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
신명기 19:1-21
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열국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필경 그것을 얻고 그들의 각 성읍과 각 가옥에 거할 때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시는 땅의 전체를 삼구로 분하여 그 도로를 닦고 무릇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케 하라 4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위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혐원이 없이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인 일, 5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 이웃을 맞춰 그로 죽게함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6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혐원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치 아니하나 두렵건대 보수자의 마음이 뜨거워서 살인자를 따르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미쳐서 죽일까 하노라 7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8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열조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 9또 네가 나의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10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림이 없게 하라 이같이 하면 그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11그러나 만일 사람이 그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쳐서 그 생명을 상하여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거든 12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수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13네 눈이 그를 긍휼히 보지 말고 무죄한 피 흘린 자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14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 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 15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16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17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18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19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20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 21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신명기 19:1-21
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열국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필경 그것을 얻고 그들의 각 성읍과 각 가옥에 거할 때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3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시는 땅의 전체를 삼구로 분하여 그 도로를 닦고 무릇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케 하라 4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위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혐원이 없이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인 일, 5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 이웃을 맞춰 그로 죽게함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6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혐원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치 아니하나 두렵건대 보수자의 마음이 뜨거워서 살인자를 따르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미쳐서 죽일까 하노라 7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8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열조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 9또 네가 나의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10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림이 없게 하라 이같이 하면 그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11그러나 만일 사람이 그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쳐서 그 생명을 상하여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거든 12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수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13네 눈이 그를 긍휼히 보지 말고 무죄한 피 흘린 자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14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 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 15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16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17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18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19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20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 21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1. 도피성과 거기에 피할 자
본문 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열국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필경 그것을 얻고 그들의 각 성읍과 각 가옥에 거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시는 땅의 전체를 삼구로 분하여 그 도로를 닦고 무릇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열국 백성을 멸하시고 가나안 땅을 반드시 네게 주실 것인데 가나안 땅 가옥과 성읍에 거할 때에 세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해서 살인자를 거기로 도피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도피성을 세 개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요단 강 서쪽에 도피성을 만들게 하신 것인데 요단 강 동쪽에 또 도피성을 세 개 만들라고 하셨으므로 도피성이 모두 여섯 개입니다.
도피성을 만든 곳- 베(셀),게(데스),골(란),라(못),헤(브론),세(겜) 여호수아 20장 7절에 “무리가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구별하였고 또 여리고 동 요단 저편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택하였으니”라고 하였는데 전부 여섯 개의 도피성을 정한 것입니다. 요단강 동쪽에 세 개, 요단 서쪽에 세 개인데 오늘 말하는 것은 서쪽의 것으로, 갈릴리 게데스, 세겜, 헤브론의 도피성입니다. 베(셀) 게(데스)골(란) 라(못) 헤(브론) 세(겜)로 외우시길 바랍니다.
본문 3절에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개로 나누어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닦아 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다 도피성이라고 써 붙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디에서 가도 도피성으로 가는 길임을 알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도피성이 너무 멀면 원수 갚는 사람이 따라잡아서
죽일 까봐 각 곳에 세 개로 나누어서 그다지 멀지 않게 해서 따라 잡히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푯말을 보고 들어갈 수 있도록 써 붙이라고 하셨습니다. 길을 잘 찾아서 도피할 수 있도록 하게 한 것입니다.
죽일 까봐 각 곳에 세 개로 나누어서 그다지 멀지 않게 해서 따라 잡히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푯말을 보고 들어갈 수 있도록 써 붙이라고 하셨습니다. 길을 잘 찾아서 도피할 수 있도록 하게 한 것입니다.
도피성에 피할 수 있는 사람
본문 4-5절에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위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혐원이 없이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인 일,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 이웃을 맞춰 그로 죽게함 같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끼로 나무를 찍다가 도끼 자루가 빠져서 사람이 죽었을 경우에는 그 사람이 혐의가 없기 때문에 사실 죄가 없는 것입니다. 죽이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밭에서 돌을 골라서 집어 내버리는데 다른 사람이 그 아래 와서
있는 것을 모르고 내버린 경우에는 죽이려는 의도가 없고 알지 못하고 한 것이기 때문에 도피성으로 피해서 그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 4-5절에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위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혐원이 없이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인 일,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 이웃을 맞춰 그로 죽게함 같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도끼로 나무를 찍다가 도끼 자루가 빠져서 사람이 죽었을 경우에는 그 사람이 혐의가 없기 때문에 사실 죄가 없는 것입니다. 죽이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밭에서 돌을 골라서 집어 내버리는데 다른 사람이 그 아래 와서
있는 것을 모르고 내버린 경우에는 죽이려는 의도가 없고 알지 못하고 한 것이기 때문에 도피성으로 피해서 그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 5-10절에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 이웃을 맞춰 그로 죽게함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혐원
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치 아니하나 두렵건대 보수자의 마음이 뜨거워서 살인자를 따르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미쳐서 죽일까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열조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 또 네가 나의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림이 없게 하라 이같이 하면 그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한 다음에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성읍 외에 세 성읍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도피성을 전부 여섯 개, 서쪽에 세 개, 동쪽에 세 개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림이 없게 하라 이같이 하면그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도피성을 만드신 목적
이 도피성 제도를 하나님께서 왜 만드셨습니까? 실수로 살인한 자를 건지는 것도 목적에 포함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목적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도피성이 되실 것을 상징하기 위해서 만드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도피성이시라는 것입니다. 원수
갚으려고 뒤에서 죽이겠다는 사람이 따라오면 도피성으로 빨리 도망쳐서 도피성 안으로 쑥 들어가면 그 안에는 못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기 전에 잡히면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피성이 너무 멀지 않게 세 구로 갈라서 적당히 빨리 갈 수 있게 만들고 또 도로를
잘 닦아놓고 가는 데마다 표식을 잘 해서 누구든지 척 보면 찾아갈수 있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릇 살인한 사람이 있으면 빨리 도망을 쳐서 그리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사람이 따라오다가 도피성에 들어가기 전에 그 사람을 죽이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따라 오기 전에 빨리 도피성 안으로 들어가면 쫓던 사람이 대문까지밖에 못 들어옵니다. 이미 들어가 있으면 죽이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피성
이 되신다는 성구를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뜻은 예수 안에 들어가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도 없고 죽이려는 사람도 오지 못하고 심판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안에 있는 생활은 항상 만족하고 충만하고 거기는 영의 자유와 해방이 있는 영의 생명의 세계입니다.
도피성으로 들어가는 방법
그러면 도피성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은 어떤 생활입니까?
그러면 도피성으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은 어떤 생활입니까?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도피성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주여! 내가 이젠 주 앞으로 갑니다. 믿습니다.”라고 하면 법적으로 도피성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영이 도피성으로 들어가려면 우리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쑥 달려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그가 우리의 보호자가 되셔서 우리를 능력으로 보호해 주시고 바로 그곳이 안식처고 그곳이 생명처가 됩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생활을 하려면 죄를 회개하고 도망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도피성을 향해서 점점 힘 있게 일심전력을 다해서 사모하면서 도망쳐 가야 하는데 점점 도피성이 가까워지고 그리스도가 가까워지고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주께서 우리의 생명과 능력이 되시기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주님이 우리의 능력이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보호가 되시고 안식처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기쁨이 되시고 노래가 되시고 반석이 되시고 새 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피성으로 달려들어가는 생활을 성도는 늘 해야 됩니다.
도피성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됩니까? 보수자가 와서 죽여도 꼼짝을 못 합니다. 죽이려는 보수자가 많은 줄을 알고 항상 그리스도 안에 사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도피성 안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다고 하였는데 법이라는
것은 권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생명의 권세와 성령의 권세가 있어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고 하나님 안에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제도가 이루어지게 만들어 주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모든 죄와 마귀를 다 이길 수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은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복된 도피성 생활입니다.
도피성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까? 첫째는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믿으면 법적으로 도피성으로 들어간 것이고 우리의 영이 도피성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영적 세계, 그리스도 안, 생명의 세계, 그를 힘입어 사는 세계, 그로 말미암아 사는 세계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세계에 들어가면 언제나 만족하고 충만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하는 것은 가책이 없다, 부끄러울 것이 없다, 책망 받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거기는 하나님의 영접하시는 바가 있고 자유와 생명과 기쁨이 있고 하나님께서 능력이 되시고 마귀가 일절 들어오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 영적 생명의 세계 안에서 사는 생활을 해야만 됩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좁다고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넓게 여러 곳에서 오도록 사방을 다 닦아 놓으라고 하였습니다. 또 누구라도 어디서나 올 수 있게 표식을 해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렵게 해 놓으면 안되고 처음으로 오는 사람도 도피성에 잘 찾아올 수 있게 만들라고 하
셨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도피성에 가는 사람을 만나면 도피성으로 보내야 됩니다. 빨리 가도록 가르쳐 주고 잘 올 수 있도록 항상 힘을 쓰고 또 자신은 늘 도피성으로 도망쳐서 도피성 안에 살되 생명과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 마귀의 세력, 사망의 권세가 아무리 따라오려고
해도 절대로 오지 못합니다. 거기는 항상 자유와 생명과 기쁨과 능력이 넘쳐 흐르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런 도피성 생활을 하되 이번에도 좀 더 도피성에 깊이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2. 도피성에 피하지 못할 자
본문 11-13절에 “그러나 만일 사람이 그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쳐서 그 생명을 상하여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거든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수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네 눈이 그를 긍휼히
보지 말고 무죄한 피 흘린 자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고 하였는데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 남을 미워하는 자는 도피성에 못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회개하고 도피성에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악한 자는 심판하고 살인자는 죽이시되 그릇 살인한 자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이시기 위해서 도피성 제도를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의 도피성이 되실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거나 살인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도피성에 못 들어가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거기에서 벗어 나와야 도피성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도피성 제도를 만드신 데에 대해 감사하고 누구나 도피성에 피할 수 있도록 항상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우리 자신도 늘 도피성을 향해서 달려가는 도피성 생활을 계속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11-13절에 “그러나 만일 사람이 그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쳐서 그 생명을 상하여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거든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수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네 눈이 그를 긍휼히
보지 말고 무죄한 피 흘린 자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고 하였는데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 남을 미워하는 자는 도피성에 못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회개하고 도피성에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악한 자는 심판하고 살인자는 죽이시되 그릇 살인한 자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보이시기 위해서 도피성 제도를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의 도피성이 되실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거나 살인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도피성에 못 들어가고 철저하게 회개하고 거기에서 벗어 나와야 도피성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도피성 제도를 만드신 데에 대해 감사하고 누구나 도피성에 피할 수 있도록 항상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우리 자신도 늘 도피성을 향해서 달려가는 도피성 생활을 계속해야 되겠습니다.
3.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 것
남의 것을 침범하지 말라
본문 14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 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인이 정했다는 것은 조상들 때부터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선인들을 통해서 정해 놓으신 경계를 이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계선을 이동하기 쉽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논이나 밭 같은 것의 경계는 도랑 하나 쳐 놓은 것과 논두렁 하나로 막아놓는 것이 전부였는데 해마다 자기 경계를 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밭 경계 같으면 도랑 칠 때마다 다른
사람의 것을 조금 파서 자기 논에다가 붙여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자기 것은 늘리고 남의 것은 깎아먹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논두렁도 자기 것을 자꾸 넓혀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일 년 동안 논두렁을 밟고 다니면 논두렁이 좀 넓어집니다. 이듬해 봄에 논두
렁을 정비하기 위해 자기의 밟혔던 논두렁을 절반 떠 내어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논두렁이 가늘어집니다. 그 다음 해에 또 밟힌 흙을 절반 떠서 얹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옆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침식당하고 자기 논은 여러 해가 지나면 얼마쯤 넓혀 놓는 것입니다. 그 사람 참 악한 사람입니다. 그것 조금 따먹는다고 얼마나 부자가 되고 얼마나 살이 찌겠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의 것을 침범하지 말라
본문 14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 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인이 정했다는 것은 조상들 때부터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선인들을 통해서 정해 놓으신 경계를 이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계선을 이동하기 쉽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논이나 밭 같은 것의 경계는 도랑 하나 쳐 놓은 것과 논두렁 하나로 막아놓는 것이 전부였는데 해마다 자기 경계를 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밭 경계 같으면 도랑 칠 때마다 다른
사람의 것을 조금 파서 자기 논에다가 붙여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자기 것은 늘리고 남의 것은 깎아먹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논두렁도 자기 것을 자꾸 넓혀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일 년 동안 논두렁을 밟고 다니면 논두렁이 좀 넓어집니다. 이듬해 봄에 논두
렁을 정비하기 위해 자기의 밟혔던 논두렁을 절반 떠 내어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논두렁이 가늘어집니다. 그 다음 해에 또 밟힌 흙을 절반 떠서 얹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옆 사람은 조금씩 조금씩 침식당하고 자기 논은 여러 해가 지나면 얼마쯤 넓혀 놓는 것입니다. 그 사람 참 악한 사람입니다. 그것 조금 따먹는다고 얼마나 부자가 되고 얼마나 살이 찌겠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길바닥 따먹는 사람도 있는데 상당히 넓던 길바닥을 조금씩 조금씩 따먹어서 좁게 만들어 놓습니다. 그들은 아주 덕이 없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이기주의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좀 너그럽게 길바닥도 넉넉히 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좁게 만들어놓고 온 동네 사람 다니기에 불편하게 하지 말고 한 자나 두어자 더 내놓으면 어떻습니까?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다니니까 좋지 않습니까? 심방 다니다가 담 쌓은 것을 보게 되면 길은 좁은데 담을 길한 절반까지 갖다 쌓아놓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다니면서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그것을 좀 자기네 쪽으로 들여쌓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얼마나 잘 살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땅이라도 좀 들여쌓아 사람들 다니기에 넉넉히 쌓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에든지 너그러운 것을 배워나가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것입니다. 좀 너그럽게 길바닥도 넉넉히 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좁게 만들어놓고 온 동네 사람 다니기에 불편하게 하지 말고 한 자나 두어자 더 내놓으면 어떻습니까?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다니니까 좋지 않습니까? 심방 다니다가 담 쌓은 것을 보게 되면 길은 좁은데 담을 길한 절반까지 갖다 쌓아놓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다니면서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그것을 좀 자기네 쪽으로 들여쌓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얼마나 잘 살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땅이라도 좀 들여쌓아 사람들 다니기에 넉넉히 쌓는 것이 좋습니다. 무엇에든지 너그러운 것을 배워나가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넉넉하게 해서 유익을 주라
전에 창광교회 지을 때에 일입니다. 대문으로 올라가는 길 낼 때에 다른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좀 넓직하게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옆에 올라가는 골목으로 올라가서 다른 문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 골목이 아마 한 2m 이상 3m 될 것인데 그리로 올라가 대문
으로 들어가면 마당이 넓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마당이 비록 좁아져도 우리가 길을 따로 내면 이웃 사람들이 다니기에 좋아진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한 3m 낼 것을 좀 더 넓게 길 폭이 4m 이상 되었습니다. 대문까지 가는 길이 큰 신작로같이 되
었습니다. 그러니까 옆집에서 좋아했습니다. 자기네 문으로 들어가는데가 높은데 우리 길 옆에다가 계단을 만들어서 우리 길로 다 다닐수 있게 만들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두었습니다. 우리는 넉넉히 내놓았으니까 염려가 없다고 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
런데 만일 있던 도로를 그냥 사용하려고 했으면 그 사람들하고 싸워야 됩니다. 그런데 싸우지 않고 좀 넉넉히 해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유익을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밭 경계를 어떻게 하든지 조금 더 넓히려고 그 조금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북이나 이남지방이나 호남이나 서울이나 마귀는 다 같은 마귀입니다. 어느 지방이든지 다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좀 너그러워서 경계선을 옮기지 말고 넉넉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내놓았다고 해서 못 살지 않고 남의 것을 조금 가져다가 붙였다고 해서 잘 살지 않습니다. 괜히 자기 마음보만 드러나는 것이고 인심만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계표를 옮기지 않는 것, 도리어 좀 넉넉하게 대하는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여기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것은 남의 것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전부 다 하나님의 땅인데 거기에도 내게 주신 땅이 있고 남에게 주신 땅이 있습니다. 남의 소유를 조금이라도 침범하지 말라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땅뿐 아니라 모든 것 전체가 다 남의 소유를 침범하지 않고 남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셔서 자기가 할 것이 있고 남에게 주신 것이 있는데 남의 것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맡은 것만 잘하라는 것입니다. 남의 맡은 것을 침범하면 성경에 위반됩니다.
전에 창광교회 지을 때에 일입니다. 대문으로 올라가는 길 낼 때에 다른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좀 넓직하게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옆에 올라가는 골목으로 올라가서 다른 문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 골목이 아마 한 2m 이상 3m 될 것인데 그리로 올라가 대문
으로 들어가면 마당이 넓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마당이 비록 좁아져도 우리가 길을 따로 내면 이웃 사람들이 다니기에 좋아진다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한 3m 낼 것을 좀 더 넓게 길 폭이 4m 이상 되었습니다. 대문까지 가는 길이 큰 신작로같이 되
었습니다. 그러니까 옆집에서 좋아했습니다. 자기네 문으로 들어가는데가 높은데 우리 길 옆에다가 계단을 만들어서 우리 길로 다 다닐수 있게 만들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가만히 두었습니다. 우리는 넉넉히 내놓았으니까 염려가 없다고 하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
런데 만일 있던 도로를 그냥 사용하려고 했으면 그 사람들하고 싸워야 됩니다. 그런데 싸우지 않고 좀 넉넉히 해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유익을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밭 경계를 어떻게 하든지 조금 더 넓히려고 그 조금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북이나 이남지방이나 호남이나 서울이나 마귀는 다 같은 마귀입니다. 어느 지방이든지 다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좀 너그러워서 경계선을 옮기지 말고 넉넉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조금 더 내놓았다고 해서 못 살지 않고 남의 것을 조금 가져다가 붙였다고 해서 잘 살지 않습니다. 괜히 자기 마음보만 드러나는 것이고 인심만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계표를 옮기지 않는 것, 도리어 좀 넉넉하게 대하는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여기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것은 남의 것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전부 다 하나님의 땅인데 거기에도 내게 주신 땅이 있고 남에게 주신 땅이 있습니다. 남의 소유를 조금이라도 침범하지 말라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땅뿐 아니라 모든 것 전체가 다 남의 소유를 침범하지 않고 남의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셔서 자기가 할 것이 있고 남에게 주신 것이 있는데 남의 것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맡은 것만 잘하라는 것입니다. 남의 맡은 것을 침범하면 성경에 위반됩니다.
모든 것을 원리원칙대로 하라
전도부인들에게 심방하는 구역을 정해주었고 자기가 맡은 것을 자기가 하라고 해놓았습니다. 구역도 대개 정해주었지만 구역이 아니라도 자기가 전도한 사람은 자기가 인도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1구역에서 나오던 사람이 얼마 동안 안 나오다가 2구역 전도부인이 가서 심방을 했더니 나왔습니다. 이제 그 사람을 어디다가 붙이냐가 문제입니다. 1구역 전도부인은 “그 사람은 우리 구역이다. 그 사람은 내내 우리 구역에 나오다가 몇 달 안 나온 것이다. 이제 나왔으니 우리 구역이다”라고 하고 2구역 전도부인은 “안 나온 지가 몇 달 된 사람인데 내가 인도해서 나왔으니 2구역이지 왜 1구역이냐”라고 하는데 과연 그 사람을 몇 구역에 붙여야 되겠습니까? 한편에서는 1구역에 벌써 안 나온 지가 오래 되었고 2구역에서 전도해서 나온 것이므로 2구역에 붙여야지 않겠냐고 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1구역에서는 우리 구역 명부에 이름이 있기 때문에 우리 구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사실 애매한 문제인데 하여간 경계를 잘 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원리원칙대로 해야지 자기에게다가 억지로 붙이려고 하면 그것은 부작용이 납니다.
경계를 안 옮기는 정신으로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권한, 남의 권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긴 것, 남에게 맡긴 것을 침범하지 말고 남의 일해 놓은 것과 자기가 일해 놓은 것을 잘 구별해서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남의 터 위에 집을 짓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5장 20절에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곳에나 가서 복음을 전도하면 되는데 그래도 남의 터 위에 세우지 않으려고 힘을 썼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배워야겠습니다.
교회를 옮기는 문제
교인이 이사를 갔는데 다른 교회 옆으로 이사를 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시골은 문제가 없겠지만 도시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에서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일 때에는 이사 간 사람에게 맡겨서 자기 이사 가는 동네의 교회로 나가겠다고 하면 거기에 가도록 두고 본 교회에 오겠다고 하면 본 교회에 오도록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은혜 되는 대로 해야 합니다. 억지로 그 교회에 나가라고 해서 그 사람이 은혜를 못 받으면 그 교회에 안 다니고 다른 교회를 나가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를 나가겠다고 하면 잘 나가라고 그 목사님을 소개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억지를 쓰다가 교인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습니다. A라는 교회에 다니던 교인이 B라는 교회 옆으로 이사를 갔는데 부득불 자기 교회에 나오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는 멀어서 못 나가겠다고 해도 그저 심방 가고 자꾸 나오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인이 차를 타고 1~2시간 본 교회에 왔다가 가면 그 교인이 여간 부담이 많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옆에 우리 교단 교회가 있는데도 소개도 안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번 본 교회에 나왔지만 그 교인이 이제는 멀어서 못 나가겠다고 하면서 다른 교회 갈 생각을 했는데 옆에 우리 교단 교회에 소개도 안 해 주자 아예 다른 교단 교회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 교인의 생명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자꾸 본 교회 나오라고 계속 심방을 갑니까? 옆에 우리 교단 교회가 있는데 거기에 나가면 좋지 않습니까? 그것은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 하다가 결국은 교인만 잃어버린 경우입니다. 자꾸 귀찮게 하면 다음에 이사 갈 때는 어디로 가는지 말도 안 해주고 도망치듯 이사 갑니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도 하나님 앞에 바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교인이 진리대로 인도받다가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가까운 데 가도록 하면 될 일인데 왜 부담을 주냐는 말입니다. 또 거기서 은혜를 못 받으면 본 교회로 오게 해야 합니다. 기어코 거기로 나가라고 쫓아 놓으면 거기 가면 은혜를 받지 못하고 그 사람은 다른 교회로 가버리게 됩니다.
남의 경계(교회)를 침범하지 말라
어떤 지방에서 우리 교단에 속한 교역자가 개척교회를 하는데 그 부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많이 가던 때였습니다. 교단 소속의 여러 교회의 교인들이 이사를 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한 20명 가량 그 개척교회로 나갔는데 본 교회로 출석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역자가 시험이 들었습니다. “다 이쪽으로 보내주면 한 30명이 되겠는데 왜 본 교회로 나오라고 하느냐”고 하면서 시험에 든 것입니다. 20명 보내준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10명 안 보내준 것 때문에 시험이 든 것입니다. 한 명을 보내주었어도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데 다 안 보내준다고 시험에 든 것이 말이 됩니까? 그것도 남의 경계를 침범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동네에 있다고 해서 거기로 이사 간 사람이 다 자기 교회에 나가라는 법은 아닙니다. 혹시 은혜 못 받아서 못 나오지 않나 하고 자기가 어떻게 하든지 기도 많이 해서 그 교회 교인들을 은혜를 받게 만들 생각을 해야지 무조건 구역을 정해서 보내달라고 하는 그런 정신은 버려야 됩니다. 그러므로 그 교인들이 은혜를 받도록 해서 자기 교인들을 살려나가는 것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자기 교회에 한 명이라도 더 갖다 붙이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되겠습니다.
경계를 옮기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권한, 자기 맡은 구역을 잘하고 남의 것을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간섭하는 것도 경계를 옮기는 것과 같습니다. 동쪽 문만 잘 지키면 되는데 서쪽 문을 왜 간섭하냐는 말입니다. 서쪽 문은 다른 사람에게 맡긴 것입니다. 자기에게 맡긴 것만 잘 하라는 것이 경계를 옮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괜히 멀리서 쳐다보다 원인도 모르고 동기도 모르면서 그저 틀렸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인을 모르면 사건을 바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예배 시간 에 한 손을 높이 들었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예배 시간에 한 손을 높이 들었으니 틀렸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모기 한 마리 때문에 그렇게 했다면 그 사람을 잘못 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원인을 모르고서 무조건 결과만 보고 그 사람이 잘못 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원인을 모르고 결과만 볼 때에는 그 사람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경계를 이동하지 말라는 것은 자기 할 것만 하라는 것입니다. 남의 권리를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할 것만 하고 자기 볼 것만 보면 좋다는 말입니다.
남의 것을 존중히 여기라
어떤 교역자가 큰 교회에서 시무하다가 개척 교회를 하러 나갔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볼 때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 원인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자기가 자원해서 개척 교회를 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런데 원인은 모르고 무엇 때문에 고생하러 개척 교회로 보내느냐 라고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잘못 판단하는 것도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계를 옮기지 말라는 것은 자기 권한 밖의 일은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배워야 되겠습니다. 남의 것을 존중히 여길 줄 알고 남의 것을 남의 것으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교역자가 큰 교회에서 시무하다가 개척 교회를 하러 나갔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볼 때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 원인은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자기가 자원해서 개척 교회를 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런데 원인은 모르고 무엇 때문에 고생하러 개척 교회로 보내느냐 라고 잘못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잘못 판단하는 것도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계를 옮기지 말라는 것은 자기 권한 밖의 일은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배워야 되겠습니다. 남의 것을 존중히 여길 줄 알고 남의 것을 남의 것으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번에 남경산 기도원에 왔는데 하나님께서 이 남경산 기도원을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잘 있다가 모든 것을 다 원상회복시켜놓고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경계를 옮기지 않는 정신입니다. 무엇 하나 따먹지 말고 어떤 나무도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삼각산에
기도하러 간 사람들이 자두밭에 가서 자두를 따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인이 나와서 “왜 남의 과일을 따먹느냐”고 했더니 “하나님의 것을 따먹는데 무엇이 어떻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것을 따먹었는데 무엇이 어떻느냐고 한 것입니다. 아주 당당하게 나갑니다. 물론 자기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 자두도 주인이 세상에 나올 때 지고 온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것을 따먹는 것은 좋은데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 사람이 경계선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두는 하나님께서 자두 주인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경계선을 넘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따먹으려면 돈을 주고 사서 먹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신앙이 잘못되어 잘못된 비진리로 나가는데 그 사람을 바로 인도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데도 충동질해서 그 교인을 다른 교회로 데리고 가는 것은 경계를 침범하는 것이고 악한 것입니다.
4. 범죄자의 송사는 두 세 증인으로 확정할 것
본문 15절에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어떤 사건이든 반드시 거기에는 증인이 있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두 증인이나 세 증인의 입
으로 그 사건을 확정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는 판결을 바로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무슨 판결이든지 판결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제사장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누가 잘못했다고 할 때에
두 세 증인이 없이 그 사람이 틀렸다고 해 놓으면 그 사람은 제사장의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있는 제사장의 은사와 권세를 점점 빼앗아가십니다. 특별히 장로에게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19절에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범죄한 자들은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배워야 합니다. 어떤 목사나 어떤 장로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할 때에 두 세 증인
이 있는가 찾아보아야 합니다. 확실한 증거와 확실한 증인이 있는가 찾아보아서 만약 두 세 증인이 없다면 장로가 잘못 했다는 말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또 그 말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전하는 사람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판
단을 바로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고 판단할 때에 두 세 증인이 있어야 판단이 바로 되고 모든 사건의 판단을 우리가 바로 해야 됩니다.
사람의 잘못한 것만 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사건건 무슨 사건이나 확실한 증거를 근거로 하여 그 사건을 바르게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위증하는 사람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5. 위증인(僞證人)에 대한 처벌법
대답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됨
본문 16-19절에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고 하였습니다. 재판장 앞에 나와서 재판할 때에 거짓말로 위증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사실이 아닌 말을 했다고 하고 물어볼 때에 증인으로서 대답을 안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는데 레위기 5장 1절에 보면 “누구든지 증인이 되어 맹세시키는 소리를 듣고도 그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치 아니하면 죄가 있나니 그 허물이 그에게 돌아갈 것이요”라고 하여 증인으로 물어볼 때에 대답을 안 하면 그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증인은 대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무슨 일에 대해서 알아 보려고 불러서 물어볼 때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대답을 안 하면 죄입니다. 입장이 곤란하기 때문에 대답을 안 하고 있는데 대답을 안 해서 목사가 그 사람을 불러다가 책망을 하면 그 사람이 누구와 싸웁니까? 책망을 받고 아까 그 증인에게로 싸우러 갑니다. 시비가 붙을까봐 알면서도 말을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하라고 하면 말할 수 없노라고 하는데, 말 안 하는 사람은 죄가 있고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물어보는데 답변을 안 하면 상대방의 죄값을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서 다 받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물어볼 때에는 반드시 말을 해 주어야 합니다. “나는 목사님께 아부하지 않으려고 말을 안합니다.”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말해야 될 것은 반드시 말해야 합니다.
위증하는 사람은 자기 꾀대로 벌을 받음
또 위증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실이 아닌데 없는 것을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또 본 것을 못 봤다고 하고, 잘못하지 않았는데 잘못했다고 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하지 않았다고 위증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위증하는 자체도 죄이고 19절에 보면 “그가 그 형
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형제를 해하려고 위증을 했다고 하면 그것이 판명될 때에 그 사람에게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고 본문 20-21절에 기록하였습니다. 위증한 죄가 큰 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추측으로 말을 전했을 때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경우에는 자기가 그 벌을 다 받아야 됩니다. 우리 교역자 간에도 사실을 알지 못하고 추측으로 생각을 해서 아무개가 어디를 갔다 했을 때에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벌하실 것이고 그 사람이 그 벌을 다 받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사실을 확실히 알기 전에는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이 아닌 말을 어떤 사람이 하나 지어내면 그 말을 듣고 돌리게 되는데 거기에 대한 벌은 지어내 사람도 받
고 돌린 사람도 다 받아야 됩니다. 거짓말 지어낸 사람이나 거짓말 돌린 사람이나 죄가 같은 것입니다. 그것도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위증이나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생길 때에 추측으로 어땠을 것이다 라고 해서 그 말을 돌리면 그것은 하나님께 죄입니다. 그 벌은 지어낸 사람과 돌린 사람이 받아야 합니다.
고 돌린 사람도 다 받아야 됩니다. 거짓말 지어낸 사람이나 거짓말 돌린 사람이나 죄가 같은 것입니다. 그것도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위증이나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생길 때에 추측으로 어땠을 것이다 라고 해서 그 말을 돌리면 그것은 하나님께 죄입니다. 그 벌은 지어낸 사람과 돌린 사람이 받아야 합니다.
위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대한 말입니다. 경계표 옮기지 말고 위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추측으로 돌아가는 말, 사실도 알지 못하고 두 세 증인의 확실한 증거도 없는 그런 것을 우리가 잘못 판단하면 안 되고 돌아가는 말을 들어도 안 됩니다. 무엇이나 확실한 것을 우리가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추측은 우리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다 합당치 않습니다. 옛날에 중공에서 데모할 때에 우리가 얼마나 추측을 많이 했습니까? 등소평이 죽었다, 자살했다, 이붕 총리가 저격 당했다, 군대끼리 저희끼리 싸운다, 내란이 일어났다 는 등 신문을 보면 하루 아침에 사람이 죽었다 살았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아 보니까 등소평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저 무슨 문제가 하나 생기면 각색 유언비어, 추측으로 지어내는 일들이 많습니다. 교회도 그와 비슷합니다. 무슨 문제가 하나 생기면 이 사람은 이렇
게 말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말해서 자기 생각대로 말한 것을 돌립니다. 그것이 경계표 옮기는 것이고 그것이 위증이므로 하나님께 벌을 받게 됩니다. 무엇이나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바로 되려면 사건을 바로 보아야 되고 바로 판단해야 되고 경계표 옮기지 말고 자기 권한 밖의 일을 하지 말고 언제나 모든 것을 바로하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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