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에 남은 자들의 복
느헤미야 11:1-36
1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2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 3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그 본성 본 기업에 거하였고 4예루살렘에 거한 그 도의 두목들은 이러하니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니 저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대손이며 5또 마아세야니 저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대손이요 스가랴의 육대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대손이라 6예루살렘에 거한 베레스 자손의 도합이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이었느니라 7베냐민 자손은 살루니 저는 므술람의
아들이요 요에스의 손자요 브다야의 증손이요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오대손이요 이디엘의 육대손이요 여사야의 칠대손이며 8그 다음은 갑배와 살래 등이니 도합이 구백이십팔 명이라 9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 10제사장 중에는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이며 11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니 저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손이며 12또 전에서 일하는 그 형제니 도합이 팔백이십이 명이요 또 아다야니 저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블라야의 손자요 암시의 증손이요 스가랴의 현손이요 바스훌의 오대손이요 말기야의 육대손이며 13또 그 형제의 족장된 자니 도합이 이백사십이 명이요 또 아맛새니 저는 아사렐의 아들이요 아흐새의 손자요 므실레못의 증손이요 임멜의 현손이며 14또 그 형제의 큰 용사니 도합이 일백이십팔 명이라 하그돌림의 아들 삽디엘이 그 감독이 되었느니라 15레위 사람 중에는 스마야니 저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요 분니의 현손이며 16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오사밧이니 저희는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17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니 저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18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의 도합이 이백팔십사 명이었느니라 19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니 도합이 이백칠십이 명이며 20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거하였고 21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니 시하와 기스바가 그 두목이 되었느니라 22노래하는 자 아삽 자손 곧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사뱌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 23이는 왕의 명대로 노래하는 자에게 날마다 양식을 정하여 주는 것이 있음이며 24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 곧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25향리와 들로 말하면 유다 자의 더러는 기럇 아바와 그 촌과 디본과 그 촌과 여갑스엘과 그 동네에 거하며 26또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 27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그 촌에 거하며 28또 시글락과 므고나와 그 촌에 거하며 29또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에 거하며 30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동네와 라기스와 그 들과 아세가와 그 촌에 거하였으니 저희는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31또 베냐민 자손은 게바에서부터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그 촌에 거하며 32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 33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34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35로드와 오노와 공장 골짜기에 거하였으며 36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어떤 반열은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
느헤미야 11:1-36
1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2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 3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그 본성 본 기업에 거하였고 4예루살렘에 거한 그 도의 두목들은 이러하니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니 저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대손이며 5또 마아세야니 저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대손이요 스가랴의 육대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대손이라 6예루살렘에 거한 베레스 자손의 도합이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이었느니라 7베냐민 자손은 살루니 저는 므술람의
아들이요 요에스의 손자요 브다야의 증손이요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오대손이요 이디엘의 육대손이요 여사야의 칠대손이며 8그 다음은 갑배와 살래 등이니 도합이 구백이십팔 명이라 9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 10제사장 중에는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이며 11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니 저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독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손이며 12또 전에서 일하는 그 형제니 도합이 팔백이십이 명이요 또 아다야니 저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블라야의 손자요 암시의 증손이요 스가랴의 현손이요 바스훌의 오대손이요 말기야의 육대손이며 13또 그 형제의 족장된 자니 도합이 이백사십이 명이요 또 아맛새니 저는 아사렐의 아들이요 아흐새의 손자요 므실레못의 증손이요 임멜의 현손이며 14또 그 형제의 큰 용사니 도합이 일백이십팔 명이라 하그돌림의 아들 삽디엘이 그 감독이 되었느니라 15레위 사람 중에는 스마야니 저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요 분니의 현손이며 16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오사밧이니 저희는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았고 17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니 저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18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의 도합이 이백팔십사 명이었느니라 19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니 도합이 이백칠십이 명이며 20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거하였고 21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니 시하와 기스바가 그 두목이 되었느니라 22노래하는 자 아삽 자손 곧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사뱌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 23이는 왕의 명대로 노래하는 자에게 날마다 양식을 정하여 주는 것이 있음이며 24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 곧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 25향리와 들로 말하면 유다 자의 더러는 기럇 아바와 그 촌과 디본과 그 촌과 여갑스엘과 그 동네에 거하며 26또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 27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그 촌에 거하며 28또 시글락과 므고나와 그 촌에 거하며 29또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에 거하며 30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동네와 라기스와 그 들과 아세가와 그 촌에 거하였으니 저희는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 31또 베냐민 자손은 게바에서부터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그 촌에 거하며 32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 33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34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35로드와 오노와 공장 골짜기에 거하였으며 36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어떤 반열은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
1. 예루살렘 성과 다른 각 성에 거할 자들을 구분함
백성의 두목들과 제비에 뽑힌 십분의 일, 그리고 자원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거하게 됨
본문 1-2절에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와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였습니다. 성전은 에스라가 먼저 와서 건축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전부 건축했는데, 백성들이 힘을 기울여 모든 물질을 바쳐서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들은 제비를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나머지는 다른 성읍에 거하게 했다고 하였습니다.
백성의 두목들과 제비에 뽑힌 십분의 일, 그리고 자원한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거하게 됨
본문 1-2절에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와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였습니다. 성전은 에스라가 먼저 와서 건축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전부 건축했는데, 백성들이 힘을 기울여 모든 물질을 바쳐서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들은 제비를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나머지는 다른 성읍에 거하게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을 다 쌓았기 때문에 자기 본 성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돌아가면 예루살렘 성에 사람이 너무 없습니다. 각자 본 성에 살다가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려고 모여서 건축을 한 후에 자신이 살던 성으로 다 돌아가면 예루살렘 성 안에는 사람
이 얼마 없게 됩니다. 그래서 두목들이 예루살렘에 머물게 되었고, 각 성에서 제비를 뽑아 그 십분의 일은 예루살렘에 거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십분의 구는 본래 거하던 성으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다 본성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에 사람이 몇 명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 예루살렘 성벽을 넓게 쌓았는데 사람은 몇 명 없으니, 문제가 많이 생길 것입니다. 원수가 쳐들어와도 막을 수가 없고 또 황폐해질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 십분의 일은 예루살렘에 머물도록 한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거하게 하였습니다. 자기 본 성으로 돌아가면 집도 있고, 농토도 있고, 기업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면 당장에 먹을 것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농사할 수도 없는 것이고, 장사를 하려고 해도 사람이 얼마 없으니 장사도 잘 안 될 것입니다. 또 공장도 없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본 성의 자기 집과 농토로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백성의 두목들과 제비에 뽑힌 십분의 일은 아무리 어려워도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예루살렘 성을 지키고 보존하도록 했습니다.
이 얼마 없게 됩니다. 그래서 두목들이 예루살렘에 머물게 되었고, 각 성에서 제비를 뽑아 그 십분의 일은 예루살렘에 거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십분의 구는 본래 거하던 성으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다 본성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에 사람이 몇 명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 예루살렘 성벽을 넓게 쌓았는데 사람은 몇 명 없으니, 문제가 많이 생길 것입니다. 원수가 쳐들어와도 막을 수가 없고 또 황폐해질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 십분의 일은 예루살렘에 머물도록 한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거하게 하였습니다. 자기 본 성으로 돌아가면 집도 있고, 농토도 있고, 기업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면 당장에 먹을 것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농사할 수도 없는 것이고, 장사를 하려고 해도 사람이 얼마 없으니 장사도 잘 안 될 것입니다. 또 공장도 없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본 성의 자기 집과 농토로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백성의 두목들과 제비에 뽑힌 십분의 일은 아무리 어려워도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예루살렘 성을 지키고 보존하도록 했습니다.
제비에 뽑힌 사람은 아무리 어려워도 예루살렘에 와서 살아야 함
제비에 뽑힌 사람은 자기 본 성에 살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이사를 와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아무리 어렵고 살기 힘든 곳이어도 이사를 와야 하는 것입니다. 백성 전체가 다 제비를 뽑아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오고 싶지 않으면 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고 싶지 않아도 제비에 뽑힌 사람은 무조건 예루살렘에 와야 합니다.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와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와 있다 보면 무슨 살 길이 생기겠지, 안 생기겠습니까? 그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살도록 제비에 뽑힌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인 줄 알고 예루살렘으로 와야 합니다.
잠언 16장 33절에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제비를 뽑지만 결과는 하나님의 뜻에 달렸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것이 힘들고 생활도 곤란하고 위태하기도 합니다. 언제 예루살렘에 대적들이 쳐들어올지 모릅니다. 예루살렘에 쳐들어오려는 대적이 많지 않았습니까?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쳐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4장 11절에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달려 들어가서 살육하고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는 대적들이 그 부근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위태하고 그 안에서 살면 생계 유지가 곤란하지만, 일단 제비에 뽑힌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예루살렘을 지키는 사명을 다 하여야만 합니다. 그런데 자원해서 거하기로 한 사람이 또 생겼습니다.
백성들이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거하기로 한 사람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줌
본문 2절에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제비에 뽑히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가 나왔습니다. 여러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백성들이 그들을 위해서 복을 빌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자원하는 사람들은 왜 자원했겠습니까? 예루살렘에 거하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대적들이 쳐들어올 염려도 있고 생계도 곤란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도 얼마 없습니다. 그런데 왜 자원했겠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들이 자기 사명감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가서 지켜야 되겠다. 예루살렘을 안 지키면 어떻게 하겠느냐? 본 동네에 가서 평안히 살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무리 예루살렘이 어려워 살기가 힘들고, 대적들이 쳐들어 올 가능성이 있어 위태한 곳이라도,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어놓으셨고 예루살렘 성을 쌓아 놓으셨으니 안 지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자기의 사명감을 깨달아 자원해서 예루살렘에 거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무리 어렵고 고난이 많아도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그 성을 지키겠다고 자원하는 사람들은 믿음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축복했습니다.
우리도 믿음을 써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도와주어야 함
우리도 이렇게 믿음을 써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을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도와주어야 합니다. 구 소련에 선교사로 가는 사람들도 믿음을 써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가는 것입니다. 그 선교사들을 우리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도 한국에 있을 때에는 큰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대접을 잘 받고 사례금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로 갔습니다. 알마타에 가면 고생을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써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여러 가지 고난을 각오하고 나간 것이 참 귀합니다. 어려움이 많지만 믿음을 쓰러 간 것은 귀한 것입니다. 이런 선교사들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주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믿음을 써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을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도와주어야 합니다. 구 소련에 선교사로 가는 사람들도 믿음을 써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가는 것입니다. 그 선교사들을 우리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도 한국에 있을 때에는 큰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대접을 잘 받고 사례금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로 갔습니다. 알마타에 가면 고생을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써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여러 가지 고난을 각오하고 나간 것이 참 귀합니다. 어려움이 많지만 믿음을 쓰러 간 것은 귀한 것입니다. 이런 선교사들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주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정일만 목사가 워싱턴에서 교회를 잘하다가 그 교회를 내놓았습니다. 자리가 다 잡힌 교회였고, 생활의 염려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를 내놓고 정 목사가 아틀란타에 개척 교회를 하러 갔습니다. 교인도 별로 없고 교회도 없는데, 개척 교회를 하기로 작정을
하고 간 것입니다. 그곳에는 임소자 집사 가정과 명륜 교회 집사 가정 밖에 없는데, 개척 교회를 할 각오를 하고 나선 것입니다. 먼저 교회에서는 평안했지만 그것을 내놓고 갔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기반이 다 잡혀서 평안히 교회할 수 있는 자리를 내놓고, 새로 개척 교회를 하러 가는 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면 사경회를 아틀란타 교회에 가서 인도하려고 합니다. 도와주려고 합니다. 또 우리가 보조도 한 달에 얼마씩 해주고 있습니다. 몇 교회에서 보조해주는데, 처음으로 가서 예배당도 얻고 사택도 얻으려면 돈이 꽤 들 것입니다. 예배당은 한 주일에 백 불씩이니 400불이나 500불 될 것이고, 사택은 600불인가 700불인가 하는데 교인이 없어서 감당해나가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몇 교회에서 모아서 보조해주고, LA 동부 교회에서도 보조해주어서 교회를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열 몇 명이 모인다고 합니다. 장년부가 15명 모이고, 아이들까지 합하면 20명쯤이 모인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서 사경회 한 번 해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12월 초에 그 교회에 가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에 남아서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성을 지키려고 자원한 사람들을 위해서 백성들이 축복해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주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축복해주어야 되겠습니다. 주를 위해서 희생하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기반을 버리고 평안한 자리를 버리고 고난의 자리로 갔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머무르길 자원한 것도 다 그런 것입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서 거하기를 작정했습니다. 또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이 있지만 그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이 문제지, 어려운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원수가 쳐들어올 염려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리라 믿고, 사명감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자원해서 거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참 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축복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머문 사람들의 족보를 기록함
본문 3절에 “이스라엘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은 유다 여러 성읍에서 각각 그 본 기업에 거하였고 예루살렘에 거한 그 도의 두목들은 이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본 성, 즉 자기 살 던 본 기업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은 제비 뽑힌 사람들과 백성의 두목과 자원한 사람들입니다.
본문 4-5절에 “예루살렘에 거한 자는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 몇 명이라 유다 자손 중에는 베레스 자손 아다야니 저는 웃시야의 아들이요 스가랴의 손자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오대손이며 또 마아세야니 저는 바룩의 아들이요 골호세의 손자요 하사야의 증손이요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오대손이요 스가랴의 육대손이요 실로 사람의 칠대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의 족보를 조상들까지 언급하며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
본문 6절에 “예루살렘에 거한 베레스 자손의 도합이 사백육십팔 명이니 다 용사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레스 자손 중에 제비를 뽑아서 십분의 일 남은 사람과 자원한 사람들, 그리고 두목들을 다 합한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베냐민 자손은 살루니 저는 므술람의 아들이요 요엣의 손자요 브다야의 증손이요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오대손이요 이디엘의 육대손이요 여사야의 칠대손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조상까지 쭉 기록을 했습니다. 조상들까지 여기에 포함이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머문 사람들의 계통을 기록한 것입니다. 자손들이 잘하면 조상들이 빛나고, 자손이 잘못되면 조상들에게 욕이 돌아갑니다.
우리도 자기 혼자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조상들이 있습니다. 부모, 조부, 또 고조부, 증조부가 다 있는데, 조상들 계통으로 해서 믿음이 내려갑니다. 자기가 잘하면 그 계통이 전부 빛나는 것입니다.
본문 8-9절에 “그 다음은 갑배와 살래 등이니 도합이 구백이십팔 명이라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 감독이 되었고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버금이 되어 성읍을 다스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감독도 뽑았고 성읍을 다스리는 사람도 뽑았습니다.
2. 제사장들이 맡은 일과 일 맡은 자들의 수효
본문 10절에 “제사장 중에는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와 야긴이며 또 하나님의 전을 맡은 자 스라야니 저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므술람의 손자요 사족의 증손이요 므라욧의 현손이요 아히둡의 오대손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전 맡은 사람, 제사장 중에는 하나님의 성전을 맡아서 성전 일을 하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성전을 맡아서 그곳을 보호하며 성전을 위해서 수종을 드는 것입니다. 또 성전을 청소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전의 모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나왔습니다.
본문 12절에 “또 전에서 일하는 그 형제니 도합이 팔백 이십 이 명이요 또 아다야니 저는 여호함의 아들이요 블라야의 손자요 암시의 증손이요 스가랴의 현손이요 바스훌의 오대손이요 말기야의 육대손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들이 성전에서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는 성전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들의 조상을 기록 했습니다. 도합 이백사십이 명입니다.
본문 13-14절에 “또 그 형제의 족장된 자니 도합이 이백 사십 이 명이요 또 아맛새니 저는 아사렐의 아들이요 아흐새의 손자요 므실레못의 증손이요 임멜의 현손이며 또 그 형제의 큰 용사니 도합이 일백 이십 팔 명이라 하그돌림의 아들 삽디엘이 그 감독이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일백 이십 팔 명의 성전 일 맡은 사람들의 감독은 하그돌림의 아들 삽디엘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감독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3. 레위 사람 중에 전 바깥 마당을 맡은 자와 그 수효
본문 15-16절에 “레위 사람 중에는 스마야니 저는 핫숩의 아들이요 아스리감의 손자요 하사뱌의 증손이요 분니의 현손이며 또 레위 사람의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이니 저희는 하나님의 전 바깥일을 맡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 바깥 일을 맡은 사람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바깥 일을 맡은 사람, 그들은 바깥에서 무슨 일을 했겠습니까? 바깥 일 맡은 사람은 성전 바깥에서 아마도 마당 청소, 성문 가꾸는 일을 했을 것 같습니다. 청소하는 일, 정원 가꾸는 일, 성문을 보호하는 일 등 바깥에서 할 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맡은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본문 17-18절에 “또 아삽의 증손 삽디의 손자 미가의 아들 맛다냐니 저는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 되었고 형제 중에 박부갸가 버금이 되었으며 또 여두둔의 증손 갈랄의 손자 삼무아의 아들 압다니 거룩한 성에 레위 사람의 도합이 이백팔십사 명이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 있었습니다. 기도할 때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레위 사람 중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보니까, 당시에 같이 기도하면서 기도하는 것을 배워주는 자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장려하며 감사하는 말을 인도하는 직분을 맡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도도 서로 장려하고 권면해서 힘을 쓰게 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4. 성 문지기와 그 파 사람들
성 문지기의 직임
본문 19절에 “성 문지기는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니 도함이 일백 칠십 이 명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문지기가 몇 명입니까? 성 문지기가 일백 칠십 이 명입니다. 그러면 그 대표가 될 만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악굽과 달몬과 그 형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음
시편 84편 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무엇보다 났다고 하였습니까?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인의 좋은 장막에 거함보다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좋은 장막, 좋은 집에서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전에서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성전 문지기로 있으면 하나님의 집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한 직분입니까? 또 하나님의 집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성전의 문지기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세상 것은 다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인데, 성전 문지기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또 성전에 하나님께서 계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전에는 하나님께서 계시니까 성전 문지기로 일하면 언제나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또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늘 하나님 섬기는 일이 끊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레위 사람들은 성전에서 제사하는 일과 찬송하는 일 등을 하면서 하나님 섬기는 분위기 속에 지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분위기에 쌓여 있는 사람이 얼마나 복됩니까? 죄악의 그늘에 쌓여 있는 사람보다 하나님의 분위기에 쌓여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환경이 나쁘면 사람들이 죄를 짓기 쉽습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검은 곳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검게 됩니다. 비오는 날에 희고 좋은 옷을 입고 나가면 아무리 조심하며 다녀도 흙이 튀는 수가 많습니다. 그런 곳에 안 나가야 더러운 흙탕물이 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이 좋은 것이 아주 귀한 것 같습니다. 환경이 나쁜 데서 믿음을 지키려면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소돔 고모라는 환경이 아주 나빠서 전부 죄 짓는 환경입니다. 롯의 딸들이 믿음 지키기가 아주 힘들었습니다. 롯의 딸들은 소돔 고모라 때 아버지 믿음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신앙을 지켰다고 볼 수는 있는데, 그럼에도 나중에 음란한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것은 소돔 고모라 때 배운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에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도 전체 분위기가 음란, 방탕으로 나가기 때문에 거기서 믿음을 지키기 힘들고 나가서도 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짓는 환경과 분위기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환경 속에서 믿음을 지키기가 아주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학생들이 외국에 공부하러 많이 가 있습니다. 또 브로커들이 돈을 벌려고 호주와 일본과 모스크바로 유학을 하게 해준다고 합니다. 돈 얼마를 받고 몇 달씩 강습을 받게 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전에 말을 들어보니까 한국인 학생들 중에 외국에 가서 공부한 학생들이 열 명 중에 두 명 정도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덟 명은 다 어디로 가느냐 하면 직장에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좋은 직장에는 못갑니다. 여자들은 술집이나 방탕한 곳에 가는 것입니다. 좋은 직장이 어디 있습니까? 말도 못하는데 좋은 직장에 갈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노학희 목사가 안수 받으러 나왔습니다. 지난 화요일에 안수를 받으러 나왔는데, 일본에도 한국 여자들이 그렇게 많이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래는 어학을 연수하러 오고 공부하러 왔는데, 와서는 못 따라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술집에 취직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술집에 가서 몸을 팔고 죄를 지으면서 그 여자들이 교회로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가 서, 너 개 되는데, 이제 그런 여자들이 많이 나오는 교회는 한 번도 “죄를 회개하라”는 소리를 하지 못하고,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좋은 얘기만 해준다고 합니다. 그런 교회에서는 여자들이 술집에 가서 몸을 팔아도 하나 가책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죄를 지적하지 않고 무조건 잘한다, 잘한다고 하면 그 여자들이 연보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학희 목사님 교회에도 그런 사람이 몇 명 나왔는데, 죄에 관한 얘기를 했더니 다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죄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가서 부흥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노학희 목사님이 상당히 많이 고민이 되어서 나한테 물었습니다. “죄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고 그런 사람들을 많이 모아야 합니까? 아니면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해가지고 다 내쫓아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내쫓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성경을 바로 가르쳐야 하니까, 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당장 죄를 짓고 망하는 길로 가는데 가만히 있으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 벙어리이다. 어떻게 교회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성경을 가르쳐서 회개하고 바로 서면 좋지만, 회개하지 않고 다른 교회로 가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성경은 바로 가르쳐야 된다고 했더니 해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이것은 해결 받을 문제도 아닌데, 환경으로 인해 의심이 생겨서 갈팡질팡한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많이 모여 와야 연보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
여자들이 돈을 많이 벌 것 아닙니까? 노 목사가 교회에 연보가 조금 나와서 생활이 곤란하니까 아마 그런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에 유학 간 사람들도 소련 말 잘 모릅니다. 게다가 소련 말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곳에 공부하러 가면 소련어 할 줄 모르고, 무슨
말인지도 모릅니다. 몇 달 배워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세상으로 나갑니다. 열 이면 열, 다 세상으로 나가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외국에 무슨 공부하러 간다, 특히 여자들이 공부하러 간다고 하면 술집에 간다고 써 붙이고 가는 것입니다. 공부는 무슨 공부입니까? 어떻게 모스크바에 가서 공부를 하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소련 말이 얼마나 어려운데 따라 합니까? 또 호주에 가는 아이들도 어떻게 다 따라갈 수 있습니까? 여기서도 학교나 시험에 못 붙었는데, 거기 가서 공부하는 것을 따라갑니까? 가서 공부하는 사람이 열 명 가운데 몇 명 될 것 같습니까? 그러나 일심정력으로 한다면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환경이 중요합니다. 성전 문지기로 사는 환경, 하나님의 교회에서 믿음 지키는 환경 속에 사는 사람, 교회를 중심해서 사는 사람이 참 좋은 것입니다. 또 교회 직분을 맡아서 직분에 얽매이는 환경이 참 좋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이사 갈 때 싹 달아납니다. 직분을 맡게 되면, 안 나오면 심방을 오니까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 갈 때에 간다는 소리도 안하고 달아납니다. 전화번호도 안 가르쳐주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술 먹고 싶으면 마시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좋은 자유가 아닙니다. 이삭을 결박해서 하나님의 제단에 갖다 놓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육신의 자유는 없애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유는 없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고 부족하며 전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자유로 나가면 타락하기 쉬습니다. 그래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얽매이는 생활이 좋고, 서로 권면하는 것이 좋습니다. 돌보는 것이 좋고 서로 약해지면 붙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에 얽매이고, 문지기를 하더라도 직분을 맡아 얽매여 붙들려 있는 것이 참 좋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들 또 중, 고등부 학생들 모두 다 얽매이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 맘대로 하면 안 됩니다. 사람이 다 연약하고 부패성이 있고 육신의 욕심이 있기 때문에, 얽매이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하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문지기로 뽑힌 일백칠십이 명이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본문 20절에 “그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유다 모든 성읍에 흩어져 각각 자기 기업에 거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다 기업으로 돌아갔습니다. 각각 살던 유다 모든 성읍, 즉 본 성의 농사하던 자기 기업으로 돌아갔습니다.
5. 성전 일을 맡을 자와 왕의 수하에서 다스리는 자
본문 21-22절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니 시하와 기스바가 그 두목이 되었느니라 노래하는 자 아삽 자손 곧 미가의 현손 맛다냐의 증손 하사뱌의 손자 바니의 아들 웃시는 예루살렘에 거하는 레위 사람의 감독이 되어 하나님의 전 일을 맡아 다스렸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감독이 되어서 하나님의 교회 일을 맡아 다스린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감독 직분을 맡아서 하나님의 일을 보면서 다스렸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장로 직분인 것 같습니다. 교회 일을 맡아서 다스렸습니다.
본문 23-24절에 “이는 왕의 명대로 노래하는 자에게 날마다 양식을 정하여 주는 것이 있음이며 유다의 아들 세라의 자손 곧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는 왕의 수하에서 백성의 일을 다스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명대로 노래하는 자에게 양식을 정하여 주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귀한 일을 맡은 자입니다.
6. 각 동리에 거하는 유다와 베냐민 자손들
본문 25-30절에 “향리와 들로 말하면 유다 자손의 더러는 기럇 아바와 그 촌과 디본과 그 촌과 여갑스엘과 그 동네에 거하며 또 예수아와 몰라다와 벧벨렛과 하살수알과 브엘세바와 그 촌에 거하며 또 시글락과 므고나와 그 촌에 거하며 또 에느림몬과 소라와 야르뭇에 거하며 또 사노아와 아둘람과 그 동네와 라기스와 그들과 아세가와 그 촌에 거하였으니 저희는 브엘세바에서부터 힌놈의 골짜기까지 장막을 쳤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다 옛날 살던 동네로 돌아와서 그 촌과 동네에 장막을 치고 거기서 살았습니다. 집 짓고 살 사람은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본문 31-35절에 “또 베냐민 자손은 게바에서부터 믹마스와 아야와 벧엘과 그 촌에 거하며 아나돗과 놉과 아나냐와 하솔과 라마와 깃다임과 하딧과 스보임과 느발랏과 로드와 오노와 공장 골짜기에 거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는 기술자가 많고 공장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골짜기에 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본문 36절에 “유다에 있던 레위 사람의 어떤 반열은 베냐민과 합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 사람의 어떤 반열은 베냐민과 합하여 살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루살렘 성전을 다 짓고 난 다음, 즉 예루살렘 성을 다 쌓은 후에 본 지역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백성의 두목들과 자원하는 사람들과 제비 뽑힌 십 분지 일입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에 살면서 어려움이 많이 있었겠지만, 사실은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사람이 희소하고 예루살렘이 황무하지만 이제 얼마 가지 않으면 예루살렘에 사람이 다 차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촌에 거하지만 앞으로 사람들이 다 차면 참 좋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 중심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복된 사람입니까? 성전 문지기, 마당 일 보는 사람, 안에서 일 보는 사람들은 다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교회와 영적 성전 건축을 위해서 사는 사람, 자기의 직무를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겠
습니다. 또 지금은 고생스럽지만 사명감을 깨닫고, 성전 가까운 예루살렘에 자원해서 살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나머지 백성들이 축복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더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이 사람들이 많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전 중심에 사는 사람들은 많은 복을 받습니다. 그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후대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은 고생스럽지만 반드시 그 가정에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우리도 언제나 환경이 편안한 것을 떠나 성전 중심에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사명감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십자가가 오면 십자가를 달게 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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