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4일 금요일

시편 36:1-12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거하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거하라
시편 36:1-12

1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하니 2저가 스스로 자긍하기를 자기 죄악이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3그 입의 말은 죄악과 궤휼이라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4저는 그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불선한 길에 서고 악을 싫어하지 아니하는도다 5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6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 7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8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9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10주를 아는 자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하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의를 베푸소서 11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미치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12죄악을 행하는 자가 거기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

1. 악인의 마음과 언행(言行)

본문 1절에 “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의 죄악을 볼 때에 내 마음에 깨닫는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죄 짓는 것을 볼 때에 성도가 마음에 깨닫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깨달았
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없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그렇게 거침없이 악을 행하지 못하겠는데, 거침없이 악을 행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없다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저가 스스로 자긍하기를 자기 죄악이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 들은 스스로 뭐라고 자랑한다고 하였습니까? 그들은 자기 죄악이 드나지 아니하고 또 하나님께 미워함을 받거나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악한 사람들이 죄를 지으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 죄가 드러나서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고 심판을 받는 줄 알면 그들이 죄를 짓지 못하겠는데, 거침없이 죄를 짓고 나가는 것을 보면 죄가 드러나지 않을 줄 안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하나님께 미움을 받거나 심판을 받는 일이 없는 줄로 알고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3절에 “그 입의 말은 죄악과 궤휼이라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입의 말은’이라는 것은 악한 사람들의 말을 가리키는 것으로, ‘죄악과 궤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입의 말은 죄를 짓는 말, 궤휼(詭譎), 즉 속이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이 진실한 말을 하지 아니하고 죄짓는 말과 속이는 말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죄악과 궤휼로 나가니까 지혜가 다 없어집니다. 진실하며 바로 하려고 해야 지혜가 있을 것인데, 그 사람들은 죄와 궤휼로 거침없이 나가기 때문에 지혜와 선행이 다 그쳤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저는 그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불선한 길에 서고 악을 싫어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침상에서라도 악을 꾀한다는 것입니다. 침상은 모든 것을 반성하고 회개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하루 종일 복잡한 세상에서 돌아다니다가 침상에 오르면 고요한 가운데 기도하며 반성하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침상은 그런 장소인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은 회개할 줄을 모르고 침상에서도 여전히 죄악을 꾀한다고 하였습니다.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불선한 길에 서고 악을 싫어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악한 사람들은 침상에서 악을 꾀하고 또 일어나면 부지런히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불선(不善)한 길, 옳지 않은 길에 언제나 서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2. 여호와는 진실과 의가 무한하심

본문 5절에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여호와여’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또 ‘성실하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공중에 사무쳤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하늘에 충만하다는 뜻입니
다. 하나님께서 인자와 사랑을 하늘에서부터 내리 쏟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하늘에서부터 우리에게 무한정 쏟아져 내리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성실이라는 것은 진실성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진실한 모든 것이 하늘에 사무쳤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 즉 천체 만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창조된 것입니다. 또 말씀대로 그것이 운행되어져 나갑니다. 모든 천체가 움직일 때에 질서가 있습니다. 모든 별들이나 해와 달이 서로 부딪히지 않습니다. 늘 움직이면서도 자기 궤도대로 움직입니다. 세대가 변하고 세상이 다 변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그 천체들은 조금의 변함도 없이 계속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렇게 운행되어져 나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진실하심을 드러내고 있다는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시계라도 몇 십 년을 가다보면 조금이나마 틀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지구가 하루 24시간에 한 바퀴를 도는데, 그것은 몇 천 년이 가도 일 분도 안 틀립니다. 몇 백 년, 몇 천 년이 가도 일 분도 안 틀리고 그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또 별들마다 자기 길이 있습니다. 다니는 길이 다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만들어놓으신 것이 변치 않고 그대로 나가고 또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자연 법칙대로 모든 것이 운행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진실하심이 하늘에 가득하게 증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 모든 천체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공중에 충만하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땅 덩어리가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땅이 다 파괴되지 아니하며 견고하게 서 있는 것도 하나님의 진실성을 우리에게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의’는 무엇과 같다고 하였습니까? ‘여호와의 산’과 같고 또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
나님의 산과 같이 견고하게 서 있다는 것입니다. 견고 부동, 하나님의 의는 견고 부동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의에 선 사람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의를 이루셔서 그 의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러한 하나님의 의는 영원 부동한 산과 같이 견고하고 부동하다는 것입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주님의 의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 하나님의 다스리심, 통치가 큰 바다와 같이 넓고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굴곡이 없습니다. 또 넓고 무한히 공평해서 모든 사람과 짐승과 모든 산과 만사에까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바다와 일반이라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넓고 크고 자비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도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 하나님의 너그러운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사람 뿐 아니라 짐승까지도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이 얼마나 큰 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짐승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은 어떤 사람이든지 다 사랑하십니다. 아무리 천한 사람,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는 다 사랑하시고 보호해주십니다. 또 악한 사람들도 보호해주십니다. 악한 사람들도 심판 날까지는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십니다.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십니다. 또 꺼져가는 심지와 같이 깜빡깜빡하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꺼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심판 날까지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며 인도해주십니다.

3. 여호와께 피하는 자에게는 신령한 선물을 주심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무나 크고 보배로움

본문 7절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사랑하심은 너무 크고 너무 귀해서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크고 어찌 그리 보배로운지, 모든 사람을 다 용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사람을 다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주시는 인자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그리 무한하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주시는지, 참으로 보배롭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날개 그늘 아래 피하러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이 피하러 들어가면 하나님께서는 그 날개 아래 그들을 품어주십니다. 하나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날개 그늘 아래 피하러 들어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다 품어주시고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내쫓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면 아무 것도 염려할 것이 없음

마태복음 23장 37절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에다 넣는 것처럼 우리를 언제나 하나님의 품속에 품어주십니다. 우리를 모아주시고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는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이 세상에는 환난이 많습니다. 악한 사자나 곰이 와서 우리를 잡아 삼켜 먹으려 하는 험악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십니다.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하도록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십니다. 찬송가에도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환난을 당한 사람은 다 피난처이신 예수님의 날개 아래로,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악한 자가 와서 손도 대지 못합니다. 그곳이 안식처가 됩니다. 그 날개 아래에는 하나님의 보호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적을 막아주시고 따스한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날개 아래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외적만 막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따스하게 해주십니다. 따스한 온기로 보호해주시고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한 날개입니다. 하나님의 날개가 참 좋은 곳입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들어오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버린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도 안 버립니다. 날개 아래로 들어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도 안 버리십니다. 요한복음 6장 37절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요한복음 6장 39절에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오는 사람은 참 좋습니다. 하나도 내쫓지 않으시고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어떤 사람이 와도 그 날개 아래에 품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고 회개하고 들어오면 다 품어주십니다. 다 보호해주십니다. 다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이렇게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집 없는 사람이 걱정할 것이 있습니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날개 아래로 가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가면 됩니다. 집이 없다고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암탉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면 거기가 집이고 그곳이 피난처가 되는 것입니다. 또 보호자가 없다고 해서 걱정할 것이 있습니까?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걱정할 것 없습니다. 날개 아래로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하나님께서 다 지켜주십니다. 무엇을 걱정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고아의 아버지이시요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고아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억울하게 과부의 재산을 빼앗고 멸시한다고 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누가 재판장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재판장이십니다. 시편 68편 5절에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하였습
니다. 다시 말하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아의 아버지이십니다. 또 고아의 재판장도 되십니다. 과부의 아버지도 되시고 과부의 재판장도 되십니다.

하여간 성도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 즉 피할 데가 있기에 아무 염려가 없습니다. 언제나 날개 아래로 피해 들어가는 사람은 아주 복 받은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피하는 생활을 계속해서 해야 합니다. 병아리가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독수리가 오면 어떻게 합니까? 막 다다닥 뛰어가서 자기 어미 닭 날개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다닥 뛰어갑니다. 여기 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독수리를 만나면 쌩 하고 뛰어가서 그 어머니 날개 아래 쏙쏙쏙 다 들어갑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나가 돌아다니다가 개도 만나고 소도 만나고 고양이도 만나고 무서운 것들을 만나면, 어디로 가라고 하였습니까? 날개 아래로 뛰어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와서 물 것 같아도 날개 아래로 들어가고, 독수리가 와도 날개 아래, 새 매가 와도 날개 아래, 개가 따라와도 날개 아래, 날개 아래만 들어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날개는 기도를 많이 함으로 들어갈 수 있는 영적 세계임

그러면 날개 아래가 어디입니까? 날개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날개가 어디에 있습니까? 뛰어가려면 어디로 뛰어가야겠습니까? 예배당이 하나님의 날개입니까? 예배당도 어느 정도, 좀 먼 날개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껍데기 날개는 될 것 같습니다. 예배당에 와서 날개로 쏙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 기도원도 껍데기 날개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 날개 아래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날개는 영적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영적 세계가 날개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 세계를 찾으려면 예배당에 나오고 기도원에 가고 또 기도실에 가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렇게 영적 세계를 찾을 때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날개 아래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야만 날개 아래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날개 아래로 못들어갑니다. 회개하면서 기도를 많이 하면 날개 아래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기도원에 가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기도원에 가려고 하는데, 끝나자마자 직분들은 가서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기도를 해야 날개로 들어갑니다. 기도 안 하면 날개 아래로 못 들어갑니다. 하루 2시간 이상은 기도해야 합니다. 보통 2시간 기도를 못하면 마귀에게 졌다고 합니다. 이번에 기도원에 가서 몇 시간 좀 기도해보십시오. 고요한 데로 찾아가면 그것이 날개입니다. 졸지 마십시오. 날개 아래로 들어가야 하는데, 왜 졸고 앉아 있습니까? 졸면 날개 안으로 들어가겠습니까? 졸면 안 됩니다. 날개 아래로 들어가려다가 졸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병아리가 독수리한테서 도망쳐 뛰어가다가 졸고 앉아 있으면, 독수리가 가만 놔두겠습니까? 졸지 말아야 합니다. 뛰어가서 끝까지 쑥 들어가야지, 중간에 가다 졸면 안 됩니다. 달아나야 합니다. 깨어 있어 기도하고 힘써 그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라고 하면서 달음박질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날개 아래로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날개 아래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주십니까?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거하는 자의 복

본문 8절에 “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날개 아래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주의 집의 살찐 것을 가져다 풍족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먹고 배부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마실 물은 복락의 강수입니다. 그것이 넘쳐흐릅니다. 하나님께서 철철 넘치게 만들어주십니다. 즉, 주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니까 먹을 것이 넉넉하고 생수가 넘쳐 나왔습니다. 복락의 강수가 넘쳐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이 진짜 하나님의 나라이고 복락의 장소이고 낙원입니다. 신령한 양식이 넘쳐흘러서 만족하고 충만한 자리입니다. 가득합니다.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니까 이렇게 풍성한 것입니다. 강수가 흘러내려갑니다. 철철 넘치게 내려갑니다. 한없는 기쁨, 한없는 즐거움, 한없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참으로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찐 것으로 먹는다’는 것은 은혜의 신령한 양식을 넘치게 먹는다는 뜻입니다. 살찐 고기와 모든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주시고 또 복락의 강수를 넘치도록 부어주셔서 풍족하게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부족함이 있습니까?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피하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아무 곳에 가도 괜찮고 무슨 일을 만나도 만족하고 기쁩니다. 또 죽어도 즐겁고 환난과 궁핍을 당해도 승리적으로 통과하게 됩니다. 가장 행복스런 사람이 됩니다. 세상 것이야 많든지 적든지, 그 날개 아래 있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벌써 부유한 사람이고 생명수가 넘치도록 사는 사람입니다. 가장 복 받은 사람입니다.

본문 9절에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원천이 주의 날개 아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복락의 강수를 처음에 좀 가져다주었고, 이제는 원천이 터졌습니다. 생명의 원천이 있어서 생명강수가 강같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빛 가운데 항상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의 빛을 바라보고 그 빛 가운데서 항상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주를 아는 자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하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의를 베푸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사랑을 계속 쏟아 부어주십니다. 주의 날개 아래에는 주의 사랑이 계속 폭포수와 같이 쏟아져 내려옵니다. 또 주의 날개 아래서 마음을 정직하게 가질 때에 하나님께서 주의 의를 베풀어주시고 의롭다 하심을 입혀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의 날개 아래 있으면 몇 가지를 주시는 것입니까? 여섯 가지입니다. 주의 날개 아래 있는 자에게는 첫째, 살찐 것으로 풍족하게 해주시고 둘째, 복락의 강수로 마시게 해주시고 셋째, 생명의 원천 샘이 터져 생수가 강같이 나오게 해주시고 넷째, 주의 광명 중에 자기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게 되고 다섯째, 주의 사랑이 폭포수와 같이 쏟아져 내려오게 되고 여섯째, 하나님께서 주의 의를 입혀서 의인을 만들어주십니다.

4. 여호와는 성도를 보호하시고 악인은 심판하심

본문 11절에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미치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의 날개 아래 사는 사람에게는 교만한 자의 발이 미치지 못합니다. 악인의 손도 그를 쫓아내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는 교만한 자가 많습니다. 또 악인도 많고 예수 믿는 성도를 핍박하며 쫓아내려고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사는 성도를 절대로 쫓아내지 못합니다. 또 교만한 자의 발도 그곳에 미치지 못합니다. 악인의 손이 그곳에 와서 쫓아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그 날개로 지켜 주십니다.

본문 12절에 “죄악을 행하는 자가 거기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졌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서지만 악인은 마지막에 한 번 넘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악한 사람이 불쌍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일곱 번 넘어졌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기만 하면 그곳이 낙원이 됩니다. 생명 샘이 넘쳐흐릅니다. 하나님께서 살찐 것으로 충만히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광명이 언제나 그 가운데 있고 인자하심이 계속 됩니다. 또 의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하여간 아무리 악한 사람과 교만한 자가 와서 성도를 잡아 삼키려 해도, 손도 대지 못하며 그 발이 미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자는 마지막에 심판을 받아서 다 멸망당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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