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전도
마가복음 16:15-20
마가복음 16:15-20
15또 가라사대 나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1. 전도는 생명을 살리는 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도를 명하실 때에, 능력을 주시면서 전도를 명하셨습니다. 본문 15-60절에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 입니다. “너는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라”,“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그 때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하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안 하면 주의 명령을 어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16에는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명령을 어겼으니까 화를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명령을 받은 우리가 사명감을 갖고, 나가서 전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전도하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전도하지 않아서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은 멸망합니다. 사람을 멸망하는 데에 그냥 둬두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을 구원해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느냐, 생사가 달린 것이 전도입니다. 가만히 둬두면 그 사람이 죄 값으로 멸망할 것이고, 복음을 전해서 그 사람을 구원하면 그가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영생이냐, 영원한 멸망이냐 하는 것이 전도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아주 상당히 중대한 일입니다.
2. 해산하는 수고로 전도할 때 능력이 나타남
권능이 나타남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만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저 쉽게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다”라고 한 말씀이 있고(고전 4:15), 갈라디아서 4:19에는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해산하는 수고, 복음으로 사람들을 낳는 일, 이런 일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데 있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피땀이 들어가야 되고, 거기에 생명 전체가 쏟아 부어져야 됩니다. 이 전도하는 일이 아주 힘 드는 일입니다. 자기의 있는 힘을 다 기울이고, 마음을 다 기울이고, 힘을 쏟아 부으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도해야 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 이런 말은 전도하는데 사용한 말씀입니다.
보통 전도한다고 하면 전도지나 한 장씩 주고, “예수 믿으세요” 하고 광고나 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안 됩니다. 심혈을 쏟아 부어야 되고, 거기에 피땀이 들어가야 되고, 한 사람에게 많은 정력이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전도가 됩니다. 아이 하나 낳는 것도 쉽게 식은 밥 먹듯이 그렇게 척 낳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많은 노력과 피와 자기 생명을 다 기울여서 아이를 낳는 것처럼, 사람 하나 살려내는 전도하는 것도 아이 하나 낳는 것만큼의 노력과 수고와 피땀이 들어가야만 한 사람씩 구원해 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힘써 전도하는 사람에게는 표적이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을 주어서 내보내셨고, 전도할 때에 표적이 나타나게 만들어 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10:1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면서, 나가서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7-8에는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전도하는 일은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권능이 따라서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말로 전도하는 동시에,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나타내면서, 나가서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전도를 해도 권능이 안 나타난다고 생각하는사람이 있습니다. 전도를 해도 권능이 왜 안 나타나느냐? 그 이유는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전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권능이 안 나타난 것입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전도를 했으면 반드시 권능이 나타났겠는데, 해산하는 수고는 안하고 말로만 슬슬 전도하고, 무슨 광고지 돌리듯이 이렇게 말로만 한마디씩 하고 돌아가니까, 그것은 해산하는 수고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전도를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어떠한 권능이 나타나는가 하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권능이 나타납니다. 이 복음을 들고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가서 기도할 때에, 마귀 들린 사람의 속에서 마귀가 나갑니다. 이것도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때때로 있는데, 그 때에 힘을 쓰지 않고, 거저 가서 쓰윽 지나가는 식으로 기도해서 마귀가 나가는 것이 아니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기도를 해야 마귀가 나갑니다. 좀 부족해도 해
산하는 수고를 하여야 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한 스무 살 될 때인데, 교인 가운데 마귀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매일 청년들과 같이 가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매일 저녁을 한 달 이상, 매일 저녁 가서 기도하고 예배드려주는 것입니다. 그러자 마귀가 나갔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은 한번 가서 기도해주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바쁘시니까 매일 저녁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은 할 것이 없으니까, 그저 매일 저녁 먹고 나면 그 집에 가는 겁니다. 밥 먹고 나면 “가자” 하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한 달, 두 달 있다가 마귀가 나갔습니다.
왜 목사님이 가서 기도해줄 때에는 안 나갔는데, 왜 우리들, 아이인 청년들이 가서 기도해주니까 나았습니까? 청년들이 목사보다 나아서 병이 나은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은 시간이 바쁘시니까 매일 저녁 못가는 겁니다. 장로님도 매일 저녁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저녁 간 것입니다. 말하자면 해산하는 수고를 한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마귀가 나간 것입니다.
병을 고칠 수 있음
아무리 건강하고 힘이 있어도, 해산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아이 못 낳습니다. 아무리 몸체가 작고 힘이 없는 것 같아도,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사람은 아이 낳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마귀 내쫓으려고 달려가서, 들러붙어서 애를 쓰고, 기도하고, 일심정력으로 피땀을 흘리고 달라붙으면서 기도하면 마귀가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산하는 수고 없이 건들건들 하면서 겉으로만 쓱 한번 기도하는 것으로는 마귀 안 나갑니다. 이것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병 낫는 것도 그렇습니다. 모든 병든 자를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고 했는데, 병 낫는 것도 ‘어디 기도원 가서 기도하면 병 낫는다’, ‘누구한테 가서 기도 받으면 병 낫는다’,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병이 난 원인이 다 있습니다. 원인은 대개가 다 죄 값으로 납니다. 죄 값으로 나는 것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것도 있고(요한복음 9장), 또 욥과 같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병이 나는 것도 있고, 어떤 사람은 때가 되서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려고, 기한이 되서 데려가시려고 병이 나는 것도 있습니다. 천당으로 데려가시려고 나는 병은 아무리 기도해도 안 낫습니다. 그런 병은 사도바울이 기도해도 안 낫고, 아무리 신의 권능을 많이 받은 사람이 기도해도 하나님의 데려가실 때가 되면 가게 되어있습니다. 안 낫습니다.
그러나 대개가 다 죄 값으로 난 것이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것을 믿고, 들러붙어서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벌떡 그 병에서 낫게 만들어 줍니다. 자기가 기도해야 됩니다. 해산할 때에 자기가 힘을 써야지, 옆 사람이 힘써줄 수 있습니까? 자기는 가만히 낮잠 자는데, 삯을 주고 남더러 나와서 해산하는 수고를 해 달라고 하고선, 여러 사람이 나와서 아무리 꼬부라뜨리고 애쓰고 힘을 줘도, 남이 해산하는 수고를 감당 못해줍니다. 자기가 수고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병 낫는 것도 자기가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것을 믿고 들러붙어서 애를 쓰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병에서 낫게 해주십니다.
다 낫는 것은 아닙니다. 낫기로 예정된 것만 낫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병이 났을 때에 낫는 사람이 몇 프로고 죽는 사람이 몇 프로인지 이것을 생각해 보았는데, 가령 병원에 천명이 입원을 했다고 하면, 천명의 입원 환자 중에 이, 삼십 명이 죽을 것 같습니다. 천 명 중 구백 칠, 팔십 명은 나을 것 같습니다. 병 난 사람 중에 97% 정도는 낫는다고 봐야 됩니다. 죽는 사람은 한 3% 정도일 거라 봅니다.
또 개인적으로 체험할 때에, 감기 그런 것, 저는 한 몇 백 번 앓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이전에는 감기 혼자 다 맡아 놓고 앓고는 했는데, 감기 돌아간다 하면 나부터 앓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요새는 하나님께서 감기 잘 안 걸리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백 번에 한 번 죽었다고 하면, 지금 여기 못나와 있겠는데, 안 죽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누구나 병이 나면 99%는 낫는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한 번은 죽어야 됩니다. 그것은 안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죽기로 예정한 사람, 데려가기로 한 때가 된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 낫습니다. 그것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병 다 낫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데려갈 것을 어떻게 낫게 합니까? 자기가 기도하면 병 다 낫는다는 사람, 그 교회에도 상가 집이 있고, 그 교회에도 사람 죽습니다. 좀 있으면 자기도 죽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낫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낫기로 예정된 사람은 다 낫는데, 병 들렸다 하면 99%는 낫는 걸로 봐야 합니다.
100 사람이 걸렸다 하면, 99 사람은 낫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일단 병이 나면, 우리는 나을 걸로 믿으십시오. 좀 더 연단시키려고 주시는 병은 좀 더 있다가 나을 수도 있습니다. 병이 난 사람은 하여간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줄로 믿어도 됩니다. 어떤 집사 하나가 “요새 다리가 아프고, 팔이 아프고, 아픈 게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믿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것을 믿고 힘써서 기도하면 낫습니다. 단, 데려가려고 주시는 병은 안 낫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회개하면서, 그리고 해산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언제나 해산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회개하면서 해산하는 기도를 하면, 그 병을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병도 가서 해산하는 기도를 하면서,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회개를 시키면서, 해산하는 기도를 같이 해주면, 그 사람은 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낫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으니까 나을 수 있습니다. 다 낫는 것은 아니지만 99%는 낫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새 방언으로 말하게 됨
본문 17절에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방언을 말한다’라고 했는데, 방언은 성경에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도행전 2장에 있는 다른 나라의 말을 하는 방언입니다. 이것은 배우지 않았어도 다른 나라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말을 배우지 않았어도 그 나라 말로 전도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린도전서 14장에 있는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입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4:28). 성경 다섯 마디 깨달은 것으로 말하는 것이, 알아듣지 못하는 일만 마디의 방언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4:19).
셋째로 여기의 ‘새 방언’은 자기 나라의 말로 한 것인데, 그 내용이 새것입니다. 깨달은 진리가 새것이고, 자기 나라의 말로 한 것입니다. 여기의 ‘새 방언’은 새로운 진리의 깨달음으로 말하는 새 방언입니다.
‘새 노래’도 마찬가지로 늘 부르던 노래이지만, 심령이 새롭게 되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서 노래를 부르면 그것이 새 노래가 됩니다. 그와 같이, 새 방언도 새로운 진리를 깨달아서 자기 나라 말로 말하는데, 그것이 처음 듣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도하려고 생명 전체를 내걸어 놓고, 나가서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전도를 하면, 새로운 역사가 나타나서 새로운 말이 나옵니다. 자기가 생각지 않았던 말, 깨닫지 못했던 진리가 나오고, 알지 못하던 진리가 말하는 가운데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경해석이 새롭게 나옵니다. 그것이 새 방언입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자기가 보통 말하는 것보다 더 잘 말합니다. 말할 줄 모르는 사람들, 전도하면 말 잘 나옵니다.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 방언을 말하게 하시기 때문에, 전도를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하게 되면, 말은 어디서 나오고, 답변은 어떻게 그렇게 잘했고, 자기도 놀랠만한 답변이 나오곤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 전할 때에 성령께서 새 방언을 말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말 ‘떠떠떠’ 하는, 말더털이(말더듬이)도 하나님 복음을 들고 말할 때에는 말이 술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 더털(더듬)거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악한 자라도 가서 정복할 수 있음
본문 18절에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생각해서, 어떤 교파에서는 예배시간에 뱀을 가지고 와서 서로 왔다갔다 건네주며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주 잘못되었고,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예배가 되겠습니까?
‘뱀을 집는다’ 라는 것은, 마귀를 정복한다는 것입니다. 뱀은 마귀를 상징하는 것인데, 마귀를 정복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악한 자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자’라는 것은 뱀과 독사의 자식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을 쏘고 물어뜯고,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악한 자들을 예수님께서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이렇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성도가 ‘뱀을 집는다’ 라는 것은, 아무리 독사의 자식과 같이 악한 자라도 가서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악한 자를 잡아서 하나님 앞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뱀과 같이 악한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한 전도자에게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무서워서 못 간다고 하면 안 됩니다.
‘보기 싫다’, ‘소름 끼친다’ 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 가족을 보기만 해도 싫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부끼리 언쟁을 하는 모양인데, 그 부인의 말이 ‘남편 보기만 해도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끝장을 보고 관두든지 해야겠다고 해서, 제가 “끝장이 없다. 그것을 이겨라. 이기면 하나님의 큰 축복이 그 가정에 임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 못 이기면 다 망한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독사 이길 수 있습니까? 뱀 이길 수 있습니까?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뱀 얼마든지 하나님의 만능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독사굴이라 할지라도, 이리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사자굴이라 할지라도, 가시와 찔레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넉넉히 잡아서 다 하나님께로 돌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나가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만능이 나에게 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내게 있다.” 이것을 믿고 나가면 됩니다. 마태복음 10:1에 권능을 주셨다고 했는데, 믿으십시오. “믿습니다!” 하고, “사자 굴도 올 테면 오너라”, “뱀 굴도 올 테면 오너라”, “찔레 밭도 올 테면 오너라” 하며 “다 이것을 잡아서 하나님께로 돌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권능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남들보다 나아서도 아니고, 능력이 있어서도 아니라, 만능의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고, 예수님께서 권능을 주셨기 때문에 다 이것을 정복할 수 있고, 다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뱀 다 잡아서 하나님께로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3. 힘을 쓸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아직도 뱀 못 집은 사람은 왜 그렇습니까? 해산하는 수고를 안 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뱀을 잡으려고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노력을 하면서, 항상 힘을 쓰면 잡을 수 있겠는데, 그런 힘을 안 쓰는 것입니다. 자기가 마귀 종노릇 하는데 어떻게 뱀을 잡겠습니까? 뱀을 잡으려면, 자기가 마귀 종노릇 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의 장중에 딱 붙들려야 됩니다. 말씀에 붙들려야 됩니다. 원리원칙에 의해서 해야 합니다. 말씀에 붙들렸다는 것은 원리원칙에 섰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도 안 되고, 덜 나가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만능을 믿고, 하나님의 권능을 갖다 대면 뱀이 꼼짝 못 합니다. 뱀을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는 곳이 아무리 독사와 같이 독하고, 사자굴과 같이 험하고 잔인하고, 가시밭과 같이 사방 찌르는 사회라도, 우리는 넉넉히 나가서 잡아서 하나님 앞으로 돌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뱀 잡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기 때문에, 그것을 쓰면 됩니다. 쓰지 않아서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을 주셨어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쓰지 않으면 능력이 안 나옵니다. 힘이 아무리 있어도 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힘없는 사람과 같습니다. 집에 자동차가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 차를 부리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땅이 있고 아무리 좋은 자원이 있다고 할지라도, 개발하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몽고족이라는 인디안들이 점령을 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점령을 했어도 개발하지 않고 짐승이나 잡아먹고 돌아다녔으니까 소용이 없었습니다. 또 예수님 섬기지 않고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심판하셔서, 하나님 섬기는 영국 백인종을 그 쪽으로 보내셔서, 그 사람들이 그 땅을 개발하게 하셨습니다. 개발하니까 그 땅이 좋은 땅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가서 전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가서 기도할 때에, 마귀 들린 사람의 속에서 마귀가 나갑니다. 개발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아도 쓸 데 없습니다. 캘리포니아주를 멕시코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땅을 미국에서 돈 주고 샀다고 합니다. 사막지대라서 쓸 데 없다고 팔아먹은 모양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그 땅을 사서 개발을 했는데,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주가 제일 부자고, 제일 좋은 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천연자원, 석유가 많고, 금광석이 많아도, 개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많이 주셨습니다. 주셨어도 쓰지 않으면 능력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능력 왜 안 썼습니까? 게을러서 안 썼고, 믿음이 없어서 안 썼고, 나태해서 안 썼고, 방종 하느라 안 썼고, 세상으로 기울어지느라 안 썼습니다. 여기에다가 눈을 돌리고, 발견하고, 여기에다가 마음을 두고, 여기에다가 힘을 써서 개발했더라면 큰 역사가 나타났을 텐데, 개발 안하니까 역사가 안 나타나는 것입니다. 늘 가난하고, 늘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노릇만 밤낮 하는 것입니다. 힘 써야 됩니다. 힘 안 쓰면 안 됩니다. 안 쓰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좀 있으면 다 빼앗깁니다.
먼저 이것을 예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발견해야 됩니다. 알고 여기서 힘을 빠짝 써가지고, 해산하는 수고를 해서, “이것을 써야겠다” 하고 냅다 쓰면, 이젠 그 능력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서 뱀도 집을 수 있습니다.
또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라고 했는데, 여기 ‘독’이라는 것은 독한 말을 들어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아무리 독한 말을 해도,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나가는 사람은 해 받지 않습니다. 또, 독한 자의 수하에 있어도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해 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졌다고 해도, 해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은 아무리 독을 마실 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특별히 전도할 때에 나가서 쓰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위해서 일하고, 복음 운동을 위해서 사용할 때에는, 이 모든 능력이 다 나타납니다. 뱀도 잡을 수 있고, 병도 낫고, 귀신도 쫓아내고, 독을 마셔도 괜찮고, 병든 자도 낫게 만들어 주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또 여기에는 신령한 뜻이 있는데, 영이 죽은 자를 살려내고, 심령이 마귀의 종살이 하는 사람을 건져내고, 영적 병든 사람, 앉은뱅이, 소경, 귀머거리 다 고쳐내고, 살려내고 하는 그런 영적 생명운동, 영적으
로 모든 병을 낫게 하는 운동, 심령을 강건케 만들어 나가는 운동, 마귀를 정복해나가는 운동, 악한 사회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복해나가는 운동, 이런 역사가 복음을 가지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나가서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나타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4. 전도하는 자에게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본문 19절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특별히 전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도할 때에 은혜를 받습니다. 전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꾸 능력을 주셔서 그 능력이 나가게 하시니까, 은혜를 받게 됩니다. 전도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전쟁할 때에 군대에 보급품, 물자가 많이 갑니다. 아낌없이 국가에서 많이 보내줍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용해서 전쟁 해 나갑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일하는 자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께서 더욱 더 이적을 나타나게 하시고, 능력도 주시고,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공급해주시는 주님이 계 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9-11에,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님은 본대로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구름타고 오실 텐데, 그 때에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값아 주십니다. 전도한 대로 값아 주십니다.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은 다섯 고을 권세,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은 두 고을 권세, 예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값아 주십니다.
본문 마지막 절,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같이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같이 해주시고, 역사 해주시고, 또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이 확실히 전파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으니, 이 말씀을 믿고 주님과 같이 나가서 이 복음을 전할 때에, 주께서 약속하신 모든 권능이 나타날 것을 믿고 나가서 힘써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이 복음을 전하며 믿는 일을 해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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