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9일 일요일

사무엘상 31:1-7 사울 왕의 죽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사울 왕의 죽음
사무엘상 31:1-7

1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3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4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5
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7골짜기 저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1. 이스라엘이 패전함

본문 1절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29장 1절에 두 나라가 서로 진을 쳤는데, 이스라엘 사람은 이스르엘에 진을 쳤고 블레셋 사람들은 군대를 아벡에 모았습니다. 이스르엘은 사마리아 부근에 있는 도시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스르엘에 진을 쳤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이라는 곳에 진을 치고 서로 대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먼저 쳤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패전을 당했습니다. 

2. 사울과 사울의 세 아들 및 그의 사람들이 죽음

요나단의 죽음

본문 2절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세 아들을 죽였습니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가 전쟁에 아버지와 같이 나갔다가 이스라엘이 패전하므로 다 죽었습니다. 

요나단이 죽었는데 요나단은 믿음이 상당히 좋은 사람입니다. 또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고 다윗을 끝까지 도와준 사람입니다. 다윗이 앞으로 왕이 될 것도 알고 자기는 그 다음이 될 것도 알면서 자기 아버지의 핍박을 받으면서까지 다윗을 잘 도와준 요나단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좋은 사람이고 또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셨는데, 여기서 죽은 것이 참 안 되었습니다. 요나단이 살아서 다윗이 왕이 된 다음에 다윗 왕 아래에서 얼마 동안 있다가 죽었으면 좋았겠는데,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요나단이 믿음을 지키고 다윗을 도와주고, 또 자기 아버지가 잘못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간하는 등 여러가지 잘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그에 대한 보답을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요나단이 믿음 지킨 것, 또 하나님의 일을 도와준 것, 또 원수와 싸워서 이긴 것, 앞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잘 건설하려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고 자기는 그 다음에서 받들어 나가려고 한 것에 대한 보답을 하나도 받지 못하고 그만 길보아 산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 된 것입니까? 보통 사람의 생각에는 요나단이 살아서 다윗이 왕이 된 다음에 왕의 다음 자리에 앉아서 다윗을 도와준 상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만 자기 아버지를 따라다니다가 전쟁에서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이 세상에서 누리지 못하고 죽은 것이 잘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고 다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잘못하실 리가 없습니다. 무엇이 잘 되었습니까? 요나단이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일을 많이 도와준 것을 세상에서는 상 받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것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 갚아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요나단이 세상에서 하나도 받지 못하고 선한 일을 많이 했는데, 만약 이 세상에서 상을 받았으면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주려고 하던 상급, 곧 이 세상에서 믿음 지킨 공로에 대한 상을 하늘나라에 가서 다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요나단을 데려 가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상급을 조금이라도 받고 하늘나라에 가면 적어집니다. 세상에서 절반을 받았으면 하늘나라에 가서는 반밖에 남아있지 않고, 세상에서 삼분지 일을 받고
하늘나라에 가면 삼분지 이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 삼분지 이를 받고 하늘나라에 가면 삼분지 일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상급을 다 받고 하늘나라에 가면, 하늘나라에는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오래 살면서 영광을 얻고 다윗을 통해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잘 하다가 가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하면 하늘나라의 상급이 그만큼 적어집니다. 상급을 통째로 다 받으려면 세상에서 하나도 안 받고 가야 통째로 다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나단을 사랑하셔서 하늘나라에서 그에게 상급을
100% 다 주시려고 이렇게 요나단을 먼저 데려 가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이 여기서 안 죽은 것보다 죽은 것이 큰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단을 사랑하셔서 하늘나라에서 통째로 다 주시려고 세상에서는 하나도 받지 못하게 하고 데려가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지키고 세상에서 상을 받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좋은 것이지만, 하늘나라의 상급이 적어지게 됩니다. 믿음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이 많은데, 그 중 한 절반은 세상에서 받고 절반은 하늘나라에 가서 받는 것이 좋겠습니까? 통째로
다 받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래도 세상에서 좀 받아야지 고생만 죽도록 하다가 하나도 못 받고 죽으면 너무 섭섭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하늘나라에 척 들어서면 상급을 통째로 받습니다. 하나도 일그러진 것이 없고 축난 것도 없이 그대로 다 받습니다. 그저 세상에서 선
한 일을 하고 믿음 지키고 세상 것을 받는 사람보다 안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받는 사람도 복이 있지만 안 받는 사람은 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믿음을 잘 지키고 선한 일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는데, 왜 내게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지 않
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잘 드리고 주일도 잘 지키고 믿느라고 힘도 많이 쓰고 다 바쳤는데, 하나님께서 왜 좋은 것을 안 주십니까? 하늘나라에서 통째로 다 주시려고 안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조금 주시기도 합니다. 보통은 그저 세상에서 한 절반은 받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삼분지 일을 받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다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나 다 받는다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다 받으려고 하지 말고 조금 남겨놓으시길 바랍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것이 조금 있어야지, 세상에서 다 받으면 그것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궁리를 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도와주었는데, 나를 안 도와주니 섭섭하다’, ‘내가 이렇게 믿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은 믿음
안 지켜도 잘 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안 되느냐?’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에 가서 다 주시려고 안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단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단을 제일 사랑 하셔서 이 길보아 전쟁에서 데려가셨습니다.

사울의 죽음

본문 3-4절에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
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에서 패전을 했는데, 활 쏘는 블레셋 군대가 도망치는 사울을 따라왔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사울에게 활을 쏘므로 사울이 그 활에 맞아 중상을 입어서 피가 줄줄 났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병기 든 자에게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하며 자신을 칼로 찔러 죽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왜 죽이라고 하였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채 죽지
않은 사울 왕을 끌고 다니며 모욕할 수가 있기 때문에 모욕하기 전에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해서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칼을 빼서 그 위에 엎드러져서 자기가 자기 칼에 엎드러져서 죽었습니다.

본문 5-6절에 “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병기 든 자는 사울의 신복으로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죽는 것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서 죽었습니다. 참 안 되었습니다. 많은 군대가 죽고 일부는 도망쳤을 것입니다. 사울도 죽고 사울의 세 아들이 다 죽고, 사울을 가까이 따라다니던 병기 든 자도 죽고 다 죽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3. 이스라엘 사람이 도망한 성읍에 블레셋 사람이 거함

본문 7절에 “골짜기 저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편 사람들이 동
네를 버리고 다 도망쳤으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살았습니다. 다 도망쳤으므로 빈 집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일 것도 없고 좋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곳에 와서 도망친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서 산 것입니다. 도망을 안 쳤으면 다 죽었겠습니까? 도망을 쳤기 때문에 자기 집을 다 빼앗기고 자기 재산을 다 빼앗긴 것입니다. 도망을 안 치고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냥 있었으면 죽을까 봐 다 도망을 쳤는데, ‘죽이면 죽고 살리면 살자’하고 있었더면 안 죽였을 것 같습니다. 전쟁하러 나오지 않은 사람을 왜 죽였겠습니까? 그런데 겁이 나서 다 내버리고 도망을 치는 바람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살게 되었고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사울이 죽게 된 세 가지 죄

사울이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종이고 또 왕 노릇을 사십 년간을 했고 이스라엘을 통치하느라고 수고도 많이 했는데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왜 죽었습니까? 사울이 죽은 죄는 역대상 10장 13-14절에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
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죽은 이유는 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둘째는 신접한 자에게 물어보고, 
셋째는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사울을 죽이신 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종이고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같이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만 이 세 가지 죄 때문에 사울이 망한 것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음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은 사무엘상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 사람을 전쟁에 나가서 다 죽이고 짐승까지 다 죽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씀을 그대로 안 지킨 것을 가리킵니다. 다 죽이라고 하셔서 죽이긴 죽였으나, 짐승들의 살진 것과 기름진 것을 가져왔고 또 아각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서 이렇게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순종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순종하기는 했는데 조금 에누리 했습니다. 아말렉 사람을 죽일 때에 한 사람을 남겼습니다.
아말렉 사람이 백만 명이라고 하면 한 사람을 남겼으므로 백만분지 일입니다. 오십만이라고 하면 오십만분지 일만큼 말씀을 안 지킨 것입니다. 100% 다 지켜야 되는데, 99.7~8%는 지키고 0.2~3%는 못 지킨 것입니다. 그러나 그 0.2~3%까지 다 지켰다면 사울 왕이 안 죽었을 것입니다.

아말렉 사람을 죽일 때 아각 왕을 죽였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명령이 무서운 줄을 모르고 에누리 했습니다. 또 소나 양을 다 죽이라고 하셨는데, 살진 것, 기름진 것, 잡아먹기 좋은 것은 다 가져왔습니다. 아말렉 사람의 소와 양의 전체에 비하면 몇 %나 가져왔겠습니까? 백 마리 가운데 한 마리를 가져왔으면 1%를 가져온 것입니다. 양이 천 마리라고 하면 양 열 마리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렇게 한 1%쯤 가져왔다고 생각해보면, 성경말씀을 지키다가 99%는 지키고 1%는 안 지킨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진노 하셔서 하나님 말씀을 안 지켰으므로 그를 내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100% 다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에누리하면 안 됩니다. 그대로 다 할수 있어야 합니다. 다 하지 못했으면 회개하고, 또 다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일생 동안 그렇게 다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가다가 실수해서 못 지킬 수는 있는데, 고의적으로 안 지키면 안 됩니다. 실수해서 못 지킨 것은 회개하고 바로 해야 합니다. 고의적으로 조금 떼어놓아야 되겠다고 하다가 죽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아나니아 부부입니다. 다 바치려고 했는데 그만 조금 떼어놓았다가 그 부부가 죽었습니다.
고의로 떼어놓고 숨기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다 바쳐야 합니다. 십일조를 전부 다 바쳐야 합니다. 주일날 지키는 것도 온 하루를 전부 다 지켜야 합니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전부 다 해야 합니다. 고칠 것은 다 고치고, 죄는 하나도 남겨놓지
말고 다 끊어버려야 합니다. 여러 가지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하나도 남겨놓지 말고 다 끊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차차 끊어버려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 순종해야 합니다. 99%는 순종해도 1%는 못 한다고 하는 것이 사울이 범한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다 해야 합니다. 내가 못 한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회개하고 고쳐야 합니다. 술 먹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면, 한 잔은 혹시 먹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예 술 한 잔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전부 다 지키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가라고 하면 어디든지 가야 합니다. 그것이 다 지키는 것입니다. 못 간다고 하는 것은 다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고 하면 가야 됩니다. 못 간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아닙니다. 사울이 죽은 죄의 첫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한 것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다 안 지킨 것이 아니라 1%나 0.5%나 0.05%를 못 지킨 것입니다.

2) 신접한 자에게 가르쳐주기를 청함 

둘째 죄는 신접한 자에게 물어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하도 답답해서 가서 물어본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여쭤 봐도 하나님께서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신접한 자에게 가서 물어본 것입니다. 전쟁을 해야 되겠나 안 해야 되겠나, 전쟁에서 이기겠나 지겠나를 물어본 것인데, 사무엘이 살았으면 사무엘에게 가서 물어보면 좋겠는데 사무엘이 얼마 전에 죽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다시 불러다가 물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신접한 자에게 가서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하니 그 여자가 사무엘을 불러올렸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물어보니까 사무엘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답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무엘이 아니고 마귀가 사무엘의 탈을 쓰고 자기가 사무엘이라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불러서 나타난 사무엘이 마귀인 줄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신접한 자가 오라고 해서 왔으니까 사무엘이 아닙니다. 또 땅에서 올라왔다고 했는데, 사무엘이 땅속에 있겠습니까?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그 다음에 죽은 사람을 불러온다는 것이 성경에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자기 일을 다 하고 하늘나라에 간 것이지, 불러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성경 전체에 안 맞습니다. 성경 전체에 안 맞는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신접한 자에게 물어본 것과 사무엘이 아닌데 사무엘이라고 한 것과 마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들은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멀리 떠난 것입니다. 신접한 자에게 물어보는 것은 요즈음은 무당네 집에 가서 점보는 것, 손금 보는 것, 관상 보는 것, 예언 기도한다고 하는 사람에게 물어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종류가 사울이 망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 가서 물어보면 안 됩니다. 무당네 집에 가서 물어보거나 점하러 가면 안 됩니다.

또 예수 믿는다고 하는 무당한테 가도 안 됩니다. 기도하면 안다고 하는 사람이 예수 믿는 무당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하나님께 물어봐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좀 기다리라고 하고는 골방에 들어가서 한참 기도하고 나와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하신다 저렇게 하라고 하신다’하고 가르쳐주는데, 그 사람이 무당입니다. 그것은 신접한 자에게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에 가서 물어보면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하는데, 문제를 성경으로 해결해야지 어떻게 무당한테 가서 해결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절대로 가면 안 됩니다. 물어보러 가면 안 됩니다. 예언한다, 또는 기도하고 가르쳐준다고 하는 곳에 가면 안 됩니다.
또 속에 있는 것을 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해보면 사람 속에 있는 것을 다 안다, 즉 그 무당이 기도하면 내 속에 있는 것을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을 무당이 다 아는 것이 무엇이 신기합니까? 그것이 다 신접한 자에게 물어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데에 미혹되면 안 됩니다.

3) 여호와께 묻지 않음

세 번째는 여호와께 묻지 아니했다고 했는데, 사울이 물어봐도 하나님께서 대답지 않으신 것입니다. 사무엘상 28장 6절에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
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으므로 사울이 하나님께 물어보았지만 여호와께서 사울에게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물어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는 물어보지 않아서 사울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그러니까 사울이 물어보아도 하나님께서 대답지 않으셨기 때문에 못 물어본 것이지 안 물어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물어보지 않아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둘 다 맞습니다.
성경은 다 맞는 줄로 알면 됩니다. 사무엘상 28장 6절에는 하나님께 여쭤보았지만 하나님께서 대답지 않으셨다고 하였고 사무엘상 29장 1절에는 물어보지 않아서 사울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물어보았는데 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서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대답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순종하지 않으면서 기도하는 것을 안 받으신다고 잠언 28장 9절에 “사람이 길을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가증하므로 안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안 지키면서 기도하니까 안 받으신 것입니다. 왜 안 받으셨습니까? 완악한 마음과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므로 안 받으신 것입니다. 사울이 얼마나 강퍅합니까? 다윗을 죽이려고 내내 따라다니지 않았습니까? 강퍅한 마음과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왜 안 받으셨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왜 안 들어주셨습니까?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안 들어주신 것입니다. 사울이 참으로 회개했다면 다윗을 잡으러 다니던 것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다윗을 잡으러 다니던 것을 회개하고 다윗을 다 용납하고 그를 환영했어야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한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또 과거에 말씀 지키지 못한 것을 진정으로 회개하면서 기도했다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뻔했는데, 회개는 하지 않고 기도만 하므로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신 것입니다. 자기 의 왕권을 빼앗길까 봐 다윗을 잡으러 다닌 것부터 회개했어야 합니다. 그런 완악한 마음, 강퍅한 마음, 살인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그랬으면 다윗을 다 용납하고 오라고 하고 다윗에게 예전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군대장관으로 이번 전쟁에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면 승리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일 전쟁을 잘하는 군대장관 다윗을 쫓아내고 전쟁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므로 패전한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수하에 있어서 사울의 군대장관이 되었더라면 절대 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울이 안 죽고 아들 셋도 다 안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죄만 짓고 회개하지 않고 돌아가니까 하나님께서 물어도 답변해주시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회개하면서 물어보았더라면 참으로 묻는 것이므로 대답해주셨을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서 묻는 것은 참으로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셨습니다.

이 세 가지 죄 때문에 사울이 죽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돌아가면 안 됩니다. 기도해야만 되고 회개해야만 되고 무엇이나 하나님을 의뢰하고 해야만 됩니다. 무슨 일에나 하나님 앞에 바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지 않습니다. 바로 해야 합니다. 바로 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회개하여 상한 심령을 언제나 가져야만 합니다. 다윗을 미워했고 잡아 죽이려고 했는데, 그것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습니까? 참으로 회개하여 자기 잘못을 많이 깨닫고 자기가 죄인 가운데 괴수인 줄을 알고 진정으로 기도했더라면 하나님께서 왜 안 들어주시겠습니까? 다 들어주십니다. 그러면 안 죽습니다. 또 다윗을 데려와서 그 전쟁에 다윗이 나갔으면 승리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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