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6일 일요일

시편 55:1-23 의인의 탄식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의인의 탄식
시편 55:1-23

1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2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3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4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5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 6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7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셀라) 8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9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저희를 멸하소서 저희 혀를 나누소서 10저희가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중에는 죄악과 잔해함이 있으며 11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궤사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도다 12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찐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찐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13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14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15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여 산채로 음부에 내려갈찌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16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17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18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19태고부터 계신 하나님이 들으시고(셀라)  변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리로다 20저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21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22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23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1. 사망의 위험한 곳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함

본문 1절에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원수의 핍박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기를 간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굽히사 응답해달라’는 것은 친근히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한다’는 것은 환난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마음이 근심으로 편치 않다는 것입니다. 즉, 원수가 핍박하기 때문에 근심과 탄식을 하면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기도하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본문 4-5절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자신에게 사망의 위험, 즉 죽음의 위험이 닥쳐왔으므로 두려움과 떨림과 황공한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마음이 심히 아프고 두려움과 떨림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어야 평안함과 담대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줄 알고 늘 기도하는 생활을 하여야겠습니다.

2. 피난처로 가기를 갈망함

본문 6-8절에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셀라) 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폭풍과 광풍과도 같은 환난을 피하겠다는 것입니다. 피난처에 가서 쉬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은 실제로 이런 위태한 상태에 들어가 본 사람만이 실감할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악한 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어디로 가려고 해야 갈 수도 없고, 계속 핍박과 고통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럴 때에 날개가 있다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6·25 사변 때에 위태한 일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러한 마음을 절감하였을 것입니다.

3. 가까운 친우(親友)가 원수가 됨

본문 9절에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저희를 멸하소서 저희 혀를 나누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다’는 것은 예루살렘 성내에 강포와 분쟁이 가득찼다는 것입니다. 한 성에 있으면서 서로 화목하며 도와주어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강포와 분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집에 있으면서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강포와 분쟁을 행하는 것은 피차 망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런 악을 보고 하나님께서 심판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여 저희를 멸하소서 저희 혀를 나누소서’란 서로 의사 소통이 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장 6-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하시기 위하여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서로 당파(黨派)를 모아서 싸움을 해도, 언어를 혼잡케 하면 그 당파가 깨어져나갑니다. 그러므로 언어를 혼잡케 해서라도 강포와 분쟁이 가득한 그들의 모사를 실패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10-11절에 “저희가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중에는 죄악과 잔해함이 있으며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궤사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들이 예루살렘 성을 장악하고 불의한 통치를 하므로 예루살렘 성에 잔해와 압박과 궤사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즉, 악한 자들이 밤낮 성 위에 두루 다니면서 서로 물고 찢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도 이런 일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 12-13절에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찐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찐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자만하며 다윗을 악하게 책망하는 자가 원수가 아니라 가까운 친우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에 다윗과 같이 일하며 하나님의 집에서 재미롭게 의논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원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다는 것을 보면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본래 원수되었던 자들이 다윗을 핍박한다면 다윗의 가슴이 덜 아팠을 것입니다. 또 이것은 다윗이 자기 아들 압살롬이 자신을 반역한 일과 자기의 친구인 모사가 아히도벨이 자신을 배반하여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한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나아가 장차 예수님께서 함께 떡을 먹던 제자 가룟 유다에게 배반당할 것을 예언한 말씀이기도 합니다(시41:9; 요 13:18). 또 본문 20절에는 ‘자기와 화목한 자, 언약을 맺었던 자들이 배반하여 원수가 된다’고 하였는데, 환난 때에 핍박하는 사람이 멀리 있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까운 데 있는 사람들이 핍박을 합니다. 즉, 같이 다니던 사람, 언약을 맺었던 사람, 같이 일하던 사람, 화목하던 사람, 그들이 핍박을 합니다. 요새도 이런 일들이 많습니다. 말세 환난 때에도 교회에서 성도를 핍박하는 사람들은 교인들입니다(마 10:21-23; 계 13:11-18).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마귀는 성도를 핍박하고 물고 찢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여 산채로 음부에 내려갈찌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에게 사망이 홀연히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고라당이 갑작스럽게 멸망하여 땅 속에 들어간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갑자기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선지자의 입장에서 한 예언으로, 후에 아히도벨과 압살롬과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이 예언이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삼하 17:23, 18:7-8,18:14-15). 그리고 ‘산채로 음부에 내려간다’는 것은 감옥에 갇힌다든지 하여 갑자기 죽음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악한 자가 잘될 것 같아도 갑자기 감옥에 들어가고, 갑자기 죽음의 골짜기에 빠지고, 갑자기 비참한 상태에 빠집니다. 불의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갑자기 사망이 들이닥치는 것입니다.

4. 기도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심

본문 16절에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언제 기도합니까? 저녁에 기도하고, 아침에 기도하고, 정오에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다윗이 확신하였습니다. 다윗이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였습니다. 저녁에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였고, 새벽에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였고, 정오에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도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였습니다(단 6:10).
성도가 이렇게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별히 아침에 기도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세워놓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새벽 기도와 산 기도를 하셨습니다(막 1:35; 눅 22:39).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놓지 않으면 기도를 잘못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놓으면 그 시간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가 기도한다’는 결심이 생기므로 기도하게 됩니다. 특별히 새벽 기도를 정해놓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새벽 기도를 정해놓고 하지 않는 사람은 낮에도 기도를 잘못합니다. 아예 새벽은 하나님께 기도의 시간으로 바쳐놓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저녁에도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해서 제단에 올려놓은 것처럼, 우리가 기도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에 얽매여서, 그 시간을 기도하는 시간으로 지켜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본문 18절에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다윗을 치는 자가 많았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손에서 다윗을 구속하여 평안하게 해주셨습니다. 구속(救贖)이란 값을 주고 사서 구원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5. 악인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심

본문 19절에 “태고부터 계신 하나님이 들으시고(셀라) 변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계시며 변치 아니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사람은 심판하십니다.

본문 20절에 “저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 언약을 배반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배은망덕한 자들은 언약을 배반하고 화친한 사람을 칩니다. 그런 자들은 악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그런 자들에게 손해를 보지 않도록 언제나 모든 면을 잘 살펴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잘되게 해준다고 해도,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자기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일에 이용하면서, 사랑해야 합니다. 무조건 사랑만 하다가는 손해를 보고 마귀에게 속아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맙니다.

본문 21절에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말, 부드러운 말을 하지만, 속에는 전쟁이요 뽑힌 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말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 속을 보아야 합니다. “평화하자”고 말을 미끄럽게 한다고 해서 가까이 접근했다가, 칼로 찌르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만 듣지 말고 그 속에 있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믿음의 정도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지나온 행적을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 사람의 사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신앙 사상이 중요합니다. 에큐메니칼 사상을 가지고 있는 교회는 아무리 건전한 척해도 그 속이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분별하지 못하면 그만 빼든 칼에 죽습니다.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이 다윗에게 귀순할 때에 요압이 아브넬을 찔러 죽이지 않았습니까? 아브넬은 요압이 오라고 할 때에, 화친인 줄 알고 갔으나 요압은 칼로 아브넬을 죽였습니다(삼하 3:12). 그러므로 아무리 말로는 우유보다 미끄러워도 속에 전쟁하는 것이 없는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손해를 보지 않도록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이 마귀에게 속지 않는 것입니다.

6. 의인은 영영히 부동(不動)하나 악인의 생명은 짧음

본문 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짐을 자기가 지고 가려고 하면 무거워서 가다가 쓰러집니다. 그러나 짐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대신 져주시고 가볍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짐을 다 하나님께 맡겨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고 영영히 요동함을 보지 않게 해주십니다. 그 짐을 제가 지고 나가려고 하면 가다가 죽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짐을 자동차에 올려놓고 가야지, 짐을 이고 타든지 하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짐을 하나님께 맡겨놓고 성경대로 하면 범사에 잘됩니다. 안 될 것 같아도 잘됩니다. 자기 짐을 하나님께 다 맡겨놓고 성경대로만 순종해나가면 죽을 것 같아도 살고, 실패할 것 같아도 성공하고, 망할 것 같아도 흥하고, 거꾸러질 것 같아도 안 거꾸러집니다.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일은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을 때에, 말씀대로만 순종하면 썩어 냄새가 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살려낼 자는 살려내시고, 건져낼 자는 건져내십니다.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는 요동치 않게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고 바로 세워주십니다.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짐들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학생들은 공부하는 짐, 부모들은 아이들을 길러서 학교에 보내는 짐, 또 졸업하면 시집․장가보내는 짐 등, 짐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짐들을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다 잘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순종만 하면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서 다 져주십니다.

본문 23절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는 가다가 반도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즉, 악한 자는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는 의인은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기 때문에 영원토록 요동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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