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6일 토요일

누가복음 12:1~12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고 핍박을 두려워 말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고 핍박을 두려워 말라
누가복음 12:1~12

1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2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3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4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8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9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10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1. 의식주의(儀式主義) 누룩을 주의하라

본문 1절에,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 인들의 무리가 많이 모였습니다. 서로 밟힐 만큼 수만 명이 모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숫자 많은 것을 자랑하려고 하고, 그것을 가지고 한 몫 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숫자 많은 걸 보고 자랑하고, 그것을 아주 굉장히 큰 것으로 알고, 또 숫자 많은 것을 성공으로 알고, 그것을 가지고 시위하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숫자 많은 걸을 보시지 않습니다. 무엇을 주의하라고 했습니까? 마태복음 16:5-6에,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라고 했습니다.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6:11-12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라고 했는데, 여기서 누룩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이 누룩이라고 했고, 외식이 누룩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들의 외식이 누룩이고, 성경대로 바로 되지 못한 교훈이 누룩이라고 그랬습니다. 또한 의식을 굉장히 행해서 그것으로 한 몫 보려고 하는 의식주의가 누룩이고, 외부적으로 나타내는 외식이 누룩입니다. 그들에게는 진리가 교훈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현실주의, 육체주의고, 세상주의, 의식주의가 교훈이고, 그 교훈들은 신령한 교훈이 되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종교가 이렇게 숫자적으로 나가고, 숫자만 많으면 큰 뭔가가 있는 줄 알고, 또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고, 돈 많으면 그것을 가지고 한 몫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 참 성도는 그런것을 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참 성도는 외식이 무언지 볼 줄 알아야 되고, 그들의 의식주의를 볼 줄 알아야 됩니다. 뭐든지 숫자를 가지고 시위하고, 숫자를 가지고 보이려고 하는 것을 주의해야 되고, “뭐 몇 만 명이 모였다”는 이런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예전에 여의도 광장에 기독교 집회 할 때 몇 십만 명이 모일 때가 있었습니다. 또한 어떤 데에는 ‘백 만 명이모였다’고 합 니다. 그것이 큰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몇 십만 명, 백만 명이 큰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전 세계 사람 다 모여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가운데 진리가 있어야 되겠는데, 신령한 영적 양식과 진리가 있어야 되겠는데, 진리는 없고, 이건 ‘우~’하며 많이 모인 것을 가지고만 자랑하려고 하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교훈은 신령한 교훈이 되지 못합니다. 젖이나 먹이는 초보적인 교훈이나 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세속화되는 교훈을 하고, 인본주의 교훈이나 합니다. 그러니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느 유명한 목사라고 하는 사람이 강사로 나와서 한다는 말이 “한국이 이만치 된 것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단결심, 한국 사람들의 근면심, 한국 사람들이 잘 했기 때문에 요만치 됐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자 한번만 딱 붙입니다. 다 말하고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이 도와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 교훈이 바로 되지 못한 것입니다. 교훈이 바로 되어야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의도 광장에 초교파적으로 모일 때가 더러 있었는데, 거기에는 여러 교단 목사들이 나와서 교대해서 강론하곤 하였습니다. 가령, 한해는 고려파 목사가 나와서 하고, 그 다음 해에는 합동 측 목사, 그 다음해는 통합 측, 그 다음해는 기독교장로회 측, 다음은 신신학 측, 그 다음 해는 감리교 측, 또한 구세군 측까지 돌아가며 설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순서가 돌아가지 않으면 이렇게 사람들이 다 모입니까? 여러 교단에서 다 모인다니까, 자기네 교단도 교대해서 한번은 나가도록 하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많이 모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떤 때는 보수 측의 목사가 나와서 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신신학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기독교장로회 할 때 신신학하는 사람들도 나옵니다. 감리교가 나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수 십만 명, 수 백만 명 모인다고 해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만 모여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하지, 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외식하고, 의식주의로 나타내고, 그런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말입니다. 그런 것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2. 감추인 것이 드러나고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본문 2-3절에,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고 했습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외식하는 자들 속에 있는 것도 다 나타나고, 참 믿음이 아니
고 영적 생명운동도 아닌 것도 다 나타나게 됩니다.

또, “참된 믿음을 가진 너희도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고 했는데, 어두운 은밀한 골방에서 너희에게 말한 것이 이제 광명 한 데서 다 말하게 될 거라는 말입니다.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는 것처럼 온 세상이 다 알도록 전파되게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파해야 될 사명이 있습니다. 진리를 바로 알아서 자기만 좋다고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는 자기만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라고 했죠? 어떻게 먹으라고 주신 것입니까? 나눠먹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하고 다 나눠 먹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너도 먹고, 나눠 줘라”하시며 나눠 주라고 우리에게 진리를 주셨는데, 이걸 나눠 주지 않으면 화가 있습니다. 나눠 주라고 주셨는데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 전해 줘야지 전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인데, 안전하고 가만히 있으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책망하시겠습니까? 부산에 있는 어떤 분한테서 연말에 보내는 연하장 카드가 하나 왔습니다. 저는 모르는 사람인데, 우리 강해서를 몇 년째 보면서 은혜를 받는다고 합니다. 매일 강해서를 읽는답니다. 큰 은혜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책도 다 같이 봤었는데 다른 책들 다 집어 치우고, 이제는 우리 것만 본답니다. 다른 책들 다 집어 치우고 우리 것만 보는데, 매일 은혜를 받고 감사하면서 이 사람은 강해서만 보는 겁니다. 그 사람이 우리 방송은 아직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방송 들었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너무 감사해서 연말에 카드 한통 보내고 싶어서 보냈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러한 교인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교인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일이 알지 못하지만, 방송 듣는 교인도 많이 있고, 강해서를 보는 교인들도 많이 있는 듯합니다. 그러기에 책을 출판하여 놓은 것이 아주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방송 듣는 사람이 중국에도 있는 것 같고, 우리 한국 각 처에도 있는 같습니다. 여러 나라들에 선교사 보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노대영 목사가 선교하러 갔는데 모스크바 어느 곳에서 오늘 주일 지낼 것 같습니다. 주일 지내는 그 교회에서 설교 할 수 있겠는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고 내일부터 비행기가 있으면 카자흐스탄, 알마타로 갈 건데 거기도 이제 우리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진리, 골방인 어두운데서, 은밀한 골방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진리를 전해야겠습니다.

미국에도 한국어로 라디오 방송하는 데가 많습니다. 또한 텔레비전, TV 나오는 곳도 있습니다. 워싱턴에 한번 갔었는데 한국 TV가 나갑니다. 저도 한번 가서 한 반시간 보고 왔는데, 거기도 하나님께서 할수 있게 해 주시면 우리가 가진 진리를 전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간 할 수만 있으면 이 복음을 ‘집 위에서 전파된다’고 했으니까,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진리를 여러 사람에게, 여러곳에 전파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멀리 가서 이방사람 전도하지 못해도 가까운 데에서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어디 다니면 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네 집 근처 다니면서 구할 사람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집 근처, 만나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 주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 주면 그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듣고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올 날이 있습니다.

일전에 안 믿는 어떤 사람이 제게 ‘사람이 욕심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가들도 욕심만 부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 사람이 ‘사람이 욕심들이 많다’고 말을 하는 기회를 타서, 제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에 말씀하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기회를 타서 때를 얻는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줄 사명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 한 사람에게라도 전해 줄 사명이 있고, 개척교회를 세우고, 다른 나라에 책을 보내는 것이나, 혹은 라디오나 TV 등 여러 방법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진리를, 전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전파하라고 그랬으니까 전파해야 됩니다. “집 위에서 전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핍박을 두려워 말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본문 4-5절에,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몸을 죽이고 그 후에 능히 더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세상 사람들은 몸을 죽인 다음에 능히 더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죽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어
떻게 할 것은 없습니다.

마땅히 두려워 할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번 죽으면 다 끝납니다. 그 다음에 그 이상 어떻게 더 못합니다. 그러나 죽은다음에도 지옥에 넣는 권세가 있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두려워해야 되겠습니다.
죽은 다음의 세계가 영원합니다. 내세가 영원 하지 않습니까? 영원한 내세에서 지옥에 던지시는 권세가 있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모든 일엔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본문 6절에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둘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0:29에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앗사리온이라고 하는 건 동전의 명칭입니다. 제일 낮은 가격의 동전의 명칭입니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십 원짜리 같습니다. 십 원짜리 둘 가져가면 참새 몇 마리 산다고 했습니까? 다섯 마리입니다. 어느 사람이 “이거가지고 참새 삽시다. 이십 원에 참새 몇 마리 주렵니까?”할 때, 장사치가 “다섯 마리 줍니다”라고 대답하고, “그럼 삽니다” 하면서 돈을 주고 다섯 마리를 샀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동전하나 가져가면 몇 마리 산다고 했습니까? 두 마리입니다. 참새 두 마리 받고 동전 한 개를 줬습니다.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한 일도 하나님께서 허락을 하셔야만 이루어지는 것이지 허락지 않으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한 마리도 팔릴 수가 없습니다. 허락을 하셔야 팔립니다. 집 파는 건 어떻겠습니까? 집 파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할 수 있습니까? 못 팝니다. 집 파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팔고, 그리고 뭘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사는 것이고, 장사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할 수 있습니다. 아무 장사든지 하나님께서 팔리게 해 주셔야 팔립니다. 팔리게 해 주시지 않으면 못 팝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돈
버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법니다.

평양의 백선행이라는 과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쓰지도 못하는 돌산을 누군가 부탁을 해서 매우 좋게 쳐주는 값으로 그 과부가 샀다고합니다. 처음엔 그 과부가 속아서 산 것입니다. 이미 등기는 다 넘어왔는데 다시 무를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과부가 상당히 끙끙 앓았을 것입니다. 그때가 일제 시대였는데, 몇 년 후에 일본 사람들이 그 과부에게 와서 그 돌산을 사자고 그랬답니다. 그 과부가 “얼마 주겠습니까?” 물으니까 돈을 많이 주겠다고 대답했답니다.
과부가 눈치가 좀 빠른 모양입니다. 이 돌산을 가지고 돈을 많이 주겠다고 하는 거 보니까 별게 하나 있는가 보다 하고 큰 값이 아니면 안판다고 배짱을 부렸나 봅니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이 더 많이 주겠다고 그런 모양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한 평에 만 원짜리를 갖다가 “삼만 원 준다”, “오만원 준다” 해도 그것도 안 맞으면 “몇 십만 원 준다”하고, 그것도 안 맞는다고 그러면 “몇 백만 원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원 받아야 할 것을 몇 백만 원 받는다고 하면 돈을 얼마나 많이 벌겠습니까? 일본사람들이 왜 그것을 샀나 하면 그 돌산이 시멘트 산이었습니다. 시멘트 산인 것을 한국 사람들은 몰라서 돌산인 줄만 알았는데, 일본 사람들이 와 보니까 그 돌이 시멘트 돌이었답니다. 그렇게 과부가 상당히
많은 값을 받고 일본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그 후에 일본 사람들이 시멘트 공장을 차렸고 그 산에서 시멘트가 나온 것입니다. 그 일본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백선행 과부는 돌산 때문에 돈을 많이 번 것입니다. 부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번 돈을 가지고 선한 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 과부가 성은 ‘백’씨 였는데, 선한 일을 많이 해서 별명을 선행이라고 갖다가 붙여준 것입니다.

그렇게 돈을 벌 때에 남한테 속아가지고 돈을 많이 버는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백선행을 속여서 돌산은 팔아먹었지만, 그러나 백선행은 속아서 가진 것이 도리어 유익을 많이 보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사람을 속여 먹었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손해인 것입니다. 그들이 돌산을 가지고 있었으면 일본 사람들에게 얼마 있다가 비싸게 팔 것인데, 그만 남 속인 것이 자기 속인 것이 됐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앗사리온 하나에 참새 두 마리, 앗사리온 둘에 참새 다섯 마리, 그게 얼마나 간단한 일입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면 절대 팔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허락 없이는 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됩니다. 그렇게 참새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되는데, 사람하나 죽는 것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 되겠습니까? 본문 7절“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참새보다 귀하지 않은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참새 한 마리만 못한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참새도 하나님께서 다 보호해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사람, 참새만도 못하다는 사람 손들어 보란 말입니다. 사람을 그냥 보기만 해도 참새 몇 백 마리만은 하겠는데, 우리가 참새 한마리만 못하겠습니까?

또 우리에겐 영혼이 있지 않습니까? 참새가 영혼 있습니까?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하나님께서 주셨지, 참새를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셨습니까? 또한 우리를 위해서 천당을 준비해 놓으셨지, 참새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참새도 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데 우리를 왜 보호해 주지 않겠나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을까봐, 어디 팔려 갈까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
도 안 팔리는데, 땅에 안 떨어지는데, 사람이 왜 떨어지겠는가 말입니다. 그것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8-9절에,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천사 앞에서 시인하시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하신다고 그랬습니다.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 누가 죽인다고 해도 예수님을 시인하고증거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예수님께서 아, 이사람 내가 안다. 사람 앞에서 생명 내놓고 나를 증거 했다”하시며 이렇게 시인하시고 인정해주셔서 많은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