라가면 다른 것들도 백배나 낫게 만들어주십 니다. ‘백배나 낫게 만들어준다’ 는 것을 체험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입니다. 체험해 보면 반드시 백배나 낫게 해주십니다. 예수님만 믿으십시오. 예수님만 믿으면 다른 것들 다 더해 주십니다. 둘 다 가지려 하면 둘 다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둘 다 가지려 하면 둘 다 잃어버리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둘 다 주십니다. 예수님도 모시고, 생명이 되고, 다른 것들도 백배나 낫게 되어서 온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것도 필요한 건 다 주십니다. 예수님만 따라가면 다 주십니다.
다 버리고 예수님을 좇지 않으면 나중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있는 것을 팔아서 구제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병에 있는 것을 다 내버려야 합니다. 나쁜 것도 내버리고, 좋은 것도 다 내버려야 거기에다가 생수를 담을 수 있습니다. 돌 감람나무에서 가지를 잘라야, 참 감람나무에 접붙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르지 않으면 접붙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생명에 접붙이려면, 과거에 있던 것을 잘라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생명에 접 붙어서, 생명의 진액을 받아서, 생명이 살 수가 있습니다. 육에 것, 세상의 것을 내놓아야, 신령한 것, 영생의 것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백배나 더 낫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백배나 더 주십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고 하셨는데, 내놓지 못하면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다 내놓고 따라가면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하십니다. 다 내놓고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나중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먼저 믿었지만 나중 되고 관두게 됩니다. “백배나 더 받고”라는 말씀은 다 내놓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백배나 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따라가는 것을 내놓고 세상을 따라가면, 점점 더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마지막엔 진리도 다 잃어버리고, 심령이 죽고, 영의 역사가 죽고,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반드시 심판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떠나서 세상 것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없고, 또 다 썩어질 것이고, 다 내놓고 갈 것들 입니다. 세상 것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다 쇠퇴하고, 거기에는 생명도 없고, 평안도 없고, 그것 가지고는 즐거움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를 믿어야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나가서 돈 많이 벌었다, 높은 지위를 가졌다, 무슨 국회의원이 되었다, 장관이 되었다,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들이 무슨 소망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하루 밥 세끼 먹는 것이고, 노동자도 하루 밥 세끼 먹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돈 많은 사람도 하루 밥 세끼 먹다가 죽는 것입니다. 또 노동자도 하루 밥 세끼 먹다가 죽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 많이 한 사람도 밥 세끼 먹다 죽는 것입니다. 또 공부 못한 사람도 그저 일하고 밥 세끼 먹다 죽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기는 잠깐 지나가고 마는 세상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 타고 다녀도 밥 세끼 먹다 죽는 것입니다. 걸어 다니는 사람도 밥 세끼 먹다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더 건강합니까? 걸어 다니는 사람이 더 건강합니다. 걸어 다녀야 건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할 수 없어서 타고 다니는 것이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지난 주간에는 기도하기 위해 고천 기도원에 나가 있었는데, 하루는 한번 걸어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걸어가야 건강하지 가만 앉아 있으니까 안되겠기에, 고천 정류소 쪽으로 나가서 고천 의왕 시청으로 돌아서 닭장 있는 데로 걸어서 올라왔습니다. 45분 걸렸습니다. 기도원에서 동쪽으로 가서 시청 앞쪽 큰길로 돌아서 오산리 쪽으로 오는데 45분이 걸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묻길래, “한 바퀴 돌아왔습니다” 했더니, 좋은 운동했다는 겁니다. 하루 45분 걷는 게 좋다고 합니다. 김세빈 목사는 달라스에 가 있는데, 거기에 한목사라고 있습니다. 한목사님 금년에 74세인데, 하루에 큰 건물 2개가 있는 데에서 아침에 일곱 바퀴, 저녁에 일곱 바퀴 돈다고 합니다. 걸어서 도는 것입니다. 일곱 바퀴 도는데 40분 걸린답니다. 아침에도 40분, 저녁에도 40분 걷는다고 해서, 김세빈 목사도 나가서 한 목사와 함께 걸으라고 그랬습니다. 김세빈 목사가 얼마 전에 전화로 말하기를 자기도 나가 돌고 들어온답니다. 사실은 걷는 거 40분 정도 아침만 한번 돌아도 큰 것입니다. 걸으십시오. 좋은 차 타고 다니는 것보다 걷는 게 더 좋은 것입니다.
하루 밥 세끼 먹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노동자가 사실은 더 건강하고, 아무리 돈 많아도 밥 세끼 먹는 것입니다. 별것 없습니다. 고생만 더 많습니다. 일이 많으면 근심도 많고 걱정도 많습니다. 요새 사장님들, 큰 회사 회장님들에게, 노사분규가 일어나서 노동자들이 데모하고, 파업하고, 머리에 뻘건 수건 잘라매고 와 앉아가지고 “해보자”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 보기 싫어서 사업 못하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걱정되겠습니까? 수출은 안 되지, 물가는 올라가지, 노
동자들이 자꾸 돈은 더 달라고 하고, 회사 운영은 어렵고, 그러니까 그 회장님들 사장님들 밤잠 못잘 것 같습니다.
3. 예수님을 바로 따라가는 법을 배우라
성경대로 예수님을 따라가라
영생문제, 즉,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의 대답은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을 따라가야 된다”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기도하고, 가까이하고, 또 따라가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예수님을 바로 따라가기 위해서는 성경을 배워야 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바로 따라가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믿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성경 다 제쳐놓고 믿습니다. 예수 믿긴 믿는데 추도예배하고 우상 섬기고, 무덤에 가서 절하고, 주일날 안 지키고, 별의 별것을 다하며 믿습니다. 목사들은 술 먹는 목사, 맥주 먹는 목사, 콜라 먹는 목사, 이렇게 ABC가 있다는데, A급은 알콜, 술 먹는 사람이고, B급은 맥주, C급은 콜라, 이렇게 목사들도 ABC로 갈라놓는 답니다. 그래서 “A급입니까? B급입니까? C급입니까?” 하고 물어본답니다. C급이라 하면 콜라 주는 것이고, A급이라 하면 위스키 같은 좋은 술 주는 것이고, B급이라 하면 맥주 주는 것이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주일 하나 제대로 안 지키고, 술 먹고 하는 이것이 믿는 것입니까? 거짓말하고, 속이고, 사기횡령하는 이것이 믿는 것입니까?
이번에 국회의원들 40명 구속됐는데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왜 그렇게 뇌물 받아 먹다가 감옥에 들어갑니까? 그게 믿는 것입니까?
이번에 국회의원들 40명 구속됐는데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왜 그렇게 뇌물 받아 먹다가 감옥에 들어갑니까? 그게 믿는 것입니까?
그럼 어떻게 하여야 예수님을 바로 믿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면 성경을 바로 배우고 성경대로 믿어야 됩니다. 성경대로 예수를 따라가야 진짜 따라가는 것이지, 성경 다 제쳐놓고 따라가는 것은 예수 따라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의 뜻인데, 그 뜻을 어기면서 따라 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이지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도 바로 믿고 말씀대로 따라가야지, 성경을 어기며 따라가는 것은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가라
또 따라가도 열심히 따라가야 됩니다. 한 시간도 빠지지 말고 열심히 나와서, 예수님을 좀 더 가까이 하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려고 할 때는 일찍 나옵니다. 맨 앞에 나와 앉아있습니다. 그러나 차차 식어지면 중, 가운데 앉았다가, 또 3분의 2 뒤로 갔다가, 그 다음엔 맨 뒤에 가서 앉아있습니다. 믿음이 식어지면 점점 뒤로 가는 겁니다. 열심이 들 땐 앞에 나와 앉았다가, 차차 뒤로 갔다가, 그 다음엔 아주 뒤로 갔다가, ‘아차차’ 하고는 뒤로 나가 자빠지는 것입니다.
이것 참 비참한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열심을 내어 앞에 나와 앉으려고 하여야겠습니다. 예배시간 전에 나오고, 새벽기도 나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예배시간 빠지지 말고 나오도록 애를 써야 하겠습니다.
장사하느라고 삼일(수요일)저녁 예배에 안 나오는 사람도 있는데,장사해서 돈 얼마나 법니까? 삼일예배도 안 오고 그렇게 장사해서 돈 얼마나 쌓아놨습니까? 또 쌓아놨으면 뭘 합니까? 그것을 가지고 뭘 합니까? 예배시간 안 지키고 돈 벌어서 쌓아놓으면 뭘 하겠습니까? 그 돈이 자기 생명이 되겠습니까? 돈 좀 적게 벌더라도 가게 문 닫고 어떻게 하든지 예배시간에 참여하려고 애를 쓰고 예수님을 배우려고 애를 쓰시기 바랍니다. 또 공부하느라고 예배시간 안 나오고 삼일예배 안 나오는데, 공부 중지하고 삼일예배 다 나오십시오. 삼일예배 다 참석하고 나서 공부하는 것, 그것이 진짜 제 공부입니다. 예배시간 다 빠져먹고 한 것은 제 공부 아닙니다. 그렇게 공부만 한다고 해서 좋은 학교 붙는 것도 아닙니다. 삼일저녁 예배 꼭꼭 다 나오고도 좋은 학교 붙는 사람 많이 있습니다. 삼일저녁에 한 번도 안 빠지고 나왔는데, 이대 붙은 사람 또 서울대학 붙은 사람도 있습니다. 삼일 저녁 다 잘라먹고 공부한다고 해도 학교 못 붙은 사람도 있습니다.
믿는 일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세상 공부 한 다음, 그저 하나님께서 붙게 해주시면 붙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떨어지면 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 아래 학교로 낮춰서 붙으면 됩니다. 다 좋은데 다녀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사는 것이 좋은 학교 나온 것에 있는 게 아닙니다. 대학 나와야만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50억인가 55억인가 된다는데, 대학 나온 사람 얼마나 되겠습니까? 100분의 일도 안 될 것인데, 그러니까 대학이 우상이 되지 말고, 어떻게 하든지 예수 따라가서 영생 얻는 것이 중요한 줄 알고, 예수를 따라갈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혼도 살고, 예수님도 얻고,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백배나 좋게 해주십니다.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잘 못 먹어도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잡곡밥을 먹어도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이고, 잡곡밥에다가 김치 쪼가리 해 먹어도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소를 잡아놓고 고량진미(膏粱珍味)를 먹는다고 해도 예수님이 없으면 거기는 지옥입니다. 한숨만 푹푹 쉬고 그렇게 사는 지옥생활입니다. 어디든지 초막이나 판잣집이나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잡곡밥을 해먹고, 그릇이 없어서 바가지에다 물 떠다 먹고, 베개가 없어서 팔꿈치를 베고 자도 거기가 하늘나라입니다.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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