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의 종교 개혁
역대하 34:1-13
1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을 치리하며 2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3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십이 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 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매 4무리가 왕의 앞에서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또 그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5제사장들의 뼈를 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였으며 6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 7단들을 훼파하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8요시야가 위에 있은 지 십팔 년에 그 땅과 전을 정결케 하기를 마치고 그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부윤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9저희가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나아가 전에 하나님의 전에 연보한 돈을 저에게 붙이니 이 돈은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이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서 거둔 것이라 10그 돈을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는 자의 손에 붙이니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에게 주어 그 전을 수리하게 하되 11곧 목수와 건축하는 자에게 붙여 다듬은 돌과 연접하는 나무를 사며 유다 왕들이 헐어버린 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하매 12그 사람들이 진실히 그 일을 하니라 그 감독은 레위 사람 곧 므라리 자손 중 야핫과 오바댜요 그핫 자손 중 스가랴와 무술람이라 다 그 일을 주장하고 또 음악에 익숙한 레위 사람이 함께 하였으며 13저희가 또 담부하는 자를 관할하며 범백 공장을 동독하고 어떤 레위 사람은 서기와 관리와 문지기가 되었더라
역대하 34:1-13
1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을 치리하며 2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3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십이 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 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매 4무리가 왕의 앞에서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또 그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5제사장들의 뼈를 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였으며 6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 7단들을 훼파하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8요시야가 위에 있은 지 십팔 년에 그 땅과 전을 정결케 하기를 마치고 그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부윤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9저희가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나아가 전에 하나님의 전에 연보한 돈을 저에게 붙이니 이 돈은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이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서 거둔 것이라 10그 돈을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는 자의 손에 붙이니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에게 주어 그 전을 수리하게 하되 11곧 목수와 건축하는 자에게 붙여 다듬은 돌과 연접하는 나무를 사며 유다 왕들이 헐어버린 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하매 12그 사람들이 진실히 그 일을 하니라 그 감독은 레위 사람 곧 므라리 자손 중 야핫과 오바댜요 그핫 자손 중 스가랴와 무술람이라 다 그 일을 주장하고 또 음악에 익숙한 레위 사람이 함께 하였으며 13저희가 또 담부하는 자를 관할하며 범백 공장을 동독하고 어떤 레위 사람은 서기와 관리와 문지기가 되었더라
1. 요시야의 종교 개혁
여호와를 구하며 남, 북의 우상을 훼파하여 정결케 함
1)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함
본문 1절에 “요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요시야의 종교 개혁에 대한 내용입니다. 요시야는 선한 왕으로, 나이 팔 세에 백성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 요시야 왕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시야는 40세도 안된 39세의 나이로 일찍 죽었습니다. 악한 왕들은 오래 사는 것 같은데, 참 이상합니다. 악한 므낫세 왕은 67세를 살았는데, 좋은 왕은 39세에 죽었습니다.
2) 다윗의 길로 행함
요시야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이고,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길은 무엇입니까? 열왕기상 14장 8절에 “나라를 다윗의 집에서 찢어 내어 네게 주었거늘 너는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음과 같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길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또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고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길입니다.
즉, 다윗의 길은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좇는 것,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
셋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는 것입니다.
또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좌로 치우쳤다는 것은 성경말씀을 좀 감한 것이고, 우로 치우친 것은 성경말씀을 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은 성경말씀 그대로만 행했다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이 다윗과 같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좇고, 말씀을 순종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에 가감 없이 행했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아 만난 바 됨
또 요시야 왕이 열여섯 살 때 비로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아서 만난 바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15장 2절에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실찌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찾아야 만난다는 것입니다.
또 역대하 15장 15절에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 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만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사방에 평안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간절히 여호와를 찾으며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고 간절한 것이 아닙니다. 큰 소리를 치지 않고 부르짖어도 간절하게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어떤 가정에 아들이 죽어 아이의 어머니가 큰 소리로 울었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그저 가만히 앉아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울지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후에 그 아버지가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달 만에 아이 아버지가 죽은 것을 보면 아버지의 마음이 더 아팠던 모양입니다. 아이가 죽었을 때 어머니가 ‘악악’하고 울었던 것은 사실 아버지 보다 슬픔이 약했던 것입니다. 심정이 정말 갈급하면 ‘아이고’ 소리가 어떻게 나옵니까? 어머니는 그날은 ‘악악’하고 울었지만 곧 평상시대로 다녔습니다. 유상근 목사의 아버지도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때에 목사님의 어머니도 안 우셨다는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로 사 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 그 사 개월 동안 마음으로 그만큼 앓았던 모양입니다. 이와 같이 큰소리로 부르짖는다고 간절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간절하면 큰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 간절하게 부르짖고 전심으로 찾고 찾는 것은 큰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 깊은 곳, 중심으로부터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주여 어떡하겠습니까?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라는 마음으로, 우리의 중심에서 나오는 애통함이 있어야 합니다. 신비주의자들은 대개 발을 구르고 주먹으로 땅을 치면서 ‘하나님! 하나님!’하며 다른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합니다. 혹은 돌멩이를 내어던지고 나무를 꺾어버리면서 고함을 치며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다가 금방 돌아서서는 세상의 잡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가서는 얼마 있다가 죄를 짓고, 또 예배를 드린다며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버릇이 그렇게 든 것 같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은 그냥 내버려두면 몇 시간 동안이나 저희들끼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먹는 이야기 등을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그들이 기도하는 것은 그저 그렇게 습관이 들어서 그러는 것이지, 간절한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이 들면 ‘먹자’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신비주의자들을 따라가지 말고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기도원 기숙사에 들어가 있으면 요즘도 산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소리가 가끔 들리는데, 누가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고함을 치면서 깜짝깜짝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무슨 행동입니까? 자기 아버지한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런 행동은 다 고쳐야 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4) 우상을 제해버림
본문 3절에 “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그 십이 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케 하여 그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
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매”라고 하였습니다. 요시야가 열여섯 살 때에 믿음이 들어갔고, 사 년 후인 이십 세에 우상을 다 철폐하여 예루살렘을 다 정결케 하였습니다.
본문 4-6절에 “무리가 왕의 앞에서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또 그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제사장들의 뼈를 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였으며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앞장서서 우상을 제하니 백성들도 일어나서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시야가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과 만들어놓은 모든 우상들을 부수고 빻아 가루로 만들어 무덤에 뿌렸습니다. 또 우상을 섬기고 죽은 제사장들도 그 무덤을 파서 그 뼈를 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였습니다.
예전에 므낫세 왕도 우상을 철폐했습니다. 그러나 므낫세는 그것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보관해두었습니다. 요시야 왕과는 차이가 납니다. 이렇게 요시야 왕이 우상을 철폐한 것은 아주 잘한 것입니다. 요시야 왕의 우상 철폐는 우상들을 아주 가루를 내어 다시는 가져올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근본을 다 없앤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청산할 때 이렇게 하여야 합니다. 죄를 없애고 인본주의와 우상을 철폐하되 아주 가루를 내어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가져올 수 없도록 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후대에도 그것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또 우상에게 제사한 제사장들의 뼈를 단 위에서 불
사른 것은 죄를 철저하게 미워한 것입니다.
중들도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이 절에서 매일 우상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새 중들과 기독교 목사들이 서로 대화를 한다고 합니다. 또 중하고 같이 연합 예배를 보고 있습니다. WCC에서 불교의 중들과 기독교의 목사들과 천주교의 신부들과 이슬람교의 지도자들, 나아가 시크교도와 힌두교도들을 합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이 됩니까? 한국 교회가 이만큼 타락이 되고 전 세계 기독교가 이토록 타락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분별력이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용납하고 우상 섬기는 것을 용납하는 것입니다. ‘같이 나가자. 대화하자. 같이 예배드리자. 너는 너의 신에게 기도해라.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 기도한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섬기는 것을 소홀히 하고 비 진리와 합하여 나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그런 제사장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말살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 앞에 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독선주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독선주의가 아니라 성경주의입니다. 성경에 우상 섬기는 것을 다 말살시키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그런 자들과 대화를 하고 같이 예배를 드립니까? 믿지 않는 자들이라면 종교의 여러 다양한 종류로 보고 ‘불교도 종교이고, 기독교도 종교인데 왜 남의 종교를 무시하느냐? 기독교는 그런 점이 틀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말을 여러분이 들어본 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천하 인간에 예수 이름 이외에는 구원이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 이외에는 참 신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다 우상이고 마귀입니다. 다른 것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독선주의라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5) 남북의 우상을 철폐하여 깨끗하게 만듦
본문 7절에 “단들을 훼파하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고 하였습니다. 우상의 완전 철폐를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했습니다. 즉, 남쪽 나라에서 북쪽 나라까지 전부 다 행하여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시야는 자기와 가까운 곳만 깨끗하게 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북쪽 나라까지도 깨끗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요시야의 우상 철폐 정신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이제 이북에도 복음의 문이 열리면 우리가 들어가 복음을 전하여야 되겠습니다. 지금은 북한 선교를 할 수 없는데, 많은 돈을 쓸 필요도 없겠습니다. 현재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대로 한국에서 일을 하고, 또 외국에도 길을 열어주시는 만큼 나가면 됩니다. 지금 우리가 필리핀에도 선교사 몇 명을 보내려고 하니, 갈 사람은 지원하십시오. 하여간 어떡하든지 힘이 미치는 대로 전도하며 하나님께서 힘주시는 대로 일하여야 합니다. 현재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최선을 다하여 전도해 나가다가, 이북에 전도의 문이 열리면 그때에 최선을 다하여 전도하면 되겠습니다. 지금에 주시는 대로 최선을 다 합시다. 이 다음에 하겠다고 하면서, 지금 전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 요시야가 성전을 수리함
성전을 짓기까지 믿음의 순차를 따름
본문 8-11절에 “요시야가 위에 있은 지 십팔 년에 그 땅과 전을 정결케 하기를 마치고 그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부윤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저희가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나아가 전에 하나님의 전에 연보한 돈을 저에게 붙이니 이 돈은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이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거민들에게서 거둔 것이라 그 돈을 여호와의 전 역사를 감독하는 자의 손에 붙이니 저희가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에게 주어 그 전을 수리하게 하되 곧 목수와 건축하는 자에게 붙여 다듬은 돌과 연접하는 나무를 사며 유다 왕들이 헐어버린 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요시야의 한 일은
첫째, 하나님을 구한 것으로 자기가 은혜를 받는것, 즉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둘째는 우상 철폐, 더러운 것을 다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셋째는 성전 수리, 하나님의 영적 성전을 바로 세운 것입니다. 무너진 성전을 다시 수축하는 일은 참 교회를 바로 세워나가는 일입니다.
첫째가 자기 문제,
둘째가 죄 문제,
셋째가 성전 건축 문제인 것입니다. 순서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상 철폐를 한 다음 성전을 정결케 하였는데, 성전 정결의 때까지 약 6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면 성전을 정결케 하는데, 왜 그렇게 오랜 기간이 걸린 것입니까? 우상 철폐는 1년도 못 걸려서 다 이룰 수 있었을 텐데, 6년 후에나 성전을 수리한 것을 보면 아마 반대파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반대파들이 나와서 성전 정결의 일을 저지했던 것 같습니다. 우상 철폐하는 일을 왕의 명령으로 하였어도, 우상 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반대하는 세력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일하지 못하고 차츰 해나간 것 같습니다. 또 우상 철폐하는 일을 할 때에 반대파들을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면서 무리가 되지 않게 일하느라 6년의 시간이 걸린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을 하나 개혁하려면 시일이 걸리게 마련입니다. 한꺼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 수리
1) 정성을 다하여 성전 수리 연보를 함
성전을 수리하는 데 여러 사람이 협력하여 연보를 하였습니다. 성전은 여러 사람 모두의 성
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적 성전을 세워나가는 일이 여러 사람이 협력할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오늘날 참된 진리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도 여러 교회가 협력해야 합니다. 한, 두 교회만 할 것이 아니고 각 교회마다 연보도 하고 기도도 해주며 서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 먹고 남은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있는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상당히 가난했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성전 건축 연보를 많이 하였습니다. 가난한 가운데 드리는 연보가 진짜입니다. 가난해도 연보를 하려고 힘을 쓰면 할 수 있습니다. 각 교회도 원조 받으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보조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받으려는 생각만 하면 평생 얻어먹게만 됩니다. 도와줄 생각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넉넉하게 주셔서 도와줄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해주십니다. 고린도후서 8장 2-4절에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도 이렇게 한 것입니다.
또 예전에 유다 왕들이 하나님의 전을 많이 헐어버렸으므로 수리를 위하여 여러 사람을 보냈는데, 하나님을 위해 가서 일할 만한 중요한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나가 전에 연보해 둔 돈을 가지고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습니다.
2) 진실하게 성전을 수리함
본문 12-13절에 “그 사람들이 진실히 그 일을 하니라 그 감독은 레위 사람 곧 므라리 자손 중 야핫과 오바댜요 그핫 자손 중 스가랴와 무술람이라 다 그 일을 주장하고 또 음악에 익숙한 레위 사람이 함께하였으며 저희가 또 담부하는 자를 관할하며 범백 공장을 동독하고 어떤 레위 사람은 서기와 관리와 문지기가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범백 공장은 각종 기술자를 뜻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진실히 그 일을 하니라’고 했는데, 이 말이 중요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 일은 진실과 충성과 전심을 기울여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 또 진리를 세워나가는 일, 한국 교회의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진실하게 해야 되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성경말씀을 내어놓고, 신비주의와 신 신학으로 기울어져 지금 모퉁이가 다 무너진 가운데 있습니다. 또 요즘은 교회마다 서로 싸우고 다투어 교인들이 가서 영적 양식을 얻어먹을 데가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돈만 자꾸 내라고 하고, 또 권력만 쓰려고 하니 상처를 받아서 사방으로 유리하는 교인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천에도 그런 교회가 많다고, 그곳에 목요일에라도 가서 성도들을 모아놓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하므로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지금 양떼가 굶어서 사방로 유리하고 있는데, 그곳에 가서 신령한 양식을 먹여주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여 앞으로 교회를 세우게 되면 좋겠습니다. 교인들이 지금 사방 산과 들로 유리하면서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상처를 받고 돌아다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한 사람이라도 신령한 양식을 먹여주고, 상처를 싸 메어 주고, 바로 세워 주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다른 곳에도 유리하는 성도가 많을 것입니다.
1984년 박조준 목사 사건은 기독교 전도의 문을 막히게 만든 마귀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근래에 많이 타락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또 천주교 교황이 왔다 간 관계로 천주교로 많은 사람들이 간다고 합니다. 특히 천주교가 내내 반정부 운동에 앞장서 나가니 반정부 인사들이 천주교로 많이 간다고 합니다. 또 학생들이 많이 간다고 하는데, 김수환 추기경이 학생들 편에 서서 옹호해주고 하여 젊은 사람들이 천주교에 많이 가는 것 같습니다. 천주교는 잘못된 부분이 많은데, 사람들이 잘못된 곳에 많이 가고 있으니 참 안됐습니다. 또 WCC 계통에서 해방 신학이 들어오고, 각 교회마다 신비주의가 들어가, 양떼에게 신령한 양식을 먹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많은 양들이 쫄쫄 굶고 힘이 다 없어지고 약해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방으로 유리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신령한 양식을 먹여주는 것이 참으로 필요한 일임을 알아야겠습니다. 그것이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너진 제단을 수리하고 다시 수축 하는데 있어서는, 진심과 충성으로 전심전력을 다하여 희생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대접을 받겠다는 생각은 절대 그만 두고 결사각오하며 어떡하든지 양떼를 살리는 데만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오늘날 제단을 수축하는 일, 한국 교회를 수축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과 충성과 전심전력을 다 해야 되겠습니다.
3) 성전 수리의 관할자를 세움
그런데 본문에서 성전 수리하는 일을 할 때 ‘동독(董督)’과 ‘관할’(13절), 그리고 ‘주장’(12절)이라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동독’이라는 것은 감독을 한다는 뜻입니다. 일을 하는 곳에는 감독과 주장하는 사람이 없으면 일이 잘 안되기 때문에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성전 수리하는 일을 할 때 ‘동독(董督)’과 ‘관할’(13절), 그리고 ‘주장’(12절)이라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동독’이라는 것은 감독을 한다는 뜻입니다. 일을 하는 곳에는 감독과 주장하는 사람이 없으면 일이 잘 안되기 때문에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기도원에서도 일을 시킬 때, 감독을 안할 때보다 할 때가 능률이 3배나 올라갑니다. 4월 5일 식목일 기도원 봉사 때마다 감독이 함께 일을 하는데, 금년에도 그때는 교역자들과 목사들이 감독이 되어야 합니다. 보통 한 200명이 얼추 모이는데, 감독이 없으면 우왕좌왕하다가 일을 얼마 못합니다. 무엇을 할 줄 몰라 서로 떠밀기만 하고 일은 얼마 하지도 못하고 점심만 먹고 돌아가면 밥 값도 못하는 것입니다. 또 그날에 아이들도 나오겠다고 하니 더욱 감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4월 5일은 해마다 기도원에서 봉사하는 날로 내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4월 5일 결혼식 주례를 서달라고 하여 못 하겠다고 해도 자꾸 해달라며 근 한 달을 쫓아다닙니다.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해 달라고 합니다. 전날 하라고 하니까 안 된다고 꼭 그날 해달랍니다. 그래서 1년 365일 중 하필 내가 꼭 봉사를 나가야 하는 날 하느냐고 하니, 그 사람들은 일생 한 번 하는 결혼식을 부탁드리는데 이것도 못해주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사님을 오랫동안 받들어 왔는데, 이해를 못해 주시느냐고 하면서 너무 섭섭하다며 도무지 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도 일생 동안 가르쳐놓았는데, 이것도 하나 순종을 못하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생각을 하다 결정을 못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김종기 목사에게 물었더니, 기도원 봉사는 다른 목사님들이 맡아서 할 터이니 주례를 하시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순종하려고 합니다. 서로 간에 각각 상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 가운데 있으니, 순종을 배워 김종기 목사 말대로 하기로 한 것입니다. 목사님들끼리도 순종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자기 고집만 내세우면 안 되겠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감독이 있어야 합니다. 관할하는 사람,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또 동독을 받아야 합니다. 교단도 마찬가지로 각 교회로 시찰을 가서 좀 알아보고 각 교회는 주장을 받아야 합니다. 자유롭게 해나가면서 ‘우리는 터치하지 마라. 노터치다.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면 교회 일이 안 됩니다. 반드시 감독이 있고 관할을 받아야 일이 제대로 되어 나갑니다. 우리는 감독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주장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자리에 서야겠습니다. 그래서 서로 간에 영적 성전, 큰 성전을 지어나가는 일을 해나가야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