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고린도후서 11:16-33 바울의 수고와 봉사에 대한 자랑.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울의 수고와 봉사에 대한 자랑
고린도후서 11:16-33

16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17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 18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19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 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21우리가 약한 것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22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23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30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32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33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11:16 내가 다시 말하니, 아무도 나를 어리석은 자로 생각하지 마라. 그렇게 못하겠거든, 나를 어리석은 자로 받아들여 나로 조금 자랑하게 하여라. 

11:17 내가 말하는 것은 주님을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리석은 자같이 확신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이다. 

11:18 많은 이들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또한 자랑하겠다. 

11:19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꺼이 용납하고 있다. 

11:20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누가 너희를 집어삼키거나, 누가 너희를 사로 잡거나, 누가 얕보거나, 누가 너희의 얼굴을 때리더라도, 너희는 용납하고 있다. 

11:21 부끄럽긴 하지만, 우리는 너무 약해서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누가 감히 무엇을 자랑한다면, 어리석지만 나도 감히 자랑하겠다. 

11: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다.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냐? 나도 그러하다. 

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 같지만, 나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더 많이 수고하고, 감옥에도 더 많이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다.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11:25 세 번 채찍으로 맞았고, 한 번 돌로 맞았으며, 세 번 파선을 당하였고, 하루 밤낮을 바다에서 헤매었다. 

11:26 여러 번에 걸친 여행에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성읍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의 위험을 겪었다. 

11:27 또 수고하고 애쓰며, 여러 번 자지 못하고 굶주리고 목마르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기도 하였다. 

11:28 그 밖에도 날마다 나를 누르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한 염려이다. 

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해지지 않겠느냐? 누가 걸려 넘어지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않겠느냐? 

11:30 내가 꼭 자랑해야 한다면, 나는 나의 약함을 자랑하겠다. 

11:31 영원히 찬송받으실 주 예수님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짓말하지 않는 줄 아신다. 

11:32 다마스쿠스에서 아레다 왕의 총독이 나를 잡으려고 다마스쿠스 성을 지키고 있었으나, 

11:33 내가 창문으로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다.


1. 거짓선지자의 비방에 맞서 자랑함

할 수 없이 자랑한 바울

본문 16-18절에,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나로 조금 자랑하게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없이 자랑하노라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일인 줄 알지만 부득불 자랑하겠다고 바울이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어리석은 자가 된 것은, 거짓선지자들이 바울을 비방하고, 사도가 아니라고 하고, 또 하나님의 참된 일꾼이 아니라고 한 것에 대함이었습니다. 바울이 어쩔 수 없이 맞서서 자랑하는 이유는 바울에 대해서 사도가 아니다, 히브리사람이 아니다, 너희를 위해서 돈이나 빼앗으려고 간계와 간교한 수단을 써서 너희를 꾀이는 자이다, 하며 여러 가지로 모략중상하고, 비방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부득불 자랑할 수밖에 없어서 자랑하게 됐는데 사실 어리석은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 자랑은 어리석은 일임

자기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울은 할 수 없이 한 것입니다. 교인들을 위해서, 교인들이 미혹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랑하는 것이지, 자기입장에서는 유익이 없습니다. 오늘날도 자기 자랑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기 자랑하는 자는 반드시 손해를 봅니다. 자기 자랑 잘하는 자는 다른 사람이 멸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역자가 강단에서 자기 자랑 많이 하면 그 교회에서 저 목사는 척 나서면 또 자기 자랑한다는 말이 돌게 됩니다. 또 어떤 목사는 자기 부인자랑을 좀 많이 했다는데, 게다가 자기 자랑도 하곤 해서, “그 목사는 척 나서면 자기 자랑 아니면 여편네 자랑이다”라는 말이 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랑 하면, 교인들이 은혜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교회를 그만두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자기자랑하고 자기 여편네 자랑하다가 거기서 쫓겨나느냐는 말입니까? 아주 우스운 자입니다.

절대로 자기 자랑, 자기 여편네 자랑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부인 자랑, 아들 자랑하는 사람에 대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자기 부인자랑은 100% 바보, 자기 아들 자랑은 절반이 바보, 50% 바보라고 합니다. 부인 자랑하는 것은 100% 바보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랑하지 말고, 부인 자랑하지 말고, 자기 아들 자랑하지 말고, 자녀들 자랑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남편자랑은 무슨 바보 같습니까? 부부간에 같으니깐 그것도 100% 바보입니다.
어떤 교역자 부인은 자기 남편만 계속 자랑합니다. 심방 가서도 자기 남편만 자랑하고, 누구 만나면 남편 자랑하고, 그렇게 하면 잘 될 것 같아도 안 됩니다. 그렇게 자랑하는 목적은 ‘그렇게 훌륭한 자기 남편이니까 너희들 우리교회 잘 나오라’는 의미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남편이 이만큼 훌륭하니까 이런 목사는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없다, 세계 제일이다, 그러니까 여기 나와서 교인 노릇 잘 하라는 목적으로 말하는데, 교인들이 바보가 아닙니다. 자기 남편만 제일이라고 말하고, 또 세계 제일이라고 하는데, 실제 자기가 세계 다 다녀봤습니까? 어떻게 자기남편만 혼자서 세계 제일입니까?

77세 난 노인이 세계 노인 마라톤에 나가서 1등 했답니다. 그래서 몇 사람 중에서 일등 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혼자서 출전해서 1등 했답니다. 아마 그 마라톤 대회 광고하기를 “세계적인 노인 마라톤 대회”라고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대회에서, 50대는 50대끼리 뛰고, 또 60대는 60대끼리 뛰고, 70대는 70대끼리 뛴 모양입니다. 그런데 70대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질 않았으니까 뭐 천천히 걸어가도 일등 했다는 말입니다. 그 뭐 아무나 일등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자기 집안에서 자기 목사가 제일이라고 누가 못하겠습니까? 그와 같은 것입니다.

절대로 남편 자랑하지 말 것, 또 목사 부인들과 교역자 부인들은 더욱이 자기 남편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줄 알고 감사하고, 또 누가 물어봐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자기남편이 뭘 잘한다, 뭘 잘한다, 기도 많이 한다, 성경 많이 본다, 무슨 학교 나왔다, 어느 학과 나왔다, 자랑하는 것은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고 해서 귀히 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먼저 심령이 살고, 영권이 있어야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랑 안 해도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랑해도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은혜를 안주시고, 교만한 자는 물리칩니다.

본문 20절에,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거짓선지자에게 넘어간 사람은 이렇게 됩니다. 거기서 종살이하고, 잡아먹히고, 사로잡히고, 뺨을 치고 그래도 거기를 따라가는 겁니다. 그거 이상하지 않습니까? 거기 가서 갖은 모욕과 수욕을 다 당해도 미혹을 받으면 그게 옳은 줄 알고 따라갑니다. 그게 어리석은 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배경을 자랑함

본문 21-23절에, “우리가 약한 것 같이 내가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자랑하고, 히브리인이라고 자랑하고 다닌다는 말에 바울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자랑하고 다닌다는 말에는 바울도 그러하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도 이스라엘 사람이고, 히브리사람이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라는 말은, 거짓 선지자들이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자처하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군이라면 바울은 더욱 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했습니다.

2.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당한 바울
주를 위해 갇힘

본문 23절 하반절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주와 복음을 위하여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도 하였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주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 했습니까? 고난 많이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늘나라 가면 면류관입니다. 면류관 감입니다.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감옥에 얼마나 갇혔습니까? 갇히기도 많이 갇혔다고 하였습니다. 주를 위해서 감옥에 갇히는 일은 복된 일입니다. 면류관 감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서 감옥에 몇 번 갇혔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바울은 또한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매를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복음과 주를 위해서 매를 얼마나 맞았습니까? 매 맞은 게 복입니다. 하늘나라가면 다 상급입니다. 주를 위해서 매 맞고 감옥에 갇히고 매 맞아봤습니까? 전도하다가 매 맞은 사람도 있습니다. 몇 번 맞았습니까? 전도하다가 매 맞은 것, 복음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것, 그 모든 것이 다 복된 일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면류관 상급으로 다 갚아주십니다.

우리 교단 사람이 아닌 어떤 조사가 있는데, 중국에 복음 전하려고 갔다가 잡혔답니다. 경찰한테 잡혀서 얼마 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데 그 안에서 금식을 했답니다. 돈은 몇 만 위안 갖고 갔는데, 돈 내놓으라고 할 때, 안 내놨다고 합니다. 돈 안 내놓고 감옥에 갇혀서 굶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 조사인데 여기서 죽으면 자기 책임이라”고 걱정하더니 나가라고 하였답니다. 경찰은 돈도 빼앗지 못하고, 그 조사는 얼마 동안 복음을 위해서 감옥에 갇혔다가
나온 것이니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감입니다. 우리 교역자들도 이렇게 가서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혔다 나오면 상급감입니다. 바울이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매 많이 맞았습니다.
우리가 매 한 번도 맞지 못한 거 참 부끄럽습니다. 이 성경 볼 때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전도하다가 매 한 번도 못 맞고, 감옥에 한 번도 못가고, 이거 뭐 이래가지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나서겠습니까?

신의주 북쪽에 심을철 목사가 있었는데 여러 해 동안 한 감옥에 갇혀서 매 많이 맞았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한 5~6년 동안 감옥에갇혔다가, 8.15 해방 이후에 나왔습니다. 심 목사가 이북에서 교인들 가르칠 때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감옥에 가서 매 많이 맞고, 구둣발로 차이고, 여러 가지 곤욕을 당하고, 또 여러 해 동안 추위와, 감옥에서 고생한 데 대해서 하나님이 영권으로 갚아 주었고, 또한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예비한 것이 분명합니다. 나와서 설교하니까 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심을철 목사와 연령이 비슷한 홍 목사라고 있었습니다. 홍 목사는 감옥에 안 갔습니다. 강단에 서도 영권이 없어 교인들이 은혜를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홍 목사가 “하나님이여 나를 감옥에 갔다 오게 해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우면 그렇게 기도 했겠는가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나 그때는 감옥에 갈 기회는 다 지나갔습니다. 8.15해방 후인데 누가 감옥에 데려가겠습니까? 감옥에 가는 것도 시기가 될 때 제때 가야지 때가 지나면 못 갑니다. 다 제 때가 있습니다. 매도 제때 맞아야지 지나가면 못 맞습니다. 그러므로 매 맞을 때에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 맞아놓으면 상급을 받을텐데, 그때 매를 안 맞으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바울이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

본문 24절에,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라고 했는데,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단 말입니다. 40에서 하나 감했다는 건 39대 씩 다섯 번 맞았다는 말입니다.

왜 39대씩 맞았느냐 하면 신명기 25장 1-3절로 보면, 사람은 때릴 때 40을 넘지 않게, 매 40대 이상을 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40대 이상 때리면 그건 성경위반입니다. 40대 때리다가 조금 잘못해서 41대 때리면 죄 짓는 것이므로 하나 줄여서 39대씩만 때린 것입니다. 40대 때려도 괜찮은데, 40대 때리다가 잘못하여 한 대 더 때리면 죄를 짓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39대씩 때리는 게 제일 큰 매입니다. 매 가운데 제일 큰 매가 39대 맞는 겁니다. 그걸 바울이 몇 번 맞았습니까? 제일 큰 매를 다섯 번 맞았습니다.

한번 매 맞은 것도 큰 복인데 바울이 다섯 번씩이나 맞았으니 얼마나 큰 복입니까? 이거 하나 맞을 때마다 별 하나씩 올라가는 겁니다. 제일 큰 매인 39대씩 다섯 번씩 맞았으니까 39대 맞을 때마다 별 하나 올라가면 별 몇 개 올라갔겠죠? 다섯 개 올라갔습니다. 한번이라도 맞았으면 정말 크고, 굉장한 것인데 제일 큰 매를 한번이라도 맞았으면 참 괜찮은 것입니다. 별 하나라도 따면 그래도 괜찮은데, 별 하나도 못 따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태장과 뺨 맞기, 파선

본문 25절에,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1절에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라고 하였습니다. 매를 많이 때렸습니다. 태장이라는 것은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는 것입니다. 엎드려뻗쳐 해 놓고 엉덩이 때리는 게 제일 무난한 것 같습니다. 다른 데 때리면 부상당하고 붉어지고 터지고 하지만, 엉덩이는 살이 두툼하니까 그나마 부상이 적은 것 같습니다. 바울은 태장으로 세 번 맞고, 한 번 또 돌로 맞았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9절에 보면, 돌에 맞아서 죽은 줄 알고 끌어냈었습니다. 돌로 바울을 때려서 거의 다 죽었는데, 죽은 줄 알고는 성 밖에 끌어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으로살아났습니다.

우리가 복음 전하다가 돌에 맞아 봤습니까? 태장 맞아봤습니까? 또 사십에 하나 감한 매, 제일 큰매, 복음 전하다가 제일 큰 매 맞아봤습니까? 귀 뺨을 몇 대 맞아봤습니까? 복음전하다가 뺨 맞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 전하지 않으며 뺨 안 맞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이북에서 공산당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왼뺨 치면 너희들 오른뺨도 돌려댄다고 했지? 어디 진짠가 가짠가 보자”하면서 왼뺨 치고, 오른 뺨 안 돌리면, “이거 가짜구나”하고 또 오른뺨치고, 그렇게 6.25사변 전, 1949년도 크리스마스 날 즘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공산당들이 여러 교회 다니면서 큰 핍박을 했습니다. 많이 때리고 잡아가기도 했는데, 그것도 안 겪은 것보다 겪은 것이 낫습니다.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는 의에 평강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했는데, 당시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 파선했다는 것은 배타고 전도하러 가다가 배가 깨지는 사고를 당한 것으로, 요새로 말하면 자동차 타고 전도하러 가다가 세 번 사고 났다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가지 위험을 당하여 죽을 뻔함

본문 26절에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여러 번 전도여행을 했는데,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 등을 만나서 죽을 뻔 한 때가 여러 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하러 다니다가 강도 만나서 죽을 뻔 한 것도 복입니다.

본문 27절에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습니다. 복음 전하다가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음 등을 당한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다가 여러 번 굶고, 목마르고, 자지 못하고, 애쓰고, 춥고, 헐벗었는데, 이것이 하나님 앞에 가면 다 상급입니다.
“너 복음을 전하다가 몇 번 굶었느냐? 몇 번 목마르고,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헐벗었느냐?”고 예수님이 물어 보실 때에 복음 전하는 것을 변변히 하지 못한 사람은 답변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가, 주를 위하다가, 믿음 지키다가 핍박받고 쫓겨난 사람들이 복이 있습니다.

3. 바울이 약한 것을 자랑함

본문 28절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일로 당하는 여러 가지 육신의 고난 외에도, 교회가 잘 되기 위해서 염려하는 심적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크다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에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누가 약하면 자신이 약해진 것처럼 약하고, 누가 실족하여 신앙에서 뒤로 물러갔으면, 자기가 실족한 것처럼 애타하는 마음을 가지고 시험에서 실족한 자를 건져 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본문 30절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부득불 자랑한 것은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 때문에 교인들이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어서 자랑한 것뿐이고, 바울이 참으로 자랑하는 것은 자신의 약한 것들만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부득불 자랑한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바울을 비방하여 교인들을 미혹시키니까 교인들을 미혹 안받게 하려고 부득불 바울이 자랑한 것입니다.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이 “바울은 거짓 선지자다, 사기꾼이다, 남의 돈이나 빼앗아 먹는 자이다, 거짓말쟁이다”라는 등 비방을 많이 하는데, 그것을 가만히 두면, 그 말이 진짜인 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진짜 사기꾼인가 보다”라고 교인들이 믿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도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자기 명예 영광만을 위해서 다니는 자이다”라고 이렇게 교인들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귀가 교회를 삼켜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바울의 인
도를 받겠습니까?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나는 복음을 위해서 이렇게 걸어 왔다” 하는 것을 교인들에게 말해 준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자기에게는 유익이 없습니다. 바울은 나의 자랑할 것은 약한 것만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할 때가 큰 유익이 있습니다. 잘한 것을 자랑할 때에는 자기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본문 31-33절에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성에 있을 때에 아레다왕이 보낸 방백들이 바울을 잡으려고 할 때에 바울이 성문으로 나갈 수 없어서, 들창문에 광주리를 매어 달아 바울을 담아 내리어 도망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의 약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나는 광주리 도망꾼이다”라고 하며 이렇게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바울이 광주리 도망꾼으로 떳떳하지 못합니다. 정정당당하게 대문으로 나가지 못하고 붙잡힐까봐 무서워서 뒤에서 광주리를 타고 도망했는데, 그 광주리를 타고 앉았을 때에 얼마나 한심했겠습니까? 광주리에 쭈그리고 앉아 줄로 달아 내리울 때에 광주리가 삐뚤어지면 떨어져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 광주리를 타고 몰래 도망쳤으니 얼마나 비겁하고, 약한 자입니까? 그런 자신을 바울은 자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주를 위해 많은 고난을 당하고 수고를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뿐이고, 자신은 언제나 약한 자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약한 것을 부끄러워 하거나 그것으로 자기의 위신이 떨어질까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만 자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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