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5일 수요일

느헤미야 13:15-31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느헤미야 13:15-31

15그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날에 내가 경계 하였고 16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17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8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하고 19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에 내가 명하여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내 종자 두어 사람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매 20장사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 21내가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후부터는 안식일에 저희가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2내가 또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23그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24그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25내가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로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26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27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28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29내 하나님이여
저희가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기었사오니 저희를 기억하옵소서 30내가 이와 같이 저희로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그 일을 맡게 하고 31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1. 느헤미야가 성전을 정결케 하고, 레위 사람을 모아 그 직무를 수행케 함

느헤미야 13장에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1절에서부터 14절까지 살펴보았는데, 느헤미야가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은 영영히 여호와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신명기 23장 말씀을 읽고 그들을 이스라엘 중에서 다 내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하였는가 하면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을 주지 않으면서 도리어 발람을 시켜 이스라엘을 저주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때는 주전 1,500년경인데, 본문은 느헤미야가 2차 포로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때, 즉 주전 457년입니다. 450년경의 일입니다. 1,500년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물도 안 주고 식물도 안 주며, 박대한 그 족속은 그로부터 천 년이나 지난 후의 그 자손들도 복을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나마 유다 백성들 가운데 살던 자도 갈라내어 다 내보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교훈은 이스라엘 구원 운동에 협조하고 도와준 사람은 복을 받고, 이스라엘 구원 운동에 손해를 준 자는 복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대접하지 않고 저주하려고 하는 사람은 다 복을 못 받습니다. 나아가 그 자손들도 복을 못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 진리 운동, 복음 전파, 신학교 등이 다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손해를 주는 사람이 되면 그것은 자기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서 불평, 불만을 하고 교역자에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며 교회에 대해서도 원망, 불평하는 것은 다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도와주는 사람이 되면 복을 받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진노로 그 사람에게 갚아주신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 다음 느헤미야가 둘째로 한 일은 성전을 정결케 한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섬기는 집이므로, 이방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바벨론에 갔다 와서 보니 제사장이 도비야라는 유명한 이방 사람에게 성전의 방을 내주어 성전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것을 알고 진노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다 집어 내버리고 그 방을 깨끗하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본래대로 하나님께 바친 십일조나 제물을 쌓게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다 기억해두신다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제사장의 직분을 바로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다른 지파 같은 지분 없이 하나님 섬기는 일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받을 것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생활이 너무 곤란하여져서 자기 직분을 내버리고 시골로 가서 농사나 하며 사는 경우가 많
이 생겼습니다. 느헤미야가 그것을 알고 민장을 꾸짖으며 일을 바로 처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할 사람을 세우고 생활비를 제대로 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성전이 잘되도록 한 것입니다. 

느헤미야 13장 14절에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성전 일이 계속 잘 이루어져 가게 한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기억하시며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망친 사람들도 잘못된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그냥 거기서 겪어나갔어야 되겠는데, 생활이 곤란하다고 도망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떡하든지 잘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생활비를 안 준다고 해도, 레위 사람들, 즉 성전에 일하는 사람들은 어떡하든지 나가서 벌어먹으면서라도 자기 할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최저 생활을 하면서라도 자기 할 일을 해나가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2. 안식일 범한 자를 경책함

본문 15절에 “그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날에 내가 경계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 지키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술틀을 밟는다는 것은 포도주 짜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그렇게 했다는 것은 요새로 말하면 주일에 포도주를 짜는 것으로, 주일날에 사사로운 일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주일날에 물건을 팔면 안 된다. 짐을 지거나 싣고 다니면 안 된다’하고 경계하였다는 것입니다.

본문 16-17절에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두로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이어서 안식일에 장사를 하지만, 유다 사람인 너희는 왜 안식일에 그것을 사느냐,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는 것입니다. 안식일(주일)에 물건을 사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파는 것을 사는 것도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무엇을 사자고 하는 것은 악을 하나 행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 값은 사망입니다.

본문 18절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열조가 이렇게 안식일을 범했기 때문에, 우리가 재앙을 받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안식일에 일하고 안식일을 범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에 내가 명하여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내 종자 두어사람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이제는 사람을 세워서 문을 지키게 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더욱 철저히 안식일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요새 장사하는 사람이 토요일 저녁에 문을 닫아 주일날에 문을 안 여는 것과 같습니다. 안식일에는 문을 닫고 아무 사람이 와서 일을 보자고 해도 열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20-21절에 “장사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 내가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후부터는 안식일에 저희가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장사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잤다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참 잘했습니다. 아예 장사꾼들이 안식일에 천막에서 자는 것까지 잡겠다고 하니, 그들이 다시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같이 철저하게 하면 잘될 것 같습니다.

3. 안식일을 거룩하게 함

본문 22절에 “내가 또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십니다.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고’라는 것은 아껴주신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사람은 이렇게 됩니다. ‘네가 내 계명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을 지키다가 고난을 받았구나’라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안식일 지키는 사람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13-14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에 ‘오락을 행치 말고 자기 길로 행치 아니하고’라는 것은 주일에 자기 유익을 보려고 나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식일에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고 이 날은 여호와의 날이라, 존귀한 날이라, 즐거운 날이라’고 하며 그날을 잘 지키려면 영적 안식일에 참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즐거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높은 곳에 올리시고 야곱의
업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하시므로 안식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율법주의가 아닙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고, 안 지키면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은 이미 받아놓았으므로 지옥에는 안 갑니다. 안식일 지키는 것은 지에옥
안 가려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적당히 높은 곳에 올리시고, 야곱의 업으로 그 사람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생활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무엇을 사거나 파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외상으로 주일날 무엇을 사거나 먹고 월요일에 갚는 것도 합당치 않습니다. 토요일에 돈 다 내고 주일날 물건을 가져 오며 산 것이 아니고 그저 가져 오는 것이라고 핑계를 해도 안 됩니다. 주일 지키다가 죽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주일에 반찬을 사지 못하여 먹을 것이 없으면, 간장 가지고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간장이 없으면 소금으로 먹으면 됩니다. 쌀이 없다면 하루 굶으면 됩니다. 하루 굶어도 안 죽습니다. 금식을 스스로 자원해서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강제로라도 시키시려고 주일에 쌀이 딱 떨어지게 하신 줄로 알고, 하루 굶으면 됩니다. 굶을 수밖에 없으면 굶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여간 믿음 지키는 것은 이렇듯 생명을 내놓고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날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십니다. ‘네가 주일날을 잘 지키는구나’하고 기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아껴 주십니다. 머리털 하나도 다치지 못하도록 아껴주시고 보호해주십니다. 이렇게 ‘주일’ 하나를 지켜서 얼마나 큰 복을 받습니까? 주일에 무엇을 산 사람은 회개해야 합니다. 주일에 시장에 나가서 반찬거리를 사고 목사가 못 보게 하려고 치마 아래에 감춰가지고 오면, 하나님께서 그 치마 아래를 못 보시겠습니까? 여기도 그런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무엇을 사고서는 안 산 척하고 감추며 돌아가지만, 하나님은 못 속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다시는 사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날에 시험 치는 일, 주일날 대학교 시험 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남에는 아직 없는 것 같은데, 이전에 이북에서는 주일에 중, 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쳤지만 안 친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이라 시험을 못 친다고 해서 학교에 못 다닌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주일에 시험을 쳐서 학교를 다 다녔습니다. 그 당시 주일날에 시험을 쳤기 때문에 학교에 못 간 사람은 6.25 때에 피난을 와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도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일날 시험 친 사람들은 피난 못 온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물며 주일날 시험 친 사람이 어떻게 목사가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주일날에 자격증 시험 안 치고, 자격증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십니다.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정 할 것이 없으면 나가서 장사하면 되지 않습니까? 믿음을 지키다가 직장을 다 떨어지면 장사하면 됩니다. 그래서 무엇 하나 배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예전에 붕어빵 장사하는 사람을 보니 굉장히 장사가 잘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믿음 지키다가 직장 떨어지면 붕어빵 장사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붕어빵 장사는 특별한 기술 없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팔다가 못 팔면 수레를 끌고 저기서 팔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믿음을 지키다가 직장에서 쫓겨나고, 주일을 지키다가 직장을 떨어지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십니다. 무엇을 하고 살든, 다 살도록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는 계명 가운데 참으로 요긴한 계명입니다. 느헤미야가 다른 계명은 두고 주일 지키는 것만 언급하였는데, 주일 성수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일날을 지키는 것은 믿는 표징이고, 계명을 지키는 표징입니다. 주일날을 안 지키면 다 안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주일 성수를 다 내버리고 예수 믿는 때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미국 사람들도 예전에는 주일날을 잘 지켜서 올림픽 기간에도 주일날에는 경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개막식도 주일에 안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미국 사람들이 주일에 별별 일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바로 하되, 주일 지키는 것부터 바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시고 귀히 여겨주십니다. 큰 은혜를 주시고 아껴주십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악한 자가 와서 손도 대지 못합니다.

4. 이방 혼인하는 자를 징계함

본문 23-25절에 “그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았는데 그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내가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로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또 느헤미야가 본즉 유다 사람이 이방 사람인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과 혼인하여 그 자녀들이 성경을 기록한 말인 유다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격분하여 다시는 이방인과 혼사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본문 26-27절에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여자 취하는 것을 크게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요새 이방 결혼, 불신 결혼하는 것은 다 이것입니다. 결혼은 믿는 사람들끼리 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과 결혼해서 그 사람을 교회로 잘 인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개는 믿음이 해이해집니다. 많은 경우에 여자 따라가고, 남편 따라갑니다. 믿음 없는 아내, 믿음 없는 남편을 따라가니까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신 결혼한 후 처음에는 믿음을 잘 지키다가, 그 남편이나 아내를 따라가는 바람에 주일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일에 놀러 다니고 믿음을 떠난 사람이 많은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끼리 결혼하여 믿음에 손해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혼하려고 안 믿으면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들어보면 압니다. 안 믿으면서 거짓으로 ‘믿는다’고 하고 또 교회 나오는 것도 거짓으로 나오면,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악을 행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7절에 “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사람과 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혼사 외에 친구로 지내거나 동업 하는 것도 안 믿는 사람과 짝하고 나가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믿음 지키는 데에 손해를 보게 됩니다.

본문 28절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의 아들이라도 산발랏의 딸을 취해서 아내를 삼았기 때문에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5. 더러워진 제사장을 숙청하고 깨끗한 제사장을 세움

본문 29-31절에 “내 하나님이여 저희가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기었사오니 저희를 기억하옵소서 내가 이와 같이 저희로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그 일을 맡게 하고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 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사람을 다 끊어 내버렸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과 짝하면서 타협하고, 양보하고, 신앙을 철저하게 지키지 못한 것은 직분을 더럽힌 것입니다. 

그리고 나무를 드려 제사에 필요할 때에 사용하게 하고, 처음 익은 열매와 십일조를 드리게 하여 하나님의 성전에서 모든 일이 잘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지장이 없도록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이 잘되게 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느헤미야가 무엇을 잘되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일입니다. 성전을 더럽힌 것, 즉 이방 사람 도비야에게 성전의 방 내준 것을 바로 잡았습니다. 다 내쫒고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드리게 하고 나무를 드려서 제사하게 하였습니다. 또 제사장들이 생활비 문제로 다 도망쳤었는데, 그들을 불러 다시 세웠습니다. 생활비를 주어 하나님 섬기는 직분을 잘하도록 하였습니다. 또 성전을 정결케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주일을 잘 지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어나가도록 일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잘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하고, 주일날을 잘 지키고, 이방사람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잘 지켜나가는 교회와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억해주십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와 성도에게 복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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