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9:24-27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1.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면 저주받음
본문 9:24-27절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노아가 함이 자기에게 한 것 알고 가나안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을 창대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교역자와 같은데 이렇게 교역자의 실수를 비방하는 사람은 저주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원리 원칙대로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함이 부친의 실수를 그대로 이야기함으로서 ‘가나안’이 저주 받았습니다. 그 결과 미국 대통령 링컨이 노예 해방을 해서 흑인들이 자유를 찾아서 매매는 안 하게 되었지만 흑인들이 지금도 종살이합니다. 남의 집 가서 일 해주는 것이 종살이 아닙니까? 자유는 얻었지만, 또 매매는 안 하지만 흑인들이 사회의 지도자가 별로 없습니다. 혹시 있어도 세워놓기만 했지 백인들이 다 정치하는 것입니다. 흑인들이 사는 아프리카는 정치는 유럽 열강 주도의 16세기 노예무역과 19세기 제국주의적 식민 통치, 그리고 1960년대 대거 독립 이후 경제·정치·문화상의 신식민주의적 행태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대부분 백인들에게 종속이 되어있습니다.
흑인을 목사님 내는 것은 어떻습니까? 흑인 목사 괜찮습니다. 흑인목사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이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많은 흑인 목사들이 해방 신학에 기울어져서 문제입니다. 정치적 억압에서 해방하자, 경제 억압에서 해방하자는 것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정당하게 성경만 가르치면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종이나 마찬가지 다 해방되기 때문에 성경만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대로 바로 되면 인종에 상관없이 잘 되지만 성경에 바로 서지 못하면 저주받는 길에 들어가서 저주를 받습니다. 결과는 한 10년만 지나면 누구나 다 알게 나타납니다.
2.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라
그 반면에 도와주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냉수 한 그릇이라도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하는 데 도와주는 사람은 반드시 복 받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도와주십시다.
우리가 고려파에서 나왔는데 서로 맞지 않아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예배당 소송하는 것을 반대했고 그들은 소송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나왔습니다. 나왔어도 우리는 그 사람들이 잘 되기를 원합니다.
또 박윤선 목사님을 내가 상당히 존경하고 또 늘 찾아가서 대접도 했고, 선물도 가지고 가곤 했습니다. 거기서는 나왔지만 내 스승님입니다. 내 스승님이기 때문에 늘 갈 때마다 뭘 사다드리기도 하고 늘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환갑이 다 된 내가 양심에 가책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지금도 가책이 됩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주석을 내는데 돈이 모자란다고 찾아왔습니다. 내가 명륜 교회에 있을 때입니다.
그때 어떻게 하든지 돈이 없어도 빚이라도 얻어다가 몇 백만 원 드렸으면 내가 가책이 없겠는데 그때 하나도 못 드렸습니다. 그것이 요새도 가책이 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병규 목사한테 가면 도움을 받을 것이다’하고 왔을 것인데 얼마나 섭섭했겠는가 말입니다. 난 그때 그 분의 섭섭한 심정도 모르고 없다고 하고 만 것입니다. 또 사실 돈도 없었습니다. 없어서 없다고 했습니다. 비록 나는 없었어도 그때 교인이 수백 명 되는데 그 몇 백만 원 못 돌리겠습니까? 내가 그때 왜 도와주지 못했을까? 지금도 그것이 가책이 됩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선을 행해야 됩니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우리 교단에 있든 교단에 안 있든지 서로 구원 운동을 도와주십시오. 구원 운동을 하는 사람을 도와줘야 됩니다. 또 우리 교단 아닌 사람도 구원 운동을 도와줘야 합니다. 문교부 차관이 무인가 신학교 하는 책임자들을 다 모이라고 한 때가 있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도 갔는데 박윤선 목사님이 일흔 두 살 때입니다. 나도 가고 정규오 목사도 오고 나운봉 씨도 왔습니다. 그 문교부 차관 한 사람을 만나려고 수십 명 모였습니다. 그리고 각기 자기 신학교 인가를 내줘야 된다고 얘기들을 했습니다. 나는 우리 신학교에 대해서는 하나도 말 안 하고 박윤선 목사님 신학교에 대해서 얘길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는 세계적인 학자다. 세계적인 학자인 박윤선 목사의 신학교를 인가 안 해주는 것이 말이 되느냐? 차관님이 몰라서 그렇지 박윤선 목사는 외국에 나가면 굉장한 분이다. 그러니 내줘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미련하기 짝이 없지 않습니까? 자기 신학교를 인가 내달라고 하지 왜 박윤선 목사님 인가 내주어야 한다고 자꾸 말하느냐 말입니다. 그러니까 박윤선 목사님이 너무 기뻐하시고 헤어질 때, “이 목사 하는 신학이 옳은 신학인 줄 안다,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그날 제일 기뻐했습니다.
도와준 이유는 나의 선생님이시니까 내가 그 밑에서 나왔지만 도와주려는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께 내가 자주 갈 때 선물 전해주고 그랬는데 내가 제일 양심에 가책되는 것은 주석할 때 돈 모자란다고 도와 달라고 할 때 못 도와준 것입니다. 이제라도 박윤선 목사 살아 계시면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세상 다 떠났습니다. 세상 살았을 때 효도해야지 세상 떠나면 못 합니다. 부모님께도 그렇습니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지, 죽은 다음에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또 박윤선 목사님을 내가 상당히 존경하고 또 늘 찾아가서 대접도 했고, 선물도 가지고 가곤 했습니다. 거기서는 나왔지만 내 스승님입니다. 내 스승님이기 때문에 늘 갈 때마다 뭘 사다드리기도 하고 늘 존경했습니다. 하지만 환갑이 다 된 내가 양심에 가책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지금도 가책이 됩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주석을 내는데 돈이 모자란다고 찾아왔습니다. 내가 명륜 교회에 있을 때입니다.
그때 어떻게 하든지 돈이 없어도 빚이라도 얻어다가 몇 백만 원 드렸으면 내가 가책이 없겠는데 그때 하나도 못 드렸습니다. 그것이 요새도 가책이 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병규 목사한테 가면 도움을 받을 것이다’하고 왔을 것인데 얼마나 섭섭했겠는가 말입니다. 난 그때 그 분의 섭섭한 심정도 모르고 없다고 하고 만 것입니다. 또 사실 돈도 없었습니다. 없어서 없다고 했습니다. 비록 나는 없었어도 그때 교인이 수백 명 되는데 그 몇 백만 원 못 돌리겠습니까? 내가 그때 왜 도와주지 못했을까? 지금도 그것이 가책이 됩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선을 행해야 됩니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우리 교단에 있든 교단에 안 있든지 서로 구원 운동을 도와주십시오. 구원 운동을 하는 사람을 도와줘야 됩니다. 또 우리 교단 아닌 사람도 구원 운동을 도와줘야 합니다. 문교부 차관이 무인가 신학교 하는 책임자들을 다 모이라고 한 때가 있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도 갔는데 박윤선 목사님이 일흔 두 살 때입니다. 나도 가고 정규오 목사도 오고 나운봉 씨도 왔습니다. 그 문교부 차관 한 사람을 만나려고 수십 명 모였습니다. 그리고 각기 자기 신학교 인가를 내줘야 된다고 얘기들을 했습니다. 나는 우리 신학교에 대해서는 하나도 말 안 하고 박윤선 목사님 신학교에 대해서 얘길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는 세계적인 학자다. 세계적인 학자인 박윤선 목사의 신학교를 인가 안 해주는 것이 말이 되느냐? 차관님이 몰라서 그렇지 박윤선 목사는 외국에 나가면 굉장한 분이다. 그러니 내줘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미련하기 짝이 없지 않습니까? 자기 신학교를 인가 내달라고 하지 왜 박윤선 목사님 인가 내주어야 한다고 자꾸 말하느냐 말입니다. 그러니까 박윤선 목사님이 너무 기뻐하시고 헤어질 때, “이 목사 하는 신학이 옳은 신학인 줄 안다,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그날 제일 기뻐했습니다.
도와준 이유는 나의 선생님이시니까 내가 그 밑에서 나왔지만 도와주려는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께 내가 자주 갈 때 선물 전해주고 그랬는데 내가 제일 양심에 가책되는 것은 주석할 때 돈 모자란다고 도와 달라고 할 때 못 도와준 것입니다. 이제라도 박윤선 목사 살아 계시면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세상 다 떠났습니다. 세상 살았을 때 효도해야지 세상 떠나면 못 합니다. 부모님께도 그렇습니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지, 죽은 다음에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3. 신앙노선이 달라 갈라지더라도 화평을 유지해야 함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조금도 손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손해 주면 자기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옵니다. 나는 이런 원리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하다가 맞지 않으면 갈라지라는 것입니다. 서로 같이 있으면서 싸우면 피차간 손해납니다. 자기도 손해이고, 또 하나님의 복음 운동도 손해가 나고, 또 상대방도 손해가 납니다.
싸우게 되면 피차가 별의 별 소리 다 하게 됩니다. 별의 별 소리 다하면 “노아가 술 먹고 벌거벗어서 그랬다” 하는 이것만 말해도 그냥 싸우게 됩니다. 본래부터 그런 사람이라고, 그게 무슨 하나님의 종이냐, 벌거벗은 것도 이번만 했겠는가, 또 몇 번 했는지 모른다고, 이렇게 지어서 보태가지고 말하면 얼마나 하나님이 진노하시겠느냐는 말입니다. 싸우게 되면 별소리 다하게 되어 있습니다.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보태가지고 하게 되어 있습니다. 싸우지 말고 안 맞으면 갈라지는 것 입니다.
내가 나온 이유도 그것입니다. 이북에서도 이기선 목사님이 감옥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진리 운동을 할 때 따라다녔습니다. 따라다니다가 본 교회에서 서로 맞지 않은 것이 있어서 싸우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나왔습니다. 예배당 다 내놓고 나와 조그만 목사 사택으로 지은 곳에서 예배드렸습니다. 또 그 다음에 내가 시무한 갈산교회도 갈라져 나온 교회를 시무한 것입니다. 원 교회에서 서로가 안 맞았기 때문입니다.
여기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와서도 고려파에서 안 맞으니까 나왔고, 아현교회에서도 안 맞으니까 나왔습니다. 안 맞으면 혼자 나오더라도 싸우지 않으면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아현교회에서도 김현봉 목사님 세상 떠난 후로 싸움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얼마동안 싸웠습니다. 거기서 나는 ‘싸우지 말고 나오라, 싸우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또 평양 산정현 교회, 주기철 목사님이 세운 교회가 아주 큰 교회였습니다. 아주 잘 지은 교회였는데 거기서도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이기선 목사님 따라가는 파가 있고 또 반대하는 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대하는 파가 유명했던 모양입니다. 유기천 장로라고 서울대학 총장이던 분이었습니다. 그만큼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두 패가 싸우다가 이기선 목사님이 나오라고 해서 다 나왔습니다. 또 이기선 목사님도 신의주 교회에 있었는데, 거기서 또 반대파와 싸웠습니다. 이기선 목사님 또 나왔습니다. 싸우지 않고, 안 맞으면 갈라지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 때문에 싸웁니까? 싸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싫으면 나가면 되는 것이지 무엇 때문에 싸우느냐는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앞으로 절대 싸우지 마십시오. 싸울 바에는 갈라지십시오. 갈라져서 자기 믿음대로 서로 도와주면 됩니다. 내가 박윤선 목사님 도와주는 식으로, 또 박윤선 목사님이 내게 좋게 해주셨던 식으로 서로 좋게 해주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입니다. 갈라진다고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싸우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나간 사람들도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다 도와줍니다. 우리 교회에서 나간 최낙일 목사와 임석윤 목사도 지나간 8월 집회에도 오지 않았습니까? 내가 진정으로 사랑해서 또 그들에게 집회 때에 대표 기도도 시켰습니다. 여기 오면 대표기도 시키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 나간 사람들이 나를 좋게 선전합니다. “이병규 목사 잘한다”고 선전합니다. 한번은 나보고 교역자 복지회에 와서 설교 좀 해달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원로 목사님들이 많이 모인답니다. 그래서 가서 설교해줬습니다. 갈라져도 서로 좋게 하고 서로 도와주고 다른 사람에게도 좋게 소개해주니 얼마나 좋습니까? 내가 바보같이 박윤선 목사님 신학교 인가 내달라고 하면서 우리 신학교 얘기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은 복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복 받은 길입니다. 그 다음 해에 신학교 인가 많이 나왔습니다. 박윤선 목사 신학교가 인가 나왔고, 나운봉 씨는 용문산인데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럿이 나왔지만 우리는 아직도 못 나왔습니다. 못 나왔어도 얼마나 마음이 편안합니까?
그러니까 이 원리를 알고 이제는 서로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어도 말해서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나를 찾아와서 “이병규 목사, 이런 것은 잘못되었으니 좀 고치십시오,”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끼리끼리 모여서 뒤에서 ‘무엇이 잘못됐다’고 하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자기도 손해 보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저주하시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회개하고 돌이켜서 바로 세워나가십시오.
셈과 야벳 같이 진리 운동 세워 나가십시오. 나는 지금까지 언제든지 세워나가는 편에 섰습니다. 우리가 박윤선 목사님과 갈라졌지만 진리를 세워나가는 편에 언제나 섰습니다. 또 김현봉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을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님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구원 운동을 하고 계시는데, 왜 다른 소리 하느냐”고 했습니다. 잘못됐다고 하는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내가 직접 김현봉 목사님한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김현봉 목사님은 “그러한 일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 찾아가서 “없다는데 왜 그런 말 하느냐, 있어도 말 안 하는 것이 원리인데, 왜 없는 말 하느냐,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그 목사는 상계동에서 교회하다가 얼마 못하고 세상 떠나고 말았습니다. 진리 운동을 허무는 사람은 반드시 가다가 손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대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조금 지나면 다 압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부터는 비방하거나 무엇이 잘못됐다 고 성토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실이라도 말입니다. 잘못됐다고 말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본인들이 찾아와서 “이것이 잘못되었으니 고쳐야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좋습니다. 언제든지 좋습니다.
다른 신학원에 가지 말라는 문제를 가지고 요즘 또 성토가 많은 모양인데, 그러면 그 사람들한테 한번 물어봅시다. 우리 신학교 졸업한 사람들이 다 거기 가면 좋겠습니까? 좋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신학교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신학교 졸업한 사람이 다른 신학원에 간다면 우리 신학교가 세워져 나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계약 신학을 무엇하려고 하느냐는 말입니다. 계약 신학교를 세워 나갈 생각이 있으면서 다른 신학교에서 배우면 계약 신학교는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을 해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잘 살려나가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을 보고, 기도하고, 영권(靈權)으로 생명을 살려나가는 것입니다. 또 異見(이견)이 날 때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 문제 때문에 갈라졌습니다. 마가는 바나바를 데리고 가자,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돌아선 사람은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해서 갈라졌습니다. 서로 싸우는 것보다는 갈라지는 것이 낫습니다. 갈라졌다고 누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런데 싸우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밟힙니다. 또 한번 싸우려면 자기가 얼마나 격동이 됩니까? 손해도 많지 않습니까? 싸우고 와서 기도하려고 하면 기도가 됩니까? 또 다른 사람에게도 손해가 됩니다. 서로 긁어 부스럼 만들어서 확대해가지고 비방을 하게 되니 얼마나 손해가 납니까? 그래서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전부 손해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운동하시려는 것이 얼마나 손해가 날까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싸우지 말고, 차라리 갈라지라는 것입니다. 싸울 일이 생기면 처음에는 화평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서로 화평하려고 힘을 쓰다가 그래도 안 되면 갈라지는 것입니다. 갈라지는 것은 괜찮습니다.
우리 한국성경공회에 참여한 분들이 장로교단에 많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서한수 목사, 최낙윤 목사 등 여러 교회 교단 목사들을 아는데, 만나면 모두들 반갑고 참 기뻐합니다. 교단은 달라도 서로 다 반갑게 하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또 공감대를 가지고 성경공회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를 의논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싸우는 것은 분명히 마귀의 역사입니다. 또 자기도 손해를 많이 보고 상대방도 손해를 많이 주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진리운동에 막대한 손해가 옵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막대한 손해가 오면 그 벌을 누가 다 받겠습니까? 싸운 사람이 다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한성서공회에는 여덟 교단인가 아홉 교단이 가입되어 있는데, 다큰 교단들 입니다. 기장측, 통합측, 또 감리교, 이런 대 교단들이 여덟이나 아홉 교단이 있습니다. 숫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한국성경공회에는 154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데, 가입한 교단 가운데는 大(대) 교단도 몇 개 있습니다. 정규오 목사님 측의 교회가 2-3천 되고, 대한신학이 또 몇 천이 됩니다. 또 고려파가 여기 참여하려고 하는데 약 2-3천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성경공회에는 대 교단도 있지만, 대부분 小(소) 교단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여러 교단들이 한국성경공회에 참여하려고 하고 있는 상황인데, 박윤선 목사님이 세운, 합동신학 측은 유감스럽게도 성서공회로 갔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지금까지 진리를 잘 가르쳐 나왔는데 합동신학 측이 표준 새번역 성경을 번역한 성서공회로 간 것이 유감스럽습니다. 이렇게 앞으로는 어느 성경에 서느냐, 즉,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한 성경과 한국성경공회에서 번역한 성경 중, 어느 성경에 서느냐 하는 것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양쪽 즉 성서공회에서 몇 사람, 성경공회에서 몇 사람 모여 새로 성경을 번역하자는 주장입니다. 나는 안된다고 봅니다. 왜냐 하면 신학 사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학 사상에 따라서 번역이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성경이 어떻게 바르게 번역이 되겠습니까? 저기서 절반 취하고 여기서 절반 취한다는 것입니다. 신신학과 해방 신학 절반, 그 다음에는 보수 절반, 그러면 성경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건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이 제대로 하나가 되려면 성경에 능통하고 성령 충만하여 말씀에 바로 선 사람들이 나와서 성경 번역을 하면 됩니다. 이전에 천주교하고 신교하고 둘이 공동 번역한 것이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신교에서 몇 가지, 구교에서 몇 가지 서로 이렇게 섞어 놓은 것입니다. 구교에서 몇 가지 받아주고, 신교도 몇 가지 받아주고 그렇게 해서 성경 만든 것이 공동번역입니다. 그렇게 해야 공동이 되지 신교대로만 하면 어떻게 공동번역이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서공회에서 몇 가지 번역한 것 받아줘야 되고, 또 성경공회에서 몇 가지 번역한 것을 서로 받아줘서, 섞어서 만들어야만 공동 번역이 되겠는데, 그것은 성경이 벌써 잘못된 것입니다. 한 가지 잘못되어도 잘못되는 것인데, 뿌리가 다른 건데 어떻게 거기서 바른 성경이 나올 수가 있습니까? 가시나무에서 무화과 열매가 나올 수 있습니까? 무화과나무에서 포도가 날 수 있습니까? 자기 생긴 대로 나는 것이기 때문에 합해놓으면 여기 절반, 저기 절반하니까 생명이 없는 성경이 되고 맙니다. 신신학이 들어오기 전 같으면 되지만, 이미 성서공회 성경 번역에 신신학 사상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 사상이 들어 있는 사람들과 같이 번역을 하면 내내 그것입니다. 백 번을 해도 내내 그것입니다. 그래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 나간 사람들이 나를 좋게 선전합니다. “이병규 목사 잘한다”고 선전합니다. 한번은 나보고 교역자 복지회에 와서 설교 좀 해달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원로 목사님들이 많이 모인답니다. 그래서 가서 설교해줬습니다. 갈라져도 서로 좋게 하고 서로 도와주고 다른 사람에게도 좋게 소개해주니 얼마나 좋습니까? 내가 바보같이 박윤선 목사님 신학교 인가 내달라고 하면서 우리 신학교 얘기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은 복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복 받은 길입니다. 그 다음 해에 신학교 인가 많이 나왔습니다. 박윤선 목사 신학교가 인가 나왔고, 나운봉 씨는 용문산인데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럿이 나왔지만 우리는 아직도 못 나왔습니다. 못 나왔어도 얼마나 마음이 편안합니까?
그러니까 이 원리를 알고 이제는 서로 비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어도 말해서 무슨 유익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나를 찾아와서 “이병규 목사, 이런 것은 잘못되었으니 좀 고치십시오,”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끼리끼리 모여서 뒤에서 ‘무엇이 잘못됐다’고 하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자기도 손해 보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저주하시면 얼마나 비참합니까? 회개하고 돌이켜서 바로 세워나가십시오.
셈과 야벳 같이 진리 운동 세워 나가십시오. 나는 지금까지 언제든지 세워나가는 편에 섰습니다. 우리가 박윤선 목사님과 갈라졌지만 진리를 세워나가는 편에 언제나 섰습니다. 또 김현봉 목사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을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님 통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구원 운동을 하고 계시는데, 왜 다른 소리 하느냐”고 했습니다. 잘못됐다고 하는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내가 직접 김현봉 목사님한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김현봉 목사님은 “그러한 일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 찾아가서 “없다는데 왜 그런 말 하느냐, 있어도 말 안 하는 것이 원리인데, 왜 없는 말 하느냐,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그 목사는 상계동에서 교회하다가 얼마 못하고 세상 떠나고 말았습니다. 진리 운동을 허무는 사람은 반드시 가다가 손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대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조금 지나면 다 압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부터는 비방하거나 무엇이 잘못됐다 고 성토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실이라도 말입니다. 잘못됐다고 말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본인들이 찾아와서 “이것이 잘못되었으니 고쳐야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좋습니다. 언제든지 좋습니다.
다른 신학원에 가지 말라는 문제를 가지고 요즘 또 성토가 많은 모양인데, 그러면 그 사람들한테 한번 물어봅시다. 우리 신학교 졸업한 사람들이 다 거기 가면 좋겠습니까? 좋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신학교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신학교 졸업한 사람이 다른 신학원에 간다면 우리 신학교가 세워져 나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계약 신학을 무엇하려고 하느냐는 말입니다. 계약 신학교를 세워 나갈 생각이 있으면서 다른 신학교에서 배우면 계약 신학교는 어떻게 되겠는가 생각을 해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잘 살려나가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을 보고, 기도하고, 영권(靈權)으로 생명을 살려나가는 것입니다. 또 異見(이견)이 날 때 갈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 문제 때문에 갈라졌습니다. 마가는 바나바를 데리고 가자,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돌아선 사람은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해서 갈라졌습니다. 서로 싸우는 것보다는 갈라지는 것이 낫습니다. 갈라졌다고 누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런데 싸우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밟힙니다. 또 한번 싸우려면 자기가 얼마나 격동이 됩니까? 손해도 많지 않습니까? 싸우고 와서 기도하려고 하면 기도가 됩니까? 또 다른 사람에게도 손해가 됩니다. 서로 긁어 부스럼 만들어서 확대해가지고 비방을 하게 되니 얼마나 손해가 납니까? 그래서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전부 손해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운동하시려는 것이 얼마나 손해가 날까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절대 싸우지 말고, 차라리 갈라지라는 것입니다. 싸울 일이 생기면 처음에는 화평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서로 화평하려고 힘을 쓰다가 그래도 안 되면 갈라지는 것입니다. 갈라지는 것은 괜찮습니다.
우리 한국성경공회에 참여한 분들이 장로교단에 많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서한수 목사, 최낙윤 목사 등 여러 교회 교단 목사들을 아는데, 만나면 모두들 반갑고 참 기뻐합니다. 교단은 달라도 서로 다 반갑게 하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 또 공감대를 가지고 성경공회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를 의논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싸우는 것은 분명히 마귀의 역사입니다. 또 자기도 손해를 많이 보고 상대방도 손해를 많이 주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진리운동에 막대한 손해가 옵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막대한 손해가 오면 그 벌을 누가 다 받겠습니까? 싸운 사람이 다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한성서공회에는 여덟 교단인가 아홉 교단이 가입되어 있는데, 다큰 교단들 입니다. 기장측, 통합측, 또 감리교, 이런 대 교단들이 여덟이나 아홉 교단이 있습니다. 숫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한국성경공회에는 154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는데, 가입한 교단 가운데는 大(대) 교단도 몇 개 있습니다. 정규오 목사님 측의 교회가 2-3천 되고, 대한신학이 또 몇 천이 됩니다. 또 고려파가 여기 참여하려고 하는데 약 2-3천 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한국성경공회에는 대 교단도 있지만, 대부분 小(소) 교단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여러 교단들이 한국성경공회에 참여하려고 하고 있는 상황인데, 박윤선 목사님이 세운, 합동신학 측은 유감스럽게도 성서공회로 갔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이 지금까지 진리를 잘 가르쳐 나왔는데 합동신학 측이 표준 새번역 성경을 번역한 성서공회로 간 것이 유감스럽습니다. 이렇게 앞으로는 어느 성경에 서느냐, 즉,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한 성경과 한국성경공회에서 번역한 성경 중, 어느 성경에 서느냐 하는 것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양쪽 즉 성서공회에서 몇 사람, 성경공회에서 몇 사람 모여 새로 성경을 번역하자는 주장입니다. 나는 안된다고 봅니다. 왜냐 하면 신학 사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학 사상에 따라서 번역이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성경이 어떻게 바르게 번역이 되겠습니까? 저기서 절반 취하고 여기서 절반 취한다는 것입니다. 신신학과 해방 신학 절반, 그 다음에는 보수 절반, 그러면 성경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건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이 제대로 하나가 되려면 성경에 능통하고 성령 충만하여 말씀에 바로 선 사람들이 나와서 성경 번역을 하면 됩니다. 이전에 천주교하고 신교하고 둘이 공동 번역한 것이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신교에서 몇 가지, 구교에서 몇 가지 서로 이렇게 섞어 놓은 것입니다. 구교에서 몇 가지 받아주고, 신교도 몇 가지 받아주고 그렇게 해서 성경 만든 것이 공동번역입니다. 그렇게 해야 공동이 되지 신교대로만 하면 어떻게 공동번역이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서공회에서 몇 가지 번역한 것 받아줘야 되고, 또 성경공회에서 몇 가지 번역한 것을 서로 받아줘서, 섞어서 만들어야만 공동 번역이 되겠는데, 그것은 성경이 벌써 잘못된 것입니다. 한 가지 잘못되어도 잘못되는 것인데, 뿌리가 다른 건데 어떻게 거기서 바른 성경이 나올 수가 있습니까? 가시나무에서 무화과 열매가 나올 수 있습니까? 무화과나무에서 포도가 날 수 있습니까? 자기 생긴 대로 나는 것이기 때문에 합해놓으면 여기 절반, 저기 절반하니까 생명이 없는 성경이 되고 맙니다. 신신학이 들어오기 전 같으면 되지만, 이미 성서공회 성경 번역에 신신학 사상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 사상이 들어 있는 사람들과 같이 번역을 하면 내내 그것입니다. 백 번을 해도 내내 그것입니다. 그래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4. 구원운동에 도움이 된 자의 축복
본문 27절에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됩니다. 셈의 종도 되고, 야벳의 종도 되고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됩니다. 셈과 야벳은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신 대로 계속 셈의 하나님이시고, 야벳은 창성케 되었습니다. 말세까지 이렇게 됩니다. 이것을 보면 황인종이 하나님을 잘 섬긴 것이 분명합니다. 또 셈의 자손에서 예수님께서 나셨고 또 예루살렘에서부터 복음이 세계에 전파됐습니다. 이제 셈의 장막으로 다시 복음이 왔는데 이 복음이 이제는 세계적으로 전해져야 되겠습니다. 일본 내촌감삼이 이제 앞으로 세계적으로 선교할 나라는 한국이라고 그랬답니다. 내촌감삼 때에는 한국이 형편없지 않았습니까? 또 일본 속국으로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 성령을 주셨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를 지도한다고 했답니다. 그 분은 죽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예언이 맞았습니다. 한국을 통해서 세계 교회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우리만 모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복음을 전도할 사명이 있습니다.
선교사도 앞으로 많이 나가야 되겠습니다.
어제 우리 교단 상임위원회 선교부가 모여서 우즈베크 타슈켄트에 교회 하나 세우기로 했습니다. 최응규 목사님을 거기에 보내기로 했습니다. 최응규 목사는 지금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데 거기를 떠나서 타슈켄트에 가게 되었고 또 백순흡 목사는 블라디보스토크로 오게 했습니다. 타슈켄트에 우리 교회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씩 뚫고 들어가야 됩니다. 아무리 우리가 미약하지만 그래도 한 곳씩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곳을 뚫고 들어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 소련에 복음을 전도하라는 명령이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지난 70년 동안 굶어있던 곳인데, 열어놓으신 것은 굶주린 곳에 갖다 주라고 열어놓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늘 먹고 있는 사람에게만 주는 것보다는 굶어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생각합니다. 내가 백태영 목사 보고 얼마 전에도 얘기를 했습니다. “공산권에 전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다. 70년 동안 굶어있는 사람이 있고, 여긴 늘 먹어서 먹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디에다 주는 것이 하나님 뜻이냐? 논으로 말하면, 비 한 번 안 오고 빼빼 마른 논이 있고, 물 좀 들어가다가 한쪽 구석에 안 들어간 논이 있는데 이제 물을 주려면 어디에 주는 것이 하나님 뜻이겠는가? 빼빼 마른 데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70년 말라가지고 있던 데에 선교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구소련에 복음 전하라고 문 열어주셨는데 왜 열어주셨겠습니까? 앞으로 선교사 또 보낼 사람은 나서야 합니다. 이제 앞으로 이북에 문이 열리면 우리 교단에서도 선교사 한 백 명 쯤 들어가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남은 교회는 어떻게 합니까? 남은 교회는, 큰 말 나가면 작은 말 갖다가 세우면 되는 것이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북에 교회를 세우고 신학생이나 교역자들이 다 들어가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뒷감당은 어떻게 합니까? 예배당도 사야 되고 성경도 사야 하는데 그것을 다 어떻게 합니까? 그러므로 북한 선교의 문이 열리면 재산 절반씩 바칠 각오하 고 나가는 것입니다. 재산 절반씩 바치고 이북 선교하자고 여러 번 얘기하는데, 이 말 듣고 절반 내놓으려고 결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집 한 채 팔아서 절반 내기로, 두 채 있는 사람은 한 채 내기로, 또 저금통장 절반 또 내기로 하는 사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 같습니다.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는 말이 맞아 떨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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