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어 자라나는 신앙을 가져라
골로새서 1:6-9
골로새서 1:6-9
6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7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9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6 이 복음이 너희에게 이르렀고, 너희가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안에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도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다.
1:7 너희는 이것을 우리와 함께 종이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서 배웠다.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며,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자이다.
1:9 그러므로 우리도 소식을 들은 날부터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간구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너희가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고,
1:7 너희는 이것을 우리와 함께 종이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서 배웠다.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며,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자이다.
1:9 그러므로 우리도 소식을 들은 날부터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간구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너희가 모든 영적인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고,
1.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어 자라남
본문 6절에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라고 하였는데,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호세아 4:14에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한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면서 물의 혜택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은 공기 속에서 살면서 공기의 혜택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 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니까 감사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깨달으면, 그것은 굉장히 큰 것입니다. 즉 독생자를 희생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깨달으면, 그것은 천지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같이 아끼고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골라 주시는 분이심을 깨달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아니면 주시지 아니하시고, 복이 아니면 주시지 아니하십니다. 반드시 은혜와 복으로 주십니
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이 얼마나 큰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우리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그 맡기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 은혜 받는 것은 말씀을 받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가? 또 어떻게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우리를 건져주셨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친히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잡으시고, 오늘날까지 우리를 인도해주신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사야 43:1-4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배롭게 여기시고,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즉 애굽을 속량물로, 또 구스와 스바를 내어주시면서까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물 가운데로 건널 때에도 물이 침몰치 못하게 하시고,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도 불꽃이 사르지 못하게 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감사가 안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큰 은혜 속에 살면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만, 불평, 원망 속에 사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습니다. 시편 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깨달으면 그저 감사뿐입니다. 나 같은 것이 무엇이관대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랑해주셨는가? 벌써 멸망 받았어야 할 자인데 이렇게 사랑해주시는가? 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을 깨달을 때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며 말씀을 깨달을 때마다 참 기쁨이 생기고, 감사가 나옵니다. 깨달으면 전부 다 은혜이며 전부 다 복입니다. 또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난, 핍박, 가시 등도 깨달으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신 것이고, 은혜로 주신 것이고, 복으로 주신 것을 알게 됩니다. 바울이 가시를 없애달라고 기도 할 때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가시도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깨닫기 전에는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씩이나 특별 기도를 했지만, 깨닫고 난 뒤에는 오히려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였습니다. 약한데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는 것을 몰랐는데, 깨닫고 난 후에는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자기가 약할 때에 강합니다. 자기가 강할 때에는 약합니다.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집니다. 즉 된 줄로 아는 자는 벌써 넘어진 자라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을 가질 때에, 내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
달을 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7-10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을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너무 은혜를 많이 주셨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바울이라고 해도 자고해질 염려가 있으므로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교만은 실력을 배경으로 하여 나오기 때문에, 하나라도 실력이 있으면 벌써 교만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교만을 없애지 못하면 망합니다. 바울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바울이 교만해 질 수 있겠기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육체의 가시는 눈병입니다.
바울이 눈병 때문에 글자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쿡쿡 찔리는 눈의 고통도 심하였습니다. 더우기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지장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눈병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몇 배 더 잘할 것 같았으나,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일 많이 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바울 네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에, “교만해지기 쉬우니까, 너의 꼭대기를 내가 낮춰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고, 오히려 교만하여 망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울이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교만은 일 한 것만큼, 은혜 받은 것만큼, 실력 있는 것만큼 따라 옵니다.
그러므로 교만하지 않도록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신 것을 바울이 깨닫고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자기가 약할 때에 하나님 능력이 그만큼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할 수 없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할 수 있다고 할 때에는 하나님이 안 해주십니다. 자기가 할수 없다고 할 때에 하나님만 의뢰하게 되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깨달으면 전부가 감사요, 기쁨이며, 좋은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2. 신앙은 열매를 맺어야 자라남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라고 했는데, 곡식은 자라나야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열매를 맺어야만 자라납니다. 자라나야 열매를 맺는 게 아니고, 열매를 맺어야 자라납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무슨 열매를 맺어야 자라납니까?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자라납니다. 즉 산 믿음이 있어야 열매를 맺고, 자라납니다. 죽은 것은 자라날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습니다. 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고, 그 믿음을 쓰게 되면 믿음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그러면 열매가 맺힐 때마다 조금씩 자라납니다.
◉ 아브라함
그러면 믿음의 열매는 어떤 것인가? 우리의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는 믿음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곳으로 따라가는 것이 믿음이며, 또 그것이 믿음을 쓰는 것입니다. 믿음을 쓰니까 열매가 맺혔습니다. 무슨 열매가 맺혔습니까? 가나안 땅을 얻는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러므로 영이 자라났습니다. 그 다음에 롯의 목자와 아브라함의 목자가 다툴 때에, 아브라함이 양보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만 붙들고 살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4: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였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맺혔고, 자라났습니다. 하여 창세기 14:14절에,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국이 소돔 고모라와 연합한 다섯 나라를 침략해서 소돔에 거하던 롯을 사로잡아갔을 때, 아브라함이 집에서 기르고 연습한 가신 삼백십팔 명을 데리고 가서 이겼습니다. 이것이 믿음을 쓴 것입니다.
다섯 나라 왕들이 연합하였어도, 그돌라오멜 4대 연합군을 물리치지 못했는데, 아브라함은 단독으로 불과 삼백십팔 명 되는 소수의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이겼습니다. 믿음을 쓰면, 아무리 대적이 강하더라도, 잘 싸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어디든지 간다”하며, 아무리 원수가 많고 강할찌라도 하나님의 명령이면 될 것을 믿고 담대히 나간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고 그 영혼이 자라났습니다.
◉ 예수님
우리의 믿음의 모본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모본이신 예수님은 어떻게 믿음을 쓰셨는가? 믿음은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순종하셔서 하늘의 영광을 다 내어 놓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낮아지시고, 종살이 하셨습니다. 또 죽기까지 복종하시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믿음을 쓰신 것입니다. 그 결과로 부활의 열매, 생명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높여주셨습니다. 우리도 범사에 믿음을 쓰면 믿음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면 믿음의 열매가 맺힐 때마다 우리의 영도 자라납니다. 그러나 죽은 믿음은 열매가 없고, 자라나지도 못합니다. 산 믿음은 열매를 맺어 자라납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어라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사랑도 자라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사랑할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기에게 손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면 사랑의 열매를 맺고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줄 알고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손해를 보았을 때에도 그 손해 준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내가 손해를 본 것이다”고 믿어야 합니다. 도적맞는 것도 하나님께서 도적에게 붙였기 때문에 도적을 맞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2:24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라고 하였습니다. 도적에게 붙인 자가 누구십니까?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도적맞았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도적에게 붙이셔서 도적맞은 줄 알고 거기에서 깨달을 바를 깨달아야 됩니다. “내가 도적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 도적맞았다, 내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으므로 하나님께서 도적맞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삼았으면 그것은 불의의 재물입니다. 불의의 재물이므로 하나님께서 도적맞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나 욕심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먼저 바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도적맞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나 욕심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먼저 바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도적맞게 하신 것입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을 때에 자기를 돌로 때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도와주는 일, 그것이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의 열매가 맺힐 때마다 영이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되겠습니다.
소망의 열매를 맺어라
소망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며 소망을 가지고 나갈 때에 점점 소망에 도달하는 열매가 맺히고, 영혼이 자라납니다.
연보의 열매를 맺어라
하나님께 연보 바치는 것도 열매입니다. 연보의 열매가 맺힐 때에 자라납니다. 빌립보서 4:17에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한다는 것은 연보하는 것이 풍성하기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연보하는 것도 믿음을 쓴 열매입니다. 열매가 맺힐 때마다 그 영이 자라납니다. 우리는 믿음, 소망, 사랑, 연보, 봉사, 낮아지는 것, 희생 등의 열매가 맺혀져야 됩니다. 열매가 맺혀지지 못하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믿음의 열매도 없고, 사랑의 열매도 없이 그저 싸움이나 하고, 원수나 맺고, 하나님께 연보할 때는 인색하고, 희생하지 않고, 봉사하지 않으면 열매가 없고, 그것은 백년 믿어도 자라나지 못합니다.
열매 없는 자는 자라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찍혀서 불에 던지움을 당합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을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저주하셨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자라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교회도 자라나는 교회가 열매가 많습니다. 열매가 많은 교회는 자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봉사의 열매를 맺어라
그러므로 범사에 우리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대한 열매, 또 봉사에 대한 열매를 많이 맺어서 자라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희생, 봉사의 열매는 좋은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매를 맺어야겠습니다. 복음을 귀히 여기고, 복음 운동에 협력하려고 힘을 쓰면 열매가 맺히고 영혼이 자라납니다. 범사에 열매를 맺을 때마다 자라납니다. 열매를 맺지 않고, 자라나겠다는 것은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열매를 맺어야 자라나므로 믿음을 써서 희생하며 말씀을 따라가며, 순종을 해야 열매가 날마다 맺혀지고, 영이 자라나고 교회도 점점 자라납니다. 교회도 열매가 맺혀야 자라나고, 개인의 신앙도 열매가 맺혀야 자라납니다. 모든 면이 열매를 맺을 때마다 자라납니다.
3. 에바브라에게서 배운 바른 진리를 굳게 지키라
본문 7-8절에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라고 하였는데, 에바브라하고 빌립보서 2:24-25의 에바브로디도는 다른사람입니다.
골로새서 4:12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에바브라는 본래 골로새 교회의 교인으로서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힐 때에 찾아 온 사람입니다. 또 빌레몬서 1:23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라고 하였습니다. 바울과 같이 로마 감옥에 있었던 에바브라입니다. 에바브라가 바울에게 와서 골로새 교회의 모든 사정을 말해 주므로 그 형편을 알고 난 뒤에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매일 기도해 주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소식을 듣고 바울을 사랑하여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갔었던 교회가 아닙니다. 또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바울과 골로새 교인들은 서로 보지 못하였으나 이렇게 신앙적인 교제를 하였습니다.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라고 하였는데, 골로새 교인들이 에바브라를 통하여 바른 진리를 배웠다는 뜻입니다. 또 그 시대에 여러 가지 미혹을 시키는 주장들이 많이 있었는데,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에바브라에게서 배운 바른 진리를 굳게 지키라는 뜻입니다.
미혹의 세력
1) 철학이 들어옴
골로새서 2:8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고 하였는데, 교회 안에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2)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옴
또 2:16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교회 안에 월삭이나 안식일을 지켜야한다는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서 미혹을 시켰습니다.
3) 천사숭배가 들어옴
또 2:18절에는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천사 숭배하는 미혹의 세력이 많았습니다.
4) 금욕주의자들이 들어옴
또 2:21절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라고 했는데, 금욕주의자들이 나와서 미혹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철학자들이 와서 미혹시키는 일, 율법주의자들이 와서 미혹시키는 일, 천사 숭배자들이 와서 미혹시키는 일, 금욕주의자들이 와서 미혹시키는 일 등 여러 가지로 미혹을 시켰는데, 너희가 에바브라에게 배운 것이 바른 진리인 줄 알고, 그 진리
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 가지 시험, 여러 가지 학설, 여러 가지 교훈, 여러 당파가 있지만 너희는 에바브라에게 바로 배운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바로 배운 것을 귀히 여기며, 바로 배운 바른 진리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4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하였습니다.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는 것은 디모데가 바울에게서 바른 진리를 배웠는데, 그 바른 진리에 굳게 서라는 말입니다.
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여러 가지 시험, 여러 가지 학설, 여러 가지 교훈, 여러 당파가 있지만 너희는 에바브라에게 바로 배운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바로 배운 것을 귀히 여기며, 바로 배운 바른 진리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4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하였습니다.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는 것은 디모데가 바울에게서 바른 진리를 배웠는데, 그 바른 진리에 굳게 서라는 말입니다.
4. 골로새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음
본문 9절에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에바브라에게 골로새 교회의 형편을 듣고,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매일 기도해 주며, 골로새 교인을 사랑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또 바울에 대한 것을 듣고 바울을 사랑하고 바울을 사모하며 바울을 위해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서로 보지는 못했지만 신앙적인 교제가 있었고, 영적인 교통이 있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란 바울이 에바브라에게 골로새 교회의 형편을 듣던 날부터,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는데, 바울이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였는가를 이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교역자들은 교회를 위하여 그치지 않고 늘 기도하여야 합니다. 먼저 자신이 하나님과 영적 교통하는 기도가 중요합니다. 흑암에서는 기도가 안 됩니다. 흑암에서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 기도에는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흑암을 만난 다음에는, 먼저 흑암을 제거시켜야 됩니다.
즉 먼저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막히는 것은 언제나 자기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다 죽어지고 없어져야만 영적인 세계가 발견됩니다. 영적인 세계가 발견되고 나서 모든 것을 위해서 기도를 하면 은혜가 되고,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나 비록 흑암을 만나 빛의 세계를 잃어버린다 하여도, 그 가운데서 기도해야 하고, 기도가 안 나와도 계속 힘을 써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가 안 나와도 하루 두 시간 이상 기도를 채워야 됩니다. 기도가 안 나오는데 어떻게 기도하겠느냐고 하지 말고, 그래도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시간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십니다. 기도 시간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교역자는 더욱 더 기도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하루 여러 시간씩 기도해야 됩니다. 좀 더 많은 시간을 기울여서 힘써 기도를 해야만 자기 영이 살고, 영적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적세계를 발견해야만 기도도 되고, 성경 말씀도 은혜가 되고, 하나님의 감동이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지 않는 교역자는 건달꾼과 다를 바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교인들에게 신령한 생명의 양식을 먹여줄 수 있겠습니까? 자기도 신령한 양식을 못 먹는데 어떻게 남에게 신령한 양식을 먹여 주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과 같이 늘 그치지 않고,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교인들도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복음이 잘 전파되어 나가도록 위해서 늘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돌보는 교회만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참된 교회들을
위해서, 동역자들이 돌보는 교회들을 위해서, 또 제자들이 돌보는 교회들을 위해서 늘 기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있기를 기도함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하였는데, 신령한 지혜는 육신의 지혜와 반대입니다. 신령한 지혜는 영적인 지혜를 가리킵니다. 지혜는 미련한 것과 반대이며, 총명은 둔한 것과 반대입니다. 미련하고 둔한 자는 마귀에게 미혹을 잘 받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신령한 지혜가 있어서 모든 것을 바로 알고, 바로 분별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즉 신령한 면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총명이란 분별력을 가리키는데, 어떤 것이 참인가?, 어떤 것이 거짓인가를 잘 판단해서 마귀에게 속지 않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분별력과 바로 아는 지혜가 없다고 하면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마귀에게 속아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바로 알고, 바로 판단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야 되겠습니다. 지혜와 총명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총명이 없는 자는 마귀의 뜻을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따라갑니다. 즉 마귀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인 줄 알고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총명이 없으면 마귀에게 미혹을 받고, 거짓을 따라가며, 사람에게 속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점점 더 바로 알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함
또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점점 더 아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좀더 깊이 알고, 좀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에, 어떻게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인가를 찾으려면
첫째는 성경에서 찾아야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섭리적으로 일하십니다.
셋째는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찾습니다. 성령의 감동과 신앙양심을 쓸 때에 지혜와 총명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을 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려야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욕심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합니다.
또 자기가 표준이 되어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 못합니다. 나침판 안에 쇠붙이가 들어가면 나침판의 바늘이 방향을 바로 가리키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속에 욕심이 들어오면 그와 같습니다. 아무리 바로 하려고 해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갑니다. 철야기도하고, 금식기도를 해도 욕심으로 기울어지면 암초에 걸려서 함정에 빠지고,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욕심부터 버려야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이 되지 못하게 행동하면 복장부터 고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으려면 욕심부터 버리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즉 자기 위하는 것부터 버려야 됩니다. 자기 위하는 것이 죄 가운데 제일 큰 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져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이 점점 자라나야겠습니다. 자기는 없어지고, 하나님만 위하는 생활로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고자 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이 신앙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나가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고난의 길을 걸어간 것처럼 우리도 그와 같아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연단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유익만을 보려고 하면, 그것은 벌써 자기 욕심을 좇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되겠는데, 요새는 무조건 “축복합니다”라고 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 장로 부인이 자기 남편이 암에 걸렸는데, 기도를 해달라고 하니까 1억원을 주어야 해준다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1억원이 없으니까 계약금만 걸고 좀 해달라고 하니까, 5천만 원 걸라고 합니다. 그래서 5천만 원 계약금을 걸고 기도를 받았는데, 암에 걸린 장로가 죽었습니다. 죽었으면 계약금을 내주어야 하는데, 도리어 얼마 있다가 잔금을 받으러 사람을 보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잔금을 주겠냐고 하며 이 일을 사람들에게 폭로하였습니다. 무조건 “기도하면 낫는다, 자기가 축복해 주면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또 어떤 목사는 모든 병은 다 귀신 때문에 생겼다면서, 귀신을 잡아야 한다는 목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흥회 하면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귀신만 잡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귀신 때문에 병이 났다면 귀신을 잡으면 병이 나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병이 다 낫습니까? 병이 다 낫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과, 매사에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의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지금 얼마나 미혹이 많습니까? 골로새 교회만 하여도 철학, 천사숭배, 율법주의, 금욕주의 등 여러 미혹하는 세력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지금도 미혹하는 세력들이 많은데 거기에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혜에는 뱀 같이 하라고 했는데, 뱀의 지혜는 자기의 지혜가 아니고, 자기 밖에 있는 마귀에게서 받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뱀같이 지혜롭게 하라는 말은 자기 지혜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마귀를 이기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 있어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여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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