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고린도후서 13:1-5
1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터이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3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13:1 내가 이제 세 번째로 너희에게 갈 것이다. "모든 일은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확정지어야 한다."
13:2 내가 지금은 떠나 있으나 미리 말한다. 두 번째 너희를 방문하였을 때 이미 말한 것같이, 내가 다시 가면 전에 죄지은 자들과 그 밖의 모든 이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13:3 이는 너희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신다는 증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너희를 대하실 때 약하지 않고, 오히려 너희 가운데서 강하시다.
13:4 그리스도께서는 약한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신다. 우리도 그분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분과 함께 살 것이다.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피고 시험해 보아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버려진 자이다.
고린도후서 13:1-5
1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터이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2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 3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4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13:1 내가 이제 세 번째로 너희에게 갈 것이다. "모든 일은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확정지어야 한다."
13:2 내가 지금은 떠나 있으나 미리 말한다. 두 번째 너희를 방문하였을 때 이미 말한 것같이, 내가 다시 가면 전에 죄지은 자들과 그 밖의 모든 이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13:3 이는 너희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신다는 증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너희를 대하실 때 약하지 않고, 오히려 너희 가운데서 강하시다.
13:4 그리스도께서는 약한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신다. 우리도 그분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분과 함께 살 것이다.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살피고 시험해 보아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알지 못한다면, 너희는 버려진 자이다.
1. 권징은 교회를 성결케 함
본문 13장 1-2절에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갈 터이니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 너희에게 가려고 준비하는데, 이번에 고린도에 도착해서, 전에 말한 죄 지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있으면 용서치 않고 벌하겠다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남은 자들에게 내가 말하는데 내가 다시 가면 용서치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전에 죄 지은 자들이 아직도 그냥 죄 짓고, 또 교인들이 그걸 아직도 용납하고 나가면, 내가 다시 갈 때에는 용서하지 않는다, 책벌한다, 가서 아예 벌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죄가 들어와서 어지럽게 하면 반드시 책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권징은 교회를 성결케 하는 것입니다. 죄가 들어와도 그대로 두면 교회가 어지러워집니다. 그래서 권징으로 교회의 성결을 보장하고, 책벌을 함으로서 그 사람을 회개시키고, 죄를 지으면 벌 받는다는 것을 알려 주어서 다른 사람에게 경계로 삼게 하여, 교회의 성결을 보장함을 알게 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역사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분별함
본문 3절에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사도 바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구하였습니다. 바울이 참 사도라면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서 말씀하시나 안 하시나, 하나님이 쓰시는 종이냐 아니냐의 증거를 구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바울이 말하기를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서 약하지 않고 도리어 강하시니라’는 말은 ‘너희 속에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는데 그 역사가 너희 안에 있다면 바울이 말한 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속에 그리스도의 역사가 있으면 참 진리를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참 진리를 모릅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속에 그리스도의 역사가 있는 사람,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은 참 진리를 들으면 압니다. ‘아, 이게 참이다’, ‘이것이 참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깨닫게 됩니다. 증거를 구할 것도 없습니다. 들어보면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고린도 교인들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시는데 그만 고린도 교인들이 막았다는 말입니다. 막아서 그리스도께서 약해지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것이 참 진리인지 아닌지, 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참 진리인지 아닌지 분별을 잘 못합니다. 여기 오면 이것이 옳다고 하고, 저기 가면 저것이 옳다고 하니까, 어느 것이 참 진리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비주의 하는데 가면 신비주의가 옳다고 하고, 순복음주의에 가면 순복음주의가 옳다고 하고, 보수파에 가면 보수파가 옳다고 합니다. 서로 옳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것이 옳다고 하지 않으면 누가 그것을 따라가겠습니까? 그러니까 서로 자기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또 혼합된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도 자기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허다한 사람이 진리를 혼잡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혼잡하게 되는 것은 모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옳은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혼합된 진리를 전하는 사람은 전부다 혼합시켜서 전하는 그것이 옳다는 것이고, 신비주의는 자기가 옳다는 것이고, 성경만 전하는 사람도 자기가 옳다는 것입니다.
헬라파는 지혜를 숭상해서 지혜로 성경을 전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고, 유다파는 표적을 행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또 희한한 능력이 나타나야 된다며 그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옳으냐가 문제입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 어떻게 압니까? 주장하는 각자에게 물어보면 서로 옳다고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물어보아서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수 없습니다.
어떤 목사를 신신학자라고 교회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그 목사가 신신학자 같지는 않다고 하면서 이마가 번번한 목사라서 신신학자 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마가 좁은 사람만 신신학 하는 자입니까? 그래서 그 다음에 그 목사한테 직접 가서 물어봤답니다. “목사님은 신신학입니까, 아닙니까?”하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내가 왜 신신학이냐!”라고 소리를 치면서 자기는 옳다고 그러더랍니다. 그러니 어떻게 진짜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참으로 바른 진리인지 어떻게 안다고 했습니까? 본문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서 강하게 역사할 때에 그 때는 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으므로, 영이 사니까 그 바른 진리를 받으면 딱딱 들어맞습니다.
자기 심령이 살고 그리스도의 역사가 있고 생명 길을 걸으면, 이제 바른 진리, 신령한 도리를 전하는 것을 들으면 딱딱 들어맞습니다. 물건의 부속품이 들어맞도록 딱딱 들어맞습니다. 하나도 모자라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 갖다 대면 안 맞습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고, 찌그러집니다. 다른 말을 갖다 들이대면 속에 딱 들어맞지 않는데, 참된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면 딱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3. 약한 자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본문 4절에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이는 자기 뜻대로 하는데 약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실 때 내 원대로 마옵시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말하고 나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약한 것입니다.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는 것만 따라 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원대로 하는 것에 약하시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사셨습니다. 자기의 원하는 것은 이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결국 자기의 원대로 함에는 약해져서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하셔서 자기의 주장대로 자기를 위해서는 하나도 하지 못하시고, 그저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만 그저 순종하셨다는 말입니다. 약하시기 때문에 이용만 당했다는 말씀입니다. 약하시기 때문에 십자가로 인도하니까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만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강하셔서 기도 한 번만 했더라면, 하나님이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해서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다 멸하셨을 것입니다. 영은 군대의 사단입니다. 천군 천사 열두 사단을 보내서 방해하는 자들을 다 말살시키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까짓 잡으러 온 무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번만 기도하면 되는데 그런 기도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약하시기 때문에 자기주장대로 기도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약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만 따라 가시려하니까 기도하시면 될 것도 안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시면 사실 수 있는 것도 죽으러 가시고,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약하시기 때문에 그러셨습니다. 우리도 안 하면 살 길이 많지만 그래도 약해서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만 해야지, 자기가 강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안 해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를 다 이루지 못합니다. 자기가 강한 사람, 제 생각 제 뜻이 강한 사람, 자기를 위한 것이
강한 사람, 돈 사랑하는 것이 강한 사람, 또 가족 사랑하는 것이 너무 강한 사람, 이런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강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심히 약하셔서 아무것도 일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역사가 아주 미미해집니다.
제 맘대로만 하고, 자기 이기주의로만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기 유리한 것이나 하고, 편안할 것이나 하고, 잘 먹을 곳만 가면 그리스도께서 그 속에 강하게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 앞에 약하셨던 그리스도와 같이하고, 내 생각대로 하면 좋은 데로 갈 수 있지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데로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 입장을 봐서는 안 가야 살겠지만, 하나님이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약하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강했다면 왜 올라가겠습니까? 예수님도 올라가면 환난 받을 것이 뻔한데, 자기가 약하니까 하나님의 뜻만 순종하려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기는 안 하고 싶어도 약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자기는 안 가고 싶어도 약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고, 또 자기는 대접 안 하고 싶어도 약하기 때문에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약해야 됩니다.
찬송가에도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시고 내가 강할수록 더욱 천해진다는 말입니다. 내가 강하면 천해지고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해지고, 또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그리스도께서 강하게 역사하시고 내가 강할수록 더욱 더 그리스도의 역사는 강하지 못합니다. 미미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역사가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맹맹해집니다. 또 힘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또 무엇을 왜 하라고 그러나?”, “무슨 연보를 왜 내라고 그러나?”, “전도하러 왜 나오라고 그러나?”, “심방은 또 왜 하라고 그러나?”, “중국엔 왜 가서 전도하라고 그러나?”, “러시아 알마타에 가서 예배당을 왜 지으라고 그러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강한 사람은 안 갑니다. 알마타에 못 갑니다. 약한 사람만 갑니다.
‘우리도 저희 안에서 약하나’는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고 자기 원대로 하지 못하니까 약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며, 늘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삼가 조심하며 벌벌 떠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다시 삽니다. 자신은 약해져서 살게 됩니다. 자신이 강하면 죽습니다. 자신이 약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고 또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
니다. 강한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역사가 끊어집니다. 자기도 강하고 그리스도도 강하니 둘 다 강하니까 그리스도께서 그 속에서 역사를 못합니다. 자기가 약해져야 그리스도께서 역사합니다.
완고하고 교만하고 강하면 안 됩니다. 겸손하고, 상한 심령, 온유한 심령, 약한 것을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고 살려 주십니다. 자기가 강한 것을 가지고 나와서 이렇게 해 주세요 저렇게 해 주세요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너무 강하면 못씁니다.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머뭅니다. 기도 하는 것도 너무 강하게 하지 말고, 교회일 하는 것도 너무 강하게 “이렇게 해주십시오, 저렇게 해 주십시오”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리이다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는 연약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해주십니다. 자기가 너무 강하면 해주지 않으십니다. 강한 자에겐 마귀가 옵니다.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가 약한 줄 알고 하나님이 해 주셔야만 되는 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깨져나가고, 온유하고 겸손해져야 하나님이 함께 일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했습니다. 약해지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4.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
본문 5절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늘 자신을 시험해보고 자신을 확증하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계셔서 인도하시는 줄 스스로 알지 못하면 버리운 자라는 것입니다.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버립니다. 붙들고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언제나 시험해 보고 확증해 보아야 합니다. 믿음에 있는지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지 여부를 통하여 확증할 수 있습니다. 속에서 감동을 주고 감화를 주고 역사하여 예수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것이 믿음에 있는 확증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성도 속에 계셔서 역사 하십니다. 또 감동을 주십니다. 또 인도하십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뜻대로 인도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속에서 역사하심을 깨달아야 됩니다. 깨닫지 못하면 버리운 자요,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하고 순종해야 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고 전적으로 그로 말미암아 살아야하고 그를 의지하고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속에 그리스도의 역사가 끊어진 사람, 감동이 없는 사람, 인도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리운 자입니다. 인도하시는 것을 알려면 자기가 약해져야 합니다. 약함으로 예수님이 못 박혀 죽으신 것이니 하나님의 뜻은 강한 자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에게서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은혜가 능력이 약한 자에게 머문다’고 했습니다. 약할 때가 강한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인도함을 모릅니까. 내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해져야, 약한데 내려가야 그리스도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인도를 늘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가 믿음에 있는가?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속에서 강한가? 안 강한가? 시험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강하게 역사하면 믿음에 있는 때이고, 그리스도의 역사가 없는 때는 믿음에 있지 않는 때입니다. 믿긴 믿지만, 믿음을 쓰지 않는 때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잠자는 때이고, 졸고 있는 때입니다. 예수를 믿긴 믿지만 졸고 있는 사람이 많고, 잠자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예수를 믿는 사람 가운데 믿음에서 있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역사가 속에서 강하게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강한 역사가 속에 없는 사람은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왜 그리스도의 역사가 속에서 강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자기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의 고집이 세고, 육신이 강하고, 물욕과 정욕과 사욕이 너무 강하고, 명예, 영광심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자기는 다 죽어지고 약해져야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오고, 하나님의 만능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호렙산에 가서 자기가 다 죽어지고, 자기가 깨어져서 할수 없게 될 때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고, 엘리야가 그 음성을 붙들고 나갈 때에 끝까지 강하게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약할 때가 곧 강할 때입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그리스도가 너희에게서 강하게 역사하시나? 약하게 역사하시나? 시험해 보고, 하나님의 역사가 없으면 그것은 믿음을 안 쓴 것입니다. 믿음을 썼는데 왜 하나님의 역사가 없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를 믿어도 제 마음대로, 제 육신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내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나? 없나? 시험해 보아야겠습니다.
내 속에 그리스도가 강하게 역사하시되 언제나 진리 가운데로 인도 하시고, 말씀대로만 순종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의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기적적인 역사, 생명이 사는 역사, 황무지가 소생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속에서 역사하지 못하면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믿긴 믿지만 껍데기만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의 역사에 순종하고, 나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때에 끝까지 복종을 하며, 어디든지 가라고 하면 가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하라고 하면 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확증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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