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4일 수요일

창세기 44:1-34 은잔(銀盞)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은 잔(銀 盞)
창세기 44:1-34

1요셉이 그 청지기에 명하여 가로되 양식을 각인의 자루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인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2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소년의 자루 아구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3개동시에 사람들과 그 나귀를 보내니라 4그들이 성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미칠 때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악으로 선을 갚느냐 5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6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 미쳐 그대로 말하니 7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우리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이런 일은 종들이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8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적질하리이까 9종들 중 뉘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우리 주의 종이 되리이다 10그가 가로되 그러면 너희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뉘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우리 종이 될 것이요 너희에게는 책망이 없으리라 11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각기 푸니 12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수탐하매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13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오니라 14유다와 그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오히려 그 곳에있는지라 그 앞 땅에 엎드리니 15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 잘 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6유다가 가로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17요셉이 가로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나의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18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종으로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고하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옵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비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우리가 내 주께 고하되 우리에게 아비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 노년에 얻은 아들 소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 어미의 끼친 것은 그뿐이므로 그 아비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나로 그를 목도하게 하라 하시기로 22우리가 내 주께 말씀하기를 그 아이는 아비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아비가 죽겠나이다 23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말째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고하였나이다 25그 후에 우리 아비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말째 아우가 함께 하면 내려가려니와 말째 아우가 우리와 함께 함이 아니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주의 종 우리 아비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하나는 내게서 나간 고로 내가 말하기를 정녕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너희가 이도 내게서 취하여 가려한즉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하지 아니하면 31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34내가 어찌 아이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내 아비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비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1. 베냐민이 은잔 도적으로 몰림

본문 1-3절에 “요셉이 그 청지기에 명하여 가로되 양식을 각인의 자루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인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소년의 자루 아구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동시에 사람들과 그 나귀를 보내니라”고 하였습니다.
양식을 가득 채운 형제들의 자루에 양식 값을 다시 넣고 베냐민의 자루에는 요셉의 은잔을 넣었습니다. 동이 틀 때 형제들은 일제히 떠났습니다. 요셉은 청지기에게 형제들의 뒤를 쫒아가 본문 4-5절에 “너희가 어찌하여 악으로 선을 갚느냐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데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는 잔을 가지고 점을 쳤다고 합니다. 잔에 물을 부어놓고 물건을 넣었을 때 물결 어떻게 일어나는지 어떤 모양인지 관찰하여 점을 쳤다고 합니다. 물론 요셉이 점을 친 것은 아니지만 애굽 풍속을 빗대어 형제들에게 시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에서는 점을 치는 잔은 제일 중요하고 귀한 물건이기 때문에 청지기가 형제들에게 “악하다”고 책망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본문 7-8절에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우리 주여 어찌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이런 일은 종들이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적질하리이까”라고 했습니다. 결단코 자신들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고 전에 자루에 있었던 돈까지도 애굽으로 도로 가져왔었는데 어찌하여 은과 금을 도적하겠냐며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본문 9절에 “종들 중 뉘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우리 주의 종이 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에게 그 은잔이 절대로 없을 것으로 생각하여 발견되는 자가 있다면 죽고 자신들은 종이 되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 것은 감당할 수 없
는 만큼 지나친 말이었습니다. 만일 잔이 발견되면 그 사람은 죽어야 될 것이고 나머지 형제들은 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 장인 라반이 따라와서 자신의 드라빔을 찾을 때 창세기 31장 32절에서 “그는 살지 못할것이요”라고 했었습니다. 드라빔을 갖고 있던 라헬이 그 때 발견됐었다면 라헬을 죽여야 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성도들은 극단적인 말이나 장담하는 말을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본문 10절에 “그가 가로되 그러면 너희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뉘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우리 종이 될 것이요 너희에게는 책망이 없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청지기는 잔이 발견된 자를 죽이지 않고 종으로 삼을 것이고 다른 자들은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11-13절에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각기 푸니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수탐하매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오니라”라고 했습니다. 청지기가 형제들의 자루를 살펴본 결과 베냐민 자루에서 은잔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때에 형제들은 베냐민을 책망하거나 변명 없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지 않고 짐을 나귀에 실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베냐민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게 될 것을 인해 큰 충격과 고통에 빠져있었습니다.


2. 베냐민을 종으로 삼겠다고 함

본문 14-15절에 “유다와 그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오히려 그 곳에 있는지라 그 앞 땅에 엎드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 잘 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유다와 그 형제들이 요셉 앞
에 여러 번 엎드렸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점 잘 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라는 것은 은잔 없어도 점을 잘 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너희가 모르고 어떻게 물건을 가져갔느냐는 뜻입니다.

본문 16절에 “유다가 가로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 17절에 “요셉이 가로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나의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께서 적발하신 죄악을 형제 모두가 짊어져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요셉은 베냐민만 남기고 다른 형제들은 고향의 아버지께로 평안히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3. 유다가 베냐민을 집으로 보내 달라고 간청함

본문 18-34절 마지막 절까지는 유다가 요셉에게 말한 내용입니다. 유다는 겸손한 자세로 모든 사실을 차례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어있다는 것과 아버지가 베냐민을 내놓지 못하겠다고 했던 것과 잃어버린 형제 요셉에 대한이야기까지 모두 진실 된 내용을 말하였습니다.

본문 18-29절 “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종으로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고하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옵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비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우리가 내 주
께 고하되 우리에게 아비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 노년에 얻은 아들 소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 어미의 끼친 것은 그뿐이므로 그 아비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나로 그를 목도하게 하라 하시기로 우리가 내 주께 말씀하기를 그 아이는 아비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아비가 죽겠나이다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말째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고하였나이다 그 후에 우리 아비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말째 아우가 함께 하면 내려가려니와 말째 아우가 우리와 함께 함이 아니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주의 종 우리 아비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하나는 내게서 나간 고로 내가 말하기를 정녕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본문 너희가 이도 내게서 취하여 가려한즉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귀하여 여겨서 만약 베냐민과 같이 가지 않으면 아버지인 야곱은 죽을 만큼 심한 고통을 당할 것을 이야기 합니다.

본문 30-31절에“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슬피 음부로 내려간다”는 말은 창세기 42장 38절에도 나와 있습니다. 음부라는 것은 무덤을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스올이라고 했는데 무덤의 죽음 상태, 또는 지옥의 불구덩이를 말하기도 하고 요나가 고기 뱃속에 들어갔을 때를 의미하기도합니다. 본문에서 음부의 의미는 “무덤으로 내려간다”라는 뜻으로 해석해야합니다.

유다는 아버지가 했던 말을 요셉에게 가감 없이 진실하게 말했습니다. 라헬이 낳은 두 아들 중 요셉은 짐승에 찢겨 죽은 줄로 아버지가 알고 있다는 것과 남아 있는 베냐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해주었습니다. 또한 본문 32-34절에 베냐민을 데리고 돌아가지 않는다면 아버지가 슬피 음부로 내려갈 것이므로 유다 자신이 아이를 대신하여 종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유다가 아버지께 아이를 담보하기로 했고 만일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지 않으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유다가 말한 이 모두가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배워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4. 변화된 요셉의 형제들

연단을 통해 변화된 형제들

우선 요셉의 형제들이 많이 회개하고 변화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 요셉을 팔았던 형제들은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해서 죽이려고까지 했으며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막내 동생 베냐민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자기 몸과 같이 생각
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이전에 요셉을 사랑하는 것보다 베냐민을 더 사랑하는 상태인데 형들은 전과 달리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회개한 증거입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슬퍼하고 고통하실지 생각하며 요셉에게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간청을 드리는 변화된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형들은 베냐민을 책망하거나 꾸짖지 않고 온전히 함께 책임을 지면서 죄를 자신들이 받기를 간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전 같으면 없는 죄도 동생에게 뒤집어 씌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을 남겨놓은 채 고향으로 떠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의 형들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에게 지워진 죄를 자신들의 공동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변화된 형들은 자기 몸과 같이 베냐민을 사랑한 것이었습니다.

잔이 발견되기 전에 본문 16절에서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고 했는데 잔이 발견되더라도 모든 책임을 형제들이 함께 지겠다고 말한 변화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 16절에 “유다가 가로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말한 것처럼 “다 같이 
종노릇 하겠다”고 할 수 있습니까? 보통의 경우 자신이 죄인 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어떻게 하든지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같이 책임을 지고 애굽에서 종살이 하겠다고 말한 것은 여간 힘든 결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열두 명 중 단 한 명만 
죄인일 뿐인데 책임을 같이 지고 종이 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그 한 명의 형제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며 그 형제와 함께 한 몸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를 지극히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
의 마음을 생각한 효성스러움이 나타나있습니다.

어떻게 요셉의 형제들이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전에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팔아버렸던 형제들과 현격히 다른 모습입니다. 그때의 형제들이 불량자들이었다면 세월이 지난 지금은 성자의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은잔이 발견된 한 형제로 인해서 모든 형제가 종이 된다는 것은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형제들이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약 20년의 세월 속에서 많이 연단된 것 같습니다. 어린 요셉을 팔았을 당시에는 철없던 시절이었고 지금까지 살아온 20여년의 세월 속에서 많은 훈련과 연단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요셉을 판 죄를 회개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효성스러운 마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하여 새사람이 된 아들들을 통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할만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앞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한 기초석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미디안을 격파했던 기드온 용사와 같은 자격을 갖추었다면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20년 전과 같은 과거의 모습이었다면 가능했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서로 헐뜯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분쟁하고, 아버지나 형제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기주의에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나라를 세울 만한 분량이 되지 못했습니다. 만일 세웠다 해도 얼마 못가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십시오. 과거 요셉의 형제들과 같이 불량하고 서로 책임 전가하고 시기와 분쟁이 있고 미워했던 자가 아니었는지 말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은 연단을 받고 거기서 회개하여 변화되어 형제가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형제를 소중히 아끼는 하나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이었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죄가 드러나면 함께 종이 되
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베냐민에게서 죄가 발견됐지만 그것은 곧 자신들의 죄를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즉, 베냐민의 죄만 적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까지 적발하셨다고 했습니다. 베냐민 한 사람만이 죄인이 아니라 자신들이 갖고 있었던 죄까지 하나님께서 드러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에 따라 그들은 베냐민과 더불어 죄인이기 때문에 함께 종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믿고, 그 주권 밑에 엎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베냐민만의 죄가 아니라 그를 통해 자신들의 모든 죄를 드러나게 하신 하나님 앞에서 종이 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참으로 형제들이 변하여 이러한 자리에까지 나아갔습니다. 이만큼 신앙이 자랐고 서로 사랑할 줄 알고 진실하고 또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아주 훌륭한 변화입니다. 이렇게 변하여 새 사람이 된 야곱의 아들들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야곱의 아들과 같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신앙 안에서 성숙하고 더 발전하는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일 중국에 선교하러 갔다고 해봅시다. 모두 열 두 명이 갔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히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열 한명을 죄가 없으니 그냥 돌아가고 한 명만 종살이를 하라고 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 중의 한 명이 잡혔다고 하여 원망할 것도 없고 두려워 달아날 것도 없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행동했던 것처럼 눈앞에 들어난 죄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죄까지도 적발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원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서로가 공동의 책임을 지고 죄를 회개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기도하면서 기다려 주어야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크신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유다의 신앙

또한 유다가 말한 것 가운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가 진실과 겸손의 말입니다. 요셉 앞에서 얼마나 진실하고 겸손하게 말을 했습니까? 진실과 겸손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요셉을 ‘주’라고 존칭하고 그 권위에 복종하며 말한 것이 본문에 여러 번 나옵니다. 권위자를 존경하며 겸손한 태도로 진실하게 말했던 유다를 본 받아야 합니다.

둘째는 지극하고 끓어 넘치는 효성심입니다. 아버지가 베냐민으로 인해 마음이 상할까 염려하여 종이 될지언정 베냐민을 두고 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베냐민을 지키지 못하면 평생 종이 될 각오를 갖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아버지와 
동생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과 결심은 참 훌륭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고 이런 사람을 쓰시지 않겠습니까?

셋째는 베냐민을 대신하여 자신이 종이 되겠다는 각오입니다. 즉, 형제를 위한 희생입니다. 동생 대신에 자신이 종이 되겠으니 동생을 가나안 땅으로 돌려보내달라는 것입니다. 동생을 대신하여 희생하겠다는 그 마음가짐이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합니까? 오늘날 우리들도 형
제를 대신하여 희생할 각오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요즘은 형제끼리 서로 물고 뜯고 재판하는 세상이지만, 믿는 우리들은 유다와 같은 희생의 사랑을 베풀어야합니다. 유다와 같이 믿는 형제 한 사람을 대신하여 종살이하는 희생의 사랑이 믿는 자 안에 가득하다면 세계를 향해 나갈 수 있습니다.

넷째는 의리를 위해서 희생하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32-33절에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원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의리, 동생에 대한 의리, 집안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희생하겠다는 이 각오는 대단하고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유다와 같이 우리에게도 이 네 가지만 있다면 안 될 것 없이 어디에서나 다 될 것입니다. 안 될 집안이 없고, 안 될 교회가 없고, 안 될 교단이 없고, 안 될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이 네 가지와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합니다. 
본문 16절에서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형제들의 죄악을 드러내신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는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공동의 책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주권을 믿으며 한 교회 안에서 모든 일에 공동의 책임을 질 때 잘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교단이 앞으로 이렇게 나간다면 야곱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을 건설하게 된 것처럼 세계를 향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회개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자

이처럼 요셉의 형제들이 과거의 모습에서 놀랄 만큼 아름답게 변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건설하시기 위해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20년이 흘러 40~50대가 되었을 요셉의 형들은 그동안 많은 연단 속에서 깨달은 것 같습니다. 또한 요셉도 애굽에 와서 여러 가지 연단 가운데 총리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마치 오랫동안 지어오던 집의 지붕을 올리는 것처럼 결말을 보는 것 같습니다. 즉, 20년 동안의 연단이 있었기 때문에 요셉 앞에서 형제들이 책임을 함께 지고 회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단의 결과가 열매로 맺힌 것입니다.
우리도 본문을 통해 회개할 것이 많습니다. 얼마나 불효자 노릇을 했으며, 내 형제와 동역자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거나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은 없었는지 돌아봐야합니다. 열 두 명이라는 적은 숫자로 이스라엘을 건설할 자격을 갖췄던 요셉의 형제들처럼 우리도 이러한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 교단도 이처럼 아름다운 교단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으면서 새 사람으로 변하도록 열매 맺는 우리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과거의 것을 청산하고 새사람이 되기 시작하면 내일은 희망이 있습니다. 또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쓰시겠습니까? 변화된 야곱의 열두 아들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건설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이렇게 새사람으로 변화되면 우리를 통해서 신령한 이스라엘을 건설해나가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회개 하고 바로 서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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