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0일 금요일

역대상 19:1-19 암몬 정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암몬 정복
역대상 19:1-19

1그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2다윗이 가로되 하눈의 아비 나하스가 전에 내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 아들 하눈에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고 사자를 보내어 그 아비 죽은 것을 조상하게 하니라 다윗의 신복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러 하눈에게 나아가 조상하매 3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고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를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 신복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4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복들을 잡아 그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5혹이 다윗에게 가서 그 사람들의 당한 일을 고하니라 그 사람들이 심히 부끄러워하므로 다윗이 저희를 맞으러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6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 하눈이 암몬 자손으로 더불어 은 일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 마아가와 소바에 보내어 병거와 마병을 삯 내되 7곧 병거 삼만 이천 승과 마아가 왕과 그 백성을 삯 내었더니 저희가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 좇아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 8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내
었더니 9암몬 자손은 나와서 성문 앞에 진 치고 도우러 온 여러 왕은 따로 들에 있더라 10요압이 앞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 뺀 자 중에서 또 빼서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 치고 11그 남은 무리는 그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붙여 암몬 자손을 대하여 진 치게 하고 12가로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13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14요압과 그 종자가 싸우려고 아람 사람 앞에 나아가니 저희가 그 앞에서 도망하고 15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의 도망함을 보고 저희도 요압의 아우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으로 들어간지라 이에 요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 16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사자를 보내어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내니 하닷에셀의 군대 장관 소박이 저희를 거느린지라 17혹이 다윗에게 고하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아람 사람에게 이르러 저희를 향하여 진을 치니라 다윗이 아람 사람을 향하여 진을 치매 저희가 다윗으로 더불어 싸우더니 18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승의 군사와 보병 사만을 죽이고 또 군대 장관 소박을 죽이매 19하닷에셀의 신복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윗으로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이후로는 아람 사람이 암몬 자손 돕기를 싫어하니라 

1. 암몬 왕이 다윗이 보낸 조문객(弔問客)을 모욕함

다윗이 암몬의 전 왕에게 받은 은혜를 갚으려 함

본문 1-2절에 “그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다윗이 가로되 하눈의 아비 나하스가 전에 내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 아들 하눈에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고 사자를 보내어 그 아비 죽은 것을 조상하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은혜 갚은 일입니다. 다윗이 ‘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내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 아들 하눈에게 은혜를 베풀리라’하고 사자를 보냈다고 했습니다. 다윗 왕은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신세진 것을 잊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갚으려고 하는 이 믿음을 우리가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또 전에 얼마나 은혜를 베풀어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윗이 두로 왕에게 은혜를 입은 것도 있습니다. 

역대상 14장 1절에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석수와 목수를 보내어 그 궁궐을 건축하게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었는데 이제 다윗이 그 은혜를 갚으려고 사자를 보냈습니다. 무언가를 조금 도와준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신세를 졌으면 그 신세를 잊지 않고 언제나 갚으려고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어떻게 해야 갚을 수가 있을까?’, 다윗이 그것을 늘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신세를 갚으려고 하는 그 믿음을 우리가 배워야겠습니다. 주인에게 은혜를 많이 입어 그 신세를 갚으려고 하는 개도 있지 않습니까? 주인을 위해서 죽은 개도 있습니다. 사람이 신세진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 개만도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적인 신세나 육체적인 도움 받은 것들을 잊지 않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은혜 갚는 생활을 하라

특별히 복음에 대해 은혜 받은 것을 갚아야겠습니다. 갚으려고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로마서에 보면 유대 사람이 복음을 너희에게 주었기 때문에 너희는 그것을 갚은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5장 27절에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복음에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령한 것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에게 갚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신령한 것을 나누어주었으니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은 그 복음에 대한 빚을 진 것이기 때문에 여러 면으로 그 신세를 갚겠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땅합니다. 신세를 지고도 언제 신세를 졌느냐고 하고, 또 복음에 대한 많은 빚을 지고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나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습니다. 이렇게 언제나 자기를 조금이라도 도와준 사람에 대하여 일생 동안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기회가 오면 갚으려고 하는 그런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하겠습니다. 

빌레몬서 1장 19절에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너는 이 외에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을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빌레몬이 바울에게 빚을 졌는데 바울이 그것을 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에게 신세 진 사람에게
그것을 받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좋고, 신세 진 사람은 갚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은혜를 베푼 사람은 받으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고, 은혜를 입은 사람은 그 은혜를 갚으려고 생각하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그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누구를 도와준 사람은 그 은혜를 안 받으려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 도와준 것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도움 받은 사람은 은혜를 갚으려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난 미국 사람들을 떠올릴 때 고맙게 생각합니다. 6.25 사변 때 우리가 다 망하게 되었는데 미국 사람들이 도와주어서 망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내놓고 와서 전쟁에 참여하였는데 그 사람들이 안 왔으면 벌써 다 망했습니다. 그리고 식량이나 의복 등의 여러 가지 많은 구제품을 가져다가 거의 죽게 된 우리를 살려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참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안 도와주었으면 우리는 다 굶었을 것이고, 6.25 사변 때 다 망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저는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복음도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미국사람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죽을 고비에 빠졌을 때 자기를 살려주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6.25 사변 이후에 태어났다고 해도 자기 아버지를 살려주고 어머니를 살려주었으니까 그것은 자기를 살려준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이제 참으로 망할 때가 된 것입니다. 다 죽을 날이 가까운 것 같습니다. 자기를 건져준 사람을 좋지 않게 생각하면 결과적으로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젊은 사람들이 너무 철이 없습니다.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은혜를 갚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보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 앞에도 은혜를 갚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라기보다는 마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다가 벌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다가 벌을 받았습니다.
역대하 32장 25절에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라고 했습니다. 그 은혜를 보답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마음이 교만하였기 때문에 보답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교만하므로 그 은혜를 보답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진노하셨다고 했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보답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교만한 자요,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일입니다. 또 사람 앞에도 신세 진 것을 언제나 보답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역대하 24장 22절에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요아스 왕이 그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풀어준 은혜를 보답하지 않고 이렇게 나가다가 망했습니다. 은혜를 보답하지 않다가 그만 엄청난 죄를 짓고 망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답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조그만 신세 하나만 져도 반드시 보답을 합니다. 음식점에 가서 심부름 한 번을 시켜도 반드시 팁이라는 것을 주게 되어 있고 또 줘야 한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안 주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 사람들은 무언가를 시켰으면 거기에 대한 보답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졌으면 반드시 그것을 갚습니다. 꼭 보답하는 정신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결혼식을 해도 그 사람들은 반드시 얼마씩 주게 되어 있습니다. 법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국이야 결혼식을 하거나 다른 것을 해도 뚝 잘라먹고 관두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해주면 그 사람들은 반드시 보답이 있습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보답입니다. 본문에서 다윗이 전에 그 왕의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었는데, 그 왕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아들에게 은혜를 보답할 생각으로 사절단을 보낸 것은 참 잘한 것입니다. 조문객을 보낸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보답하려는 그 정신이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하고, 또 사람 앞에서도 보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보답하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오해하여 선을 악으로 갚지 말 것

본문 3-4절에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고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를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 신복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복들을 잡아 그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선을 악으로 갚은 것입니다. 암몬 왕이 선을 악으로 갚았습니다. 다윗이 선한 마음으로 전에 그 왕의 아버지에게 신세 진 것을 생각해서 조문객을 보냈는데, 그 아들인 왕이 조문객에게 이렇게 아주 악한 일을 했습니다. 수염을 깎고, 의복의 중동 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냈다는 것은 조문객을 얼마나 박대한 것입니까? 조문객을 아주 박대하고, 못살게 대한 것입니다. 선을 악으로 갚은 배은망덕한 일입니다. 자기에게 좋은 마음과 사랑으로 대했는데, 오해해서 악으로 갚았습니다. 선을 악으로 갚고 사랑하는 자를 원수로 대적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다윗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 아닙니까? 자기 아버지 때부터 화친하였는데, 그것을 원수로 대했습니다. 도와주는 사람을 침략자로 인정하였습니다.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을 대적으로 만들어놓고, 자기에게 손해 주는 자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배은망덕한지 모릅니다. 선을 악
으로 갚는 이 사람이 얼마나 악한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것은 이렇게 다 악합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까? 하눈의 신하들입니다. 그들이 왕에게 “다윗이 조문사를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 신복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라고 했습니다. 그 신하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하들이 젊은 사람인 것 같습니까? 나이가 많은 신하들인 것 같습니까? 아마도 젊은 신하들인 것 같습니다. 젊은 사람이 교훈하는 것과 노인들이 교훈하는 것은 다릅니다. 또 하눈 왕도 젊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다음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일찍 죽은 것 같고, 젊은 사람이 왕이 되었는데, 의견을 구할 때에도 젊은 사람에게 가서 물어본 것 같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 나이 많은 모사들에게 가서 물어보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백성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종이 되고, 선하게 말해주면 잘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그들은 강경하게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내 새끼손가락이 아버지 허리보다 굵고, 아버지는 채찍으로 징계했으나 나는 전갈로 징계한다고 하면서 강경하게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강경하게 나가는 것 밖에 모릅니다. 강경하게 나가면서 해치우는 것 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의 장기는 해치우는 것입니다. 생각을 깊게 안 하는 것입니다. 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여러 번 생각하지 않고, 더 넓게 생각하지 못하고, 한 가지만 생각하고 주장할 때가 많습니다. 권리가 있을 때에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을 깊이 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이 신하들을 무엇 때문에 보냈습니까? 젊은 사람들은 하눈의 아버지인 그전의 왕이 다윗에게 은혜를 베푼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젊은 세대가 예전의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이 무엇 때문에 사자를 보냈을지 생각해보았을 때 자신들을 침략하기 위하여 보낸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노인들에게 물어보았으면 그들은 다윗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다윗과 많이 지내보았고 예전에 다윗이 하눈의 아버지와 많은 교제가 있었으며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신하를 보낸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예전에 왕이 다윗과 왕래한 것도 알고, 은혜를 베푼 것도 다 아니까 그 노인들에게 물어보았으면 바로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예전의 것은 모릅니다. 예전 것 들을 모르니까 가운데 내용은 잘라놓고 일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현재 다윗이 사절단을 보냈다는 것만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보니까 젊은 사람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인 이전 왕 때의 사건을 결부시키지 않고, 현재의 것만을 생각하는 것을 보니 젊은 사람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을 몰랐습니다. 다윗의 조문 사절단을 박대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을 모르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해치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생각을 하려면 넓게 생각해야 합니다. 전에 무슨 관계가 있었는가 생각해야 하고, 또 이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그 결과도 생각해야 합니다. 다윗과 더불어 원수가 되어서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도 생각해야 합니다. 원수가 되면 화친을 해야 되겠는데, 도리어 화친한 사람을 원수로 만든 것입니다. 여러 면에서 좀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전의 일도 생각해보고, 또 조문단을 박대한 결과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다윗과 그런 관계를 갖는 것이 옳은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윗이 우리를 해하려고 하는 사람인가 아닌가도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 되겠는데, 너무 얕고 짧게, 자기끼리만 단기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처리한 것입니다. 왕도 다 젊은 사람이기 때문에 다 한 패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신하들의 말이 옳다고 하며 사절단을 박대했습니다. 그러니까 원수를 만든 것입니다. 친한 사람을 원수로 만들고 자신들을 사랑해 주는 사람을 지금 원수로 만들었습니다. 도와주는 사람을 원수로 만들었습니다. 

요즘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을 원수로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대적합니다. 교역자도 이런 교역자가 있습니다. 자기를 길러주고, 가르쳐주고, 어디까지나 도와주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을 원수로 만들고, 대적하고, 배은망덕하게 행동합니다. 이런 사람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 믿고 교역자라는 사람도 그런 사람이 다 있는데, 안 믿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안 그럴 것 같습니까? 또 목사는 더 안 그럴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를 도와주는 사람을 원수로 만드는 것입니다. 50세가 되어야 분수를 알고, 60세가 되면 남의 말을 알아줄 줄 알며, 70세가 되어야만 처신을 할 줄 안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전에 생각하던 것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유치한 것들이 많습니다. 남의 말을 알아듣기도 하는 이제야 조금 힘이 덜 드는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예전에 생각하던 것과 많이 다릅니다. 젊었을 때는 이렇게 했을 텐데 요즘은 안 그렇게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람이라는 것은 나이가 좀 들어야 되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나이가 들은 후에 생각하는 것과 아주 다릅니다. 나중에 늙어보면 다른가 안 다른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잘하는 것 같아도 그것이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109편 4-6절에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저희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악인으로 저를 제어하게 하시며 대적으로 그 오른편에 서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악으로 선을 갚고, 미워함으로 사랑을 갚는다는 말입니다. ‘악인으로 저를 제어하게 하시며 대적으로 그 오른편에 서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어서 시편 109편 7-8절에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며 그 연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연수가 단촉해진다는 것은 가다가 실패한다는 말입니다. 악으로 선을 갚는 사람이 가다가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랑으로 대적을 삼는 사람이 가다가 연수가 짧아질 것은 정해진 것 아닙니까? 가다가 쓰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109편 4-6절 말씀이 딱 맞는 말입니다.

깊이 생각하며 오해를 풀 것

하눈이 다윗 왕의 사절단과 함께 대화를 했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이것은 대화를 했으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오해라는 것입니다. 오해를 가지고 지금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오해가 엄청난 죄를 짓게 됩니다. 오해가 문제입니다. 그 모사들은 아주 미련합니다. 일을 잘한 것 같지만 사실은 미련합니다. 어리석음이 많은 죄를 짓게 하고, 작은 오해가 큰 죄를 짓게 합니다. 사실은 정탐하러 온 것이 아닌데 정탐하러 왔다고 한 것이 오해 아닙니까?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오해가 이런 엄청나게 많은 죄를 짓게 해서 망하게 한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가 망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망합니다. 이 내용 중 아래에 내려가다 보면 전쟁하다가 다 망합니다.
잠언 17장 13절에 “누구든지 악으로 선을 갚으면 악이 그 집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좋은 말씀입니다. 악으로 선을 갚으면 굳이 악이 그 집을 떠날 리가 없습니다. 대화를 좀 했으면 좋지 않았겠습니까? 오해하여 자기들끼리만 일처리를 하지 말고 말입니다. 대화를 좀 더해서 알아보는 것입니다. 한 번 더 알아보고, 또 한 번 더 대화를 하고 해서 충분히 상대방의 의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절단을 보낸 것이 정말로 정탐을 하고자 한 것일까? 그것은 조금만 이야기해보면 압니다. 오해해서 그 생각대로만 해치우지 말고, 한 번 더 대화를 해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알아보는 것입니다. 또 자기도 사절단을 다윗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가서 정탐을 해보는 것입니다. 다윗이 만일 정탐을 하려고 했다면 자기도 다윗에게 정탐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어떻게 대접하는가를 확인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떻게 하든지 선으로 해결해보려고 하고, 또 대화를 해서 근본을 바로 이해하고 해석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또 실제로 정탐을 보냈다고 해도 이렇게 문제를 크게 안 만들 수 있습니다. 가령 실제로 다윗이 정탐을 보냈다고 합시다. 그래도 정탐 보낸 사람들의 의복을 자르지 말고, 수염을 깎지 말아야 합니다. 그 당시에 수염을 자르는 것은 큰 수치였습니다. 여자의 머리를 자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자들 머리를 잘라서 돌려보내면 요즘도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그냥 잘 돌려보내야 합니다. 한 번 정탐을 보냈다고 해도 안 보여주면 될 것이 아닙니까? 정탐을 왔어도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고 그냥 한 집에 머무르게 하면서 음식이나 대접하다가 보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될 것을 사실도 알아보지 않고 확대해서 아예 원수로 취급을 하여 이렇게 만들어놓았으니까 일이 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오해할 수 있습니다. 오해할 만한 일이 생길 때에는 충분히 서로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 생각은 이랬는데 네 생각은 어떤 생각이냐? 그 생각이 옳은 것인가?,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해결해보자고 하면서 만나서 토론을 하고 자기 진심을 다 이야기하면 웬만한 오해는 다 풀어질 수 있습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서로 풀고, 고칠 것은 고치면 됩니다. 이 점은 내가 잘못했으니 내가 고쳐야 되겠고 너는 저 점에서 잘못한 것 같으니 고치고, 서로 이렇게 고치자고 하면
됩니다. 서로가 이렇게 속에 욕심만 없으면 얼마든지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에 이기주의가 있어서 욕심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그저 다른 사람을 제 것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야심만 없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요즘에 정치하는 야당과 여당이 왜 문제 해결이 안 됩니까? 서로가 일을 처리하겠다고 하는 것 때문에 해결이 안 됩니다. 서로 자기들의 욕심을 버리고 진정으로 국가를 사랑하고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합의 개헌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얼마든지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데, 서로 야심을 가지고 있어서 문제가 해결 되지 않습니다. 여당은 여당이 하겠다고 하고, 야당은 야당이 하겠다고 하고, 학생은 학생이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무슨 문제 해결이 되겠습니까? 욕심이 있으면 해결이 안 됩니다. 서로의 욕심만 챙기려고 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냥 그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양보를 안 합니다. 양보하면 저 사람이 차지할 것이고 양보를 안 해야 내 차지가 될 수 있으니까 서로 양보 안 하고 계속 그저 그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욕심을 버리고 어떻게 하든지 큰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진리 운동, 또 하나님의 귀한 생명의 역사를 언제나 중심으로 해서 교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자기가 바로 서려고 하는 믿음, 교인들을 사랑하고 교인들을 살려나가겠다는 마음,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일, 예수님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을 위한 마음을 가지고 한다면 얼마든지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이 야심 때문에 해결이 안 됩니다. 진리가 다르면 그것은 해결이 안 됩니다. 깨달음이 다르면 하나는 동으로 가야 된다고 하고, 하나는 서로 가야 옳다고 하니까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가 같고 교리가 같다고 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또 해결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것입니다. 그런데 교리는 같은데 무엇 때문에 해결이 안 됩니까? 해결이 안 되는 것은 속에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과 이기주의를 버린다고 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해는 항상 풀어야 합니다. 또 실제로 알아보아야 합니다. 저 사람이 날 미워하지 않을까 생각될 때에 미워한다고 하지 말고 실제로 미워하는지 알아보기 바랍니다. 실제로 접촉을 해보아야 합니다. 누가 와서 말을 잘못 전해주었을 때에도 실제로 알아봐야 합니다. 그래서 오해의 마귀라는 것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오해의 마귀, 질투의 마귀, 시기의 마귀가 많이 있습니다. 그 오해의 마귀와 시기의 마귀는 언제나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집사들 사이에도 있고 교인들 사이에도 있습니다. 그것을 언제나 내버려야 합니다. 오해를 풀고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바로 해야만 우리가 모든 것과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갈 수있습니다.

본문 5절에 “혹이 다윗에게 가서 그 사람들의 당한 일을 고하니라 그 사람들이 심히 부끄러워하므로 다윗이 저희를 맞으러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수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고요한 곳에 가서 수염이 자라
나도록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것도 잘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의 수염과 의복이 잘려서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당장에 화를 내며 전쟁을 준비하여 치러간 것이 아니라 잘 참고, 사절단에게 여리고에 가서 수염이 자라나기까지 가만히 있다가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대적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수치를 잘 참고, 그것을 모두 이겨 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떠한 수치를 당해도 당장에 보복하려고 하지 말고, 언제나 잘 참고, 기다리고, 원상회복이 되도록 하는 다윗의 처사를 배워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조금 부끄럽게 했다고 해서 대적하고 전쟁을 준비하면 그 결과가 더 비참해지지 않겠습니까? 부끄러움을 당해도 고요하게 그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실 것을 믿으면 됩니다. 잘린 수염은 새로 나면 될 것이고, 의복은 새로 해 입으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시지 않겠는가 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대적하지 않고, 가만히 인내심을 가지고 다윗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다윗의 믿음이 다 드러납니다. 은혜를 갚겠다는 것과 부끄러움과 멸시를 당할 때 잘 참는 것, 또 원상회복이 되도록 기다리는 것 등을 볼 때 다윗이 믿음이 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믿음을 바로 썼는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암몬이 싸우러 오자 다윗이 요압을 보내어 승리함

본문 6-7절에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 하눈이 암몬 자손으로 더불어 은 일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 마아가와 소바에 보내어 병거와 마병을 삯 내되 곧 병거 삼만 이천 승과 마아가 왕과 그 백성을 삯 내었더니 저희가 와서 메드바 앞에 진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 좇아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고 했습니다. 암몬 왕이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다윗이 싸우자고 안 했는데, 자기가 먼저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입니다. 사실은 다윗이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언제 한 번 싸우자고 했습니까? 다윗은 이
렇게 멸시를 당해도 가만히 참고 있는데, 암몬 자손의 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에게 밉게 보인 줄 알고, 은 일 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 마아가와 소바에 보내서 병거와 마병을 삯 내어왔다고 하였습니다. 병거를 얼마나 삯 내어 왔습니까? 삼만 이천 승입니다.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병거가 이렇게 많은 것이 아닙니다. 

역대상 18장 4절에 보면, 보통 병거가 얼마씩 있었습니까? 병거 일천승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일백 승입니다. 일천 승도 많은 것이고 일백 승도 많은 것인데, 여기에는 병거가 얼마입니까? 삼만 이천 승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이 병거는 그때 신무기였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전차나 비행기가 삼만 이천 대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굉장히 많은 것을 삯 내어 왔습니다. 돈으로는 은 일천 달란트가 됩니다. 은 일천 달란트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렇게 하눈이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을 갖다 주고서 삯 내어 왔습니다. 병거 삼만 이천 승을 가져다놓으니까 아주 자신만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나라에도 병거가 또 있을 것 아닙니까? 삯 내어 온 것 삼만 이천 승과 자기 나라의 군대 등 많은 것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대항하여 진을 쳤습니다.

본문 8-15절에 “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내었더니 암몬 자손은 나와서 성문 앞에 진 치고 도우러 온 여러 왕은 따로 들에 있더라 요압이 앞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 뺀 자 중에서 또 빼서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 치고 그 남은 무리는 그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붙여 암몬 자손을 대하여 진 치게 하고 가로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요압과 그 종자가 싸우려고 아람 사람 앞에 나아가니 저희가 그 앞에서 도망하고 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의 도망함을 보고 저희도 요압의 아우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으로 들어간지라 이에 요압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라”고 했습니다. 암몬 자손과 아람사람이 다 도망쳤습니다. 아무리 삼만 이천 승이라는 많은 병거를 가지고 왔지만, 요압과 아비새의 군대 앞에 다 패전을 해서 도망을 쳤습니다. 

3. 다윗이 아람 사람과 싸워 이김

본문 16-19절에 “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사자를 보내어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내니 하닷에셀의 군대 장관 소박이 저희를 거느린지라 혹이 다윗에게 고하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아람 사람에게 이르러 저희를 향하여 진을 치니라 다윗이 아람 사람을 향하여 진을 치매 저희가 다윗으로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승의 군사와 보병 사만을 죽이고 또 군대 장관 소박을 죽이매 하닷에셀의 신복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윗으로 더불어 화친하여 섬기고 이후로는 아람 사람이 암몬 자손 돕기를 싫어하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18절에 얼마나 죽였다고 했습니까? 다윗이 아람 병거 칠천 승의 군사와 보병 사만을 죽였습니다.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아람 사람을 죽인 것만 해도 군사 사만과 병거 칠천을 합하여 사만 칠천입니다. 아람 사람은 후에 이렇게 죽었는데 그 전
에 도망칠 때 얼마나 많이 죽었겠습니까? 굉장히 많이 희생이 되었습니다. 사만 칠천이 희생이 되었고, 그 전에도 또 많은 군대가 희생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이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다윗은 언제나 방어전을 했습니다. 나가서 먼저 싸운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 사람들이 선을 악으로 갚고 자신의 신복들을 학대했지만 가만히 참고 여리고에 가서 수염이 자라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공연히 이 사람들이 용병을 얻고, 원정을 받아서는 많은 군사를 보내어 싸우러 왔기 때문에 싸움이 난 것입니다. 다윗이 방어전을 한 것입니다. 정당방위인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나가서 방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므로 악한 자를 다 물리쳐 주셨습니다. 악한 자는 첫째 번에도 많이 죽었지만 둘째 번에는 사만 칠천 명이 죽고 관두었습니다. 선이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시지 마귀가 이길 리가 없습니다. 다윗은 선으로 나갔는데, 선이 이기지 악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악은 반드시 망합니다. 악은 쫓아가는 자가 없어도 망하고 선은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므로 이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나 선으로 나가야 합니다. 다윗이 정당방위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나가서 방위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다 죽지 않겠습니까? 먼저 대적하려고 나오는 자가 악한 자입니다. 언제나 선이 이깁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선에 서고, 믿음에 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만 나가면 반드시 이깁니다. 약한 것 같아도 강하고, 적이 아무리 많아도 이깁니다. 암몬 나라가 병거 삼만 이천 승을 삯 내어 왔고, 자기 나라에도 병거가 있을 것 아닙니까? 즉, 암몬 자손도 병거가 있을 것이고, 삼만 이천 승을 더 삯 내어 왔으니 얼마나 병거가 많습니까? 군사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다윗의 병거는 그렇게 많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다윗은 병거가 얼마 없고, 또 군사도 이길 만큼 없는 것입니다. 지금 몇 나라가 모여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적은 군대와 적은 무기를 가지고 나가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물리치실 때에는, 다윗과 그의 군사들과 같이 하시기 때문에 그 모든 악한 자를 물리치고 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악한 자들이 마지막에 와서는 항복을 하게 됩니다. 또 아람 사람들은 다윗과 화친해서 다시는 암몬 사람을 돕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 선이 이긴다는 것, 또 하나님께서 이기신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과 같이 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세력이 강해도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과는 하나님께서 같이 하지 않으십니다. 대적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과 같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까지나 믿음으로 나가고, 하나님 앞에 합당한 길을 걸어가고, 선으로 행해야 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하는 일은 다 잘됩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고, 마귀를 다 이기게 해주시고,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해주십니다. 그 일을 반드시 성공하게 해주십니다. 믿음으로 해야 성공합니다. 배은망덕하고, 악으로 나가는 것은 될 것 같아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군사와 돈과 모든 것이 많아도 그저 배은망덕하고 악으로 나가는 것이 어떻게 잘되겠습니까? 그것은 반드시 가다가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십니다. 언제나 선으로 하려고 하고, 믿음으로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같이 하셔서 반드시 창성하게 됩니다. 승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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