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6일 일요일

시편 39:1-13 주께만 소망을 두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주께만 소망을 두라
시편 39:1-13

1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2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3내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4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셀라) 6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8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9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10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11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뿐이니이다(셀라) 12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 13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1. 잠잠하고 하나님만 의뢰함

본문 1절에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악한 사람이 비방하고 핍박할 때에 혀에 자갈을 먹인 듯 잠잠하고 싸우지 않으며 하나님만 의뢰하였다는 것입니다. 모든 원수를 갚아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알기 때문에 지금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같이 대항해서 싸우면 도리어 자기가 범죄하며 실수하겠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
께 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참고 견딘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잠잠하여 할 말도 안 하고 잘 참고 나가려니까 속에 근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 아시고 갚아주실 것을 믿고 의지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외부의 핍박과 비방을 잘 참고 나가려니 속에서 불이 발하고 근심이 심하
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간구하였습니다.

2. 인생은 짧고 세상은 헛됨

본문 4절에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당하는 환난이 심하니 얼마 있다가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앞에 갈 때가 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의 연약한 것을 알게 하소서’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환난 때에는 하나님만 의뢰하며 자기의 연약함을 깨닫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의 연약한 것을 깨달을 때가 강한 때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약하다고 느낄 때가 하나님만 의지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때에 하나님께서 강하게 만들어주십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내 능력이 약한데에서 온전해진다’고 하였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약한 자에게 와서 머문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5절에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셀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인간의 일생이 없는 것 같고, 사람의 손 넓이만큼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세상이 잠깐 지나갈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생이 짧고, 세월은 참 빠릅니다. 6·25 사변이 일어난 것이 어제 같고, 8·15 해방이 어제 같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신 지가 어저께 같은데 벌써 몇 십 년이 흐른 것을 보면 인간의 일생은 손 넓이만큼 밖에 안 됩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때가 6
천년 쯤 되었다고 하면, 인간의 일생은 6천년 가운데서 백 년도 못 되는 것입니다. 잠깐 지나가 없는 것과 같고 손 넓이만큼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마다 든든히 선 때에도 진실로 허사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떠날 때 무엇을 가지고 가겠습니까? 세상 것은 다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아무리 부자가 돈을 많이 벌어놨다고 해도 세상을 떠날 때에는 빈 손 들고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대에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혹시 알아준다고 해도 세상을 떠난 다음인데 뭘 하겠습니까? 하늘나라, 내세에 가서 잘되는 것이 문제이지, 이 세상에서는 욕을 먹어도 문제가 없고 알아준다고 해도 큰 유익이 없습니다. 자기 구원을 잘 이루어가는 것만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남습니다.

본문 6절에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각 사람이 갖는 것은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실체가 아닌 그림자처럼, 사람은 헛된 세상에 헛되게 왔다가 헛되게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헛
된 일에 분주하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아무리 쌓아놔도 후대에 그것을 누가 취할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또 재물 말고 다른 것을 아무리 많이 쌓아놔도 누가 취할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언제나 자기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있으면 다 지나가고 없어지고 말 세상은 이렇게 헛되게 지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땅에다 장사를 지낸다고 할지라도 그 땅이 언제까지 자기 땅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 한 분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아들네 집 옆에 땅이 몇 천 평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이 산에 나무도 많아서 거기에 집을 짓고 살다가 자기 어머니를 장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그 땅이 언제까지 자기 땅이 될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예
공원묘지로 옮겨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지금 그 아들들은 브라질로 이민을 가 있습니다. 만약에 그때 자기 땅에 장사했다면 몇 년 안 되어 무덤을 파서 옮길 뻔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네 땅이라고 해도 언제까지 자기네 땅이겠습니까? 자손이 내내 지키지 못합니다. 후대에 그 땅을 팔게 되도 땅을 산 사람이 무덤을 가만히 두지 않고 파 가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아무리 많이 쌓아놨다고 해도 헛된 것입니다. 언제까지 자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집도 언제나 자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집을 많이 지었다고해도 언제까지나 자기 집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용인에서 양지 쪽 국도로 가면 구한말에 내무 장관을 지낸 송병준 씨 집이 있는데, 그 집이 99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아들이 그 집을 못 지키고 있습니
다. 다른 사람에게 몇 번 팔려가기도 하고, 요새는 누가 그 집을 사서 기도원을 한다고 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지었어도 후대에 누가 살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집을 잘 지어놨어도 자기가 다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헛됩니다. 아무리 잘해놓아도 누가 취할 것인지 알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3. 주께만 소망을 둠

본문 7절에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것은 아무것도 바라볼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무엇을 쌓아놔도 다 헛됩니다. 세상에 소망을 둘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소망은 주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이 세상은 다 헛되며 자기 일생도 짧아 손바닥 넓이만큼 밖에 안 됩니다. 재물을 아무리 많이 쌓아놓았어도 나중에 그것을 누가 취할 것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소망을 주님께만 두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살며 하나님 뜻대로만 움직여야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원히 남아 있을, 영적 구원을 잘 이루어나가야 되겠습니다.

4.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온 것을 깨달음

본문 8절에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매한 자와 관련하여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이 성도를 핍박하고 욕하며 멸시하고 천대합니다. 다윗은 지금 그들에게 욕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도가 큰 환난을 당하고 몸에 병도 나며 여러 어리석은 자들이 핍박하고 비방하는 가운데 있으나, 잠잠하고 그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것을 믿고 입을 열지 않은 것입니다.

사무엘하 16장 5-10절에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의 족속 가운데
한 사람인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할 때 다윗은 군대 장관에게 시켜 당장 시므이의 머리를 벨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가 저주하는 것이니 처벌하지 말고 가만히 두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다윗은 섭섭해 하거나 처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바라며 입을 열지 않고 잠잠하였습니다.

본문 10-11절에 “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뿐이니이다(셀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올 때에 사람의 영화는 마치 좀을 먹은 것과 같이 다 소멸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허사(虛事) 뿐이라고 했습니다.

5. 회개하며 주께 구원을 호소함

본문 12절에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사는 길입니다. 환난 때에 원수와 더불어 싸우지 않고 낙심하지도 않고 변명하지도 않으면서 잠잠히 하나님만 부르짖고 의지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건져주십니다. 그리고 애매히 당하는 고난도 있는데, 그때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면 복을 받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20절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을 받는 종류가 세 가지입니다. 구체적으로 애매히 받는 것과 죄로 인해 받는 것, 선을 행하며 믿음을 지키다가 받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건져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모든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께서 욥과 같이 복을 주시려고 허락하신 것인 줄로 알면 됩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고난을 받아도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고,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인격이 잘 만들어져서 결국은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눈물을 흘릴 때에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나그네와 임시로 우거하는 사람과 같이 주님만 의지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주께 객(客)이 되었다’는 것은 주만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열조와 같다’고 한 것은 잠시 왔다가 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한 것을 보니 다윗이 병이 난 것입니다. 외부적인 환난도 많은데 몸에 병까지 나서 그 병으로 인해 잠시 후면 죽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을 회복
시켜 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는 성도는 그 심령에 반드시 소생함을 얻습니다. 그리고 영적 복을 받습니다. 또 육체도 하나님의 뜻이면 건강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늘 하나님께 부르짖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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