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고린도후서 12:7-10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린도후서 12:7-10

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12:7 또한 여러 가지 엄청난 계시들 때문에 너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 

12:8 이것이 내게서 떠나도록 내가 주께 세번 간구하였으나, 

12:9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나의 여러 약한 것에 대하여 크게 기뻐하며 자랑할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위에 머물게 하려는 것이다. 

12: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경을 기뻐하니,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하기 때문이다. 

1. 바울에게 가시를 주심
바울을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주심

본문 7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다는 것은 큰 계시 묵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너무 자고할까봐, 교만할까봐 하나님이 바울을 쳐서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대로 두면 교만해질까봐 하나님이 사단의 사자, 육체의 가시를 주어서 교만하지 않게 했습니다. 바울의 육체의 가시는 눈병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의 눈을 어둡게 했다가 다시 밝아지게 하셨지만. 조금 남겨 두어서 그것이 늘 바울에게 시험거리가 되었습니다. 눈이 칩칩하고 시원치 않고 떳떳지 못합니다. 그 사탄의 가시, 사탄의 사자, 그 눈병이 바울을 쳐서 아프게 하고 쿡쿡 쏘게 하여 자고하지 않게 한 것입니다.
잘 되면 자기 자랑할까봐 하나님이 잘 되지 못하게 하여 가시를 주어서 그 가시로 낮추고 겸손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바울을 떠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가시라는 것은 육신의 병도 되고, 다른사람 보기에 시원치 않게 보이는 그런 상황과 그런 사건들을 말합니다. 가시와 같이 쿡쿡 쏘고 쿡쿡 찔러서 고통당하는 일, 그런 가시를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잘 되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다 잘 되면 교만해집니다. 바울에게 귀한 계시를 주었지만 그것으로 교만해질까봐, 다른 사람에게 떳떳하게 보이지 못하고, 자기도 고통당하고 다른사람에게 내놓을 것이 없는 그런 가시를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가시는 하나님이 보통 다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병으로 가시를 주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녀들이 가시노릇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경제적 가시, 가정적 가시가 있는데, 남편이 가시 노릇하는 집도 있고, 아내가 가시노릇하고, 아들이나 부모가 가시노릇하고, 또 같이 사업하는 사람이 가시 노릇하는 사람도 있어서, 그것 때문에 활발하게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시를 잘 극복하고 나가야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어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바울을 사랑하셔서 바울이 자고하지 않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 가시는 사단의 사자라고 하였습니다. 즉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지장이 많았습니다. 육체의 가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눈병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9:8-9절에 다메섹에 성도를 잡으러 가다가 하늘로부터 해보다 밝은 빛이 내리 비치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는 예수님의 음성과 밝은 빛으로 인해서 꺼꾸러졌는데 그 때에 그 빛에 의해서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 후 아나니아에게 가서 안수를 받고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 때에 어느 정도 눈병이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15에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눈이 나쁘기 때문에 교인들이 볼 때에 너무 안타까워서 자기들의 눈이라도 빼서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눈이 좋지 않으므로 편지를 쓸 때, 바울이 불러주면 다른 사람이 대신 쓰게 하고 자신은 큰 글자로 편지의 마지막에 싸인을 하였습니다. 눈이 좋지 않으니까 이렇게 마지막에 싸인으로 바울의 편지인 것을 증명하였는데, 이것으로 보아 육체의 가시는 눈병으로 봅니다. 그런데 그 눈병은 쿡쿡 찌르며 쏜다고 합니다. 쿡쿡 찌르는 것은 아주 고통스럽습니다.

지난 9월에 알마타에 갈 때에 교회 달력을 약 700~800개를 가지고 갔는데, 달력이 무거워서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들었습니다. 나도 한 뭉치 들었는데 얼마나 무거운지 쌀 몇 말 만큼 무거웠습니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들고 가느라고 팔에 힘을 좀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괜찮았는데, 얼마 있다가 왼쪽 팔이 쿡쿡 찌르더니 그 다음에는 오른쪽 팔이 쿡쿡 찌르며, 통증이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하면서, 몇 달 동안 쿡쿡 찔러대는데 밤에 잘 때에도 한 번씩 쿡쿡 찌르는 겁니다. 쿡쿡 찌르는 데는 쑥 찜질이 좋다고 해서 쑥 찜질을 해도 낫지 않고, 후끈하는 파스를 붙이라고 해서 붙였더니 또 파스 붙은 자리가 염증이 나서 고생을 좀 하다가, 하나님께 기도도 했는데 기도해도 잘 안 고쳐 주십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하나님이 다 낫게 해주셨습니다. 다 낫게 해준지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쿡쿡 안 찌르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쿡쿡 찌르면 그것도 큰 걱정입니다. 밤에 잘 때에 한 번 찔러대고, 조금 있다가 몇 번씩 또 찌르면 그 얼마나 고통입니까? 바울의 눈병이 이처럼 쿡쿡 찌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눈꼽이 나오고 눈꼽이 첩첩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도 아주 민망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을 보면 “시원치 않다”고 그랬습니다. 바울이 편지는 강하지만 만나보면 키는 조그만 하고, 눈꼽이 첩첩이고, 시원치 않습니다. 그런 가시가 있었으므로 전도하는데도 얼마나 손해입니까? 우선 전도하고 말씀을 전하려면, 첫째는 어느 정도 외모가 볼만해야 사람들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겠는데, 바울의 외모가 시원치 않으니까 사람들이 “눈은 첩첩해가지고 저 사람이 뭐라고 말하는거
냐”하며 우습게 보니까 복음 전하는데 상당히 지장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눈병을 없애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 특별기도를 했습니다.

바울이 세 번 특별기도를 했음

본문 8절에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하나님 앞에 눈병을 없애 달라고 세 번 특별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눈병하나 못 고쳐 주시겠습니까?
쿡쿡 찌르는 것 하나 못 없애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없애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응답을 하셨습니까?

2. 약한 것을 자랑할 것

본문 9절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해 짐

바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가시를 없애주시지 않고 뭐라고 응답하셨습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하셨습니다. 눈병도 은혜로 주신 것이라는 겁니다. 즉 육체의 가시도 은혜로 주신 겁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내 능력은 어디에서 온전하여 진다고 하였습니까?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다고 하였습니다.
약한 것이 없어지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좋겠지만 너는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병을 없애달라고 아무리 기도해도 안 없어집니다. 눈병을 주신 목적은 즉 육체의 가시를 주신 목적은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낮추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잘되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 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고난을 주시는 것은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은혜입니다.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가시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 가시는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가시가 없는 사람이 좋겠습니까? 가시가 있는 사람이 좋겠습니까? 가시가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징계를 주십니다. 또 하나님이 귀히 쓰시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가시를 주십니다. 그 가시로 말미암아 자기가 낮아집니다. 하나님은 낮아진 자를 귀히 쓰십니다. 가시를 안주시면 낮추지 못합니다. 낮추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없습니다. 일이 안되어 나가는 것도 하나님이 가시로 주시는 것입니다. 일이 안 되어야 낮아지겠으므로, 일이 안 되어야 하나님만 의뢰하겠으므로 일이 안 되게 하십니다. 그 때에 낮아져서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가면 마침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이 잘 안 되는 것도 감사해야 됩니다. 가시로 주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가시를 하나님이 주시는데 거기서 연단을 잘 받아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만 의뢰해야 됩니다. 자기를 낮추지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시가 오는 것을 손해로 보지 말로 유익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낮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시를 주실 때에 나를 낮추라고 주시는 줄 알고 낮추어야 합니다.

낮아져서 자기가 없어져야 됩니다. 즉 “나”라는 것이 다 없어져야 됩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렇게 하면 좋겠다, 뭘 주면 좋겠다”고 하지 말고 가시를 줄 때에 자기가 낮아져서 하나님만 의뢰하면 마침내 복을 주십니다. 거기서 연단이 되어 좋은 열매가 맺혀집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가시를 주시는데, 바울과 같이 육신의 병도 가시이고, 성격상 결함, 대인관계를 잘 못하는 것 등이 다 가시입니다. 또 사업에 하나님이 가시를 주십니다. 사업하는데 대적이 생깁니다. 혼자할 때에는 잘 되었는데 옆에 또 하나 기업체가 생겨서 가시 노릇을 합니다. 여러 가지 사고도 하나님이 가시로 주신 것입니다. 또 안한 것을 했다고 하는 것도 가시입니다. 누가 나더러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할 때에 자기가 파리 백 마리 안 잡아먹었으면, 파리 백 마리 안 잡아먹었다고 말하고는,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는데 왜 나한테는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할까?”하며 뭘 잘못했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잡아먹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잡아먹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능성이 없는데, 왜 잡아먹었다고 하겠습니까? 파리하고 친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니까 잡아먹었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파리를 잡아먹을 만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잡아먹었다고 하는 것 같다, 내가 다시는 파리를 내 부근에도 못 오게 해야 되겠다, 하나님이 싹 다 집어 치우라고 파리 백 마리를 잡아먹었다는 말을 듣게 만드신 것이다”하며 냄새나는 것을 다 집어 치우는 것입니다.

가시로 주신 것을 이겨라

요한 웨슬레의 부인은 요한 웨슬레를 깔고 앉아 때려 주곤 했다고 합니다. 요한 웨슬레 부인의 성격이 과격하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레슬링 선수 같았던 모양입니다. 하여간 요한 웨슬레에게는 부인이 가시입니다. 또 남편이 가시노릇 하는 집도 있습니다. 술 마시고 와서 늘 괴롭게 합니다. 또 교회에 하나님이 가시를 주시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교회에도 가시가 하나씩 있는 것이 좋습니다. 없는 것이 좋기야 좋지만 교역자들이 그것 때문에 기도도 많이 하고 낮아지니, 가시가
있는 게 도리어 유익이 됩니다. ‘그 가라지를 빼버릴까요’ 하니까 예수님께서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 뿌리까지 뽑을까하니 가만 두어서 추수 때 가서 가라지를 뽑아 버리고 곡식은 추수하라’고 했습니다. 가라지 때문에 기도를 많이 하게 됩니다. 가라지 때문에 일이 순순히 잘 되어 나가지만은 않습니다. 교회에 염소새끼도 나오고, 이리도 들어오고, 여우도 들어와서 포도원을 헙니다. 그래도 그것은 가시로 주신 것이므로, 그것을 잘 이겨야 됩니다. 가시가 오면 무조건 낮아져야 합니다. 무조건 낮아져서 하나님만 의뢰해야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머물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머물면 모든 것이 잘 되어 나갑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교역자도 능력 있는 교역자가 되고, 교인도 능력 있는 교인이 됩니다.

그 가시로 인해서 낮추고 시험해서 마침내 복을 주시고, 능력 있는 종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즉 능력 있는 목사가 되게 하시려고 가시를 주시고, 능력 있는 장로가 되게 하시려고 가시를 주시고, 능력있는 집사, 능력 있는 전도부인, 능력 있는 반장, 능력 있는 교인이 되게 하려고 가시를 주시는 것입니다. 목사가 보기 싫은 사람은 그 목사가 자기에게 가시입니다. 그러면 그 목사를 내쫓고 다른 목사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만드시려고 저런 목사를 보내 주셨다”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좋은 목사가 와서 잘하면 편안하고 쑥쑥 자라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가시를 통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자기를 잘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책망을 받을 때도 가시로 받지 말고, 거기서 잘 참고 자기를 잘 만들어 나가면 유익이 많습니다. 자기를 멸시하고, 천대하고, 발로 누르며 인격을 무시하고 모독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것을 가시로 주신 줄 믿고, 거기서 잘 참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가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쑥쑥 자라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금강석이 됐는데, 누가 금강석을 무시하겠습니까? 금강석을 숫 덩이로 알면 숫 덩이로 안 사람만 바보이지 금강석이 숫 덩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 능력이 약한데서 이루어지므로 바울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였습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위해서 약한 것, 능욕 받는 것, 궁핍, 핍박, 곤란 등 예수를 위해서 이것들을 받을 때가 약해지는 때입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핍박 오는 것, 궁핍 오는 것, 곤란 오는 것, 능욕 오는 것, 약한 그것을 기뻐하게 됩니다. 내가 약할 그 때가 곧 강함은 이러한 약한 것 때문에 하나님만 의뢰하므로 강해지는 것이고 그래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약한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문다는 것을 바울이 깨닫고 자기의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였습니다. 모세가 육신적으로 강할 때에는 사람을 죽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했으나 미디안 광야 사십 년 동안에 자기가 깨어지고 약해졌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가 연약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이 더욱 귀히 여기며, 능력을 입혀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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