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일 월요일

창세기 11.1-32 바벨탑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창세기 11:1-32

1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2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3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6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7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9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10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11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2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13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15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6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17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8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19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21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2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23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4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25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6데라는 칠십 세에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27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29아브람과 나홀이 장가 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30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31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32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1. 바벨탑을 쌓음

바벨탑을 쌓은 이유

본문 1-4절에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는 세계의 언어가 하나였고, 아직 말이 각 나라의 말로 갈라지기 전이었습니다. 땅의 구음이 하나이고, 그 자손들이 다 동방으로 옮겨서 시날 평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시날 평지가 상당히 넓고 살기가 좋았던 모양입니다.이제 바벨탑을 어디까지 쌓자고 그랬습니까? 하늘에까지 닿도록 쌓자고 그랬습니다. 그것은 왜 쌓자고 했습니까? 이름을 내는 것과, 또 흩어짐을 면하는 것과, 또 홍수를 면하려고 쌓았습니다. 이전에 노아시대에 홍수로 다 멸망 받은 것이 생각이 나서, 또 홍수로 멸망할 것 같은 생각이 드니까, 이제 대를 높이 꼭대기로 하늘까지 쌓아서, 아무리 홍수가 임해도 꼭대기까지 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또 역청으로 벽돌을 만들어서 역청으로 흙을 대신해서 쌓으면 물 샐 틈이 없어 홍수가 나더라도 물이 안 들어오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름을 내자고 하며, 또 우리의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 쌓는데, 우리가 하자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하나님 이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없습니다. 또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니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고 하나님으로 살아야 될 자들인데, 하나님은 뒷전에 돌려놓고 자기들끼리 대를 쌓자고 했습니다. 또 다시는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에 두고 다시 홍수가 나도 우리가 침몰되지 않게 꼭대기까지 대를 쌓자, 우리 이름을 내자고 단결을 했습니다.
온 땅 사람들이 모여서 지면에 흩어지지 말고 같이 살자고 일치단결 했습니다. 또 일치단결해서 그 대와 탑을 높이 쌓았는데 공사가 착착 진행이 되었습니다. 온 백성이 다 모여서 그것을 쌓는데 얼마나 진행이 잘 되겠습니까? 탑이 자꾸 올라갑니다. 하나님을 뒷전에 놓고 쌓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긴 섬겼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도 물론 노아의 자손이니까 하나님을 섬겼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을 섬기지만 하나님을 주인과 주권자로 모시지 않고,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자기들끼리 탑을 쌓으려고 하려는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멸망 시키지 않겠다고 무지개를 두고 계약을 했는데도 그 계약은 뒷전에돌려놓고 믿지 않고, 다시 홍수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가 쌓아서 홍수를 면하자, 또 우리 이름을 내자, 이 탑을 높이 쌓아놓으면 후대에도 우리 이름이 얼마나 나겠느냐, 또 우리가 이 땅에서 흩어짐을 면하자, 그냥 있으면 흩어지겠는데 대를 쌓고 있으면 흩어지지 않지 않겠는가, 그래서 대를 높이 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섭섭한 것은 하나님을 뒷전에 돌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것, 또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생명이 되지 못한 것, 말씀을 뒤에다 세워놓고, 뒷전에 돌려놓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하나님이 안 계시고 말씀이 없습니다. 자기들끼리 단결하고, 자기들끼리 견고히 하고, 자기들끼리 흩어지지 아니하고, 자기들끼리 후대에 전하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야 되겠는데 우리끼리 일해보자는 것이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일해보자 그래야지, 우리끼리 일해보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대로 일해보자라고 했어야 하는데, “우리끼리 일해보자”고 한 것이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뭐 해보자는 생각을 다 버려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이용당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대로, 하나님만 위하고, 하나님의 주장을 받고, 하나님께 이용을 당하고, 하나님의 명령만 순종하고, 그 뜻만 이루어드리면 인간의 공로 하나도 없어도 괜찮습니다. 흩어지지 않게 해주시면 흩어지지 않을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흩어지게 해주시면 흩어질 것이므로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자기네끼리 흩어지지 않아야 되겠다, 이런 결심한 것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만 생각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본 바벨탑

바벨탑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고 인간의 단결로 살려고 한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로 살지 않고, 자기들의 힘과 사업으로 보호를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보호로 살지 않고, 자기들의 세력 확장으로 살려고 한 것입니다. 자기들의 힘과 세력 확장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넷째는 자기들의 이름과 명예 영광을 나타내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벨탑입니다. 그러므로 바벨탑은 인본주의입니다.
또 진리보다 통일 단결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또 명예영광주의입니다. 인간이 하늘에까지 높아지려는 주의입니다. 이것이 바벨탑입니다.
바벨탑은 창세기 11장에서부터 시작이 되어서, 바벨론 나라의 느부갓네살 왕에게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 4:30절에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우리가 건설하자’와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나의 도성을 삼고”라는 것은 '내 것이다’라는 것인데, ‘우리 것이 커져야 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다음에는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라는 말은 '우리의 이름을 내자’와 같은 것으로 자기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제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을 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것, 인간의 것으로 삼는 것, 인간이 무엇인가를 잘해서 하나님을 떠나서 잘 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베드로전서 5:13절에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벨론은 로마를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베드로전서를 기록했는데, 로마를 바벨론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바벨론과 같습니다. 다니엘 때 바벨론은 세계의 주권 국가로 메대바사 전에 있는 나라입니다. 세계를 통일하고 세계를 주장하는 주권국가가 바벨론입니다. 베드로 때에는 로마가 세계 주권국가였기 때문에그 나라가 바벨론인 것입니다.

말세의 바벨탑

또한 요한계시록 18:3-8절에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말세의 바벨론입니다. 말세의 바벨론은 인본주의 세상 나라를 가리킵니다. 이 세상 나라가 다 바벨론입니다. 인본주의로 높아져서 하늘에까지 닿으려고 하는 이 세상 나라들, 하나님으로 살지 아니하고 자력으로 건설하고 자력으로 무엇을 다 하여 살려고 하는 이 인본주의의 세상들, 하늘에까지 높아지려고 하는 이 세상 사람들,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자기들의 힘과 세력을 확장해서 살고 하나님의 보호로 살지 않고 자기들의 사업으로 살려고 하는 이 세상 나라들, 그것이 바벨론인 것입니다. 정치적 바벨론, 종교적 바벨론, 문화적 바벨론이 있습니다. 말세는 바벨론 세대입니다. 정치적 바벨론과 국가적 바벨론은 하나님을 떠나서 ‘국가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세력과 자기들의 건설과 자기들의 힘으로 살려고 하고, 점점 높아져서 하늘에까지 그 세력을 확장시키려고 하는 나라들이 바벨론입니다. 문화적 바벨론, 과학적 바벨론도 있습니다. 이제 인공위성 같은 것을 발사하여 달나라도 가고 별나라도 가는 과학 만능을 부르짖고, 하나님보다 과학을 더 크게 생각하고 하나님 없이 과학으로만 살려고 하는 과학의 바벨탑을 오늘날 쌓고 있습니다. 소련에서는 인공위성을 타고 가면서 아무리 천당이 있나 하고 쳐다봐도 천당이 없다고 발표했답니다. 인공위성을 타고 공중에 올라가면 그것이 다 인줄 알고, 그 이상은 없는 줄 알고,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간 것입니다. 그것이 과학의 바벨탑입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자기를 더 영화롭게 하고, 자기를 더 높이려고 하는데, 이것이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또한 종교적 바벨탑이 있는데, 종교적 바벨탑을 쌓는 것은 진리보다 각 종교간의 단결을 위주로 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떠나서 단결, 세력 확장, 세력과시, 명예 영광주의로 나가는 것이 종교적 바벨탑입니다. 진리로 하나 되고 진리를 세워나가고 진리를 높이고 진리를 믿음으로 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중히 여기기보다는 종교적 단합을 위주로 합니다. 그래서 여러 교파와 종교들이 연합운동을 하는에큐메니컬운동인 WCC 같은 것은 종교적 바벨탑입니다. 아무리 그 세력이 크고 하늘에 닿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종교적 바벨탑입니다.
진리를 세워나가지 않고 세력만 크게 만들려하고 숫자만 많게 하려 하는 바벨탑입니다. 교단도 진리를 세워나가지 아니하고 교단만 크게 만들려고 하면 그것이 무엇이 됩니까? 교단 바벨탑이 됩니다. 교단은 진리를 세워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데, 진리는 세워나가지 않고, 인간의 단결과 교세확장을 위주로 교단을 크게 만들려고 하면 교단적 바벨탑이 됩니다.
에큐메니컬은 에큐메니컬대로 바벨탑을 쌓아서, 진리를 양보하고 여러교파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신신학까지 하나가 되고,. 보수는 겉으로는 보수를 내세우지만 실제 WCC에 들어가서는 진리보다는 자기들의 세력 확장에 더욱 힘을 씁니다. 종교적 바벨탑이 높아지는 지금, 기독교 100주년 기념을 한다면서 바벨탑을 또 쌓고 있습니다.
기독교 100주년을 기념한다고 바벨탑을 쌓는데 신신학과 신비주의자들이 연합해서 100주년 기념행사를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100주년 행사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그 속에 진리가 없습니다. 신비주의도 용납하고 온갖 인본주의를 다 쓰며 진리를 떠나서 교단만 확장하려고 합니다. 교회를 크게 하려고 하는 바람에 진리 세우는 것이 무너졌습니다. 목적이 크게 만드는 것이니까, 잘못된 것을 다스리면 커질 수가 없으니 진리를 세워 나가지 못합니다.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려면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무조건 다 갖다가 넣어서 교파 하나 크게 만듭니다. 이것이 교파 바벨탑입니다. 진리를 세우기보다는 교회 확장시키는 데만 중점을 두었단 말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교인들은 몇 백 명밖에 안 되는 데, 예배당은 몇 천 명 들어가는 것 지어놨습니다. 그리고는 교회에 교인수를 채우는 것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채우려니까 보통해서는 안되겠으니까 신비주의로 나갔습니다. 이 교회는 보수 교회입니다. 또 어떤 교회는 예배당을 다른 데로 옮겨 갔는데, 옮겨가기 전에는 교인이 얼마 없었습니다. 불과 몇 백 명밖에 안 되는 교회였는데, 옮기면서 굉장히 크게 지어놨습니다 세계 최고로 하려고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교회에서는 이전에 있던 목사는 내보내고, 이제 신비주의 목사를 데려왔습니다. 장로교도 아니고, 순복음교회도 아니고, 다른 교파인데 그 교회가 지금 굉장히 큰 교회가 된 모양입니다. 큰 교회 됐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교회는 신비주의 다 된 것 아닙니까? 교인 많이 모이는 것을 위주로 하고, 예배당 잘 짓는 것을 위주로 하고, 교회 난방장치 잘 하는 것으로, 세계 제일 잘하는 것을 위주로 하니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습니까?이것이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진리가 없는데 인간의 힘과 단결로 외적으로만 커지고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종교적 바벨론입니다.
교회에서도 집사를 세우는데 표준 없이 집사를 세우고 장로를 세우는데 표준 없이 장로를 세우게 되면 바벨론이 됩니다. 그것이 바벨탑이 됩니다. 어떤 집사를 세우면 바벨탑이 됩니까? 주일날 안 지키고 술 먹고 담배 피는 사람을 집사로 세우면 그 교회는 바벨탑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집사가 술을 먹고 담배 먹고 주일날 안 지키면, 그 교회가 어떻게 진리를 세우겠냐는 말입니다. 교인들 보고 “주일날 지켜라” 하면 교인들은“ 집사도 안 지킨다, 장로도 안 지킨다”고 합니다,
또 술 먹지 말고 담배 피지 말라고 하면 “집사는 왜 피냐? 술 먹는 집사 잘만 세워놓는다”고 합니다. 직분을 잘못 세워놓으면 진리 세워 놓는 일은 다 틀려집니다. 그러나 이제 진리 세우는 것은 그만두고 사람 많이 모으고 돈 많이 내게 만들어서 교회 크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주일을 가끔 빼먹고 또 술 먹고 담배 피는 사람을 집사로 세워놓으면 그런 사람은 돈은 또 잘 냅니다. 돈은 잘 내고 열심이 있단 말입니다. 그런 사람 직분 세워놓으면 교인은 많이 모을 수 있고, 또 돈 잘 내서 예배당도 크게 짓고, 사람 많이 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틀어집니까? 진리 세우는 것이 틀어집니다. 진리를 어떻게 세우겠느냐 말입니다. 주일날 지키라고 아무리 해도 직분자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다른 교회로 갈까봐, 사람 하나 붙잡으려고 집사로 세웠기 때문에, 결국엔 사람 붙잡으려다가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 진리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람 붙잡으려다가 진리 잃어버리고, 하나님 모시는 것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진리 세우는 것이 다 틀어지고 진리를 다 내버리면, 사람 많이 모이고 단결하는 바벨탑이 됩니다. 바벨론이란 말 입니다.한 마디로 말하자면 잘 살려고 하나님을 섬깁니다. 섬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인본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적 바벨탑입니다. 그러니까 집사 세울 때 주일 빠지는 사람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날 빠지는 사람은 집사 되었으니까 빠지려면 사표 내고 빠져야 합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바벨탑이 되어야겠습니까, 목사가 술 먹고 담배 먹고 주일 안 지키는 사람 집사 내면 그 목사는 바벨탑 쌓는 목사입니다. 그 목사는 교회 일 하는 것이 아니고 진리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바벨탑 쌓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 다 잃어버렸는데 일하면 뭐합니까? 그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종교적 바벨탑을 쌓았는데 말입니다.

이제 말세에는 바벨탑을 쌓는 시대입니다. 말세에 바벨탑을 쌓는다고 했는데, 바벨탑은 옛날 창세기 때에도 쌓았고 또 언제 쌓다고 했습니까? 다니엘 때입니다. 다니엘 4장에 느부갓네살 왕 때의 바벨론 나라가 인본주의의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다. 또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때는 어느 나라입니까? 베드로가 어디 있는 성도가 문안한다고 했습니까? 바벨론에 있는 성도가 문안한다고 했죠? 그 로마에 있는 성도가 바벨론에 있는 성도입니다. 이제 말세에 가서도 바벨론이 나오고 바벨탑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말세의 바벨론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말세에는 몇 가지 바벨론이 있다고 했습니까? 몇 가지 바벨탑 쌓는다고 했습니까? 이 세상 국가적 바벨론이 있습니다. 인본주의 국가의 인본주의와 국가적 단결이 바벨론입니다. 또 문화적 바벨론과 과학적 바벨론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문화가 향상되고 과학이 발전되어서 세력이 하늘에까지 들이닿고 그 힘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치하고 향락하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말세의 문화적 바벨론입니다. 그 다음엔 무슨 바벨론이 있다고 했습니까? 종교적 바벨탑, 바벨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바벨론이라는 것은 진리보다 인간의 단합을 앞세우고 인간의 힘으로 크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말세의 교회들이 진리를 세우는 것은 등한히 여겨서 둘째, 셋째로 하고 첫째가 외적으로 커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씁니다. 먼저 교인 많이 모으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교회는 커질 수 있지만 진리를 세워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비주의나 인본주의나 온갖 방법들이 다 들어와서 교회는 커졌지만 진리가 없어집니다.

뭐가 바벨탑입니까?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이용당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지 아니하고 인간들을 위해서 인간의 힘으로 하겠다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우리 힘으로 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바벨탑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께 이용당해서 하겠다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끼리 모여서 하겠다, 단결을 위해서 한번 높이 쌓아보자 하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하면 바벨탑 쌓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고 사람끼리 해보자는 것은 바벨탑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말씀의 주장을 받지 않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놓으셨기 때문에 하늘에까지 높아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말씀을 잊고, 인간의 지혜와 힘으로 앞으로 올 환난을 면할 것이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겠다고 하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또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고 노력하자는 것도 바벨탑입니다. 하나님께서 흩어지게 하시면 흩어지는 것입니다. 흩어지게 하셨어도 하나님 공경하고 말씀을 순종하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언약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께서 하시는대로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하려는 것은 바벨탑이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순종하자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심판

본문 5절에,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쌓아 올라가는데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안 계시면 자기네끼리 잘 하지만 하나님께서 계신데, 또 하나님께서 주인이신데 그 하나님 뒷전에 돌려놓고 자기네끼리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가만 보시니까 바벨탑을 자꾸 쌓아 올라간단 말입니다. 그 바벨탑을 쌓으면 하나님께 손해입니다. 무엇이 손해가 납니까? 바벨탑이 점점 성공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못 들어갑니다. 바벨탑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인본주의로 쌓는 것이니까, 그들이 세력이 점점 강해지는 만큼, 그들이 점점 교만해지고 하나님 없이 살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 떠나고 하나님 없이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종교적 바벨탑도 하나님의 진리보다는 자기의 세력 확장을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주로 해서 커지면 진리는 세워나갈 수 없습니다. 진리는 아예 세우지 못하도록 단체를 크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진리를 말해도 되질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깨뜨려야 진리를 세워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깨뜨리셨습니까?

언어를 혼잡케 하심

본문 6-9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시면 이 무리가 하나요, 언어도 하나이니까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고, 결국 탑 쌓는 일이 성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에,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내려간다는 건 누구십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의논하셨습니다.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해서 그들의 성 쌓는 것을 못하게 하자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인데, 또 하나님의 약속은 홍수로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도 다 버리고 인간끼리 단결, 단합, 인간적 사업, 이렇게 자기들 이름을 내고, 또 인생들의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가만히 두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못하게 하시면 못합니다. 아무리 사람의 생각으로는 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됩니다. 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이제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돌 가지고 오라면 나무 가져오고, 불 가져오라고 하면 물 가져오고, 물 가져오라고 하면 불 가져오고, 오라면 가고, 가라면 오니까 바벨탑을 쌓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쌓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바벨탑을 쌓으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안 두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준행해야 됩니다. 자기네 공로, 자기네 이름 내자, 또 흩어짐을 면하자 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흩으시면 흩어지는 것이지, 흩어짐을 면하자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여 살게 하시면 모여 살고, 하나님께서 흩으시면 흩어질 수밖에 없다 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바벨탑을 쌓으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게 만들어 놓습니다. 언어가 혼잡해지니 의사소통이 안 되고 대화가 안됩니다. 이제 바벨탑 쌓을 수 있습니까? 쌓을 수 없습니다. 쌓을 수 없으니까 이제 어떻게 합니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말이 안 통합니다. 가져오라는데 가져 갔습니다, 세우라는데 헐어놨습니다. 지금, 어떡합니까? 누구 하나 말할 데가 없습니다, 반대만 자꾸 나옵니다.” 하고 하나님께 달려 붙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벨탑 쌓는 일이 잘 되면 하나님께 달라붙지 않습니다.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어 마음이 딱딱 맞고, 손이 딱딱 맞아나가고, 착착 일이 돼나가면, 잘 될 것 같으니까 기도하지 않습니다. 쌓는 것이 너무 재미가 있습니다. 돌을 쌓고 또 쌓아서 자꾸 쌓아 올라가니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그러면 기도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게 해서 일을 못하게 만들어놨습니다. 그러니까 바벨탑 쌓던 것을 중지하고, 이젠 하나님께만 달라붙게 됩니다. “말씀만 따라가야 되겠다. 하나님만 따라가야지 별 수가 없다. 이젠. 다 쓸 데 없다. 하려고 해도 못하겠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서 하나님께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으면 의견이 맞지 않게 됩니다. 의견이 맞지 아니하고 서로 충돌이 될 때에 반대방향으로 자꾸 생각하고 의사소통이 안 될 때에는 내가 바벨탑 쌓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인본주의로 나가지 않았나, 내가 인간의 힘으로 뭘 잘해보고, 뭘 좀 크게 만들어보려는 것이 없었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바벨탑 쌓던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이제 마지막엔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대로 바로 해나가는데도 반대가 나오고 또 의견 충돌이 있으면, 진리의 말씀대로 굳게 서서 그 진리의 말씀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끝까지 세워나가야지 마귀가 반대한다고 그만하겠습니까? 말씀대로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는데 반대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이니 굳게 서서 말씀대로 끝까지 생명 내놓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잘해보려고 크게 해보려고 돈을 많이 모아 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잘해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잘해보려고 하는 것이 바벨탑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지키면서 커나가는 것은 괜찮습니다. 말씀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삼으면서 커나가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일주의로 삼지 아니하고, 말씀을 지키는 것을 첫째로 하지 않고, 커나가는 것은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벨탑 쌓는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섬기는 것을 제일주의로 하고 또 말씀을 세워나가면서 커지고 확장되고 견고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커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진리의 세계가 커지고 진리의 등대가 높아지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진리는 등한히 여기고 인본주의로 커지는 것이냐?’를 우리가 분별해서 알아야 되겠습니다. 바벨탑 쌓으면서도 바벨탑인지도 모르고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셨는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만 자꾸 잘못했다고 싸우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쌓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말세는 모든 것이 다 바벨탑과 같이 되었는데, 바벨탑을 심판하시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십니다. 바벨탑이 높아짐에 따라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임박한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모든 세계가 국가적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또한 인공위성, 원자무기인 핵폭탄을 만들면서 과학적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문화적 바벨탑, 국가적 바벨탑, 종교적 바벨탑, 과학적 바벨탑 등, 진리보다는 단합을 위주로 하는 것과 세력 확장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세에 살고 있는데, 바벨탑을 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직 진리만 세워나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첫째이고 진리만 커지는 것은 괜찮습니다.
요한계시록 18:7절에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 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주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코 애통히 여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시간 동안에 멸망을 시키셨다고 했습니다. 일시에 멸망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루 동안에 멸망을 시키시고 한 시간에 멸망을 시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백성은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요한계시록18:4절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내 백성은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하셨단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바벨론 같은 세상에서 바벨탑을 쌓는 것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받을 재앙 들을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바벨론에서 바벨탑을 같이 쌓으면서 있으면 안 됩니다. 바벨론에 같이 있으면 바벨론 멸망할 때 같이 멸망합니다. 이제 바벨론은 조금 있으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바벨론을 심판하실 것인데 거기서 나오지 않으면 심판받으니 나와야 됩니다. 그 바벨론에 있어서는 신앙을 못 지킬 것이니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인본주의로 하던 모든 일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고 믿음에 서서 하나님으로 사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으로 사는 그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줄을 알고 늘 하나님께로 나가서 말씀으로 자신을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재림을 고대하면서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가되어야 되겠습니다.

3. 셈의 후예

본문 10-26절에 “셈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셈은 일백 세 곧 홍수 후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았고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셀라는 삼십 세에 에벨을 낳았고 에벨을 낳은 후에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벨은 삼십사 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삼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스룩은 삼십 세에 나홀을 낳았고 나홀을 낳은 후에 이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일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셈의 후예를 기록함에 있어서 본장에서는 특히 아브라함의 조상들을 기록하였습니다. 10:21-30절에 있는 셈의 족보와 다른 점은, 벨렉까지는 같으나 10장에서는 벨렉의 아우 욕단의 후예를 기록했고, 11장에서는 벨렉의 후예를 기록하여 아브라함까지 기록한 셈입니다. 그러므로 본 장에 셈의 족보는 신앙 계통의 족보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며 셈의 후손입니다. 이것은 노아가 셈의 하나님이라고 예언한 대로 된 것입니다. 노아 홍수 후에, 사람들의 수명이 현저하게 짧아졌습니다. 특히 벨렉 이후에는 사람의 수명이 더욱 짧아 졌습니다. 또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뉘어지고 족속들이 흩어졌습니다(창10:25). 이렇게 홍수 후에 수명이 짧아 진 것은 홍수 후에 죄악이 세상에 많아졌기 때문이요, 그때부터 육식을 한 데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4. 데라의 후예

본문 27-32절에 “데라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더라 아브람과 나홀이 장가들었으니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래며 나홀의 아내 이름은 밀가니 하란의 딸이요 하란은 밀가의 아비며 또 이스가의 아비더라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데라의 아들과 손자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아브람은 데라의 맏아들이며, 롯은 아브람의 아우, 하란의 아들입니다. 하란은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그 자부 사래와 그 손자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입니다. 가던 중에 하란에 거할 때에, 데라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데라는 본래 우상을 섬겼으나(수24:2-3), 가나안 땅에 가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명령한 그 말씀(창12:1)을 따라 가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데라는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도중에 하란에서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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