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의 탄생과 예수님의 탄생 예고
누가복음 1:1-44
누가복음 1:1-44
1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 5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8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새 9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10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너도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15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16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17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18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19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20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21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기더니 22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 23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24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가로되 25주께서 나를 돌아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26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30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33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36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38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39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41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42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44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한 사람이 많다고 했습니다. 마태와 마가와 요한이 다 기록했는데, 본문 3절에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라고, 이 누가복음을 데오빌로 각하에게 써 보냈습니다.
데오빌로 각하라는 사람이 실제로 있었는데, 그 각하에게 누가복음을 써 보냈습니다. 사도행전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데오빌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랑한다’는 뜻인데, ‘데오’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빌로’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은 데오빌로라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 모든 자에게 보낸 편지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데오빌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각하’라고 한 것을 보면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이 누가복음을 보냈습니다.
본문 4절에,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데오빌로가 이미 믿는 사람이고 많이 배운 사람인 모양인데, 이는 데오빌로 각하로 하여금 그 믿고 배운 일에 그 확실함을 가지게 하려고 이 편지를 썼다고 했습니다. 이미 믿는 사람이라도, 또한 이미 배운 사람이라도 더 확실하게 깨닫게 하려고 이 편지를 보내는 것처럼, 우리도 더 확실하게 증거를 받기 위해서, 더 확실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늘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1. 세례요한의 출생
요한의 아비 사가랴의 신앙
본문 5-7절에,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라고 했습니다. 유다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의 이름은 엘리사벳이라고 했습니다. 제사장 사가랴라고 하는 제사장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비야 반열에 속했다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이 많이 있었는데 그것은 스물 네 개의 반열로 조직을 했습니다. 한 반열에 여러 사람씩입니다. 그래서 이십 사 반열을 조직하고 순번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한 사람씩 순번이 돌아오면 한 주간씩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루 네 번씩, 아침에 세 번, 저녁에 한 번 제비를 뽑아서 순번대로 한다고 했습니다.
한 때는 아비야 반열에 사가랴라는 하는 사람이 제비 뽑혀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하는 때였습니다. 이 사가랴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좋은 제사장이었습니다. 경건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수태하지 못해서 아들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많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본문 8-10절에,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가랴라는 제사장이 제비뽑은 뒤 자기 당번일 때에 성전에 들어가 제사하면서 분향을 했습니다. 그때 모든 성도들은 밖에서 기도했습니다.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하고 있고, 백성들은 밖에서 기도함으로 협력했습니다. 제사장만 하는 게 아니고 또 백성만 하는 게 아니고 온 백성들이 기도해 줌으로 협력하고, 참예하고,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하고, 제사장이나 백성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 잘되는 것입니다.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세례요한을 낳게 하심
본문 11-13절에,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그 제단 향단 우편에 나타났습니다. 사가랴는 천사를 보고 무서워했습니다. 천사가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말했습니다. 나이 많도록 수태를 못해서 아이를 못 낳았는데, 지금 인간의 생각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인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네 아내가 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총애’라는 뜻입니다. 총애라는 말은 사랑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이 요한은 세례요한을 가리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께서 나게 하셨고 예수님의 앞잡이가 되게 만드셔서 세례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할 길을 예비하게 하시고 예비한 다음에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를 보내시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가랴 부부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세례요한을 낳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를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분명히 알게 하시려고 이렇게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람에게 아이를 낳게 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이 역사를 보이셨습니다.
나실인으로 세례요한을 낳게 하심
본문 14-16절에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고’, 세례 요한은 ‘주 앞에 큰 자’가 되게끔 하나님께서 이렇게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큰 자가 되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하나님 앞에 예수님을 소개하는 그 직분을 맡은 세례요한은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마시지 말라고 했을까요? 민수기 6:1-4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라고 했는데, 이러한 나실인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나실인은 하나님 앞에 바쳐진 사람들인데, 그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하고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일생동안 하나님께 바쳐져서 하나님의 일을 수종 들게 하기 위해서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말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전부 나실인입니다. 우리도 전부 다 하나님 앞에 바쳐진 자들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는 하나님께 바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4:4에 보면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는 어떻게 합니까? 출애굽기 23:19에 보면,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고 하시며, ‘하나님께 바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처음 익은 열매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는 하나님께 바친 자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입니다. 바쳐놓아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 것입니다. 피로 값 주고 산 몸인 우리입니다.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피로 값 주고 산 몸이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놓고 나가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께 바쳐져서 나갔습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술을 마시지 아니함은 정신을 흐리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정신이 흐려지고 모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술을 마시면 안됩니다. 정신을 똑똑히 가지고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바로 하는 모습, 이 확실한 신앙양심을 써서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례요한이 곧 엘리야
본문 17절에,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고 했는데, 세례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권능으로 온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말라기 4장에 보면 ‘말일에 엘리야가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다시 온다고 하는 말을 보고 바리새교인들은 ‘승천했던 엘리야가 다시 와서 예언한다’, ‘옛날 엘리야가 다시 온다’ 이렇게 가르쳐왔고 그 말이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세례요한이 말라기에서 말한 엘리야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 말은, 바리새인들이 바라고 있는 엘리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리새교인들이 알고 바라는 그 엘리야는 주전 800년 경에 승천했는데, 그 옛날에 있던 선지자 엘리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고, 세례요한이 엘리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14절에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엘리야입니다.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온다 합니까?”하고 물어보니까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다”라고 하십니다. ‘세례요한이 엘리야다’라고 했는데, 엘리야라는 말은 옛날의 엘리야가 아니고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왔다는 말입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 사람이 세례 요한입니다.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 무엇입니까? 엘리야의 심령은 죄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켜서 하나님 앞으로 돌리는 것, 그것이 엘리야의 심령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켜서 하나님 앞으로 다 돌리는 그런 역할을 세례요한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엘리야로 온 것입니다. 엘리야의 능력으로 죄를 분별할 줄 알고 죄를 회개시키고 하나님께로 돌리는 능력, 그것을 가지고 세례요한이 왔습니다.
마음을 돌려서 인륜을 바로 세우는 구원운동
말라기 4장에 엘리야가 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리고 자식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린다고 했습니다. 말라기 4:5 -6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식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것이 엘리야의 할 일입니다. 말하자면 인륜을 바로 세우는 일, 아들의 아버지가 원수가 되어 있었지만 화목 시키는 일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에게 돌리고 아들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돌리는 일인 것입니다.
서로 화목하지 못하는 그런 가정은 부자간에 여러 가지 마귀의 시험이 많기 때문에 부자간에 화목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인륜이 전부 파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윤리, 신과 인간 사이의 윤리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서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악을 범한 것은 행위계약을 어긴 것입니다. 아담이 행위계약을 범했습니다. 우리 죄로 인해서 하
나님과 원수가 되었었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우리에게 돌이키십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킵니다. 세례요한이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로,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셨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인륜 관계도 바로 섰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아들에게로 돌아오고 아들의 마음이 아버지에게로 돌아갑니다. 시어머니의 마음은 누구에게로 돌아갔겠습니까? 며느리에게로 돌아갑니다. 며느리의 마음은 시어머니에게 돌아갑니다. 선생의 마음은 제자에게로 돌아가고, 제자의 마음은 선생에게로 돌아갑니다. 윗사람의 마음은 아랫사람에게로 돌아가고 아랫사람의 마음은 윗사람에게로 돌아가는, 인륜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운동의 목적입니다.
천륜관계가 정상화되고 인륜관계가 정상화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구원운동입니다. ‘하나님과만 바로 하면 된다, 사람에게는 바로 안 해도 된다’ 하는 이것은 고르반 사상인데, 그것은 예수님의 하시는 구원을 통해 볼 때 정상적인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도 바로하고 사람에게도 바로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정상적인 구원운동입니다.
본문 18-19절에,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고 이렇게 천사가 말하니까, 사가랴가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도 나이 많고 아내도 나이 많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에 천사가 대답하기를 “나는 하나님 앞에서 섰는 가브리엘이라”라고 했습니다. 미가엘은 전쟁을 하는 천사이고 가브리엘이라는 천사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천사입니다. 전쟁할 때는 미가엘이 나오고, 좋은 소식을 전할 때는 가브리엘이 나왔습니다. 가브리엘이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벙어리가 된다
본문 20절에,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고 하셨는데, 뭐가 된다고 했습니까? 벙어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왜 벙어리가 되었습니까?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으면 벙어리가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소경이 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아서 영적 벙어리가 된 성도가 많습니다. 벙어리가 되어서 할 말이 없습니다.
최권능 목사가 “예수 천당!”하며 다닐 때에 어떤 젊은 사람들에게 “예수 천당!”이라고 하니까 “나는 신학생입니다”라며 평양 신학교 다닌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목사가 “벙어리 신학생이 뭣하겠느냐!”라고 했답니다. 전도를 안 하면 벙어리 신학생인 것입니다. 여기도 벙어리 신학생 왔을 것입니다. 벙어리 집사들, 벙어리 권찰, 벙어리 교인들 ... , 벙어리 아닙니까?
나가서 말해야 됩니다.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겠는데, 왜 전하지 않는가 하면 믿지 않아서 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었으면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호랑이가 내려오는 것을 확실히 알면 가서 호랑이 내려온다고 소리 칠 것 아닙니까? 또 전쟁이 난 걸 확실히 알면 나가서 전쟁 났다고 소리 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전쟁이 났다는 것을 믿지 않아서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믿으면 벙어리가 안 됩니다.
믿지 않기 때문에 소경이 됩니다. 믿으면 소경이 눈을 뜹니다. 엘리사 시대에 아람 군대가 와서 엘리사를 잡으려고 도단 성을 포위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 소경되게 하셨습니다.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잡으려 하니까 하나님께서 소경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믿으면 눈을 뜹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소경이 믿고 순종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니까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믿으면 눈 뜨고, 안 믿으면 소경되고, 믿지 않으면 소경되고 벙어리가 됩니다. 벙어리 신자, 소경 신자 많이 있습니다. ‘벙어리 개’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벙어리 개’는 자기 욕심만 채우다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벳의 수태와 전도로 낳은 아들
본문 21-13절에,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기더니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라고 했습니다. 사가랴가 벙어리로 지내며 직무의 날을 마치고, 그 일이 끝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직무의 기간이 한 주간이었습니다.
본문 24-25절에,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가로되 주께서 나를 돌아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고 했습니다.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나서 다섯 달 동안 숨어 있다가, ‘주께서 나를 돌아보시는 날’ 즉, 아이를 낳는 날에 “인간의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아이를 못 낳으면 부끄러움을 당하던 때입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예수 믿는 사람이 전도하지 못하면 부끄러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하면 믿음의 아들을 낳는 것과 같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구역 보고받을 때 “전도 몇 사람 했느냐?”, “나는 몇 사람 했습니다”라고 다들 말할 때, 전도 하나도 못한 사람은 부끄러울 것입니다. 전도부인들, 견습생들 전도도 하고 심방도 하십시오. 몇 달만 있으면 보고받을 것입니다. “금년에 몇 사람 했느냐?” 물을 때에 어떤 사람은 몇 사람 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한 사람 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한 사람도 못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열 사람, 스무 사람 이렇게 많이 했는데, 한 사람도 못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갈 때에 얼마나 부끄러울 것입니까? 한 달란트 맡은 자, 그 달란트 장사 안하면서 벙어리노릇 하지 말고 나가서 전하십시오. 전해서 다른 사람을 일 년에 몇 사람씩 하나님 앞에 인도해야 됩니다. 그것이 달란트 장사하는 것입니다. 전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이 주인 앞에 가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진짜 부끄러운 일은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 받는 것입니다. 게으른 것은 악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의 아들을 많이 두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예고
가브리엘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함
본문 26-29절에,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잉태된 다음 여섯 달 후에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찾아갔습니다. 요셉과 정혼한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마리아를 찾아가서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 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인사했습니다. 그 처녀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놀라서 ‘이런 인사가 어찜인고’하고 생각했습니다.
본문 30-33절에,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실 걸을 마리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리아에게 네가 낳는 예수님은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어 그 왕권으로 왕 노릇을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세세무궁토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 노릇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란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로 인한 영영한 멸망, 영원한 멸망 가운데서 구원하려고 보내셨습니다. 또 세례요한은 왜 보내셨습니까? 자기 백성을 구원할 예수님의 앞잡이 노릇을 하라고, 길을 예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에 그것에 대한 예비가 있어야 되므로 예비시키려고 세례요한을 먼저 보내셨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으로 아이 낳을 수 없는 그 사가랴 부부에게 세례요한을 낳게 하셨고, 또 이름도 하나님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세례요한을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보내 주셔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만드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에게 나게 하시려고 마리아에게 천사장 가브리엘을 보내셔서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이라”말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할 자이다’라고 하시고, 자기 백성인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왕권을 가지시고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리니’ ‘저희가 영원히 왕 노릇 할 것이니’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도 왕이십니다. 우리에게 왕이 되셔서 저희를 통치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성령으로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신 그리스도
본문 34-35절에,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라며 자신은 처녀인데 어떻게 아이를 잉태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니까, 천사가 대답하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하며 성령으로 잉태한다고 했습니다. 남녀 간의 부부생활로 잉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마리아를 잉태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한다고 하셨는데, 왜 성령으로 잉태하게 했을까? 보통 사람 생식과 같이 부정모혈로, 남녀 간의 결혼생활로 낳게 해도 되는데, 그 방법으로 하지 아니하고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게 해서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처녀 잉태하게 했습니까? 죄가 없이 낳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자의 영을 그리스도에게 내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사람처럼 부정모혈로 낳으면 죄가 있습니다. 아담의 후손은 다 ‘유전죄’가 있는데 일반 생식으로 낳으면 다 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의 방법대로 한 것이 아니라,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새롭게 잉태를 시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낳게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고, 둘째 아담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하면, 성령으로 잉태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이시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십니다. 마리아의 잉태가 성령으로 된 잉태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똑같은 하나님이십니다. 마리아가 낳았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능력인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셔서 성령으로 마리아를 잉태하게 하신 건데, 나실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하십니다.
처녀 마리아의 죽음을 각오한 신앙
본문 36-38절에,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고 했습니다. 친척 엘리사벳이 아들이 없었는데 이제 늙어서 수태지 못하는 여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했다고 합니다. 이미 여섯 달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나니”라며 마리아가 대답하기를, “주의 계집종이로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떻게 잉태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말했는데,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하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능력이 너를 덮어서 잉태하게 할 것인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러니까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마리아의 신앙입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인간의 생식 방법, 인간의 모든 생리적 방법을 믿은 게 아니라, 그것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말씀은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방법은 안 될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도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면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가 하면, 구약 법에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때려죽이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2:23-24에 보면,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때려 죽여라’라고 했는데, 마리아는 다 알면서도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하며 살고 죽는 것을 하나님께 다 맡긴 것입니다. 돌에 맞아 죽든지 안 죽든지, 하나님께서 안 죽게 하시면 안 죽을 것이고, “이미 하나님께 바친 몸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옵소서. 주의 뜻만 이루어지면 나는 아무래도 괜찮습니다”라고 한 신앙입니다. 안 죽는다고 해도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다른 사람이 얼마나 비방하겠는가, 그러나 다른 사람이 비방하든 말든 또 위험하든 위험하지 않든 돌에 맞아 죽든 안 죽든 다 하나님께 맡기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하는 얼마나 좋은 신앙입니까? 죽어도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부끄러움을 당해도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얼마나 좋은 신앙입니까?
남자들은 무엇입니까? 남자들도 계집종입니까? 여기에 계집종이 나왔으니, 남자들은 남종이라 해야겠습니다. “주의 남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여자들은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는 이것이 믿음입니다. 어떠한 이유를 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큰일 났습니다”, “죽으면 어떡합니까?”, “다른 사람이 얼마나 멸시하겠습니까?”, 이런 것은 다 신앙이 아닙니다. 살든지 죽든지 멸시 받든지 안 받든지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죽어도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하는 이것이 믿음입니다.
본문 39-44절에,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마리아가 문안하는 소리를 들을 때에 엘리사벳이 복중에서 세례요한 이 뛰놀았다고 했는데, 그것을 보면 복중에 있는 아이도 영혼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의 모친이 온 것을 알고 뛰놀았는데 성령으로 알아서 뛰놀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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