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염려 하지 말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누가복음 12:13~34
누가복음 12:13~34
13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6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27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28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29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31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너희 보
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사람이 와서 자기 형을 명하여 재물을 나눠달라고 했습니다. 아마 형제간의 유업이 공평하게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형이 더 많이 가지고 동생에겐 적게 줬는지, 안줬는지 하여간 유업을 좀 나눠야 되겠는데 형이 안 나눠준다고 자기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눠주게 해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본문 14-15절에 “누가 나를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비유를 들어 “어떤1.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한 사람이 밭이 많이 있었는데 소출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심중에 생각하기를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 할꼬’ 하다가, 곡간을 헐어 더 크게 짓고 거기다가 많은 곡식을 쌓아두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는 많은 곡식을 쌓아뒀습니다. 그리고선 그 사람이 자기 심중의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며 생각하니까,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영혼을 도로 찾는다는 것은, 우리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영혼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세상에 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육신도 영혼도 출생할 때에 나왔는데, 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있다가 온 것이 아니고 출생할 때 새로 생겼습니다. 새로 난 것입니다. 그런데, 도로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혼을 주셨다가 도로 가져가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에 영혼을 도로 찾으면 죽는데, “오늘밤에 네가 죽는다고 하면 네가 창고를 크게 짓고 여러 해 쓸 것을 쌓아 놓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불러 가시면 하나도 가져가지 못할 것인데, 하나님은 이르시되 이 사람에게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하나님께서 영혼을 불러 가시면 예비한 것이 다 뉘 것이 될런지 알수 없는데 이렇게 하는 것을 보시고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유업은 자손들이 물려받는 것인데, 본문 13절에 그 사람이 와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누게 하소서”라고 그랬습니다. 이 사람도 죽으면 이렇게 됩니다.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눠 주게 하소서.” 유업을 잘 나눠주는 사람도 있고, 유업을 잘 나눠주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큰 재벌 같은 사람들은 유업을 똑같이 나눠 줄 수가 없습니다. 나누려면 팔아서 나눠주어야겠는데, 회사를 팔면 회사가 망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이병철씨 같은 사람도 맏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아니하고 그것을 셋째 아들에게 줬습니다. 맏아들에게 주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에 감당할 것 같은 셋째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평안하겠습니까? 다른 집들도 아버지가 세상 떠나면 아들들이 서로 재판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세상에 재물을 쌓아두고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생각하지만 언제 하나님께서 불러 가실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오늘밤에 불러 가실지 모르고, 내일 그 영혼을 불러 가실지 모르고, 또 몇 살 됐을 때 불러 가실지 모르고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요새도 젊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많이 불러 가시지 않습니까.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이 어리석은 자야”하십니다. 세상에 쌓아놓는 게 어리석은 자라는 겁니다.
본문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어리석은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할 줄 모르고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아 두는 것은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 영혼을 그 날 밤에 불러 가시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는데, 그가 죽고 나면 자손들에게똑같이 재산을 나눠주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큰 재물 같은 것은 회사를 팔아서 나눠 줄 수도 없는 것이고, 죽은 다음에라도 회사를 운영할 아들에게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재산이 집 한 채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집이 한 채 밖에 없는데 죽기 전에 집 다 팔아서 나눠주고 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건데 어떻게 팔아서 나눠 주겠냐는 말입니다. 또 팔아서 나눠주면 어디로 가겠냔 말입니다. 죽기 전에 집 팔아서 다 나눠 주고 새 집으로 가는 사람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와 같이 똑같이 나눠주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재물을 쌓아두면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니까 어리석은 자입니다.
2. 먹을 것 입을 것 염려하지 말라
본문 22-23절에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새는 집값이 자꾸 올라가서 ‘어떻게 집하나 장만할까?’하고, 또 농사꾼들은 곡식 값이 폭락이 되어가지고 ‘어떻게 살까?’ 염려가 많습니다. 또 장사하는 사람들은 요새 장사가 안 된다고 합니다. “무
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또 무슨 집을 짓고 살까?” 이런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귀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목숨이 뭐 보다 귀합니까? 음식보다 귀하다고 하십니다. 몸이 음식보다 귀하다는 말입니다. 또 몸이 집보다 귀하다고 하십니다. 목숨과 몸이 집보다 귀하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숨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목숨을 연장 할 음식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는 뜻 입니다.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몸을 가릴 의복을 주시지 않겠느냐?’, 또 ‘목숨과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몸이 들어와서 살 수 있는 집을 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천막도 집입니다. 목숨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 목숨을 연장할 식물을 주시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소를 사 놓고 소의 먹을 것을 안 줄 주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새 소 한 마리 얼마 합니까? 소 한 마리에 300만원~500만원 한다고 합시다. 그 값에 사다 놓고 먹을 것을 안 줄 주인 있습니까? 안 준다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먹을 것을 안 주면 죽을 것 아닙니까? 죽을 걸 왜 300만원, 500만원씩이나 주고 사왔겠습니까? 그렇다면 사오나 마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목숨 주신 하나님께서 먹을 것 왜 안 주시겠습니까?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몸을 가릴 의복을 왜 안 주시겠나 말입니다. 그리고 살 집을 왜 안 주시겠나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식주를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25절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하십니다. ‘너희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키가 작다고 염려해도 키를 크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염려함으로 한자나 더하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염려한다고 무엇이 되겠느냐 말입니다.
마태복음에는 ‘공중의 새를 보라’라고 했습니다. 공중의 새는 농사하지 아니하고, 창고도 없고, 골방도 하나 없으되 하나님께서 다 기르신다고 하셨습니다. 새는 날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다 주시게 해놨습니다. 새는 날기만 하면 먹을 것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시고 새를 내보내십니다. 새가 무슨 농사합니까? 곳간 있습니까? 창고 있습니까? 곡식 저장하는 데가 없습니다. 그래도 새는 날기만 하면 먹고 살고 다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먹고 살게 해 놓으신 것 같습니다. 여름에는 곡식 먹고 살고, 겨울에는 풀씨나 솔씨 먹고살게 되어 있고, 눈 올 때에도 소나무 밑에 들어가면 솔씨를 따 먹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다 해 놓으셨습니다. 눈이 많지 않는 바위 틈 같은 데도 풀씨 다 떨어지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풀이 한 2m되는 것도 있는데, 그건 눈이 아무리 와도 눈에 묻히지 않습니다. 그런 것도 따 먹게 만들어 놓으셨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내실 때에 다 먹고 살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에게 먹고 살게 안 만들어 놓았겠느냐 말입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27-29절에,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입을 것을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적은 자입니다. 무슨 집을 가지고 살까 하는 것도 믿음이 적은 자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 믿음이 없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쓰고 살까 하며 걱정하는 이런 것이 다 믿음이 적은 증거입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한 것을 아신다
본문 30절에,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시는데, 무엇을 마실까 먹을까 염려하는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 내 주셨고, 또 독생자의 피로 구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셨고, 독생자의 피로 구속해서 우리 영혼을 살려 주셨고,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과 같이 영원히 즐거워하고, 그런 사랑의 세계로 인도하시려고 우리를 만들어 놓으셨는데, 왜 우리에게 먹을 것을 안주겠냐는 말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천지만물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입어야 될 것, 먹어야 될 것, 집에서 살아야 될 것,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입어야 될 줄을 아십니다. 집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먼저 다 아시고 하나님께서 먼저 걱정을 다 하십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요새는 정치가들이 먼저 걱정합니다. 집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들을 더 먼저 걱정합니다. 대통령이 더 먼저 걱정하고 장관들이 걱정 합니다. 대통령 떨어지고 장관 떨어진 사람들은 그런 걱정 안 합니다. 왜 정치가들이 걱정 합니까? 그 자리를 유지하려니까, 백성들이 집 없으면 자기 자리 유지 못하겠으니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해서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통령 될 후보자들도 서민들 집 때문에 걱정합니다. 그건 왜 합니까? 앞으로 대통령 할 거니까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떨어지면 걱정을 하긴 뭘 하겠습니까?
사람들은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우리를 위해서 염려하십니다. 집 없는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염려하십니다.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어떻게 이것들 하나씩 해 줘야 되겠다, 있을 곳을 줘야 되겠다, 셋집이라도 있을 곳을 줘야 되겠다’고 하십니다. 자기 소유의 집에 사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주셔야 사는 것이고, 셋집에 사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셔야삽니다.
그렇게 살다가 세상 떠나갈 때 다 내놓고 가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소유의 집에서 살다가 가는 사람도 내놓고 가는 것이고, 셋집에 살다가 가는 사람도 내놓고 가는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될 것 다 아시고,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을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고 그랬습니다.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31절에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하십니다.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하늘나라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또 세상 것을 위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나라와 의를 구하라’, 세상 것을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
여기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본문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했는데,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재물을 쌓아두는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증거입니다. 재물은 쌓아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재물가지고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재물은 첫째, 먹고 살라고 주신 것이고, 둘째, 그것 가지고 믿음 생활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쌓아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쌓아두는 것이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본문 33-34절에,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여기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방법,
자기를 위해서 세상에 재물을 쌓아 두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네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하신 이것이 하늘의 보물을 쌓는 방법입니다. ‘네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구제한다는 말은 선을 행한다는 것이고, 생명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 살리는 것만 구제가 아니고, 영적 생명을 살리는 구원운동도 구제입니다. ‘네 소유를 팔아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가 보십시오.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을 위해서 쓰면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소유가 하늘에 둔 보물이 된다는 말입니다. 소유를 팔아 생명을 살리는 일에 사용하면, 하나님 일에 사용하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 되고 그것이 다함이 없는 보물이 됩니다.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십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사람은 마음도 하늘에 가 있다는 말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한 것을 보니까 마음도 하늘에 가있다는 것입니다. 땅에서 재물을 쌓아 두는 사람의 마음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땅에 마음이 있습니다. 하늘에 쌓아둔 사람은 마음도 하늘에 가 있습니다. 하늘에 마음이 가 있으니까 하나님 믿는 일이 잘 되고,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또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서 그 소유가 하늘에 쌓아둔 보물이 되고,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부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본문 21절을 보면,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했는데,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는 어떠한 자입니까?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드는 것, 여기서 ‘주머니’는 먹고 살 것을 만들어 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면,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게 되고,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 되고, 마음도 거기 가 있기 때문에 믿는 일이 더 없이 잘 되고, 하늘의 보화가 쌓여진다는 것입니다. 거기는 도적도 오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염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목숨은 하나님께서 내셨습니다. 인명재천이라는 말이 있는데, 목숨을 하나님께서 내셨다는 말입니다. 사람 목숨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아무리 많이 쌓아 놨어도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시면 그 예비한 것을 하나도 못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고 난 다음에 자손에게 물려지게 되면, “이제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누게 해 달라”고 대게 그런 식으로 많이 나올 것입니다. 절반 이상이 그런 식으로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이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평불만이 나오고 맙니다.
자손이 부모가 물려준 것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손들이 믿음 잘 지키고, 자기가 하나님께 바로 하고 그래야 하나님께서 잘 해주시는 것이지, 부모가 물려 준 것으로 잘 사는 사람 얼마나 되겠습니까? 얼마 없습니다. 저는 저희 아버지가 물려주신 것이 한개도 없습니다. 평양 나올 때는 다 내 버리고 가방 하나 가지고 나왔는데, 가방 안에는 찬송가 성경 그것만 들고 나왔습니다. 빈손으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6.25사변이후 지난 56년 동안 먹을 것, 입을 것 다주셔서 오늘까지 살았습니다. 부모가 물려주시지 않아도 삽니다. 물려줬다고 해도 그게 며칠 갈까요?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또 우리 생명은 하나님께서 내셨고, 하나님께서 낸 이상 생명을 연장할 음식을 하나님께서 안 주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내셨기에 우리 몸을 가릴 의복을 안 주실 수가 없고, 또 집도 안 주실 수가 없습니다. 다 주십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만족하고 감사함을 배워야 합니다. 셋집에 있어도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어디든지 하늘나라로 이루어 놓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해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했는데, 자기를 위해 재물 쌓아둔 것이 어리석은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부요한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하는데, 되는 방법은 네 소유를 팔고, 그 다음에 구제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재물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이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재물입니다. 하늘에 쌓아 두는 것입니다. 세상에 쌓아 두는 것은 다 좀이 먹고, 동록이 쓸고, 다 도적질 해 갑니다. 그러나 하늘에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였는데, 땅에다 쌓아두면 마음도 땅에 가 있기 때문에 믿는 일 제대로 못 합니다. 하늘에 쌓아 두면 마음이 하늘에 가 있기 때문에 믿는 일이 잘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그 길을 걸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기억해서 세상 염려 하지 말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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