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6:1-30 욥의 심한 고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욥의 심한 고통
욥기 6:1-30

1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나의 분한을 달아 보며 나의 모든 재앙을 저울에 둘 수 있으면 3바다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럼으로 하여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4전능자의 살이 내 몸에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5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6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7이런 것을 만지기도 내 마음이 싫어하나니 못된 식물같이 여김이니라 8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시기를 내가 원하나니 9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그 손을 들어 나를 끊으실 것이라 10그러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1내가 무슨 기력이 있관대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관대 오히려 참겠느냐 12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13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지혜가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14피곤한 자 곧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를 그 벗이 불쌍히 여길 것이어늘 15나의 형제는 내게 성실치 아니함이 시냇물의 마름 같고 개울의 잦음 같구나 16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취었을찌라도 17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 18떼를 지은 객들이 시냇가로 다니다가 돌이켜 광야로 가서 죽고 19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20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리고 낙심하느니라 21너희도 허망한 자라 너희가 어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22내가 언제 너희에게 나를 공급하라 하더냐 언제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로 예물을 달라더냐 23내가 언제 말하기를 대적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포악한 자의 손에서 나를 구속하라 하더냐 24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25옳은 말은 어찌 그리 유력한지, 그렇지만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뇨 26너희가 말을 책망하려느냐 소망이 끊어진 자의 말은 바람 같으니라 27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벗을 매매할 자로구나 28이제 너희가 나를 향하여 보기를 원하노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29너희는 돌이켜 불의한 것이 없게 하기를 원하노라 너희는 돌이키라 내 일이 의로우니라 30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궤휼을 분변치 못하랴

1. 욥이 고통이 심한 것을 진술함

본문 1-3절에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분한을 달아 보며 나의 모든 재앙을 저울에 둘 수 있으면 바다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럼으로 하여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이 바다 모래보다 더 무거울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욥의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분한’이란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을 뜻합니다. 그리고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라는 것은 너무 재앙이 커서 욥이 생일과 출생을 탄식했던 것이 경솔하였다는 말입니다.

본문 4절에 “전능자의 살이 내 몸에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전능자의 살이 내 몸에 박히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욥이 지금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란 육체만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라 육체의 고난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심령에까지 그 고난이 심하게 미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을 마신 것처럼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고통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본문 5-7절에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이런 것을 만지기도 내 마음이 싫어하나니 못된 식물같이 여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들나귀가 먹을 것이 있으면 울지 않는 것처럼, 욥이 고통 가운데 있지 않다면 탄식을 하지 않았을 것이나, 고통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지금 부르짖는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라는 말은 욥이 까닭을 모르고 고난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즉, 싱거운 음식은 소금을 쳐야 맛이 있는데, 지금 이 상황은 싱거운 음식을 소금 없이 먹으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먹을 만하게 해놓
고 먹으라는 것이 아니라, 먹을 수 없는 것을 욥으로 하여금 먹으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조건을 구비해놓고 감당하라는 것이 아니고 조건을 구비해놓지 않고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하는 고난이 욥에게 말로 다 할 수 없이 큰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2. 욥이 고난이 심하여 죽기를 구함

본문 8-9절에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시기를 내가 원하나니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그 손을 들어 나를 끊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이제 고난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죽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욥이 고난으로 말미암아 절망 가운데 빠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욥의 고난이 얼마나 심하면 이렇게 죽는 것을 사모하였겠습니까? 욥이 당하는 고난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입니다.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욥 3:24).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심한 고난이 욥에게 왔습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나온 것이고 또 그런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죽기를 사모하는 기도를 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욥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은 살인죄에 해당합니다. 욥이 죽기를 사모하는 기도를 한 것은 마치 아이들이 자기 부모에게 와서 죽여 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자식은 부모에게 불효막심한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역경에 있을지라도 죽여 달라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그러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심한 고통 가운데 있으나 한 가지 기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기쁨은 거룩하신 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참 기쁨이요, 참 위안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5장 16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라고 하였는데,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와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본문 11-13절에 “내가 무슨 기력이 있관대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관대 오히려 참겠느냐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지혜가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욥이 심한 고난으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관대 오히려 참겠느냐’라는 것은 소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는 욥의 기력이 돌같이 강한 힘을 갖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는 욥의 몸이 놋쇠와 같이 단단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라는 말은 욥이 스스로 소생시킬만한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의 지혜가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말도 욥에게 당면하고 있는 고통을 해결할 만한 지혜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욥이 친구들에게 견딜 수 없는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 것입니다. 

3. 욥이 친구들의 불성실한 것을 책망함

욥의 친구들이 욥의 환난 날에 도움이 되지 못함

본문 14-15절에 “피곤한 자 곧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를 그 벗이 불쌍히 여길 것이어늘 나의 형제는 내게 성실치 아니함이 시냇물의 마름 같고 개울의 잦음 같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피곤한 자 곧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란 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욥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버렸다는 것이 아니라, 만일 욥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포기했다고 해도 친구들이 욥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그 벗이 불쌍히 여길 것이어늘’이란 욥의 친구들이 피곤한 벗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나의 형제는 내게 성실치 아니함이 시냇물의 마름 같고 개울의 잦음 같구나’라는 것은 시냇물과 개울의 물이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결해줌과 같이 불쌍한 자를 그의 벗들이 위로해주어야 마땅한데, 욥의 친구들은 마른 시냇물과 같이 욥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위로해주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개울에 물이 있어야 사람들이 와서 마시고 상쾌해질 수 있습니다. 해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울이 말라 있으면 사람이 해갈함을 얻지 못합니다.

본문 16-17절에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취었을찌라도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란 얼음이 녹으면 물이 더러워지고 혼탁해진다는 뜻입니다. 얼음에 있던 먼지가 얼음이 녹으면서 물에 섞이므로, 그 물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이 그 속에 감취었을찌라도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눈은 날이 따뜻해지면 녹고 마침내는 말라 없어진다는 것으로, 욥이 건강하고 넉넉할 때에는 친구들이 와서 도와주고 잘해 주었으나 환난이 심하여 죽을 고통에 빠진 다음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겨울 시내에는 얼음도 있고 물도 있고 눈도 있어서, 시내가 풍성합니다. 그러나 날이 더워지면 얼음이 녹아서 검은 물로 되었다가 또 날이 더워지면 물이 다 말라집니다. 즉, 겨울에는 물이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며, 또 눈도 있어서 여러 가지 형형각색
으로 풍성하지만 따뜻해지고 더워지면 바짝 다 마르고 없어지는 것과 같이, 환난 시에는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위로해주는 사람도 없다는것입니다. 이와 같이 욥이 모든 것이 넉넉할 때에는 친구들이 와서 잘해주었지만, 환난을 당할 때에는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주식형제(酒食兄弟)는 천개유(千個有)라도 급난지붕(急難之朋)은 일개무(一個無)’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돈이 있어 풍족할 때는 친구가 천 명이나 되어도 위급할 때에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이런 세상입니다. 욥이 과거에 풍성할 때에는 친구들이 잘 도
와주고 큰 힘이 되었으나, 정작 환난을 당해서 죽어가는 곤경에 빠졌을 때에는 빠짝 마른 시내와 같이 도리어 친구들이 자신을 괴롭게 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의지하고 믿을 바가 못되며, 사랑해야 함

본문 18-20절에 “떼를 지은 객들이 시냇가로 다니다가 돌이켜 광야로 가서 죽고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리고 낙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데마의 떼들’은 무역을 잘하는 북아라비아의 장사꾼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이스마엘의 후손들입니다(창 25:15). ‘스바의 행인들’은 남서아라비아에 거주하며 상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당시에 데마의 장사꾼들과 스바의 행인들이 광야 사막을 지나가다가 목이 마르면 시내를 찾아서 물을 마시곤 하는데, 그때 시내에 물이 없으면 낙심하고 거기서 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와 같이 욥의 친구들도 마른 시내와 같이, 외부적으로는 욥을 도와주는 사람들인 것 같으나 정작 필요할 때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도리어 낙심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믿을 바가 못 됩니다(요 2:24, 16:32; 사 2:22).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은 의지할 바가 아니고 사랑할 바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요한복음 16장 32절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사야 2장 22절에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의지할 바가 못 됩니다.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인생을 의지 하다가는 반드시 실패할 날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가는 사람은 영영히 요동함을 보지 않습니다. 

본문 21-22절에 “너희도 허망한 자라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내가 언제 너희에게 나를 공급하라 하더냐 언제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로 예물을 달라더냐”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당하는 일을 보고 겁을 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거역한 욥을 자신들이 동정하다가 자기들도 하나님께 벌을 받을까봐, 또는 자기들도 욥과 같이 될까봐 두려워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가 언제 너희에게 나를 공급하라 하더냐 언제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로 예물을 달라더냐’라는 욥의 말로 보아, 욥은 친구들을 의지하며 물질로 자신을 건져달라고 그들에게 부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을 의지하지 않았고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친구들은 사랑하기만 했습니다.

4. 욥이 친구들에게 그들의 잘못된 것을 고치라고 함

본문 24-25절에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옳은 말은 어찌 그리 유력한지, 그렇지만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뇨”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친구에게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가르쳐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옮은 말은 어찌 그리 유력한지’란 옳은 말은 반드시 성취 된다는 뜻입니다. 또 옳은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유력하다는 것입니다. 옳은 말은 지금 당장에는 그 말이 사람들에게 안 들려도 그 말이 성취될 때에 유력하다는 것입니다. 또 옳은 것이 드러날 때에 유력합니다. 옳은 말을 해두면 그 말을 깨달을 날이 옵니다. 그러나 ‘그렇지만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뇨’란 욥의 친구들의 말은 옳은 말이 아니므로 유익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옳지 않은 말은 힘이 없고, 가치가 없습니다.

본문 26절에 “너희가 말을 책망하려느냐 소망이 끊어진 자의 말은 바람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말을 책망하려느냐’란 욥이 친구들에게 내 말을 책잡으러 왔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또 ‘소망이 끊어진 자의 말은 바람 같으니라’고 하였는데, 욥이 친구들에게 “살 소망이 없이 죽는 날만 기다리는 자의 말을 책잡아서 뭘 하겠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이 바람 같은 사람은 소망이 끊어진 자입니다. 

본문 27절에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벗을 매매할 자로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친구들이 고아를 함정에 빠뜨리고 벗을 팔려고 하는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친구를 팔아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친구를 비방하거나 배신하는 것은 친구를 팔아먹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4절에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하였는데, 요새는 친구를 배반하고 부모를 배반하고 선생을 배반하는 악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본문 28절에 “이제 너희가 나를 향하여 보기를 원하노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진실하게 모든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는 진실해야 합니다. 성도가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본문 29-30절에 “너희는 돌이켜 불의한 것이 없게 하기를 원하노라 너희는 돌이키라 내 일이 의로우니라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궤휼을 분변치 못하랴”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돌이켜 불의한 것이 없게 하기를 원하노라’란 욥이 친구들에게 부당한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일이 의로우니라’는 것은 욥이 자신의 말이나 모든 일이 의롭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진실하게, 양심대로 한다는 말입니다. 또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라는 것은 불의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악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내 미각이 어찌 궤휼을 분변치 못하랴’라고 했는데, 지금 욥은 자기가 옳고 그름을 바로 판단하여 바른 일을 하고 바른 말을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심령이 밝아 모든 것을 바로 분변할수 있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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