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4일 수요일

창세기 41:54-57 칠년 흉년과 양식준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칠년 흉년과 양식준비
창세기 41:54-57

54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55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하라 하니라 56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쌔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1. 칠년 흉년을 대비하라

본문 54-57절에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더니 애굽 온 땅이 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쌔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에 일곱해 풍년이 지나고, 이제는 흉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늘 좋은 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평안한 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환난이 옵니다. 고난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그 환난 때를 대비할 만한 실력을 준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일곱 해 풍년이 끝나고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니까 각국에 기근이 있었지만 애굽 온 땅에는 식물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일곱 해 풍년동인 미리 준비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처럼,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준비를 안하면 환난을 이겨나가지 못합니다. 일곱해 흉년이 들자 백성들은 바로에게 가서 부르짖으며 양식을 구하였습니다.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요셉에게 가서 요셉이 하라는 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다 맡겼습니다. 또 요셉이 해야 모든 것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본문 56절에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쌔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애굽만 아니고 다른 나라에도 다 기근이 심해
서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왔습니다. 요셉을 통해서 애굽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백성을 환난 가운데서 살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가정에 대한 세상적인 하급 축복을 하나님께서 주실 때에 그것을 뒤에 세우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만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말씀을 앞에다 두고, 앞으로 칠년 흉년이 온다는 말씀을 바라보았습니다. ‘칠년 풍년 후에 칠년 흉년이 온다’, 그 말씀을 언제나 바라보고 가정을 인간적인 하급 축복을 해주었지만 거기에 얽매이거나 빠지지 않고 애굽 나라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 구원 역사에 힘썼습니다. 양식 준비하는 것이 구원 역사입니다. 요셉은 구원 역사에만 전력을 기울여 계속해서 해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세
상 것을 넉넉히 주실 때에, 세상에 빠져서 구원 역사에 전력을 기울이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것을 다 거두어 가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패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 것을 아무리 많이 주셔도 우리는 그것을 뒤에 세우고 구원 역사에만 전력을 기울여 달음박질하는, 그러한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 밖에서 다스리고 밭에서 준비하고 건축하라

잠언 24장 27절에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밖에서 다스리고 밭에서 일하고 건축하라는 것입니다. 네 일을 어디서 다스리라고 하였습니까? 밖에서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또 어디서 예비하라고 했습니까? 밭에서 예비하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는 무엇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네 집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밭에서 ‘일하라’는 것은 ‘곡식, 양식 준비’입니다.
요셉의 양식 준비는 밭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또 밖에서 다스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밖에서 다스리라는 것은 ‘밖에 빛이 비추어 나가도록 다스리라’는 뜻입니다. 요셉은 양식 준비를 잘 하기 위해서 밭에서 일한 사람입니다. 밭에서 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 밖에서 다스려야 합니다. 또 집을 건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밖에서 다스리라

밖에서 다스리라는 것은 공명정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공명정대하게 모든 것을 해 나가는 것이 밖에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군자(君子)는 대로행(大路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인(小人)은 소로(小路)로 가는 것입니다. 군자는 대로로 가는 것입니다. 대로행이라는 것은 공명정대하게 원리원칙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는 길이 큰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대로입니다. 당연한 길을 정정당당하게 걸어가는 것이 ‘밖에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과 하나님 앞에 결함과 흠이 없도록 바로 처신하고 처리하고 건설해 나가는 것이 밖에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밖에서 다스릴 때에 우리가 늘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공명정대하게 해야 합니다. 뒷골목에서 모여서 수군수군하는 것은 소로이고 모든 사람들이 볼 때에도 정당하게 하는 것이 대로입니다. 다니엘, 요셉 같은 사람은 밖에서 다스리고 정정당당한
대로로 걸어갔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도 흠이 없고 사람 앞에도 흠이 없었습니다. 다니엘이 사람 앞에도 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 앞에도 흠이 없고 사람 앞에도 흠이 없는 것이 밖에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니엘 6장 4절에,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아무 흠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었
다고 했습니다. 그릇함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대로행입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소로행(小路行)은 저희끼리 모여 수군수군하는 것입니다. “누가 알면 안 된다, 누구한테 말하지 마라, 우리끼리만 말하는 것이니 절대 말하지 말라 누가 알면 큰 일 난다’ 등과 같이 말하는 것은 소로입니다.

다니엘 6장 22절에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나 왕 앞에 흠이 없고 잘못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죄함이 명백하고 또 왕 앞에서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밖에서 다스리는 생활입니다.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될 일을 하고 몰래 수군수군 하는 것은 밖에서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큰 고기는 자기가 갖고, 작은 고기만 남을 주는 것, 즉, 자기 욕심부터 채우고 다른 일을 하겠다는 것 역시 밖에서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앞에는 말할 수 없는 실수를 하고 살면서, 하나님 앞에 바로 하면 되었다고 하는 고르반 사상은 밖에서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밖에서 다스리는 사람은 부모께 대한 것은 부모께 바로 합니다. 사람 앞에서 모든 것을 바로 하는 것이 밖에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밖에서 다스리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집 안에서만 수군수군 하면서 자기네끼리만 나눠먹는 식으로 하는 것, 그것은 방 안에서 다스리는 것입니다. 밖에 내 놓아도 괜찮게 해야 합니다. 내 놓아도 모든 사람 보기에 인정받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밖에서 다스리는 것이 성도의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 가도록 해야 합니다. 

밭에서 준비하라

요셉이 밭에서 준비했습니다. 먼저 양식 준비를 하고서 다른 것들도 해야 하겠습니다. 양식 준비 못하면 실패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데 무엇으로 나눠 주겠습니까? 그러므로 양식 준비를 잘 해서 백성들과 식구들이 양식을 나눠 먹도록 해야 합니다. 양식을 나눠주면서 하나님의 집을 건설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12절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또 데살로니가후서 3:8절에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주야로 일했다고 했습니다. 수고하고 애써 일하여 먹었다고 했습니다.
일해서 먹는 것이 밭에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일해서 노력해 먹는 것이 밭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먹는 것은 밭에서 준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노력하고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밭에서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양식도 우리가 노력해서 먹어야 하고 우리의 건강도 노력해서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도 밭에서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노력하여 일 하는 것, 노동하는 것, 그것이 밭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또한 봉사하는 것도 밭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육신의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것도 밭에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건강을 위해 만보 걷는 운동이 좋다는데 매일 걸어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산에도 올라가고 아예 뛸 수 있으면 뛰는 것입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거저 먹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밭에서 일해서 먹게 해놓으셨지 거저먹게 안 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노력해서 준비하라는 말씀은 육체에도 해당이 되고 우리 가정생활에도 해당이 됩니다. 일해서 먹고 살라는 것입니다. 쉽게 먹으려고 하지 말고 자기가 노력해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남의 식모살이라도 해서라도 먹으라는 것입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
습니다. 일 해서 자기도 먹고 또 다른 사람을 도와 줄 것이 있게 만들라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8절에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연습이 약간의 유익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유익이 좀 있다 말입니다. 그러나 경건은 우리 영적 신앙의 연단입니다.
이 영적 신앙 연단은 이 세상인 금생과 내세에 많은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밭에서 준비하라는 말은 양식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5절에 보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
다”라고 하였습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야 양식을 나눠줄 수가 있습니다. 밭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은 양식을 나눠줄 수가 없습니다. 이 신령한 양식도 밭에서 일해야 얻을 수 있고 또 그 양식을 나눠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슨 밭에서 일해야 합니까? 자기 마음 밭에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다음에는 자기 마음 밭에서 일해야 합니다. 마음 밭에서 일해서 그 말씀을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 밭에 받아서 잡초는 뽑아 버리고 곡식은 생명이 되도록 힘 있게
길러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양식이 우리 마음속에 생깁니다. 그 양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밭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말씀대로 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말씀대로 하려고 애를 쓰고 말씀에 도달하려고 애를 씁니다. 또 방해물을 제거하려고 애를 쓰고 말씀을 세워나가려고 애를 써서 자신을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나눠줄 양식이 많이 있습니다. 주일날이 닥치면 너무 많습니다. 밭에서 일을 많이 했으니까 “어느 것을 줄까”하며 줄 것이 너무 많고 할 것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밭에서 일하면서 양식이 많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밭에서 일 안 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성경 읽고 성경 배웠으니 됐다’ 하고 그만두는 것입니다. 밭에서 일 안 합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마음 가운데서 싸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밭에서 일하지 않은 사람은 주일날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엇을 나눠 주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이것을 할까 해도 시원치 않고 저것을 할까 해도 시원치 않아 애를 쓰기만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예배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 낑낑거리고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와서 “왜 그러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지금 설교할 게 없어서 그런다”고 했습니다. “설교 준비하는 것이 아이 낳는 것만큼 힘이 듭니까?”라고 사모님이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남편 목사님이 “여보, 아이를 가졌으면 낳기나 하지, 안 가진 아이를 낳으려니까 더욱 힘이 든다”고 했답니다. 아이를 가졌으면 낳기나 하지, 안 가진 아이
를 낳으려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참 사정이 딱합니다. 그것은 밭에서 일 한 것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밭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 가면 기도시키고 설교시킬까봐 걱정을 합니다. 그래서 미리 부탁을 합니다. “나, 오늘 기도 시키지 마라. 나, 오늘 설교시키지 마라.”고 합니다. 어디 가려고 해도 그것을 시킬까봐 못 갑니다. 걱정이 생겨서 못갑니다.

밭에서 일 하는 사람은 너무 많아서 누가 나 좀 청하지 않나?, 하고 기다립니다. ‘기도 좀 시키면 좋겠다’라고 합니다. 그러다 기도하라면 기쁘게 나옵니다. 밭에서 일 한 사람은 언제나 나오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밭에서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말씀대로 자신을 길러나가고 말씀에 방해되는 것은 빼내 버리고, 굳은 것은 또 갈아엎고, 교만한 마음은 회개하고, 말씀을 자기 생명으로 삼아서 힘 있게 길러 나가는 것이 밭에서 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나눠줄 것이 많습니다. 우리는 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밭에서 일하다가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에는 돌아와야 합니다. 밭에서 돌아와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7절에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밭에서 일한 사람입니다. 양식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노력해서 준비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밭에서 노력해서 준비해서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도와주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 살림도 육체도 자기가 노력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먹는 것도 조절을 잘 해서 먹어야 합니다. 음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밭에서 일 하려면 한 번 해보십시오. 밭에서 일하려면 짜게 먹지 말고 맵게 먹지 말고 기름기 있는 것 먹지 말아야 합니다. 동물성 지방질 먹지 말고 인공조미료를 먹지 말아야 합니다. 또 적게 먹어야 합니다. 밥을 공기 한 가득 빽빽하게 먹지 말고 한 10분의 7만 먹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하루에 만보 걷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자동차 타고 다니는 것은 남 보기만 좋지, 걸어 다니는 것만 못 합니다. 걸어 다니는 것이 건강에 더 낫습니다. 저도 매일 아침에 산에 걸어 올라갑니다. 차를 타라고 해도 안타고 걸어갑니다. 걷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육체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는 것도 밭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 조심해야 합니다. 걸어다느라고 힘을 써야 합니다. 생활면에서도 일해서 먹으려고 노력하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노력해서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노력 안 하는 사람은 안 됩니다. 부지런히 일해서 생활에도 궁핍이 없도록 하고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도
록 해야 합니다. 직장에 나가는 사람은 부지런해야 인정을 받습니다. 요셉과 같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합니다. 밭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은 노력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건설하라

건설하라고 했는데 준비해서 무엇을 건설해야 합니까? 집을 건설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집을 건설하라는 말입니까? 가정이면 가정을 잘 건설하라는 것입니다. ‘집’의 신령한 뜻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건설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노력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할 실력이 생깁니다. 건설할 실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은 교인들도 전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만한 실력가를 만들어 놓습니다. 교역자가 부지런하면 교인도 부지런합니다. 그러면 교역자도 하나님 나라 건설할 실력을 만들고 준비하고, 교인들도 하나님의 나라 건설할 실력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또 교역자가 다른 데로 옮기면 어떻게 됩니까? 옮기는 것은 먼저 교회를 잘 준비해 놓았으니까 다른 데 가서 또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거기 가서 또 밭에서 일하고 부지런히 노력하니까, 거기 교인들이 또 하나님의 나라 건설할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도 점점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다른 교회에 가서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교인을 잘 가르치고 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실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실력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집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려면 밭에서 일해서 양식을 많이 준비해서. 자기도 준비하고 다른 사람도 준비 시켜서 하나님 나라 건설하는 데에 총력을 다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합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집을 지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 영적 성전, 우리가 이것을 지어나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셉이 하는 것입니다. 즉 밭에서 준비하고 밖에서 다스리고 그 다음에 집을 세우는 일, 요셉이 하는 그 일을 우리가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게으르면 못 씁니다. 어떻게 하든지 부지런해야 합니다. 또 수요일에 삼일 예배 보는 데도 일찍 오고 늦거나 빠지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사경회 때인데 다음 사경회 때부터는 아예 수요일 예배를 다 맡기고 오십시오. 맡겨 놓고 여기서 내려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기 밭에서 일하려면 전적으로 매달려야 일을 하지, 왔다 갔다 하면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매달려야 합니다. 사경회 기간 수요일에는 예배를 다른 사람을 시켜 보십시오. 집사를 시키든지 주일학교 반장을 시키던지 누구에게 시켜놓고 오십시오. 또 장로를 시켜 놓고 오는 것도 좋습니다. 주일학교 반장도 할 수 있습니다. 예배 인도를 이럴 때 한 번 해 봐야지 언제 해보겠습니까? 교역자가 이렇게 사경회에 참석하고 있을 때 해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될수 있는 대로 사경회 기간 중에는 삼일예배 때문에 교회에 갔다 오지 않도록 앞으로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이번에 창광교회는 조덕래 장로에게 맡겼습니다. 명륜교회는 홍풍환 장로에게 맡겼습니다. 아예 다 맡겨놓은 것입니다. 또 다른 교회에도 맡긴 사람 많을 것입니다. 맡겨 놓고 가급적 삼일 저녁에 밭에서 일해야 하겠습니다. 여기 밭이 무엇이니까? 산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서 풀을 뽑아야 합니다. 풀을 뽑아야 먹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노력하지 않고는 먹을 수 없
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저녁에 올라가서 부지런히 일 하고 기도원에도 와서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 기도원이니까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기도원에 가도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1시간씩 봉사하는 것입니다. 밭에서 일하라고 하셨으니까 기도원에서도 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봉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또 뛰는 것도 밭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밭에서 일하는 것이 여러 면인 것입니다. 자기 가정 생활면, 육체 건강법, 그 다음에 기도원 건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면에서는 밭에서 노력하는 것, 집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 나라 건설, 양식 준비, 영적 양식 준비 등입니다

우리가 왜 양식이 없습니까? 밭에서 일 하지 않으면 교인들에게 나눠줄 양식이 없고 밭에서 일 많이 한 주간은 교인들에게 나눠줄 양식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밭에서 일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다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 건설하는 것이 잘 되어 나갈 수 있습니다. 매일 밭에서 일해야 합니다. 하루라도 게으르면 못 씁니다. 노는 것, 그것은 썩어진 것입니다. 썩어진 나무입니다. 게으른 것은 썩어진 나무입니다. 그런 것 가지고는 아무 일에도 못 씁니다.
그래서 밭에서 일하고, 준비하고, 밖에서 다스려야 합니다. 밖에서 다스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공명정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수군수군 대지 말고 다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저 혼자만 옳다고 하면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에게 가져가 이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
가 봐라 하고 내놓아야 합니다. 양심의 가책 없이 하고 다른 사람 앞에나 하나님 앞에 결함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흠이 없도록 해나가야 합니다. 원리원칙대로 해나가야 합니다. 밖에서 다스리고 다 합심해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칠전팔기(七顚八起)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한 번 넘어지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못
일어납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는 사람인데 옳은 길 걷는 사람,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의의 길로 걷는 사람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섭니다.
왜 다시 일어섭니까? 일곱 번 넘어졌는데 어떻게 일어섭니까?
첫째는 의를 행하다 넘어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의는 하나님 편이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둘째는 양심에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의를 행하다가 넘어지면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넘어졌어도 여전히 양심에 힘이 있고 담대합니다. 양심에 힘이 있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용기가 생깁니다. 넘어갔어도 용기가 있습니다. 힘 있는 사람은 한 번 넘어졌다가도 이기지 않습니까? 권투할 때도 보면 한 번 넘어졌어도 힘 있는 사람은 다시 일어서서 승리합니다. 힘없는 사람은 안 넘어져도 비틀비틀하다가 집니다.
그러므로 의를 행하다 넘어졌으면 넘어져도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 옳으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셋째는 의인이 넘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다 동정합니다.“아까운 사람이 쓰러졌다. 도와줘야 하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 넘어진 것을 아까워하고 애석히 여겨서 도와주려고 힘을 씁니다. 다 격려해 줍니다. 한 번 더 해보라고 합니다. “이 다음번에는 될 것 같다, 한 번만 더 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용기를 주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번을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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