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7일 월요일

시편 56:1-13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을 신뢰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을 신뢰함
시편 56:1-13

1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2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3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4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저희가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내게 대한 저희 모든 사상은 사악이라 6저희가 내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종적을 살피나이다 7저희가 죄악을 짓고야 피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8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9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 줄 아나이다 10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1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2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13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 하나님의 긍휼 입기를 기원함

본문 1-2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처음 괄호 안에 ‘다윗이 믹담 시, 영장으로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 인에게 잡힌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 인에게 잡힌 때에 지은 시입니다. 상당히 위급한 때에 지은 시입니다. 원수가 많습니다. 사방에서 모여 치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윗을 종일 압제하며, 잡아 삼키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가드, 곧 블레셋 사람에게 갔을 때에 그 방백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바로 그들이 “그 다윗이 우리에게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하면서 다윗을 경계하고 잡아 죽이려 하던 때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위급한 때에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원수가 많고, 그들이 종일 압제하며 잡아 삼키려 하고, 또 교만히 치려고 하는 위태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2. 원수의 박해에 대한 성도의 방어책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라

본문 3-4절에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이 몇 번 나왔습니까? 세 번 나왔습니다. 또 아래 본문 10-11절에 또 세 번이 나옵니다. 즉, 시편 56편에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이 모두 여섯 번 나옵니다. ‘하나님을 의지 하였은즉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또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제일 좋은 길이라는 것 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피난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난처이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방어책입니다. 핍박하는 자를 막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길입니다.

두려워할 때에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하나님을 의지했던 사람이 의지해야만 의지가 잘됩니다. 평소에 의지하지 않던 사람은 위급한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해도, 의지가 잘 안 됩니다. 믿는 사람이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살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또 하나님과 동행하며,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을 해야만, 환난 때에도 하나님께 의지하고 나갈 때 하나님께서 의지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십니다. 다시 말하지만 늘 의지하던 사람이 잘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의지하려면 의지가 잘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며 평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물질을 의지하며 살던 사람은 막상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면 의지가 잘 안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으로만 살던 사람이어야 환난 때에 하나님을 제대로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 성도를 붙들어주십니다.
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 말씀대로 붙들어주실 것을 믿게 되고, 따라서 찬송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붙들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확신합니다’라고 하면서 그 말씀을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구원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찬송하올찌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지해봐야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구원해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의지해봐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능력이 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주시고 붙들어주시는 것을 깨닫고 그 말씀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혈육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담대히 나가야 되겠습니다.

3. 성도를 핍박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낮추심

본문 5절에 “저희가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내게 대한 저희 모든 사상은 사악이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들이 성도가 하는 말을 곡해(曲解)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듣지 않고 다 뒤집어놓으며 잡아 정죄합니다.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성도가 믿음으로 하는 말을 세상적으로 육신적으로 정치적으로 생각하여, 도리어 성도를 핍박합니다.

가령 예수님을 왕이라고 하면, 원수들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로마황제의 반역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에 그렇지 않았습니까? 또 성전을 헐겠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을 가리켜 한 말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성전이라고 했는데,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헐겠다고 한 것으로 곡해해서 핍박을 했습니다. 또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율법을 폐하려 한다며 시비를 걸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원수들은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을 곡해해서, 신령한 도를 모르며 나아갑니다. 성도를 종일 핍박하고, 악한 생각을 하면서 성도를 대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저희가 내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종적을 살피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들이 생명을 엿보고 종적을 살핍니다. 어디로 가나, 어디 책잡을 것이 없을까 하고 늘 원수들이 성도의 종적을 살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걸릴 만한 것이 있으면 정죄하려고 달려듭니다. 또 생명을 엿본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잡아 삼키려고 엿보고 있습니다.

본문 7절에 “저희가 죄악을 짓고야 피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낮추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핍박하는 자에게 분노하시고, 또 그 백성을 낮추셔서 징계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습니다. 지금은 원수들이 핍박을 하고 조롱을 하지만,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들을 낮추시고 심판하실 것을 믿습니다.

4. 하나님께서 성도의 눈물을 병에 담아두심

성도의 진실한 기도를 기억하시고 갚아주심

본문 8절에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눈물을 어떻게 한다고 하였습니까? 주의 병에 담고 어떻게 한다고 하였습니까?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즉 성도가 환난 받는 것을 주님께서 다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물’이라는 것은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다는 것은 진심으로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눈물을 안 흘리며 기도해도 진심으로 기도하면 그것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주의 병에 담는다’는 것은 비유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성도의 눈물을 사이다 병 같은 것에 담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비유라는 것입니다. 담아놓고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뭔가를 병에 담아놓고 늘 보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성도의 눈물을 기억하시고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주의 책에 기록되었나이다’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잊지 아니하시고 기억해주셨다가 반드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으며,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음

그러므로 기도는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또 눈물을 안 흘려도 진정한 기도는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기도가 절대로 땅에 떨어지지 않고,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가 아들이 방탕하게 나아갈 때 눈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한테 가서 지금 자기 아들이 방탕하게 살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는지를 묻자, 그 목사님이 눈물의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다고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더욱 용기를 내서 기도
를 했는데, 마침내 어거스틴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성자(聖者)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진정으로 기도를 많이 해주면, 그 기도가 절대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죽은 다음에라도 효과가 납니다.
우리 교회에도 어떤 어머니가 39살에 세상을 떠났는데, 어린 아이들을 놔두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라는 사람이 교회에 안 나오면서 아이들도 교회에 못 나가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다 교회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 덕택으로 다 믿는 것 같습
니다. 한 아이가 안 나왔었는데, 그 아이도 요새는 교회에 나오고 큰 아들은 지금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있는 집 아이들은 오히려 잘 안 나오는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그 자녀들이 교회에 잘 나오고 믿음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 집 자녀들끼리도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됐다고 그런답니다. 바른 말입니다. 어머니 때문에 그만큼 된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주면,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어떻게 하신다고 하였습니까? 병에 담아놓으시고 또 책에 기록하셨다가 다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라도 갚아주십니다. 진정한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흘리려고 하지 말고, 심령으로 진정으로 기도하면 눈물을 안 흘려도 눈물 흘린 것과 같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기도가 결코 헛된 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5.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사람이 어떻게 하지 못함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복됨

본문 9절에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 줄 아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면 마침내는 원수가 물러갈 것을 믿습니다. 반드시 물러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인 줄을 그때는 알 것이다’라고 하며 믿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은 무엇이 다릅니까? 첫 마디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했고, 둘째 마디는 누구를 의지했습니까?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엘로힘’인데, 능력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즉,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가 그 말씀을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구원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약속대로, 계약대로 구원해주시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계약의 말씀대로 구원해주실 것을 믿고 의지하며, 그 말씀을 찬송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말씀을 찬송한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구원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찬송한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구원해주십니다. 말씀대로 원수를 심판해주시고, 말씀대로 성도를 구원해주시며, 말씀대로 생명을 살려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그 능력으로 말씀을 이루어주실 것이기에 그 말씀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구원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의지하면 든든히 의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사람이 와서 손도 대지 못합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자기 부모를 의지하고 나가면, 다른 아이들이 손도 못 대지 않습니까? 어린 아이가 자기 어머니를 의지하고 나가면, 다른 아이들이 손을 못 댑니다. 개도 자기 주인을 의지하고 나가면, 다른 사람이 손을 못 댑니다. 개도 주인이 있어야 나가서 잘 짖습니다. 주인이 없으면 개가 꼼짝 못합니다. 주인이 없으면 개가 밖에 나갔다가도 다시 들어옵니다. 그리고 주인이 뒤에 나가 섰으면 용기가 나서 짖어댑니다. 이렇게 의지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도 의지하는 것이 있어야 힘이 나고, 개도 의지하는 것이 있어야 힘이 납니다. 의지하는 것이 없을 때에는 아무 맥을 못 춥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나와서 찬송한다’,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또 ‘의지한다’는 말을 하였는데, 모두 여섯 번 나오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17장 5-8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겨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권세를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며 나가는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마치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하나님만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뿌리를 강변에 뻗침과 같아서, 더위나 가뭄이 와도 걱정 없이 열매를 계속 잘 맺혀나간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어찌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갚기를 더디 하지 말고, 바로 갚아야 함

본문 12절에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서원(誓願)을 갚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주께 서원한 것이 있는데, 그 서원한 것을 갚으려고 작정을 하였습니다.

주님께 서원한 것은 갚아야 합니다. 갚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원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께서 나를 건져주시면 내가 어떻게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서원입니다. 야곱의 서원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주님이 나를 평안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세 가지를 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몇 가지 서원을 했습니까? 세 가지입니다. 무엇,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겠습니다. 돌베개로 베게 하셨던 그 돌을 세워서 성전을 삼겠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 서원을 갚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도 피난 다닐 때에 무슨 서원을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서원을 갚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서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상황에서 건져주시면 평생 하나님께 몸 바쳐서 주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라고 서원하는 것입니다. 주 앞에 이 생명 전체를 다 바쳐서 충성하겠다는 서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신명기 23장 21-2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반드시 갚으라는 것입니다. 연보 작정한 것도 하나님께 서원한 것입니다. 또 주를 위해서 몸 바치고자 결심한 것도 하나님께 서원한 것입니다.
또 삭개오가 서원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토색한 것을 사 배나 갚고 또 자기에게 있는 재산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원을 했으면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더디면 죄가 됩니다. 그리고 서원한 바는 ‘하나님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이라고 하였는데, 갚지 못하면 서원치 않은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서원하고 갚는 사람이 서원하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나음

그러면 서원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입니까? 서원하지 않은 사람은 서원하고 갚는 사람만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서원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 좋습니까? 서원하지 않고 다음에 하려고 해도, 그 다음에 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일단 서원을 했으면 그대로 하려고 내내 힘을 쓰기 때문에, 마침내 하게 됩니다. 서원을 안 해놓으면 하다가 못하겠다고 그만 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기회가 다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서원을 안 한 것보다 한 것이 낫습니다. 서원을 해야만, 그 일을 행하도록 마음을 써서 그 일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서원을 안 하면 일시적으로는 할 마음이 생겼어도 또 다른 사정이 생겨 못하고 또 못하게 됩니다. 결국 앞으로 차차, 차차 하리라 하다가 마침내는 아차차 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원한 것이 낫습니다. 연보도 작정을 해야 생기는 것이지, 연보할 돈이 마련되면 그때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결국 별로 못하게 됩니다. 작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정한 다음에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아예 미리부터 못할 생각부터 앞서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그래서 작정을 못합니다. 작정한 것을 못할까봐, 이 다음에 생기면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보할 돈이 생겨도 막상 생기게 되면 다른 데 쓸 데가 또 생긴다는 것입니다.
또 돈이 생기면 쓸 데가 또 생겨서 1년 내내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작정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부터 해놓으니까 마침내 그것 한 것 하나는 남게 되는 것입니다. 남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른 것도 되도록 해주십니다. 다시 말하는데 작정을 해야 하게 되지, 작정 안 하면 하게 되지 않습니다. 이 다음에 하겠다는 사람들은 믿을 사람이 못됩니다. 연보를 이 다음에 생길 때 하겠다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생기면 그 돈에 맞게 다른 데에 쓸 데가 또 생깁니다. 무슨 사정이 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못합니다. 그래도 조금 내놓고 흉내만 내고 앉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정하지 않고, 생길 때에 하겠다는 사람, 십중팔구는 못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게 알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정한 사람은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 하게 됩니까? 그것을 하려고 늘 마음을 먹고 기도를 하며 힘을 쓰니까, 기회만 있으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하늘에 가서 남습니다. 그래서 서원한 것이 좋습니다. 서원하지 않은 것보다 썩 낫습니다. 그러나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은 안 한 것만 못합니다. 서원한 다음에는 갚으려고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6. 서원을 이행하며 생명 빛에 다님

본문 12-13절에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주신 목적은 서원을 갚고 생명 빛에 다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하는 것은 보답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께 보답하는 생활을 하면서 생명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실족하지 않도록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실족하여 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건져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보답하는 생활을 하고, 그 다음에는 생명 빛에 다니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보답하지 않고 나가다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보답을 해야겠습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는 생활을 하고, 생명 빛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비취어 내보내는 생활
을 해야 합니다. 자기의 영이 살고,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비취어 내보내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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