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7일 금요일

사무엘상 4:1-22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언약궤를 빼앗김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언약궤를 빼앗김
사무엘상 4:1-22

1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 쳤더니 2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가량이라 3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
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바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6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히브리 진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찜이뇨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 지라 7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가로되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가로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같이 말고 대장부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11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음을 당하였더라 12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에서 달려 나와 그 옷을 찢고 그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13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곁 자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 마음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에 들어오며 고하매 온 성이 부르짖는지라 14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이 훤화하는 소리는 어찜이뇨 그 사람이 빨리 와서 엘리에게 고하니 15때에 엘리의 나이 구십팔이라 그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16그 사람이 엘리에게 고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가로되 내 아들아 일이 어찌 되었느냐 17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서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18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19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왔더니 하나님의 궤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20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 21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 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22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1.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전함

본문 1절에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 쳤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에 진을 쳤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을 쳤습니다. 서로 싸우려고 진을 쳤습니다. 

본문 2절에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의 이스라엘 백성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2. 언약궤를 전장(戰場)으로 가져감

본문 3절에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나라에 패전을 해서 이스라엘 사람 사천 명이 죽고 백성이 진으로 도망쳐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언약궤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기록한 돌판 두개가 있습니다. 언약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고 그곳에 영광의 그룹이 있으며 그룹 사이는 만군의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출 25:22; 민7:89). 언약궤를 가져오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므로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고 언약궤를 가져오라고 한 것입니다. 실로에 가서 언약궤를 가져오라는 것은 실로에 언약궤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로에 하나님의 성막과 제사장 그리고 언약궤가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언약궤를 메어 오라고 했습니다.

본문 4절에 “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바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실로에 가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전쟁마당으로 나왔습니다. 그리
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이기 때문에 언약궤 곁에 서서 언약궤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본문 5절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으로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얼마나 크게 외쳤는지 땅이 다 진동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오니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 계시고 또 그 만군의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여 큰소리로 외치고 언약궤를 자랑하였습니다. 그 소리가 블레셋 사람에게까지 들렸습니다. 

3. 언약궤를 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김

언약궤를 가지고 왔음에도 전쟁에서 패함

본문 6절에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히브리진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찜이뇨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 지라”고 하였습니다. 언약궤가 들어올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승리할 줄로 알고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신다하며 자신만
만하여 큰소리로 외쳤는데, 그 소리가 블레셋 사람의 진까지 들렸습니다

본문 7-8절에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가로되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가로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고 하였습
니다. 블레셋 사람이 진에서 그 외치는 그 소리를 듣고,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화로다”라는 말을 두 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실 때에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과 홍해에서 심판하신 것을 블레셋 사람들이 다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
게 크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진 가운데 들어왔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9절에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같이 말고 대장부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지 않으려면 한층 더 강하고 담대한 대장
부가 되서 힘써 싸우라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패하여 이스라엘의 보병 삼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전에는 사천 명이 죽었고, 이번에는 하나님
의 언약궤를 메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전쟁을 했는데 삼만 명이 죽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함

사무엘상 17장 47절에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많이 있는데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칼과 창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길 것이다”하시면 이길 것이고, 하나님께서 ‘패하라’고 하시면 패할 것입니다. 전도서 9장 11절에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수가 많다고 해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아니고 칼과 창 등 무기가 좋다고 해서 전쟁에 승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면 이길 것이고 여호와께서 패전하게 하시면 패전할 것입니다. 무기가 많아도 패전합니다. 아무리 유력하고 힘이 많아도 패전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여 전쟁에서 패함이 전쟁에서 왜 이스라엘 나라가 실패했습니까? 또한 하나님의 언약궤까지 가지고 갔는데 하나님께서 왜 도와주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에게 붙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블레셋 사람에게 붙여서 전쟁으로 심판하시려고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제사를 멸시하며 타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방인의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터에 언약궤를 가지고 간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언약궤를 이용해서 자기들이 유익을 보려고 메고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사람이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이용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한 것이고 종교 의식을 이용한 것입니다. 언약궤는 종교의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언약궤를 가져오면 이길 것이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언약궤를 따라가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물론 언약궤 위에 영광의 그룹이 있고 속죄소가 있으며 그 위에 하나님께서 임하신다고 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여 언약궤를 이용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따라가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벌써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엘리의 아들 제사장들이 멸시했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멸시한 것이나 같습니다. 제사장이 멸시한 것은 이스라엘 전체가 멸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것은 큰 죄를 범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2장 17절에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무엘상 2장 25절에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거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였더라”고 하였습니다. 권면했는데 듣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뜻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른 교훈, 바른 권면을 듣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결단하신 줄 알아야 합니다. 망하기로 작정을 했기 때문에 바른 권면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가져오고 종교의식을 거행하면 하나님께서 봐주실 것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은 생각하였지만,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제사를 멸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다 거역했으므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종교의식만 거행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로 아는 사람들은 이와 같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5절에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 섬기는 것을 자기 이익의 재료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의식을 자기 이익의 재료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오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실 것이다’, ‘어떤 의식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하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안 도와주십니다. 그 의식에는 생명이 없고 아무 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식에 속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용해서 자기가 승리하고 평안하고 잘 살려고 하는 이기주의자들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실 리 없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살 수 있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길은 언약궤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궤를 찾아가야하는 것입니다. 실로에 가야 합니다. 모든 백성이 가지는 못해도 백성의 책임자들, 즉 백성 가운데 지도자급 사람들이 대표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실로에 가야 합니다. 실로에 가
서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떠났던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전심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대표가 실로에 가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고 그 다음에 전쟁마당에서는 온 국민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르짖으면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합니다. 둘째는 하나님 말씀을 어긴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깨닫고 성경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돌판에 새겨져 있는 십계명을 하나씩 낭독하면서 그 계명을 어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실로의 언약궤 앞에 가서 회개하고 전쟁마당에서도 회개하며, 그 후에는 하나님의 제사를 존중히 여기는 데까지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죄를 회개하면서 제사를 존중히 여기는 데로 돌아오는 것이 살 길입니다.
그래야만 살 길이 생깁니다. 성경말씀으로 돌아오지 않고 무조건 언약궤만 가지고 오면 이긴다고 하는 것은 이기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떠나고 말씀을 여기고 제사를 멸시하므로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지 않습니다. 의식을 행했다고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하나님께로 돌아오고 말씀대로 돌아오고 제사를 존중히 여기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수의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말씀에로 돌아와야 하고 말씀에 벌벌 떨어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히 여기는 데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언약궤를 가져오지 않아도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안하고 오히려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제사를 멸시하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와주시겠습니까? 의식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약궤를 가져왔을 때, 하나님께서 오히려 더 많이 죽게 만드셨습니다. 언약궤를 가져오기 전에는 삼천 명이 죽었는데, 가져온 후에는 삼만 명이 죽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의식주의만 가지고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본문 11절에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음을 당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긴 것은 큰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언약궤인데, 이것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으므로 비참한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떠나면 실제로 언약궤를 빼앗기게 하심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왜 빼앗기게 만드셨습니까?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이고 그 안에는 말씀을 새긴 돌판 둘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 위에 임재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 말씀의 상징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빼앗긴 것은 벌써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말씀의 상징인 언약궤를 빼앗긴 것은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과 그 말씀을 떠난 지가 오랜 증거입니다. 껍데기만 남은 것입니다. 전에 마음으로 하나님과 말씀을 떠났기 때문에 지금 실제로 언약궤를 빼앗기게 만드셨습니다. 껍데기만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치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또 그 말씀을 떠나고 제사를 멸시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기독교를 이방인에게 맡깁니다. 교회로 모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방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다 밟고 교회가 모이지 못하게 됩니다. 이북교회를 공산주의가 빼앗은 것도 이와 같습니다. 공산주의가 되기 전에 교회가 상당히 많았는데, 사람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교회가 타락하고 말씀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공산주의에 맡긴 것입니다. 공산주의에 다 내맡긴 것이 언약궤를 빼앗긴 것과 같습니다. 이북교회가 타락하여 말씀을 떠나 신사참배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공산주의에게 교회를 빼앗기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예배당을 다 빼앗겼습니다. 한국도 6.25사변 때 교회를 다 빼앗겼었습니다. 6.25사변 때 모두 피난 가서 예배당이 텅텅 비고 예배를 못 드렸습니다. 서울, 수원과 같은 곳에 있는 예배당에서는 하나도 모이지 못했습니다. 부산, 대구, 마산 정도만 하나님께서 조금 남겨 놓으셨습니다. 언약궤를 거의 다 빼앗겼는데, 미군이 안 왔다면 그것도 얼마 안가서 다 빼앗기고 망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미군을 보내 주셔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미군이 안 왔다면 아직도 예배드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첫째가 하나님의 은혜이고 둘째는 미국 사람들 덕분입니다. 또 요새 일본 사람에 대한 감정을 극도로 격동시키고 정신대 문제 등으로 반일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일본 사람에게서 한국이 해방되어 독립한 것도 첫째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둘째는 미국 때문에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한국을 독립시켜 주지 않았다면 일본에게 아직도 통치 받고 있을 것이며 우리가 이 땅에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신대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시에 정신대에 이십만 명이 끌려 나갔지만, 아직도 일본 통치에 있었다면 몇 백만 명이 정신대에 끌려갔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을 모두 쫓아 내보내고 한국 땅에 일본 사람들이 와서 살았을 것입니다. 일본의 계획이 그러했습니다. 서울에 일본 사람이 얼마나 많이 와서 살았었습니까? 명륜교회의 땅도 일본 사람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을 반대하고 감사할 줄은 모릅니다. 미국이 도와줘서 이렇게 된 줄도 모르고 미국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에 빠진 것을 건져줬는데, 무엇 때문에 미국을 반대합니까?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반대만 하면 안 됩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마음에 있는 언약궤를 빼앗겼으면, 외부적으로도 빼앗기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속에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속에 있는 언약궤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성경말씀대로 모든 것을 바로 하고 순종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다 빼앗습니다. 외부적인 것에 두지 않습니다.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바로 서려고 애를 쓸 때, 하나님께서 다른 것도 다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제사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제사를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징벌이 오는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를 멸시하다 하루에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심판이 올 줄 알고 언제나 제사를 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예배시간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빠지면 죄짓는 것이 아닙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죽을 날이 올 것입니다. 심판이 옵니다. 권면해도 듣지 않는 것은 여호와께서 죽이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성경대로 바로 하는 권면을 안 듣는 것은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뜻한 사람이기 때문에 안 듣는 것입니다. 바른 권면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른 권면을 해주시는데 듣지 않고 돌아서면 조금 후에는 멸망이 옵니다.

4. 엘리의 집이 망함

본문 12-13절에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에서 달려 나와 그 옷을 찢고 그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곁 자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 마음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에 들어오며 고하매 온 성이
부르짖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실로에 엘리 제사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던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마당에 내보내고 엘리는 길 곁 자기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릴 즈음이라’고 하였는데, 여호와의 궤를 전쟁마당에 내보내고 제사장으로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또 어떻게 되었는지 얼마나 염려가 많았겠습니까?
엘리가 사십년 동안 사사 일을 보면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지켜 왔는데, 그 언약궤가 전쟁마당에 나가서 어떻게 되면 큰 일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이기고 돌아오면 좋지만, 만약에 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기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 때문에 마음이 상당히 떨리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내보내고 집안에 들어 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의자에 앉아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언약궤 때문에 마음이 떨리고 있었으니 얼마나 하나님께 정성스런 사람입니까?
그렇지만 아들들이 제사를 멸시하는 것을 엘리가 금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습니다. 일을 바로 해야 합니다. 바로 하지 아니하면 마음이 떨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마당에 살아 돌아온 사람이 고하매 온 성이 다 부르짖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봤더니 패전했다고 하였습니다. 삼만 명이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온 성이 다 가슴을 치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본문 14-17절에 “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이 훤화하는 소리는 어찜이뇨 그 사람이 빨리 와서 엘리에게 고하니 때에 엘리의 나이 구십팔이라 그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그 사람이 엘리에게 고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가로되 내 아들아 일이 어찌 되었느냐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서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 보니,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다 죽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겼다고 진중에서 나온 자가 보고를 하였습니다.

본문 18절에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 년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
습니다.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고 하였는데, 나이가 98세인데 사사가 된 지는 40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고 벌벌 떨었습니다. 마음이 떨리고 손과 몸이 다 떨려서 그만 옆으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5. 이가봇이 출생함

본문 19-20절에 “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왔더니 하나님의 궤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
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해서 산기가 가까웠는데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과 시부와 남편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했습니다. 갑자기 아이를 낳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힐 일입니까?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기고 시부가 죽고 남편도 죽었다고 하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경에 충격을 받으면 몸과 몸 안에 있는 내장들도 오그라든다고 합니다. 이도 오그라들고 간도 자궁도 다 오그라든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궁이 갑자기 오그라들어서 아이를 낳게 된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내장도 편안해서 기능을 잘 하고 소화도 잘됩니다. 그러나 속이 편치 않고 신경을 쓰고 마음이 괴롭게 될 때에는 내장이 전부 수축이 된다고 합니다. 다 오그라들어서 소화도 안 되고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갑자기 낳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낳았다고 하였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본문 21-22절에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죽으면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했습니다. ‘이가봇’은 영광이 없다는 뜻입니다. 아들을 낳았지만 영광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습니다.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떠난 것입니다.

김양선 목사님이 한국 교회 근대사를 쓰셨는데, 김 목사님은 평북 정주읍 중앙교회에서 시무하셨던 훌륭한 목사님이십니다. 한국 교회 근대사를 기록할 때에 신사참배를 의결한 38회 총회를 이가봇 총회라 기록했습니다.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했으므로 영광이 떠난 총회이기 때문에 이가봇 총회라고 한 것입니다. 김 목사님이 바로 기록했는데, 그 후에 여러 목사들의 반대가 일어났습니다. 왜 영광이 떠났다고 하느냐며 김 목사님을 많이 공격해도 안 고친다고 하였으나, 목사들이 사방에서 공격을 심하게 하니 결국 고치고 말았습니다. 한국 교회 목사들이 이만큼 한심합니다. 신사참배를 결의했으니 영광이 떠난 것이 사실입니다. 회개하면 되는데, 이름 붙인 것만 고치면 뭐합니까?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겨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이 성구를 가지고 많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말씀대로 바로 살려고 힘쓰고 예배를 정중히 여기고 책망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심판이 올 줄 알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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