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3:1-26 욥이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욥이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함
욥기 3:1-26

1그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욥이 말을 내어 가로되 3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4그날이 캄캄하였었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마셨더라면, 빛도 그날을 비취지 말았었더라면, 5유암과 사망의 그늘이 그날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였었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면, 낮을 캄캄하게 하는 것이 그날을 두렵게 하였었더라면, 6그 밤이 심한 어두움에 잡혔었더라면, 해의 날 수 가운데 기쁨이 되지 말았었더라면, 달의 수에 들지 말았었더라면, 7그 밤이 적막하였었더라면, 그 가운데서 즐거운 소리가 일어나지 말았었더라면, 8날을 저주하는 자 곧 큰 악
어를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가 그 밤을 저주하였었더라면, 9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었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찌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10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였고 내 눈으로 환난을 보지 않도록 하지 아니하였음이로구나 11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유방이 나로 빨게 하였던가 13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14자기를 위하여 거친 터를 수축한 세상 임금들과 의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15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에 채운 목백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16또 부지중에 낙태한 아이 같아서 세상에 있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었을 것이라 17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곤비한 자가 평강을 얻으며 18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19거기서는 작은 자나 큰 자나 일반으로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20어찌하여 곤고한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21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그것을 구하기를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더하다가 22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 23하나님에게 둘러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 24나는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나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구나 25나의 두려워 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26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 

1. 욥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함

본문 1-4절에 “그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이 말을 내어 가로되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남아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었더라면, 그날이 캄캄하였었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마셨더라면, 빛도 그날을 비취지 말았었더라면”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고통이 너무나 심했기 때문에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습니다. 이러한 저주는 욥이 당하는 육신의 고통 뿐 아니라 하나님의 권고가 끊어진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욥이 고통의 유익을 깨닫지 못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본문 5절에 “유암과 사망의 그늘이 그날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였었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면, 낮을 캄캄하게 하는 것이 그날을 두렵게 하였었더라면”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암(幽暗)은 흑암을 가리키고, 사망의 그늘은 사망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사망이 욥이 태어난 날을 정복했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는 것으로,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그 밤이 심한 어두움에 잡혔었더라면, 해의 날 수 가운데 기쁨이 되지 말았었더라면, 달의 수에 들지 말았었더라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밤이 심한 어두움에 잡혔었더라면’은 ‘그 밤이 없었다면’이라는 뜻으로, 자기가 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그 밤이 적막하였었더라면, 그 가운데서 즐거운 소리가 일어나지 말았었더라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욥이 출생하지 않았었더라면 하는 말입니다. 보통 남자 아이가 출생할 때에 온 집안이 즐거워합니다.

본문 8절에 “날을 저주하는 자 곧 큰 악어를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가 그 밤을 저주하였었더라면”이라고 하였습니다. 날을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욥의 생일을 저주하여 그날이 없어서 욥 자신이 나지 않았었다면 좋았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었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찌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었더라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욥이 출생하지 않았다면 좋을 뻔했다는 뜻으로 말한 것입니다. ‘새벽 별들이 어두웠었더라면’하는 것과 ‘동틈을 보
지 못하였었더라면’하는 말은 다 아침이 오지 않았었더라면 좋았을 뻔 했다는 뜻인데, 아마도 욥이 새벽에 출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도 고통이 너무 심하므로 자신의 출생을 저주했습니다(렘 20:14-18). 이렇게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것은 인간의 연약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욥이 연약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음으로 범죄하지 않은 것은 그의 신앙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욥1:22). 히브리서 4장 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히브리서 5장 2절에는“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연약에 싸여 있을 때가 있었고, 피곤에 싸여 있을 때가 있었고,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체휼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욥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 것이었습니까? 욥이 ‘나는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나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구나’라고 하였는데(24절),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징계하시고 분, 초마다 시험하신다고 하였습니다(욥 7:18-19). 욥이 이렇게 심한 고통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인간의 연약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욥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2. 욥이 자신의 출생을 탄식함

본문 10-12절에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였고 내 눈으로 환난을 보지 않도록 하지 아니하였음이로구나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었던가 어찌하여 내 어미가 낳을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유방이 나로 빨게 하였던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욥이 고통이 너무 심하여 태에서 죽어서 나왔다면 차라리 좋았겠다는 뜻입니다. 지금 욥이 너무 고통이 심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본문 13절에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자기를 낳을 때, 자기가 죽었으면 지금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욥은 안식처로서의 죽음만을 바란 것이 아니라,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려는 뜻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욥 19:26).

본문 14-16절에 “자기를 위하여 거친 터를 수축한 세상 임금들과 의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 혹시 금을 가지며 은으로 집에 채운 목백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며 또 부지중에 낙태한 아이 같아서 세상에 있지 않았겠고 빛을 보지 못한 아이들 같았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날 때에 죽었다면 이미 세상을 떠난 세상 임금들과 의사들과 금과 은으로 집에 채운 목백들의 죽음과 낙태된 아이들의 죽음과 같이, 무덤 속에 그들과 함께 평안히 누워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목백(牧伯)은 성주와 군왕을 말합니다.

본문 17-19절에 “거기서는 악한 자가 소요를 그치며 거기서는 곤비한 자가 평강을 얻으며 거기서는 갇힌 자가 다 함께 평안히 있어 감독자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거기서는 작은 자나 큰 자나 일반으로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욥이 출생할 때 죽었었더라면 땅 속에 묻혀 안식과 평안을 얻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아무리 세상에서 곤비한 자라도 죽은 다음에 무덤에 내려가면 평안히 쉰다는 말입니다. 또 거기는 육체적으로 볼 때 감독도 없고 종도 없고 주인과 종이 다 같이 자유스럽게 평안히 쉬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영적으로는 그리스도가 하늘나라에 살아 계신다는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욥 19:25-26). 그러므로 욥이 육체적으로 고통이 너무 심한 가운데 인간의 연약성 때문에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는데 욥은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렇게 하시는가?’라고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믿음에서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리 죽을 지경에 빠졌어도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음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뒤에 하나님께서 욥을 권고해주시고 건져주신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였더라면 일이 다 잘못됩니다. 그러므로 뿌리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시며, 복의 근본이십니다. 즉, 뿌리이십니다. 나무뿌리가 단단히 붙어있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께 단단히 붙어 있으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3. 욥이 곤고(困苦)를 인하여 죽기를 원함

본문 20-22절에 “어찌하여 곤고한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 이러한 자는 죽기를 바라도 오지 아니하니 그것을 구하기를 땅을 파고 숨긴 보배를 찾음보다 더하다가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죽기를 갈망합니다. ‘어찌하여 곤고한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라는 말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곤고하고 번뇌한 자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덤을 찾아 얻으면 심히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는 것은 고통이 막심한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더 원한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 욥은 고통이 너무 심해 세상에 대한 애착심은 다 끊어버리고 천국 갈 소망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하나님에게 둘러싸여 길이 아득한 사람에게 어찌하여 빛을 주셨는고”라고 하였습니다. 살 길이 없는 자에게 왜 아직도 생명을 거두어 가시지 않고, 빛을 비추어 주시는지 욥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빛을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와 권고를 베푸셔서 죽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욥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이러한 상황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징계인 줄 알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께서 앞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잘 참았습니다.

본문 24절에 “나는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나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고통으로 식욕을 잃었기 때문에 음식을 먹기 전에 탄식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무서운 고난으로 욥에게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고, 또 하나님께서 권고해주실 것을 믿고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나갔습니다.

본문 26절에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고 고난만 임하였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갑자기 당한 고난으로 평강도 없고, 안온도 없고, 안식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욥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잘 참으며 나갔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은 우리가 당한 고난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욥은 분, 초마다 침 삼킬 동안도 없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원망하거나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신앙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www.changkwang.kr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