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4일 화요일

역대하 30:21-27 세 가지 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세 가지 복
역대하 30:21-27

21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즐거워하며 칠 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소리 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 22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통달한 모든 레위 사람에게 위로하였더라 이와 같이 절기 칠 일 동안에 무리가 먹으며 화목제를 드리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하였더라 23온 회가 다시 칠 일을 지키기로 결의하고 이에 또 칠 일을 즐거이 지켰더라 24유다 왕 히스기야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칠 천을 회중에게 주었고 방백들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일만을 회중에게 주었으며 성결케 한 제사장도 많았는지라 25유다 온 회중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에서 온 온 회중과 이스라엘 땅에서 나온 나그네와 유다에 거한 나그네가 다 즐거워하였으므로 26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27그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들으신바 되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

1.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는 비결

히스기야 왕의 형통

히스기야 왕에게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되는 비결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18장에 보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되는 비결이 나옵니다. 열왕기하 18장 3-7절에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는 길, 우리가 이 말씀을 잘 배워서 이대로만 하면 히스기야 왕처럼 어디로 가든지 형통합니다.

1) 정직히 행함 첫째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양심을 똑바로 써야 합니다. 

2) 산당을 제함 둘째로 산당을 제하는 것입니다. 히스가야 왕 당시 각 처에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를 하라고 명령하셨지만 솔로몬 때에 예루살렘이 너무 머니까 가까운 데에서 하나님을 쉽게 섬기려고 가까운 산에 산당을 만
들어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기서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성경말씀대로 하지 아니하고 좀 어긋나도 쉽게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을 다 제거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3) 우상을 제거함 셋째는 모든 우상을 다 부쉈습니다. 아세라 목상이나 바알 신당 등 우상을 다 제거하는 것입니다. 

4) 놋 뱀을 부숨 넷째는 놋 뱀을 부쉈습니다. 모세 당시에 불 뱀에 물려가지고 죽게된 사람들이 놋 뱀을 쳐다보기만 해도 다 살았습니다. 그때 만든 놋 뱀을 큰 막대기에 매달았다고 했는데 아마 굉장히 크게 매달았던 것 같습니다. 멀리서도 육십 만 대중이 바라보게 만들
었으니까 크게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지난 화요일 날 신학대학원 강의할 때에 칠판에다가 ‘표징’이라는 글자를 한자로 썼습니다. 난 괜찮게 잘 보이게 쓴다고 했는데, 수업이 끝난 다음에 저 뒤에 앉았던 분이 뒤에서 안보였다고 크게 쓰지 왜 그렇게 썼냐고 했습니다. 앞에서는 잘 보였지만 뒤에서는 안 보인답니다. 뒤에서 보려면 아주 크게 써야 합니다. 이 다음에는 아예 뒤에 앉은 사람까지 잘 보이게 글자를 칠판에다가 크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육십 만 대중이 사방에서 진을 치고 있고 불 뱀이 나와서 물고 돌아가는데 나와서 놋 뱀을 쳐다보면 살게 됨으로,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서 막대기에 달아놓을 때에 상당히 크게 만들어서 높이 달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이 그 놋 뱀을 기념하느라 잘 보관하고 거기에 분향까지 했습니다. 제사까지 한 것입니다. 모세 이후 지금까지 칠백 년 간 놋 뱀을 귀히 여기고 거기다 분향하며 이렇게 내려 왔습니다. 그러던 것을 히스기야 왕 때에 와서 제거한 것입니다. 그 놋 뱀을 다 때려 부쉈습니다. 놋 뱀을 다 때려 부숴가지고 느후스단이라, 놋 뱀 조각이라, 이렇게 놋 조각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에는 귀하게 사용하셨지만 다 사용하신 다음에는 놋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기념하거나 귀히 여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는 귀하지만 일단 한 번 사용하신 뒤에는 놋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용할 때에는 큰 역사가 나타 났지만 그 다음에는 나뭇조각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 여호와께서 호렙 산 가시나무에 나타나실 때에는 아주 귀했지만 그 다음에는 가시나무 조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사용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요새 기념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기념하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니고 그 당시에 사용하던 그 진리, 그 뜻이 귀한 것입니다. 놋 뱀을 때려 부순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5) 여호와를 의지함
다섯째로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했습니다. 전적으로 의지하고 나가는 것이 형통하게 되는 길입니다.

6)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로부터 떠나지 않음
그 다음 여섯째는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와 교통하며 그를 힘입어 사는 것입니다. 

7) 계명을 지킴
일곱째는 히스기야 왕이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니까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6-7절에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는 길이 이것입니다. 이 길로 가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합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는게 좋습니까? 그렇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이 길로 가면 됩니다.
첫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할 것, 양심을 언제나 쓰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산당을 짓고 쉽게 믿겠다는 생각을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성경말씀에 맞도록 말씀대로 멀리 있는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해야 합니다.
셋째는 아세라 목상이나 모든 우상을 제거한 것이고,
넷째는 놋 뱀을 부순 것입니다. 놋 뱀이 이전에는 귀했지만 하나님께서 다 사용하신 다음에는 놋 조각에 지나지 않으므로 우상화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못하겠다,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여호와를 의지하고 나가면 여호와께서 힘을 주셔서 다 할 수 있습니다. 못하겠다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나가면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불가능이라고 물러나 앉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실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여자는 남편하고 갈라져 사는 데, 남편이 아래층에 살고 여자는 위층에 삽니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는 왔다 갔다 합니다. 자는 것은 아버지하고 자고 밥은 아래층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먹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부인에게 남편과 합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너무 무서워서 못 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남편을 이길 수 있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다 이길 수 있다’고 해주었습니다. 사자(獅子)도 이기는데, 남편이 뭡니까? 남편이 아무리 무서워도 사자와 같겠습니까?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는데 권투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인내로써 이기는 것입니다. 순종으로써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여기 남편 못 이길 사람 있으면, 다 나오십시오. 빌립보서 4장 13절을 가지고 나가면 다 형통합니다. 

또 자기 아내를 못 이기는 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한테 매 맞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까 어떤 원로 목사가 은퇴를 했는데 은퇴한 뒤에는 자기 아내를 섬기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 은퇴해 가지고 자기 아내를 섬기겠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 부인은 종을 하나 잘 두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해야지, 부인을 섬기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않는 것, 이것이 또 중요한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교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힘입어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됩니다. 만사형통입니다. 도처형통입니다.

2. 여호와께 돌아와 구원 얻는 법

구원 얻는 비결

이제 여호와께서 돌아와서 자기의 하나님이 되게 하는 법입니다. 역대하 30장 6절에 “보발군들이 왕과 방백들의 편지를 받아 가지고 왕의 명을 좇아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루 다니며 전하니 일렀으되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저가 너희 남은 자 곧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에게로 돌아오리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너희가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여호와께서 남은 자, 너희 남은 자 곧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에게로 돌아오시리라’, 이스라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다 붙여져서 멸망했었습니다. 왜 망했다고 했습니까? 

역대하 30장 7절에 “너희 열조와 너희 형제같이 하지 말라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께 범죄한 고로 여호와께서 멸망에 붙이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니라”고 하였습니다.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멸망에 붙이십니다. 그러므로 열조와 같이 범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멸망에 붙이셔서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앗수르 왕에게 많은 손해를 봤습니다. 많이 잡혀갔습니다. 남은 자만 있는데, 그 남은 자에게 여호와께서 돌아오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 망할 뻔 했는데 아주 망하지는 않고 조금 남았습니다. 이렇게 죄 값은 사망이므로 범죄하면 망합니다.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범죄하면 망합니다. 그러나 거의 다 망해가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돌아오셔서 구원해 주는 길은 있습니다.

1) 여호와께 돌아오라

첫째가 여호와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고 여호와를 찾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전심전력을 다하여 기도
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열조가 망했어도 하나님께서 다시 건져주십니다. 

2) 목을 곧게 하지 말고 여호와께 귀순하라

둘째는 역대하 30장8절에 “그런즉 너희 열조같이 목을 곧게 하지 말고 여호와께 귀순하여”라고 하였습니다. 귀순하라는 것입니다. 목을 곧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며 하나님께 완전히 돌아와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목이 곧으면 못 씁니다. 강퍅하고 목이 곧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 하면 안 됩니다. 한 번 자기 고집대로 작정하면 돌이킬 줄을 모르고 욕심을 채우려고 하고 목이 곧아가지고 한 번 가다가는 돌이켜야 하는데 못 돌이킵니다. 

오늘도 단풍구경 가는 사람들이 있었겠는데 교회 안 나오고 설악 산을 향해서 목이 곧아 가지고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다 목이 부러질 날이 옵니다. 목이 곧으면 부러질 날이 오는 것입니다. 주일날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는데 목이 곧아가지고 돌이킬 줄을 모르고 그냥 가는데, 사실 그 사람들이 불쌍합니다. 우리 교인들도 좀 갔을 것입니다. 아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웬만한 교회는 많이 갔을 것입니다. 무슨 특별한 운동하는 날, 운동 시합하는 날 어떤 교회는 운동 경기에 가느라 예배당 자리 한 절반이 빈답니다. 외국하고 야구하는 날 많이 비는 것 같습니다. 어떤 목사는 주일날 운동 경기를 봐야겠는데 강단을 놓고 갈 수가 없어서 텔레비전을 옆에다 갖다놓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설교한답니다. 한 마디 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또 한 마디하고 텔레비전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 목이 곧아서 못 돌이킵니다. 그것도 목사라고 앉아있으니 그 교인들이 불쌍합니다. 목사를 잘못 만나서 불쌍한 교인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목을 돌이키십시오. 아무리 내가 가려고 했다가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싹 돌이켜서 아예 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귀순하라는 것은 돌아와서 하나님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 진노가 떠나게 하라

세 번째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진노가 떠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역대하
30장 8절에 “영원히 거룩케 하신 전에 들어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 그 진노가 너희에게서 떠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첫째는 여호와께 돌아오는 것이고
둘째는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며
그 다음에는 영적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 섬기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역대하 30장 9절에 “너희가 만일 여호와께 돌아오면 너희 형제와 너희 자녀가 사로잡은 자에게서 자비를 입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하신지라 너희가 그에게로 돌아오면 그 얼굴을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여호와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사로잡혀간 사람들이 많아도 너희와 너희 자녀가 너희를 사로잡은 자에게서 돌아오게 하시되 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자비를 입혀서 돌아오게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사로잡혀 가고 아무리 망하게 되었다고 해도 성도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순종하면서 성전에 들어가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면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로잡혀간 사람들을 다 돌아오게 해주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여러 가지 곤란한 가운데 있지만 돌아올 사람들이 돌아와 회개하고 하나님께 귀순하며 영적 성전에 들어가서 여호와를 섬기면 하나님께서 진노를 끊어주실 것입니다. 사로잡아 간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그 사람들에게로부터 돌아오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이때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입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만나면 멸망시키려고 하신 것에서 돌이키시어 용서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찾고 돌아와 회개하고 순종하며 성전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다 멸망시키시려다가도 다시 용서해주십니다. 포로로 잡혀 가다가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은혜를 입게 해서 돌아오게 해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떠나지 않고 같이 해주십니다. 

우리가 지금 ‘나라가 어렵다, 어렵다’라고 하는데, 그러지 말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또 ‘다른 사람 누가 틀렸다, 누가 틀렸다’하지 말고 자신부터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돌아가면 일은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포로를 돌아오게 해주시는 하나님, 거의 다 망한 것을 돌이켜서 다시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이렇게 될 겁니다.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바로 순종하고 성전 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면 이렇게 됩니다. 거의 다 망했어도 거기서 다시 돌이켜서 원상회복을 시켜주시고 포로로 잡혀간다고 해도 다시 석방시키셔서 돌아오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말씀대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3.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법

예루살렘에 모인 회중이 유월절을 지킴

-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려는 정신이 중요함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성대히 지키다가 좀 잘못한 것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잘못들을 다 용서해주신 것이 나옵니다. 

역대하 30장 15-20절에 “이 월 십사 일에 유월절 양을 잡으니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부끄러워하여 성결케 하고 번제물을 가지고 여호와의 전에 이르러 규례대로 각각 자기 처소에 서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을 좇아 제사장이 레위 사람의 손에서 피를 받아 뿌리니라 회중에 많은 사람이 성결케 하지 못한 고로 레위 사람들이 모든 부정한 사람을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아 저희로 여호와 앞에서 성결케 하였으나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잇사갈과 스불론의 많은 무리는 자기를 깨끗케 하지 아니하고 유월절 양을 먹어 기록한 규례에 어긴지라 히스기야가 위하여 기도하여 가로되 선하신 여호와여 사하옵소서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지라도 사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월에 유월절을 지켰다고 했는데 정월 십사 일이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정월달에는 성전을 정결케 하느라고 유월절을 지킬 새가 없었습니다. 역대하 29장 17절에 “정월 초하루에 성결케 하기를 시작하여 그 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또 팔 일 동안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정월 십육 일에 이르러 마치고”라고 하였습니다. 십육 일까지 성전을 정결케 했으니까 유월절을 십육 일 날 지킬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유월절을 정월에 못 지키면 이 월에 지키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민수기 9장 10-11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인하여 부정케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든지 할찌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이 월
십사 일 해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부정케 된 사람, 여행 중에 멀리 있던 사람은 이 월 십사 일에 유월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시체로 인해서 부정케 되거나 다른 부정한 예식들이 많이 있는데 그래서 정월 십사 일에 유월절을 못 지키면 이 월 십사일에 지키라는 것입니다. 역대하에서도 정월 초에 성전을 정결케 하느라 유월절을 지킬 수가 없었으므로 이 월 십사 일에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지키느라 양을 많이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부정한 사람도 여기 와서 참여했다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30장 17-20절에 “회중에 많은 사람이 성결케 하지 못한 고로 레위 사람들이 모든 부정한 사람을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아 저희로 여호와 앞에서 성켤케 하였으나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잇사갈과 스불론의 많은 무리는 자기를 깨끗케 하지 아니하고 유월절 양을 먹어 기록한 규례에 어긴지라 히스기야가 위하여 기도하여 가로되 선하신 여호와여 사하옵소서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찌라도 사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히스기야가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을 고치신 것을 보니, 그 전에 질병 따위의 어떤 징계가 임했던 것 같습니다. 하여간 고쳐야 할 만한 징계가 왔던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부정한 몸으로 유월절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앞에 성결케 하지 못하고 깨끗케 하지 못한 사람들이 유월절 양을 먹은 것입니다. 따라서 기록한 유월절 규례를 어겼으므로 히스기야가 그들을 생각하며 기도해주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위하여 기도하여 가로되 선하신 여호와여 사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찌라도 사하옵소서’, 결심하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많은 준비를 하여 그 앞에 왔는데 여호와를 구하는 그 사람이 몸을 성결케 하는 것을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여 그 사람에게 무슨 병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 상황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한 것입니다.

무엇이 귀중한가 하면 결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것, 그것이 귀중합니다. 결심하고 모든 준비를 다하고 일심정력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결례에 대한 규례를 약간 범했습니다. 그러나 결심하고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하는 것이 귀하기 때문에 규례를 좀 어긴 것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사해달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큰 것을 보시고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큰 것이 귀중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결심하고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한 것이 귀한 것이므로 규례를 좀 어겼어도 사해달라고 할 때에 사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결심하고 여호와를 섬기려 하고 유월절을 바로 지키려 하는 그것이 아주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지키는 데 재물을 얼마나 바쳤습니까? 

유월절 제물로 많은 소와 양을 바침

본문 24절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칠천을 회중에게 주었고 방백들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일만을 회중에게 주었으며 성결케 한 제사장도 많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백성에게 수송아지 일천과 양 칠천을 주고 또 방백들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일만을 회중에게 주었습니다. 둘을 합하면 소가 이천 마리이고 양은 일만 칠천 마리이므로 모두 일만 구천 마리입니다. 일만 구천 마리를 하나님 앞에 유월절 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일만 구천 마리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많은 소와 많은 양을 유월절 제물로 바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유월절을 아주 귀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월절을 참으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솔로몬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본문 26절에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때부터 없었다고 한 것을 보아 한 이백오십 년 간 이렇게 유월절을 잘 지킨 때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모인 사람들이 유월절을 가장 큰 절기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또 유월절 제물로 바치는 것에 대해 아낌이 없었습니다. 다 갖다 바쳤습니다. 왕보다 방백들이 더 많이 바쳤습니다. 방백들이 국가 재산으로 바친 것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모아서 바쳤겠는데,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께 바치는 데 아낌없이 나간 것은 그들이 유월절을 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유월절 양이 되시어 우리를 위해 피 흘려주실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속죄를 아주 크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소 몇 천 마리, 양 몇 만 마리를 아낌없이 갖다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을 크고 감사히 생각하며 그것을 위해서 바치는 것은 얼마든지 아낌없이 갖다 바치는 생활, 이것이 바로 유월절을 잘 지킨 것입니다. 

이렇게 유월절을 성대히, 아낌없이 다 바쳐 지키니까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본문 26절에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고 하였고 또 본문 27절에 “그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들으신바 되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유월절을 아주 귀하게 여겼는데 이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님의 구속의 피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에 제물을 바칠 때에도 하나님께 아낌없이 바친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 소리가 하나님께서 들으신 바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그 축복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유월절 제물을 드려 제사 드린 것이 받으신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유월절 지키는 정신을 가지고 그 신앙을 지켜 나가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이 됩니다. 우리는 유월절 지키는 정신과 그런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세 가지 복이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는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는 법입니다.
둘째는 여호와께 돌아와 구원 얻는 법입니다.
셋째는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법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는 법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양심을 똑바로 쓰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커먼 맘을 먹고 다니면 안 됩니다. 둘째는 산당을 제하고 셋째는 모든 우상을 철폐하고 넷째는 놋 뱀을 부수고 다섯째는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섯째는 여호와와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일곱째는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만 지키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됩니다. 가다가 길이 막히면 이것을 생각하고 이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가다 길이 막히면 열왕기하 18장을 보고 그대로 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됩니다.

또 포로로 잡혀가고 앗수르 왕에게 침략을 받아서 망하게 될 때에 구원받는 길입니다. 여호와 앞에 전심으로 돌아와 목을 곧게 하지 말고 귀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성전에 들어가라고 하였는데 영적 성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넷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앗수르 왕에게 다 잡혀간 사람도 돌아오게 해주십니다. 다 망하게 된 것인데 아주 망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권고해주시는 것입니다. 원수에게도 자비로운 마음을 주셔서 돌아오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기도가 상달하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는 무엇입니까? 유월절을 지키는 정신입니다. 유월절을 잘 지켜야 합니다. 제물로 왕은 수송아지 일천, 양은 칠천을 바치고 방백은 송아지 일천, 양 일만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 받으시고 큰 희락이 예루살렘에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그 기도가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받으신 바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기쁨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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