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고린도후서 12:1-6 바울이 삼층천(三層天)에 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울이 삼층천(三層天)에 감
고린도후서 12:1-6

1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4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6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12:1 자랑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으나, 주님의 환상들과 계시들에 대해서는 내가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는데,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까지 이끌려 올라갔다.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12:3 내가 이런 이를 아는데,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을 떠나 있었는지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신다.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는데, 곧 사람이 감히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12:5 내가 이런 이를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 자신을 위하여서는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 

12:6 내가 만일 자랑한다고 해도 참말을 할 것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랑하지 않겠으니, 이는 누가 나를 보는 것이나 내게서 듣는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1. 바울이 삼층천(三層天)에 감

본문 1절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은혜 받은 것을 자랑하는것은 자기에게는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도가 아니다,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바울을 비방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인들이 미혹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바울이 부득불 교인들에게 자랑하는데,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14년 전에 사도바울이 셋째 하늘에 끌려 올려 간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14년 전에 어디에 끌려갔습니까?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14년 전에 끌려갔다 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는데, ‘그가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하늘은 제일 높은 곳을 가르칩니다. 즉 신령한 하늘나라로 영계를 가리킵니다. 첫째 하늘은 ‘공간적인 하늘’을 가리키며 물질계 입니다. 둘째 하늘은 ‘사상적 하늘’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사람의 사상을 말합니다. 따라서 둘째 하늘은 사상계, 즉 정신계를 가리킵니다. 셋째 하늘은 ‘영적 하늘’을 말하며, 바울이 신령한 하늘나라로, 즉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어딘가에 있는 천당으로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나라를 어디에 예비 하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높은 곳에 하늘나라를 예비하셨는지 그것도 모릅니다. 하여간 하늘나라를 예비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영이 그곳으로 갈 때에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릅니다. 빛이 가는 것보다 우리 마음이 가는 것이 더 빠릅니다. 빛이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돈다고 합니다. 빛의 속도가 얼마나 빠릅니까? 그렇게 빠른데도 태양 빛이 지구에 내려 오려면 8분 걸린다고 합니다. 또 빛의 속도로 몇 백 년 내려와도, 몇 천 년 내려 와도 아직도 지구에 내려오지 못한 별빛이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멉니까? 그러나 우리 마음은 태양에 가는데 8분 걸립니까? 즉시로 마음이 태양에 갑니다. 몇 억 만 배 더 먼 별이라 해도 즉시로 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이처럼 빠릅니다. 마음이 빠르다는 것은 우리의 영도 이처럼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삼층천에 즉시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즉 하늘나라가 아무리 멀어도 우리의 영이 즉시로 올라갑니다.

본문 3절에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4절에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갔다는 것은 하늘나라로 갔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란 신기한 것과, 신령하고 귀한 것을 다 보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낙원(삼층천)에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며, 사람이 다 이르지 못할 것을 보았습니다.

본문 5절에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란 그리스도 안에 있던 한 사람으로, 14년 전에 삼층천에 끌리어 갔던 사람으로 바울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순전히 하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라고 한 것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며, “이런 사람”과 “나”를 갈라 놓았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께 이용된 때의 사람을 위해서는 자랑하겠으나 그것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것이므로, 하나님을 자랑하기 위해서 자랑하는 것이고, 바울이 자신을 위해서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교만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한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삼층천에 가서 본 것을 다 말하면 바울을 지나치게 생각할 염려가 있으므로 다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있는 모습보다 지나치게 생각하게 하면 안 됩니다. 실제 이상으로 남이 자기를 생각하게 만들면 그것은 벌써 잘못 된 것입니다. 말을 안하면 될 것을 괜히 말해서 다른 사람을 죄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2. 바울이 삼층천에 간 것과 입신이 다른 점

그러면 삼층천에 갔던 사도 바울과 요새 입신하는 것과는 무엇이 다릅니까? 입신하는 사람들도 하늘나라에 갔다 왔다고 합니다. 입신해 보니까 예수님이 계시고, 입신해서 천당에 가보니까 사람들이 많이 있고, 뭐가 어떻고, 어떻다라고 말을 합니다.

바울은 피동적이고 입신은 능동적임

바울이 삼층천에 갔다 온 것과 요새 입신하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면 입신하는 사람은 자기가 입신하려고 노력해서 하는 것입니다. 즉 입신해야 되겠다고 노력을 하고, 기도를 하고, 힘을 써서 입신을 하는 것으로 결국 자기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이 데려가신 것입니다. 바울은 순전히 피동적으로 삼층천에 간 것입니다. 그러나 요새 입신하는 것은 자기가 하는 것으로 능동적입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자기가 한 것이냐? 하나님이 한 것이냐?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바울은 주체성이 있고 입신은 주체성이 없음

또 입신하는 것은 꿈꾸는 것처럼 몽롱한 가운데서 모릅니다. 꿈꾸고 나온 것과 같이 입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정신이 똑똑하여 내가 몸 밖에 있었나? 몸 안에 있었나? 이것을 분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것을 보면 주체성이 있습니다. 즉 바울은 주체가 있어 자기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려고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입신하는 사람들은 주체가 없습니다. 꿈꾸는 것처럼 그저 끌리워서 몽롱한 가운데 빠져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릅니다.

바울은 십사년 전에 한번만 갔으나 입신은 자주함

또 바울은 14년 전에 한 번 입신하고 더 이상 안 했습니다. 그러나 입신하는 사람들은 자주 합니다. 한 달에 몇 번씩, 일 년에 몇 번씩 하는데, 잘못 된 것입니다. 하여간 입신은 자기가 한 것, 꿈 꾸는 것처럼 몽롱한 가운데 빠지는 것, 또 자기가 가서 무엇을 보았다는 것으로 바울이 삼층천에 간 것과는 다릅니다. 바울은 삼층천에 간 다음에도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아보려는 주체성이 있었고, 스스로 원해서 된 것이 아니고 우연히 된 것 등이 입신과 다른 점입니다.

입신하는 자들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을 봄

이것은 입신(入神)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요새 신비주의자들이 입신했다고 하면서, 뒤로 넘어져서 꿈꾸는 것처럼 무엇을 보고 왔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입신한다, 꿈을 꾼다, 하늘나라에 다녀왔다 하는 것들은 바울이 삼층천에 다녀 온 것과는 다릅니다. 입신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허무맹랑한 말을 많이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입신했다는 사람을 보니까 욕설, 발광을 자꾸 하길래 사람들이 계속 잡아 입을 틀어막고 있더랍니다. 죽은 사람이 세상에 있었을 때 욕설과 발광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 죽은 사람의 귀신이 들어가서 그렇게 하게 된답니다. 어떤 입신한 사람은 자기가 천당에 가 보니까 ,한 사람이 배가 터져서 창자를 주어 담고 있길래 왜 그런가 물어보았더니, 세상에서 혈기를 많이 부려서 창자가 자꾸 나온다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목이 길어서 목을 틀어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세상에서 교만하다가 그렇게 됐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입신해서 보니 어느 아는 목사가 지옥에서 뜨거워서 마구 뛰고 있더랍니다. 그 사람은 아마 속으로 그 목사를 미워했나봅니다. 그러니까 지옥에서 불 가운데서 뛰고 있었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목사가 왜 지옥에 가 있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입신해서 천당에 가 보니까 하늘나라에 고층 아파트를 많이 지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고 죽는 사람은 좋은 아파트에 가고, 잘 못 믿는 사람은 조그마한 아파트에 간다는 것입니다. 천당에 무슨 아파트가 있습니까? 이것을 보면 입신은 잘못된 것입니다. 천당은 신령한 나라인데 무슨 창자가 나오며, 무슨 목이 길어집니까?

입신했다가 나온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허무맹랑한 허튼 소리를 많이 합니다. 그것은 실제가 아니고 꿈 꾸는 것처럼 자기 잠재의식에 있었던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꿈도 낮에 생각했던 것이 밤에 꿈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주사야몽(晝思夜夢)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생각했던 것이 입신해보니까 꿈꾸는 것처럼 나온 것입니다. 사실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파트를 많이 보고 살았으므로 아파트가 나온 것이고 혈기부리는 것을 많이 봤으므로 창자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신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을 본 것이지, 하늘나라의 것을 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입신하여 하나님을 만나보고 왔다고 해서 어떻게 생겼냐고 하니까 수염이 난 영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수염이 난 영감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수염 난 영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이 나온 것입니다. 입신해서 보는 것은 제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실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믿으면 안 됩니다. 입신하였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믿고 나가면, 그 다음에는 순전히 마귀노릇만 합니다. 성경을 믿어야지 입신했다는 사람의 말을 믿으면 마귀에게 끌리워 가서 마지막에는 망하고 맙니다.

다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 바울이 삼층천에 갔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14년 전에 한번 갔던 것을, 말하지 않고 두었다가 14년 후에야 부득이 말한다는 것입니다. 입신한 것과 바울의 삼층천 간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우선 그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입신은 자기가 하려고 애써서 하는 것이고 바울은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이끌려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바울은 알아보려 애썼는데 입신한 것은 꿈꾸는 것 같아서 이 세상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입신은 자주 할수도 있지만, 바울은 14년 전에 이렇게 단 한번 외에는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입신은 원해서 되는 것이고 바울은 원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입신하는 것과 바울의 삼층천에 간 것은 아주 다릅니다. 하나님의 계시로 인해서 하나님이 데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듣게 한 것입니다.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다 아시느니라고 말합니다.

입신한 자들은 그것을 자랑하며 그것으로 한몫 보려고 함

바울은 14년 전에 한 번 갔다가 지금까지 말하지 않고 있다가 14년 후에 할 수 없이, 부득불 교인들을 위해서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입신한 자들은 그것을 늘 자랑하고 그것으로 한몫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고 하였는데, 바울은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자기 잘하는 것을 자랑하지 말고, 못하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나의 잘한 것을 말해주는 것은 적이고, 나의 잘못된 것을 말해주는 것이 선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도오선자(道吾善者)는 시오적(是吾賊)이요, 도오악자(道吾惡者)는 시오사(是吾師)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잘못한 것을 말해 주어야 고칠 것 아닙니까? 또 고치므로 좋은 사람 될 것이 아닙니까? 잘한 것만 자꾸 말해주면 고치지 못합니다. 도리어 교만해지고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이고, 또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와서 머물게 됩니다. 자기 자랑 안합니까? 자기 자랑하면 가다가 함정에 빠집니다. 잘한 것만 자꾸 높여 놓으면 실제로는 큰 사람이 아닌데, 진짜 큰 사람인 줄 알다가 그만 넘어가는 것입니다. 실제가 문제지 다른 사람이 높여주면 뭘 합니까? 높여 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높아집니다. 그러면 실제로 실력은 약한데, 자기가 큰 사람인 줄 알고 나가다가 자기 실력과 싸우는 날이
오는데, 그 때 가서는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약한 자인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가 약한 자인 줄 알아야 하나님께 계속 부르짖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므로 약한 자로 있지 않고, 강한 자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약한 것을 모르면 어떻게 강한 것으로 만들어 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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