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5일 수요일

느헤미야 6:1-19 느헤미야의 사명 감당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느헤미야의 사명 감당
느헤미야 6:1-19

1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2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 3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 가겠느냐 하매 4저희가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 5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내었는데 6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7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찌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8내가 보내어 저에게 이르기를 너의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9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10이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 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11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12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13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14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 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15성 역사가 오십이 일만에 엘룰 월 이십오 일에 끝나매 16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17그때에 유다의 귀인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저희에게 이르렀으니 18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저희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나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항상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1. 대적들이 느헤미야를 해하기 위하여 만나기를 청함

본문 1절에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고 하였습니다. 성 문짝은 아직 달지 못했지만 성이 다 건축되고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대적들이 들었습니다. 

본문 2절에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절에 “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 가겠느냐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어떻게 대답하였습니까? 지금 하나님의 역사를 하는 중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내려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내려가면 역사가 중지되겠으니 이일을 중지하고 내려갈 수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사자를 보내서 그들에게 답변을 하였습니다.

2. 대적들이 느헤미야를 반역자로 몰고 만나서 해하려 함

본문 4-6절에 “저희가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내었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성 역사를 중지하고 내려갈 수 없다고 하니까,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봉하지 아니한 편지를 써서 그 종자 편에 보냈습니다. 그 당시는 이들이 바사 왕에게 속해 있는 때입니다. 산발랏은 ‘느헤미야 네가 바사 왕을 반역하기 위하여 성을 건축한다는 말이 이방인들에게 들려오고 또 실제로 그 말과 같이 네가 왕이 되려 하는구나’라는 내용을 써서 보냈습니다. 

본문 7절에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찌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바사 왕에게 들리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 산발랏은 ‘느헤미야가 바사 왕을 반역하려고 예루살렘 성을 건축한다. 그리고 실제로 왕이 되려고 한다. 또 선지자를 시켜 유다에 왕이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 말들이 바사 왕에게 들리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니 나에게 와서 함께 의논하자”라고 하며 느헤미야를 반역자로 모는 것입니다. 

대적들은 지금 하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느헤미야를 바사 왕의 반역자로 몰아 죽이려는 것입니다. 상대편을 반역자로 몰아 죽이는 짓은 악한 대적들이 하는 일입니다. 신약시대의 사람들도 예수님을 가리켜 “가이사의 반역자이다. 또 유대인의 왕이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까? 본문에서도 원수들이 느헤미야를 바사 왕의 반역자로 몰아 죽이려고 이렇게 음모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지 느헤미야를 해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낸 것입니까? 왜냐하면 느헤미야가 보기 전에 누구라도 그 편지의 내용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편지를 보게 된 사람은 느헤미야가 왕의 반역자로서 지금 반역을 하려고 하며 또 왕이 되려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즉, 그 편지를 다른 사람이 보는 것만으로도 느헤미야에게 상당한 손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또 그러한 정황이 바사 왕에게 보고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가 봉하지 않은 편지를 써 보낸 것입니다. 그 편지를 여러 사람이 가지고 가면서 보고 그 내용을 돌려 퍼뜨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악한 꾀를 부려서 봉하지 않은 편지를 써 보낸 것입니다. 

본문 8-9절에 “내가 보내어 저에게 이르기를 너의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
라”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답변을 하였습니다. 

원수들은 지금 느헤미야의 손을 피곤하게 해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역사를 중지하게 하려고 합니다. 두렵게 하고 피곤하게 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려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내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마귀 역사가 많을 때에는 기도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제일 좋은 길이 기도입니다. 기도 이외에 다른 것은 안 됩니다. 느헤미야도 지금 ‘하나님이여,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나갔습니다.

3. 대적들이 선지자를 매수하여 느헤미야를 피신시키려 함

스마야 선지자가 대적들과 내통(內通)함

본문 10절에 “이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선지자입니다. 유다 나라의 선지자인 스마야가 두문불출(杜門不出)하였습니다. ‘두문불출’은 문을 닫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마야의 이 행동은 느헤미야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며, 느헤미야가 현재 해나가는 일을 재고하라고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그를 찾아간 것을 볼 때에 스마야는 꽤 유명한 선지자인 것 같습니다. 유명한 선지
자가 문을 닫고 나오지 않으니, 무슨 일인가 하고 찾아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느헤미야가 찾아가니 스마야 선지자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피난을 가자는 것입니다. “저희가 필연 너를 죽이러 올 것이다. 내가 두문불출한 목적도 여기에 있다. 원수들이 와서 죽일지 모르기 때문에 나가지 않고 문을 닫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를 이제 죽이러 올 터인데, 우리가 이렇게 있지 말고 하나님의 성전에 가서 문을 닫고 거기서 가만히 있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마야 선지자의 이 말은 원수들에게 뇌물을 받고 하는 말입니다. 

느헤미야의 사명 감당

1) 느헤미야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잘 깨달아 알았음

본문 12-13절에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스마야가 유명한 선지자이긴 한데, 그만 원수들에게 뇌물을 받고 이런 예언을 하였습니다. 즉, 그가 마귀의 종이 되어 느헤미야로 두렵게 하여 피난을 가게 하려 한것입니다. 성소 안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하던 것이 중지가 됩니다. 느헤미야가 있어야 역사가 이루어지는데, 그 일이 안 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 건축의 총 감독으로서, 역사의 모든 지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의 지도 아래 하나님의 성인 예루살렘이 건축되어 나가고 있는데, 총 지휘자가 무서워서 성전에 가 숨어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역사는 중지될 것이 분명하고, 일하던 사람들도 어디든 가서 숨어버릴지 모릅니다. 총 감독인 느헤미야가 원수에게 죽을 우려가 있어 숨어서 안 나오고 있다고 하면, 같이 일하던 사람들도 다 가서 숨을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성을 쌓는 역사는 중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지가 되면 마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원수의 목적은 하나님의 성전 역사를 중지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쌓는 것 때문에 지금 원수가 일어난 것아닙니까? 예루살렘 성을 쌓는 것 때문에 원수가 격동이 되어서 일어 났는데, 하나님의 성 쌓는 일이 중지되면 원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적들이 참으로 간교합니다. 그리고 마귀가 참으로 간교합니다. 선지자에게 마귀가 들어가서 그 선지자가 미혹을 받아 물질을 탐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뇌물을 받아 악을 저지르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 쌓는 일을 중지하게 하는,
간교한 역사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스마야 선지자는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느헤미야가 찾아간 것을 보면 느헤미야가 존경하는 선지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뜻은 느헤미야가 존경하는 그 선지자 속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성 건축하는 것을 중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때에 느헤미야가 뭐라고 답변을 하였습니까? 

본문 11절에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대답을 잘하였습니다. 태도가 분명합니다. 단연코 그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나 같은 자’라
는 말은 느헤미야 스스로 자신을 알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거룩한 예루살렘 성 건축하는 일의 책임자로 세워주셨는데, 나 같은 자가 그런 태도를 취하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는 것은 ‘이미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성 건축하는 일을 맡아 이렇게 충성을 하고 있는데, 지금 육신의 목숨을 건져내겠다고 하나님의 성 건축하는 것을 중지하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다고 하면 그것이 옳겠느냐? 예루살렘 성을 쌓다가 죽어도 죽는 것이 옳다’라는 말입니다. 느헤미야가 이런 결심을 하고 “나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았습니다. 

2) 우리는 자기 직분과 위치를 바로 알아야 함

누구나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해도 안 되고 과소평가해도 안 됩니다. 자기 자신, 자신의 위치, 자기 직분, 자기 하는 일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바로 못하면 마귀에게 다 넘어가고 맙니다. 느헤미야가 겸손한 마음을 가진다고 해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도 다른 사람과 같다’라고 생각하고 성소로 피난을 갔다고 하면, 하나님의
일이 다 흐트러집니다. 겸손한 것은 좋으나 자기의 직분과 자기의 위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기 하는 일도 바로 알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쓰시는 것도 바로 아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자리에 세우셔서 이 일을 시켜나가시는데, 내가 없으면 되겠느냐? 내가 피난을 갈 것 같으면, 일은 다 중지가 되고 다른 사람들도 다 도망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은 낭패가 되고 말 것인데, 내가 가면 되겠느냐?’하고 자신의 위치와 직무를 바로 알고 행하였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직무,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위치를 바로 알고 행해야 합니다. 그것을 바로 모르면 그만 마귀가 다 뒤집어엎고 맙니다. 그런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북에서 했던 일도 시일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나 같이 부족한 것이라도 세우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겸손까지는 좋으나 본인을 과소평가해서 하나님의 일을 안 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만 낭패를 보는 것입니다. 저도 생각해보니 안하려고 한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신학교를 하다가 그만 두려고 한 때도 있었습니다. 성경 학교는 몇 년 전부터 했지만, 69년도부터 신학을 하는데 여러 가지 난관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만 둘까?’하고 생각한 때도 있었습니다. 또 강해서를 낸 배경에는 김정득 목사가 자꾸 나보고 강해서를 내라고 권한 사연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같은 자가 무슨 책을 내겠느냐’고 하며, 처음에는 여러 해 동안 거절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번은 저보고 왜 강해서 책 안 내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부족한 것이 어떻게 내겠느냐고 했더니, “이거, 이 목사 교만해서 못 쓰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교만한가 하니 책을 잘 내려고 하는 것이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 생긴 대로 내면 되는 것이지, 무얼 잘 내려고 하느냐? 자기 실력대로 내고 생긴 대로 내면, 그것이 바로 되는 것이다. 잘 내려고 하니까 밤낮 책 낼 자격이 없다고 몇 년 째 그러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점에서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 말에 제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내가 너무 잘하려고 하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에게 비하니까 할 수 없다고 매번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김 목사의 말이 맞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후부터는 성경 강도한 대로 책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강해서는 20년 동안에 다 완료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나 같은 자가 무엇을 하겠느냐’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안 해도 된다.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다른 사람도 아무거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없다고 해서 건축 역사를 못하겠습니까? 또 강해서도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세우셔서 하실 수 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먹게 되어 있습니다. 이가 없다고 죽지 않습니다. 잇몸으로 먹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틀니도 해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 같은 자가 무엇을 하겠느냐’라고 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입니다. 보리떡이라도 바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나 같은 자가 무얼 하겠느냐’고 하는 말은 교만입니다. 보리떡이라도 바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몰라도, 나중에 가다 보면 분명히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느헤미야는 자격이 된 사람입니다. 그가 ‘나 같은 자가 어떻게 피난을 하겠느냐? 도망가면 일이 되겠느냐? 일이 안될 것이 뻔하다. 또 나 같은 자가 어떻게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육신의 생명을 보존하겠다고 하나님의 일을 중지하겠느냐? 나는 죽어도 일을 하다 죽는다. 그래서 피난은 가지 않겠다’하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이런 결심을 한 것은 느헤미야가 자격이 된 것입니다.

3) 사명을 감당하다 죽을 각오를 해야 함

우리는 이러한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지 않습니
까? 그 사명을 죽도록 하다 죽는 것이 옳지, 육신의 생명 하나 살겠다고 어떻게 피난을 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다 있고, 지금까지 그 일을 해왔는데, 그것을 끝까지 완수하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이 일을 끝까지 생명을 내놓고 해야겠다. 하다가 죽을 각오를 하고 끝까지 해나가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바로 느헤미야와 같은 신앙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그것이 성경대로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살겠다고 도망쳐서 성전에 갔다고 하면 그것은 진짜 죽고 마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떠나지 않겠습니까? 느헤미야의 신앙이 참 바른 신앙인데,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죽어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하다가 죽는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대적들이 느헤미야로 두렵게 하고 범죄하게 하며, 그를 비방하려 함

그리고 본문 12절에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스마야 선지자가 돈을 받고 그런 예언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돈에 넘어가는 선지자가 많습니다. 돈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돈을 준다면 옳지 않은 것도 하는, 그런 길을 걸어가면 안 됩니다. 돈에 미혹이 되면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일을 다 망치고 맙니다. 

요즘 신문에서 국회의원들 재산 공개하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돈만 많이 모으려고 하다가 망신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제 국회의원 직분 빼앗길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스마야 선지자도 돈을 따라 가다가 결국 이렇게 된 것입니다. 돈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정당하게 해야만 모든 것이 되는 법인데, 돈 따라가다가 이 선지자가 그만 자기도 망치고 느헤미야도 망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이겼습니다.

본문 13절에 “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스마야 선지자가 느헤미야로 두렵게 하여 피난을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범죄하게 하려고 도망치자고 하였고, 악한 말로 비방하려고 도망치자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도망치자고 한 것에 대해 세 가지의 경우가 나왔는데, 
첫째는 ‘두렵게 하고’입니다.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면 성 쌓는 일을 못합니다. 죽을까봐 벌벌 떠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다른 일군들도 다 떨 것이고, 백성들도 다 떨 것이 아니겠습니까? 

둘째는 ‘범죄하게 하고’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중지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 쌓는 일을 느헤미야에게 맡기셨는데, 그것을 중지하는 것은 범죄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일을 중지하는 것은 범죄하는 것임을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 보던 사람 중에 간혹 일하다 그만 두겠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 일을 하다가 왜 그만둡니까? ‘부족하다. 자격이 없다. 뭐가 어떻다’라고 핑계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중단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중지하는 것은 범죄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맡기셨으면 그 일을 죽도록 해야 합니다. 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중지하면 안 됩니다. 중지하면 범죄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데에 가서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
다. 예루살렘 성을 쌓으라고 하셨는데, 사마리아에 가서 성을 쌓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쌓으라는 데 가서 쌓아야지, 사마리아 성을 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베들레헴 성을 쌓아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쌓으라고 하실 때에는 예루살렘 성을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그것을 중지하면 범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겠습니다. 

셋째는 ‘나를 비방하려 함’입니다. 대적들이 악한 말을 지어 느헤미야를 비방하려 하였습니다. ‘비겁쟁이다. 남을 속여 먹었다. 과거에 뭐 잘 한다고 하더니 다 도망치고 말았다. 또 생명 내놓고 하자고 하더니 어려우니까 자기가 먼저 도망쳤다’ 등 여러 가지 악한 말로 비방할 수 있습니다. 

이북에 최 조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조사가 강단에서 말하기를 생명을 내놓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 소리를 꽝꽝 쳤습니다. 또 본인은 감옥에 가서 입을 의복을 싸가지고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감옥에 가서 입을 솜 바지와 저고리를 두툼한 것으로 가지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6.25 사변이 일어나니까 그 사람이 의복을 싸가지고 먼저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그 조사를 두고 비방을 많이 하였습니다. 감옥에 갈 의복을 싸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왜 먼저 도망쳤느냐는 것입니다. 최 조사가 차라리 감옥에 갈 의복 싸가지고 다닌다는 말을 안 하였으면, 그런 말을 안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조사가 여러 가지로 비방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믿는 교인들이 그 조사를 많이 비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조사는 그 이후에 피난도 오지 못하고 오다가 어디서 죽었는지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며칠 후에 떠나서 이남으로 왔는데, 최 조사는 오지 못하였습니다. 먼저 떠났어도 죽는 수가 있습니다. 먼저 떠났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면 살고 죽이시면 먼저 떠나도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 조사가 괜히 악한 말로 비방만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한 말로 비방당할 만한 일을 하지 않도
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오이 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을 바로잡지 말아라’는 말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오해하고 비방할 만한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느헤미야가 성전으로 도망쳐버리면 별의 별 비방이 다 나오게 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거짓말쟁이다. 그가 유다 나라를 사랑 한다는 것은 다 헛소리이다. 애국자는 무슨 애국자냐? 그는 사기꾼이다’, 이렇게 별 소리를 다 들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쌓겠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이기주의자라는 말도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안 간다고 함으로써 원수들의 계획이 다 무너졌습니다. 두렵게 하고 범죄하게 하며 악한 말로 비방하려는 것이 다 무너졌습니다. 

이렇게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면 원수가 아무리 많아도 문제없습니다. 원수들이 아무리 많이 일어나 죽이려고 덤벼들어도 일시에 다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다 없애주십니다. 바로 서면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서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로 서지 못하면 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못 막습니다. 하지만 바로만 서서 나가면 원수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서 다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물리쳐주십니다. 

본문 14절에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 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마귀의 시험이 때때로 있습니다. ‘도망치자. 도망하라. 생명을 보전해야 한다. 살 길을 찾아라. 거기 있으면 위태하다’, 이러한 시험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험 가운데에서 느헤미야와 같이 ‘나는 안 간다’라고 해야 합니다. 본문 11절에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세에 생명이 있습니다. 안 갈 데를 가면 일은 다 실패합니다. 마귀는 그것을 노립니다. 느헤미야가 성소에 들어가면 마귀는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일은 중지가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 느헤미야가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부적으로는 악한 말로 비방이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으로 이끄려고 마귀는 자꾸 와서 꼬이는 것입니다.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함

그리고 지금 여 선지까지 나와서 느헤미야로 두렵게 하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스마야 외에도 다른 선지자들이 또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마귀의 시험에 들어서 느헤미야로 두렵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느헤미야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밖에는 없습니다. 누구나 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내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나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 만큼 붙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마귀가 와서 시험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 기도원 지은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많이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참 감사합니다. 우리가 과대평가해도 안 되고 과소평가해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우리 기도원에서 집회하는 것을 나는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새 좀 깨달았는데, 기도원 사경회를 하는데 몇 천 명이 모인다는 것이 드문 경우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5백 평 강당에 차게 모였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셨구나’, 이렇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닙니다. 다른 데서는 이만큼 모이는 기도원 집회가 별로 없는 모양입니다. 교회는 큰 교회들이 있지만, 산에 가서 기도하는 데에 우리만큼 큰 강당 있는 교회가 별로 없습니다. 다른 여러 기도원에 가서 봐도 기도원에 강당이 없습니다. 우리 기도원 옆쪽으로 가다 보면 충현 교회 기도원이 있는데, 그 기도원에도 강당이 없습니다. 기도원 예배당만 한 150평 쯤 되는 것이 하나있고 큰 강당이 없습니다. 그래서 왜 큰 강당을 안 지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잘 몰랐는데, 우리만 큰 강당 지은 것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공사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큰 강당은 다른 기도원에 없다는 것입니다. 조그맣게 해서 잘 지은 데는 있지만, 규모가 큰 강당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를 않으니까 큰 강당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지금 산에 기도하러 가지고 하면, 많이 가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많이 안 가는데, 뭐 하러 큰 강당을 짓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러 가자고 하면 많이 갑니다. 이것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요새 깨달았습니다. 

또 우리는 사경회 할 때에 전국에서 다 모입니다. 목포, 부산, 울산, 울진, 제주도, 여수, 순천 등 전국에서 다 모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국에서 말씀 배우고 기도하러 다 모인다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과거에는 너무 과소평가를 했습니다. 물론 자랑하면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큰 은혜 주신 것은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점들을 점점 더 깨닫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기도하러 간다는 사실, 기도하러 간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만하면 망하므로 그럴수록 더욱 겸손하고 우리 자신은 부족한 줄 알고 나가야겠습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닌 줄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드셔서 이렇게 일해나가시는 것을 과소평가하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부분들에 대하여 늘 감사하며 나아가 충성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4. 성 건축이 완료되자 대적들이 두려워 함

본문 15-16절에 “성 역사가 오십 이 일만에 엘룰 월 이십 오 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그때에 유다의 귀인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저희에게 이르렀으니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저희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나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항상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 가운데 성 역사가 오십 이 일 만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성 건축이 잘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며 인도해주시고, 지도자 느헤미야가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한 결과입니다. 느헤미야가 신앙의 투지를 발휘하며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도 정성을 들려 건축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여기서 엘룰 월은 유다의 종교력으로 6월을 말하는데, 양력으로는 8, 9월에 해당합니다.

5. 유다의 귀인들이 대적들과 연락하며 느헤미야를 괴롭게 함

본문 17-19절에 “그때에 유다의 귀인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저희에게 이르렀으니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저희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나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항상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때’는 예루살렘 성 건축하는 동안을 가리킵니다. 이 기간에 대적들이 계속하여 방해해 왔고, 유다의 선지자들도 그들과 손을 잡아 느헤미야를 괴롭게 했습니다. 또 유다의 귀인들은 자신들의 딸을 대적들의 아들들에게 내어주어 혼인을 통하여 그들과 동맹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이러한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도 끝까지 예루살렘 성 쌓는 일을 계속하여 결국 역사를 마쳤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 가운데 성 건축을 완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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