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5일 토요일

시편 37:25-40 의인의 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의인의 복
시편 37:25-40

25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27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 28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29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30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31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32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33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
니하시리로다 34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35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36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 37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찌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38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 39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40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1. 여호와께서 의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자손으로 걸식(乞食)치 않게 하심

의인은 버림 받지 않으며, 그 자손은 걸식하지 않음

본문 25-26절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은 반드시 버림을 당하지 않고, 그의 자손은 빌어먹으면서 비참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예수님을 믿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성경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법적으로 전부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만 짓고 돌아가는 사람은 의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법적으로는 의인이지만 실제는 죄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믿음을 지키며 성경대로 살려고 하는 의인은 절대로 버림을 당하지 않고 그의 자손도 걸식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112편 1-2절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시편 34편 10절에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사자가 먹을 것이 없어서 주린다고 할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 복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손을 번성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5-6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늘의 별이 무수하여 셀 수 없는 것처럼 장차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오셔서 믿음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창세기 28장 13-14절에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이 말씀은 믿음의 자손이 번성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자손, 믿음의 자손은 걸식하는 법이 없고 잘되어 창성해진다는 것입니다. 땅에 티끌같이 많아지고, 하늘의 별같이 많아집니다.

또 한 가지 다른 뜻은 육신의 자손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의인인데, 그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의 자손들이 걸식함을 보지 않고 번성하며 창성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신앙을 아들이 계승하고 아들의 신앙을 손자가 계승하여
육신의 자손도 그 부모가 섬기는 하나님을 대부분 다 섬기기 때문에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인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늘 기도해줍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즉, 부모가 오랫동안 드린 기도의 효과가 나서 그 자손들에게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가 오랫동안 기도해준 것으로, 디모데가 잘된 것처럼 오랫동안 기도해준 부모의 신앙을 본받아 믿음의 자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아들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세상에서 아내를 얻으려고 14년을 보냈습니다. 또 양떼로 돈을 벌려고 7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장인의 양을 다 빼앗을 목적으로 얼룩무늬가 있는 양을 많이 만들려고 나뭇가지를 벗겨다가 쓰는 등, 인본주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새끼를 밴 양들이 껍질 벗긴 나뭇가지 때문에 얼룩무늬 양을 낳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낳게 해주셔서 많이 낳았지, 나뭇가지를 벗겨서 앞에 놓았다고 해서 얼룩무늬 양을 많이 낳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야곱이 스스로 속은 것입니다. 그렇게 야곱이 20년 동안 세상으로 기울어졌다가 예전에 아버지가 신앙 생활한 것을 생각하며 ‘내가 우리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전에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던 것이 생각났고 마침내는 회개하여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 아버지가 섬기던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의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다’라는 말에는 이러한 뜻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첫째는 믿음의 자손들이 잘되고 또 그가 다니는 교회도 잘 되고 그가 전도한 사람도 잘되고, 믿음의 자손이 다 잘된다는 것입니다. 믿음 좋은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처음 와서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우리 한국 교인들은 선교사들의 믿음의 자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믿음을 전해줬기 때문에 부패해나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 교회가 계속 유지되어갑니다.

둘째는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들의 육신의 자손이 잘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먼저는 자손들이 부모의 신앙을 본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방탕하게 돌아가다가도 자기 아버지, 어머니의 신앙을 생각해서 돌아와 그 본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부모가 늘 기도해주기 때문에 기도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썩지 않고 반드시 효과가 나기 때문에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의 자손이 잘된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일시적으로 방탕할 때가 있지만 마침내는 돌아옵니다. 어거스틴과 같이, 야곱과 같이 돌아와서 잘되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의 자손은 걸식함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의인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본문 28절에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성도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본문 29절에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 땅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예수를 믿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예수를 믿어도 죄만 짓고 나가는 것은 의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법적으로는 의인이 됐지만 행동으로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믿음을 지키고 경건하게 살려고 하며 성경말씀을 지키려고 애를 쓰면 의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키지는 못해도 성경말씀대로 믿음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그것이 의인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끊어지지 않고 가다가 망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거꾸러지지 않고 실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30-31절에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지혜를 말하고 공의를 세워나가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그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지혜입니다. 즉, 성경말씀이 지혜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공의를 말합니다.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걸음이 실족치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의인에게 땅을 차지하게 해주심

1)땅을 차지하는 자의 번성

‘땅을 차지한다’는 말씀이 시편 37편 한 장에 다섯 번이나 나와 있습니다. 악인은 끊어지지만 의인은 반대로 땅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가 땅을 차지 하고,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고, 은혜를 베푼 자가 땅을 차지하고, 의인이 땅을 차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는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하였습니다.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믿음의 자손이 번성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을 지키고 나가는 사람은 번성해간다는 것입니다. 또 부모를 순종하는 자는 땅에서 장수한다고 하였는데, 부모가 믿음으로 인도할 때에 잘 순종해서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은 가다가 망하지 않고 중간에 거꾸러지지 않습니다. 성경말씀대로 잘 지켜 나가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고 실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땅에서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다가 실족하는 자는 장수하지 못하는 자이고 중간에 망하는 자도 장수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인도를 잘 받아서 믿음을 잘 지키고 순종하면 실패하지 않고 장구하게 되어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져나간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것들을 많이 알고 경험을 했기 때문에, 척 보면 벌써 망하는 길인지 아닌지 압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이 부모가 인도하는 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가다가 거꾸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또 목사도 부모와 같습니다. 따라서 목사의 인도를 잘 받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떤 젊은 목사는 나보고 목사님이 아버지 같아서 순종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아들과 같이 사랑하니까 순종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순종하면 가다가 망하지 않습니다. 가다가 거꾸러지지 않고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습니다.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영국 청교도들의 자손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서 얼마나 창성했습니까? 믿음의 자손은 걸식하지 않고 빌어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꿔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자손이 창성해나가는 방법입니다.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의 육신의 자손이 그 부모의 신앙을 본받아 믿음을 잘 지켜나가니 영의 자손도 창성하고, 육의 자손도 창성합니다. 아브라함도 영의 자손이 창성하고 육신의 자손도 창성했습니다. 믿음을 잘 지키는 자손, 육신의 자손, 영의 자손이 다 창성해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배반한 사람은 창성하지 못합니다. 가다가 징계를 맞아서 곰국을 먹고 쫄딱 망합니다. 그 중에는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그 부모가 기도해준 덕분입니다. 부모가 오랫동안 기도해준 효과가 나서 돌아오는 자식이 있는 것입니다. 하여간 ‘의인의 자손은 걸식함을 보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반드시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기도의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믿음의 자손은 잘된다는 것입니다. 창성하고 땅을 차지합니다.

여기서 ‘땅을 차지한다’는 것의 ‘땅’은 마음을 상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옥토, 가시밭, 돌작밭, 길가에 심기운 씨앗의 비유가 나오는데, 그 밭들이 다 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땅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또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과 인심을 얻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믿음을 안 지키는 사람은 인심을 다 잃어버려서 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앉을 자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잘 지킨 사람은 어딜 가나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그것이 창성하여 땅을 차지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있을 데가 많고, 오라는 데도 많고, 갈 데도 많습니다. 믿음을 잘 지키는 자녀들은 어머니, 아버지를 서로 오라고 하지만 믿음을 잘 못 지키면 서로 오지 말라고 합니다. 또 믿음을 잘 지키는 부모는 자식들이 서로 오라고 하니까 땅을 차지하는 것이고, 안 지키면 서로 안 모시겠다고 내쫓으니 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하여간 믿음을 잘 지킨 사람이 땅을 차지한다는 말이 한 장에 다섯 번 씩이나 나온다는 것은 어쨌든 믿음을 잘 지키면 잘된다는 것입니다.

또 믿음의 자손이 많은 것도 땅을 차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이 전도한 사람이 많고 가르친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땅을 차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교사를 보내서 선교하는 것도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스크바로 선교사를 보내서 선교를 하는데, 그
사람은 러시아 땅을 다 차지한 것입니다. 또 카자흐스탄 알마아타에 우리 교단 교회가 다섯 개 있는데, 그만큼 우리가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즈베키스탄에도 한 다섯 개가 있습니다. 그것 역시 또 그만큼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2) 땅을 차지하는 방법

땅을 차지하는 방법은 모두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여호와를 바라보고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여 여호와를 기대하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27편 13-14절에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찌 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는 것처럼 보여도 도와주실 것으로 믿고, 강하고 담대히 여호와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바라봐야 합니다. 한 달 바라봐서 안 되면 두 달을 바라보고, 두 달 바라봐서 안 되면 여섯 달을 바라보고, 여섯 달 바라봐서 안 되면 일 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일 년을 바라봐서 안 되면, 이 년, 삼 년 계속 바라보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구원해주실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건지셔서 땅을 차지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가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땅을 차지할 사람은 온유한 자입니다. 팔복(八福) 중에도 온유한 자가 나옵니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온유한 사람은 성격이 온유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세상에 흘러 떠내려가지 않고 제 고집대로 하려 하
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온전히 받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땅을 차지하는 곳으로 인도를 받아 따라가니 그 땅을 다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고집무상’이라는 말이 있는데, 제 고집대로 나가는 사람은 땅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가라’하시면 가고, ‘오라’하시면 오고, ‘앉으라’하시면 앉고, ‘서라’하시면 서야 합니다. ‘동으로 가라’고 하시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고 하시면 서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 사람은 반드시 잘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창성하게 해주십니다.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세 번째는 은혜를 베푸는 자입니다. 성경에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나눠주며 선 행하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든지 은혜를 베풀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자가 땅을 차지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주니 자꾸 땅이 넓혀질 것이 아닙니까? 도움을 받은 사람은 마음이 그 사람에게 향하기 때문에 도와주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풀고 도와주는 사람이 땅을 차지합니다. 도와주면 다 좋아서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저 혼자 쌓아놓고 다른 사람은 하나도 안 도와주면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저 사람은 자기만 아는 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와주는 사람은 어떻게든 삽니다. 하나님의 일을 돕는 것입니다. 구제합니다. 신학교 하는 일에도 도와주고, 공부하는 데에도 도와주고, 선교하는 데에도 도와주고, 몸으로 나가서 봉사도 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도와 주는 것이 큰 복이고, 그런 사람이 땅을 차지하는 자입니다.

네 번째는 의인이 땅을 차지합니다. 의인은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전도도 잘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사람의 인도를 잘 받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바라보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는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여호와를 바라보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행하는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내가 잘못하고 있고 고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고쳐나가며 바로 행해야 합니다. 양심에 가책이 되는 것을 두고 행치 않으면 안 됩니다. 주일을 잘 못 지키고 양심에 가책이 되면 그것부터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안 드리고 양심에 가책이 되면 그것부터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사기하고 횡령하고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고 싸우고 다투며, 양심에 가책이 되면 그것부터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손해가 나도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을 안 하는 사람은 그것부터 고쳐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또 형제를 사랑하지 못했으면 형제를 사랑하는 것부터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땅을 차지하는 방법 다섯 가지를 배웠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가서 땅을 차지하십시오. 땅을 다 잃어버려서 설 자리도 없고, 앉을 자리도 없고, 누울 자리도 없이 살지 말고, 땅을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고 해도 믿음을 다 잃어버리면 땅을 차지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재산을 쌓아놓고도 자기 재산이 아닙니다. 믿음을 지켜야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지 않고 재물을 쌓아놓은 사람의 것은 믿음을 지킨 사람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초막이나 궁궐이나 믿음을 잘 지키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땅을 차지하는 방법입니다.

2. 악인은 큰 세력을 얻어도 망하고, 의인은 땅을 차지함

악인은 결국 망함

본문 32-33절에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은 성도 해할 기회를 엿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를 보호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정죄치 않으십니다.

본문 34-36절에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큰 세력을 가지고 있고 본토에 선 큰 나무 같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오면 얼마 안 가서 다 없어집니다. 그리고 찾아도 어디에 있는지 발견하지 못합니다. 땅에서 소멸되는 것입니다.

정직하며 화평을 전하는 자는 평안함

본문 37절에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찌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정직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화평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감사하려고 하면 다 감사할 수 있고 불평하려고 하면 전부 다 불평입니다.

파주에 사는 한 할머니가 수해가 나서 집이 다 무너졌는데, 감사하다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왜 감사한가 물어봤더니 수해가 나서 전부 떠내려가고 그 중에는 죽은 사람도 있는데, 자신은 목숨이 붙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불평, 불만을 하면서 울고 있는데, 그 할머니는 감사하다고 하였답니다.
또 어떤 분은 자기 남편이 멀리 가서 가정을 돌보지 않고 일 년에 한, 두 번씩 집에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왜 혼자 사느냐? 고독하게 어떻게 사느냐?”고 하는데, 그래도 그 사람은 “내 남편이 살아 있어서 과부라는 말을 안 들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하였답니다.

그렇다면 여기도 과부들이 많이 있는데, 아까 그 사람이 과부라는 말을 안 들어서 감사하다고 했다면, 과부들은 어떻게 감사해야겠습니까? 과부라도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지 않습니까? 남편은 죽었는데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것입니다. 감사하려고 하면 전부 다 감사 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하려면 전부 다 불평입니다. ‘나는 왜 집이 없느냐? 차가 왜 없느냐? 왜 돈이 없느냐’고 하면서 전부 불평인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감사하려고 하면 전부 다 감사입니다.

또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라고 하였으니,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인사를 안 하는 사람이 있으면 ‘네가 안 하면 나도 안 한다’고 하지 말고 따라가서 인사하면 됩니다. 그래도 안 받으면 그 다음에 가서 또 하면 됩니다. 안 하면 또 하는 것입니다. 자꾸 자꾸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사랑을 주는데도 그 사람이 안 받으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다 내게로 돌아옵니다. 사랑해서 인사했는데 안 받으면, 그 사랑이 내게로 자꾸 돌아오니까 내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꾸 사랑을 하면 하나님께서 결국 감동을 시키셔서 화목할 날도 오게 됩니다. 화목하기를 힘쓰십시오.

우리는 상대방이 잘못한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잘못한 것을 생각하셨으면 십자가에 못 박히셨겠습니까? 우리에게 잘못한 것이 억 만 가지가 있어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화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이 잘못한다고 하지 말고, 어떻게 하든지 화목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나눠주고, 찾아가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화목하려고 힘을 쓰면 화목이 됩니다.

또 그렇게 화목하려는 사람에게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화목하지 않고 ‘무엇이 잘못됐다. 나를 멸시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인사도 안 받는다. 본 체 만 체 한다. 선물도 안 가져왔다’고 하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자기 마음을 온전히 만족시켜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만 붙들고 생각하다 보면, 전부 불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이 마음에 안 듭니다. 좀 잘 생겼으면 좋겠는데, 거울을 보면 못 생겼습니다. 여러분들도 같을 것입니다.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다른 사람이 제 마음에 전부 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눠주며 살고, 사랑을 주며 살고, 화목하고 평안하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마음이 기쁘고 화평이 옵니다.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남편이 선물 안 사온다고 하지 말고, 과부가 안 된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안 사와도 좋은 것입니다. 일년 열두 달 하나도 안 사와도 좋다는 것입니다. 남편 입장에서도 부인이 잘못한다고 하더라도 악처가 효자 열 명보다 낫다고 하는데, 없는 것보다는 나은 줄 알고 살면 됩니다. 또 장애 입은 다리가 효자 아들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효자 아들이 장애 입은 다리만큼 해주겠습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니까 감사하려고 하면 전부 다 감사한 것입니다. 감사로 살고 감사로 통과해야 합니다. 

본문 38-39절에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은 결국 땅에서 끊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구원의 여호와가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 때에 성도의 든든한 산성이 되어 주십니다. 

본문 40절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성도의 산성이 되시고 구원의 뿔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를 악인에게서 건져주시는 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담대히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대하며 나가서 땅을 차지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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