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9:18-29
18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19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8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 오십 년을 지내었고 29향년이 구백 오십 세에 죽었더라
창세기 10:1-32
1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2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3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4야완의 아들은 에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일라 5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위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6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9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10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그가 그 따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 13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4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15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16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17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18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의 조상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처하였더라 19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20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이었더라 21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충생하였으니 22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23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24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25에벨은 두 아들은 낳고 하나의 이름은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6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27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8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9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30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 31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32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1. 노아의 술 취함과 세 아들의 행동
본문 9:18-19절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홍수로 모든 사람이 멸절하였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세 아들들로 말미암아 후손이 땅에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본문 20-22절에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고 하였습니다. 노아가 포도 농사를 해서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장막에서 벌거벗고 누워 잤습니다.
본문 22절에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노아가 술에 취해 누워있을 그때, 둘째 아들 함이 들어가서 보니까, 아버지가 벌거벗고 하체를 다 드러내고 드러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두 형제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본문 23절에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셈과 야벳이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 쳐서 들어간 이유는 아버지가 술 먹고 벌거벗고 다 드러내고 드러누워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안 보려고 얼굴을돌이키고 뒷걸음질 쳐서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 어깨에 메고 갔던 옷을 덮어주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잘못은 누구의 잘못인가 하면 아버지 노아의 잘못입니다. 왜 포도주를 취하도록까지 먹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술 취하면 제 정신이 없어지므로 술 취하지 말고 늘 깨어있어야 되겠는데, 술을 취하도록먹고 다 벌거벗고 다 차 내버리고 이렇게 드러내놓고 잤습니다. 그러므로 노아가 잘못했습니다. 그때 함이 아버지가 술 먹고 드러누워 자는 것을 보고 나가서 형과 동생한테 이야기했습니다. 거짓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대로 한 것입니다. 그러자 형과 동생이 어깨에 옷을 하나 메고 뒤로 들어가서 뒷걸음질쳐 보지 않고 덮어주고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술이 깬 후에 그것 다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세 아들들에게 그 행한대로 저주와 축복을 하였습니다.
2. 저주 받은 함
본문 24-25절에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가나안은 함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렇게 기도를 시키신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저주하는 기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가 벌거벗고 누워가지고 있던 것을 아들이 본 사실대로 말했는데, 자기 아들을 저주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성령의 감동을 시키셔서 그렇게 기도 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저주를 받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잘못한 것은 노아이고, 함은 그때 사실대로 나가서 본 대로 말했으니 양심 똑바로 쓴 것입니다. 양심 삐뚤게 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대로 하기는 하였으나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함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큰 손해가 나게 된 것입니다.
구원 운동에 손해가 나도록 하였기 때문임
그 당시에 구원운동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서 하시기 때문에 노아가 그 당시에 선지자입니다. 또 신앙의 선봉입니다. 노아를 통해서하나님께서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고, 또 노아를 통해서 방주로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서 쓰시던 시대라는 것입니다. 노아는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술을 많이 먹고 취해서 다 드러낸 것은 물론 잘못했지만, 함이 나와서 이것을 폭로시켰기 때문에 이제는 노아를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큰 손해가 왔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손해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소문이 퍼져 나가면 노아를 사용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많은 지장이 있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진노하시는가 하면, 구원운동에 손해 주는 것을 진노하십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구원운동에 손해주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구원운동을 도와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아말렉이 손해를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신다고 하였습니다
(출 17:16). 또한 잊지말고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라고 하였습니다(신 25:19). 그래서 400년 후에 사울 왕 때에 아말렉을 아예 멸종시키라고 하셨습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싹 다 잡아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기에 이들을 400년 후에까지 싹 다 잡아서 멸망시키라고 하셨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주는 자에게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저주하십니다. 자기 아들이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들이라도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이 바른 말이었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 큰 손해를 주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바른 말이라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말이라도 손해나는 말은 하지 말 것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바른 말만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바른 말을 하지 거짓말은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바른 말이라고 해도 손해가 막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른 말이라도 손해나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밤낮 일생 동안 바른 말하는데 결과는 오그랑 망탱이가 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에 표준이 있어야 되는데, 바른 말은 표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말이든 하기 전에, 그 말을 하면 결과적으로 구원운동에 손해가 되겠는지 유익이 되겠는지를 생각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바른 말이라고 다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구원운동에 손해가 되겠는지 유익이 되겠는지, 교역자를 도와주는 것인지 허무는 것인지, 그것도 모르고 그저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말을 막하면 안 됩니다.
잘못하고 망하는 사람이 더 많겠습니까, 잘하고 망하는 사람이 더 많겠습니까? 잘하는 사람만 씁니까? 잘못하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습니까? 때 안 묻은 사람이 필요합니까, 때 묻은 사람이 필요합니까?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때 안 묻은 사람을 써야 하지만, 어쩔 때는 때 묻은 사람을 써야 일이 될 때가 있습니다. 깨끗하기만 하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나 깨끗하기만 하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적응성이 있어야 됩니다. 깨끗하다고 턱턱 털고 돌아간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빛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좀 때가 묻었어도 실력이 있어야 됩니다. 실력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실수를 좀 여러 번 했어도 실력이 있으면 그 사람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쓰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밥을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좀 밥도 태워보고 죽도 써보고, 여러 번 실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수한 사람이 잘합니까? 실수한 사람이 잘합니다. 많은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보기에 몇 가지 잘했다고 해서 교만하면 망합니다. 99가지를 잘 했어도 한 가지 교만해서 돌아가면 망합니다. 99가지를 잘못했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한 가지를 하나님 앞에 바로 하면 그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때 묻은 사람이라야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면 아랫사람들을 모두 다 갈아 치우는 것이 아닙니다. 싹 다 갈아치우면 새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일 윗사람만 바꿉니다. 장관은 바꾸지만, 그 아랫사람들은 좀 시간이 지나야지 당장에 다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새 사람이 하면 잘 될 것 같아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강도 잡는 것은 대학교 갓 졸업한 사람들을 많이 데려다 놓는다고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고참들이 좀 잘못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많이 잡아본 사람이 척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체가 어디 있었는지, 머리카락이 어떻게 되어있었는지, 발자국 어떻게 났는지, 대문간 열어 놓았었는지, 영장은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어떻게 되겠는지 답이 척 나옵니다.
그러나 이제 갓 졸업한 사람은 ‘형법 몇 조에 의해서…’라고 할 뿐 실무 경험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고참들이 잘못이 있다고 다 내보내고 신진들만 데려다 놓으면 범인을 못 잡습니다. 고참들이 잘못한 것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고참을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몇 번 못 잡아보고는 안 되겠기에 다시 옛날 고참들 불러옵니다. 제대했던 사람들, 정년퇴직했던 사람들을 불러서 하면, 그때 잘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함이 자기를 바로 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서 구원운동하시는 데에 막대한 손해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주받아야 됩니다. 아들도 저주받습니다. 자자손손이 형제의 종들의 종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 준 사람에게는 절대로 축복을 해 주지 않습니다.
3. 축복받은 셈과 야벳
남의 허물은 모르는 것이 상책
그리고 맏아들과 셋째 아들은 보지 않겠다고 하고 엉덩이를 뒤로 해서 들어가 아버지를 가려주었습니다. 아버지의 허물을 가리기 위해 들어갈 때 뒷걸음질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했는가 하면, 그것을 보면 자연히 말하게 되어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허물을 안 보는 것이 상책입니다. 알 것만 알고 모를 것은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 다 아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그저 웬만한 것은 모르는 것이 약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하기 좋습니다.
세세히 다 알아서는 신앙생활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알게 되었다면 '도대체 아버지께서 왜 그러셨을까’ 하고 머리가 복잡해지게 마련입니다. 또 ‘아버지께서 훌륭하신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도 시험 받을 수 있고, 또 언젠가는 말하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말 안 할 것입니다. 말 안 하려고 했다가 언제 말할 수가 있는가 하면, 화가 나고 불만이 좀 있을 때, 그 때 말이 쑥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아버지한테 말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부인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 부인이 자기에게 잘못했다고 막 공격할 때, 자기 아버지는 안 그런 줄 아느냐고 하면서 왜 자기 보고만 그러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인이 있다가 아버지가 어떻게 하셨는지 물어볼 것이고, 그 말에 벌거벗고 드러누웠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몰랐던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몰랐다면 그 말 안 나왔을 것이고, 며느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되었을 텐데, 자기가 본 까닭에 그만 자기 아내까지 망하게만들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예 모르는 것이 상책입니다. 웬만한 것은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을 알아놓은 다음에는 누가 물어보면 대답을 안 하기도 입장이 곤란하니, 모르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래서 안 보고 뒤로 들어가서 가려주었습니다.
셈과 야벳이 받은 축복
셈과 야벳의 한 일에 대해 들은 아버지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본문 26-27절에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포도주에서 깨어 일어나서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셈은 노아의 맏아들인데, 노아가 기도하기를 “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장차 그리스도께서 셈을 통해 나실 것이라는 축복입니다. 셈의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십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은 맏아들인 셈의 자손입니다.
그 다음에 막내 아들인 야벳에 대해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셈의 자손에서 그리스도가 나오고, 그리스도는 유대 사람이므로 셈은 황인종의 조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야벳은 백인종의 조상으로, 함은 흑인종의 조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야벳이 셈의 장막에 거한다는 것은 후에 백인종이 황인종의 나라에까지 와서 산다는 것인데, 백인종들이 점점 창성해서 황인종의 나라까지 관할하고, 거느리고, 통치하고, 도와주고 산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셈의 장막에서 사는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세력이 미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곳에 주둔함을 말합니다. 요새 세계적으로 보면 백인들이 황인들의 나라에 와서 주둔하고 세력을 끼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대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나안이 셈의 종이라고 했는데, 또 야벳의 종도 된다고 했습니다. 가나안은 함의 아들입니다. 그가 셈과 야벳에게 종살이를 한다고 한 것을 보면, 그는 흑인종의 조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흑인들이 종으로 고생을 많이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 주었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막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저주가 내려와서 종의 종살이밖에는 안 된다고 한 것입니다.
구원 운동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될 것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앞으로 이 구원운동에 손해 주는 자가 절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닥쳐도 구원운동에 손해 주면 안됩니다. 당시의 노아와 같이 요즘의 구원운동을 해 나가는 교역자들에게 손해 주면 안 됩니다. 물론 교역자들도 잘못할 수 있습니다. 교역자라고 다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 종을 써서 일하시는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잘못이 있지만 그래도 그들을 이용하여 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 때 그 종의 잘못된 것을 자꾸 폭로시키고 말하고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그 종을 들어서 일하시는 데에 대해서 얼마나 손해를 주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손해를 주면 자기만 저주받는 것이 아니고 그 자손도 저주받습니다. 종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운동에 손해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합니다. 누가 망할 것인지 뻔히 다 알 수 있습니다. 구원운동에 손해 주고 돌아갈 때는 그 사람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망할 것은 정해놓은 것입니다. 절대로 구원운동에 손해 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복을 받으려면 구원운동에 유익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교역자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하신다면, 어떻게 하든지 그를 도와주고 그에게 허물이 있으면 가려주라는 것입니다. 누가 그에게 허물이 있다고 말해도, 자신에게 말하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은 알아도 좋은 것이 없고, 오히려 모르는 것이 약이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진리 문제가 아니고 성경을 잘못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이상에는, 어떻게 하든지 그 허물을 가려주고 말하지도 말고 도와주는 입장에 서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고, 또 그 사람이 창성해져서 여러 곳에 번식해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 받는 법입니다.
조금만 자기에게 잘못하면 불평, 불만, 원망하고, 자기의 욕심이 조금만 안 채워지면 물고 찢는 것, 그것은 망할 도(道)를 닦는 것입니다. 신학생은 졸업하게 되면 사람을 의지할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자립적으로 나가서 교회 세울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다 나가서 개척교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사람은 자력으로 나가서 하나님의 일을 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안 도와준다고 불평하는 소리는 관두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지 누가 해 주겠습니까? 안 도와준다는 생각을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본문 28-29절에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 오십 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구백 오십 세에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노아가 홍수 후에 350년을 더 살며 그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하나님을 섬기는 법과 하나님의 계약과 신앙에 대하여 많이 가르쳐 주고, 950세에 별세하였습니다.
4. 노아의 계보
야벳의 계보
본문 10:1-5절에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야완의 아들은 에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위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고 하였습니다.
홍수 후에 노아의 세 아들의 자손이 온 땅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야벳의 아들들은 창성하여 바닷게 살았으며, 야벳의 손자 때에 가서는 여러 방언과 나라가 나뉘어졌습니다. 노아의 셋째 아들 야벳의 족보를 먼저 기록한 것은 노아가 예언한 대로 야벳 자손이 제일 많이 창성하였기 때문인 듯합니다.
함의 계보
본문 6-20절에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따에서 앗구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의 조상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처하였더라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이었더라”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함의 계보입니다.
함의 조상 가운데서 앗수르가 나왔고 니느웨가 나왔고, 11절 보면 또 큰 성들이 나왔습니다. 창세기 10:11-12절에,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 (이는 큰 성이라)” 했습니다.
또 구스가 나왔습니다. 10:6절에,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은 넷째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은 누구입니까? 구스입니다. 둘째 아들은 미스라임이고 셋째 아들은 붓입니다. 넷째 아들은 가나안입니다. 넷째 아들이 아버지 앞장 서 다니면서 노아의 수치를 나가 선전한 모양입니다. 이 넷째 아들이 똑똑한 모양입니다. 똑똑한 사람이 이런 것 잘합니다. 넷째 아들이 제일 똑똑한 모양인데, 아버지 말 듣고 나와서 말을 전하다 저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함의 자손 가운데 영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창세기10:8-9절에,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소돔 고모라가 나왔습니다. 19절에,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서 소돔과 고모라까지라. 그러니까 소돔 고모라의죄악이 관영했다가 멸망했는데 이들도 함의 자손입니다.
함 족속은 무엇이나 잘했습니다. 사냥도 잘하고, 그 중에서 영걸도 나오고, 또 큰 성도 잘 쌓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해도 저주받은 백성입니다. 앗수르와 니느웨가 함의 자손이고, 소돔과 고모라의 땅을 소유한 자들이 함의 자손들입니다. 앗수르의 수도가 니느웨인데, 니느웨가 그 죄악으로 인해서 40일 만에 멸망한다고 요나가 공포했었던 곳입니다. 요나 때에 회개하였으나 결국에는 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롯의 때에 소돔과 고모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망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영걸이요, 또 성을 잘 쌓는 사람들이요, 사냥을 잘하기로 유명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또 구스가 나왔습니다. 10:6절에,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은 넷째 아들입니다. 첫째 아들은 누구입니까? 구스입니다. 둘째 아들은 미스라임이고 셋째 아들은 붓입니다. 넷째 아들은 가나안입니다. 넷째 아들이 아버지 앞장 서 다니면서 노아의 수치를 나가 선전한 모양입니다. 이 넷째 아들이 똑똑한 모양입니다. 똑똑한 사람이 이런 것 잘합니다. 넷째 아들이 제일 똑똑한 모양인데, 아버지 말 듣고 나와서 말을 전하다 저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함의 자손 가운데 영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창세기10:8-9절에,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소돔 고모라가 나왔습니다. 19절에,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의 지경은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서 소돔과 고모라까지라. 그러니까 소돔 고모라의죄악이 관영했다가 멸망했는데 이들도 함의 자손입니다.
함 족속은 무엇이나 잘했습니다. 사냥도 잘하고, 그 중에서 영걸도 나오고, 또 큰 성도 잘 쌓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해도 저주받은 백성입니다. 앗수르와 니느웨가 함의 자손이고, 소돔과 고모라의 땅을 소유한 자들이 함의 자손들입니다. 앗수르의 수도가 니느웨인데, 니느웨가 그 죄악으로 인해서 40일 만에 멸망한다고 요나가 공포했었던 곳입니다. 요나 때에 회개하였으나 결국에는 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롯의 때에 소돔과 고모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망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영걸이요, 또 성을 잘 쌓는 사람들이요, 사냥을 잘하기로 유명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손해를 주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셈의 계보
본문 21-31절에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 에벨은 두 아들은 낳고 하나의 이름은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욕단은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오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이들은 다 욕단의 아들이며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고 하였는데, 셈의 족속은 이렇게 많이 번성을 했습니다. 6대까지 기록하였습니다.
셈의 족속은 동편 산에 살았고, 세상이 나뉘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여러 족속으로 나뉘어졌고 동편 쪽으로 갔습니다. 30절에서 셈 족속이 동편 산에 살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동양으로 많이 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셈이 황인종인 동양 사람들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셈 자손은 동쪽으로 많이 가서 동양에서 살고, 또 자꾸 동쪽으로 가는성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몽고로 가고, 중국으로 가고, 또 몽고에서 한국으로 오고, 또 위쪽에는 만주를 거쳐서 캼차카 반도로 지나 바다를 건너서 알라스카로 갔을 것입니다. 알라스카에서 캐나다로 갔다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내려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미 대륙에까지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메리카 인디안은 다 황인종입니다. 몽고 족속들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메리카 대륙을 황인종에게 주셨는데, 그곳에 가서는 우상을 많이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빼앗아서 그 땅을 백인종에게 준 것 같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셈 족속에게 주신 것입니다. 세상이 나뉘었고 셈 족속이 많이 번성했습니다.
셈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협력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노아를 통하여 그를 축복하였습니다. 그 후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계통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셈의 10대 후손에는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이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 이삭과 그 손자 야곱이 나왔고 그 자손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노아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그들이 동편 산에 거하였으며 점점 동쪽으로 이주하여 동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시아인이 셈 족속입니다.
본문 31-32절에 “이들은 셈의 자손이라 그 족속과 방언과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족속과 방언과 나라가 나뉜 것은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다. 그래서 10장의 족보장은 11장의 바벨탑의 서론이기도 합니다.
5. 노아를 통해 구원운동이 이어져 나감
본문 32절에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노아 후손들로 땅의 열국 백성이 나왔습니다. 그들로부터 지금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을 이룬 것입니다. 노아 아들 때부터 피부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같은 아버지의 자손이라도 얼굴이 좀 흰 아들이 있고, 얼굴이 좀 누런 아들도 있고, 검은 아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 받는 법은 다만 구원운동을 도울 때 하나님 앞에 복 받는 것입니다.
신앙의 계통이 노아를 통해 이어져 내려감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서 신앙의 계통이 계속 이어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또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던 에녹의 계통이 노아로 내려왔습니다. 노아에게로 이 참된 진리와 생명의 구원운동이 내려왔습니다. 이것은 아벨의 계통입니다. 아벨이 죽어서 하나님께서 셋을 주셨고, 셋으로부터 몇 대에 걸쳐 내려오다가, 아담의 7대손 에녹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에녹을 통해 이어져 내려왔던 참된 신앙의 계통이 이제 노아로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매우 귀한 신앙의 계통이고, 말씀대로 믿는 신앙의 계통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아벨이 말씀대로 영적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그리스도와 교통하며 제사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런 제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입니다. 그것이 에녹에게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몇 대를 거쳐서 에녹에게로부터 노아에게로 내려간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가 다 부패하고 타락을 했지만, 그 참된 신앙계통은 하나님께서 이어가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든지 하나님께서 이어나가신 다는 것입니다. 끊어지지 않습니다. 흐르고 흘러서 자꾸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끊어지게 하시지 않습니다. 엘리야 때에는 그 신앙의 계통이 엘리야에게 있었고, 그것이 엘리사에게로 갔습니다. 이렇게 계속 흘러내려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계통에 돕는 자가 될 것
그런데 그 신앙의 참된 진리를 세워나가는 그 구원운동에 우리가 도와주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도와주는 것인가 하면 각자 일비지력(一臂之力)을 감당해나가는 것입니다. 일비지력으로 도와나가면서 이것을 세워나가는 자는 복 받고, 아무리 옳은 말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세워나가시는 진리 운동, 참된 생명운동에 손해 준다고 하면, 그 사람은 저주받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줄거리입니다.
신앙의 생명계통이 아주 중요한 진리를 세워나가는 줄거리인데, 이 참된 진리계통의 진리를 세워나가는 줄거리가 되려면, 여기에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일비지력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방주를 짓는 것도 이것 때문에 짓는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지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 살면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도움이 되다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일비지역이 무엇입니까? 한 팔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해나가시는 진리를 세워 나가고 생명을 살려나가는 일에 나도 한 팔의 역할을 하고 가자, 도와주다 가자는 것입니다. 교역자도 도와주고, 집사도 도와주고, 장로도 도와주고, 교인도 도와주고, 이 일에 다 도우며 나가다가 하늘나라에 가야 됩니다.
그리고 절대로 구원운동에 손해는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잘하고 다른 사람이 잘못 했어도, 교역자가 약간 실수가 있어도, 또 바른 말이라고 해도, 절대로 이 구원운동에 손해 주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그 사람은 저주받습니다. 자기만 저주받는 것이 아니라 자손도 종의 종이 됩니다. 알지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 앞에 저주받은 다음에는 세상에 되는 것이 없습니다. 얼굴이 시꺼멓게 됩니다. 속이 편안치 않고 괴로움만 가득한데 얼굴이 어떻게 환하겠느냐 것입니다. 얼굴이 컴컴하고, 이마에 내 천(川)자가 그려지고, 수심이 충만해집니다. 그러니 얼굴이 시꺼매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어디서든지 이 구원운동에 일비지력을 감당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비지력을 하다가 하늘나라에 가자”고 해야 합니다. 이제 이것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노아의 때에 방주 짓는 것 외에 할 것이 무엇이 있겠냐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아무리 쌓아놓아도 다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다 쓸 데 없습니다. 그러나 방주 잘 지어 놓으면 환난을 다 이기고, 자기도 구원받고 가족도 구원받고 다른 사람도 구원받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일비지력을 잘하다가 가는 사람이 되고, 또한 이 구원운동에 나서서 일하는 사람이 실수가 있어도 가려주어야 합니다. 허물을 가려주면서 이 진리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독을 봐서 쥐 못 친다고 합니다. 쥐새끼를 봐서는 돌로 콱 때려 죽이면 좋겠는데, 독이 깨질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을 봐서 쥐를 못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무엇을 조금 잘못해도, 가리워 주면서 구원운동을 세워나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이 됩니다.
또 교역자가 정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역자가 진리를 세워나가는 것이 아니면 그를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진리 세워나가는 것이 아닌데, 그를 아무리 받들어줘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곳은 인본주의 교회이고 진리가 아닌데, 영을 살려나가는 진리계통이 아니고, 진리를 세워나가는 교회가 아니면, 아무리 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백날 그런 곳에 가서 봉사해도, 진리를 세워나가는 것이 없기 때문에 되는 것이 없습니다. 진리를 세워나가고, 영을 살려나가고, 자기도 의에 살아나가라고 방주 짓는 공사를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인데, 방주를 안 짓는 데에 가서 아무리 도와줘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것은 괜히 이용만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방주를 잘 짓고 또 방주 짓는 진리를 세워나가는 그 일에 일비지력을 감당하고 도와주다가 하나님 앞에 가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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